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시모 Onesimus
골로새 교회의 교인이었던 빌레몬의 종으로, 주인의 물건을 훔쳐 로마로 도망했다가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신자가 된 사람이다(몬10절). 오네시모와 바울은 서로 아주 친밀해져서 부자간의 관계처럼 되었고, 바울은 그를 돌려 보내면서 그의 '심복'을 보낸다고 말했다(12절). 특히 오네시모는 원어로 '유익하다'는 뜻인데, 바울은 오네시모가 전에는 주인에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유익한 종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11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유익하고 신실하게 봉사하였으며, 또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를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두기고와 함께 동행하기도 했다(골4:7-9).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 줄 것과 자기에게 돌려 보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한편 딤후 1:1618의 오네시보로와 오네시모를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오네시보로 Onesiphorus
에베소 출신의 그리스도인으로, 바울과 교회에 대한 충성과 봉사로 인해 칭찬받았다(딤후1:16-18), 로마에 있을 때에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찾아 내어 보살펴 주었으며, 에베소에서도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봉사를 하였다.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집에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길 기도하고 있으며, 디모데에게는 그 가족에게 문안하도록 요청하였다(4:19).
오노 Ono
오노는 베냐민 지파의 세멧이 세운 성읍으로(대상8:12), 바벨론 포로 귀환 후 베냐민 자손이 거하였다(스2:33;느7:37;11:35). 느헤미야의적 산발랏과 게셈은 이 부근의 평지 한 촌에서 만나자고 느헤미야에게 요청해 왔다(6:2). 욥바의 남동쪽 약 11km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케프르 안나'와 동일시된다.
오늘 this day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하루를 포함하는 인간 활동의 기간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오늘의 참된 의미는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들에게 보여준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연결된다.
즉 오늘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결단의 때이다(14:1;26:17;30:15).
신약에서 '오늘'은 일상적인 것을 뜻하기도 하미, 결정적인 날에 대한 징조의 날을 뜻하기도 한다(마27:19), 신자들은 오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6:11) 오늘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30절). '오늘 이 밤'이라는 표현은(막 14:30) 하루가 저녁으로 끝난다기보다는 오히려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말씀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있는 사람에 관한 것으로 현재 상태와는 대조되는 가까운 장래에 관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다 come
이 단어는 아주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동사이다. '이곳이나 이때를 향해 움직이는 것', '시간적·공간적으로 가까이 닥치는 것', '비·눈 등이 내리는 것’, ‘잠·아픔 등이 몸에 닥치는 것', '계절이나 기한이 되는 것', ‘유래하다’, ‘어떤 일이나 사태가 닥치다’, ‘전등·불 · 가스 등이 켜지다', '어떤 곳이나 정도에 미치다', '어떤 소식이 전해지다', '개념이나 관념이 떠오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 이외에도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다. 구약의 경우 '오다' 라는 동사는 자기 백성에게 오시는 분으로서의 여호와와 관련되어 쓰이며(신33:2;합3:3), 약속 · 성취 주제와 결부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은 땅끝에서 자기 백성을 이끌고 오는 강한 용사처럼 오시고(사 43:5-6, 구원과 심판을 갖고 오신다(63:1). 이 단어는 또한 선지자들에 의한 위협과 공표 선언에 나타나며 (렘 46:22;49:32), 기도하고 희생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동료들과 함께 성소에 오는 사람에 대해 사용된다(시86:9).
신약의 경우에도 공간적인 의미 이외에 제의적인 의미로 하나님, 그의 말씀, 천사들, 구원의 날, 하나님의 집에 오는 것 등을 뜻하며, 특별히 예수의 오심에 대한 용법으로 쓰인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오셨으며(막1:38), 죄인들을 회개시키고(2:17) 생명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오셨으며(마10:34-35), 그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막 10:45),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장차 오실 분으로 대망하였다. 그분은 구원의 대를 시작하시며, 그에 앞서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다(마11:14;17:10).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바로 오실 그분인지 아닌지를 문고(11:3), 사람들은 예수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라고 환호한나(21)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위해기도해야 하는데 (6,10), 그 나라는 권능 가운데 재림과함께 올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약한 농부들의 비유 (21:40), 무화과 나무의 비유(눅 13:6-7), 달란트 비유(마25:19)의 말씀은 심판 중에 오시는 하나님에 대해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의보내심에 근거하며(요8:42),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10:10),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12:47), 아버지의 이름으로 온다(5:43), 그리스도 이전에 온 자들은 도둑이요강도이며(10:8), 세례 요한은 세례로써 그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를 오실 분으로 인정한다(1:15).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도마와 다른 사람들에게 오셨고(20:19.26), 다시 오시게 된다(21:22-23). 요한일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요일4:2)과 물과 피로 오심에5:6 대해 언급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장차 오실 분이시며, 교회는 그의 오심을 위해 존재하고 대망한다(계1:4.8;22:17),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도둑처럼 오실 것이고, 그의 오심에는 심판이 따를 것이다(1:7:6:17;16:15).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엡2:17; 딤전1:15) 뿐만 아니라 계명(롬7:9), 믿음(갈3:23) 등에 '오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오도록 초대하였고(요7:37), 여기에 응답하는 자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6:35). 예수는 오는자들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또한 탕자의 비유에서 오는 것은 길을 잃어버리고 소외된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눅15: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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