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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외1 / 외2 / 외경

외1 cucumber

박과(科)에 속하는 채소 또는 그 열매. 덩굴손으로 감아 뻗으며 초여름에 노란 합판화가 피고, 과실은 가늘고 길며 녹색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방황 기간에 애굽에서 먹었던 것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에서 열거된 품목이다(민11:5).

외2 besides

'바깥', '겉', '표면', '초월적 세계' 등의 뜻. 성경에서는 '누구를 제외하고는' 이란 의미로 유일신 하나님(출 22:20;수22:19;삼하22:32;사43:11)과 예수(마17:8), 제사장(12:4) 등에 쓰여 그들의 권한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외경 Apocrypha

'외경' (아포크리파)이란 말은 헬라어 '아포크리포스' 에서 온 말이며 '감추어진' 일군(一群)의 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책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이 책들이 신비한 비교적(秘敎) 지식을 일러 주는 것이어서 비전 받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을 심오한 진리의 책이었으므로 사실상 일반 독자들에게는 '감추어진 책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도 이 책들이 황당무계하고 이교적(異敎的)인 것들이었기 때문에 '감추어' 두어야만 했던 불온서적들었다고 말한다.
외경은 정경에 들지 못한 책들로서 개인적 연구와 교화를 위해서는 가치가 있지만 공중예배에 낭독되는 성경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였다. 구약 외경에 속한 여러 책들은 느슨하게 규정된 70인역 성경의 정경에는 들어 있었으나 얌니아 회의 때 히브리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외경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16세기까지는 다소 모호하였다. 1546년 로마 교회에서는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비 1서와 2서, 에스더 및 다니엘 추가 부분 등을 정경 구약성서와 동일하게 영감받은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하였다. 이때부터 일부 가톨릭 학자들은 이 문제의 책들을 구약의 39권보다 늦게 정경이 되었다고 하여 제 2정경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루터교와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는 외경을 개인적 교화를 위해 필요한 책들로만 인정하였다. 한국교회의 경우 1977년 대한성서공회가 처음으로 외경이 포함된 공동번역성서를 발행하였다. 이 공동번역성서의 외경에는 에스드라 1서와 2서, 므낫세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예레미야의 편지는 바룩과 합본되어 그 마지막 6장에 실려 있으며, 아사랴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은 다니엘이라는 표제 아래 한 권으로 묶여 9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1. 에스드라 1서(Esdras 1), 외경의 첫번째 책인 에스드라 1서는 구약의 몇몇 책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병행 구절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책이다. 예루살렘에서 베풀어진 요시야 왕의 유월절 행사로부터 시작하여 대하35:1-36:23 정경 에스라 전체, 느7:73-8:12 등에 기록된 사건들이 에스드라 1서에 재생되어 있다. 이 책은 바벨론 포로이전, 즉 BC 621년부터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던 BC 444년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세 호위병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대제국을 건설한 바사의 다리오 왕은 그의 세 젊은 경호원들이 '이 세상에서무엇이 가장 강한 것이가?'에 대한 토론에서 '진리는 위대하다. 모든 것보다 강하다'고 주장한 스룹바벨을 승리자로 지명하면서 그 상으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스룹바벨은 기회를 놓치지않고 왕에게 그가 취임 때 유대인을 귀환시켜 성전을 재건하게 하겠다고 한 맹세를 상기시킨다. 다리오 왕은 곧 조서를 내려 자기 영토 안에 사는 유대인들이 막대한 금액과 특권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진리는 위대하다. 모든 것보다 강하다' (4:41)는 함축적 구절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가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의 위대성을 말한 점에서 “에스드라는 그리스도를예고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까지 말하였다.
2. 에스드라 2서 (Esdras 2). 이 책은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한 문학형태인 묵시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다. 에스드라 2서의 구성 및 전달과 관련된 일련의 문체들은 대단히 복잡하다. 3장에서 14장까지의 이 책의 핵심 부분은 바벨론의에스라에게 나타났던 일곱 개의 계시를 기록하고있다. 주후 1세기 말경 어느 유대인에 의해 아람어로 씌여진 듯한 이 부분은 곧이어 헬라어로 번역되었고, 주후 2세기 중엽 한 기독교 저자에 의해 헬라어로 된 서론부분(지금의 1,2장)이 첨가되었고 그후다시 기독교인 저자에 의해 지금의 15-16장이 첨가되었다. 지금은 아람어 본문은 파손되어 버렸고 헬라어 역본도 거의 상실되었으며, 가장 늦게 번역된한 라틴어 역본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인 번역불가타 신약성서에 부록으로 첨가되어 있으며 여기서는 에스드라 4서라고 되어 있다.
