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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요한일서 3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이데테 포타펜 아가펜 데도켄 헤민 호 파테르 히나 테크나 데우 클레도멘 카이 에스멘 디아 투토 호 코스모스 우 기노스케이 헤마스 호티 우크 에그노 아우톤

 

개역개정,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새번역,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됐으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 How great is the love the Father has lavished 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that is what we are! The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is that it did not know him.
영어NASB,1 See how great a love the Father has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such we are. For this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because it did not know Him.
영어MSG,1  What marvelous love the Father has extended to us! Just look at it--we're called children of God! That's who we really are. But that's also why the world doesn't recognize us or take us seriously, because it has no idea who he is or what he's up to.
영어NRSV,1 See what love the Father has give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that is what we are. The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is that it did not know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 ιδετε ποταπην αγαπην δεδωκεν ημιν ο πατηρ ινα τεκνα θεου κληθωμεν δια τουτο ο κοσμος ου γινωσκει ημας οτι ουκ εγνω αυτον
라틴어Vulgate,1 videte qualem caritatem dedit nobis Pater ut filii Dei nominemur et sumus propter hoc mundus non novit nos quia non novit eum
히브리어Modern,1 ראו מה גדלה אהבת האב הנתונה לנו אשר נקרא בני האלהים על כן העולם איננו ידע אתנו יען כי אותו לא ידע׃

 

성 경: [요일3:1]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데테'(*)는 감탄사의 역할을 하는 명령형으로 복수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 복수 형태는 가시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어법이다. 이는 수신자들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음을 암시한다(Smalley, Westcott).

󰃨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 '어떠한'의 헬라어 '포타펜'(*)은 신약 성경에서 대개 놀라움이나 경탄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8:27; 13:1; 벧후3:11), 본문에서는 '어떠한 정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를 의미한다(Brooke). 한편 '자녀'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크나'(*)는 실제적인 부자 관계에서의 자녀됨을 강하게 함축하는 단어이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주로 '휘오스'(*, '아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법적인 부자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Plummer, Wilder).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로써 값없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우신 사랑인가를 선포하고 있다(Calvin). 요한은 '우리가 그러하도다'를 부가하여 수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는 문법적인 연결이 명백하지 않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는 '디아 투토'가 뒷부분의 내용과 연결되어 '호티'(*, '왜냐하면') 이하의 절을 설명하는 것으로 본다(Smalley, Stott). (2)혹자는 '디아 투토'가 앞부분의 내용과 연결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보고, '호티' 다음에 따라오는 절은 부가적 기능만을 한다고 주장한다(Haas, Marshall). 어느 견해를 취해도 의미상 큰 변화는 없으나 문맥상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를 모르는 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단순히 수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편 ''가 누구를 지칭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aas). (2)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Bultmann, Stott). (3)혹자는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Westcott, Briike). 본문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지만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1:3; 2:1,24). 요한은 세상이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사실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에 속한 자요 어두움에 거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영접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한 자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알 수가 없다.

 

 

아가페토이 뉜 테크나 데우 에스멘 카이 우포 에파네로데 티 에소메다 오이다멘 호티 에안 파네로데 호모이오이 아우토 에소메다 호티 옾소메다 아우톤 카도스 에스틴

 

개역개정,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새번역,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그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 Dear friends, now we are children of God, and what we will be has not yet been made known. But we know that when he appears, we shall be like him, for we shall see him as he is.
영어NASB,2 Beloved, now we are children of God, and it has not appeared as yet what we shall be. We know that, when He appears, we shall be like Him, because we shall see Him just as He is.
영어MSG,2  But friends, that's exactly who we are: children of God. And that's only the beginning. Who knows how we'll end up! What we know is that when Christ is openly revealed, we'll see him--and in seeing him, become like him.
영어NRSV,2 Beloved, we are God's children now; what we will be has not yet been revealed. What we do know is this: when he is revealed, we will be like him, for we will see him as he is.
헬라어신약Stephanos,2 αγαπητοι νυν τεκνα θεου εσμεν και ουπω εφανερωθη τι εσομεθα οιδαμεν δε οτι εαν φανερωθη ομοιοι αυτω εσομεθα οτι οψομεθα αυτον καθω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2 carissimi nunc filii Dei sumus et nondum apparuit quid erimus scimus quoniam cum apparuerit similes ei erimus quoniam videbimus eum sicuti est
히브리어Modern,2 אהובי עתה בנים לאלהים אנחנו ועוד לא נגלה מה נהיה אך ידענו כי בהגלותו נדמה לו כי נראהו כאשר הוא׃


 

성 경: [요일3:2]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 본문은 '지금...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긴장 관계(eschatological tension)에 놓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을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간에, 혹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모습이 육체의 소욕(所慾)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다(Calvin, Stott). 신자의 미래에 대해서는 구원의 영광이 약속되었다. 그러나 비록 현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특권과 하나님의 성품을 누리며 미래에 주어질 구원이 확실하다 할지라도 장차 되어질 그리스도인의 미래 상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계시 되지 않았기에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야 신자는 장래에 자기 자신에게 일어날 구체적인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Stott).

󰃨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안 파네로데'(*)에는 주어가 없어서 이를 해석하는데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를 바로 앞 문장의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가리키는 비인격적 주어로 보면서 바로 뒷 문장에 나타난 ''는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Schnackenburg, Plummer, Bengel). (2)혹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Stott, Barker, Bru- ce, Smalley). (1)의 견해는 두 가지 점에서 부당하다. 첫째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1) 본서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를 명백히 구분짓지 않고 있음을 간과하였으며 둘째로, 이어지는 본문의 논의가 하나님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Smalley). 그러므로 본문에 사용된 ''는 후자의 견해와 같이 전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우리가 주와 같을 줄 아는 것이 주의 계신 그대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그날에 '우리가 새사람을 입고'(4:24) '주와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되어서'(3:21) 주와 같이 됨을 의미한다(Stott).

