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군 that go up ~ to bury
초상에 관한 모든 일을 주선하거나 장례시에 묘지까지 상주와 함께 동행하는 사람. 요셉은 막벨라 굴에 아버지 야곱을 장사지낸 후 자기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다(창50:14).
호색 lasciviousness
여색을 좋아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육체의 일에 속한 것으로(갈5:19)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슬피 울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고후 12:21), 그리스도인들에게 음란과 호색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롬13:13).
호세아 Hoshea
1. 에브라임 지파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본명이다(민13:8). 모세는 이 이름을 여호수아로 개명하였다(민13:16).
2. 다윗 시대 에브라임 자손의 관장을 지냈던 아사시야의 아들(대상27:20).
3. 느헤미야 시대에 갱신된 율법 엄수 계약에 인을 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느10:23).
4.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B. C. 732-724). 엘라의 아들인 호세아는 베가를 살해함으로써 왕이 되었다. 이 사실은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바 앗수르의 허락이 없이는 호세아가 왕이 될 수 없었다. 성경은 호세아에 대해서 악한 왕으로 기록했지만 이전 왕들과 같지는 않았다고 덧붙여 놓았다(왕하 17:2). 당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조공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죽고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가 왕위에 오르자 조공의 중압감에 시달리던 호세아는 그 틈을 타서 애굽의 원조를 약속받고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살만에셀 5세는 B. C. 724년 이스라엘을 공략하였고 호세아는 굴복하여 다시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왕하 17:3). 그러나 살만에셀은 호세아를 믿을 수 없어서 감금하고 사마리아를 3년간 침공하였다(17:4-5). 그 결과 호세아 9년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백성들은 이방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17:6;18:9-12).
5. B. C. 8세기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왕여로보암 2세의 통치 때(B. C. 786-746) 태어났으며, 웃시야(B. C. 783-743), 요담(B. C. 742-735), 아하스(B. C. 735-715), 히스기야(B. C. 715-686) 왕이 유다를 통치하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하였다. 성경에서는 호세아의 아버지가 브에리라는 것 외에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호1:1) 중산층 상인, 아마도 빵굽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의 아들 호세아는 교육받은 사람으로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출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호세아는 깊은 영적 투시력을 지녔던 사람으로 지적 자질까지 겸비하여 그의 불행했던 가정생활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가정의 사건들이 고집스럽게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호세아서 The book of Hosea
구약성경에 포함된 모든 선지서 가운데 이스라엘에서 유래한 유일한 선지서이다.
1. 저자 및 배경. 호세아는 B. C. 8세기경 민족적 위난의 시기에 살았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위대한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때(B. C. 786-746년경) 태어났으며, 그의 책의 표제에 의하면, 그는 웃시야(783-743년경), 요담(742-735년경), 아하스(735-715년경), 히스기야(715-686년경) 왕이 남유다를 통치할 때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호세아는 이사야 7:1과 열왕기하 16:5에 언급된 사건들을 말하지 않았지만 B.C. 733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갈릴리와 요단 강 동편을 침략했던 사태를 경험했던 것이 확실하다. 호세아의 시대는 물질적으로 크게 번영하던 시기였다. 여로보암 2세 아래서 이스라엘은 통일 왕국 초기 이후 볼 수 없었던 경제와 상업의 발전을 경험하였다. 도시 생활의 발전은 이스라엘 경제의 기반을 이루어 왔던 많은 농민들을 매혹시켜, 후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 시기의 특징은 성공적인 중산 계급 실업가들의 대두였으며, 이에 따른 도시 하층 계급, 혹은 노동 계급의 출현이었다. 도시 하층 계급은 사치한 상층 계급이 점차 농민과 소지주층을 압박함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농민과 소지주층은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재산을 잃게 되고 도시 중심지에서 구할 수 있는 아무일에나 종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상층계급과 하층 계급 간의 불길한 사회적 간격이 생겼으며, 이것은 민족 경제의 장래에 심상치 않은 심각한 조짐이 되었다.