이 책의 원래의 부분은 입곱 가지 묵시로 되어있다. 첫번째 묵시(3:1-5:20)에서 에스라는 포로로 잡혀 있는 자기 백성의 슬픈 운명을 보면서 비록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던 시온백성이 하나님 없는 불경건한 이방인들에게 고난을당하는 이유를 묻는다. 우리엘(Uriel) 천사는 의인은 그 모든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때가 이르면 의인들은 그 정당함이 다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고대답한다. 의인들의 예정된 수가 차면 이 세대의종말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한다.
두번째 묵시(5:21-6:34)에서도 첫번째 묵시에서와 비슷한 문제들이 거론된다. 이 세대가 다 가기전에 죽는 자들의 운명에 관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는데 이들의 운명은 새 세대에서 사는 자들의 운명과 유사할 것이라는 대답을 얻는다. 이 묵시에서는 앞의 묵시에서와 같이 종말의 날에 임박하여 나타날 여러 가지 징조들이 상세히 열거되는 것으로끝난다.
세번째 묵시 (6:35-9:25)의 주제는 소수의 구원받을 자들에 관한 것이다. 최후의 심판과 의로운 자들과 악한 자들의 운명에 관한 서술이 길게 이어진다. 하나님의 메시야가 400년간 다스릴 것이며 그후 메시야와 모든 인류가 다 죽을 것이며 태고의침묵이 7일 동안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부활과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소수의 구원받을 자 외에 구원받지 못할 수많은 죄인들을 위하여 에스라는 중재의 기도를 드리지만 “창조된 자는 많되 구원받은 자는 적으리라" (8:3)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듣게 된다.
네번째 묵시(9:26-10:59)에서 에스라는 귀한 외아들이 장가간 첫 날 죽어버린 것을 슬퍼하며 호곡하는 여인을 본다. 에스라는 시온이 당한 대재난은잊고 일신상의 문제에만 집념하는 여인을 꾸짖는데갑자기 여인은 사라지고 이 여인이 있던 곳에 크고아르다운 도시가 나타난다. 천사 우리엘이 에스라에게 다가와 이 여인은 하늘 위의 시온을 상징하는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다섯 번째 묵시(11:1-12:39)에서는 세 개의 머리와 열 두 날개를 가진 독수리와 관련된 환상이 나타난다. 이 독수리는 다니엘 7장에 나타난 네번째왕국을 가리키며, 그 여러 머리와 날개는 로마제국의 여러 통치자들을 가리키며, 숲 속에서 나온 사자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 이 세대의 마지막에 행악자들을 벌하고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비해 두신 메시야를 뜻한다.
여섯번째 묵시(13:1-58)에서는 한 이상한 남자가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올라와 모든 대적들을 섬밀하고 온화한 군중을 모은다. 바다에서 올라온 남자는 옛부터 계시던 메시야이며, 그가 섬밀한 대적들도 이방 나라들이며, 그가 불러모은 온화한 군중들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포로로 잡아 갔던 이스라엘 열 지파들을 뜻한다.
일곱번째 마지막 묵시(14:1-48)는 사뭇 다르다.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칠 사람이 없이 남게 될 그의 백성들을 위해 탄원하자 다섯 명의 기록자들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이상한 잔을 받아 마신 다음 영감을 받게 되고 기록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부르는 말을 받아 쓰게 한다. 40일 동안 “다섯 사람이 돌아가면서 자기들도 알지못하는 문자로 그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썼는데" 모두 94권의 책이 된다. 에스라는 이중 24권(유대교식 구약성경의 총숫자)은 공개하고 나머지 70권(외경에 속하는 여러 기록들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 것들)은 유대인들 중장차 나타날 현명한 사람들을 위해 숨겨 보관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렇게 한다.
이 책은 외경 중에서도 우리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책이다. 상징이 너무 난해하여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묵시문학적 표현 배후에는 깊은 신학적 통찰이 들어있다. 저자는 하나님의 정의의 문제로 씨름하면서 그의 선민이 억울하게 학대받도록 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에스드라 2서의 겉모습은 비관적이지만 저자가 지닌 강렬한 신앙은 그로 하여금 역경의 시련을 딛고 지극히 높은 영적 차원에까지 이르도록 하였다.
3. 토비트(Tobit). 고대 유대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지던 경건 소설 가운데 하나가 토비트이다.
토비트는 BC 8세기 갈릴리 지방에서 살았으며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신앙을 깨끗하게 지켰다. 그는 포로가 되어 니느웨로 끌려갔어도 경건한 신앙생활을 유지하면서 많은 동포들을 도와주는 자선을 베풀었다. 그러던 그는 시력을 잃는 불운을 당하여 아내가 벌어다 주는 것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는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차라리 죽기를 간청하였다.