 

 

카이 파스 호 에콘 텐 엘피다 타우텐 엪 아우토 하그니제이 헤아우톤 카도스 에케이노스 하그노스 에스틴

 

개역개정,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새번역,3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말성경,3 누구든지 그분을 향해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분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 
가톨릭성경,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영어NIV,3 Everyone who has this hope in him purifies himself, just as he is pure.
영어NASB,3 And everyone who has this hope fixed on Him purifies himself, just as He is pure.
영어MSG,3  All of us who look forward to his Coming stay ready, with the glistening purity of Jesus' life as a model for our own.
영어NRSV,3 And all who have this hope in him purify themselves, just as he is pure.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πας ο εχων την ελπιδα ταυτην επ αυτω αγνιζει εαυτον καθως εκεινος αγν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3 et omnis qui habet spem hanc in eo sanctificat se sicut et ille sanctus est
히브리어Modern,3 וכל אשר לו תקוה כזאת יטהר את עצמו כאשר טהור גם הוא׃


 

성 경: [요일3:3]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 '소망'의 헬라어 '엘피다'(*)는 바울 서신이나 베드로 서신에는 빈번하게 나타나지만(5:4; 8:24; 고후1:7; 벧전1:3) 요한 복음이나 요한 서신 중에서는 본문에서 단 한 번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이루리라는 확신에 찬 기대'라는 소망의 개념은 2절에서 명백히 설명되고 있다(Smalley). 따라서 '이 소망'2절에 나타난 장래의 일들에 대한 종말론적인 소망을 가리킨다(Barker).

󰃨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요한은 처음으로 예수의 특징을 '깨끗하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깨끗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노스'(*)'디카이오스'(*, '의로운')와 거의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의 정결하심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따라야 할 본보기임을 시사한다(2:1,29;3:7, Smalley). 한편 '깨끗하게 하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하그니제이'(*)'하그노스'(*, '깨끗하심')와 같은 어원을 갖는 동사로 제의적 정결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19:10,11; 8:21; 11:55; 21:24). 그러나 본문에서는 시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성품으로서 도덕적인 깨끗함을 의미한다(Law, Stott, Smalley, Barker).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자는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하여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5:48).

 

 

파스 호 포이온 텐 하마르티안 카이 텐 아노미안 포이에이 카이 헤 하마르티아 에스틴 헤 아노미아

 

개역개정,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새번역,4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우리말성경,4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은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가톨릭성경,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영어NIV,4 Everyone who sins breaks the law; in fact, sin is lawlessness.
영어NASB,4 Everyone who practices sin also practices lawlessness; and sin is lawlessness.
영어MSG,4  All who indulge in a sinful life are dangerously lawless, for sin is a major disruption of God's order.
영어NRSV,4 Everyone who commits sin is guilty of lawlessness; sin is lawlessness.
헬라어신약Stephanos,4 πας ο ποιων την αμαρτιαν και την ανομιαν ποιει και η αμαρτια εστιν η ανομια
라틴어Vulgate,4 omnis qui facit peccatum et iniquitatem facit et peccatum est iniquitas
히브리어Modern,4 כל העשה חטא גם פשע בתורה הוא והחטא הוא פשע בתורה׃


 

성 경: [요일3:4]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 본문은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은 죄가 없으며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요한은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가 예외없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을 배격하고 있다.

󰃨 죄는 불법이라. - 여기서 '불법'(*, 아노미안)은 문자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이 '율법'(*, 노모스)이란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불법'은 율법을 범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인간의 본성적인 불법을 의미한다(Barker). 요한은 자기 자신들이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사실상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서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카이 오이다테 호티 에케이노스 에파네로데 히나 타스 하마르티아스 아레 카이 하마르티아 엔 아우토 우크 에스틴

 

개역개정,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새번역,5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말성경,5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분은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습니다. 
가톨릭성경,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영어NIV,5 But you know that he appeared so that he might take away our sins. And in him is no sin.
영어NASB,5 And you know that He appeared in order to take away sins; and in Him there is no sin.
영어MSG,5  Surely you know that Christ showed up in order to get rid of sin. There is no sin in him, and sin is not part of his program.
영어NRSV,5 You know that he was revealed to take away sins, and in him there is no sin.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οιδατε οτι εκεινος εφανερωθη ινα 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 αρη και αμαρτια εν αυτω ουκ εστιν
라틴어Vulgate,5 et scitis quoniam ille apparuit ut peccata tolleret et peccatum in eo non est
히브리어Modern,5 וידעתם כי הוא נגלה לשאת את חטאינו ובו אין חטא׃


 

성 경: [요일3:5]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 ''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스'(*)는 복수형이다. 이는 죄악된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Smalley, Stott). 한편 '나타내신'의 헬라어 '에파네로데'(*)는 부정과거 시상이다. 이것은 과거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의 성육신이 역사적 사건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인 실재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예수의 '죄를 없애는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으며(1:29), 모든 죄를 친히 자기 몸에 짊어지심으로써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53:11,12; 9:28; 벧전2:24, Stott).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죄가 없다'는 말씀은 3절의 '깨끗하심'2:29; 3:7'의로우심'과 동일한 의미이다. 예수의 무죄성은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신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후5:21; 4:15; 벧전1:19). 한편 본문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에스틴'(*, '~이다')으로 현재형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기간 동안만 죄로부터 자유로우셨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무죄하심을 암시한다(Smalley).

 

 

파스 호 엔 아우토 메논 우크 하마르타네이 파스 호 하마르타논 우크 헤오라켄 아우톤 우데 에그노켄 아우톤

 

개역개정,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새번역,6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말성경,6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을 본 적도 그분을 안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가톨릭성경,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영어NIV,6 No one who lives in him keeps on sinning. No one who continues to sin has either seen him or known him.
영어NASB,6 No one who abides in Him sins; no one who sins has seen Him or knows Him.
영어MSG,6  No one who lives deeply in Christ makes a practice of sin. None of those who do practice sin have taken a good look at Christ. They've got him all backwards.
영어NRSV,6 No one who abides in him sins; no one who sins has either seen him or know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6 πας ο εν αυτω μενων ουχ αμαρτανει πας ο αμαρτανων ουχ εωρακεν αυτον ουδε εγνωκε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6 omnis qui in eo manet non peccat omnis qui peccat non vidit eum nec cognovit eum
히브리어Modern,6 כל העמד בו לא יחטא כל החוטא לא ראהו גם לא ידעו׃


 

