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토이 메 판티 프뉴마티 피스튜에테 알라 도키마제테 타 프뉴마타 에이 에크 투 데우 에스틴 호티 폴로이 프슈도프로페타이 엨셀렐뤼다신 에이스 톤 코스몬
개역개정,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새번역,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 사랑하는 여러분,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 Dear friends, do not believe every spirit, but test the spirits to see whether they are from God, because many false prophets have gone out into the world.
영어NASB,1 Beloved, do not believe every spirit, but test the spirits to see whether they are from God; because many false prophets have gone out into the world.
영어MSG,1 My dear friends, don't believe everything you hear. Carefully weigh and examine what people tell you. Not everyone who talks about God comes from God. There are a lot of lying preachers loose in the world.
영어NRSV,1 Beloved, do not believe every spirit, but test the spirits to see whether they are from God; for many false prophets have gone out into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1 αγαπητοι μη παντι πνευματι πιστευετε αλλα δοκιμαζετε τα πνευματα ει εκ του θεου εστιν οτι πολλοι ψευδοπροφηται εξεληλυθασιν εις τον κοσμον
라틴어Vulgate,1 carissimi nolite omni spiritui credere sed probate spiritus si ex Deo sint quoniam multi pseudoprophetae exierunt in mundum
히브리어Modern,1 אהובי אל תאמינו לכל רוח כי אם בחנו הרוחות אם מאלהים המה כי נביאי שקר רבים יצאו לעולם׃
성 경: [요일4:1]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성령과 악령]
사랑하는 자들아. - 이것은 수신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저자 요한이 진술하고자 하는 주체로 수신자들의 관심을 전환시키기 위한 호칭이다. 요한은 본절 외에도 이와 같은 표현을 본장에서 두 번 더 사용하여 수신자들의 관심을 야기시키고 있다(7,11절, Brooke).
영을 다 믿지말고. - '믿지 말고'의 헬라어 '메...피스듀에테'(*)는 '진실한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말라'라는 의미이다. 이는 '시험하라'와 연결되어 모든 영을 대할 때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잘 분별하여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 '영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타'(*)는 복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나 악한 자의 영이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에 언급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가리킨다(Marshall). 한편 '시험하라'는 기준을 가지고 분별하는 것을 가리킨다(Stott). 이것은 바울 서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 바울에 따르면 영들을 시험하여 분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의 특별한 은사이다(고전12:10).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하는 분별력을 가리킨다(Westcott). 요한은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스스로 영감을 받았다고 자장하던 이단자들을 염두에 두고 수신자들이 이들을 시험하여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가를 분별함으로 무조건 따르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 본문은 수신자들이 영들을 시험해야 할 이유이다. '거짓 선지자'는 신약성경에서 '진실한 선지자'를 대적하는 자나(눅6:26; 벧후2:1), 혹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도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킨다(마7:15; 24:11,24; 행13:6).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은 종말론적 현상이다(2:18; 막13:22, Barker).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와 깊은 연관을 맺으며 그리스도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이나 교리로 미혹하는 자들로서(마24:11; 살후2:3; 계20:10)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유혹한다.
엔 투토 기노스케테 토 프뉴마 투 데우 판 프뉴마 호 호몰로게이 예순 크리스톤 엔 사르키 엘렐뤼도타 에크 투 데우 에스틴
개역개정,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새번역,2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우리말성경,2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입니다.
가톨릭성경,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영어NIV,2 This is how you can recognize the Spirit of God: Every spirit that acknowledges that Jesus Christ has come in the flesh is from God,
영어NASB,2 By this you know the Spirit of God: every spirit that confesses that Jesus Christ has come in the flesh is from God;
영어MSG,2 Here's how you test for the genuine Spirit of God. Everyone who confesses openly his faith in Jesus Christ--the Son of God, who came as an actual flesh-and-blood person--comes from God and belongs to God.
영어NRSV,2 By this you know the Spirit of God: every spirit that confesses that Jesus Christ has come in the flesh is from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 εν τουτω γινωσκετε το πνευμα του θεου παν πνευμα ο ομολογει ιησουν χριστον εν σαρκι εληλυθοτα εκ του θεου εστιν
라틴어Vulgate,2 in hoc cognoscitur Spiritus Dei omnis spiritus qui confitetur Iesum Christum in carne venisse ex Deo est
히브리어Modern,2 בזאת תכירו את רוח אלהים כל רוח המודה בישוע המשיח כי בא בבשר מאלהים הוא׃
성 경: [요일4:2]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성령과 악령]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 '하나님의 영'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성령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13절; 3:24, Stott). 이 견해에 따르면 본절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거하심을 의미한다. (2)혹자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B, Smalley). 이들은 본절이 앞절과 연관되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나 문맥상 후자의 견해가 더 나은 듯하다. 한편 '알지니'로 번역된 헬라어 '기노스케테'(*)에 대해서 혹자는 명령법으로 해석하나(Law), 본서 어디에서도 명령법으로 사용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직설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Westcott, Smalley, Brooke). 요한은 본문네서 수신자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신자들이 알고 경험했던 영적인 사실들을 잘 지키며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상기시키고 있다(13절; 3:16; 5:2)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본문은 영감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거짓 영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분별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의 인정 여부이다. 요한 당시 수신자들 가운데에는 영지주의의 가현설(Docetism)에 빠져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다(공동서신 개론의 "공동서신의 이단 사상" 참조). 요한은 본절에서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를 공격하고 있다. 한편 '오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렐뤼도타'(*)는 완료 시상이다. 이것은 요이1:7에서 현재 시상으로 사용된 것과 대조를 이루어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으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사건이 영원한 사실이며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시사한다(Stott, Smalley).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다(1:1,2; 3:1; 5:1; 요1:12-14, Westcott).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음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암시한다. 즉 그는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신이셨다(Marshall, Smalley).
카이 판 프뉴마 호 메 호몰로게이 톤 예순 에크 투 데우 우크 에스틴 카이 투토 에스틴 토 투 안티크리스투 호 아케코아테 호티 에르케타이 카이 뉜 엔 토 코스모 에스틴 에데
개역개정,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새번역,3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우리말성경,3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세상에 이미 와 있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 그리스도의 적’ 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영어NIV,3 but every spirit that does not acknowledge Jesus is not from God. This is the spirit of the antichrist, which you have heard is coming and even now is already in the world.