한편 메대의 엑바타나에 사는 사라 역시 하나님께 자기의 목숨을 거두어 가시도록 고통 가운데 간구하고 있었다. 사라는 경건한 여인이었으나 웬일인지 결혼하여 신방만 차리면 첫날 밤에 신랑이 죽이나가곤 하였다. 남편 잡아먹는 여자라는 조롱을 받기까지 하였으나 사실은 사라를 열애하던 아스모데오라는 악한 귀신이 그 남편들을 7번씩이나 죽였던 것이다.
토비트와 사라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이들을 돕기 위해 천사 라파엘('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뜻)을 보내셨다. 토비트의 아들 토비아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은 십 달란트를 찾아오기 위해 메대로 가게 되는데 아사랴로 변장한 천사 라파엘을 안내자로 삼게 되었다. 도중에 티그리스 강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이때 이상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게 되는데 토비아는 라파엘이 시키는 대로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쓸개와 염통과 간을 따로 간수하였다.
사라가 사는 마을에 당도하자 토비아는 라파엘의 간청으로 사라와 결혼하게 되었다. 신방에 들어간 신랑 토비아는 라파엘이 지시한 대로 물고기 염통과 간을 꺼내어 타오르는 향불 위에 올려 놓았다. 이 냄새를 맡은 귀신은 애굽 땅 먼 곳까지 줄행랑을 쳤다.
귀향이 늦어 아들이 죽은 줄로 알고 있던 토비트에게 토비아 일행이 돌아왔다. 토비아는 물고기 쓸개를 아버지의 눈에 바르고 그 눈에서 흰 막을 벗겨내었다. 그러자 토비트는 즉시 시력을 회복하였다. 토비아는 127세를 일기로 영광스러운 그의 일생을 마쳤다. 그는 죽기에 앞서 니느웨가 멸망하는 꼴을 보게 되어 기쁨에 젖었다.
이 이야기는 비역사적인 이야기이지만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의 유대인의 가정생활을 아름답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루터는 이 책을 두고 “참으로 아름답고 건전하고 유익한 소설이며 훌륭한 시인의 작품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읽어서 유익하고 좋은 책”이라고 칭찬하였다. 
교회사에서 볼 때 토비트서의 영향은 주로 교회의 결혼예식에 나타나 있다. 라틴어로 된 토비트서와 최초의 영역 성서의 토비트서에 보면 토비아와사라는 결혼한 다음 처음 3일 밤까지 기도를 드렸고 나흘째 되던 날 비로소 잠자리를 같이 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에서도 이것을이상적 결혼으로 여겼다. 1549년 영국에서 나온 공동기도서 초판에는 결혼예식 부분에 "당신의 천사라파엘을 토비아와 라구엘의 딸 사라에게 보내셔서그들을 크게 위로하신 하나님, 당신의 그 축복을이제 결혼하는 신랑 신부에게도 베풀어 주옵소서"라는 기도문이 실려있기도 하다.
4. 유딧(Judith). 유대인의 전쟁 무용담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유딧서이다. 이 감격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유대 과부로서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경건한 여인일 뿐 아니라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여서는 지혜와 용기로 난관을 극복하는 신앙과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여걸이다. 느부갓네살이 보낸 홀로페르네스를 총사령관으로 한군대에 의해 베툴리아가 34일 동안 포위당하여 온도성이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순간에 유딧이 등장한다. 유딧은 교만한 앗수르 군대를 쳐부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탄원하는 기도(9:2-14)를 드린 후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보석으로 장식하는 등 남자들의 눈을 홀릴 만큼 요란하게 꾸며 적진으로 들어갔다.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의 계략과 미모에홀려 연회를 베풀고 유딧을 초청하였으며 급기야단둘이 침실에 남게 되었다. 유딧은 적장이 깊은잠에 골아 떨어진 틈을 타 홀로페르네스의 목덜미를 내리쳐 잘라낸 머리를 양식 자루에 넣어 가지고적진을 빠져나와 베툴리아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들은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충천하여 앗수르 군대진영으로 공격해 들어갔고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가 베툴리아 성벽 망대 위에 걸린 것을 본 앗수르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유딧은 전승을축하하는 모든 백성들과 앞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유딧서는 순수한 이야기라는 점에 대하여 기독교와 유대교 학자들 사이에 이론이 없다. 이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신앙형태는 다분히 엄격한 정통주의적 신앙으로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경건의 척도로 나타나고 있다. 주후 1세기의 로마의 클레멘트는 유딧을 에스더와 함께 언급하염서 "용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을 받은 여인들' 이라고 칭찬하였다. 중세에 와서 유딧 이야기는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하누카 절기와 결부되었다.