성 경: [요일3:6]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본문은 1:8,10의 진술과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이에 대해 네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주 안에 거하는 자의 인격에 주목하여 그리스도인은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한다(Wesley). (2)혹자는 요한이 신자의 삶의 원리를 선포한 것으로 보고 '범죄치 아니함'을 신자의 이상적 특징으로 해석한다(Alford, Calvin). (3)혹자는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된다(Lange, Smith, Barker, Westcott, Stott). (4)혹자는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원리상 이미 범죄하지 않는 자이지만 실제상 아직 범죄하는 자라고 본다. 즉 그리스도인이 현재 긴장과 역설의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Smalley, Schn- a ckenburg).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세 번째 견해의 경우 '범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타네이'(*)는 현재형으로서 동작의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상태를 묘사해 주기 때문이며, 네번째 견해의 경우 루터(Luther)'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치 아니하는 동시에 범죄한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Smalley). 앞 절에서 진술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죄와 상관없는 깨끗한 분이시기에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와 상관없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죄를 범한다면 그는 회개함을 용서함을 받고 불법의 생활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가 지속적이며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죄를 좋아하며 죄 안에 거하길 즐겨한다면 그는 완전히 깨끗하신 그리스도를 알거나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5:37,38; 8:19; 14:7,9; 요삼1:11, Stott, Barker).

 

 

테크니아 메데이스 플라나토 휘마스 호 포이온 텐 디카이오쉬넨 디카이오스 에스틴 카도스 에케이노스 디카이오스 에스틴

 

개역개정,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새번역,7 자녀 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우리말성경,7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어느 누구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습니다. 
가톨릭성경,7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영어NIV,7 Dear children, do not let anyone lead you astray. He who does what is right is righteous, just as he is righteous.
영어NASB,7 Little children, let no one deceive you; the one who practices righteousness is righteous, just as He is righteous;
영어MSG,7  So, my dear children, don't let anyone divert you from the truth. It's the person who acts right who is right, just as we see it lived out in our righteous Messiah.
영어NRSV,7 Little children, let no one deceive you. Everyone who does what is right is righteous, just as he is righteous.
헬라어신약Stephanos,7 τεκνια μηδεις πλανατω υμας ο ποιων την δικαιοσυνην δικαιος εστιν καθως εκεινος δικαι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7 filioli nemo vos seducat qui facit iustitiam iustus est sicut et ille iustus est
히브리어Modern,7 בני אל יתעה אתכם איש העשה צדקה צדיק הוא כאשר הוא צדיק׃


 

성 경: [요일3:7]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 본문은 수신자 내에 있던 영지주의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요한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니의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靈智)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자유로워져 도덕적인 방종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윤리의 가르침은 요한 당시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시켰다. 그래서 요한은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 이외의 것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들을 멀리하며, 거절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 본문은 2:29의 반복이다. 여기서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의로움의 동기와 근거를 나타낸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가능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의를 행함이 조건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로서 그의 의로움을 행위로 보여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Bruce).

 

 

호 포이온 텐 하마르티안 에크 투 디아볼루 에스틴 호티 앞 아르케스 호 디아볼로스 하마르타네이 에이스 투토 에파네로데 호 휘오스 투 데우 히나 뤼세 타 에르가 투 디아볼루

 

개역개정,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새번역,8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8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짓기를 일삼아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영어NIV,8 He who does what is sinful is of the devil, because the devil has been sinning from the beginning. The reason the Son of God appeared was to destroy the devil's work.
영어NASB,8 the one who practices sin is of the devil; for the devil has sinned from the beginning. The Son of God appeared for this purpose, that He might destroy the works of the devil.
영어MSG,8  Those who make a practice of sin are straight from the Devil, the pioneer in the practice of sin. The Son of God entered the scene to abolish the Devil's ways.
영어NRSV,8 Everyone who commits sin is a child of the devil; for the devil has been sinning from the beginning. The Son of God was revealed for this purpose, to destroy the works of the devil.
헬라어신약Stephanos,8 ο ποιων την αμαρτιαν εκ του διαβολου εστιν οτι απ αρχης ο διαβολος αμαρτανει εις τουτο εφανερωθη ο υιος του θεου ινα λυση τα εργα του διαβολου
라틴어Vulgate,8 qui facit peccatum ex diabolo est quoniam ab initio diabolus peccat in hoc apparuit Filius Dei ut dissolvat opera diaboli
히브리어Modern,8 והעשה חטא מן השטן הוא כי השטן חטא מראש לזאת נגלה בן האלהים להפר את פעלות השטן׃


 

성 경: [요일3:8]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 본문은 7절 하반절과 정반대되는 내용으로서 대조를 이룬다. 의를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반면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다. 요한은 이러한 대조법을 사용하여서 수신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누구에게 속하느냐'란 질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동시에 영지주의자들이 방종을 통해 범죄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누구에게 속하였는가를 분별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요한은 본문에서 마귀의 기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으며, 단지 죄의 기원이 마귀에게 있다는 사실만을 말한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암시하는 듯하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하는 자로서 진리가 그 안에 전혀 없기에(8:44) 속이는 자이며 사람들로 범죄하게 한다. 이러한 죄의 기원에 대해 바울이 아담에게까지 소급시킨 것과 달리(5:12-19), 요한은 그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Westcott).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마귀의 일'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3:1-6). 이러한 마귀의 일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그르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죄인을 어둠에서 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5; 9:28; 벧전2:24). 요컨대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죄를 없애고 동시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인 것이다(Plummer).

