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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요한일서 5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파스 호 피스튜온 호티 예수스 에스틴 호 크리스토스 에크 투 데우 게겐네타이 카이 파스 호 아가폰 톤 겐네산타 아가파 카이 톤 게겐네메논 엨스 아우투

 

개역개정,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새번역,1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그분이 낳으신 이도 사랑합니다. / ㉠또는 '메시아'
우리말성경,1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에게서 나신 분도 사랑합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영어NIV,1 Every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Christ is born of God, and everyone who loves the father loves his child as well.
영어NASB,1 Whoever believes that Jesus is the Christ is born of God; and whoever loves the Father loves the child born of Him.
영어MSG,1  Every person who believes that Jesus is, in fact, the Messiah, is God-begotten. If we love the One who conceives the child, we'll surely love the child who was conceived.
영어NRSV,1 Every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Christ has been born of God, and everyone who loves the parent loves the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1 πας ο πιστευων οτι ιησους εστιν ο χριστος εκ του θεου γεγεννηται και πας ο αγαπων τον γεννησαντα αγαπα και τον γεγεννημενον εξ αυτου
라틴어Vulgate,1 omnis qui credit quoniam Iesus est Christus ex Deo natus est et omnis qui diligit eum qui genuit diligit eum qui natus est ex eo
히브리어Modern,1 כל המאמין כי ישוע הוא המשיח הנה זה ילד מאלהים וכל האהב את מולידו יאהב גם את הנולד מאתו׃


 

성 경: [요일5:1]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 '믿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튜온'(*)은 현재형이고 '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겐네타이'(*)는 완료 시상이다. 양자의 헬라어 시상에 의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먼저요 믿음은 그 다음이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 혹은 증거인 것이다(Smalley, Stott, Barker). '믿음'은 예수께서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으로(4:15; 9:22)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를 분별하는 시금석이다.

󰃨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 본문은 4:21의 반복이다. '내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겐네산타'(*)'낳다'러눈 의미의 동사 '겐나오'(*)의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서 '아버지'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낳으시고 자녀삼아 주셨으며 친히 아버지가 되셨다. 요한이 이같이 하나님을 '내신 이'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과 신자들을 가족 관계로 유비(類比)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에게서 난 자'로 번역된 헬라어 '게겐네메논'(*)은 단수형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나(Augustine)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법상 단수로도 집합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인 전체를 지칭할 수 있으며, 문맥상 본문이 믿음과 모든 그리스도인들 간의 사랑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또한 하나님 안에서 형제를 사랑한다. 요한은 본절에서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 사랑의 불가 분리적 관계성을 강조한다(4:19,20).

 

 

엔 투토 기노스코멘 호티 아가포멘 타 테크나 투 데우 호탄 톤 데온 아가포멘 카이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포이오멘

 

개역개정,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새번역,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말성경,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이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압니다. 
가톨릭성경,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어NIV,2 This is how we know that we love the children of God: by loving God and carrying out his commands.
영어NASB,2 By this we know that we love the children of God, when we love God and observe His commandments.
영어MSG,2  The reality test on whether or not we love God's children is this: Do we love God? Do we keep his commands?
영어NRSV,2 By this we know that we love the children of God, when we love God and obey his commandments.
헬라어신약Stephanos,2 εν τουτω γινωσκομεν οτι αγαπωμεν τα τεκνα του θεου οταν τον θεον αγαπωμεν και τας εντολας αυτου τηρωμεν
라틴어Vulgate,2 in hoc cognoscimus quoniam diligimus natos Dei cum Deum diligamus et mandata eius faciamus
히브리어Modern,2 בזאת נדע כי נאהב את בני האלהים באהבתנו את האלהים ובשמרנו את מצותיו׃


 

성 경: [요일5:2]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본서는 전반적으로 형제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는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본절에서는 그 표현이 반대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 나타난 역설적 표현의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로써'가 앞절에 설정된 원리를 가리키며, '우리가...사랑하는 줄을''우리가 사랑해야만 한다'로 해석한다(Marshall, Dodd). 그러나 '이로써'가 앞절을 가리킨다고 해석할 이유는 없다. '이로써'는 본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근거함을 나타낸다(4:8,16,19, Smalley).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불가 분리의 관계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며 형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입증된다.

 

 

하우테 가르 에스틴 헤 아가페 투 데우 히나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테로멘 카이 하이 엔톨라이 아우투 바레이아이 우크 에이신

 

개역개정,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새번역,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우리말성경,3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부담스런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영어NIV,3 This is love for God: to obey his commands. And his commands are not burdensome,
영어NASB,3 For this is the love of God, that we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commandments are not burdensome.
영어MSG,3  The proof that we love God comes when we keep his commandments and they are not at all troublesome.
영어NRSV,3 For the love of God is this, that we obey his commandments. And his commandments are not burdensome,
헬라어신약Stephanos,3 αυτη γαρ εστιν η αγαπη του θεου ινα τας εντολας αυτου τηρωμεν και αι εντολαι αυτου βαρειαι ουκ εισιν
라틴어Vulgate,3 haec est enim caritas Dei ut mandata eius custodiamus et mandata eius gravia non sunt
히브리어Modern,3 כי זאת אהבת אלהים היא אשר נשמר את מצותיו ומצותיו אינן כבדות׃


 

성 경: [요일5:3]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즉 순종과 불가 분리의 관계를 맺는다. 모든 계명 중 가장 우월한 계명이 사랑 계명인 바 그 안에 하나님의 계명이 내포되어 있으며(Smalley) 그 계명에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이미 예수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14:31; 15:10).

