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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아달월 / 아담1 / 아담2

아달월 the month Adar

바벨론 달력의 달(月) 이름으로,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에서도 사용되었다. 유대력의 열두번째 달로 오늘날의태양력 2-3월에 해당되며(스6:15), 아달월 1415일은 부림절로 지켜졌다(에9:15-17). 윤년에는 아달월 다음달에 윤달을 두었으며 '와 아다르' 즉 '제2아달월' 이라불렀다. 그리고 이 달에 있는 부림절은 두번 지켰는데첫째달에는 간소하게, 그리고 '제2아달월' 에는 성대하게 지켰다.

아담1 Adam

1. 구약성경에서. 최초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여섯째날에 지면의 흙(히. 아다마, PS)으로 만들어져(창2:7) 독특하게 그의 콧구멍에 생기(히. 니쉐마트 하이임, nnoun)를 불어넣음으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창1:27). 이 결과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도 인간 창조에 관한 신화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창조 이야기와 비교해 볼 때 조잡하고 다신교적이다.
(1) 어원. 아담은 사람의 고유한 이름에 덧붙여 '인류' 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런 의미로 구약성경에서 약 500번 나타난다. 하지만 명사가 정관사와함께 쓰일 때(히. 하아담, INT) 그것은 어떤 사람의이름으로보다는 최초로 창조된 남자인 아담 자체를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번역된다. '아담' 이라는 단어는우가릿어에서 역시 '인류' 라는 의미로 나타난다. 창세기 1-2장의 내용에서 그 기사는 3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담으로 사용되었다. 말하자면, 2:19에서는 일반적인 '사람'을 뜻했고, 2:5에서는 가장 자연적인 의미를 뜻하는 '어떤 사람'을 나타냈다. 그리고2:20에 와서야 원문에 따르면 고유한 이름에 대한 사용이 처음으로 허용되었다.
(2) 아담의 처음 상태. 아담은 동물들과는 구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어 '네페쉬' (巳)와 ‘루아흐' (17)라는 형용사구가 그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동물들의 경우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모든 동물들을 다스릴 주권이 주어졌으며,하나님께서 그에게만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에덴에동산을 만드시고(창2:8-14), 그것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다.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히브리어 '아바드'는 대개 노동(예. 출20:9)에 대해 사용된다. 그래서 아담은 게을러지지 않았다. 그의 식물은 분명히 나무에서 딴 열매들(창2:9,16, 관목에서 얻은 장과(漿果)와 견과(堅果)들, 그리고 초본(草本)에서 취한 곡초류들(창2:5)이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은 모든 동물들과 새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와 그에게 그것들의 이름을 짓게했다. 추측컨대, 그것은 그 스스로 동물들의 특성들과잠재력을 익히는 과정이었을 것이다(창2:19-20).
(3) 타락.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창2:18)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돕게 하려고 여자를 만드셨다(2:22). 하지만 여자는 뱀의 꼬임으로 하나님이 만지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 열매를 먹도록 아담을 설득시켰다(3:1-7), 그 결과 그와여자는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3:23-24). 이 시간까지는 아담이 하나님과 직접 함께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아담과 그 여자가 그들의 벌거벗음을 깨달았을때 무화과 잎을 취해서 치마를 만들기 위해 그것들을꿰맸다(창3:7), 아담은 동산에서의 추방과 그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통의 대가와 얼굴에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 미래의 토지에 예속되는 형벌을 받았다. 이제 그가 죽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 땅(히, ‘아다마’,구)은 저주를 받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되었다.그는 여전히 농부였으나 이제 그의 노동은 전보다 더욱 힘들었다(창3:17-19,23), 하나님은 그 두 사람에게 그들이 이제 엉켜진 초목이나 차가운 기후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가죽 옷을 제공해 주셨다(창3:21). 아담은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을낳았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아벨을 대신하고(창4:25) 자손에게 믿음의 계보를 전수하기 위해 또 다른 아들인 셋을 낳았다. 셋이 태어났을 때 아담은 130세(70인역에는 230세)였고, 그는 이 일 후에800년(70인역에는 700년)을 더 살았다. 이로써 아담은모두 930세를 향수했다(창5:2-5).
2. 신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서 아담은 바울 서신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때때로 복음서에서도 언급된다. 누가는 아담을 모든 인류의 혈통 관계를 가진 말로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족보(눅3:38)의 첫머리에 놓았다(마1:1과는 대조됨). 유다서 14절은 또한 아담을 인류의 기원으로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그 후의 그들의 결합은 하나님께서 '한몸'으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계획하신 사실이 분명함을 증명한다(마19:46;막10:6-9). 이것은 마가복음에서 이혼은 금지된다는 것을 뜻한다. 단 마태복음 19:9은 '음행' 은예외라고 덧붙이고 있다.