5. 에스더(첨가 부분). 정경 에스더 외에 외경에도 '에스더' (우리말 공동번역성서에는 '에스델'로 되어 있다)라는 이름의 책이 있다. 외경 에스더는 성격상 정경 에스더의 속편이 아니라 정경에스더 이곳 저곳 여섯 군데에 첨가된 부분들로 알고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첫번째 첨가 부분(11:2-12:6)은 모르드개가 꿈을꾸어 아하수에로 왕의 암살을 방지한 내용을 다룬다. 정경 에스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두번째첨가 부분(13:1-7)은 전국의 유대인들을 학살하기위하여 전국 각도에 보내진 조서 사본으로 정경 에스더 3:13 에 첨가된 것이다. 세번째 첨가 부분(13:814:19)은 모르드개와 에스델이 자기 민족에게 닥친죽음의 위협에서 하나님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두편의 기도로서 정경 에스더 4장에 첨가된 것이다.네번째 첨가 부분(15:1-16 우리말 공동번역성서의경우는 15:4-19)은 정경 에스더 5:1-2을 더욱 확대시킨 것이다. 다섯번째 첨가 부분(16:1-24)은 전에선포되었던 유대인 말살 조서를 취소하고 유대인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왕의 유대인 복권령 전문(全文)으로 정경 에스더 8:12에 첨가된 것이다. 여섯번째 첨가부분(10:4-11:1)은 첫번째 첨가부분에기록된 모르드개의 꿈에 대한 해몽으로 정경 에스더 10:3에 첨가된 것이다.
정경 에스더를 확대시킨 동기는 무었이며, 첨가된부분의 특징은 무엇인가? 정경 에스더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종교적 요소가 희박하다. 이에 비해 첨가 부분에는 한 군데를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에 관한 언급이 나와 있다. 특히 마지막 첨가 부분에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9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경 에스더에 결여된종교적 요소를 첨가시키려고 했던 의도를 알 수 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두 편의 기도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과 신뢰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셈족에 대한 증오와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개심이 이 첨가된 부분 속에 노골적으로 부쩍 증대된 점이 큰 흠으로 여겨진다.
6. 지혜서(The wisdom of Solomon). 솔로몬의 지혜서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지혜서는 집회서와 함께 지혜문학에 속한다. 지혜문학의 지자들을 현인 혹은 지혜자라고 하는데 한인들은 애인자나 제사장처럼 그들이 속했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지혜문학이 최고도로 발달했던 때는 포로기 이후였다.
지혜서는 정통 유대교의 전통적 경건과 희랍 철학 정신을 결합시키려는 데 관심을 기울이며 다분히 신학적인 이론을 전개한 글로 보인다. 이미 구약 안에서 시작된 지혜의 의인화 (28장,잠8:22-31)는 지혜서에서 그 절정에 이르고 있다. 스토아 학파의 로고스 이해와 유사하게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를 주의 영(9:17), 주의 손(14:6), 주의 섭리 (14:3) 및 능력(6:3)과 일치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지혜를 하나님과 구별하며 지혜를 곧 하나님이라 하지는 않는다.
지혜서는 지혜를 구할 것을 권고하는 책이다. 15장은 지혜를 구하는 유대인들이 얻게 되는 축복들을 밝혀 준다. 의인과 악인이 대비되어 나타나며 의인은 현명한 사람과 동일시된다(4:17). “악인의 희망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고 폭풍에 부서지는 가냘픈 거품과 같다”(5:14). “그러나 의인들은 영원히 산다. 주님이 친히 그들에게 보상을 주시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그들을 돌봐 주신다"(5:15). “의인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노인은 오래 살았다고 해서 영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며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니다. 현명이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생활이 곧 노년기의 원숙한 결실이다" (4:7-9).
6-9장은 솔로몬의 입을 빌어 신적 지혜를 예찬한다. 지상의 통치자들은 지혜를 배워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통치자들이 만일 "정의로 다스리지 않았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처신하지 않았으면 주님께서 지체 없이 무서운 힘으로 그대들을 엄습하실 것이다”(6:4-5),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를 존중하여야 영원히 다스리게 된다(6:21). “지혜는 영원한 빛의 찬란한 광채이며 하나님의 활동력을 비쳐주는 티없는 거울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형상이다. 지혜는 홀로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모든 세대를 통하여 거룩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하나님의 빛이 되게 하고 예언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은 지혜와 더불어 사는 사람만을 사랑하신다" (7:26-28),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고 있었다(9:9). 지혜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길을 곧게 만들어 주었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을 가르쳐 주었으며 사람들을 구원해 주었다(9:18).
지혜서의 후반부 (10-19장)는 문체도 바뀌고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전반부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이 후반부의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 지혜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 이스라엘의 원수 곧 애굽과 기타 이방 세력을 물리쳐 주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이 후반부에서는 지혜에 대한 언급이 처음 부분(10:1-11:1)에서만 나타나고 그 나머지 부분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지혜서는 BC 100년부터 AD 40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로부터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아볼로까지 여러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지혜서의 저자가 희랍 철학에 능통한 한 정통파 유대인이었다는 점이다. 지혜서는 그 몇몇 구절(예컨대, 14:7)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고한 것으로 이해되어 초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총애를 받았다.