󰃨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무거운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레이아이'(*)는 바리새인과 랍비들이 주장하는 무거운 또는 가벼운 율법이라는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23:23, Smalley, Schnackenburg).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주장한 율법과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었던 반면에(23:4; 11:46) 그리스도께서 주신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11:30).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셨고(4:19)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셨으며(Dodd) 설사 그 계명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용서해주시기 때문에(Calvin) 하나님의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순종을 통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므로 그것은 가벼운 것이다.

 

 

호티 판 토 게겐네메논 에크 투 데우 니카 톤 코스몬 카이 하우테 에스틴 헤 니케 헤 니케사사 톤 코스몬 헤 피스티스 헤몬

 

개역개정,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새번역,4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말성경,4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가톨릭성경,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영어NIV,4 for everyone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even our faith.
영어NASB,4 For whatever is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and 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our faith.
영어MSG,4  Every God-begotten person conquers the world's ways. The conquering power that brings the world to its knees is our faith.
영어NRSV,4 for whatever is born of God conquers the world. And this is the victory that conquers the world, our faith.
헬라어신약Stephanos,4 οτι παν το γεγεννημενον εκ του θεου νικα τον κοσμον και αυτη εστιν η νικη η νικησασα τον κοσμον η πιστις ημων
라틴어Vulgate,4 quoniam omne quod natum est ex Deo vincit mundum et haec est victoria quae vincit mundum fides nostra
히브리어Modern,4 כי כל הנולד מאת האלהים מנצח את העולם ואמונתנו הנצחון המנצח את העולם׃


 

성 경: [요일5:4]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 여기서 '난 자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 토 게겐네메논'(*)은 중성이다. 계속 남성 명사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중성 명사로 바꾸어 쓴 것은 이 말씀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 세상을 이기느니라. -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인간적 욕망을 가리킨다(2:15-17, Smalley).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역사하는 이러한 악에 대해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서 승리한다(18-20; 2:13,14). '이기느니라'의 헬라어 '니카'(*)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계속해서 이겨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의 투쟁 속에서 이러한 계속적인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이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16:33; 19:30). 사도 요한은 본절에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을 말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주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16:33)를 우리가 믿고 고백할 때 그 이김은 우리의 거싱 되고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8:37). 여기서 '이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케사사'(*)는 부정 과거 능동태로 한 개인의 회심과 같은 개별적인 경험을 표현할 때나 공동체의 역사에서 특별한 한 순간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시제이다(Brooke). 본절에서 사용된 '니케사사'는 과거에 성취된 명확한 승리와 상관 관계를 갖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신 세상에 대한 승리를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것을 시사한다(Haas, Smalley).

 

 

티스 데 에스틴 호 니콘 톤 코스몬 에이 메 호 피스튜온 호티 예수스 에스틴 호 휘오스 투 데우

 

개역개정,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새번역,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우리말성경,5 세상을 이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가톨릭성경,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영어NIV,5 Who is it that overcomes the world? Only h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영어NASB,5 And who is the one who overcomes the world, but h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영어MSG,5  The person who wins out over the world's ways is simply the one who believes Jesus is the Son of God.
영어NRSV,5 Who is it that conquers the world but the 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5 τις εστιν ο νικων τον κοσμον ει μη ο πιστευων οτι ιησους εστιν ο υιος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5 quis est qui vincit mundum nisi qui credit quoniam Iesus est Filius Dei
히브리어Modern,5 מי הוא זה המנצח את העולם אם לא המאמין בישוע שהוא בן האלהים׃


 

성 경: [요일5:5]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1절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라는 표현과 거의 동일한 의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안에 계시되어 있음을 시사한다(Marshall).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세상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유하신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된다. 한편 '이기는 자'의 헬라어 '니콘'(*)은 현재 분사형으로서 4절의 '니카'(*, '이기느니라')와 같은 시상이다. 이는 투쟁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이겨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승리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후토스 에스틴 호 엘돈 디 휘다토스 카이 하이마토스 예수스 크리스토스 우크 엔 토 휘다티 모논 알 엔 토 휘다티 카이 엔 토 하이마티 카이 토 프뉴마 에스틴 토 마르튀룬 호티 토 프뉴마 에스틴 헤 알레데이아

 

개역개정,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새번역,6 그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다만 물로써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습니다. 성령은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우리말성경,6 그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은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십니다. 
가톨릭성경,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영어NIV,6 This is the one who came by water and blood--Jesus Christ. He did not come by water only, but by water and blood. And it is the Spirit who testifies, because the Spirit is the truth.
영어NASB,6 This is the one who came by water and blood, Jesus Christ; not with the water only, but with the water and with the blood.
영어MSG,6  Jesus--the Divine Christ! He experienced a life-giving birth and a death-killing death. Not only birth from the womb, but baptismal birth of his ministry and sacrificial death. And all the while the Spirit is confirming the truth, the reality of God's presence at Jesus' baptism and crucifixion, bringing those occasions alive for us.
영어NRSV,6 This is the one who came by water and blood, Jesus Christ, not with the water only but with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Spirit is the one that testifies, for the Spirit is the truth.
헬라어신약Stephanos,6 ουτος εστιν ο ελθων δι υδατος και αιματος ιησους ο χριστος ουκ εν τω υδατι μονον αλλ εν τω υδατι και τω αιματι και το πνευμα εστιν το μαρτυρουν οτι το πνευμα εστιν η αληθεια
라틴어Vulgate,6 hic est qui venit per aquam et sanguinem Iesus Christus non in aqua solum sed in aqua et sanguine et Spiritus est qui testificatur quoniam Christus est veritas
히브리어Modern,6 זה הוא אשר בא במים ובדם ישוע המשיח לא במים לבד כי אם במים ובדם והרוח הוא המעיד כי הרוח הוא האמת׃


