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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세렛사할 / 세력 / 세례 / 세례요한 / 세르

세렛사할 Zareth-shahar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으로 골짜기 가운데 산에 위치해 있었다(수13:19). 이곳의 오늘날의 위치는 사해 동쪽 해안을 마주보고 있는 '자라트'로 추정된다.

세력 strength

개역성경에 '권세’, ‘권능’, ‘능력’, ‘권력’ 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모두가 원어적으로 어원이 같다. 가끔씩 '힘'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이 단어는 신체적인 힘과 부에 관련되어 쓰인다. 이스라엘에서는 힘있는 자가 왕이 되거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힘은 문자적인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힘, 세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것은 지혜를 가지고 조절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세력을 갖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세력이나 힘, 능력을 얻기 위한 첫째 조건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또한 세력은 수의 많음, 소리의 큼, 나이의 많음, 중요성의 금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 힘이 있다고 하는 자들의 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레26:19;학2:22;히 2:14;7 18:3).
신약에서의 세력은 구약과 유사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 세상의 세력, 즉 악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오시고(요일3:8),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힘, 권능, 세력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세력을 말하는 것이 많으나, 결국 그 세력, 곧 세상에 속한 세력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세례 baptism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예식이며 그리스도와 합하는 표징과 인침이다(마 3:11;28:19;롬6:3;벧전3:21). 이 단어는 '물에 가라앉히다', '물에 잠그다' 라는 뜻의 헬라어 '밥토' 에서 파생되었다. 기독교 세례 의식의 기원은 유대교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의 개종자들을 유대교로 받아들일 때에 물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그들은 이 의식을 행함으로 종교적인 정화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을 때 사람들은 개종 의식으로서의 세례를 연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한은 개종자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지 않고 유대인들에게도 세례를 베풀었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3:8) 외침으로 세례의 윤리성을 강조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요한의 외침이 회개와 용서, 메시야적 공동체에의 수용에 대한 강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마3:1317;막1:9-11;눅3:21-22;요1:32-34). 예수의 선포활동이 세례 요한의 설교와 세례에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인정한 바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하는 음성이 들렸는데, 이것은 아마도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사건을 미리 예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대 교회에서 세례는 기독교 공동체에 가입하는 표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세례를 행하는 양식에 있어서 세례는 일반적으로 흐르는 물에서 침수로 행해졌다(마3:16;행8:38-39), 그러나 초대교회 시대로 전환되면서 예수를 믿는 무리가 많아지게 되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아야 될 때(행2:38)는 물을 뿌리거나 머리에 흘리는 정도로 세례 의식을 행하였는데, A. D. 1056년에 필사되었고 12사도의 가르침' 이라는 표제어를 가진 교육, 예배, 목회 등에 관한 지침서인 「디다케」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흐르는 물에서 침례를 거행하되 그렇지 못할 형편일 때는 머리에 물을 바르거나, 뿌리는 세례도 가함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세례 의식은 죄를 회개하는 일과 성령을 받는 일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세례 의식에는 물이 사용되는데(행8:36-39), 진정한 의미의 세례는 성령의 역사(役事)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마3:11;28:19;요3:5-7;행1:5). 이 세례는 사람의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 되며(고전1:13-15),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마28:19:행2:38), 대개의 경우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의 은사가 임했다(고넬료의 경우에는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성령이 임했다(행10:44-48).
사도 바울은 세례에 대한 신약적 의미를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바울은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에 거하겠는가' 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답변으로 세례와 죽음, 그리고 새로운 도덕적 삶으로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롬6:1-4). 한편 골로새서에서도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통한 새로운 도덕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갈3:27:골2:9-13). 즉 바울에게 있어서 세례는 깨끗케 하며 새롭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보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신약성경에서는 요한의 '위로부터 난다'는 개념(요일5:1)'피와 물'로 난다는 말을 사용함으로 거듭남, 새로 태어남의 의미를 세례와 상징적으로 연관시키고 있다. 한편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어떤 명확한 명령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기사들을 볼 때 초대교회 당시에 유아세례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두아디라의 자주장사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청종하고 그와 온 집이 세례를 받은 사건(행16:15)과, 바울이 스데바나의 집에 세례를 준 사실(고전1:16)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역성경에서 '집'으로 번역된 말이 가족 구성원 전체를 가리키는 말임을 설명해 주며 더욱이 헬라어 성경 본문에서 사용된 ‘오이코스’는 가족, 백성, 민족과 같은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자녀를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 아이들에게 언약의 표징으로 베풀었던 할례를 세례에 비유하여 설명하는데 이 또한 유아세례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골 2:11-12). <참조>이름

세례 요한

<보라> 요한 1항

세르 Zer

납달리의 영지에 있는 견고한 성읍(수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