7. 집회서(Ecclesiasticus). 집회서는 외경 중에서 가장 긴 책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가장 높이 평가받아 온 책으로 일명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 (the Wisdom of Joshuaben-Sira)라고도 한다. 책 이름만 보아도 이 책이 지혜문학임을 알 수 있으며 문학 형식면에서 격언들을 많이 동원하고 있는 점에서 잠언서의 영향을 크게 받은, 어떤 의미에서 잠언서의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예루살렘 사람 엘르아잘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예수"(50:27)로 밝혀져 있다. 저자가 제공해 주는 자신의 배경에 관한 여러 암시를 고려해 보면 벤시라('사라의 아들' 이라는 뜻으로 흔히 이렇게 부른다)는 구약성서 특히 잠언서와 오경에 통달했던 사람으로 아마도 예루살렘에 학원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윤리와 종교를 가르쳤던 것 같다.

B.C. 180년경 숙련된 서기관이자 현인이 있던 저자는 구전으로 가르치던 지혜에 관한 강의를 기록으로 옮겼다. 약 반세기 후 저자의 손자(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는 히브리어로 씌어진 조부의 대작품을 가지고 애굽으로 갔으며, 이 지혜문학의 대작품이 당시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큰 유익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이를 헬라어로번역하였으며 자신의 서문을 덧붙여 놓았다.
이 책의 목적은 지혜의 본질을 밝히고 생활의모든 영역에서 율법에 입각하여 지켜야 할 종교적및 사회적 의무들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 책에서지혜는 아주 넓은 의미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게때문에 다양한 활동들, 기술자의 재능, 사업 능력,영리한 성격, 교활, 언행에 대한 조심, 분별력, 자제,슬기로운 처세, 사려, 학구적 태도, 올바른 생활등이 다 지혜에 포함된다. 이중 가장 으뜸되는 것이지혜(1:14,16,18,20,27)라고 여기고 이 지혜는 율법에 계시되어 있다고 본 점이다(6:37;15:1).
전체적으로 볼 때 집회서의 중요성은 그것이 유대 종교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집회서는 구약성경에 반영된 지혜문학의 마지막 작품일 뿐 아니라 걸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내포된사상 중에서 일부는 사두개파로 연결되어 계속 발달되었고 일부는 탈무드 랍비주의로 계승 발전되었다. 또 집회서란 이름이 '교회의 책' (The ChurchBook)을 뜻하는 만큼 교회로부터 중요성과 가치를일찍부터 인정받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8. 바룩서(The Book of Baruch). 외경 가운데 구약 정경 선지서와 가장 흡사한 책이 바로 바룩서다. 비록 독창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옛선지자들의 정열이 살아 있는 것만은 엿볼 수 있다. 이책은 바벨론 포로기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1:1). 바룩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동료이자 비서로 정경에 이미 알려진 인물이다(렘32:12;36:4). 비록 짧은 책이긴 하지만 세밀히 검토해 보면 둘 혹은 그 이상의 저자를 상상할 수 있는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중간 부분(3:8과 3:9사이)에서 정확히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1:13:8)에는 바룩이 이 책을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구원)를 비는 기도로 이어진다. 전반부는 모두 산문체로 되어 있으나 3:9부터 시가체로 바뀌어 감동을 더해 준다. 후반부 첫부분(3:9-4:4)은 지혜문학의 문체로 기술되며, 이스라엘의 죄는 지혜의 샘인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고그 결과로 민족적 재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반복되고 있다. 후반부 나머지 부분(4:5-5:9)에는 포로된 백성에 대한 예루살렘의 애가에 뒤어어희망과 회복의 약속이 이어지고 있다.
바룩서의 영향은 유대교권에서 보다 기독교권에서 더 많이 나타났다. 교부들은 바룩서를 자주 인용하였고 때로는 바룩서의 구절을 예레미야의 말로인용하기도 하였다. 초기 기독교는 바룩서를 정경으로 취급하려 했던 적도 있다.
9. 예레미야의 편지 (The Epistle ofJeremiah). 이 작품은 바벨론 왕의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간 사람들에게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렘29장에 언급된 예레미야의 편지 참조)를가장하여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풍자적으로 폭로하고 규탄한 글이다.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는 배후에는 이교의 어리석음을 말하려는 의도가역력히 보인다. “금과 은으로 도금한 나무 우상들은 참외밭에 세운 허수아비와 같아서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한다. 금과 은으로 도금한 나무 우상들은뜰에 난 가시덤불과 같아서 온갖 새가 다 거기에내려 앉는다. 컴컴한 곳에 내던져진 시체와 같다.그들에게 입혀 놓은 자홍색 옷이나 비단 옷이 썩고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을 것이다. 끝내는 그들 자신이 벌레에 먹혀 그나라의 수치가 되리라”(69-71절). 후에 기독교가주위의 이교 신앙과 부딪쳤을 때 기독교는 이러한논쟁문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용하였다. 이교 신앙이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기독교에 압력을 가해오거나 박해를 가할 때마다 기독교 호교론자들은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이 무기를 가지고 새로운형태의 이교 세력에 대항하였다.