 

성 경: [요일5:6]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 본문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옆구리를 창에 찔렸을 때 흘리신 물과 피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ugustine, Williams) (2)혹자는 요4장과 6장을 근거로 하여 세례와 성찬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ullmann, Westcott, Luther, Calvin). (3)혹자는 구약 시대의 희생제사와 연관하여 물은 정결케하는 것이며 피는 희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Candlish). (4)혹자는 물은 예수께서 받으신 요한의 물 세례요 피는 십자가의 대속의 보혈이라고 주장한다(Tertullian, Alford, Meyer, Barker, Stott, Marshall).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요한 당시에 케린투스(Cerinthus)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 예수에게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였다. 요한은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것을 분명하게 설파함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육체를 가지신 인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 본문은 앞서 언급된 상반절의 반복으로 영지주의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한다. 본절 상반절에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할 때는 ''(*, '...을 통하여')를 사용한 반면에 본문에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할 때는 ''(*, '...안에서')을 사용한다. 본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예수께서는 물과 피를 통하여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물 안에서 그리고 피 안에서 임하신 자이다'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위치나 장소를 나타내는 두개의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더욱 강도하고 있다(Marshall, Smalley).

 

 

호티 트레이스 에이신 호이 마르튀룬테스

 

개역개정,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새번역,7 ㉡증언하시는 이가 셋인데, / ㉡몇몇 사본에는 '하늘에서 증언하시는 세 분이 계십니다.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십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8. 땅에서 증언하는 셋이 있습니다. 곧 영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일치합니다.'
우리말성경,7 증거하시는 이가 셋인데 
가톨릭성경,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영어NIV,7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영어NASB,7 And it is the Spirit who bears witness, because the Spirit is the truth.
영어MSG,7  A triple testimony:
영어NRSV,7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헬라어신약Stephanos,7 οτι τρεις εισιν οι μαρτυρουντες εν τω ουρανω ο πατηρ ο λογος και το αγιον πνευμα και ουτοι οι τρεις εν εισιν
라틴어Vulgate,7 quia tres sunt qui testimonium dant
히브리어Modern,7 כי שלשה המה המעידים בשמים האב הדבר ורוח הקדש ושלשתם אחד המה׃


 

성 경: [요일5:7]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 개역성경에는 본절이 앞절과 분리되어 또 하나의 절로 기술되어 있으나 헬라어 본문에서는 본절이 앞절에 포함되어 있다. '증거하는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마르튀룬'(*)은 현재 분사로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증거하심을 시사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로 오셨음을 믿게 하는 성령께서 믿는 자안에 내주하셔서 지속적으로 예수에 대해 증거하신다(2:20,27; 4:1-6, Stott). 또한 성령은 예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임하심으로 객관적인 증거를 보이셨다(1:32).

󰃨 성령은 진리니라. - 예수께서는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14:6)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성령이라고 증거하셨다(15:26; 16:13).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이 본문에서 성령께서 진리이심을 선언한 것은 진리이신 성령만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증거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Johnson).

 

 

토 프뉴마 카이 토 휘도르 카이 토 하이마 카이 호이 트레이스 에이스 토 헨 에이신

 

개역개정,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새번역,8 곧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일치합니다.
우리말성경,8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이 서로 일치합니다. 
가톨릭성경,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영어NIV,8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영어NASB,8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영어MSG,8  the Spirit, the Baptism, the Crucifixion. And the three in perfect agreement.
영어NRSV,8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τρεις εισιν οι μαρτυρουντες εν τη γη το πνευμα και το υδωρ και το αιμα και οι τρεις εις το εν εισιν
라틴어Vulgate,8 Spiritus et aqua et sanguis et tres unum sunt
히브리어Modern,8 ושלשה המה המעידים בארץ הרוח המים והדם ושלשתם לאחת המה׃


 

성 경: [요일5:8]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 '성령과 물과 피'에 대한 견해는 다섯 가지이다 (1)혹자는 성령과 물과 피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세 가지 등급으로 생각하여 예언자와 세례요한, 그리고 요한 일서의 저자인 자신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ngel). 그러나 성령을 예언자와만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한 발살이며 피를 요한 일서의 저자와 연결시키는 것은 합당한 근거가 없는 논리이다. (2)혹자는 세 가지 증거들이 세례(3:5-8), 성만찬(6:54-56), 그리고 성령을 받음(20:22)'신비적인 사건들'에 각각 상응한다고 주장한다(Windisch). 그러나 이 주장은 상당히 작위적이다. 이 견해는 정당성을 주장키 위해 본절의 세 가지 증거들의 순서를 바꾸고 있으며 더욱이 근거로 제시된 참고 성경 구절들도 예수를 증거한다는 개념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3)혹자는 세 가지 증거들이 기독교 초기에 존재한 '기름 부음과 세례와 주의 만찬'이라는 예배 의식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Manson, Nauck).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세례 이전에 기름 부음을 실행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 (4)혹자는 물과 피를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성례전의 상징으로 보아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된다는 견해를 주장한다(Dodd, Bultmann, Law, Westcott, Barker). 세례와 성만찬 즉 이 두 가지 성례전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여 증거한다. (5)혹자는 '물과 피'6절과 같은 의미로 보아 물은 예수의 세례를 상징하고 피는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의 피를 상징하며, '성령'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의 머리 위로 강림하셨고(1:32), 예수께서 십자가의 수난의 피를 흘리사 그의 사역을 다 이루시고(19:30) 영광을 받으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증거하심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7:39; 20:22, Smalley).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두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 요한은 본문에서 성령과 물과 피가 같은 결과를 향하여 함께 작용함으로써 한 점에 수렴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즉 세 가지 증거들이 예수께서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증거함을 시사한다. 한편 구약 시대 율법에 의하면 증인이 둘 이상이라야 어떤 사실이 입증되었다(19:15). 요한이 이러한 율법을 염두에 두고 세 가지 증거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Stott).