바울서신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합은 성(性) 관계에대한 가르침의 기초로 언급된다. 창세기 2:24 다시인용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6:16에서의 성관계는 도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며, 항상 결혼을 통해서 두 남녀는 결합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베소서 5:31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대해 논의하였다.아담과 하와의 창조 순서와 아담에게 부여된 하나님의권위에 대한 암시가 있는데 고린도전서 11:7-9에서 바울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었음을 말하고 있다(11절이하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은 그들의 머리(문자적으로 그들의 남편을 뜻함. 참고. 11:3)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다”(고전11:7-9). 이와 유사하게 디모데전서2:12-14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창조 순서를 볼 때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었으므로 교회 안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끌려갔던 사람이 하였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바울 서신에서 아담이라는 인물을 주요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시키기 위함이다.이것은 공관복음에서도 암시되었다. 마가의 예수 시험 기사(막1:13)는 예수가 유혹을 이기고 들짐승과 함께 생활하고 천사들에 의해 수종받음에 의해서 낙원에서의 인간의 상태를 회복시켰다는 생각을 반영하고있다. 누가복음 3:38은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누가복음 1:35에서 예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의미상에서 비유되는 긍정적인 사용이다. 그러나바울에게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아담의 닮은 점과 닮지 않은 점 중에 닮지 않은 점이 더 많이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장과 로마서 5:12-21의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살펴볼 때 명백히 드러난다. 이런생각은 빌립보서 2:6-11 에서 사용된 전통적인 자료에나타난 세 가지 가능한 말에서도 사실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담에 대한 분명한 언급도 없고 창세기에 대한 어떤 명백한 인용도 없다. 여기에 ‘순종’,'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함' 같은 어떤 개념들은 아담과의 대조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아담과 그리스도간의 대조를 두번 언급한다. 먼저 21-23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이받아들인 예수의 부활이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죽는 것 같이(현재 시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을 것이라는 보증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그것을 사용한다. 아담이 죽었을 때 모든 사람이 죽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모든 사람은 그처럼 죽는다.'아담 안에서' 라는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에 대한 유비로 형성되지만 후자가 어떻게 형성될 수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될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또다시 45-49절에서 동일한 대조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지금 우리 모든 사람이 물려받은 아담의 육체적 본질(육신)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몸 사이에 대조를 이룬다. 영적 은사들로 인해 자만에 빠져 있는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짧은 세월을 살며 여전히 죽기로 작정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할필요가 있었다(26절). 그들에게 바울은 성경을 인용하여(창2:7) 사람들은 육체로 지음을 받았고(고전15:45,마지막 아담은 영적임) 영적인 사람이 먼저 온 것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이 먼저요, 그 다음이 영적인 사람(46절)인 것을 증명한다고 언급한다. 사람들은 '혈과 육'의 상태가 아니라 변형된 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참여하게 될 것이다(50절). 바울이 '마지막 아담' (45절)이라는 말과 '아담', '사람' 을 바꿔 가면서 쓰는 것은 아담은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마지막 요지는 바울이 왜 그렇게 암시적으로 아담에 대해 언급하는지를 설명하도록 도와준다(롬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죄의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아담과 그의 순종하심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의 은혜로운 선물과 '생명으로 왕 노릇함' (17절)을 받게 하는 구원의 절차에 이르게 하신 그리스도를 대조한다. 19절은 좋은 모범이다. 그러나 시제를 주목해서 보면 많은 사람의 의인됨은 시제가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죄인됨도 또한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 '되어짐'은 '됨' 보다 작은 의미이다. 12절의 죽음은 아담의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들에게 반사적으로 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지은 사람의 죄 안에서(또는 때문에) 기인되며 그들 자신의 권리로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죄를 짓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단결력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지음에 참여하고 또 그것을 묵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구절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또한 개인의 범죄 행위 혹은 개인의 총체적 행위 이상의 강력한 죄가 있다. 이것은 13절에서 유사인격 용어로 언급되어 있다. 13절에서 바울은 아담과 같이 범죄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불순종한 문제를 다룬다. 그들이 범한죄는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 위에서 계속적으로 왕 노릇했다. 율법이 왔을 때도 그러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 이다. 이 예표의 발전은 그것이 매우 크게 상반됨이나 대조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15-19절). 예를 들자면, 아담 이야기에 대한 부정적 용례가 있다. 더욱이 아담의 죄와 그 여파는 모든 사람을 내버려진 정죄와 죽음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하여 (롬1:24,26,28),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한다. 거기에는 '더욱' 을 반복하고 있다(롬5:15,17).

아담2 Adam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사르단 성읍 근처에 있는 도시로서(수 3:16; 눅3:38;고전15:22), 여리고 북쪽 25km의 요단과 얍복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가까운 지금의 '텔 에드-다미예' 와 동일시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솔하에 요단 강을 건널 때 이곳까지 물이 끊겨 마른 강 바닥을 건너는 기적이 일어났다(수3: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