 

 

파스 호 게겐네메노스 에크 투 데우 하마르티안 우 포이에이 호티 스페르마 아우투 엔 아우토 메네이 카이 우 뒤나타이 하마르타네인 호티 에크 투 데우 게겐네타이

 

개역개정,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새번역,9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9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영어NIV,9 No one who is born of God will continue to sin, because God's seed remains in him; he cannot go on sinning, because he has been born of God.
영어NASB,9 No one who is born of God practices sin, because His seed abides in him; and he cannot sin, because he is born of God.
영어MSG,9  People conceived and brought into life by God don't make a practice of sin. How could they? God's seed is deep within them, making them who they are. It's not in the nature of the God-begotten to practice and parade sin.
영어NRSV,9 Those who have been born of God do not sin, because God's seed abides in them; they cannot sin, because they have been bor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9 πας ο γεγεννημενος εκ του θεου αμαρτιαν ου ποιει οτι σπερμα αυτου εν αυτω μενει και ου δυναται αμαρτανειν οτι εκ του θεου γεγεννηται
라틴어Vulgate,9 omnis qui natus est ex Deo peccatum non facit quoniam semen ipsius in eo manet et non potest peccare quoniam ex Deo natus est
히브리어Modern,9 כל הנולד מאלהים לא יחטא כי זרעו בו יקום ולא יוכל לחטא כי מאלהים נולד׃


 

성 경: [요일3:9]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 본절은 6절의 반복이다. 요한은 1:8,10에서 믿는 자들이 죄를 지을 가능성을 언급하였으나 본절에서는 믿는 자들이 범죄치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절은 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습관적으로 마귀와 같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는 본문이 수신자들 사이에 있던 영지주의자들을 향한 경고인을 전제로 할 때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요한 당시의 영지주의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가 되었으므로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죄가 영지를 깨달은 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으므로 범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부류이다. 요한은 전자의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범죄함을 역설하였고(1:8,10), 후자의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신자들은 범죄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역설하고 있다(6).

󰃨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 '하나님의 씨'에 대한 견해는 다섯 가지이다. (1)혹자는 신적인 생명의 원리라고 주장한다(Smith, Marshall). (2)혹자는 집합적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들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ohlenberg, Stott). (3)혹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Oecumenius, Theophylactus). (4)혹자는 말씀 또는 복음이라고 주장한다(Augustine, Dodd). (5)혹자는 성령이라고 주장한다(Calvin). 다섯 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Smalley).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말씀이 심기워 있음(119:11; 31:33)과 성령께서 내주하심(8:11; 고전3:16)은 동시적이고 불가분리적이다. '하나님의 씨' 즉 말씀과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거할 때 그 그리스도인은 범죄하지 않게 된다.

 

 

엔 투토 파네라 에스틴 타 테크나 투 데우 카이 타 테크나 투 디아볼루 파스 호 메 포이온 디카이오쉬넨 우크 에스틴 에크 투 데우 카이 호 메 아가폰 톤 아델폰 아우투

 

개역개정,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새번역,10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 ㉠그, '형제'
우리말성경,10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10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영어NIV,10 This is how we know who the children of God are and who the children of the devil are: Anyone who does not do what is right is not a child of God; nor is anyon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영어NASB,10 By this the children of God and the children of the devil are obvious: anyone who does not practice righteousness is not of God, nor the on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영어MSG,10  Here's how you tell the difference between God's children and the Devil's children: The one who won't practice righteous ways isn't from God, nor is the one who won't love brother or sister. A simple test.
영어NRSV,10 The children of God and the children of the devil are revealed in this way: all who do not do what is right are not from God, nor are those who do not love their brothers and sister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ν τουτω φανερα εστιν τα τεκνα του θεου και τα τεκνα του διαβολου πας ο μη ποιων δικαιοσυνην ουκ εστιν εκ του θεου και ο μη αγαπων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10 in hoc manifesti sunt filii Dei et filii diaboli omnis qui non est iustus non est de Deo et qui non diligit fratrem suum
히브리어Modern,10 ונודעו בזאת בני האלהים ובני השטן כל איש אשר לא יעשה צדקה איננו מאלהים וכן כל אשר לא יאהב את אחיו׃


 

성 경: [요일3:10]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하나님의 자녀]

󰃨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며 모든 인간들을 낳으신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인간들의 아버지가 아니다. 마귀의 자녀들도 있다(8:44).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13:24-30). 자녀들이 부모를 닮아 가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닮고, 마귀의 자녀들은 마귀를 닮는다(Stott, Bruce).

󰃨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저자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마귀의 자녀인가를 판별하는 시금석으로 '의와 사랑'을 제시한다. 의와 사랑이 없는 자는 자기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스스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임을 드러낸다. ''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든 아니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든간에 '온전함'을 의미하며 '사랑'은 타인에 대한 의로움을 뜻한다(Westcott, Plummer). 이러한 '의와 사랑'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닮아야 할 하나님의 본성이다.

 

 

호티 하우테 에스틴 헤 앙겔리아 헨 에쿠사테 앞 아르케스 히나 아가포멘 알렐루스

 

개역개정,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새번역,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인데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어NIV,11 This is the message you heard from the beginning: We should love one another.
영어NASB,11 For this is the message which you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that we should love one another;
영어MSG,11  For this is the original message we heard: We should love each other.
영어NRSV,11 For this is the message you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that we should love one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τι αυτη εστιν η αγγελια ην ηκουσατε απ αρχης ινα αγαπωμεν αλληλους
라틴어Vulgate,11 quoniam haec est adnuntiatio quam audistis ab initio ut diligamus alterutrum
히브리어Modern,11 כי זאת היא השמועה אשר שמעתם מראש לאהבה איש את רעהו׃


 

성 경: [요일3:11]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 '사랑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포멘'(*)은 현재형으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사랑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Smalley).

󰃨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처음부터'는 문맥상 요한의 수신자들이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은 틀림없이 복음의 본질이 사랑이며(3:16; 15:12; 10:27; 고후13:13) 사랑이 태초의 창조 원리에까지 미친다는 사실(17:24; 요일4:16)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한편 '소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앙겔리아'(*)1:5와 동일한 단어이다. 1:5에서의 '소식'은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어 하나님이 빛이심을 드러내는 반면 본절에서의 '소식'은 윤리적 내용을 담고 있다(Stott). 그 윤리적인 내용은 '복음의 본질인 동시에 근원적인 요구인 사랑의 실천을 권면하는 것'이다.

