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팔린 에릌사토 디다케인 파라 텐 달라싼 카이 쉬나게타이 프로스 아우톤 오클로스 플레이스토스 호스테 아우톤 에이스 플로이온 엠반타 카데스다이 엔 테 달라쎄 카이 파스 호 오클로스 프로스 텐 달라싼 에피 테스 게스 에산
개역개정,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새번역,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매우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바다쪽에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바닷가 뭍에 있었다.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 주위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 배에 올라앉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호숫가를 따라 앉아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영어NIV,1 Again Jesus began to teach by the lake. The crowd that gathered around him was so large that he got into a boat and sat in it out on the lake, while all the people were along the shore at the water's edge.
영어NASB,1 He began to teach again by the sea. And such a very large crowd gathered to Him that He got into a boat in the sea and sat down; and the whole crowd was by the sea on the land.
영어MSG,1 He went back to teaching by the sea. A crowd built up to such a great size that he had to get into an offshore boat, using the boat as a pulpit as the people pushed to the water's edge.
영어NRSV,1 Again he began to teach beside the sea. Such a very large crowd gathered around him that he got into a boat on the sea and sat there, while the whole crowd was beside the sea on the land.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παλιν ηρξατο διδασκειν παρα την θαλασσαν και συνηχθη προς αυτον οχλος πολυς ωστε αυτον εμβαντα εις το πλοιον καθησθαι εν τη θαλασση και πας ο οχλος προς την θαλασσαν επι της γης ην
라틴어Vulgate,1 et iterum coepit docere ad mare et congregata est ad eum turba multa ita ut in navem ascendens sederet in mari et omnis turba circa mare super terram erat
히브리어Modern,1 וישב אל הים ויחל ללמד ויקהלו אליו המון עם רב עד אשר ירד לשבת באניה בים וכל העם עומד על חוף הים ביבשה׃
성 경: [막4:1]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계속되는 갈릴리 사역]
다시(*, 파린) - 이는 마가의 현장감 넘치는 문장 비법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헬라어 '파린'은 '간다', '보낸다'라는 동사와 함께 사용하여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또 과거의 어떤 사건이 다시 반복하여 일어날 때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다음에 이어 나오는 '바닷가'라는 말과 연결하여 생각할 때 바닷가에서 설교하는 것이 처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2:13에 보면 '바닷가'에서 무리에게 설교하신 적이 있고, 3:7에는 바다로 물러갔다가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2:13의 가르침에 이어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신다는 뜻이다. 3:7의 경우는 가르친다는 말이 없고 단순히 '바다'로 물러간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아도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활동하신 현장 묘사라는 점에서는 3:7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바다'란 갈릴리 호수를 가리킨다.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 여기서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청중을 '큰 무리'(*, 오클로스 폴뤼스), 곧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무리들이라 표현함으로써 그 당시의 매우 혼잡했던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공동번역과 새 번역에서는 "군중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 들었기 때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큰 무리'라고 한 개역성경의 표현보다 상황 묘사가 더 실감 있다.즉 예수께서는 수많은 청중들에게 밀려 하는 수 없이 배에 오르셨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상황 묘사는 본장에서 다루는 여러 비유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숫자의 많음을 통해 당시 예수의 말씀의 권위(權爲)와 그분의 영적 영향력 등이 대단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처럼 참 생명과 진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한 흡입력이 있다.
바다에 떠 앉으시고 - 마태복음에서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마 13:2)라고 표현한다. 공동번역 역시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신'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표현이 적절하다. 즉 예수께서는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배(3:9) 위에 올라 거기 앉으시고 해변가에 모인 무리들을 바라보시면서 강론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카이 에디다스켄 아우투스 엔 파라볼라이스 폴라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엔 테 디다케 아우투
개역개정,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새번역,2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는데,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말성경,2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영어NIV,2 He taught them many things by parables, and in his teaching said:
영어NASB,2 And He was teaching them many things in parables, and was saying to them in His teaching,
영어MSG,2 He taught by using stories, many stories.
영어NRSV,2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in parables, and in his teaching he said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εδιδασκεν αυτους εν παραβολαις πολλα και ελεγεν αυτοις εν τη διδαχη αυτου
라틴어Vulgate,2 et docebat eos in parabolis multa et dicebat illis in doctrina sua
히브리어Modern,2 וילמדם הרבה במשלים ויאמר אליהם בלמדו אתם׃
성 경: [막4:2]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계속되는 갈릴리 사역]
예수께서... 가르치시니(*, 에디다스켄 아우투스)- 이는 미완료 과거 시상으로서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계속적으로 가르치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여러가지를 비유로 - 여기서는 예수께서 '비유'를 통해 가르쳤음을 밝히고 있다. 이 절을 장소적 상황 묘사라고 한다면 여기서의 표현읕 방법론적 설명이다. 즉 이때까지의 가르침은 주로 직설적인 표현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비해 여기서는 우회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진리를 제시하는 비유적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사실 본장과 평행구절인 마태복음 13장에서는 7개의 비유가 사용되었지만 본장에서는 등불의 비유(21절;눅 8:16)와 자라는 씨앗의 비유(26-29절)가 더 있어 9개의 비유가 사용된다. 더욱이 마가는 본장 후반부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34절)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본장이 다루고 있는 비유 이외에도 상당수의 비유들을 계속해서 말씀하셨음을 시사한다.
가르치시는 중에(*, 엔 테 디다케) - 직역하면 '그 가르침 가운데서'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예수께서 가르치신 여러 가지 비유 가운데서 몇가지를 소개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즉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기 소개되지 않은 비유도 있을 가능성이 암시되어 있다.
아쿠데테 이두 엨셀덴 호 스페이론 투 스페이라이
개역개정,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새번역,3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우리말성경,3 “잘 들으라.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
가톨릭성경,3 “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영어NIV,3 "Listen! A farmer went out to sow his seed.
영어NASB,3 "Listen to this! Behold, the sower went out to sow;
영어MSG,3 "Listen. What do you make of this? A farmer planted seed.
영어NRSV,3 "Listen! A sower went out to sow.
헬라어신약Stephanos,3 ακουετε ιδου εξηλθεν ο σπειρων του σπειραι
라틴어Vulgate,3 audite ecce exiit seminans ad seminandum
히브리어Modern,3 שמעו שמוע הנה הזרע יצא לזרע׃
성 경: [막4:3]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자의 비유]
들으라(*, 아쿠에테) - 이 말은 '듣는다'(hear), '순종한다'(obey), '말을 듣는다'(listen), '깨닫는다'(understand)의 뜻인 헬라어 '아쿠오'(*)의 명령형이다. 여기서는 의미상 '깨닫는다'의 뜻으로 이해하여 '깨달을지어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이러한 표현은 미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없고 마가복음에만 있는 독특한 문형이다. 이러한 어법은 (1)비유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라는 간청을 위엄 있게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이제까지 가르쳐온 방식과는 다른 비유적 방법이기 때문에 주의를 환기시켜 잘못된 이해가 없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음을알 수 있다. (3)이러한 경고형의 명령형은 이제까지 가르쳐 온 예수의 교훈에 대하여 청중들의 이해가 부족했던 점이 암시된다. 따라서 오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警告)일 수도 있다. 이 말은 9절의 표현, 즉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는 표현과 함께 이 경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씨를 뿌리는 자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비유의 소재가 씨뿌리는 농부로부터 얻어졌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형식, 즉 씨뿌리는 자를 소재로 한 문구는 구약 성경에서도 많이 발견된다(욥 4:8;시 126:5;잠 22:8;사 61:3;호 8:7;10:12). 한편 여기서 씨뿌리는 자(farmer, NIV)는 예수 자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비유의 동기는 당신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와 훈계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고 더불어 그 훈계의 주체자가 바로 예수 자신임을 보게 된다. 물론 본문의 '씨뿌리는 자'를 오늘에 재해석하면 곧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모든 사람으로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스페이레인 호 멘 에페센 파라 텐 호돈 카이 엘덴 타 페테이나 투 우라누 카이 카테파겐 아우토
개역개정,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새번역,4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우리말성경,4 그가 씨를 뿌리고 있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모두 쪼아 먹었다.
가톨릭성경,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영어NIV,4 As he was scattering the seed, some fell along the path, and the birds came and ate it up.
영어NASB,4 as he was sowing, some seed fell beside the road, and the birds came and ate it up.
영어MSG,4 As he scattered the seed, some of it fell on the road and birds ate it.
영어NRSV,4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on the path, and the birds came and ate it up.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σπειρειν ο μεν επεσεν παρα την οδον και ηλθεν τα πετεινα του ουρανου και κατεφαγεν αυτο
라틴어Vulgate,4 et dum seminat aliud cecidit circa viam et venerunt volucres et comederunt illud
히브리어Modern,4 ויהי בזרעו ויפל מן הזרע על יד הדרך ויבא עוף השמים ויאכלהו׃
성 경: [막4:4]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자의 비유]
뿌릴새 더러는 - 본문은 팔레스틴 농부들의 파종(播種) 장면을 연상케 하는 구절로 농부들은 보통 우기(雨期)가 시작되는 10, 11월에 비가 온뒤 밭을 갈게 된다. 그런후 나귀등에 씨를 담은 큰 자루를 싣고 밭에 나아가, 그 씨를 다시 허리춤에 찰 수 있도록 만든 가죽 주머니에 적당히 옮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이미 기경해 놓은 밭 이랑을 돌면서 그 씨를 손으로 여기저기 흩뿌리면 다른 사람이 그의 뒤를 따르며 쟁기로 흙을 덮음으로써 파종을 마치게 된다(Fred H. Wight). 따라서 여기서 '뿌릴새'란 정확히 표현하면 '흩뿌리새'가 된다(창 26:12;레 25:3).
길 가(*, 텐호돈) - 길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에서 삶의 자세로서의 행동 양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자주 다녀 단단히 굳어진 길을가리킨다. 당시 팔레스틴에는 요즈음과 같은 넓고 곧은 도로가 드물었고 대개가 여행자나 나귀 등이 자주 다님으로써 생겨난 자연적인 오솔길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이 오솔길은 공유(公有)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밭 주위나 혹은 그 밭을 가로질러 길이 날 경우 그 밭주인은 그 길을 남겨두고 개간해야만 했다(2:23;마 12:1;눅 6:1). 한편 말씀이나 교훈을 듣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비유 중 첫번째가 '길'과 같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사실 길은 땅이 굳고 통행인이 많기 때문에 씨앗을 싹틔어 열매를 맺도록 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한 땅이다. 누가복음의 평행구는 (눅 8:5)이러한 점을 좀더 강조하기 위해 '밟히며'가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다. 즉 길에 떨어진 씨앗은 밟히어못쓰게 된다는 말이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 길가에 떨어진 씨는 흙으로 덮여지지 않고 그대로 방임되기 때문에 새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만다.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새의 먹이가 되는 것은 그 씨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기보다 그 씨를 담고 있는 땅의 상태가 문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음은 아무에게나 무조건 전한다고 해서 싹트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뿌리면 도리어 사단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또 복음이 밝히어 모욕을 당하게 된다.
알로 데 에페센 에피 토 페트로데스 호푸 우크 에이켄 겐 폴렌 카이 유데오스 엨사네테일렌 디아 토 메 에케인 바도스 게스
개역개정,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새번역,5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우리말성경,5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는데 흙이 얕아 싹이 금방 돋았지만
가톨릭성경,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영어NIV,5 Some fell on rocky places, where it did not have much soil. It sprang up quickly, because the soil was shallow.
영어NASB,5 "Other seed fell on the rocky ground where it did not have much soil; and immediately it sprang up because it had no depth of soil.