10. 아사랴의 기도(The prayer of Ajariah)와세 거룩한 아이들의 노래 (The Song of the ThreeHoly Children). 다니엘서의 고대 헬라어 번역판과 라틴어 번역판에는 원래 히브리어 본문이나 아람어 본문에는 없는 내용들이 여러 개 추가되어있다. 본문에 약간씩 추가된 것들 중에서도 외경속에 들어 있는 세 가지 추가서는 매우 중요하다.곧 '아사랴의 기도와 세 거룩한 아이들의 노래','수산나', '벨과 용'이 이에 속한다. 초기 다니엘서번역 사본에는 이러한 부분들이 가필된 것임을 암시해 주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대다수 교부들은 정경 다니엘서와 구분하지 않고 인용하였다. 그러나 제롬과 같이 교부들이 히브리 정경을 알고 이추가 부분들이 히브리 성경에 나오지 않은 사실을경고하면서부터 무분별한 사용이 그치게 되었다.이들 세 추가서의 기록연대는 BC 1세기와 2세기사이의 어느 때일 것으로 추정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정경 다니엘서를 보충하고 있는다니엘 추가서로서 유일한 것은 '아사랴의 기도와세 거룩한 아이들의 노래' 뿐이다. 이 이야기는 단3:23과 3:24 사이에 들어있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단3장에 의하면 아벳느고(히브리 이름으로는 아사랴)를 비롯한 세 사람의 유대인은 느부갓네살 왕이 세워놓은 금 신상 앞에 경배하기를 거부하여 그 벌로써 꽁꽁 묶인채 불타는 풀무(화덕) 속에 던져졌다(단3:23). 여기에 본문의 추가가 계속된다. 뜨거운 풀무 속에서도 아사랴는 불 속에서 구출해 달라는 기도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기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고 민족적인 구원을 간구하여 응답을 받는다.
뒤이어 계속되는 긴 찬양이 전통적으로 '세 거룩한 아이들의 노래'로 일컬어지는 노래이다. 여기서'아이들' 이란 연령적 의미의 어린이를 뜻하는 것이아니라 이스라엘의 아이들' 과 같이 종교적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다. 세 거룩한 아이들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찬송하자고 권유한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께지극한 영광과 영원한 찬양을 드려라" 고 32번이나반복되는 후렴은 하나의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뒤 이어서 부르는 찬양의 주된 리듬은 교창곡(交唱曲) 형식으로 배열되고 있는데 시편 136편의교창곡 형식의 찬양을 본딴 것으로 보인다. '세 거룩한 아이들의 노래' 는 초기나 중세 기독교에서 연속기도를 할 때 사용되었으며 현대 예배의식에서도사용되고 있는데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것을 주일날아침 찬미나 축제 때의 찬미 뿐만 아니라 미사 다음이어지는 신부의 개인 감사기도에서도 이용된다.
11. 수산나(Susanna). 다니엘서에 추가된 전승들 중에 단연 뛰어난 것이 수산나의 이야기였다.이 이야기는 악인들의 행위를 물리친 도덕적 승리와 죄없이 희생당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벗이나는 극적인 구원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수산나는 바벨론 땅에 사는 유명한 유대인이었던 요아킴의 아내였다. 수산나는 용모가 아름다울 뿐더러하나님을 공경하며 사는 여자였다. 요아킴의 넓은정원은 바벨론의 유대 장로들과 재판관이 법정으로사용하였다. 이들 중에 두 사람의 장로 재판관이가끔 정원을 거니는 수산나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욕정에 사로잡혔다. 몹시 무더운 어느 날 정원에서 목욕을 하는 수산나를 두 장로는 숨어서 엿보고 있다가 정원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수산나에게로 달려갔다. 두 장로는 동침을 요구하면서 거부하면 수산나가 젊은 청년과 정을 통하려고 했다고 증언하겠다고 협박하였다. 수산나는 주님 앞에 죄를짓는 것보다 차라리 깨끗한 몸으로 이들의 모략에걸려드는 편을 택하였다. 다음 날 수산나의 남편요아킴의 집에서 재판이 열렸다. 두 장로는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고발이 받아들여져 수산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장으로 끌려 나갈 때에 수산나의 기도가 응답을 받아 젊은 청년 다니엘이 나타나 이의를 제기하였다.다니엘은 두 장로를 분리 심문한 끝에 이들의 위증을 밝혀내었으며 수산나는 누명을 벗었고 오히려위증한 두 장로가 모세 율법대로 사형에 처해졌다.이 이야기를 수산나의 부모와 남편과 그를 아는 모든 친척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난다.