여호수아 시대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생활은부패한 가나안 종교의 영향으로 압도당해 왔다. 북부수리아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초기부터 팔레스타인을점유했던(창12:6)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밝혀 주었다. 이 유혹적인 종교(worship)는 사사시대이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생활에 굳건한 발판을 구축하였으며, 아모스와 호세아 때 가나안의 제의는 대중 종교가 되어 있었다. 주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신들은 풍요의 신 '바알' '주인', '지배자', '남편'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과 그 배우자 '아나트 (아세라 혹은 아스다롯이라고도 알려진 야성적이며 관능적인 여신)이었다. 이 두 신은 황소와 암소의 형상으로숭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여로보암 1세가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단에 두고 하나는 벧엘에 두었을 때(왕상12:28) 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풍요의 종교에 빠지게 하였던 것이다. 제의(祭儀)는 해마다 여러 차례 거행되었으며, 술취함, 제의적 매음, 폭력, 신당에서의 이교적 예배 형식에의 탐닉 등이 그 특징이었다. 제의적 매음의 확산 및 팽배는 호세아 이후1세기가 지난 예레미야 시절에 성전 구내에서 매음이성행했던(왕하23:7) 사실로부터 명백히 드러난다.
2. 내용. 호세아는 이런 형태의 예배가 하나님이그 백성에게 바라시는 것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내산 언약은 거룩한 백성이 오직 여호와만을예배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언약 백성의 종교 생활은 이교적인 가나안 신들을 부끄럼 없이 부도덕하게 섬기는 데까지 타락해 있었다. 과도한 알콜 탐닉과자유방임적 성행위는 가나안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명까지 좀먹고 있었다. 주술과 이교 신화의 배경 아래 자행된 이 모든 행위는 시내산 언약의 의도였던 예배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호세아의 일차적 임무는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시내산 언약에 따른 의무를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시내산 언약 때이스라엘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협정을 맺어 충성과복종을 약속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해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호11:1. 참고,출4:22), 물론 주도적 섭리하심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이 관계를 자유롭게 받아들여 협동한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호세아는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내(호2:7,16,19)임을 강조하였으며,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된 하나님과 자발적으로 결합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결혼의 은유를 사용하였다.
호세아의 예언적 메시지의 촉매제는 고멜이란 여인과의 결혼이다. 이 관계에 대해서는 주요한 두 가지견해가 있다. 하나는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할 당시에는 순결하였으나 나중에 부정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또 하나는 호세아 선지자가 그녀와 결혼할 당시부터 창녀였다고 보는 견해이다. 어느 쪽이든 호세아의 결혼 생활의 충격적 결과는 그의 공동체의 백성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이 결혼으로 태어난자녀들에게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불편한 관계를 가리키는 상징적 이름들이 주어졌다. 정부와 놀아났던고멜은 인내와 슬픔 속에 재결합의 때를 기다리고 있던 호세아의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은 완고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가졌던 관계를 명확히 보여주며, 전능하신 자의 영원한 신실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예언의 나머지 부분(414장)은 여로보암2세의 말년부터 B. C. 730년경에 이르는 여러 기회에주어진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이다. 이 부분의 문체는박력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의 히브리 본문은 전승과정에 손상을 입어 번역상의 어려움이 있다. 처음 세장을 알레고리로 보는 일부 학자들이 있다. 호세아서는 일반적으로 통일된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이 작품전반에 걸쳐 중간 삽입 부분과 편집 자료가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내용분해 :
1. 1-3장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과 그 결과
2. 4장 제사장들이 부정을 묵과하다
3. 5장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벌을 받으리라
4. 6장 이스라엘의 죄는 철저한데 회개는 미온적이다.
5. 7장 내적 부패와 외적 타락
6. 8장 임박한 심판
7. 9장 임박한 재앙
8. 10장 이스라엘의 죄와 벌
9. 11장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추적하시다
10. 12-14 장 회개의 권고, 회복의 약속
호세야 Hoshaiah
느헤미야 시대의 유다 방백으로 재건된 예루살렘 성벽의 낙현식때 유다 자손의 절반을 인도하였다(느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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