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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아벳느고 / 아볼로 / 아볼로니아 / 아볼루온 / 아브넬

아벳느고 Abednego 

다니엘의 세 친구들 가운데 하나이며, 유대 포로기에활동했던 사람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성경에서 늘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단1:7;2:49;3:12-30), 아벳느고의 원래 이름은 '아사랴' 이며, 아벳느고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환관장으로부터 받은 바벨론식 이름(1:7)이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왕의 식탁에 제공된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물과 채식만을 먹음으로써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순결을 지켰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모든 학문적 지식과 지혜를 얻었다(1:8-17). 후에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몽하여 왕을 기쁘게 함으로 인하여 아벳느고를 비롯한 친구들까지 다니엘의 추천으로 바벨론 도(道)의 일을 다스리게 되였다(2:49). 그는 친구들과 함께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여 활활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보호되었고, 이 사건으로 온 천하에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다(3:12-30).

아볼로 Apollos

초기 기독교회의 영향력 있는 한 신도로 알렉산드리아 출생의유대인이었다. 그는 정력적이고 변론에 능했으며 구약에도 정통하였다. 요한의 세례밖에는 알지 못하였으나(행18:2425), 에베소에 도착해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18:26),복음의 진수를 정확히 깨달은 아볼로는 성도들의 격려를 받으며 아가야(고린도)로 전도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그는 예수가 구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임을유대인들에게 증거하였다(18:27-28). 고린도전서 1:12에는 아볼로가 네 분파로 분열된 고린도 교회의 한 파로부터 섬김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분당을 책망하면서 자신은 심은 자요, 아볼로는 물 주는 자에 비유하며 아볼로가 자신의 동역자임을 밝혀 주었다(고전3:6). 후에 바울은 디도에게 아볼로에 관하여 말하면서 아볼로를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청했으나(딛3:13) 당시 바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밝혀지지 않았다. 제롬은 아볼로가 에베소 남쪽 그레데 섬에 체류한 후 고린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주교가되었다고는 하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루터는 아볼로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볼로니아 Apollonia

마게도냐의 한 성읍으로, 로마에서 에그나티아로가는 가도에 접하여 있고, 데살로니가 동쪽 60km, 암비볼리 남서쪽 46km 지점에 있으며, 볼베 호수의 남쪽에 위치했다. 바울과 실라는 제 2차 전도여행 중 암비볼리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에 이 도시에 들렀다(행17:1). 현재의 지명은 '폴리노' 이다.

아볼루온 Apollyon

'무저갱의 사자', 곧 사탄을 가리키는 말로 히브리식 이름은 '아바돈' (계9:11)이다. 요한계시록 9장에 의하면다섯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무저갱의 구멍이 열리며 그곳으로부터 연기가 나오고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로 나와 땅에 있는 전갈과 권세를 받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을 해치는데, 이 황충들의 임금이 바로 아볼루온이다9:1-11),

아브넬 Abner 

사울 왕의 아버지인 기스와 형제인 넬의 아들로 사울과는 사촌 관계이며, 사울 통치 때 이스라엘의 군사령관이었다(삼상14:50),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을 지휘했고,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사울 왕에게 알현시켰다(17:55-58). 사울이 다윗을 심하게 박해하여 다윗을 추적할 때 아브넬이 수행원으로 호위했고, 다윗과아비새가 왕의 창과 물통을 가져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사울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다윗의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26:5-16), 사울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마하나임에 수도를 정했다. 그러나 유다지파는 다윗을 지지하였으며, 이로 인해 사울 가문과다윗 가문간에 기브온 전투가 벌어졌다. 아브넬은 기브온 못가에서 요압과 대치하고 양군에서 각각 열두 장수를 뽑아 결판짓자고 제의하였으나 격전 끝에 크게 패하였다. 요압의 형제인 아사헬이 추격해 갔는데 아브넬은 자기 방어를 위해 아사헬을 죽였다(삼하2:12-32).
그 후 이스보셋 집정 2년에 아브넬과 이스보셋은 사울의 첩을 놓고 크게 다투었다. 아브넬이 왕의 후궁인리스바를 통간한 것을 이스보셋이 추궁하자 아브넬은왕을 크게 비난하고, 다윗 가문으로 귀순하기로 선언하였다(3:7-10). 아브넬이 다윗과의 협상을 마치고 돌아간직후, 요압은 이 소식을 듣고 왕께 나아가 아브넬이 온것은 단지 정탐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 후, 아브넬을 헤브론으로 불러내어 아비새의 묵인하에 살해해 버렸다(3:22-27), 성경은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이유는 아브넬을 정탐꾼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라고 말하고 있다(3:30), 이비보를 들은 다윗은 요압과 그의 가문을 저주하고, 아브넬에 대해 공적인 장례를 베풀도록 하였으며, 깊은애도의 마음으로 금식하고 애가까지 지었다(3: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