저자는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나이 많은 기성 세대가 부패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젊은이들을 일으켜신앙과 의를 수호하게 하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몇몇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그 시대의 종교소설이자 당시 법을 쥐고 다스리던 부패한 권력에 대한풍자문학으로 본다. 크리소스톰은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완성되었을 때 교회의 영원한 순결에 대한 기념설교에서 수산나를 가리켜 “두 마리의 늑대 사이에 서 있는 하나의 양과 같았다"고 보고 두 명의 남자들과 싸운 수산나의 싸움은 한 여인과 싸운 요셉의 싸움보다 더 치열했으나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녀의 꿋꿋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3세기 초 로마의 감독이었던 히폴리투스는 수산나를 "교회를 예시해 주는 한 원형"으로 보기도 하였다.
12.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외경의 다니엘서 첨가 부분에는 인류 최초의 탐정소설이라할 만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흔히 우리는 이이야기를 벨과 뱀 혹은 용의 이야기라고 부른다. 이짧은 이야기는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이방신 제사장들의 제사의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기 위해서 씌어진 것이 확실하다.
벨의 본래 이름은 마르둑(Marduk)으로 바벨론 만신전에서 가장 인기있던 신으로 BC 2250년에는바벨론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벨 신 숭배를 다니엘이 거부하자 바사의 고레스 왕은 벨이 우상이 아닌살아있는 신이라는 증거로 벨이 매일 먹어치우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음료를 들었다. 그러나 다니엘은신전 마루에 고운 재를 뿌려 제사장들이 식구들과함께 제단 밑에 만들어 놓은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와 제물을 말끔히 먹어 치우는 것을 이들이 남긴 발자국을 증거로 왕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왕은 제사장들을 불러 비밀통로에 대한 실토를 받은 후 그 가족들까지 처형시키고 다니엘에게는 벨의 우상과 신전을 부수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다니엘의 무용담이 담긴 또 하나의 일화가 나온다.바벨론 사람들은 뱀 또는 용이라 불리우는 괴물도신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다니엘은 역청과 비계와 머리털을 섞어 끓여가지고 과자같이 만들어 뱀에게 먹여 뱀을 죽임으로써 뱀이 우상임을 증명해 보였다.바벨론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이 죽는 것을 보고 왕에게 다니엘을 자기들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넘겨주지 않으면 그 원수를 왕과 왕가에 갚겠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다니엘은 이들에게 넘겨져 사자굴속에 집어 던져졌다. 다니엘은 6일 동안 굶은 7마리 사자의 먹이가 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를 시켜 음식을 배달하여 다니엘을살리셨다. 다친 데 하나 없이 사자굴 속에 앉아 있는다니엘을 본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이신 주님,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 밖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리고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내고 그 대신에 다니엘을 죽이려던 사람들을굴 속에 집어 넣어 사자밥이 되게 했다.

세계 어디서나 뱀이나 용같은 괴물 이야기는 민담 가운데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뱀은 흔히 종교적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성경에도 고대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뱀 숭배가 있었다는 흔적이 보인다(민21:8 이하; 왕하18:4), 고대의 뱀 이야기는 기독교에서는 유대교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계시록은 악마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용으로 묘사하고 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12:9).
13. 므낫세의 기도(The player of Manasses),므낫세는 55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을 통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대하33:2) 온갖 우상숭배를 끌어들였던 왕이다. 그러나 앗수르 군대 장관들에에 쇠사슬로 결박당한 채 바벨론으로 끌려 가는환난을 당하자 므낫세는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드렸으며 기도의 응답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다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하나님을 믿었던 왕이다(대하33:11-13).
대하33:18-19에 의하면 므낫세의 기도가 역대기가 편집될 때에는 다른 두 권의 책에도 기록되어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이 없어짐으로해서 어떤 경건한 유대인이 므낫세의 입장에 서서참회의 기도를 작성했던 것 같다. 아마도 무명의저자는 우상숭배에 빠진 동포들에게 적절한 참회의기도서를 줌으로써 죄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 기도의 줄거리는 대략 BC 400년 경에 행해지던 유대인의 전형적 예배형태를 따르고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서론으로시작하여(1-8절) 개인적인 죄의 고백이 있은 후(910절)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11-13절) 은혜에 대한 간구(14절)와 찬양(15절)으로 끝을 맺는다.
므낫세의 기도는 3세기의 교회 절차와 기독교인의 행동을 다스리는 규율 같은 것을 기록한 소책자였던 디다스칼리아(Didascalia)에서 언급되어 있다.5세기의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포함한 여러사본에는 이 기도가 시편에 붙은 14편의 송영이나송시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 아무리 하나님의 법을많이 어겼다 할지라도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기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므낫세의 기도는 설교 때의 권면으로, 참회의 훈련의 좋은 본보기로 이용될 수 있었다.