영어MSG,5 Some fell in the gravel; it sprouted quickly but didn't put down roots,
영어NRSV,5 Other seed fell on rocky ground, where it did not have much soil, and it sprang up quickly, since it had no depth of soil.
헬라어신약Stephanos,5 αλλο δε επεσεν επι το πετρωδες οπου ουκ ειχεν γην πολλην και ευθεως εξανετειλεν δια το μη εχειν βαθος γης
라틴어Vulgate,5 aliud vero cecidit super petrosa ubi non habuit terram multam et statim exortum est quoniam non habebat altitudinem terrae
히브리어Modern,5 ויש אשר נפל על מקום הסלע אשר אין לו שם אדמה הרבה וימהר לצמח כי לא היה לו עמק אדמה׃
성 경: [막4:5,6]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자의 비유]
흙이 얇은 돌밭에... 말랐고 - 여기서도 마태복음과는 평행구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지만(마 13:5) 누가복음에서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눅 8:6)라고 전혀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과 누가의 기록과는 내용면에서 깊은 상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흙이 얇은 돌밭'이란 돌이 약간 섞여 있는 농토가 아니라 거의 돌로 이뤄진 밭에 흙이 얇게 덮여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토양은 갈릴리 호수 근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곳은 수분을 쉽게 취할 수 있고 마치 온실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빨리 싹이 트게 된다(Donald W. Burdick). 그러나 연한 뿌리는 더 이상 깊게 박히지 못하고 거의 지면에 노출되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열에 견디지 못하여 곧 말라 죽고 만다. 여기에 대해 누가는 '습기가 없어 말랐고'라는 표현을 통해 태양열로 인한 고사(枯死)를 말한 본문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헬리우 데 아나테일란토스 에카우마티스데 카이 디아 토 메 에케인 리잔 엨세란데
개역개정,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새번역,6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우리말성경,6 해가 뜨자 그 싹은 말랐고 뿌리가 없어서 시들어 버렸다.
가톨릭성경,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영어NIV,6 But when the sun came up, the plants were scorched, and they withered because they had no root.
영어NASB,6 "And after the sun had risen, it was scorched; and because it had no root, it withered away.
영어MSG,6 so when the sun came up it withered just as quickly.
영어NRSV,6 And when the sun rose, it was scorched; and since it had no root, it withered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6 ηλιου δε ανατειλαντος εκαυματισθη και δια το μη εχειν ριζαν εξηρανθη
라틴어Vulgate,6 et quando exortus est sol exaestuavit et eo quod non haberet radicem exaruit
히브리어Modern,6 ויהי כזרח השמש ויצרב וייבש כי אין לו שרש׃
카이 알로 에페센 에이스 타스 아칸다스 카이 아네베산 하이 아칸다이 카이 쉬네프닠산 아우토 카이 카르폰 우크 에도켄
개역개정,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새번역,7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7 다른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무성해져 그 기운을 막는 바람에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가톨릭성경,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영어NIV,7 Other seed fell among thorns, which grew up and choked the plants, so that they did not bear grain.
영어NASB,7 "Other seed fell among the thorns, and the thorns came up and choked it, and it yielded no crop.
영어MSG,7 Some fell in the weeds; as it came up, it was strangled among the weeds and nothing came of it.
영어NRSV,7 Other seed fell among thorns, and the thorns grew up and choked it, and it yielded no grain.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αλλο επεσεν εις τας ακανθας και ανεβησαν αι ακανθαι και συνεπνιξαν αυτο και καρπον ουκ εδωκεν
라틴어Vulgate,7 et aliud cecidit in spinas et ascenderunt spinae et offocaverunt illud et fructum non dedit
히브리어Modern,7 ויש אשר נפל בין הקצים ויעלו הקצים וימעכהו ולא נתן פרי׃
성 경: [막4:7]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자의 비유]
가시떨기(*, 타스 아칸다스) - 이 말은 '첨단', '뾰족나온 끝'(apoint)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여기서는 가시가 돋은 나무(thorn plant)를 가리키는 말이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가시덤불'로 번역되어 있는데 본문의 상황을 이해하는데는 오히려 이같은 번역이 어울릴 것이다. 팔레스틴에는 밭주위에 이러한 가시덤불이 많이 자라며 때로는 곡식과 함께 자랄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적당한 시기에 이 가시떨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주변 곡식은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만다. 한편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마태복음에서는 가시떨기 '위에'로(마 13:7), 누가복음은 '... 속에'로(눅 8:7) 각각 표현하고 있다. 이는 각각 다른 상황을 표현하기보다가시 덤불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땅에 씨앗이 뿌려지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라 본다. 사실 가시덤불이 자라는 곳의 토양자체는 어쩌면 매우 기름진 곳인지 모른다. 그러나문제는 그곳에 가시덤불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운(氣運)을 막으므로(*, 쉬네프닢산) - 이 말은 '함께'라는 뜻의 헬라어 '쉰'(*)이라는 말과 '질식시키다', '억누르다'는 뜻의 '프니고'(*)라는 말이 결합된 합성어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함께 억눌렀기 때문에 질식하였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공동번역에서는 '숨이 막혀'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함께 억눌렀다'는 뜻은 가시나무의 여러 줄기들이 힘차게 자라나므로 그 속에 뿌려진 씨는 공기나 햇빛을 적당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고 잎이나 가지가 뻗어 나갈 수도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 공동번역은 '숨이 막혀'라는 표현으로 적절히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가시덤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식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만 특별히 가시덤불을 소재로 택한 것은 상징적으로 씨앗이 자라날수 없는 최악의 조건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결실치 못하였고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 구절이 없다. 이 비유가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 즉 첫째는 씨앗이 밟히거나 새의 먹이가 되어 쓸모없게 된 점, 둘째는 싹은 틔었으나 뿌리를 못내린 점, 세째는 자라기는 했으나 열매를 얻지 못했다는 점으로 보아 다음절(8절) '결실하였으니' 라는 말과 대조되면서도 문맥상 잘 어울리는 구절로서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의 무가치함을 잘 가르치고 있다.
카이 알로 에페센 에이스 텐 겐 텐 칼렌 카이 에디두 카르폰 아나바이논타 카이 아웈사논타 카이 에페렌 헨 트리아콘타 카이 헨 헼세콘타 카이 헨 헤카톤
개역개정,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새번역,8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우리말성경,8 또 다른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잘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들을 맺었다.”
가톨릭성경,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영어NIV,8 Still other seed fell on good soil. It came up, grew and produced a crop, multiplying thirty, sixty, or even a hundred times."
영어NASB,8 "Other seeds fell into the good soil, and as they grew up and increased, they yielded a crop and produced thirty, sixty, and a hundredfold."
영어MSG,8 Some fell on good earth and came up with a flourish, producing a harvest exceeding his wildest dreams.
영어NRSV,8 Other seed fell into good soil and brought forth grain, growing up and increasing and yielding thirty and sixty and a hundredfold."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αλλο επεσεν εις την γην την καλην και εδιδου καρπον αναβαινοντα και αυξανοντα και εφερεν εν τριακοντα και εν εξηκοντα και εν εκατον
라틴어Vulgate,8 et aliud cecidit in terram bonam et dabat fructum ascendentem et crescentem et adferebat unum triginta et unum sexaginta et unum centum
히브리어Modern,8 ויש אשר נפל על האדמה הטובה ויתן פרי עלה וגדל ויעש זה שלשים שערים וזה ששים וזה מאה׃
성 경: [막4:8]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자의 비유]
좋은 땅에 떨어지매 - 여기서 '좋은 땅'은 위의 세 경우의 흠이 모두 제외된, 농부가 정성껏 경작한 옥토를 가리킨다. 이 땅은 씨앗을 무성하게 자라게 하며 열매를 잘맺게 한다.
결실하였으니(*, 에디두카르폰) - 이는 미완료 능동태를 취하고 있어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있음을 현장감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서 한 가지 염두(念頭)에 두어야 할 점은 본 비유가 강조하는 바는, 씨가 뿌려진 땅의 종류에 대한 언급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때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Lane). 비록 온갖 역경이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막아선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필코 자라서 궁극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이 본문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야할 점이다. 한편 여기서 '30배, 60배, 100배'라는 숫자의 점진적 증가는 옥토를 만난 씨가 지닌 왕성한 생명력을 더욱 능동적이고 회화적(繪畵的)으로 묘사해 주고 있다. 특별히 고대 팔레스틴의 농사법이 상당히 미개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양의 결실은 매우 감격적일 만큼 풍성한 결실인 것이다.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호 에콘 오타 아쿠에인 아쿠에토
개역개정,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새번역,9 예수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우리말성경,9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가톨릭성경,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영어NIV,9 Then Jesus said,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영어NASB,9 And He was saying,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영어MSG,9 "Are you listening to this? Really listening?"
영어NRSV,9 And he said, "Let anyone with ears to hear listen!"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ελεγεν αυτοις ο εχων ωτα ακουειν ακουετω
라틴어Vulgate,9 et dicebat qui habet aures audiendi audiat
히브리어Modern,9 ויאמר אליהם מי אשר אזנים לו לשמע ישמע׃
성 경: [막4:9]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자의 비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 이 비유를 시작할 때 '들으라'라는 경고적 어투로 했던 것처럼 비유를 마치면서도 시작 때처럼 경고적 어투이면서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공관복음에서 여러 번 사용된다(23절;마 11:15; 눅 14:35). 이 경고적 어투는, 비유를 통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이는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이는 오해하며 잘못 알아듣는 현실을 이미 전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경고가 주는 의미는, 첫째 이해하기 위해 주의를 집중해 달라는 촉구이다. 둘째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적 의미가 담겨있다. 결국 이 두 가지 의미모두 듣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호테 데 에게네토 카타모나스 에로테산 아우톤 호이 페리 아우톤 쉰 토이스 도데카 텐 파라볼렌
개역개정,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새번역,10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의 주위에 둘러 있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그 비유들이 무슨 뜻인지를 예수께 물었다.
우리말성경,10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 열두 제자들과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 비유가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가톨릭성경,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영어NIV,10 When he was alone, the Twelve and the others around him asked him about the parables.
영어NASB,10 As soon as He was alone, His followers, along with the twelve, began asking Him about the parables.
영어MSG,10 When they were off by themselves, those who were close to him, along with the Twelve, asked about the stories.
영어NRSV,10 When he was alone, those who were around him along with the twelve asked him about the parable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οτε δε εγενετο καταμονας ηρωτησαν αυτον οι περι αυτον συν τοις δωδεκα την παραβολην
라틴어Vulgate,10 et cum esset singularis interrogaverunt eum hii qui cum eo erant cum duodecim parabolas
히브리어Modern,10 ויהי בהיותו לבדו וישאלוהו האנשים אשר סביביו עם שנים העשר על המשל׃
성 경: [막4:10]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
홀로 계실 때 - 이 표현은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본절의 상황 설명은 1절의 상황 묘사와는 전혀 다르다. 즉 비유를 가르치기 시작할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배 위로 올라가야 할 정도였는데 여기서는 예수께서 홀로 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때'는 비유를 통한 설교를 마친 후 군중들이 자리를 떠난 뒤라고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장소는 같은 장소, 즉 배 위가 틀림없다(36절 주석 참조).
함께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들로 더불어 - 비유에 관하여 질문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라고만 언급하여(마 13:10;눅 8:9) 진리 탐구에 대한 제자들의 열의를 은연중에 나타내 주는 동시에 제자들이 자신들의 영적 무지를 타인들에게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소극적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는 달리 마가복음에서만 제자들의 수가 12명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 외에 비유를 들었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남아 비유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있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이 편협하게도 12제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지적해 주기 위한 본서 기자 마가의 진지한 노력을 넌지시 보여 준 표현이라 할 것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밀의 종교(mystery religion)에서나 볼 수 있는 폐쇄성을 거부하시고 당신의 진리를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진리를 계시해 주기 원하셨다.