 

 

우 카도스 카인 에크 투 포네루 엔 카이 에스팤센 톤 아델폰 아우투 카이 카린 티노스 에스팤센 아우톤 호티 타 에르가 아우투 포네라 엔 타 데 투 아델푸 아우투 디카이아

 

개역개정,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새번역,12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2 우리는 악한 자에게 속해 자기 동생을 죽인 가인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대체 왜 가인이 동생을 죽였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동생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2 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2 Do not be like Cain, who belonged to the evil one and murdered his brother. And why did he murder him? Because his own actions were evil and his brother's were righteous.
영어NASB,12 not as Cain, who was of the evil one, and slew his brother. And for what reason did he slay him? Because his deeds were evil, and his brother's were righteous.
영어MSG,12  We must not be like Cain, who joined the Evil One and then killed his brother. And why did he kill him? Because he was deep in the practice of evil, while the acts of his brother were righteous.
영어NRSV,12 We must not be like Cain who was from the evil one and murdered his brother. And why did he murder him? Because his own deeds were evil and his brother's righteous.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υ καθως καιν εκ του πονηρου ην και εσφαξεν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και χαριν τινος εσφαξεν αυτον οτι τα εργα αυτου πονηρα ην τα δε του αδελφου αυτου δικαια
라틴어Vulgate,12 non sicut Cain ex maligno erat et occidit fratrem suum et propter quid occidit eum quoniam opera eius maligna erant fratris autem eius iusta
히브리어Modern,12 לא כקין אשר היה מן הרע והרג את אחיו ומדוע הרגו יען כי מעשיו היו רעים ומעשי אחיו מעשי צדק׃


 

성 경: [요일3:12]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 저자는 8절과 10절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마귀의 자녀의 모델로 가인을 제시한다. 요한이 가인을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의 본보기로 제시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가인은 동생 아벨의 의로움을 시기하여 죽임으로 자기 자신이 마귀에게 속하였음을 스스로 입증하였다(Burce). 둘재로, 요한 당시의 한 이단 종파인 에비온주의자들은 채식주의자들이었다. 요한은 그들에게 고기를 드린 아벨은 열납되고 농산물을 드린 가인은 거부되는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율법적인 채식주의보다는 사랑의 계명에의 순종이 우선임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Smalley).

󰃨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4장에 기록된 사건에서는 가인의 살인 동기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가인에 대한 언급(11:4; 1:11)을 통하여 추론해보면, 가인은 믿음과 순종과 형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요한은 다른 어느 성경보다도 분명한 살인의 동기를 제시한다. 그 동기는 동생 아벨의 의로움에 대한 시기이다.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물질적 축복이나 안녕보다는 의로움 자체를 더욱 시기하고 증오한다(Stott). 이런 의미에서 가인은 자신의 살인 행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속한 자임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카이 메 다우마제테 아델포이 에이 미세이 휘마스 호 코스모스

 

개역개정,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새번역,13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13 형제들이여,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가톨릭성경,13 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영어NIV,13 Do not be surprised, my brothers, if the world hates you.
영어NASB,13 Do not marvel, brethren, if the world hates you.
영어MSG,13  So don't be surprised, friends, when the world hates you. This has been going on a long time.
영어NRSV,13 Do not be astonished, brothers and sisters, that the world hates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3 μη θαυμαζετε αδελφοι μου ει μισει υμας ο κοσμος
라틴어Vulgate,13 nolite mirari fratres si odit vos mundus
히브리어Modern,13 אל תתמהו אחי אם ישנא אתכם העולם׃


 

성 경: [요일3:13]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 전후 문맥상 세상과 하나님의 자녀와의 관계는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Law).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의 대립은 아벨-가인, 이삭-이스마엘, 야곱-에서를 통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요한은 '미워하거든'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세이'(*)를 현재 시상으로 사용함으로 암시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의롭다는 사실만으로 미워하므로(12) 양자간의 대립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세상의 증오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이김에 기초하여 넉넉히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16:33; 요일4:4; 5:4, Bruce).

 

 

헤메이스 오이다멘 호티 메타베베카멘 에크 투 다나투 에이스 텐 조엔 호티 아가포멘 투스 아델푸스 호 메 아가폰 메네이 엔 토 다나토

 

개역개정,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새번역,14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4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가톨릭성경,14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영어NIV,14 We know that we have passed from death to life, because we love our brothers. Anyone who does not love remains in death.
영어NASB,14 We know that we have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because we love the brethren. He who does not love abides in death.
영어MSG,14  The way we know we've been transferred from death to life is that we love our brothers and sisters. Anyone who doesn't love is as good as dead.
영어NRSV,14 We know that we have passed from death to life because we love one another. Whoever does not love abides in death.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μεις οιδαμεν οτι μεταβεβηκαμεν εκ του θανατου εις την ζωην οτι αγαπωμεν τους αδελφους ο μη αγαπων τον αδελφον μενει εν τω θανατω
라틴어Vulgate,14 nos scimus quoniam translati sumus de morte in vitam quoniam diligimus fratres qui non diligit manet in morte
히브리어Modern,14 אנחנו ידענו כי עברנו מן המות אל החיים על כי נאהב את אחינו איש אשר לא יאהב את אחיו ישאר במות׃


 

성 경: [요일3:14]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 본문에서 요한은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서 형제 사랑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간 자의 증거로서 형제 사랑을 논하고 있다. 사랑은 율법의 대강령이요(22:34-40),율법의 완성이요(13:10),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최고 표현이다(13:35; 고전13:13). 그러므로 비록 세상이 영생의 근거는 아닐지라도 형제 사랑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Calvin, Bruce).

󰃨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 '사랑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폰'(*)에는 목적어가 없다. 이 사실로 인해서 본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형제'를 목적어로 보아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로 해석하는 것이다(Stott). 다른 하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Plummer, Smalley).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해야 할 대상은 제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6; 2:2). 한편 '거하느니라'의 헬라어 '메네이'(*)는 현재형으로 사랑치 아니하는 자의 영적 죽음의 상태가 지속됨을 암시한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랑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과거 상태처럼 지속적으로 죽음과 진노하에 있는 상태이기에(2:2) 사망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사망에 거하고 있는 상태이다.

