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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아닥 / 아닥사스다 / 아달랴 / 아달리야1 / 아달리야2

아닥 Athach

유다 남부의 한 성읍으로 다윗이 아말렉을 쳐서 빼앗은 전리품의 일부를 이곳으로 보냈다(삼상30:30). '에델' 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수15:42;19:7).

아닥사스다 Artaxerxes

1.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이며,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B. C. 458) 유대인의 성전을 재건케 한 왕이다(스7:1;8:1),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 '마크로케이르' 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잠시 성전 보수를 중지시켰다가(스4:7-23), 13년 후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을 다시 재건케 했다(2:1-7;13:6).
2. 아닥사스다 2세(B. C. 404359 재위). 다리오 2세의 아들이자 아닥사스다 1세의 손자이며, 70인역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수산에 궁전을 세웠는데 에스더 1:5-6에 기록된 궁전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달랴 Athaliah

1. 이스라엘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자 오므리의 손녀이며, 유다왕 여호람의 아내이자 아하시야의 어머니이다(왕하 8:18,26. 사마리아에서 자란 그녀는 바알 숭배자로 남왕국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8:26-27). 결혼한 지 8년 만 남편이 죽어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1년 정도 통치하다가 예후의 반란으로 살해되었다(왕하9:27;대하22:7-9). 아들이 죽자 그녀는 다른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손자들도 모두 살해했다. 그러나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였던 여호세바가 어린 왕자 요아스를 미리 피신시켜 요아스만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아달라는 직접 왕위에 올라 유다 유일의 여왕으로 6년간 재임하였다(대하21:6;22:12). 그러다가 치세 7년만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왕자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자 그를 반역자로 몰다가 오히려 백부장들에게 끌려 나가 왕궁 근처에서 죽임을 당했다(왕하11:15-21;대하23:1421). 그 결과 아달랴가 적극 지원하던 바알 숭배는 중단되었고, 요아스 왕의 즉위로바알의 당과 우상들이 훼파되었다(왕하 11:17-18;대하23:16-17). 결국 그녀는 아하시야를 아합의 길로 이끈사악한 어머니로 기록되었다(대하22:3. 참고. 24:7).
2.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던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 여로함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이다(대상8:26).

아달리야1 Adalia

아하수에로왕의 신하 하만의 열 아들 가운데 다섯째 아들이다(에9:8).

아달리아2 Athaliah

엘람 자손여사야의 아버지(스8:7). 여사야는 에스라와 함께 포로에서 귀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