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의 창시자 이명직(李明稙, 1890~1973) 목사의 설교집에서 그의 제자 김성호 목사가 운문화한 시편 18편 찬송이다. 제목은「나의 반석.」 이 찬송이 처음 실린 것은《찬송가(신작 증보판), 1995》680장이다. 가사는 그대로 채택하고, 곡조는 3/4박자를 6/8박자로 고쳤는데 아주 합리적으로 고쳤다.
이명직은 1890년 12월 2일 서울에서 전통적인 유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9세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이명직은 19세 때에 부친의 뜻에 따라 정치학이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 동경의 긴자(銀座) 거리에서 나팔불고 북 치면서 노방전도하던 구세군 전도단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된 후, 그의 생의 목표는 완전히 바뀌어 일본 동경성서학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분명한 구원의 확신과 뜨거운 소명감을 가지게 된 것은 동경성서학원에서 있은 두 번의 뜨거운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였다.
첫 번째 성령 체험은 어느 날 사사오 교수의 성서주석 시간에 일어났다. 공부하던 학생 중 하나가 일어나서 "불났다. 내 가슴이 탄다"고 외치자, 교실 안에 공부하던 다른 학생들도 저마다 일어나서 "내 가슴도 뜨겁다. 뜨겁게 타오른다"고 날뛰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교실 안은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으며, 이때 이명직 역시 뜨거운 성령의 체험을 하였다. 이명직은 성령의 체험 후 마음의 변화가 생겨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고, 기도와 전도에 힘쓰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미국인 슐 함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했던 이명직은 또 한 번의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하게 되었다. 죄악을 무섭게 공격하며 중생을 강조하는 슐 함머 목사의 설교에 크게 찔림을 받은 그는, 아직까지 확실한 중생의 체험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학교에 결석계를 제출하고 골방에 들어가 금식하며 여러 날 철야기도를 하였다. 이러한 기도 끝에 그는 작은 죄로부터 큰 죄에 이르기까지 통회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사죄함을 받는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체험 후 그의 생애는 완전히 변화되었으며, 구령사업을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되었다.
약 2년 동안의 신학교 생활을 통해 신학적 기반과 영적인 기반을 닦은 이명직은 한국이 일본에 강제로 합방되던 다음 해인 1911년에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사의 자격을 취득하여 선교의 임무를 띠고 귀국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2세의 약관이었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사명감으로 경기도와 개성 등지를 순회하며 전도하였으며, 개성교회를 목회하여 교회를 부흥시켰다. 1914년 4월 12일에는 성결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안수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명직은 이명헌, 강태은, 김상순, 이장하 등과 함께 성결교단 처음으로 목사가 되었으며, 충청도 부여에 내려가 규암교회를 3년간 목회하였다. 1916년에는 서울 아현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경성 성서학원 교수와 기숙사 사감을 겸하였다.
목회자로서 열심을 다하던 이명직의 사역은 1916년경성 성서학원의 교수가 됨을 계기로 교육자로서 더욱 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1920년에는 아현교회 담임과 사감직을 사임하고 교수로만 봉직하였으며 또한 성서학원의 규칙을 기초하였다. 특히 1921년 9월에는 성서학원이 중심이 되어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명직은 바로 그 운동의 중심이었다. 1935년에는 성서학원 원장이 되었고, 1940년 경성신학교로 승격하면서 교장이 되었으며, 1951년 서울신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1958년에는 미국 아주사대학으로부터 한국의 신학발전과 목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2월에는 서울신학대학 인가와 함께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여 시무하였으나 1961년 문교부 규정이 60세 이상의 학장은 사퇴하여야 한다는 정년제가 실시됨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정년 퇴직하였으며, 1965년에 명예학장으로 추대되었다. 그야말로 그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을 신학교와 동고동락하면서 한국성결교회를 위한 수많은 교역자를 양성하는 중임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명직을 가리켜 성결교단의 사부(師父)라고 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작곡자 권순호(1946~ ) 장로는 성결교회 장로다. 연세대 작곡과와 독일 엔센 폴크방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경북대, 숙명여대음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에는 현악 4중주「예레미야」로 대한민국작곡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사랑의부부합창단 연합회 회장이자 서울지역 단장 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무성결교회 지휘자로 있다.
'GOODWILL CHURCH > 찬양 악보 및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찬송가 404장(통일 477장) 바다에 놀이 일 때에 - 악보 및 해설 (0) | 2021.12.14 |
---|---|
새찬송가 403장 영원하신 주님의 - 악보 및 해설 (0) | 2021.12.14 |
새찬송가 401장(통일 457장) 주의 곁에 있을 때 - 악보 및 해설 (0) | 2021.12.14 |
새찬송가 400장(통일 463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 악보 및 해설 (0) | 2021.12.14 |
새찬송가 400장(통일 463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 악보 및 해설 (0) | 2021.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