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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구설 / 구속(하다)1 / 구속하다2

구설(tongues)

시비하는 말이나 비방하는 말을 뜻한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주께서는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해 주신다(시31:20).

 

구속/-하다1(redemption)

죄된 인간 존재들인 그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자비롭고 희생이 큰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과 신약에서 사용된 하나의 은유적 표현이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대가를 치르고 얻는 석방이나 자유, 값비싼 방법으로 구출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경우, 그가 어느 누구에게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비하심은 그의 전능하신 힘을 필요로 하였으며 가능한 최대의 고통을 안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다. 그는 이 백성을 속박에서 건져 내어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셨으며(출6:6;15:13;시77:14-15), 그의 '전능하신 손'으로 이 일을 행하셨다. 구약의 구속의 교리에는 실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닌 두 동사가 사용된다. 하나는 흔히 "되사다"는 뜻을 번역되는 '가알'이고, 또 하나는 보통 "몸값을 치르고 되찾다"는 뜻으로 번역되는 '파다'이다. 가알의 기본적 의미는 보아스와 룻의 세속적 실례에서 잘 설명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나오미와 룻은 어려운 처지에 있었고,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가장 가까운 친척의 권리였다. 룻기의 극적인 긴장(tension)은 보아스가 "되살 자"("고엘", 룻3:12의 '기업 무를 자', 다른 본문들에서는 '구속자')의 역할을 자원하고, 룻 또한 이를 환영한 데 있다. 룻기 4:4에서는 '가알' 동사와 함께 '카나'('사서 얻다')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되사는(구속하는) 일의 핵심에는 값을 치룬다는 개념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가알'과 '고엘'이 여호와에 대해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출애굽 사건에서 나타나고 있다(참고. 출6:6;15:3;사43:1이하;51:10-11;시77:15이하). 출애굽 자체가 구속의 한 행위(예를 들면, 시74:2;106:10)였으며, 그리하여 이같은 구속 행위들의 한 모형으로 되었고, 여호와께 구속을 호소하는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사43:14-16;48:20;63:16;렘31:11). 이사야 43:3은 값을 치룬다는 개념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여호와는 출애굽 때 애굽을 희생시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 출애굽은 애굽의 손에 이스라엘이 망하든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이 망하든가 해야 하는 경우였다. 이때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주저하지 않으셨고, 주저하실 뜻이 없었다고 이사야는 말한다. 여호와는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자신을 위한 한 백성을 구속하려 하신다. 

'파다' 동사도 '가알' 동사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뜻을 지닌다. 세속적인 용법에서는 속저의 뜻이 명확하게 나타난다(예를 들면, 레27:27;민18:15-17;시49:7). 이 단어가 여호와의 구속 사업에 사용되었던 몇번의 경우는 바로 출애굽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었다(예를 들면, 신9:26;삼하7:23;느1:10). 또한 이 단어는 속죄를 가리키기도 한다(신21:8;시130:8;사1:27). 따라서 '파다'와 '가알' 두 동사가 같은 의미를 가리키는 한, 구속에는 동일한 값을 지불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두 동사의 의미가 다른 경우 '파다'는 값과 지불에 강조점이 있고, '가알'은 가장 가까운 친척(친족)의 구속자를 가리키는 데 강조점이 있다. 

신약의 구속의 주체를 이해하려면 죄의 종이 된 인간 존재의 처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요8:33-34). 인간은 죄의 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 종이 되려면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여기서도 속전의 은유가 사용되지만 "누구에게 속전을 지불하였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 이 속전의 은유에서 강조점은 값비싼 희생, 목숨을 내어 놓는 것에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롬3:24)에 관해 쓰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다"(엡1:7)고 주장하였다. 베드로는 "너희가...구속된 것은...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벧전1:18-19. 참고. 히9:12,15;계5:9-10).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한, 예수의 생명의 값비싼 희생으로 얻어진 이 구속은 완성된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과 관련된 한, 이 구속의 결과들이 현재에는 부분적으로 경험되며, 최후 심판 이후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때에야 완전히 경험될 것이다. 현재에도 우리는 죄책감과 죄의 권세에서 진정으로 자유하며 또한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갈5:1,13). 그러나 이 썩을 육체와 그 안에 있는 죄의 원리에서 최종적으로 해방되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 때에야 알게 될 것이다(눅21:27-28;롬8:23;엡4:30). 

 

구속하다2(bond)

체포하여 신체를 속박하는 것, 또는 자유 행동을 제한하거나 정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예속되다', '종이 되다'는 뜻으로 강제적인 섬김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결혼에 있어서 구속되지 말 것을 제안한다. 즉,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청할 경우 신자는 이로 인해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고전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