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송은「언약의 주 하나님」이란 제목의 찬송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사 이삭을 주셨고,「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4백년 후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하신 언약도 이루셨다. 천국 언약, 지금은 눈에 안 보이지만, 이 언약도 반드시 이루신다는「신구약 요약 찬송」이다.
한상동(韓尙東, 1901-1976) 목사는 1901년 7월 30일 염전을 하는 한치명 씨의 넷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가 네 살 때 큰 해일을 만나 염전이 망가지는 바람에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아버지는 여섯 식구를 거느리고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살게 되자, 6살 된 상동을 다대포에 살고 있는 4촌 한금출의 양자로 보냈다. 3년간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0년 졸업한 그는 계속하여 다대실용학교도 졸업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더 큰 꿈을 키우고 싶어 양부모 몰래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
그러나 경찰에 붙잡혀 다시 고향으로 쫓겨 왔다. 이후 그는 독학을 하였다. 1918년 한상동은 다대실용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1921년 결혼했다. 그 해 가을 어느 날 아침 한상동은 핏덩이를 토해 내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결핵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당시 결핵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실의의 나날을 보다가 1924년 봄 전도인 박창근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25살 때 세례를 받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인인 김차숙 씨도 주께로 인도하였으나 믿음생활 또한 순탄치 못했다.
당시 다대포 인구는 800여명인데, 이중 한씨가 250여명이었다. ‘예수를 믿으면 집도 버리고 부모도 버린다’는 문중의 주장에 따라 그는 파양(罷養) 선고를 받고 문중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선교사의 소개로 호주선교사가 세운 진주강림학교에 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거기서 신앙을 키우던 한상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껴 서울 피어선 성경학교를 마치고, 1937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여 부산초량교회의 조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할 때부터 한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1939년부터 경남지방을 중심으로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운동을 하다가 1940년 경남경찰부 유치장에 구금되었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는 옥중 수기에 이렇게 썼다.
"오, 주여! 이 몸을 드리나이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불구가 되어도 주님께 영광만 된다면 이로써 만족하겠나이다. 전지전능하신 뜻대로 하옵소서. 아멘"
조국의 해방과 함께 형무소에서 출옥된 그는 1946년 주남선 목사 등과 고려신학교를 설립 초대 학장으로 취임한 후 1974년 명예학장으로 추대되었다.
작곡자는 정희치(鄭喜治, 1941- ) 교수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다. 이태리 산타체리아 국립음악원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작곡발표회 3회 개최, 합창 지휘 및 위촉작업(성악, 기악) 다수. 작곡, 음협 대구지부 부지부장, 대구예술가곡회 회장 역임, 환경부 장관상 수상. 경북대학교 음대 교수로 정년 은퇴하였다. 대구장로합창단 지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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