14. 마카비 1서(1 Maccabees). 마카비의 명칭은 유대인의 독립과 종교적 자유의 용맹스러운 방어자였던 유다 마카비의 영웅적 공적들을 유대인들이 노래 불러 찬탄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마카비 1서는 BC 175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즉위로부터 시작하여 134년 유다 형제들 중 마지막으로 시몬이 죽는 데서 끝나는데 역사적 사건들을 연대 기준에 따라 성실하고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안티오쿠스는 그의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그가 지배하고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헬라 문화의 모방을 강요하였다. 그는 유대 땅 전역에다 이방 사람의 제단을 쌓았으며 거룩한 성 예루살렘 안에까지 이교도의 관습을 들여 왔다. BC 167년이 저물어가는 운명의 날(기슬르월 25일) 안티오쿠스의 측근들은 성전의 제단 위에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을 위해 돼지 고기를 바침으로써 신성을 모독하였으며 안식일 성수, 남아의 할례와 구약성서 율법의 사본을 소지하는 행위까지를 사형으로 금지시켰다.
마따디아는 안티오쿠스의 포고령에 따르기를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그의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경·건한 자들' 인 하시딤과 함께 산으로 도피하여 일종의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안티오쿠스 군대와 변절한 유대인들과 싸웠다. 마따디아의 아들 유다 마카비는 BC 164년 잠정적 승리를 거두어 성전을 재봉헌하였다(4:36-61). 유대인들이 매년 지키는 하누카(Hanukah) 축제는 이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요한복음에는 수전절로 나와 있다(요10:22).
수리아와의 전쟁이 계속되다가 마따디아의 아들 5형제 중 마지막으로 시몬이 유대인들의 지도자가 되면서 그의 영도 아래서 드디어 유대인들은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BC142년) 이로 인해 시몬은 후대 유대인들에게 이상적인 유대인의 통치자로 존경을 받았다. BC 134년에 시몬과 그의 두 아들은 시몬의 사위의 간계로 살해되었고, 시몬의 아들 요한이 통치자와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리하여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요한(역사가에게 요한 힐카누스로 알려졌으며, BC 134-104년까지 통치)의 치적과 용감한 행적들을 기록한 연대기(망실되었음)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16:24).
마카비 1서는 신구약 중간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복음서에 나오는 열심당은 마카비에서 유래하며 바리새파는 마카비 일가와 함께 싸운 하시딩에 그 영적 조상을 두고 있으며 사두개파와 성전 귀족이 생겨난 역사도 이 시대에 유래하기 때문이다.
15. 마카비 2서(2 Maccabees). 마카비 2서가 다루는 사건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즉위하기 직전으로부터 BC 160 년까지의 약 15년 간의 기간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마카비 2서는 1서와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1서의 처음 7장과 대체로 병행하고 있다. 저자는 구레네 사람 야손이 쓴 다섯 권의 책을 한 권에 요약했다고 말한다(2:23이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요약자는 야손의 목적과 정신을 완전히 이해한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한 유대인이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현대의 역사가는 마카비 2서의 뚜렷한 과장과 빈번한 설교 때문에 그리고 마카비 1서에 비해 역사적 사건을 부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점 때문에 별다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마카비 2서는 훌륭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기독교 시대가 막을 열기 이전의 유대교 발전사 연구에 서광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마카비 2서에는 백성들의 행복을 중재해 주는 천사와 초자연적 현현의 현상(3:25;5:2)이 자주 나타나며, 섭리와 응보의 교리(4:38;5:10;9:5-6;15:32-35), 몸의 부활사상(7:36), ‘무로부터의 창조' 에 대한 교의의 명백한 표현(7:28)도 나타난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역대 교인들로 하여금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활력을 넣어 준 점에 있어서는 외경 중에 이 마카비 2서 (특히 6-7장)를 능가할 책이 없다. 순교자들이 당한 고난을 폭넓게 기록한 이 책, 특히 무서운 박해를 앞에 둔 유대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이 가졌던 확고부동한 믿음(7장)은 유대교와 기독교 독자들이 다같이 헌신적으로 본받을 만한 주요한 교훈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고 있을 동안 수명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수난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유대의 순교자들을 본받아 견뎌내기 어려운 고난을 이겨내라고 권유하였다(예를 들면 카프리안의 '순교 권유', 오리겐의 '순교 권유'), 70인역 성경의 여러 사본에는 마카비 3서와 4서가 나타난다. 마카비 3서는 프톨레미 4세(BC221-204)치하 때의 유대인 학살을 다루고 있으며 에스더서와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마카비 4 서는 '이성의 승리' 에 관한 철학적 저서로 성경의 이야기들과마카비 2서 6-7장의 순교 이야기들을 근거로 하여이성이 열정을 이김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고양시키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