 

 

에이 텐 마르튀리안 톤 안드로폰 람바노멘 헤 마르튀리아 투 데우 메이존 에스틴 호티 하우테 에스틴 헤 마르튀리아 투 데우 호티 메마르튀레켄 페리 투 휘우 아우투

 

개역개정,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새번역,9 우리가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거늘, 하나님의 증언은 더욱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9 우리가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는데 더 큰 하나님의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해 이미 증언하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영어NIV,9 We accept man's testimony, but God's testimony is greater because it is the testimony of God, which he has given about his Son.
영어NASB,9 If we receive the witness of men, the witness of God is greater; for the witness of God is this, that He has borne witness concerning His Son.
영어MSG,9  If we take human testimony at face value, how much more should we be reassured when God gives testimony as he does here, testifying concerning his Son.
영어NRSV,9 If we receive human testimony, the testimony of God is greater; for this is the testimony of God that he has testified to his Son.
헬라어신약Stephanos,9 ει την μαρτυριαν των ανθρωπων λαμβανομεν η μαρτυρια του θεου μειζων εστιν οτι αυτη εστιν η μαρτυρια του θεου ην μεμαρτυρηκεν περι του υιου αυτου
라틴어Vulgate,9 si testimonium hominum accipimus testimonium Dei maius est quoniam hoc est testimonium Dei quod maius est quia testificatus est de Filio suo
히브리어Modern,9 אם נקבל עדות בני אדם הנה עדות האלהים גדולה ממנה כי זאת היא עדות האלהים אשר העיד על בנו׃



성 경: [요일5:9]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 율법에 의하면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증거하는 일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19:15). 죄악되고 부패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의 증거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면 더욱 크고 완전한 하나님의 증거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증거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 속에 선포되며 물과 피를 통하여 역사 속에 선포된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면(裏面)에서 세 가지 증거 즉 성령과 물과 피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증거이다.

󰃨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호티 하우테 에스틴 헤마르튀리아 투 데우, 호티 메마르튀레켄 페리 투휘우 아우투). - 본문은 두 개의 '호티'(*, '왜냐하면')로 구성되어 하나님께서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을 받아들일 만한 이유를 나타낸다. 그 하나님의 증거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세 가지 증거들, 즉 성령과 물과 피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증거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마르튀레켄'(*)은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신 것이 지속적으로 유효함을 나타낸다. ,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에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자신의 아들임을 확증하셨으며(3:16,17; 1:33,34) 예수의 고난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증언하셨다(12:28-30). 이러한 역사적 증언은 성령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증언되고 있으며 두 가지 성례전 가운데 성령의 내증으로 실현되고 있다(Stott, Barker).

 

 

호 피스튜온 에이스 톤 휘온 투 데우 에케이 텐 마르튀리안 엔 헤아우토 호 메 피스튜온 토 데오 프슈스텐 페포이에켄 아우톤 호티 우 페피스튜켄 에이스 텐 마르튀리안 헨 메마르튀레켄 호 데오스 페리 투 휘우 아우투

 

개역개정,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새번역,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그 증언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신 그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아들을'
우리말성경,10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자기 안에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대해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가톨릭성경,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0 Anyone who believes in the Son of God has this testimony in his heart. Anyone who does not believe God has made him out to be a liar, because he has not believed the testimony God has given about his Son.
영어NASB,10 The one who believes in the Son of God has the witness in himself; the one who does not believe God has made Him a liar,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witness that God has borne concerning His Son.
영어MSG,10  Whoever believes in the Son of God inwardly confirms God's testimony. Whoever refuses to believe in effect calls God a liar, refusing to believe God's own testimony regarding his Son.
영어NRSV,10 Those who believe in the Son of God have the testimony in their hearts. Those who do not believe in God have made him a liar by not believing in the testimony that God has given concerning his Son.
헬라어신약Stephanos,10 ο πιστευων εις τον υιον του θεου εχει την μαρτυριαν εν εαυτω ο μη πιστευων τω θεω ψευστην πεποιηκεν αυτον οτι ου πεπιστευκεν εις την μαρτυριαν ην μεμαρτυρηκεν ο θεος περι του υιου αυτου
라틴어Vulgate,10 qui credit in Filio Dei habet testimonium Dei in se qui non credit Filio mendacem facit eum quoniam non credidit in testimonio quod testificatus est Deus de Filio suo
히브리어Modern,10 המאמין בבן האלהים יש לו העדות בנפשו ואשר לא יאמין לאלהים לכזב שמהו יען לא האמין בעדות אשר העיד האלהים על בנו׃


 

성 경: [요일5:10]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세상을 이기는 믿음]

󰃨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9). 그 결과 믿는 자들은 자기 자신 안에 하나님의 증거를 소유하게 된다. 이 증거는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내주하여 증거하시는 내적 증거를 의미한다(8, Brooke, Law, Williams). 이러한 내적 증거는 외적 증거인 '물과 피'와 조화를 이루어 믿는 자들의 믿음을 근원이 됨과 동시에 결과가 된다(Stott).