영어NASB,3 and every spirit that does not confess Jesus is not from God; and this is the spirit of the antichrist, of which you have heard that it is coming, and now it is already in the world.
영어MSG,3 And everyone who refuses to confess faith in Jesus has nothing in common with God. This is the spirit of antichrist that you heard was coming. Well, here it is, sooner than we thought!
영어NRSV,3 and every spirit that does not confess Jesus is not from God. And this is the spirit of the antichrist, of which you have heard that it is coming; and now it is already in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παν πνευμα ο μη ομολογει τον ιησουν χριστον εν σαρκι εληλυθοτα εκ του θεου ουκ εστιν και τουτο εστιν το του αντιχριστου ο ακηκοατε οτι ερχεται και νυν εν τω κοσμω εστιν ηδη
라틴어Vulgate,3 et omnis spiritus qui solvit Iesum ex Deo non est et hoc est antichristi quod audistis quoniam venit et nunc iam in mundo est
히브리어Modern,3 וכל רוח אשר איננו מודה בישוע האדון כי בא בבשר לא מאלהים הוא וזה הוא רוח צר המשיח אשר שמעתם עליו כי בוא יבא ועתה הנה הוא בעולם׃
성 경: [요일4:3]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성령과 악령]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 비록 '육체로 오신'이 생략되어 있다 할지라도 본문은 앞절과 대조를 이루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반대로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고 거짓 영에게 지배를 당하는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참된 성령의 도움으로 성육신을 시인하는 것과 거짓 영의 지배를 받아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에는 절대로 중간 지대란 있을 수 없다(Law). 오직 양극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번역된 헬라어 '토 투 안티크리스투'(*)는 헬라어 어순상 앞절의 '토 프뉴마 투 데우'(*, '하나님의 영')와 대조를 이루어 '프뉴마'(*, '영')가 생략되어 있는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토 투 안티크리스투'가 거짓 영을 의미하나(Law) 문맥상 본문은 거짓 영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들, 즉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Stott, Smalley).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심을 부인하거나, 그리스도께서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사단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 '이제 벌써'는 강조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영들이 종말에 출현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했고(2:18) '이제 벌써' 수신자들 사이에 존재함을 밝힘으로 종말의 긴박성을 암시하고 있다(Smalley). 한편 '세상에'는 1-6절 사이에 무려 6번이나 나타나며 모두 부정적인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하며 통제하는 곳으로 하나님과 그의 뜻을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것을 지칭한다.
휘메이스 에크 투 데우 에스테 테크니아 카이 네니케카테 아우투스 호티 메이존 에스틴 호 엔 휘민 에 호 엔 토 코스모
개역개정,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새번역,4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4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사람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어NIV,4 You, dear children, are from God and have overcome them, because the one who is in you is greater than the one who is in the world.
영어NASB,4 You are from God, little children, and have overcome them; because greater is He who is in you than he who is in the world.
영어MSG,4 My dear children, you come from God and belong to God. You have already won a big victory over those false teachers, for the Spirit in you is far stronger than anything in the world.
영어NRSV,4 Little children, you are from God, and have conquered them; for the one who is in you is greater than the one who is in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4 υμεις εκ του θεου εστε τεκνια και νενικηκατε αυτους οτι μειζων εστιν ο εν υμιν η ο εν τω κοσμω
라틴어Vulgate,4 vos ex Deo estis filioli et vicistis eos quoniam maior est qui in vobis est quam qui in mundo
히브리어Modern,4 אתם הבנים הנכם מאלהים ונצחתם אתם כי אשר בכם גדול הוא מאשר בעולם׃
성 경: [요일4:4]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성령과 악령]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 요한은 본문에서 다시 '자녀들아'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 수신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배를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여 그들을 이기었음을 확신시키고 있다. '하나님께 속하였고'는 수신자들이 하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세상과 연합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시사한다. 한편 '이기었나니'의 헬라어 '네니케카테'(*)는 완료 시상이다. 이것은 승리가 과거에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효과가 현재까지 지속됨을 시사한다(Houlden). 이 승리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교리가 거짓임이 판명되었다는 사실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Stott) 본서에서 믿음과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승리는 지식적인 면에서 거짓된 교리에 대한 분별 뿐만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을 통해서 거짓된 교리를 정복하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그러기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된 교리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 본문은 하나님께 속한 수신자들이 세상을 이긴 이유이다. '너희 안에 계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엔 휘민'(*)에서 '이'를 의미하는 '호'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3:20, Haas). (2)혹자는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2:14; 3:24; 요14:20,23, Westcott). (3)혹자는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6절; 2:20,27; 요14:16,17; 16:13-15, Stott, Houlden). 이 세 가지 견해 중 어느 하나를 택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신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가운데 역사하셔서 사단의 영향력 하에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며 그 결과로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Barker, Smalley). 한편 '세상에 있는 이'는 사단이나 악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2:13,14; 3:12; 5:18,19) 그는 하나님에게 소속되지 아니하고 세상에 속한 자들을 미혹하며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오직 세상에 속한 자들에 한하며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에게는 그 세력을 행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단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셨으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그 승리에 동참하기 때문이다(6절; 요16:33; 롬8:31, Stott, Calvin).
아우토이 에크 투 코스무 에이신 디아 투토 에크 투 코스무 랄루신 카이 호 코스모스 아우톤 아쿠에이
개역개정,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새번역,5 그들은 세상에서 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말성경,5 그들은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며 세상은 또한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영어NIV,5 They are from the world and therefore speak from the viewpoint of the world, and the world listens to them.
영어NASB,5 They are from the world; therefore they speak as from the world, and the world listens to them.
영어MSG,5 These people belong to the Christ-denying world. They talk the world's language and the world eats it up.
