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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아하스배 / 아하시야 / 아하와 / 아하헬 / 아합

아하스배 Ahasbai 

마아가사람으로서 다윗의 30용사 가운데 하나인 엘리벨렛의아버지이다(삼하23:34).

아하시야 Ahaziah

1. 북 이스라엘의 8대 왕으로, B. C. 850-849년까지 2년간 통치하였다.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바알 숭배자였다. 열왕기 기자는 그가 여로보암과 아합의 잘못을 그대로 따랐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기록하였다(왕상22:52-53), 그는통치 기간에 여호사밧 왕과 함께 에시온게벨에서 배를지어 오빌로 보내려 하였으나 파선하고 말았다(왕상22:48;대하20:35-37), 또 부친 아합 왕이 죽고 나자 모압이 이스라엘에 반란을 일으켜 조공 바치는 것을 거부했다(왕하1:1;3:45), 아하시야는 궁전의 다락 난간에서떨어져 심한 부상을 입고서 블레셋 땅에 사람을 보내어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붑' (Baal-zebub)에게 신탁을구하게 했다(왕하1:2). 이 신은 시리아의 생명의 신으로 알려졌다. 아하시야의 사자를 길에서 만난 엘리야는 왕의 사망을 예언하면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책망했다(왕하1:36. 결국 아하시야는 그 예언대로 죽었으며, 아들이없으므로 그의 동생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했다.
2. 남 유다의 6대 왕으로 유다 왕 여호람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인 아달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22세에 즉위하여 1년 동안을 다스렸다(왕하8:24-26; 대하22:1). 아합의 아들이자 외삼촌인 요람 왕과 함께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운 그는 요람의 부상으로 인해 이스라엘로 문병갔다가 요람을 타도하려는 예후에게 살해되었다(왕하8:28-29;9:21-29), '아사라' (대하22:6)로도 기록되어 있다.

아하와 Ahava

고대 바벨론 서북쪽에 있던 한 성읍 또는 강, 운하의 이름이다. 바벨론포로에서 풀려난 에스라와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이 강에서 3일간 장막을 쳤으며, 금식을 선포하고 여정의 평안을 구하였다(스8:15,31).

아하헬 Aharhel

유다 지파 사람 하룸의 아들이다(대상4:8).

아합 Ahab

1.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으로 B. C. 875-854년경까지 재위하였다.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혼인하여 왕비로 삼았다. 아합은 또한 이세벨을 위해 바알 신당을 건립하고 자신도 바알 숭배자가되었다(왕상16:28-31). 자신의 딸 아달랴를 유다 왕 여호사동맹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왕하8:18;대하18:1). 아합은 종교적광신자였던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전이스라엘이 바알숭배에 빠지게 했다. 이때 기승을 부리던 바알 선지자들은 갈멜 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하다가 기존 강에서모두 죽임을 당하였다(왕상18:16-40;19:1). 아합은 또한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했던 나봇을 죽이고 자신의 궁전에 인접해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엘리야는 아합의 이러한 죄를 책망하였으며 그의 왕조의 멸망을 예언하였다(왕상21:20-24; 왕하9:30;10:17).갈멜 산의 대결 이후 아람 왕 벤하닷 1세가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다(왕상20:1).아합은 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으나 자만에 빠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사로잡은 벤하닷을 관대히대해 주며 구영토 회복을 조건으로 화친 조약을 맺었다(왕상20:31-34), 그 후 아합은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명하여 길르앗 라못으로 진격했다. 이곳은 동편의 요충지로서 3년 전 벤하닷이 아합에게 돌려 주기로 약속했던 땅이었다. 아합은 선지자 미가야의 경고를 무시한 채 전쟁에 출전했다가 빗나간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죽었으며(왕상22:5-36), 그 시체는 사마리아 성에 장사되었다.
2. 골라야의 아들로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였으며, 예레미야는 그의 죽음을 예언하였다(렘29: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