비유들을 묻자오니 - 여기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끝난 후에 질문을 하고 있지만 '비유들'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본 비유 이외에는 여러 가지 비유들이 언급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2절 주석 참조). 한편 이 질문의 내용에 있어서 마태복음에서는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비유의 뜻을 묻는다. 그리고 본 마가복음은 이 양자 모두를 묻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것은 제자뿐만 아니라 다른 청중들까지 모두 비유를 통한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마태의 기록에서 보듯이 제자들이 비유로 가르친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본격적으로 비유만을 통한 진리 교육이 예수께서 이제까지 가르쳐왔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설교였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꼈을 것이다(2절 주석 참조).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휘민 데도타이 그노나이 토 뮈스테리온 테스 바실레이아스 투 데우 에케이노이스 데 토이스 엨소 엔 파라볼라이스 타 판타 기네타이
개역개정,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새번역,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 ㉠그, '비유로'
우리말성경,11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가톨릭성경,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영어NIV,11 He told them, "The secret of the kingdom of God has been given to you. But to those on the outside everything is said in parables
영어NASB,11 And He was saying to them, "To you has been given the mystery of the kingdom of God, but those who are outside get everything in parables,
영어MSG,11 He told them, "You've been given insight into God's kingdom--you know how it works. But to those who can't see it yet, everything comes in stories, creating readiness, nudging them toward receptive insight.
영어NRSV,11 And he said to them, "To you has been given the secret of the kingdom of God, but for those outside, everything comes in parables;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ελεγεν αυτοις υμιν δεδοται γνωναι το μυστηριον της βασιλειας του θεου εκεινοις δε τοις εξω εν παραβολαις τα παντα γινεται
라틴어Vulgate,11 et dicebat eis vobis datum est mysterium regni Dei illis autem qui foris sunt in parabolis omnia fiunt
히브리어Modern,11 ויאמר אליהם לכם נתן לדעת סוד מלכות האלהים ואשר בחוץ להם הכל במשלים׃
성 경: [막4:11]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 '비밀'(*, 뮈스테리온)이라는 말은 복음서에서는 바로 여기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평행구에서만사용된 말이다(마 13:11; 눅 8:10). 이에 비해 바울서신에는 무려 21번이나 나타나며 계시록에는 4번 쓰였다(계 1:20;10:7;17:5,7). 이 말은 '전수받은 자'란 뜻을 가진 헬라어 '뮈스테스'(*)와 '폐쇄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뮈에오'(*)로부터 파생된 말로서 '알려지고 전수되는 것이 폐쇄된' 것을 의미한다. 한편이 용어는 당시 흥행하던 밀의 종교(mystery religion)내에서 외부로 전혀 노출되지 않는 어떤 의식을 통하여 그들만의 비밀한 가르침을 전수하던 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Donald W. Burdick).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 '비밀'은 단지 허락된 몇몇 사람만을 위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비밀은 전에 알려지지 않은 일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즉 이 '비밀'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 선포된다. 그러나 그 비밀을 궁극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앙을 가진 자들이다. 특히 마가복음에 나타난 이 '비밀'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더불어 이미 도래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에 관해 래드(G. E. Ladd)는 말하기를 '이 비밀은 다니엘서에 예언된다(단 2:44;12:12,13)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세상에 도래하여 사람들 가운데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바, 숨겨진 형태로 진보해 나가는 것이다' 라고 했다. (A theology of the N. T. p. 94). 한편 본문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1:15 주석을 참조하라.
외인(外人)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 이 구절을 12절에 붙여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외인'이라는 말은 본절에서 지칭하는 '너희들' 즉 질문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서 불신앙의 완악(玩惡)한 마음을 지닌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것'은 예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이 함축하고 있는 모든 의미를, '비유'(*, 파라볼레)라는 말은 '수수께끼'(riddle)로서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말은 비밀을 알게 했다는 말과 대칭을 이루어 천국에 대한 비밀이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계속 남아 있게 했다는 말이 된다.
히나 블레폰테스 블레포신 카이 메 이도신 카이 아쿠온테스 아쿠오신 카이 메 쉬니오신 메포테 에피스트렢소신 카이 아페데 아우토이스 타 하마르테마타
개역개정,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새번역,12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 ㉡사 6:9; 10
우리말성경,12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6:9-10
가톨릭성경,12 ‘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NIV,12 so that, "'they may be ever seeing but never perceiving, and ever hearing but never understanding; otherwise they might turn and be forgiven!'"
영어NASB,12 so that WHILE SEEING, THEY MAY SEE AND NOT PERCEIVE, AND WHILE HEARING, THEY MAY HEAR AND NOT UNDERSTAND, OTHERWISE THEY MIGHT RETURN AND BE FORGIVEN."
영어MSG,12 These are people-- Whose eyes are open but don't see a thing, Whose ears are open but don't understand a word, Who avoid making an about-face and getting forgiven."
영어NRSV,12 in order that 'they may indeed look, but not perceive, and may indeed listen, but not understand; so that they may not turn again and be forgiven.'"
헬라어신약Stephanos,12 ινα βλεποντες βλεπωσιν και μη ιδωσιν και ακουοντες ακουωσιν και μη συνιωσιν μηποτε επιστρεψωσιν και αφεθη αυτοις τα αμαρτηματα
라틴어Vulgate,12 ut videntes videant et non videant et audientes audiant et non intellegant nequando convertantur et dimittantur eis peccata
히브리어Modern,12 למען יראו ראו ולא ידעו ושמעו שמוע ולא יבינו פן ישובו ונסלח לחטאתם׃
성 경: [막4:12]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
이는 저희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 70인역(LXX)에 의한 사 6:9, 10의 자유스런 인용이다. 그런데 히브리 맛소라 사본에는 사 6:9, 10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셈어에 있어서 명령형은 곧 결과를 표현하는데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70인역에서 이사야의 글과 마가가 여기에 인용한 구절과는 뉘앙스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마가는 본문에서 보고 아는 것을 먼저 그리고 듣고 깨닫는 것을 나중에 배치시키지만 사 6:9은 듣고 깨닫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먼저 언급된다. 또한 사 6:10의 첫 부분과 같은 강한 표현인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는 70인역의 본문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으며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라는 문구를 변형시켜 단순히 '돌이켜'(*, 카이 이아소마이 아우투스),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카이 아페데 아우토이스)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 마가는 아람어의 역본인 탈굼역(The Targum)을 따르고 있다. 이는 마가복음의 신빙성을 보증해 준다. 한편 예수의 이 말씀은 비유의 목적이 믿지 않는 자들(외인)은 진리를 받을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게 하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씀이 신학적으로 매우 난해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이 내용을 기록한 각 복음서간의 차이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마태는 본문 초두에 사용된 접속사 '히나'(*, '하기 위하여', NIV성경은 모호하게 '히나'를 '이는'<so that>이라고 번역함) 대신에 '호티'(*, '그 결과')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누가는 '메포테'(*, '... 하지 않도록')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접속사 '히나'의 뜻과 관련하여 본 구절은 여러 가지로해석이 분분하다. (1) '히나'는 문법상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갖는데, 이는 마가가 나름대로 목적어적 용법으로 예수의 말씀을 해석해 놓았을 때의 경우이다. 이에 따르면 이 비유의 목적이 '외인들을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2)마가가 원래의 아람말 '데'(*)를 오역하여 '히나'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그 '데'는 '... 하기 위하여' (in order that)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하는 자'(who)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즉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너희에게는 주어졌으나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외인에게는 ...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라고 해석되어야 한다(W. W. Wessel). (3)'히나'는 마태복음의 '호티'(*) 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예수는 비유의 목적을 말씀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비유의 결과를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다. 따라서 '히나'는 '... 때문에'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될 때 본문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한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상의 해석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러한 해석들을 통합하여 해석하고 있다. 즉 '외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로 비유로 말하고 그 비유를 알아보고 듣기만 하면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번역함으로써 마치 시험을 치르고 용서를 받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쨌든 본절 말씀을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그저 단순하게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한 가지 이유가 진리를 '외인(완고한 불신자)에게는' 감추는 것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더 적극적인 입장에서 마샬(Marshall)이 언급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시는 방법을 통하여 그의 청중들로 하여금 표면적인 이야기를 뚫고 들어와 그 실제적인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하셨으며, 동시에 어두운 눈과 둔한 귀를 가진 자가 돌이켜진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Commentary on the Luke, p. 323)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표면적으로는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 즉 완악한 맹목성과 복음의 거부에 관한 정죄 및 그로 인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선포한 것(Robertson)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완고한 불신자에게는 비유가 심판을 지향하는 가리워진 비밀에 속하나 예수께서는 궁극적으로 백성들에게 그같은 심판과 형벌의 메시지를 제공하심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충격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깨달음과 회개를 촉구하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한편 본문에 대한 좀더 상세한 설명은 마13:11-15 주석을 참조하라.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우크 오이다테 텐 파라볼렌 타우텐 카이 포스 파사스 타스 파라볼라스 그노세스데
개역개정,13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새번역,13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
우리말성경,13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렇다면 다른 비유는 어떻게 알아듣겠느냐?
가톨릭성경,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영어NIV,13 Then Jesus said to them, "Don't you understand this parable? How then will you understand any parable?
영어NASB,13 And He said to them, "Do you not understand this parable? And how will you understand all the parables?
영어MSG,13 He continued, "Do you see how this story works? All my stories work this way.
영어NRSV,13 And he said to them, "Do you not understand this parable? Then how will you understand all the parables?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λεγει αυτοις ουκ οιδατε την παραβολην ταυτην και πως πασας τας παραβολας γνωσεσθε
라틴어Vulgate,13 et ait illis nescitis parabolam hanc et quomodo omnes parabolas cognoscetis
히브리어Modern,13 ויאמר להם הן לא ידעתם את המשל הזה ואיך תבינו את המשלים כלם׃
성 경: [막4:13]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너희가... 알지 못할진대 - 예수께서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하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의 무지를 가볍게 책망하신다. 즉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이미 입문한(11절)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그 의미가 명백하여 깨달음이 있는 자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비유이지 않은가? 만일 이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찌 더 어려운 비유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하고 실망섞인 책망을 하신 것이다. 한편 이같은 사실에 대해 혹자(Cranfield)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덮여 있는 어두움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제자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호 스페이론 톤 로곤 스페이레이
개역개정,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새번역,14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4 씨를 뿌리는 농부는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영어NIV,14 The farmer sows the word.
영어NASB,14 "The sower sows the word.
영어MSG,14 "The farmer plants the Word.
영어NRSV,14 The sower sows the word.
헬라어신약Stephanos,14 ο σπειρων τον λογον σπειρει
라틴어Vulgate,14 qui seminat verbum seminat
히브리어Modern,14 הזרע הוא זרע את הדבר׃
성 경: [막4:14]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여기서부터는 3-8절까지의 비유에 대한 해석이다. 예수의 입을 통해서 직접 그 의미가 해석된다.