 

 

파스 호 미손 톤 아델폰 아우투 안드로포크토노스 에스틴 카이 오이다테 호티 파스 안드로포크토노스 우크 에케이 조엔 아이오니온 엔 아우토 메누산

 

개역개정,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새번역,15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 ㉢그, '형제'
우리말성경,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살인자는 누구든지 그 안에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가톨릭성경,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영어NIV,15 Anyone who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in him.
영어NASB,15 Everyone who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abiding in him.
영어MSG,15  Anyone who hates a brother or sist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very well that eternal life and murder don't go together.
영어NRSV,15 All who hate a brother or sister are murderers, and you know that murderers do not have eternal life abiding in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5 πας ο μισων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ανθρωποκτονος εστιν και οιδατε οτι πας ανθρωποκτονος ουκ εχει ζωην αιωνιον εν αυτω μενουσαν
라틴어Vulgate,15 omnis qui odit fratrem suum homicida est et scitis quoniam omnis homicida non habet vitam aeternam in se manentem
히브리어Modern,15 כל השנא את אחיו רצח נפש הוא וידעתם כי כל רצח נפש לא יתקימו בו חיי עולמים׃


 

성 경: [요일3:15]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자니. - 요한은 '사랑하지 않음'의 개념에서 '미워함'의 개념으로 발전시켜 진술하고 있다. 본문은 분명히 12절을 반영한 것으로 세 가지 즉 '사랑하지 않음''미워함' 그리고 '살인'이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 즉 사랑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는 자요,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이다(Plummer). 그러나 여기서 요한이 살인자의 회개와 사죄 가능성을 부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예수께서도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의 사죄를 위해 기도하셨기 때문이다(23:34, Smalley, Stott). 단지 요한은 본문에서 미움이 잠재적 살인이라는 사실, 즉 살인이 미움과 시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살인하는 자의 현재는 영생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우크 에케이 조엔 아이오니온 엔 아우토 메누산'(*)운 문자적으로 '그 속에 거하는 영생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가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케이'(*)는 현재형으로서 '영생을 가질 수 있는 지속적인 능력'을 뜻한다(Haas). 이것은 살인하는 자의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차 있어서 영생을 소유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움에서 비롯된 살인과 사랑으로 드러나는 영생이 서로 상극임을 시사한다.

 

 

엔 투토 에그노카멘 텐 아가펜 호티 에케이노스 휘페르 헤몬 텐 프쉬켄 아우투 에데켄 카이 헤메이스 오페일로멘 휘페르 톤 아델폰 타스 프쉬카스 데이나이

 

개역개정,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새번역,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우리 목숨을 내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가톨릭성경,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영어NIV,16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영어NASB,16 We know love by this, that He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the brethren.
영어MSG,16  This is how we've come to understand and experience love: Christ sacrificed his life for us. This is why we ought to live sacrificially for our fellow believers, and not just be out for ourselves.
영어NRSV,16 We know love by this, that he laid down his life for us--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ne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ν τουτω εγνωκαμεν την αγαπην οτι εκεινος υπερ ημων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εθηκεν και ημεις οφειλομεν υπερ των αδελφων τας ψυχας τιθεναι
라틴어Vulgate,16 in hoc cognovimus caritatem quoniam ille pro nobis animam suam posuit et nos debemus pro fratribus animas ponere
히브리어Modern,16 בזאת הכרנו את האהבה כי הוא נתן את נפשו בעדנו גם אנחנו חיבים לתת את נפשתינו בעד אחינו׃


 

성 경: [요일3:16]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 '알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노카멘'(*)은 완료형이다. 이 단어는 이 서신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현재형으로 쓰였으나(2:5,18,20; 5:15) 본문에서는 특히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알게 된 것이 특별한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15절에서 미워하는 자의 표본으로서 가인을 내세운 뒤 본절에서 사랑하는 자의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언급함으로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요한은 상반절에서 자기 희생적 사랑의 본보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제시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본받아 자기 희생적 사랑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강조한다(2:6). 이는 예수께서 친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상토하는 것으로(15:12,13)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 할 사랑이 자기 부정임을 시사한다.

 

 

호스 드 안 에케 톤 비온 투 코스무 카이 데오레 톤 아델폰 아우투 크레이안 에콘타 카이 클레이세 타 스플랑크나 아우투 앞 아우투 포스 헤 아가페 투 데우 메네이 엔 아우토

 

개역개정,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새번역,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 ㉤그, '형제'
우리말성경,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가톨릭성경,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영어NIV,17 If anyone has material possessions and sees his brother in need but has no pity on him, how can the love of God be in him?
영어NASB,17 But whoever has the world's goods, and beholds his brother in need and closes his heart against him, how does the love of God abide in him?
영어MSG,17  If you see some brother or sister in need and have the means to do something about it but turn a cold shoulder and do nothing, what happens to God's love? It disappears. And you made it disappear.
영어NRSV,17 How does God's love abide in anyone who has the world's goods and sees a brother or sister in need and yet refuses help?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ς δ αν εχη τον βιον του κοσμου και θεωρη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χρειαν εχοντα και κλειση τα σπλαγχνα αυτου απ αυτου πως η αγαπη του θεου μενει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17 qui habuerit substantiam mundi et viderit fratrem suum necesse habere et clauserit viscera sua ab eo quomodo caritas Dei manet in eo
히브리어Modern,17 ואיש אשר לו נכסי העולם והוא ראה את אחיו חסר לחם וקפץ את רחמיו ממנו איך תעמד בו אהבת אלהים׃


 

성 경: [요일3:17]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 '재물'의 헬라어 '비온'(*)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삶의 수단으로서의 재물'을 의미한다(12:44). 또한 '보고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로레'(*)는 그냥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보는 상태'를 가리킨다(Smalley). 본절에서 요한은 생활에서 충분히 실행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의 예로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요한은 생활이 어려운 형제를 보고도 그의 궁핍함을 고와주지 않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한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4:10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해석한다(Plummer) (2)혹자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해석한다(Bro- oke, Bengel, Alford). (3)혹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같은 사랑으로 해석한다(Law, Marshall). 본절의 중심 사상이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케트니아 메 아가포멘 로고 메데 테 글로쎄 알라 엔 에르고 카이 알레데이아

 

 

개역개정,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새번역,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우리말성경,18 자녀들이여,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가톨릭성경,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영어NIV,18 Dear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s or tongue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영어NASB,18 Little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 or with tongue, but in deed and truth.
영어MSG,18  My dear children, let's not just talk about love; let's practice real love.
영어NRSV,18 Little children, let us love, not in word or speech, but in truth and action.
헬라어신약Stephanos,18 τεκνια μου μη αγαπωμεν λογω μηδε γλωσση αλλ εργω και αληθεια
라틴어Vulgate,18 filioli non diligamus verbo nec lingua sed opere et veritate
히브리어Modern,18 בני אל נא נאהב במלין ובלשון כי אם בפעל ובאמת׃


 

성 경: [요일3:18]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말과 혀'는 같은 의미로서 실천이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행함과 진실함'은 실천하는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Smalley). '행함'은 사랑의 역동적 측면을 나타내고, '진실함'은 사랑의 질적 측면을 나타낸다. 요한은 본절에서 사랑의 실천을 선언(2:15-17)함으로써 이제까지 논해온 것, 즉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의와 사랑이 있어야 함을 요약하고 있다.