󰃨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 본문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이란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음을 말한다.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한 인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에 관해 이렇게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증거를 거짓으로 만들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요한은 이러한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기 주장을 극단적으로 확증한다. 한편 본절은 롬1:19,20을 상기시킨다. 우주 만물 속에 하나님의 신성이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으므로 믿지 않는 자들은 도무지 자기의 불신앙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

 

 

카이 하우테 에스틴 헤 마르튀리아 호티 조엔 아이오니오 에도켄 헤민 호 데오스 카이 하우테 헤 조에 엔 토 휘오 아우투 에스틴

 

개역개정,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새번역,11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1 또한 그 증거는 바로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이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NIV,11 And this is the testimony: God has given us eternal life, and this life is in his Son.
영어NASB,11 And the witness is this, that God has given us eternal life, and this life is in His Son.
영어MSG,11  This is the testimony in essence: God gave us eternal life; the life is in his Son.
영어NRSV,11 And this is the testimony: God gave us eternal life, and this life is in his Son.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αυτη εστιν η μαρτυρια οτι ζωην αιωνιον εδωκεν ημιν ο θεος και αυτη η ζωη εν τω υιω αυτου εστιν
라틴어Vulgate,11 et hoc est testimonium quoniam vitam aeternam dedit nobis Deus et haec vita in Filio eius est
히브리어Modern,11 וזאת היא העדות כי חיי עולמים נתן לנו האלהים והחיים האלה בבנו המה׃


 

성 경: [요일5:11]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 '영생'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이 생명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가(1: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안에서 완벽하게 현시된 것이다. 이것은 아들이신 예수와의 관계성 속에서 믿는 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과 유일하시며 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지고의 생활이다(17:3, Smalley). 이러한 영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인간이심을 증거하신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 들일 때 이루어지는 결과이다. 그러기에 이 결과인 영생을 알고 소유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증거가 참되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인간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도켄'(*)은 유일회적인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보정 과거 능동태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를 통해 구속 사역을 행하신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활동의 실제성과 역사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생을 이미 주셨으며, 영생을 주신 사실은 불변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 본문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영생과 아들의 불가 분리적 관계를 나타낸다. 그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한 인간이신 예수 안에 현시되어서 그 아들이 행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 즉 '물과 피'의 증거를 통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곧 생명임에도 불구하고(14:6) 요한이 예수와 생명을 동일시하지 않고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예수께서 성육신하셨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듯하다.

 

 

호 에콘 톤 휘온 에케이 텐 조엔 호 메 에콘 톤 휘온 투 데우 텐 조엔 우크 에케이

 

개역개정,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새번역,12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2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경,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영어NIV,12 He who has the Son has life; he who does not have the Son of God does not have life.
영어NASB,12 He who has the Son has the life; he who does not have the Son of God does not have the life.
영어MSG,12  So, whoever has the Son, has life; whoever rejects the Son, rejects life.
영어NRSV,12 Whoever has the Son has life; whoever does not have the Son of God does not have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 εχων τον υιον εχει την ζωην ο μη εχων τον υιον του θεου την ζωην ουκ εχει
라틴어Vulgate,12 qui habet Filium habet vitam qui non habet Filium Dei vitam non habet
히브리어Modern,12 אשר יש לו הבן יש לו החיים ואשר אין לו בן האלהים אין לו החיים׃


 

성 경: [요일5:12]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 여기서 '있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콘'(*)'에코'(*, '가지다')에서 파생된 현재 분사이다. 요이1:9에서는 같은 뜻의 현재 동사 '에케이'(*, '가지다')'모시다'란 말로 번역된 것으로 보아 본절에서 아들이 있는 자란 현재 아들을 마음 속에 모신 자를 가리킨다. 아들이 생명 자체이며 아들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11; 1:2; 11:25; 14:6) 아들을 모신 자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며 아들의 말씀에 순종하여 높은 수준의 영적, 도덕적 삶을 영위함과 동시에 그러한 삶 속에서 아들의 인격을 닮아가게 된다. 아들은 그리스도인 안에 거주하면서 함께 삶을 영위하며(3:24) 완전하게 하며(4:12) 영원한 삶을 영위케 한다.

󰃨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생명을 주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길 이외의 어떤 길에서도 생명을 찾을 수 없다(14:6; 4:12).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를 마음 속에 모시지 못한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한편, 본절 상반절에서는 '아들'이라하고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점에 주목하여 '하나님의'란 말이 추가된 것에 대해 혹자는 불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Bengel, Plummer) 혹자는 영생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줄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Brooke, Marshall).

 

 

타우타 에그랖사 휘민 히나 에이데테 호티 조엔 에케테 아이오니온 토이스 피스튜우신 에이스 토 오노마 투 휘우 투 데우

 

개역개정,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13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톨릭성경,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어NIV,13 I write these things to you who believe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so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영어NASB,13 These things I have written to you who believe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영어MSG,13  My purpose in writing is simply this: that you who believe in God's Son will know beyond the shadow of a doubt that you have eternal life, the reality and not the illusion.
영어NRSV,13 I write these things to you who believe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so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3 ταυτα εγραψα υμιν τοις πιστευουσιν εις το ονομα του υιου του θεου ινα ειδητε οτι ζωην εχετε αιωνιον και ινα πιστευητε εις το ονομα του υιου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3 haec scripsi vobis ut sciatis quoniam vitam habetis aeternam qui creditis in nomine Filii Dei
히브리어Modern,13 זאת כתבתי אליכם המאמינים בשם בן האלהים למען תדעון שיש לכם חיי עולם ולמען תאמינו בשם בן האלהים׃


 

성 경: [요일5:13]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이것을 쓴 것은. - '이것을'의 헬라어 '타우타'(*)는 문자적으로 '이러한 것들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타우타'가 가리키는 것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1-12절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Schnackenburg). 혹자는 본서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Smalley, William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에 나타난 기록 목적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인 요20:31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타우타'가 다양한 주제를 가리키는 복수로서 1-12절까지 언급된 영생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만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랖사'(*)는 서신체 부정 과거로 비록 요한이 현재 본서를 기록한다 할지라도 본서를 받아보는 수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과거의 행위이기 때문에 단순과거로 기록되어 있다.