뿌리는 자 - 이에 대해 본문에서는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지만 그는 분명 말씀의 주체이신 그리스도와, 복음을 이 땅에 선포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 마태복음에서는 간접적으로 '씨'가 '천국 말씀'임을 밝히고 있는데(마 13:19) 비해 누가 복음에서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직접 서술한다(눅 8:11). 그리고 공동번역에서는 본문이 '뿌린 씨는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로써 분명한 것은 비유의 '씨'는 '말씀'을 의미하며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말씀', 곧 예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는 확실한 소식인 것이다. 사실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에서(11절) 이러한 해석은 적절하다. 한편 본 비유에 있어서 그 강조점은 '말씀을 뿌리는 일'(the sowing of the Word)이었으나 그 해석에 있어서의 강조점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the reception of theWord)임에 유의해아 한다(15-20절).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사역에 있어서 그 비유의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사실 예수는 이미 당신의 '말씀을 뿌리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의 부정적 측면을 경험하신 바 있다(2, 3장).
후토이 데 에이신 호이 파라 텐 호돈 호푸 스페이레타이 호 로고스 카이 호탄 아쿠소신 유뒤스 에르케타이 호 사타나스 카이 아이레이 톤 로곤 톤 에스파르메논 에이스 아우투스
개역개정,15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새번역,15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말씀이 뿌려질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우리말성경,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가로채 간다.
가톨릭성경,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영어NIV,15 Some people are like seed along the path, where the word is sown. As soon as they hear it, Satan comes and takes away the word that was sown in them.
영어NASB,15 "These are the ones who are beside the road where the word is sown; and when they hear, immediately Satan comes and takes away the word which has been sown in them.
영어MSG,15 Some people are like the seed that falls on the hardened soil of the road. No sooner do they hear the Word than Satan snatches away what has been planted in them.
영어NRSV,15 These are the ones on the path where the word is sown: when they hear, Satan immediately comes and takes away the word that is sown in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5 ουτοι δε εισιν οι παρα την οδον οπου σπειρεται ο λογος και οταν ακουσωσιν ευθεως ερχεται ο σατανας και αιρει τον λογον τον εσπαρμενον εν ταις καρδιαι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15 hii autem sunt qui circa viam ubi seminatur verbum et cum audierint confestim venit Satanas et aufert verbum quod seminatum est in corda eorum
히브리어Modern,15 ואלה הם הנזרעים על יד הדרך אשר יזרע בם הדבר וכשמעם אותו מיד בא השטן וישא את הדבר הזרוע בלבבם׃
성 경: [막4:15]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 본문은 4절의 중복으로서 매사를 신중하고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는 마가 기록의 특징이다. 물론 여기서 '길가'란 자신의 능력과 경험과 선입관과 주의 주장으로 인해 굳어질대로 굳어진 완악한 심령을 가리킨다. 이들에게는 어떤 영적 감화나 감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들이니(*, 후토이 데 에이신) - 이를 좀더 상세히 번역하면 '이를테면, 이 사람들은 다음에 나오는 종류의 사람들이다'라는 뜻이다. 길바닥에 씨앗이 뿌려진 것에 비유되는 사람은 말씀을 들었으나 자기의 것이 되지못하고 사단에게 빼앗기는 사람이다.
사단이 즉시 와서 - 여기서 '사단'( , 사타나스)이란 인간의 내면에 흩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가는 악의 실체로서, 4절에 언급된 '새들'을 이 사단으로 보기도 하고(Lenski) 또 사단의 하수인으로 보기도 한다(Donald W. Burdick).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단'이라는 말 대신 사단의 별칭(別稱)이라 할 수 있는 '악한 자'(*, 호 포네로스)로 묘사하고(마 13:19) 누가복음에서는 '마귀'(*, 호디아볼로스)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초점은 누가 어떻게 빼앗아 가느냐에 있지 않다. 핵심은 자기에게 들려진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즉 천국의 비밀이 자신에게 주어졌어도 자기의 영혼의 양식과 신령한 지혜로 만들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비유이다. 이 의미는 말씀을 듣고 천국의 비밀을 알았으면서도 즉시 자기 삶으로 옮겨 천국을 이루어가지 못하면 그 말씀은 남의 것이 되고 만다는 뜻이다. 특히 자기 삶으로 옮기는 결단과 실천성을 강조하는 말이 '즉시'이다. 말씀을 내면 깊숙이 뿌리박지 못하면 '즉시' 사단이 '와서' 빼앗아 간다.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 - 여기서 '저희에게 뿌리운'은 원어로 완료 수동태 분사형을 취한 단어로서 그들에게 넉넉하고 적절히 뿌려져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마태복음에서는 '그 마음에 뿌리운'(마 13:19)으로 묘사하여 그 씨앗이 단지 주변에 뿌려진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뿌려졌음을 암시한다.
카이 후토이 에이신 호모이오스 호이 에피 타 페트로데 스페이로메노이 호이 호탄 아쿠소신 톤 로곤 듀데오스 메타 카라스 람바누신 아우톤
개역개정,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새번역,16 돌짝밭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말성경,16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즉시 받아들이지만
가톨릭성경,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영어NIV,16 Others, like seed sown on rocky places, hear the word and at once receive it with joy.
영어NASB,16 "In a similar way these are the ones on whom seed was sown on the rocky places, who, when they hear the word, immediately receive it with joy;
영어MSG,16 "And some are like the seed that lands in the gravel. When they first hear the Word, they respond with great enthusiasm.
영어NRSV,16 And these are the ones sown on rocky ground: when they hear the word, they immediately receive it with joy.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ουτοι εισιν ομοιως οι επι τα πετρωδη σπειρομενοι οι οταν ακουσωσιν τον λογον ευθεως μετα χαρας λαμβανουσι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16 et hii sunt similiter qui super petrosa seminantur qui cum audierint verbum statim cum gaudio accipiunt illud
히브리어Modern,16 וכן הנזרעים על מקמות הסלע הם השמעים את הדבר ומהר בשמחה יקחהו׃
성 경: [막4:16]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본절은 돌밭에 뿌리워진 씨앗에 대한(5절) 해설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 15절과의 차이점이 있다. 15절에서는 말씀을 들은 사람에 대한 반응이 직접 묘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본절은 15절의 상태보다 좀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수용(受容)하였음을 밝힌다. 15절이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라면 이 비유는 비록 순간적이라고는 하나 진리에 대한 관심이나 진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는 사람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일시적이나마 신앙 생활에 흥미를 갖고 열심히 교회생활에 몰두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다.
카이 우크 에쿠신 리잔 엔 헤아우토이스 알라 프로스카이로이 에이신 에이타 게노메네스 들맆세오스 에 디오그무 디아 톤 로곤 유데오스 스칸달리존타이
개역개정,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새번역,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우리말성경,17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고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진다.
가톨릭성경,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영어NIV,17 But since they have no root, they last only a short time. When trouble or persecution comes because of the word, they quickly fall away.
영어NASB,17 and they have no firm root in themselves, but are only temporary; then, when affliction or persecution arises because of the word, immediately they fall away.
영어MSG,17 But there is such shallow soil of character that when the emotions wear off and some difficulty arrives, there is nothing to show for it.
영어NRSV,17 But they have no root, and endure only for a while; then, when trouble or persecution arises on account of the word, immediately they fall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17 και ουκ εχουσιν ριζαν εν εαυτοις αλλα προσκαιροι εισιν ειτα γενομενης θλιψεως η διωγμου δια τον λογον ευθεως σκανδαλιζονται
라틴어Vulgate,17 et non habent radicem in se sed temporales sunt deinde orta tribulatione et persecutione propter verbum confestim scandalizantur
히브리어Modern,17 אך אין להם שרש בקרבם ורק לשעה יעמדו ואחר כן בהיות צרה ורדיפה על אדות הדבר מהרה יכשלו׃
성 경: [막4:17]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 뿌리가 성장할 수 없는 돌밭에 뿌리워진 씨앗을 '그 속에 뿌리가 없어'로 묘사하고 있다. 실로 이런 자들은 그 마음속에 말씀의 씨를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그 말씀이 지속적인 생명력으로 커가 끝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인 뿌리가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들의 생명력은 일시적이요 그 본질은 경박하고 유약하다.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 - 6절에 언급된 태양열이 여기서는 '환난'(*, 드립시스)과 '핍박'(*, 디오그모스)으로 묘사되었다. 먼저 헬라어 '드립시스'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짓누르는 압박'을, '디오그모스'는 '뒤에서 바짝 추격하는 듯한 위협'을 의미한다. 결국 이 양자는 외부로부터 오는 온갖 어려움과 박해를 가리킨다. 실로 천국에 이르는 방법을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살때, 외부로부터나 자기 자신 안으로부터 여러 가지 갈등과 유혹이 있게 마련이다. 또 불의한 세력들이 진리와 정의를 파괴하려고 하면서 공격해 오기도 한다(롬1:25;2:8;약 3:14;벧후 2:2). 15절의 '사단'을 마태복음에서 '악인들'로 묘사한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일치된다. 사단은 천국을 파괴하려는 세력이다. 이러한 환난이나 핍박을 견디어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6절에 언급된 '태양'은 이처럼 뿌리가 없는 식물에게는 생장(生長)의 크나큰 장애물로 대두된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리워진 '씨'에게 있어서는 그 생장에 있어서습기 만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태양의 빛과 열기없이는 '씨'는 결코 푸르게 성장하여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즉 그 '씨'는 '말씀을 인하여'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핍박과 환난('태양')없이는 결단코 풍성한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Lenski).
곧 넘어지는 자요 - 여기서 '넘어진다'로 번역된 헬라어 '스칸달리조마이'(*)는 원형 '스칸달론'(*, '동물들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에 있는 막대기 모양의 물건'을 지칭)에서 유래한 현재 시상의 단어로서결국 계속 그 함정에 빠져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실로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지 않은 식물은 아무리 그 외모가 화려하고 푸르르다 하더라도 강렬한 태양 앞에 쉬 쓰러지고 말듯이 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심령은 환난과 핍박에 견디지 못하고 마치 사냥꾼의 올무에 걸려 더 이상 활동력을 상실한 짐승처럼 죄의 올무, 절망과 좌절의 올무, 온갖 고통의 올무에 걸린 채 더 이상의 신앙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될 것이다(딤전 3:7;6:9).
카이 후토이 에이신 호이 에이스 타스 아칸다스 스페이로메노이 후토이 에이신 호이 톤 로곤 아쿠산테스
개역개정,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새번역,18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달리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우리말성경,18 또 다른 사람들은 말씀이 가시밭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가톨릭성경,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영어NIV,18 Still others, like seed sown among thorns, hear the word;
영어NASB,18 "And others are the ones on whom seed was sown among the thorns; these are the ones who have heard the word,
영어MSG,18 "The seed cast in the weeds represents the ones who hear the kingdom news
영어NRSV,18 And others are those sown among the thorns: these are the ones who hear the word,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ουτοι εισιν οι εις τας ακανθας σπειρομενοι ουτοι εισιν οι τον λογον ακουοντες
라틴어Vulgate,18 et alii sunt qui in spinis seminantur hii sunt qui verbum audiunt
히브리어Modern,18 והאחרים הנזרעים בין הקצים הם השמעים את הדבר׃
성 경: [막4:18,19]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가시떨기에...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 - 가시덤불에서 싹을 틔웠으나 가시덤불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앗의 비유이다. 앞절과의 차이점은, 17절에서는 뿌리가 없어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면 넘어지는 자, 곧 배반자를 말하나(눅 8:13) 여기서는 비록 뿌리(말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성실성과 이해력)은 있으나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끝내 결실치 못하는 자를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결과적 측면에서 17절의 경우와 동일하다고 본다. 실로 가시떨기가 자라는 땅은 길가나 돌밭보다 훨씬 뛰어난 옥토임에 분명하다(7절). 따라서 이곳에 씨앗이 떨어지게 되면 그 씨앗은 뿌리를깊게 내리게 되고 또 싹이 돋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성장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가시로 인해 방해를 받다가 종내 결실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은 이 가시를 세경우로 묘사하고 있다. (1)'세상의 염려'이다. 여기 '세상'(*, 투 아이오노스)은 문자적으로 '그 시대'로서 일정한 기간 내지는 인간에게 부과된 한 세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상의 염려'란 인간의 생명이 끝내 종말을 고하게될 현세대에 국한된 근심(Lenski), 현세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열심과 걱정거리(Donald W. Burdick),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일어나는 불안(Taylor)등이다(마6:25, 31;눅 8:14;21:34;고전 7:33). (2)'재리(財利)의 유혹'이다. 재리와 가시를 연결시킨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그 까닭은 재물은 인간의 영혼을 깊이 찌르는 가시가 되기 때문이다(The Pulpit Commentary , 딤전 6:10). 이 '재리의 유혹'은 재물이 지닌 기만성, 곧 재물이 어떤 안식과 자신감 등을 약속하는 듯하나 결국에는 그 소유자와 기대자로 하여금 허무한 절망에 빠뜨리게 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Taylor,Lenski, Burdick, 마 11:21-23). (3)'기타 욕심'이다. '씨'(말씀)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질식시켜 그 기운을 막는 모든 장애 요소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혹자(Robertson)는 '모든 정욕, 모든 갈망, 모든 세속적 쾌락'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눅 8:14에는 이 말 대신에 '이 생의... 일락(逸樂)'이라 표현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모두 앗아가는 현세 지향적이고 감각적이며 관능적인 관심과 욕망을 암시하고 있다. 진정 이같은 욕망들은 마치 기운찬 가시떨기처럼 우리의 영혼과 생활 전영역을 뒤덮음으로써 말씀의 씨의 성장을 철저히 제어해 버린다.