영어NRSV,5 They are from the world; therefore what they say is from the world, and the world listens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 αυτοι εκ του κοσμου εισιν δια τουτο εκ του κοσμου λαλουσιν και ο κοσμος αυτων ακουει
라틴어Vulgate,5 ipsi de mundo sunt ideo de mundo loquuntur et mundus eos audit
히브리어Modern,5 המה מן העולם על כן מהעולם ידברו והעולם ישמע אליהם׃
성 경: [요일4:5]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성령과 악령]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 '저희'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교훈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킨다(Barker, Smalley). 한편 '세상에 속한 고로'의 헬라어 '에크 투 코스무'(*)에서 '에크'는 기원을 나타내는 전치사로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세상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임을 시사한다. 또한 '세상'을 지칭하는 '코스무'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복음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요한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 주장하던 성육신을 부인하는 사상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사상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2)그러한 사상에 미혹된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 대치되는 당시 사상에 탐닉했고 그것에 빠져 거짓된 가르침을 전파하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려 했다.
헤메이스 에크 투 데우 에스멘 호 기노스콘 톤 데온 아쿠에이 헤몬 호스 우크 에스틴 에크 투 데우 우크 아쿠에이 헤몬 에크 투투 기노스코멘 토 프뉴마 테스 알레데이아스 카이 토 프뉴마 테스 플라네스
개역개정,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새번역,6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아봅니다.
우리말성경,6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거짓된 영을 구별합니다.
가톨릭성경,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영어NIV,6 We are from God, and whoever knows God listens to us; but whoever is not from God does not listen to us. This is how we recognize the Spirit of truth and the spirit of falsehood.
영어NASB,6 We are from God; he who knows God listens to us; he who is not from God does not listen to us. By this we know the spirit of truth and the spirit of error.
영어MSG,6 But we come from God and belong to God. Anyone who knows God understands us and listens. The person who has nothing to do with God will, of course, not listen to us. This is another test for telling the Spirit of Truth from the spirit of deception.
영어NRSV,6 We are from God. Whoever knows God listens to us, and whoever is not from God does not listen to us. From this we know the spirit of truth and the spirit of error.
헬라어신약Stephanos,6 ημεις εκ του θεου εσμεν ο γινωσκων τον θεον ακουει ημων ος ουκ εστιν εκ του θεου ουκ ακουει ημων εκ τουτου γινωσκομεν το πνευμα της αληθειας και το πνευμα της πλανης
라틴어Vulgate,6 nos ex Deo sumus qui novit Deum audit nos qui non est ex Deo non audit nos in hoc cognoscimus Spiritum veritatis et spiritum erroris
히브리어Modern,6 ואנחנו מאלהים הננו היודע את האלהים ישמע אלינו ואשר איננו מאלהים לא ישמע אלינו בזאת נכיר את רוח האמת ואת רוח התועה׃
성 경: [요일4:6]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성령과 악령]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 요한은 4절까지 '너희'라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수신자들만을 지칭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인칭 대명사 '우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에 대해 혹자는 사도들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Stott, Brooke)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Smalley, Barker, Haas, Schnackenburg). 왜냐하면 이미 수신자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언급하였기 때문이다(4절). 사도들을 포함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그의 영향력 하에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 본문은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 '우리의 말을 듣고'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를 대조시키고 있다. '아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스콘'(*)은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가르친 거짓 교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얻는 지식을 가리킨다. 더욱이 본절의 '아는'은 현재 시상으로 그 지식이 지속적이며 성장하는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우리의 말'은 사도들이 선포한 그리스도의 복음, 즉 처음부터 있었던 말씀을 가리킨다(2:7, 24; 3:11; 요이1:5,9). 거짓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부인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소속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 '진리의 영'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요14:17; 15:26; 16:13, Marshall, Stott). (2)혹자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malley, Dodd, Haas).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며 의미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의 지배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사도들을 포함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서 진술해 온 것으로 보아 후자가 보다 적합한 듯하다. 한편 '미혹의 영'은 '진리의 영'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이것 역시 사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사단의 지배 하에서 거짓 가르침을 전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별하는 기준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청종하는 여부에 달려있다.
아가페토이 아가포멘 알렐루스 호티 헤 아가페 에크 투 데우 에스틴 카이 파스 호 아가폰 에크 투 데우 게겐네타이 카이 기노스케이 톤 데온
개역개정,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새번역,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말성경,7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가톨릭성경,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영어NIV,7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영어NASB,7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is from God; and everyone who loves is born of God and knows God.
영어MSG,7 My beloved friends, let us continue to love each other since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is born of God and experiences a relationship with God.
영어NRSV,7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because love i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is born of God and knows God.
헬라어신약Stephanos,7 αγαπητοι αγαπωμεν αλληλους οτι η αγαπη εκ του θεου εστιν και πας ο αγαπων εκ του θεου γεγεννηται και γινωσκει τον θεον
라틴어Vulgate,7 carissimi diligamus invicem quoniam caritas ex Deo est et omnis qui diligit ex Deo natus est et cognoscit Deum
히브리어Modern,7 אהובי נאהב נא איש את רעהו כי האהבה מאלהים היא וכל אשר יאהב נולד מאלהים וידע את האלהים׃
성 경: [요일4:7]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 '사랑하는 자들아'는 본서에서 6번 나타난다(1,11절; 2:7; 3:2,21). 이 호칭은 요한이 수신자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도로서 수신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요한은 이 호칭을 사용하여 서로 사랑해야 함을 요구하기 이전에 자신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한편 '사랑하자'의 헬라어 '아가포멘'(*)은 현재 시상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하나님의 요구임을 시사한다. 이 명령은 예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3:11; 요13:14-17,35).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 본문은 다음절의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와 연결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근거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는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본질상 사랑이시며 모든 사랑의 근원으로서 그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여주셨다(Westcott, Marshall, Barker).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자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스 호'(*)는 사랑하라는 명령이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혹자는 수신자 공동체 일원에 대한 사랑이라고 주장하나(Bultmann) 보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사랑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Schnackenburg, Smalley). 한편 이러한 사랑은 단순히 사랑하는 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 행위를 내포한다(3:18).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행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러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녀이며 하나님을 아는 자임을 드러낸다(Law). 곧 행위를 동반하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자이며 하나님을 아는 자임을 드러내는 기준이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하나님께서 먼저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으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 메 아가폰 우크 에그노 톤 데온 호티 호 데오스 아가페 에스틴
개역개정,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새번역,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어NIV,8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영어NASB,8 The one who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영어MSG,8 The person who refuses to love doesn't know the first thing about God, because God is love--so you can't know him if you don't love.