󰃨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은 '히나'(*, '위하여')로 시작하는 목적절로서 본절이 본서를 기록한 목적임을 나타낸다. 본절에 나타난 기록 목적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20:31). 즉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영접한 모든 이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함이다. 한편 혹자는 본절이 요한 일서의 본론이고 14-21절은 후대의 삽입이라고 주장한다(Bultmann). 본절이 요한 일서의 전체적 결론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타당성을 가지나 결론적 언급이 꼭 이 편지의 맨 마지막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에 본절은 요한이 자신의 편지를 끝맺기 위한 결론적 언급의 서두로 간주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Johnson).

 

 

카이 하우테 에스틴 헤 파르레시아 헨 에코멘 프로스 아우톤 호티 에안 티 아이토메다 카타 토 델레마 아우투 아쿠에이 헤몬

 

개역개정,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새번역,14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4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갖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4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어NIV,14 This is the confidence we have in approaching God: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
영어NASB,14 And this is the confidence which we have before Him,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
영어MSG,14  And how bold and free we then become in his presence, freely asking according to his will, sure that he's listening.
영어NRSV,14 And this is the boldness we have in him,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αυτη εστιν η παρρησια ην εχομεν προς αυτον οτι εαν τι αιτωμεθα κατα το θελημα αυτου ακουει ημων
라틴어Vulgate,14 et haec est fiducia quam habemus ad eum quia quodcumque petierimus secundum voluntatem eius audit nos
히브리어Modern,14 וזה הוא בטחוננו אליו אשר אם נשאל דבר כפי רצונו ישמענו׃


 

성 경: [요일5:14]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 여기서 '향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생동적인 교제 안에서 실현되는 관계'를 암시하는 전치사이다. 이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생동적이고 영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암시한다(Brooke). 한편 '담대함'의 헬라어 '파르레시아'(*)는 본서에서 네번 사용되었다. 즉 주의 재림과 심판날에 믿는 자들이 갖는 담대함과(2:28 ;4:17),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갖는 담대함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3:21,22). 본절에서 믿는 자들이 기도할 때 갖는 담대함은 기도 응답의 확신에서 비롯된다.

󰃨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 '구하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토메다'(*)는 중간태로서 간구하는 행위 자체가 주어인 간구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기도자의 간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응답자이신 하나님의 계명 즉 그의 뜻에 부합되어야 한다(15:7, Marshall). 이러한 기도는 단순한 요구사항이 아니며 기도자의 생활과 뜻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부합되게 하여 복종하겠다는 고백이다(Johnson). 그럴 때에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된다.

 

 

카이 에안 오이다멘 호티 아쿠에이 헤몬 호 에안 아이토메다 오이다멘 호티 에코멘 타 아이테마타 하 에테카멘 앞 아우투

 

개역개정,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새번역,15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들은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말성경,15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들을 그분으로부터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가톨릭성경,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영어NIV,15 And if we know that he hears us--whatever we ask--we know that we have what we asked of him.
영어NASB,15 And if we know that He hears us in whatever we ask, we know that we have the requests which we have asked from Him.
영어MSG,15  And if we're confident that he's listening, we know that what we've asked for is as good as ours.
영어NRSV,15 And if we know that he hears us in whatever we ask, we know that we have obtained the requests made of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αν οιδαμεν οτι ακουει ημων ο αν αιτωμεθα οιδαμεν οτι εχομεν τα αιτηματα α ητηκαμεν παρ αυτου
라틴어Vulgate,15 et scimus quoniam audit nos quicquid petierimus scimus quoniam habemus petitiones quas postulavimus ab eo
히브리어Modern,15 ומדעתנו כי ישמענו לכל אשר נשאל נדע גם זאת כי נשיג את המשאלות אשר שאלנו ממנו׃


 

성 경: [요일5:15]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 본문은 14절의 반복이다. 14절의 간구와 응답은 구체적 현실성이 강조된 반면에 본절의 경우는 일반적 원리성이 강조된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씀에는 죄악된 인간의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간구는 당연히 제외되며 앞절에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올바른 기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11:42) 믿는 자들의 기도도 들어주신다.

󰃨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구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테카멘'(*)은 직설법 완료형으로서 기도자의 객관적 기도 사실과 그 결과를 강조한다.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진정한 간구는 이미 그 결과를 얻은 것이다. 기도의 가시적인 응답이 미래에 나타날지라도 그 기도는 이미 효력을 발생하였다(Plummer, Brooke, Dodd). 한편 본절은 '안즉...아느니라'(*, 오이다멘...오이다멘)로 되어 있어 지도자가 갖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초래하여 기도자의 확신이 더욱더 확실하게 됨을 시사한다(Stott).

 

 

에안 티스 이데 톤 아델폰 아우투 하마르타논타 하마르티안 메 프로스 다나톤 하이테세이 카이 도세이 아우토 조엔 토이스 하마르타누신 메 프로스 다나톤 에스틴 하마르티안 프로스 다나톤 우 페리 에케이네스 레고 히나 에로테세

 