카이 하이 메림나이 투 아이오노스 투투 카이 헤 아파테 투 플루투 카이 하이 페리 타 로이파 에피뒤미아이 에이스포류오메나이 쉼프니구신 톤 로곤 카이 아카르포스 기네타이
개역개정,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새번역,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다른 일의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우리말성경,19 이 세상의 걱정, 돈의 유혹, 그 밖에 다른 많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의 기운을 막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가톨릭성경,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영어NIV,19 but the worries of this life, the deceitfulness of wealth and the desires for other things come in and choke the word, making it unfruitful.
영어NASB,19 but the worries of the world, and the deceitfulness of riches, and the desires for other things enter in and choke the word, and it becomes unfruitful.
영어MSG,19 but are overwhelmed with worries about all the things they have to do and all the things they want to get. The stress strangles what they heard, and nothing comes of it.
영어NRSV,19 but the cares of the world, and the lure of wealth, and the desire for other things come in and choke the word, and it yields no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19 και αι μεριμναι του αιωνος τουτου και η απατη του πλουτου και αι περι τα λοιπα επιθυμιαι εισπορευομεναι συμπνιγουσιν τον λογον και ακαρπος γινεται
라틴어Vulgate,19 et aerumnae saeculi et deceptio divitiarum et circa reliqua concupiscentiae introeuntes suffocant verbum et sine fructu efficitur
히브리어Modern,19 ודאגות העולם הזה ומרמת העשר ותאות שאר הדברים באות וממעכות את הדבר ופרי לא יהיה לו׃
카이 에케이노이 에이신 호이 에피 텐 겐 텐 칼렌 스파렌테스 호이티네스 아쿠우신 톤 로곤 카이 파라데콘타이 카이 카르포포루신 헨 트리아콘타 카이 헨 헼세콘타 카이 헨 헤카톤
개역개정,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새번역,20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말성경,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진 것과 같은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가톨릭성경,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영어NIV,20 Others, like seed sown on good soil, hear the word, accept it, and produce a crop--thirty, sixty or even a hundred times what was sown."
영어NASB,20 "And those are the ones on whom seed was sown on the good soil; and they hear the word and accept it and bear fruit, thirty, sixty, and a hundredfold."
영어MSG,20 "But the seed planted in the good earth represents those who hear the Word, embrace it, and produce a harvest beyond their wildest dreams."
영어NRSV,20 And these are the ones sown on the good soil: they hear the word and accept it and bear fruit, thirty and sixty and a hundredfold."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ουτοι εισιν οι επι την γην την καλην σπαρεντες οιτινες ακουουσιν τον λογον και παραδεχονται και καρποφορουσιν εν τριακοντα και εν εξηκοντα και εν εκατον
라틴어Vulgate,20 et hii sunt qui super terram bonam seminati sunt qui audiunt verbum et suscipiunt et fructificant unum triginta et unum sexaginta et unum centum
히브리어Modern,20 ואלה המזרעים על האדמה הטובה הם השמעים את הדבר ומקבלים אתו ועשים פרי לשלשים שערים ולששים ולמאה׃
성 경: [막4:20]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씨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을 하는 자 - 이 비유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의 경우를 언급한 것으로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결실'에 관한 내용이다. 실로 '씨'(말씀)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은 인간의 심령에 그 씨가 뿌려져 그 인간의 온 인격과 삶을 통해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있다. 이같은 결실을 맺는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즉 그는 말씀을 경시하지도,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도, 세상의 유혹과 염려에 빠지지도 않고 오직 주어지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실행하며, 온전히 간직하는 데 힘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은 그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 커다란 결실, 곧 진리와 은혜와 덕이 충만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한편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듣고'(*, 아쿠우신, '순종하다','깨닫다','이해하다'는 뜻도 지님)와 '받아'(*,파라데콘타이, '영접하다', '승인하다', '인정하다'는 뜻도 지님) 그리고 '결실을 하는'(*, 카르포포루신)이라는 말이 모두 현재 시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말씀을 계속적으로 듣고 또 계속적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여 계속적으로 결실을 한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실로 앞에 언급된(15-19절) 세 종류의 밭에 비유되는 사람들이 듣고 인정하는 것을 중도에 포기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좋은 땅'의 사람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말씀에 착념함으로써 끝내 많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마 13:23;눅 8:15).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그 결실이 30배, 60배, 100배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는 점이다. 이러한 소출은 그 밭(사람)의 능력보다 오히려 그 씨(말씀)가 지닌 역동적 생명력을 강조한 것이라 본다. 실로 한 인간에게 뿌려진 씨는 그 내부에서 풍성한 성장을 함으로써 회개와 겸손과 온유함 등의 심령의 변화를 가져오며 그러한 변화는 그 속에서만 머무는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타인에게도 옮아가는 것이다. 한편 이 비유는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를 생각나게 한다(마 25:14-30). 즉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등의 다양한 숫자 나열을 통해 그 결실의 종류가 다양함을 암시해 준다. 이는 주의 말씀을 실천하여 천국을 이루어 갈 때 각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결실 각각을 존중해야 한다.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메티 호 뤼크노스 에르케타이 히나 휘포 톤 모디온 테데 에 휘포 텐 클리넨 우크 히나 에피 텐 뤼크니안 에피테데
개역개정,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새번역,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다가 말 아래에나, 침상 아래에 두겠느냐? 등경 위에다가 두지 않겠느냐?
우리말성경,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와 그릇 아래 두거나 침대 밑에 숨겨 놓겠느냐? 등잔대 위에 놓지 않겠느냐?
가톨릭성경,2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영어NIV,21 He said to them, "Do you bring in a lamp to put it under a bowl or a bed? Instead, don't you put it on its stand?
영어NASB,21 And He was saying to them, " A lamp is not brought to be put under a basket, is it, or under a bed? Is it not brought to be put on the lampstand?
영어MSG,21 Jesus went on: "Does anyone bring a lamp home and put it under a washtub or beneath the bed? Don't you put it up on a table or on the mantel?
영어NRSV,21 He said to them, "Is a lamp brought in to be put under the bushel basket, or under the bed, and not on the lampstand?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ελεγεν αυτοις μητι ο λυχνος ερχεται ινα υπο τον μοδιον τεθη η υπο την κλινην ουχ ινα επι την λυχνιαν επιτεθη
라틴어Vulgate,21 et dicebat illis numquid venit lucerna ut sub modio ponatur aut sub lecto nonne ut super candelabrum ponatur
히브리어Modern,21 ויאמר אליהם הכי יביאו הנר למען יושם תחת האיפה ותחת המטה ולא למען יעלהו על המנורה׃
성 경: [막4:21]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등불에 대한 비유]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 21-25절은 두가지 내용이(21-23, 24-25절) 한 데 어우러진 일종의 삽화 형식의 메시지로서 예수께서 여러 기회들을 통해 말씀하신 내용들이다. 특히 누가복음은 본문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눅 8:16-18), 마태복음은 산상수훈을 근간으로 본문과 연결되고 있다(21절-마 15:15;23절-마 11:15;13:9,43;24절-마 7:2;25절-마 25:29등). 여기서 특히 강조되는 바는 예수의 가르침에 접한 자의 책임성(責任性)이다. 즉 빛을 받은 자는 그 빛을 타인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 오는 것은 - 다른 복음서의 평행구와는 달리 오직 마가만이 '등불'(*, 호뤼크노스)을 '가져 온다'(*, 에르케타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등불 앞에 정관사 '호'를 붙이고 있다. 바로 이것이 본 비유를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즉 등불 앞에 정관사 '호'가 붙어 '그 등불' 곧 세상에유일 무이한 등불이신 '오신' 예수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가져 온다'는 말은 종말론적 사상을 함축한 표현이다. 즉 지금까지 감춰져 왔던 계시를 종말의 시점에 이른 이제 만인에게 알리고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앞에 언급된 '하나님 나라의 비밀'(11절) 개념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Taylor). 한편 본문에 언급된 '등'은 팔레스틴에서 사용하던 토기로 된 납작한 등잔으로서 그 속에는 감람유(olive)가 채워지며 그 기름에 심지를 넣고 불을 켜게 된다. 이 등잔은 주인이나 종에 의해 방 안으로 옮겨지며 옮겨진 등잔은 주로 기다란 등대 위에 안치되어 주위를 밝게 한다.
말 아래... 두려 함이냐 - 부정적인 대답을 유도하는 헬라어 '메티'(*)로시작되는 본문은 결단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간접적인 명령이기도 하다. 여기서말은 가루나 곡식을 되는 도량형기구이다. 공동번역에서는 '뒷박'이라고 번역하며 누가복음의 평행구(눅 8:16)는 등불을 덮는 '그릇'으로 묘사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등불을 켜지 않을 때 이 그릇으로 등잔을 덮어 두거나, 침상 아래 그 등잔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어쨌든 이 '말'(bushel)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왜곡, 단절시키게 만드는 세상적인 부와 이익을 암시한다. 그리고 평상은 침상(공동번역)을 뜻하며 상징적으로는 세상이 제공하는 평온함과 쾌락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실로 이처럼 '말'과'평상'으로써 '등불'을 가리우듯이 주께로 받은 복음 곧 빛나는 그 계시를 결코 세상의 유익과 쾌락으로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이다.
등경 위에 두려함이 아니냐 - 여기서 '등경'은 등잔을 올려 놓는 받침대로서 가난한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이것 대신 흙으로 된 바람벽에 돌출구를 만들어 그곳에 등잔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본 구절의 의도는, 등불을 가져 오는 것은 집 안을 환하게 밝히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마 5:15 주석 참조) 빛이 가장 잘 퍼져나갈 수 있는 장소인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등경은 상징적으로 복음의 빛을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할 사명을 맡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본다(계 1:20). 여기서 등불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죄악과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리의 세계를 건설키 위해 이 땅에 오신 참 빛 곧 세상의 유일한 빛이시다(요 1:9). 둘째로 복음이다. 그 복음의 빛이 세상을 속속히 비추도록 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이 세상 한 가운데 선포하여야 한다(대상 16:23;시 66:16;행 20:24;롬 15:19;골 1:23).
