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죄인”이라는 단어의 의미
‘죄’와 ‘죄인’이라는 단어만큼 비기독교인에게 더 큰 불쾌감을 주는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기독교 용어와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은 사실상 기독교만의 독특한 방언에 가까운 말들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지 오래될수록, 기독교 내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기독교 밖에서 사용될 때는 이해가 되지 않거나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이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때로 그 오해가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죄’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 ‘죄’란 무엇일까요? 만약 ‘죄’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가 가리키는 상태나 조건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상태나 조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죄’라는 단어가 원래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죄’라는 단어가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죄’라는 단어를 번역한 원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주기도문’ 속 ‘죄’의 의미
우리는 매일 혹은 매주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되뇌입니다. 이 구절은 원래 그리스어로 쓰여졌습니다. 당시 그리스어를 배우던 학생이 이 문장을 번역한다고 가정했을 때, ‘죄’를 뜻하는 단어는 [ὀφείλημα]이며, 이 단어는 ‘빚’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제대로 번역하면 “우리의 빚을 용서해 주시옵소서”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익숙한 ‘죄’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빚과 죄의 관계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빚은 우리 부모님에게 지고 있으며, 특히 어머니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임신하고 출산하며, 그 대가를 받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회, 역사, 환경 등에게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빚을 우리는 결코 다 갚을 수 없지만, 그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기독교에서의 빚과 죄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빚’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처럼, 하나님께 지고 있는 빚도 결코 갚을 수 없습니다. 이 빚은 너무 크고, 우리가 스스로 갚을 수 없기에 예수님이 그 빚을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모든 빚을 갚으셨습니다.
공로주의와 기독교적 이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공로주의(meritocracy) 이데올로기에서는 사람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공로로 의롭다고 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은 다 빚을 지고 있으며, 그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은혜(grace)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적 은혜와 사회적 책임
기독교에서 은혜는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을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았으므로, 다른 사람에게도 그 은혜를 나누고 갚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과 더 나아가 역사적, 생태적 책임도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이를 갚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죄’와 ‘은혜’의 의미
기독교에서 ‘죄’라는 단어는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 잘못을 넘어서,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모든 것을 갚아주셨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의 ‘죄’와 ‘은혜’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빚을 지고 갚아가는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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