개역개정,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새번역,16 누구든지 ㉣어떤 교우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아니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은, 죽을 죄는 짓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 죄가 있습니다. 이 죄를 두고 간구하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 ㉣그, '자기의 형제'
우리말성경,16 누구든지 자기의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보거든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죄가 아니라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지은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죄도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죄에 대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NIV,16 If anyone sees his brother commit a sin that does not lead to death, he should pray and God will give him life. I refer to those whose sin does not lead to death. There is a sin that leads to death. I am not saying that he should pray about that.
영어NASB,16 If anyone sees his brother committing a sin not leading to death, he shall ask and God will for him give life to those who commit sin not leading to death. There is a sin leading to death; I do not say that he should make request for this.
영어MSG,16  For instance, if we see a Christian believer sinning (clearly I'm not talking about those who make a practice of sin in a way that is "fatal," leading to eternal death), we ask for God's help and he gladly gives it, gives life to the sinner whose sin is not fatal. There is such a thing as a fatal sin, and I'm not urging you to pray about that.
영어NRSV,16 If you see your brother or sister committing what is not a mortal sin, you will ask, and God will give life to such a one--to those whose sin is not mortal. There is sin that is mortal; I do not say that you should pray about that.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αν τις ιδη τον αδελφον αυτου αμαρτανοντα αμαρτιαν μη προς θανατον αιτησει και δωσει αυτω ζωην τοις αμαρτανουσιν μη προς θανατον εστιν αμαρτια προς θανατον ου περι εκεινης λεγω ινα ερωτηση
라틴어Vulgate,16 qui scit fratrem suum peccare peccatum non ad mortem petet et dabit ei vitam peccantibus non ad mortem est peccatum ad mortem non pro illo dico ut roget
히브리어Modern,16 איש כי יראה את אחיו חוטא חטאת אשר לא למות שאל ישאל בעדו ויתן לו חיים לכל אשר חטאו לא למות הן יש חטא למות על זה לא אמר לשאל בעדו׃


 

성 경: [요일5:16]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본절에 나타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살인이나 간음 혹은 우상 숭배와 같은 특별한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주장한다(Tertullian). 그러나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로 분류한 것을 찾아 볼 수 없기에 이 견해는 적합하지 않다(Stott). (2)혹자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배교나 적그리스도 혹은 거짓 교사들의 죄와 같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부합되지 않는 죄를 가리키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믿는 자들이 유혹에 넘어가 범할 수 있는 일반적인 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ooke, Marshall, Smalley, Johnson, Alford, Clarke). 이 견해는 이제까지 요한이 언급한 문맥과 일치한다. 이 두 번째 견해에 대해 혹자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게서 '생명'을 주시는 것으로 보아 그 형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 반론을 제기한다(Stott). 그러나 이 반론 역시 문맥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즉 지속되는 불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배교를 하도록 하는 가능성을 내포하기에 요한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며 우상을 멀리하라고 경고하고 있으며(18,21) 초대 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배교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6:4-6, 10:26-31). 한편 요한은 앞에서 기도와 응답에 대해서 진술한 바와 같이 본절에서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범죄한 형제를 위한 기도는 굶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직접 제공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행위로(3:17)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기도이다(Johnson). 이러한 중재 기도를 통해서 범죄한 형제는 죄의 고백의 필요성과 서로의 용서의 필요성을 확인하며 행하게 된다(20: 23). 이러한 중재 기도의 권면과는 달리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 즉 배교의 죄를 범한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금하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는다.

 

 

파사 아디키아 하마르티아 에스틴 카이 에스틴 하마르티아 우 프로스 다나톤

 

개역개정,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새번역,17 불의한 것은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7 불의는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영어NIV,17 All wrongdoing is sin, and there is sin that does not lead to death.
영어NASB,17 All unrighteousness is sin, and there is a sin not leading to death.
영어MSG,17  Everything we do wrong is sin, but not all sin is fatal.
영어NRSV,17 All wrongdoing is sin, but there is sin that is not mortal.
헬라어신약Stephanos,17 πασα αδικια αμαρτια εστιν και εστιν αμαρτια ου προς θανατον
라틴어Vulgate,17 omnis iniquitas peccatum est et est peccatum non ad mortem
히브리어Modern,17 כל מעשה שלא כמשפט חטא היא ויש חטא שלא למות׃


 

성 경: [요일5:17]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모든 불의가 죄로되. - 여기서 '불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디키아'(*)'옳지 못한 행실'을 의미한다. 요한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의 문제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본문을 진술한 것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인간적으로 구분하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죄들의 경중을 마음대로 구분함으로써 '죄 자체의 심각성'이 축소되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오이다멘 호티 파스 호 게겐네메노스 에크 투 데우 우크 하마르타네이 알 호 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 테레이 아우톤 카이 호 포네로스 우크 핲테타이 아우투

 

개역개정,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새번역,18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우리말성경,18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신 분께서 그를 지키시므로 악한 자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가톨릭성경,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영어NIV,18 We know that anyone born of God does not continue to sin; the one who was born of God keeps him safe, and the evil one cannot harm him.
영어NASB,18 We know that no one who is born of God sins; but He who was born of God keeps him and the evil one does not touch him.
영어MSG,18  We know that none of the God-begotten makes a practice of sin--fatal sin. The God-begotten are also the God-protected. The Evil One can't lay a hand on them.
영어NRSV,18 We know that those who are born of God do not sin, but the one who was born of God protects them, and the evil one does not touch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8 οιδαμεν οτι πας ο γεγεννημενος εκ του θεου ουχ αμαρτανει αλλ ο γεννηθεις εκ του θεου τηρει εαυτον και ο πονηρος ουχ απτετα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18 scimus quoniam omnis qui natus est ex Deo non peccat sed generatio Dei conservat eum et malignus non tangit eum
히브리어Modern,18 ידענו כי כל הנולד מאת האלהים לא יחטא כי אשר ילד מאת האלהים ישמר את נפשו והרע לא יגע בו׃


 

성 경: [요일5:18]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하나님게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앞절과 관련시켜서 믿는 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Calvin). (2)혹자는 '범죄치 아니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하마르타네이'(*)가 현재에도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내는 현재시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믿는 자는 계속 반복되는 범죄나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Stott).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우리가 아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멘'(*)18-20절에 걸쳐 세 번 사용되고 있다. '오이다멘'은 지식으리 활동 상황을 나타내는 '기노스코'(*, '알다')와 달리 주로 지식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절에서 영적 지식의 확실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본절의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호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1)상반절의 '난자'(*, 게겐네메노스)는 완료 분사형인 반면에 본문의 '나신 자'(*, 겐네데이스)는 부정 과거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이며, (2)'나신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만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개념은 신약성경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17:12; 벧전1:5; 1:24). 요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악과 사단의 영향력에서 보전하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17:12,15).