우 가르 에스틴 티 크륖톤 호 에안 메 파네로데 우데 에게네토 아포크뤼폰 알 히나 에이스 파네론 엘데
개역개정,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새번역,22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말성경,22 무엇이든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무엇이든 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톨릭성경,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영어NIV,22 For whatever is hidden is meant to be disclosed, and whatever is concealed is meant to be brought out into the open.
영어NASB,22 "For nothing is hidden, except to be revealed; nor has anything been secret, but that it would come to light.
영어MSG,22 We're not keeping secrets, we're telling them; we're not hiding things, we're bringing them out into the open.
영어NRSV,22 For there is nothing hidden, except to be disclosed; nor is anything secret, except to come to light.
헬라어신약Stephanos,22 ου γαρ εστιν τι κρυπτον ο εαν μη φανερωθη ουδε εγενετο αποκρυφον αλλ ινα εις φανερον ελθη
라틴어Vulgate,22 non enim est aliquid absconditum quod non manifestetur nec factum est occultum sed ut in palam veniat
히브리어Modern,22 כי אין דבר סתום אשר לא יגלה ולא נעלם דבר כי אם למען יבא לגלוי׃
성 경: [막4:22]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등불에 대한 비유]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 이 구절을 번역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구절이 마 10:26과 눅 12:2에도 나오지만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눅8:17이 가장 적절히 본뜻을 밝혀주고 있다고 본다. 이 비유는 '숨긴 것은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이다'는 뜻의 속담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 아래 모든 사물이 밝히 드러난다는 경험적 상식을 소재로 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의미는 21절의 내용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이 좋다. 즉 (1)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되므로 거짓이나 부정직은 용납될 수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정직한 삶을 촉구하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2)심판 사상과 연결된 것으로볼 수 있다. 즉 최후 심판의 때에는 모든 감추어졌던 사실들이 다 드러나므로(고후5:10) 하루하루의 삶에서 자기의 죄를 감추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회개하는 삶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마 25:31-46). (3)'천국의 비밀'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있다. 즉 비유가 천국의 비밀에 관한 것이라면(11절 주석 참조) 그 천국의 비밀은 감추어지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밝히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천국의 비밀은 언젠가는 모두 밝혀질 것이라는 말이다. (4)'메시야 비밀' 사상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즉 예수의 활동이 메시야적인 것이었지만 현재 그 사실을 숨기려 한 의도(9:9)에 대한 설명으로 생각된다. 예수의 비밀이 현재는 숨겨져 있으나언젠가는 밝히 드러 날것이라는 암시와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된 사건에서 그분의 메시야성이 밝히 드러났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예수 재림(*)시에 모든 영광으로 예수를 밝히 드러내실 것이다.
에이 티스 에케이 오타 아쿠에인 아쿠에토
개역개정,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새번역,23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우리말성경,23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가톨릭성경,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영어NIV,23 If anyone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영어NASB,23 "If anyone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영어MSG,23 "Are you listening to this? Really listening?
영어NRSV,23 Let anyone with ears to hear listen!"
헬라어신약Stephanos,23 ει τις εχει ωτα ακουειν ακουετω
라틴어Vulgate,23 si quis habet aures audiendi audiat
히브리어Modern,23 כל אשר אזנים לו לשמע ישמע׃
성 경: [막4:23]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등불에 대한 비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 이와 똑같은 구절이 이미 9절에서 언급되었고 같은 의미의 서두가 3절에서도 언급되었다(3,9절 주석 참조). 여기서도 역시 '내 말은 중요한 말이니 더욱 마음을 써서 그 의미를 깊게 되새겨 보라'는 각성을 촉구하는 경고적 문구로 생각하면 된다(마 11:15;13:9;눅 14:35).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블레페테 티 아쿠에테 엔 호 메트로 메트레이테 메트레데세타이 휘민 카이 프로스테데세타이 휘민 토이스 아쿠우신
개역개정,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새번역,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우리말성경,24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듣는 말을 새겨들으라. 너희가 헤아려 주는 만큼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덤으로 더 헤아려 받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영어NIV,24 "Consider carefully what you hear," he continued.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and even more.
영어NASB,24 And He was saying to them, "Take care what you listen to. By your standard of measure it will be measured to you; and more will be given you besides.
영어MSG,24 "Listen carefully to what I am saying--and be wary of the shrewd advice that tells you how to get ahead in the world on your own. Giving, not getting, is the way.
영어NRSV,24 And he said to them, "Pay attention to what you hear; the measure you give will be the measure you get, and still more will be given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4 και ελεγεν αυτοις βλεπετε τι ακουετε εν ω μετρω μετρειτε μετρηθησεται υμιν και προστεθησεται υμιν τοις ακουουσιν
라틴어Vulgate,24 et dicebat illis videte quid audiatis in qua mensura mensi fueritis remetietur vobis et adicietur vobis
히브리어Modern,24 ויאמר אליהם ראו מה אתם שמעים במדה אשר אתם מודדים בה ימד לכם ועוד יוסף לכם השמעים׃
성 경: [막4:24]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헤아림에 관한 비유]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 누가복음의 평행구는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눅 8:18)로 표현한다. 새번역에서는 '너희는 조심하여 들으라'로 번역되어 있고 공동번역되어 있다. 이 말은 23절의 격언구와 비슷하게 반복하여 사용한 경고적 어투로 보면 된다. 즉 똑바로 들어 비밀을 깨달으라는 촉구이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또 더 받으리니 - 이와 비슷한 문구가 마 7:2과 눅 6:38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구절들에서는 주로 타인을 비방하는 일을 삼가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반해, 21절부터 이어지는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복음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그릇)에 대한 교훈으로 이해된다. 즉 복음을 들을 때 깊고 넓은 영적 통찰력으로써 받아들인다면 그 마음 그릇에 풍족히 채워질 정도로 이해될 것이고계속해서 더 크게 이해될 것이라는 교훈이다. 한편 본 구절을 단지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너희가 남을 재는 그 그릇의 크기로 너희의 크기가 측정될 것이다'이다. 공동번역에서는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전체적인 의미는 남에게 행한 것에 따라 보상되는 응보의 개념, 즉 심는 대로 거둔다는 의미가 짙게 깔려 있다(갈 6:7;고후 9:6).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본문은 사람이 영적 지각력을 갖고서 예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예수에 관한 진리를 밝히 알게 된다는 사실에 역점을 두고 있다. 실로 각자가 지닌 각각의 그릇(이해력, 지각력 등)에 따라 예수의 생명력 넘치는 말씀을 많이도 받고 적게도 받을 것이다(고후 9:6).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복음을 수용하는 데 따른 보상적 응보는 대등한 보상이 아니라 '더 받으리'라는 표현을 덧붙여보상의 풍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영적 세계에서의 영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現狀)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마 13:12).
호스 가르 안 에케 도데세타이 아우토 카이 호스 우크 에케이 카이 호 에케이 아르데세타이 앞 아우투
개역개정,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새번역,25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우리말성경,25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가톨릭성경,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영어NIV,25 Whoever has will be given more; whoever does not have,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from him."
영어NASB,25 "For whoever has, to him more shall be given; and whoever does not have, even what he has shall be taken away from him."
영어MSG,25 Generosity begets generosity. Stinginess impoverishes."
영어NRSV,25 For to those who have,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ose who have nothing, even what they have will be taken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25 ος γαρ αν εχη δοθησεται αυτω και ος ουκ εχει και ο εχει αρθησεται απ αυτου
라틴어Vulgate,25 qui enim habet dabitur illi et qui non habet etiam quod habet auferetur ab illo
히브리어Modern,25 כי מי שיש לו נתון ינתן לו ומי שאין לו גם את אשר יש לו יקח ממנו׃
성 경: [막4:25]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헤아림에 관한 비유]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격언구로 보인다. 누가복음의 평행구(눅 8:18)외에도 여러 곳에서 이런 구절이 발견된다(마 13:12;25:29;눅 19:26). 이 의미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할 수 있다. 첫째는 천국의 비밀과 관련시켜 해석할 수 있다. 즉 천국의 비밀을 알려고 노력하며 애쓰는 자는 더 많은 비밀을 알게 될 것이고 관심을 갖지 않고 듣지도 않는 사람은 알고 있는 것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둘째는 남에게 베푸는 사람을 베풀수록 더 많이 보상받고 덤까지 받지만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잃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나누는 것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세째는 많은 열매를 맺게하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지만 나쁜 땅의 씨앗은 열매를 못맺는 것처럼 겸손하고 말씀에 성실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풍성한 말씀의 열매를 맺어 기쁨을 누리지만 반대로 편견과 비뚤어진 마음과 생각을 소유한 자는 오히려 현재 지니고 있는 조그마한 행복까지 빼앗긴다는 심판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사 3:10; 렘 32:19). 물론 본문에서는 천국 복음과 진리에 대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의미하는 첫번째 견해가 적절하다.
카이 엘레겐 후토스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호스 에안 안드로포스 발레 톤 스포론 에피 테스 게스
개역개정,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새번역,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우리말성경,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모습이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면
가톨릭성경,26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영어NIV,26 He also said, "This is what the kingdom of God is like. A man scatters seed on the ground.
영어NASB,26 And He was saying, "The kingdom of God is like a man who casts seed upon the soil;
영어MSG,26 Then Jesus said, "God's kingdom is like seed thrown on a field by a man
영어NRSV,26 He also said, "The kingdom of God is as if someone would scatter seed on the ground,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ελεγεν ουτως εστιν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ως εαν ανθρωπος βαλη τον σπορον επι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26 et dicebat sic est regnum Dei quemadmodum si homo iaciat sementem in terram
히브리어Modern,26 ויאמר מלכות האלהים היא כאשר ישליך איש זרע על האדמה׃
성 경: [막4:26]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자라나는 씨앗에 대한 비유]
하나님의 나라는... 뿌림과 같으니 - 여기서 또다른 비유가 시작되는데 본 비유는 마가만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는 그 강조점에 있어서 3-8절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는 다르다. 즉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씨의 성장에 좋은 토질과 풍성한 수확이 강조되었으나 본 비유에서는 씨앗을 자라게 하며 풍성한 수확을 이루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강조되고 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성장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한편 이 비유의 제목을 붙이는 데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즉 '몰래 자라는 씨의 비유',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등이다. 공통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나는 씨앗을 소재로 택하여 인간의 시각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으나 그 역동적 활동력으로 인해 조용히, 점진적으로 성장해 하는 하나님 나라 사상과 관련시키고 있는 점이다. 한편 이 하나님 나라는 철저히 현재적이고 영적이라는 데 본 비유의 주안점이 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말씀의 씨를 뿌림으로써 시작되고 성장한다(Donald W. Burdick).
카이 카듀데 카이 에게이레타이 뉰타 카이 헤메란 카이 호 스포로스 블라스타네 카이 메퀴네타이 호스 우크 오이덴 아우토스
개역개정,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새번역,27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말성경,27 씨는 그 사람이 자고 있든 깨어 있든 밤낮없이 싹이 트고 자라난다. 그러나 그는 씨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가톨릭성경,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영어NIV,27 Night and day, whether he sleeps or gets up, the seed sprouts and grows, though he does not know how.
영어NASB,27 and he goes to bed at night and gets up by day, and the seed sprouts and grows--how, he himself does not know.
영어MSG,27 who then goes to bed and forgets about it. The seed sprouts and grows--he has no idea how it happens.