영어NRSV,8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헬라어신약Stephanos,8 ο μη αγαπων ουκ εγνω τον θεον οτι ο θεος αγαπη εστιν
라틴어Vulgate,8 qui non diligit non novit Deum quoniam Deus caritas est
히브리어Modern,8 ואשר איננו אהב לא ידע את האלהים כי האלהים הוא אהבה׃
성 경: [요일4:8]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메 아가폰'(*)에는 앞절의 '사랑하는 자마다'(*, 파스 호 아가폰)에 삽입되어 있는 '파스'가 생략되어 있다. 본절에서 '파스'가 생략된 것은 본절의 사랑이 개인적인 권면을 가리키는 앞 절과는 달리 일반적인 의미임을 암시한다(Smalley). 한편 '알지'의 헬라어 '에그노'(*)는 부정 과거로 현재 시상을 사용한 앞절의 '기노스케이'(*, '알고')와 대조를 이룬다. '기노스케이'가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반면에 본절의 '에그노'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하나님을 전혀 알거나 경험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Marshall). 사랑하는 자가 모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자는 반드시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앞절과의 대조를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본문은 7절의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보다 더 발전된 표현이다. 요한은 7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랑의 근원이심을 밝힌데 이어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심을 선언한다. 즉 이것은 사랑이 하나님의 모든 행위들 중 하나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가 사랑임을 시사한다. 요한은 본서에서 사랑을 언급할 때 행위와 연결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이 사실은 수신자들 사이에 존재한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적인 가르침, 즉 신령한 지식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신령한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나 사실상 그들의 삶에서는 사랑의 행위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상 사랑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엔 투토 에파네로데 헤 아가페 투 데우 엔 헤민 호티 톤 휘온 아우투 톤 모노게네 아페스탈켄 호 데오스 에이스 톤 코스몬 히나 제소멘 디 아우투
개역개정,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새번역,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영어NIV,9 This is how God showed his love among us: He sent his one and only Son into the world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
영어NASB,9 By this the love of God was manifested in us, that God has sent His only begotten Son into the world so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
영어MSG,9 This is how God showed his love for us: God sent his only Son into the world so we might live through him.
영어NRSV,9 God's love was revealed among us in this way: God sent his only Son into the world so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εν τουτω εφανερωθη η αγαπη του θεου εν ημιν οτι τον υιον αυτου τον μονογενη απεσταλκεν ο θεος εις τον κοσμον ινα ζησωμεν δ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9 in hoc apparuit caritas Dei in nobis quoniam Filium suum unigenitum misit Deus in mundum ut vivamus per eum
히브리어Modern,9 בזאת נראתה אהבת האלהים לנו כי שלח האלהים את בנו את יחידו לעולם למען נחיה על ידו׃
성 경: [요일4:9]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 '우리에게'로 번역된 헬라어 '엔 헤민'(*)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이다. (1)혹자는 '우리 사이에'(among us)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malley, Stott). (2)혹자는 '우리 안에'(in us)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ooke, Westcott). (3)혹자는 '우리게게'(to us)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hnackenburg). (4)혹자는 '우리를 위하여'(for us)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ultmann). 이러한 네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Barker). 한편 '나타난 바 되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네로데'(*)는 '파네로오'(*, '나타내다')의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요한은 '파네로오'를 예수의 사역(1:2; 3:5,8),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나타나심(요21:1,14), 그리고 예수의 강림(2:28)에 사용하고 있다. 본절에서 사용된 부정 과거 '네파네로데'는 명확한 역사적 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다음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성육신을 가리킨다(Law, Smalley). 요한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현시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 '독생자'의 헬라어 '모노게네'(*)는 히브리어 '야히드'(*)를 번역한 것이다. '야히드'는 70인역에서 두 가지로 번역된다. (1)'사랑하는'(beloved)을 의미한다. (2)'유일한'(uni- que)을 의미한다. 본절에서의 '모노게네'도 예수께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유일한 아들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편 '보내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스탈켄'(*)은 완료 시상으로 과거에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사건이 지속적으로 그 효력을 발휘함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을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그 사랑을 증거하신다.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 본문은 '히나'(*, '위하여')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나타낸다. '살리려 하심이라'는 인간이 전에 '죽은 상태'임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시고 이루심으로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하셨다(3:14).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지상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
엔 투토 에스틴 헤 아가페 우크 호티 헤메이스 에가페카멘 톤 데온 알 호티 아우토스 아가페센 헤마스 카이 아페스테일렌 톤 휘온 아우투 힐라스몬 페리 톤 하마르티온 헤몬
개역개정,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새번역,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0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영어NIV,10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영어NASB,10 In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영어MSG,10 This is the kind of love we are talking about--not that we once upon a tim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 sacrifice to clear away our sins and the damage they've done to our relationship with God.
영어NRSV,10 In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the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ν τουτω εστιν η αγαπη ουχ οτι ημεις ηγαπησαμεν τον θεον αλλ οτι αυτος ηγαπησεν ημας και απεστειλεν τον υιον αυτου ιλασμον περι των αμαρτιων ημων
라틴어Vulgate,10 in hoc est caritas non quasi nos dilexerimus Deum sed quoniam ipse dilexit nos et misit Filium suum propitiationem pro peccatis nostris
히브리어Modern,10 בזאת היא האהבה לא שאנחנו אהבנו את האלהים כי אם הוא אהב אותנו וישלח את בנו לכפרה על חטאתינו׃
성 경: [요일4:10]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 '여기 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투토 에스틴'(*)은 앞서 기술된 내용, 즉 9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3:16). 한편 '우리가...사랑한 것'(*, 에가페카멘)는 부정 과거 시상으로 본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사이에는 시상의 변화가 있다. '에가페카멘'은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결코 지속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반면에 '에가페센'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적인 특별한 사건에 의해서 나타났음을 시사하는데 곧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9절). 요한은 이러한 시상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사랑이 지속적이지 않아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Law, Smalley). 반면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되어 사랑의 궁극적인 기원을 이루셨다.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사랑은 이러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다(Hou- lden).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본문은 앞 절의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와 병행을 이룬다. 9절에서의 '보내심'(*, 아페스탈켄)은 완료 시상인 반면에 본절의 '보내셨음이니라'(*, 아페스테일렌)는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 부정 과거 시상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구현된 특별한 속죄 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화목제'로 번역된 헬라어 '힐라스몬'(*)은 본래 '달래는 것'(propitiation)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의미는 단순히 성난자를 달래는 차원이 아니라 속죄(expiation)를 전제로 한다(Dodd, Westcott).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속죄함이 없이는 죄로 인해 형성된 하나님과의 소원한 관계는 절대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본절의 '힐라스몬'은 '속죄'(expiation)의 의미와 '화목'(Propitiation)의 의미 둘 다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죄를 위한 화목제로 보내심으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다(9절, Barker, Stott).