 

 

오이다멘 호티 에크 투 데우 에스멘 카이 호 코스모스 홀로스 엔 토 포네로 케이타이

 

개역개정,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새번역,19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9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나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영어NIV,19 We know that we are children of God, and that the whole world is under the control of the evil one.
영어NASB,19 We know that we are of God, and the whole world lies in the power of the evil one.
영어MSG,19  We know that we are held firm by God; it's only the people of the world who continue in the grip of the Evil One.
영어NRSV,19 We know that we are God's children, and that the whole world lies under the power of the evil one.
헬라어신약Stephanos,19 οιδαμεν οτι εκ του θεου εσμεν και ο κοσμος ολος εν τω πονηρω κειται
라틴어Vulgate,19 scimus quoniam ex Deo sumus et mundus totus in maligno positus est
히브리어Modern,19 ידענו כי מאלהים אנחנו וכל העולם ברע הוא׃


 

성 경: [요일5:19]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본절은 하나님과 세상을 날카롭게 구분한다. 여기서의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단의 세력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비록 사단의 세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사단이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보호하신다.

 

 

오이다멘 데 호티 호 휘오스 투 데우 헤케이 카이 데도켄 헤민 디아노이안 히나 기노스코멘 톤 알레디논 카이 에스멘 엔 토 알레디노 엔 토 휘오 아우투 예수 크리스토 후토스 에스틴 호 알레디노스 데오스 카이 조에 아이오니오스

 

개역개정,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새번역,20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참되신 분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리말성경,20 또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셔서 참되신 분을 알게 하시고 또 우리가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가톨릭성경,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영어NIV,20 We know also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so that we may know him who is true. And we are in him who is true--even in his Son Jesus Christ. He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영어NASB,20 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in order that we might know Him who is true, and we are in Him who is true, in His Son Jesus Christ. This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영어MSG,20  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came so we could recognize and understand the truth of God--what a gift!--and we are living in the Truth itself, in God's Son, Jesus Christ. This Jesus is both True God and Real Life.
영어NRSV,20 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so that we may know him who is true; and we are in him who is true, in his Son Jesus Christ. He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20 οιδαμεν δε οτι ο υιος του θεου ηκει και δεδωκεν ημιν διανοιαν ινα γινωσκωμεν τον αληθινον και εσμεν εν τω αληθινω εν τω υιω αυτου ιησου χριστω ουτος εστιν ο αληθινος θεος και η ζωη αιωνιος
라틴어Vulgate,20 et scimus quoniam Filius Dei venit et dedit nobis sensum ut cognoscamus verum Deum et simus in vero Filio eius hic est verus Deus et vita aeterna
히브리어Modern,20 וידענו כי בא בן אלהים ויתן לנו בינה לדעת את האמתי ובאמתי אנחנו בבנו ישוע המשיח זה הוא האל האמתי וחיי העולם׃


 

성 경: [요일5:20]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키며(1:1,2) '참된 자'는 하나님을 지칭한다(Smalley, Stott, Brooke).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로서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으며(14:6)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대속 사역을 이루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참된 자되신 하나님의 실재를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 본문은 본절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실재를 계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계시하시는 중보자가 되신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은 참된 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예수께서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17:21).

󰃨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 ''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는 문자적으로 '이 사람'을 의미한다. '후토스'가 가리키는 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Stott, Smalley, Brooke). (2)혹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uther, Calvin, Marshall, Hass, Schnackenburg, Brow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녀서 어느 하나를 지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토스'는 문맥상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낫다(Johnson).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계시하는 참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여 하나님을 부정한 것에 대한 요한의 결론적인 공격이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영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본서 서두에 언급된 것으로(1:1,2; 11:25; 14:6)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곧 영생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수신자들이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을 재차 강조하기 위한 요한의 결론적 진술이다(Smalley).

 

 

 

테크니아 퓔랔사테 헤아우타 아포 톤 에이돌론

 

개역개정,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새번역,21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우상을 멀리하십시오. ㉤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절 끝에 '아멘'이 있음
우리말성경,21 자녀들이여, 우상들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지키십시오. 
가톨릭성경,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영어NIV,21 Dear children, keep yourselves from idols.
영어NASB,21 Little children, guard yourselves from idols.
영어MSG,21  Dear children, be on guard against all clever facsimiles.
영어NRSV,21 Little children, keep yourselves from idols.
헬라어신약Stephanos,21 τεκνια φυλαξατε εαυτους απο των ειδωλων αμην
라틴어Vulgate,21 (없음)
히브리어Modern,21 בני השמרו לכם מן האלילים אמן׃

 

성 경: [요일5:21]

주제1: [성도의 확신]

주제2: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 - 우상에서 멀리하라는 저자의 권고는 요한 서신 전체의 논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우상 숭배란 용어 자체가 본서에서는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 자체가 당시의 이단 종파인 영지주의에 대하여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음을 볼 때 본절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는 영지주의 사상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우상에서 멀리하라는 말은 영지주의의 위험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믿으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요한은 이러한 파격적인 결론을 통해서 수신자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