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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아힐룻 / 악 / 악감 / 악갓 / 악고

아힐룻 Ahilud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사관(史官)이었던 여호사밧의 아버지이다(삼하8:16;20:24; 왕상4:3). 솔로몬 시대에 열두 관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바아나의 아버지와 동일인으로도 추측된다(왕상4:12).

악 evil

‘선’의 반대 개념으로 행위나 말로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어원적 의미로는, 목표를 향한 적합성이나 유익성의 결여를 의미하거나 특정 대상의 목표에 반대되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제한하거나 억압하고 그들에게 불행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나 말을 가리켜 악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긍극적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악으로 보았다. 구약성경에서는 도덕적인 잘못을 악으로 규정하기도 하지만(창19:7;44:4)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의 악, 즉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려 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악으로 보았는데, 특히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많이 나타난다(신17:2;삿2:11;3:7;시18:21). 따라서 악을 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고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겨야 했다(신13:45;시18:21). 악을 행하는 자들은 사곡한 종류로 규정되었으며(신3:25),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한 자에게는 그 악한 대로 갚으신다고 하셨다(삼하3:39). 악의 결과는 멸망이며(삼상12:25) 죽음이다(대상2:3). 한편 사람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에(삼상25:21;시34:14;35:12) 항상 악의 유혹이 따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할 것을 권고하신다(암5:19). 악은 결과적으로 고난을 부르며 따라서 악인은 고난을 당한다는 생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한 사실이었다(욥4:8-9;8:20-22;22: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가하기도 하신다고 교훈하신다(욥42:7-17). 그러나 반대로 악인은 형통하지만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 사실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합1:13;말3: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악인의 죄를 심판하시며,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여호와의 기념책에 기록된다고 하셨고 더 나아가 종말적인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세상의 악과 악인을 완전히 제하신다고 하신다(사13:11).
신약의 경우 악은 '해'나 '화'를 의미하기도 하며, 그것들을 낳는 행위가 악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데 '악에서 구하옵소서' 에서 악은 악한 자, 사탄을 가리킨다(마6:13).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악을 이기려고 애쓰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롬3:8;골1:21;약1:13). 악은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마음의 생각에 대하여 더 자주 언급된다(눅6:43-45).

악감 evil affected

좋지 않게 생각하는 감정으로 '해치다', '손상시키다' 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교회의 박해에 대해 사용되었다(행14:2).

악갓 Accad 

바빌로니아 땅 시날에 있던 성읍으로 바벨, 에렉, 갈레와 더불어 니므롯이 자신의 나라를 형성한 곳으로 보인다(창10:10). 이곳은 사르곤 1세가(B. C. 23342279) 건설했으며, 셈계 아카드 왕조의 수도로 세우고 메소포타미아, 수리아, 소아시아 전역을 통치하였다. 이 성읍은 아카드 왕조의 붕괴와 함께 멸망되었다. 당시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없지만 '수메르와 아카드의 땅'으로 쓰여진 비문의구절 등으로 비추어 볼 때 일반적으로 바벨론의 북부지방을 가리키는 듯하다. 아카드어는 이 셈족의 언어이며 앗수르어와 바벨론어의 어근이 되었다.

악고 Acco

페니키아의 항구로 갈멜 북쪽의 작은 해안 평야 지대에 건설되었다. 악고 평야로알려진 해안평야의 해변길에 위치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남쪽과 동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천연의만을 끼고 있다. 현재의 악고는 작은 부락으로 평야 남쪽에 중요한 항구인 '하이파' 가 있다. 악고는 아셀 지파에게 할당된 구역인데, 이곳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해서 함께 거했다(삿1:31). 이곳은 B. C. 733년 디글랏빌레셀 3세에 의해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B. C. 701년 산헤립에 의해 정복된 후 폐허가 되었다. B. C. 4세기경에는 아테네의 식민지로 건설되었고, 프톨레마이스 2세에 의해 ‘프톨레마이스'로 개칭되었다. B. C. 65년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바울은 두로에서 가이사랴까지 가는 길에 이곳 '돌레마이' 에 들러 하루를 묵었다(행21:7). A.D.636년 아랍 민족에게 정복된 후 그 규모가 줄어들었고, 중세 때에는 십자군이 이 도시를 200년동안 점거했으며, 이때부터 '성 잔다크'로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