아가페토이 에이 후토스 호 데오스 아가페센 헤마스 카이 헤메이스 오페일로멘 알렐루스 아가판
개역개정,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새번역,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말성경,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가톨릭성경,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영어NIV,11 Dear friends, since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영어NASB,11 Beloved, if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영어MSG,11 My dear, dear friends, if God loved us like this, we certainly ought to love each other.
영어NRSV,11 Beloved, since God loved us so much,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11 αγαπητοι ει ουτως ο θεος ηγαπησεν ημας και ημεις οφειλομεν αλληλους αγαπαν
라틴어Vulgate,11 carissimi si sic Deus dilexit nos et nos debemus alterutrum diligere
히브리어Modern,11 אהובי אם ככה אהב אתנו האלהים גם אנחנו חיבים לאהבה איש את רעהו׃
성 경: [요일4:11]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 '이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는 9,10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현시된 방법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적인 죽음을 가리킨다. 한편 '하셨은즉'의 헬라어 '에이'(*)는 사실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이유나 근거를 의미한다. 이것은 본문이 이후에 언급되는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의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께서 주신 계명으로(요13:34,35; 15:12,17)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요한의 이 권면은 당시 사랑의 계명을 평가절하하는 이단적 교리가 수신자들 사이에 팽배해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Smalley). 한편 '마땅하도다'로 번역된 헬라어 '오페일로멘'(*)은 사랑의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시사한다. 물론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선택 사항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당연히 나타나야 할 실천 행위이다.
데온 우데이스 포포테 테페아타이 에안 아가포멘 알렐루스 호 데오스 엔 헤민 메네이 카이 헤 아가페 아우투 엔 헤민 테텔ㄹ레이오메네 에스틴
개역개정,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새번역,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2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완성됩니다.
가톨릭성경,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영어NIV,12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if we love one another, God lives in us and his love is made complete in us.
영어NASB,12 No one has beheld God at any time; if we love one another, God abides in us, and His love is perfected in us.
영어MSG,12 No one has seen God, ever. But if we love one another, God dwells deeply within us, and his love becomes complete in us--perfect love!
영어NRSV,12 No one has ever seen God; if we love one another, God lives in us, and his love is perfected in us.
헬라어신약Stephanos,12 θεον ουδεις πωποτε τεθεαται εαν αγαπωμεν αλληλους ο θεος εν ημιν μενει και η αγαπη αυτου τετελειωμενη εστιν εν ημιν
라틴어Vulgate,12 Deum nemo vidit umquam si diligamus invicem Deus in nobis manet et caritas eius in nobis perfecta est
히브리어Modern,12 את האלהים לא ראה איש מעולם ואם נאהב איש את רעהו האלהים יעמד בקרבנו ואהבתו נשלמה בנו׃
성 경: [요일4:12]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 본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유대적인 사상으로(출33:20,23; 신4:12)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본문에 대해 혹자는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못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Houlden). 그러나 그렇게 해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본문은 수신자들 사이에서 영지주의를 전파하는 이단자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기 때문이다(Schnackenburg, Barker). 영지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한다. 요한은 이러한 이단자들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대하면서 하나님을 보는 것과 사랑의 계명을 연결시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영적으로 식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그리스도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라는 예수의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14절; 1:1-3; 요1:18; 12:45; 14:9; 17:24).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영적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 요한은 하나님을 가시적으로 보았다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격하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비록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행함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 품 속에 독생하신 예수께서 자신의 사랑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자신들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 '거하시고'의 헬라어 '메네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 간의 지속적인 친근한 관계를 나타낸다(요15:1-10). 하나님의 내주와 깊은 관계를 나타내는 '메네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내주와 지속적인 관계로 인해서 이루어 진다(Stott). 즉 하나님의 내주와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사랑의 행위의 근거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들 안에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내주하심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 '그의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아우투'(*)에 대한 이해는 그 안에 나타난 속격과 관련하여 세 가지가 가능하다. (1)혹자는 주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ker, Brooke, Wengst). (2)혹자는 목적격 속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Dodd, Lewis). (3)혹자는 속성을 나타내는 속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tott, Schnackenburg, Law). 이러한 세 가지 해석은 긴밀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온전히 이루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테텔레이오메네'(*)는 완료 시상으로 지속적인 성취를 나타낸다. 이러한 사랑의 성취에 대한 요한의 주장은 2:5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요한은 2:5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케하는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반면 본문에서는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것임을 암시한다(Smalley).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사랑을 통해서, 즉 인간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Barker, Westcott, Stott).
엔 투토 기노스코멘 호티 엔 아우토 메노멘 카이 아우토스 엔 헤민 호티 에크 투 프뉴마토스 아우투 데도켄 헤민
개역개정,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새번역,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말성경,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압니다.
가톨릭성경,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영어NIV,13 We know that we live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s given us of his Spirit.
영어NASB,13 By this we know that we abide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s given us of His Spirit.
영어MSG,13 This is how we know we're living steadily and deeply in him, and he in us: He's given us life from his life, from his very own Spirit.
영어NRSV,13 By this we know that we abide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s given us of his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ν τουτω γινωσκομεν οτι εν αυτω μενομεν και αυτος εν ημιν οτι εκ του πνευματος αυτου δεδωκεν ημιν
라틴어Vulgate,13 in hoc intellegimus quoniam in eo manemus et ipse in nobis quoniam de Spiritu suo dedit nobis
히브리어Modern,13 בזאת נדע אשר בו נקום והוא בנו כי נתן לנו מרוחו׃
성 경: [요일4:13]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는 '호티'(*, '왜냐하면')로 시작하는 절로서 본문 하반절에서 언급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의 근거가 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1-3절; 고전12:3).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한 성령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과 사랑을 경험하게 하여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즉 상호간의 내주를 확신할 수 있도록 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3:24). 한편 상호간의 내주를 나타내는 '거하고'(*, 메노멘)와 '아느니라'(*, 기노스코멘)는 현재 시상이다. 이 현재 시상은 믿는 자가 경험한 내주의 확신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요한이 '기노스코멘'을 사용한 것은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이단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신비한 지식을 깨달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나 요한은 이에 대해 반박하면서 성령을 공유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상호간의 내주를 경험하며 확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이며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교제함으로써 상호간의 내주를 확신한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과의 이러한 교제, 즉 상호간의 내주(內住)는 사랑하는 것과 믿는 것을 가리킨다(3:24; 요3:5,6; 갈5:6).