영어NRSV,27 and would sleep and rise night and day, and the seed would sprout and grow, he does not know how.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καθευδη και εγειρηται νυκτα και ημεραν και ο σπορος βλαστανη και μηκυνηται ως ουκ οιδεν αυτος
라틴어Vulgate,27 et dormiat et exsurgat nocte ac die et semen germinet et increscat dum nescit ille
히브리어Modern,27 וישן וקם לילה ויום והזרע יצמח וגדל והוא לא ידע׃
성 경: [막4:27]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자라나는 씨앗에 대한 비유]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씨앗을 뿌린 농부가 씨앗의 성장에 대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단지 알맞은 장소에 씨를 뿌리는 일 뿐이다. 그는 결코 씨를 자라게 할 수는 없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농부가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밭을 갈고 김을 매는 등의 일은 부차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은 씨앗을 싹틔우고 자라게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땅과 비와 공기와 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맡겨진 일이라는 점이다(고전 3:6). 둘째, 씨뿌린 농부가 땅에 대하여 믿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씨앗을 뿌려놓고 농부는 전적으로 그 소출을 하나님께 맡긴다.
씨가 나서 자라되... 알지 못하느니라 - 농부는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그 원인적 이유나 과정을 알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무지 때문에 씨의 성장이 방해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자연의 생명력과 내밀한 성장 과정은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그 성장 과정은 신비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역시 그 과정이 신비한 비밀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원인적 힘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농부가 땅에 대한 믿음을 갖고 추수를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백성들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확신(確信)을 가져야 한다(15:43).
아우토마테 가르 헤 게 카르포포레이 프로톤 코르톤 에이타 스타퀸 에이타 플레레 시톤 엔 토 스타퀴이
개역개정,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새번역,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우리말성경,28 땅이 스스로 곡식을 길러 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줄기가 자라고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곡이 맺힌다.
가톨릭성경,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영어NIV,28 All by itself the soil produces grain--first the stalk, then the head, then the full kernel in the head.
영어NASB,28 "The soil produces crops by it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head, then the mature grain in the head.
영어MSG,28 The earth does it all without his help: first a green stem of grass, then a bud, then the ripened grain.
영어NRSV,28 The earth produces of itself, first the stalk, then the head, then the full grain in the head.
헬라어신약Stephanos,28 αυτοματη γαρ η γη καρποφορει πρωτον χορτον ειτα σταχυν ειτα πληρη σιτον εν τω σταχυι
라틴어Vulgate,28 ultro enim terra fructificat primum herbam deinde spicam deinde plenum frumentum in spica
히브리어Modern,28 כי הארץ מאליה מוציאה פריה את הדשא ראשונה ואחריו את השבלת ואחרי כן את החטה המלאה בשבלת׃
성 경: [막4:28]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자라나는 씨앗에 대한 비유]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 여기서 열매를 맺게 하는 주체가 땅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이 의도하는 바는 본질적으로 땅 그 자체가 어떤 능력을 지녔다기보다 그땅과 생명있는 씨앗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능력'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땅이 스스로'란 표현은 곧 농부의 힘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스스로'(*,아우토마테)란 '자동적'이라는 뜻이다. 즉 열매맺는 것은 농부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땅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의미를 26절에서 씨뿌리는 자를 '사람'(*, 안드로포스)이라고 밝힌 점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있어서 사람의 힘이 전혀 배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인간에 의해 김을 매거나 경작하는 일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 씨앗을 결실케 하는 결정적 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잊지 말아야 한다. 이 같은 점을 구원의 의미에서 볼 때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영역이다(엡 2:8). 그러나 사람의 노력이 전혀 배제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나 구원의 성취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따른 것으로,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와 믿음을 갖는것이 중요하다(요 6:28, 29;히 11:6;요일 3:23).
처음에는 싹이요... 충실한 곡식이라 -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을 그림처럼 그려주고 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그 과정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자연의 법칙처럼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도 천국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 나타나는 미완성 단계의 과정, 즉 '싹'이나 '이삭'은 '충실한 열매'가 되기 위한 가능태이다. 하지만 그 가능태는 완성의 현재적 모습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으며 현재에 실현되고 있는 가능태를 관찰할 수 있다면 장차 올 완성의 하나님 나라도 확신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혹자(J. Jeremias)는 말하기를, '열매는 씨의 결과이다. 즉 마지막이 처음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무한하게 큰 것은 이미 무한하게 작은 것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진실로 현재는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이해하도록 허락된 사람들은(11절) 이미 보잘것없이 보이는 시작에서 장차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본다'(The parables of Jesus, pp 152-153)라고 하였다. 한편 본문의 이러한 비유는 당시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었던 것을 추측 가능하게 한다. 또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보려고 하는 불신앙적 사람들에게 이 교훈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철두 철미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야함을 가르치고 있다(창 18:14;신 10:17; 시 24:8;눅 1:49).
호탄 데 파라도 호 카르포스 유데오스 아포스텔레이 토 드레파논 호티 파레스테켄 호 데리스모스
개역개정,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새번역,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9 그리고 곡식이 익는 대로 곧 농부가 낫을 댄다. 이제 추수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어NIV,29 As soon as the grain is ripe, he puts the sickle to it, because the harvest has come."
영어NASB,29 "But when the crop permits, he immediately puts in the sickle, because the harvest has come."
영어MSG,29 When the grain is fully formed, he reaps--harvest time!
영어NRSV,29 But when the grain is ripe, at once he goes in with his sickle, because the harvest has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ταν δε παραδω ο καρπος ευθεως αποστελλει το δρεπανον οτι παρεστηκεν ο θερισμος
라틴어Vulgate,29 et cum se produxerit fructus statim mittit falcem quoniam adest messis
히브리어Modern,29 וכאשר גמל הפרי ימהר לשלח את המגל כי בשל הקציר׃
성 경: [막4:29]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자라나는 씨앗에 대한 비유]
열매가 익으면... 추수때 - 이 구절은 욜 3:13의 인용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때 곧 세상의 종말이 이르는 때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익으면'(*,파라도)은 제2 단순 과거 가정법 능동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직역하면 열매가 '스스로 영글어 익어갈 때면'으로서 결실의 상황을 가정한 단순한 설명적 해석이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통치가 스스로(28절) 완성되고 하나님 나라의 영적 열매들이 완전히 영글었을 때를 의미한다. 이는 앞절의 '충실한 열매'와 같이 긍정적인 완성에 대한 그림같은 표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28절의 표현과 함께 생각하여 미세한 하나의 씨앗이 뿌려져서 충실한 곡식이 되고 그것이 익어지는 신비한 과정을 전개함으로써, 씨뿌릴 때 과연 이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까 하는 의아심 혹은 확실성이 없는 기대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정 씨앗을 뿌린 뒤에 일정한 시간이 되면 곡식이 결실할 때가 오듯이 하나님 나라가 지금은 모호하고 숨겨져 있으나 영광스럽게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이다(Cranfield). 즉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시작하여 스스로 완성에 이른다. 그런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인 것이면서 현재적 과정이다.
낫을 대나니...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 이는 종말적 최후 심판을 표현한다. 이처럼 종말적 심판을 '추수'로 비유하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잠25:13;렘 5:24;51:33;욜 3:13;마 3:12;13:30;눅 3:17;계 14:14-16). 특별히 여기서 '낫을 댄다'는 것은 '낫을 가져 간다'는 뜻으로 씨를 뿌린 후 자기 일에 열중하던 농부가 (27절) 추수의 시점에 이르러 다시 그 밭에 보내지는 광경을 묘사한 것으로(요4:38) 무서운 심판의 때가 도래했음을 암시한다. 실로 이 '낫'은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한 환유적(換喩的)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추수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추수를 하는 것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일은 농부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적 심판의 때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추수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점은 하나님 나라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추수의 주체자는 하나님이다. 즉 사람이 씨를 뿌리고 가꾸며 추수에 투입되지만 그 씨앗을 자라게 하며 풍성하고 잘 익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땅, 곧 신비한 자연의 힘이다(하나님의 이면적인 섭리). 마찬가지로 복음의 씨를 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일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빠지는 일이 없이 해석되어야 한다.
카이 엘레겐 티니 호모이오소멘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에 엔 포이아 파라볼레 파라발로멘 아우텐
개역개정,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새번역,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우리말성경,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어떤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톨릭성경,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영어NIV,30 Again he said, "What shall we say the kingdom of God is like, or what parable shall we use to describe it?
영어NASB,30 And He said, "How shall we picture the kingdom of God, or by what parable shall we present it?
영어MSG,30 "How can we picture God's kingdom? What kind of story can we use?
영어NRSV,30 He also said, "With what can we compare the kingdom of God, or what parable will we use for it?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ελεγεν τινι ομοιωσωμε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η εν ποια παραβολη παραβαλωμεν αυτην
라틴어Vulgate,30 et dicebat cui adsimilabimus regnum Dei aut cui parabolae conparabimus illud
히브리어Modern,30 ויאמר אל מה נדמה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ובאי זה משל נמשילנה׃
성 경: [막4:30]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천국에 관한 겨자씨 비유]
여기서 또 다른 비유가 시작된다. 주제는 앞에 나오는 비유에 이어 계속 하나님 나라이며 소재는 겨자씨이다. 역시 청중과 장소변동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한편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마 13:31, 32과 눅 13:18, 19에는 공히 바로 이어서 누룩 비유를 첨가하고 있으나 본문은 그에 대해 침묵한다. 어쨌든 본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사람이 보기에는 미약하고 보잘것 없으나 그것이 강하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크게 나타날 때가 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비하며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 이 비유의 시작은 다른 비유와 달리 어떻게, 무엇으로 비유할 것인가 하는 이중적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는 주로 히브리인들이 즐겨 쓰는 수사법으로서 생생한 물음을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키고 생각할 여유를 갖게 한다.
호스 콬코 시나페오스 호스 호탄 스파레 에피 테스 게스 미크로테로스 판톤 톤 스페르마톤 에스틴 톤 에피 테스 게스
개역개정,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새번역,31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 ㉢또는 '겨자씨와 관련된 사정과 같으니'
우리말성경,31 하나님 나라는 한 알의 겨자씨와 같다. 그 씨는 땅에 심는 것 가운데 제일 작은 씨지만
가톨릭성경,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영어NIV,31 It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is the smallest seed you plant in the ground.
영어NASB,31 "It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when sown upon the soil, though it is smaller than all the seeds that are upon the soil,
영어MSG,31 It's like a pine nut. When it lands on the ground it is quite small as seeds go,
영어NRSV,31 It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when sown upon the ground,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on earth;
헬라어신약Stephanos,31 ως κοκκω σιναπεως ος οταν σπαρη επι της γης μικροτερος παντων των σπερματων εστιν των επι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31 sicut granum sinapis quod cum seminatum fuerit in terra minus est omnibus seminibus quae sunt in terra
히브리어Modern,31 כגרגר של חרדל אשר יזרע באדמה והוא קטן מכל הזרעים אשר על הארץ׃
성 경: [막4:31]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천국에 관한 겨자씨 비유]
겨자씨 한 알 - 겨자씨는 당시 유대인들이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종류이며, '사람이 땅에 심는 가장 작은 씨앗'(the smallest seed you plant in the ground)으로 알려져 있었다. 더욱이 아주 작은 씨앗으로 비유되는 겨자씨를 '한 알'이라 한정함으로 그 작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고 하는 설명구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같은 표현은 조금 과장된 듯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천국의 실체는 마치 겨자씨의 성장 과정과 같다는 사실이다. 즉 천국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작아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미미한 시초성과 현재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미함은 능력있고 흥왕한 모습으로서의 천국의 미래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겨자씨의 생명력 넘치는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실로 가장 작은 것 속에는 이미 가장 큰 미래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카이 호탄 스파레 아나바이네이 카이 기네타이 판톤 톤 라카논 메이젠 카이 포이에이 클라두스 메갈루스 호스테 뒤나스다이 휘포 텐 스키안 아우투 타 페테이나 투 우라누 카타스케눈
개역개정,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새번역,32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우리말성경,32 일단 심어 놓으면 자라나 어떤 식물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그 그늘에 공중의 새들이 깃들 수 있게 된다.”