 

 

카이 엔 투토 그노소메다 호티 에크 테스 알레데이아스 에스멘 카이 엠프로스덴 아우투 페이소멘 텐 카르디안 헤몬

 

개역개정,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새번역,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9 이렇게 행해야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영어NIV,19 This then is how we know that we belong to the truth, and how we set our hearts at rest in his presence
영어NASB,19 We shall know by this that we are of the truth, and shall assure our heart before Him,
영어MSG,19  This is the only way we'll know we're living truly, living in God's reality.
영어NRSV,19 And by this we will know that we are from the truth and will reassure our hearts befor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9 και εν τουτω γινωσκομεν οτι εκ της αληθειας εσμεν και εμπροσθεν αυτου πεισομεν τας καρδιας ημων
라틴어Vulgate,19 in hoc cognoscimus quoniam ex veritate sumus et in conspectu eius suadeamus corda nostra
히브리어Modern,19 ובזאת נדעה כי מן האמת אנחנו ולפניו נשקיט את לבותינו׃

 

성 경: [요일3:19]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 '이로써'가 가리키는 것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다음절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Nauck, Brooke). (2)혹자는 앞에 언급된 내용과 뒤에 언급될 내용 둘 다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3)혹자는 앞에서 언급된 10-18절까지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ker, Smalley, Stott).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문맥상 가장 타당하다. 한편 '굳세게 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소멘'(*)에 대하여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1)'확신케하다', 이 의미로 해석하려면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데 목적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바로 앞 문장인 '우리가 진리에 속함'을 목적어로 보는 견해와(Plummer) 2. 20절 초두의 '호티'(*, '왜냐하면')가 이끄는 절을 목적어로 보는 견해이다(Bruce). 그러나 양자 모두 무리한 문법적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2)'설득시키다'. 이것은 의미상 본문에 부적절하다. (3)'안심시키다'. 이 의미로 해석할 경우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라는 목적어가 생략된 것으로 본다(Westcott). 비록 만족스러운 해석은 되지 못하나 그래도 세 가지 의미중 마지막 의미가 타당성을 지닌다(Stott, Smalley). 본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진리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20절과 연결하여 주 앞에서 두려움없이 담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호티 에안 카타기노스케 헤몬 헤 카르디아 호티 메이존 에스틴 호 데오스 테스 카르디아스 헤몬 카이 기노스케이 판타

 

개역개정,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새번역,20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신 분이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20 혹시 우리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0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영어NASB,20 in whatever our heart condemns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knows all things.
영어MSG,20  It's also the way to shut down debilitating self-criticism, even when there is something to it. For God is greater than our worried hearts and knows more about us than we do ourselves.
영어NRSV,20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20 οτι εαν καταγινωσκη ημων η καρδια οτι μειζων εστιν ο θεος της καρδιας ημων και γινωσκει παντα
라틴어Vulgate,20 quoniam si reprehenderit nos cor maior est Deus corde nostro et novit omnia
히브리어Modern,20 כי אם לבבנו ירשיע אתנו האלהים נשגב הוא מלבבנו וידע את כל׃


 

성 경: [요일3:20]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 본절에서 두 번 사용된 '호티'(*, 왜냐하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첫번째 '호티'를 명사절을 이끄는 접속사(that)로 보고, 두번째 '호티'는 불필요한 반복으로 간주하여 생략한다. 이 해석은 20절 전체를 19절의 '페이소멘'(*, '확신케 하다')이란 동사의 목적어로 본다(Bruce). (2)혹자는 첫번째 '호티''왜냐하면'으로 해석한다. 이 경우 19절의 동사 '페이소멘'(*, '안심시키다')의 목적어는 생략된 것으로 본다(AV). (3)혹자는 첫번째 '호티'(*)''(*)''(*)로 분리시켜서 관계대명사 중성 명사로 보고, '에안'(*, '...이면')과 합쳐서 '...할 때마다'라는 의미로 본다. 이때 두번째 '호티'는 종속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의 뜻이 된다(Stott, Smalley).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요한은 본서에서 서로 대조되는 구문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1:9,10; 2:10,11; 3:8,9) 본절 역시 21절과 대립되는 구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 본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묘사라고 주장한다(Alford, Wohlenberg).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우리 자신도 우리 마음을 보시면 책망할 것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혹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한 묘사라고 주장한다(Brooke, Luther).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두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우리 마음을 책망할 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문맥상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아가페토이 에안 헤 카르디아 헤몬 메 카타기노스케 파르레시안 에코멘 프로스 톤 데온

 

개역개정,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새번역,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요,
우리말성경,21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 마음에 가책받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가톨릭성경,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영어NIV,21 Dear friends, if our hearts do not condemn us, we have confidence before God
영어NASB,21 Beloved, if our heart does not condemn us, we have confidence before God;
영어MSG,21  And friends, once that's taken care of and we're no longer accusing or condemning ourselves, we're bold and free before God!
영어NRSV,21 Beloved, if our hearts do not condemn us, we have boldness before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1 αγαπητοι εαν η καρδια ημων μη καταγινωσκη ημων παρρησιαν εχομεν προς τον θεον
라틴어Vulgate,21 carissimi si cor non reprehenderit nos fiduciam habemus ad Deum
히브리어Modern,21 אהובי אם לבבנו לא ירשיענו בטחון לנו באלהים׃


 

성 경: [요일3:21]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 문장의 형식상 전절과 본절은 조건문으로서 대조를 이루지만 내용상은 본절이 전절의 결과에 해당한다. 본문은 설사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책망할 것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Bruce).

󰃨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위에서 담대함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항상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10:19).