카이 헤메이스 테데아메다 카이 마르튀루멘 호티 호 파테르 아페스탈켄 톤 휘온 소테라 투 코스무
개역개정,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새번역,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말성경,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한 그것을 증거합니다.
가톨릭성경,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영어NIV,14 And we have seen and testify that the Father has sent his Son to be the Savior of the world.
영어NASB,14 And we have beheld and bear witness that the Father has sent the Son to be the Savior of the world.
영어MSG,14 Also, we've seen for ourselves and continue to state openly that the Father sent his Son as Savior of the world.
영어NRSV,14 And we have seen and do testify that the Father has sent his Son as the Savior of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ημεις τεθεαμεθα και μαρτυρουμεν οτι ο πατηρ απεσταλκεν τον υιον σωτηρα του κοσμου
라틴어Vulgate,14 et nos vidimus et testificamur quoniam Pater misit Filium salvatorem mundi
히브리어Modern,14 ואנחנו חזינו ונעידה כי האב שלח את הבן מושיע העולם׃
성 경: [요일4:14]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 아들의 칭호인 '구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테라'(*)는 예수께서 승귀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2:22,23) 사람들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셨음을 시사한다. 이 역시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이단자들을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그들은 구원을 신비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죄보다는 무지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육체로 오신 예수께서 구주이시며 그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죄를 사함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선언함으로 영지주의자들을 반박하고 있다(2,10절; 1:7; 2:2; 5:6, Schnackenburg). 한편 '보내신'의 헬라어 '아페스탈켄'(*)은 9절과 같이 완료 시상이다. 이는 과거에 아들을 보내신 성육신 사건과 그의 구속 사역의 효력이 현재까지 지속됨을 시사한다(Stott).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 '우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예수의 지상 생활을 직접 지켜 본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tott, Brooke, Schnackenburg, Wengst). (2)혹자는 기본적으로 사도들을 의미하며 그들에 의해 설립된 교회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Marshall, Westcott). (3)혹자는 예수의 지상 생애를 지켜 본 목격자들과 연합한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ker, Smalley, Dodd). 이와 같이 '우리'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할지라도 포괄적인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보았고'(*, 테데아메다)는 완료 시상이며 '증거하노니'(*, 마르튀루멘)는 현재 시상이다. 비록 둘 사이에 시상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속성을 나타낸다. 즉 과거에 보고 응답한 믿음과 현재에 그 믿음을 증거하는 것은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 연속적이며 지속적인 효과를 시사한다. 성령을 수여받은 사도들을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할지라도(12절)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되신 예수를 알게되며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 그 깊이를 더해 갈 뿐만 아니라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요15:26).
호스 에안 호몰로게세 호티 예수스 에스틴 호 휘오스 투 데우 호 데오스 엔 아우토 메네이 카이 아우토스 엔 토 데오
개역개정,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새번역,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5 만일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영어NIV,15 If anyone acknowledg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God lives in him and he in God.
영어NASB,15 Whoever confess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God abides in him, and he in God.
영어MSG,15 Everyone who confesses that Jesus is God's Son participates continuously in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God.
영어NRSV,15 God abides in those who confes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and they abide in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5 ος αν ομολογηση οτι ιησους εστιν ο υιος του θεου ο θεος εν αυτω μενει και αυτος εν τω θεω
라틴어Vulgate,15 quisque confessus fuerit quoniam Iesus est Filius Dei Deus in eo manet et ipse in Deo
히브리어Modern,15 כל המודה כי ישוע הוא בן האלהים האלהים שכן בו והוא באלהים׃
성 경: [요일4:15]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 '누구든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가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신들만이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단 하나의 전제 조건,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기만 하면 누구나 예외없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선언한다. 한편 '시인하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세'(*)는 부정 과거이다. 영역 성경에서는 이 과거 시상을 표현하기 어려워 두 가지로 번역하고 있다. (1)미래 시상으로 번역한다(shall confess, KJV). (2)현재 시상으로 번역한다(acknowledges, NIV, NEB; confess, RSV). 그러나 본문의 '호몰로게세'는 미래 시상이나 현재 시상이라기 보다는 비록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을지라도 공적으로 고백하는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봄이 훨씬 더 타당하다(Stott, Smalley).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상호간의 내주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 상호간의 내주를 가능하게 하는 믿음과 순종의 고백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13절).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 본문은 13절에서 언급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를 나타낸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처럼 상호간의 내주도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 사역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식하고 확신하게 된다(3:1,2).
카이 헤메이스 에그노카멘 카이 페피스튜카멘 텐 아가펜 헨 에케이 호 데오스 엔 헤민 호 데오스 아가페 에스틴 카이 호 메논 엔 테 아가페 엔 토 데오 메네이 카이 호 데오스 엔 아우토 메네이
개역개정,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새번역,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말성경,16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가톨릭성경,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영어NIV,16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영어NASB,16 And we have come to know and have believed the love which God has for us. God is love, and the one who abides in love abides in God, and God abides in him.
영어MSG,16 We know it so well, we've embraced it heart and soul, this love that comes from God. God is love. When we take up permanent residence in a life of love, we live in God and God lives in us.
영어NRSV,16 So we have known and believe the love that God has for us. God is love, and those who abide in love abide in God, and God abides in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ημεις εγνωκαμεν και πεπιστευκαμεν την αγαπην ην εχει ο θεος εν ημιν ο θεος αγαπη εστιν και ο μενων εν τη αγαπη εν τω θεω μενει και ο θεος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16 et nos cognovimus et credidimus caritati quam habet Deus in nobis Deus caritas est et qui manet in caritate in Deo manet et Deus in eo
히브리어Modern,16 ואנחנו ידענו ונאמן באהבה אשר אלהים אהב אתנו האלהים הוא אהבה והעמד באהבה עמד באלהים והאלהים עמד בו׃
성 경: [요일4:16]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본절이 속한 단락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본절이 11-15절에 속한 것이 아니라 본절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Marshall, Schnackenburg). (2)혹자는 앞절과 연결되어 11-16절까지 한 단락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Law, Stott, Barker).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문맥상 13,15절에서 언급된 상호간의 내주에 대한 진술이 본절에서 보다 발전된 형태로 진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번역된 헬라어 '텐 아가펜 헨 에케이 호 데오스 엔 헤민'(*)은 문자적으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사랑을'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삶 속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Law, Marshall, Westcott, Smalley). 한편 '알고 믿었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노카멘 카이페피스튜카멘'(*)은 완료 시상이다. 이것은 사도들은 물론 모든 수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미 과거에 경험하여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알고 믿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확신할 수 있다. 요한은 이러한 진술을 통해서 영지주의자들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황홀경이나 특별한 지식에 의해서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주장하나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한 것에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의지하는 믿음에 달려있음을 선포하고 있다(9,10,14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본문은 8절의 반복이다. 요한은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임을 주장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자에게 사랑은 절대적인 속성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본문은 13,15절에서 전술된 바 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에 대한 보다 발전적인 표현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며(13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때 성취된다(15절).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이루어 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이 나타나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삶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드러내는 증거이며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Smalley, Dodd).
엔 투토 테텔레이오타이 헤 아가페 멛 헤몬 히나 파르레시안 에코멘 엔 테 헤메라 테스 크리세오스 호티 카도스 에케이노스 에스틴 카이 헤메이스 에스멘 엔 토 코스모 투토
개역개정,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새번역,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7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완성되면 우리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행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영어NIV,17 In this way, love is made complete among us so that we will have confidence on the day of judgment, because in this world we are like him.
영어NASB,17 By this, love is perfected with us, that we may have confidence in the day of judgment; because as He is, so also are we in this world.
영어MSG,17 This way, love has the run of the house, becomes at home and mature in us, so that we're free of worry on Judgment Day--our standing in the world is identical with Christ's.
영어NRSV,17 Love has been perfected among us in this: that we may have boldness on the day of judgment, because as he is, so are we in this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εν τουτω τετελειωται η αγαπη μεθ ημων ινα παρρησιαν εχωμεν εν τη ημερα της κρισεως οτι καθως εκεινος εστιν και ημεις εσμεν εν τω κοσμω τουτω
라틴어Vulgate,17 in hoc perfecta est caritas nobiscum ut fiduciam habeamus in die iudicii quia sicut ille est et nos sumus in hoc mundo
히브리어Modern,17 ובזאת נשלמה בנו האהבה בהיות לנו בטחון ביום הדין כי כמהו כן גם אנחנו בעולם הזה׃
성 경: [요일4:17]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이로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투토'(*)가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본문 다음에 언급되는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Schnackenburg). (2)혹자는 16절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Marshall).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본문은 앞절과 이어지는 단락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 '사랑'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생활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chnackenburg). (2)혹자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ker, Stott). (3)혹자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aas). (4)혹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둘 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arshall, Houlden). 이러한 네 가지 견해 중 포괄적인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담대함'의 헬라어 '파르레시안'(*)은 2:5에서 온전히 성취된 사랑과 연결되어 '순종'으로 묘사되었으며 요한복음에서는 담대함이 믿음과 결과로 나타난다(요3:18; 5:24). 이러한 사실은 사랑이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지속적인 내주를 이루며, 그 내주로 말미암아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됨을 시사한다. 즉,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의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근거를 이룬다(Smalley, Westcott).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호티 카도스 에케이노스 에스틴 카이 헤메이스 에스멘 엔 토 코스모 투토). - 이는 문자적으로 '왜냐하면 그가 어떠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1)예수의 영원한 순수성, 사랑, 의로우심, 그리고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의미한다(Brooke, Westcott, Haas). (2)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유혹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고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교제를 나누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할 것을 암시한다(Barker, Smalley, Stott).
포보스 우크 에스틴 엔 테 아가페 알 헤 텔레이아 아가페 엨소 발레이 톤 포본 호티 호 포보스 콜라신 에케이 호 데 포부메노스 우 테텔레이오타이 엔 테 아가페
개역개정,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새번역,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말성경,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 안에서 온전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가톨릭성경,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영어NIV,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영어NASB,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because fear involves punishment, and the one who fears is not perfected in love.
영어MSG,18 There is no room in love for fear. Well-formed love banishes fear. Since fear is crippling, a fearful life--fear of death, fear of judgment--is one not yet fully formed in love.
영어NRSV,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for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and whoever fears has not reached perfection in love.
헬라어신약Stephanos,18 φοβος ουκ εστιν εν τη αγαπη αλλ η τελεια αγαπη εξω βαλλει τον φοβον οτι ο φοβος κολασιν εχει ο δε φοβουμενος ου τετελειωται εν τη αγαπη
라틴어Vulgate,18 timor non est in caritate sed perfecta caritas foras mittit timorem quoniam timor poenam habet qui autem timet non est perfectus in caritate
히브리어Modern,18 אין אימה באהבה כי אם האהבה השלמה תגרש את האימה כי באימה מעצבה ואשר באימה איננו שלם באהבה׃
성 경: [요일4:18]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 '두려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스'(*)는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의미한다(행9:31; 롬3:18; 고후5:11; 7:1; 엡5:21). 그러나 본절에서의 '포보스'는 앞절의 담대함의 반대 개념으로 노예가 갖는 두려움을 가리킨다(요19:38; 20:19; 롬8:15). 이러한 '포보스'는 사랑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면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전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해질 수 있다. 비록 죄는 두려움을 유발시킬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사랑을 소유한 자들에게 사랑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 본문은 사랑과 두려움이 공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형벌'에 대해서 혹자는 마지막 날과 연결시켜 하나님의 정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며(Schnackenburg), 혹자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방해하는 고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Bultmann). 이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Haas, Marshall). 즉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사랑 안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상호간의 내주와 사랑의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게 되며 그 결과 마지막 날에 죄로 인한 정죄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갖는 담대함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사랑은 공존할 수 없는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개역성경에는 반의 접속사인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헬라어 본문의 '데'는 본문이 17절 상반절의 내용, 즉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하나님의 사랑'을 역으로 진술한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로 인하여 사랑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다(Westcott, Law). 그러기에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었다. 이와 반대로 만약 누구든지 담대함이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지 못하였으며 그 사랑의 실체를 온전히 성취하지 못한 자이다.