 

 

카이 호 에안 아이토멘 람바노멘 앞 아우투 호티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테루멘 카이 타 아레스타 에노피온 아우투 포이우멘

 

개역개정,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새번역,22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22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2 and receive from him anything we ask, because we obey his commands and do what pleases him.
영어NASB,22 and whatever we ask we receive from Him, because we keep His commandments and do the things that are pleasing in His sight.
영어MSG,22  We're able to stretch our hands out and receive what we asked for because we're doing what he said, doing what pleases him.
영어NRSV,22 and we receive from him whatever we ask, because we obey his commandments and do what pleases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ο εαν αιτωμεν λαμβανομεν παρ αυτου οτι τας εντολας αυτου τηρουμεν και τα αρεστα ενωπιον αυτου ποιουμεν
라틴어Vulgate,22 et quodcumque petierimus accipiemus ab eo quoniam mandata eius custodimus et ea quae sunt placita coram eo facimus
히브리어Modern,22 וכל אשר נשאל מאתו נקבל כי נשמר את מצותיו ונעשה את הרצוי לפניו׃


 

성 경: [요일3:22]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 '구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토멘'(*)'받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람바노멘'(*)은 모두 현재 시상이다. 이는 계속되는 기도와 계속되는 응답의 경험을 암시한다(Stott).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상은 신약 여러 곳에 나타난다(7:7,8; 18:19; 11:41,42; 15:7). 그러나 이 응답에 대한 약속에는 선행 조건이 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15:7, Smalley).

󰃨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그리스도인들이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말한 공적이 아니라 신자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 기도 응답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됨을 드러내는 외면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Law, Stott). 예수께서도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아셨다(8:28,29; 11:42).

 

 

카이 하우테 에스틴 헤 엔톨레 아우투 히나 피스튜소멘 토 오노마티 투 휘우 아우투 예수 크리스투 카이 아가포멘 알렐루스 카도스 에도켄 엔톨렌 헤민

 

개역개정,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새번역,2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영어NIV,23 And this is his command: to believe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to love one another as he commanded us.
영어NASB,23 And this is His commandment, that we believe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love one another, just as He commanded us.
영어MSG,23  Again, this is God's command: to believe in his personally named Son, Jesus Christ. He told us to love each other, in line with the original command.
영어NRSV,23 And this is his commandment, that we should believe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love one another, just as he has commanded us.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ι αυτη εστιν η εντολη αυτου ινα πιστευσωμεν τω ονοματι του υιου αυτου ιησου χριστου και αγαπωμεν αλληλους καθως εδωκεν εντολην ημιν
라틴어Vulgate,23 et hoc est mandatum eius ut credamus in nomine Filii eius Iesu Christi et diligamus alterutrum sicut dedit mandatum nobis
히브리어Modern,23 וזאת היא מצותו להאמין בשם בנו ישוע המשיח ולאהבה איש את רעהו כאשר צונו׃


 

성 경: [요일3:23]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전절에서는 '계명들'(*, 엔톨라스)이라고 하여 복수 형태를 취하는데 본절에서는 '계명'(*, 엔톨레)이라고 하여 단수 형태를 취한다. 이는 본절의 두 가지 내용인 '믿음''사랑'이 사실은 불가분리적인 하나의 계명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여기서 '믿고'의 헬라어 '피스튜소멘'(*)'사랑할 것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포멘'(*)은 시상이 서로 다르다. '피스튜소멘'은 부정과거형으로서 '단번에 이루신 예수의 역사적 속죄 사역'(9:28)을 믿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아가포멘'은 현재형으로서 '형제 사랑이 변함없이 지속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믿음과 사랑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믿음은 사랑의 근거요 사랑은 믿음의 증거이다.

 

 

 

카이 호 테론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엔 아우토 메네이 카이 아우토스 엔 아우토 카이 엔 투토 기노스코멘 호티 메네이 엔 헤민 에크 투 프뉴마토스 후 헤민 에도켄

 

개역개정,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새번역,2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우리말성경,2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압니다. 
가톨릭성경,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어NIV,24 Those who obey his commands live in him, and he in them. And this is how we know that he lives in us: We know it by the Spirit he gave us.
영어NASB,24 And the one who keeps His commandments abides in Him, and He in him. And we know by this that He abides in us, by the Spirit whom He has given us.
영어MSG,24  As we keep his commands, we live deeply and surely in him, and he lives in us. And this is how we experience his deep and abiding presence in us: by the Spirit he gave us.
영어NRSV,24 All who obey his commandments abide in him, and he abides in them. And by this we know that he abides in us, by the Spirit that he has given us.
헬라어신약Stephanos,24 και ο τηρων τας εντολας αυτου εν αυτω μενει και αυτος εν αυτω και εν τουτω γινωσκομεν οτι μενει εν ημιν εκ του πνευματος ου ημιν εδωκεν
라틴어Vulgate,24 et qui servat mandata eius in illo manet et ipse in eo et in hoc scimus quoniam manet in nobis de Spiritu quem nobis dedit
히브리어Modern,24 והשמר את מצותיו יקום בו והוא בו ובזאת נדע כי הוא שכן בנו ברוח אשר נתן לנו׃

 

 

성 경: [요일3:24]

주제1: [하나님의 자녀와 사랑]

주제2: [형제 사랑]

󰃨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 헬라어 본문에는 두 번의 ''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아우토스'(*, '')라는 인칭대명사로 나타난다. '아우토스'19-23절까지 계속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지칭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Plummer, Stott, Smalley). 그러나 사도 요한의 기독론(Christology) 자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구분을 뚜렷하게 짓지 않고 오히려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하며, 15:1-7의 말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가리킬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 안에 예수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17:21) 내용상으로는 ''가 하나님이든지 예수이든지 같은 의미이다. 앞 절에서 언급된 두 가지 계명, 즉 믿음과 사랑의 계명을 잘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도 역시 그 안에 거하신다.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본문에서 믿음과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로 성령이 제시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주 안에, 주가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신다는 약속의 확실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保證)이다. 23,24절의 연결이 18,19절의 연결처럼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안다'고 하지 않고 성령을 등장시킨 점은 의미가 있다. 아마도 저자는 주 안에 거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사랑'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 '선물'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러한 성령은 그리스도인에게 각종 은사를 주셔서(5:22,23)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의롭게 행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Stott).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심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