헤메이스 아가포멘 호티 아우토스 프로토스 에가페센 헤마스
개역개정,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새번역,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를' 또는 '하나님을'이 첨가됨
우리말성경,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9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영어NASB,19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영어MSG,19 We, though, are going to love--love and be loved. First we were loved, now we love. He loved us first.
영어NRSV,19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헬라어신약Stephanos,19 ημεις αγαπωμεν αυτον οτι αυτος πρωτος ηγαπησεν ημας
라틴어Vulgate,19 nos ergo diligamus quoniam Deus prior dilexit nos
히브리어Modern,19 אנחנו אהבים אתו כי הוא קדם לאהבה אתנו׃
성 경: [요일4:19]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요한은 10절을 반복하여 진술함으로 가장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사랑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20,21절에서 형제 사랑의 문제로 요약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포멘'(*)은 문자적으로 '우리가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목적어가 없다. 목적어의 부재로 인해 '사랑'의 대상인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로 나뉜다. (1)혹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Stott, Houlden). 이들은 앞절의 진술과 연결시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2)혹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Schnackenburg). 이들은 20,21절에서 형제 사랑에 대해 언급된 것과 연결시켜 해석한다. (3)혹자는 둘 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aas, Marshall).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본문은 전후 문맥을 연결시키는 것으로 어느 하나를 제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본문은 이유를 나타내는 '호티'(*, '왜냐하면')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근거를 나타낸다. '사랑하셨음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가페센'(*)은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 시상은 전순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성육신 사건을 통해 계시된 것을 가리킨다(9,10절, Law, Smalley).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사랑의 삶은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에안 티스 에이페 호티 아가포 톤 데온 카이 톤 아델폰 아우투 미세 프슈스테스 에스틴 호 가르 메 아가폰 톤 아델폰 아우투 혼 헤오라켄 톤 데온 혼 우크 헤오라켄 우 뒤나타이 아가판
개역개정,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새번역,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 ㉡그, '형제'
우리말성경,20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영어NIV,20 If anyone says, "I love God," yet hates his brother, he is a liar. For anyon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whom he has seen, cannot love God, whom he has not seen.
영어NASB,20 If someone says, "I love God," and hates his brother, he is a liar; for the on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whom he has seen, cannot love God whom he has not seen.
영어MSG,20 If anyone boasts, "I love God," and goes right on hating his brother or sister, thinking nothing of it, he is a liar. If he won't love the person he can see, how can he love the God he can't see?
영어NRSV,20 Those who say, "I love God," and hate their brothers or sisters, are liars; for those who do not love a brother or sister whom they have seen, cannot love God whom they have not seen.
헬라어신약Stephanos,20 εαν τις ειπη οτι αγαπω τον θεον και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μιση ψευστης εστιν ο γαρ μη αγαπων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ον εωρακεν τον θεον ον ουχ εωρακεν πως δυναται αγαπαν
라틴어Vulgate,20 si quis dixerit quoniam diligo Deum et fratrem suum oderit mendax est qui enim non diligit fratrem suum quem vidit Deum quem non vidit quomodo potest diligere
히브리어Modern,20 כי יאמר איש אהב אני את האלהים והוא שנא את אחיו כזב הוא כי אשר לא יאהב את אחיו אשר הוא ראה איככה יוכל לאהב את האלהים אשר איננו ראה אתו׃
성 경: [요일4:20]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 '누구든지'의 헬라어 '에안 티스'(*)는 본서에서 거짓 이단자들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된 표현 방법이다(1:6,8,10; 2:4,9). 본문 역시 수신자 공동체 내에 팽배해 있던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공동체 내에서 신비한 지식을 통해 구원을 받고 다른 일원보다 우월하다는 환상에 빠져 타인을 돌보지 않았다. 요한은 그러한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자들은 반드시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게 됨을 강조한다. 여기서 '형제'는 수신자 공동체 일원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교회 밖의 일반적인 사람들 전체를 가리킨다(7,11,19절). 즉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만을 향한 것이며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된다. 한편 '거짓말하는 자니'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Barker, Smalley). (1)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진리를 말하지 않는 자며, 그 진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자이다. (2)거짓말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서 스스로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자들이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문이 상반절에서 언급된 '거짓말하는 자'의 근거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거짓말쟁이인 것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형제에 대한 사랑 안에서 표현된다(12절). 즉 그리스도인은 타인에 대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카이 타우텐 텐 엔톨렌 에코멘 앞 아우투 히나 호 아가폰 톤 데온 아가파 카이 톤 아델폰 아우투
개역개정,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새번역,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 ㉣그, '형제'
우리말성경,21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어NIV,21 And he has given us this command: Whoever loves God must also love his brother.
영어NASB,21 And this commandment we have from Him, that the one who loves God should love his brother also.
영어MSG,21 The command we have from Christ is blunt: Loving God includes loving people. You've got to love both.
영어NRSV,21 The commandment we have from him is this: those who love God must love their brothers and sisters also.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ταυτην την εντολην εχομεν απ αυτου ινα ο αγαπων τον θεον αγαπα και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21 et hoc mandatum habemus ab eo ut qui diligit Deum diligat et fratrem suum
히브리어Modern,21 וזאת המצוה יש לנו מאתו כי האהב את האלהים יאהב גם את אחיו׃
성 경: [요일4:21]
주제1: [사랑의 본질과 필연성]
주제2: [사랑의 실천]
본절의 헬라어 본문은 '카이'(*, '그리고')로 시작하여 본절이 20절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요한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사랑'을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연결시키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단 하나의 계명이기 때문이다(Stott). 이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반영한 것으로(막12:29-31) 요한은 이 계명에 대해 본서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위대한 계명으로 진술하고 있다(3:23; 요이1:5,6). 한편 '주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프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그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예수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illiams, Stott, Westcott). (2)혹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malle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며 상호보완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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