가톨릭성경,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영어NIV,32 Yet when planted, it grows and becomes the largest of all garden plants, with such big branches that the birds of the air can perch in its shade."
영어NASB,32 yet when it is sown, it grows up and becomes larger than all the garden plants and forms large branches; so that THE BIRDS OF THE AIR can NEST UNDER ITS SHADE."
영어MSG,32 yet once it is planted it grows into a huge pine tree with thick branches. Eagles nest in it."
영어NRSV,32 yet when it is sown it grows up and becomes the greatest of all shrubs, and puts forth large branches, so that the birds of the air can make nests in its shade."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οταν σπαρη αναβαινει και γινεται παντων των λαχανων μειζων και ποιει κλαδους μεγαλους ωστε δυνασθαι υπο την σκιαν αυτου τα πετεινα του ουρανου κατασκηνουν
라틴어Vulgate,32 et cum seminatum fuerit ascendit et fit maius omnibus holeribus et facit ramos magnos ita ut possint sub umbra eius aves caeli habitare
히브리어Modern,32 ואחרי הזרעו יעלה ויגדל על כל הירקות ועשה ענפים גדולים עד אשר יוכלו עוף השמים לקנן בצלו׃
성 경: [막4:32]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천국에 관한 겨자씨 비유]
자라서...큰 가지를 내니 - 이 구절은 '가장 작은 것'을 강조한 31절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 구체적 표현을 살펴보면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새들이...깃들일 만큼'이라는 비교 문구를 각각 사용한다. 여기서 '모든 나물'을 공동 번역에는 '어떤 푸성귀'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는 겨자씨의 본질(나물)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 본질을 훨씬 뛰어넘는 변화(나무로서의)를 암시한 것이라 본다. 즉 겨자씨는, 그 실제는 '나물'(푸성귀)이지만, 그 키가 3-4m(심어어 7m까지 자라는 경우도 있다고 함)까지 성장하며 그 줄기의 굵기가 사람 팔뚝 굵기만큼 자라므로(Donad W. Burdick) 가히 '나무'라 봄직하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참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와 성장을 이뤄놓는 것이다. 실로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폭발적인 확장성과 현재와 미래의 대조적인 모습을 적절히 보여 주고 있다. 가장 작은 것으로 시작하여 가장 큰 것이 된다는 의미는 앞에서 언급된 천국 비밀처럼(26-29절) 지금은 보이지 않는듯 하지만 씨앗이 자라듯 그 작은 것은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이며 반드시 완성된 형태로 성장할 것이라 확신을 갖게 하는 가능태이다(29절). 따라서 천국을 대망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어야 하며(Nineham)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완성된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생각할 때 욥 8:7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과 마 25:21, 23의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를 생각나게 한다.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 여기서 '공중의 새'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기 보다 오히려 자라난 겨자나무의 크기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음을 보여 주는 존재들로 이해할 수 있다(마 13:31). 혹자는 성경에서 흔히 '새'가 사단의 대리인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확장되어가는 하나님 나라를 해치기 위해 힘쓰는 존재들로 이해하기도 하나 본 문맥에서는 적합치 못한 해석이라 본다. 또 다른 이들은 영적으로 이 '공중의 새'는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이방인들로 보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깃들인다'(*, 카타스케눈)는 말은 단순히 비나 바람을 피해 잠깐 쉬어간다는 의미이기보다 거주지로 정하고 장막을 세우듯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이다. 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도처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평안히 그리고 영원히 깃들일 수 있는 보금자리인 것이다.
카이 토이아우타이스 파라볼라이스 폴라이스 엘랄레이 아우토이스 톤 로곤 카도스 에뒤난토 아쿠에인
개역개정,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새번역,33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이와 같이 많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다.
우리말성경,33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영어NIV,33 With many similar parables Jesus spoke the word to them, as much as they could understand.
영어NASB,33 With many such parables He was speaking the word to them, so far as they were able to hear it;
영어MSG,33 With many stories like these, he presented his message to them, fitting the stories to their experience and maturity.
영어NRSV,33 With many such parables he spoke the word to them, as they were able to hear it;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τοιαυταις παραβολαις πολλαις ελαλει αυτοις τον λογον καθως ηδυναντο ακουειν
라틴어Vulgate,33 et talibus multis parabolis loquebatur eis verbum prout poterant audire
히브리어Modern,33 ובמשלים רבים כאלה דבר אליהם את הדבר כפי אשר יכלו לשמע׃
성 경: [막4:33]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많은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
비유로...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 비유들은 예수께서 무리들을 향해 말씀을 가르치실 때, 즉 예수 자신의 인격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실 때 사용하신 방법 중 가장 탁월한 교수법이었다. 실로 예수께서는 진리를 비유로 말씀함으로써 무리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셨다. 즉 비유(parable)란 일상생활의 단면들을 예로 들어 전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쉽게 납득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그것을 듣는 자들의 사고를 자극하고 영적 지각력을 일깨워주는 은혜로운 진리 전달 수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비유는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즉 듣는 이의 영적 감지력과 진리에 대한 이해력 여부에 따라 쉽게 또는 어렵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코리스 데 파라볼레스 우크 엘랄레이 아우토이스 캍 이디안 데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에펠뤼엔 판타
개역개정,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새번역,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
우리말성경,34 예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영어NIV,34 He did not say anything to them without using a parable. But when he was alone with his own disciples, he explained everything.
영어NASB,34 and He did not speak to them without a parable; but He was explaining everything privately to His own disciples.
영어MSG,34 He was never without a story when he spoke. When he was alone with his disciples, he went over everything, sorting out the tangles, untying the knots.
영어NRSV,34 he did not speak to them except in parables, but he explained everything in private to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34 χωρις δε παραβολης ουκ ελαλει αυτοις κατ ιδιαν δε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επελυεν παντα
라틴어Vulgate,34 sine parabola autem non loquebatur eis seorsum autem discipulis suis disserebat omnia
히브리어Modern,34 ובבלי משל לא דבר אליהם והיה בהיותו עם תלמידיו לבדם יבאר להם את הכל׃
성 경: [막4:34]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많은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 이 말은 비유만 말하고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천국의 비밀에 대한 비유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하늘나라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비유를 통해 가르쳤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11,12절 주석을 참조하라.
혼자 계실때에...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 이 문구는 10절의 시작과 비슷하다. 다만 질문을 했다는 언급이 없고 10절에서는 청중이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로 언급되지만 여기서는 '제자들'만 언급하고 있다. 결국은 앞에서 가르친 여러가지의 비유들은 일반 청중을 상대로 한 것이고 그 비유에 대한 해석을 제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비유가 인간의 이성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13,33절 주석 참조). 사실 예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조차로 예수의 거듭되는 설명과 상세한 해설이 필요했었다. 사실 본문의 '해석하시더라'(*, 에페뤼엔)가 미완료 시상으로서 단 한번이 아니라 계속 설명해 주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진정 예수께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33절) 진지하고도 쉽게 가르쳤지만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비유는 여전히 어렵게만느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경고적 격언구와 내용의 일치를 갖는다(3, 9, 23절 주석 참조). 한편 예수의 가르침을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제자들조차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들은 예수를 배신하거나 십자가 처형에 침묵으로써 간접 동조했던 것이다(114:50).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함으로써 사람들은 예수를 비로서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가르치는 자의 잘못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의 잘못이다. 이것에 대한 상징적 비유가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 할 수 있다(3-20절).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엔 에케이네 테 헤메라 옾시아스 게노메네스 디엘도멘 에이스 토 페란
개역개정,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새번역,35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우리말성경,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가톨릭성경,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영어NIV,35 That day when evening came, he said to his disciples, "Let us go over to the other side."
영어NASB,35 On that day, when evening came, He said to them, "Let us go over to the other side."
영어MSG,35 Late that day he said to them, "Let's go across to the other side."
영어NRSV,35 On that day, when evening had come, he said to them, "Let us go across to the other side."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λεγει αυτοις εν εκεινη τη ημερα οψιας γενομενης διελθωμεν εις το περαν
라틴어Vulgate,35 et ait illis illa die cum sero esset factum transeamus contra
히브리어Modern,35 ויאמר אליהם ביום ההוא לפנות ערב נעברה העבר׃
성 경: [막4:35]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그 날 저물 때에 - 이렇게 자세한 시간적 묘사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없다. 여기서는 앞에서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 끝난 시간과 공백을 두지 않고 있다. 즉 '그 날 저녁때'라고 명시하여 예수께서 천국 비유를 가르치신 그날 많은 양의 활동을 하신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배에 오르시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 비유를 베푸신 날과 전혀 다른 사건으로 다룬다(마 8:23). 누가복음 역시 '하루는'이라는(눅 8:22) 단어를 사용하여 막연한 어떤 날로 언급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1절에서 묘사된 바닷가 풍경을 그대로 그려주는 듯한 배경 설명을 하고 있다. 이는 매사를 예민하고 세밀하게 취급하고자 하는 마가의 특징적인 문장 기법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예수께서는 계속 갈릴리 바다 곁에서 선교 활동을 하셨는데 그것은 36절의 '배에 계신 그대로'라는 표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여기서 '그 날'은 분명 바닷가에서 많은 비유들을 가르치신 날이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 이 제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한 것이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바쁜 일과로 인해 피곤하셨기 때문에 모인 무리들을 피하여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자 이런 제안을 하셨을 것이다. 한편 '저편'은 배를 타고 가야할 목적지를 가리키는 말로서 바다 건너 맞은편에 있는 언덕을 의미한다. 5:1의 사건과 연결시킨다면 이곳은 '거라사인의 지방'일 것이다.
카이 아펜테스 톤 오클론 파랄람바누신 아우톤 호스 엔 엔 토 플로이오 카이 알라 데 플로이아리아 엔 멭 아우투
개역개정,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새번역,36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우리말성경,36 제자들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예수를 배 안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습니다.
가톨릭성경,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영어NIV,36 Leaving the crowd behind, they took him along, just as he was, in the boat. There were also other boats with him.
영어NASB,36 Leaving the crowd, they took Him along with them in the boat, just as He was; and other boats were with Him.
영어MSG,36 They took him in the boat as he was. Other boats came along.
영어NRSV,36 And leaving the crowd behind, they took him with them in the boat, just as he was. Other boats were wit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6 και αφεντες τον οχλον παραλαμβανουσιν αυτον ως ην εν τω πλοιω και αλλα δε πλοιαρια ην μετ αυτου
라틴어Vulgate,36 et dimittentes turbam adsumunt eum ita ut erat in navi et aliae naves erant cum illo
히브리어Modern,36 ויעזבו את המון העם ויקחו אתו כאשר הוא באניה וגם אניות אחרות הלכו עמו׃
성 경: [막4:36]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저희가 무리를 떠나 - 여기서 배를 타고 떠나는 일행이 제자들과 예수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 1절에서 시작했던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 끝난 직후 곧바로 일어난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배에 계신 그대로'란 '떠난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 채로'(Bengel), '해변에 내려가지 않고'(W. W. Wessel)라는 뜻으로, 예수께서는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에 올라 앉으셨던 바로 그 배를 타고 지체없이 건너편으로 가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물론 어부 출신 제자들의 즉각적인 순종과 실행이 뒤따랐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생동감과 현장감 넘치는 마가의 문장 표현법에 의해 눈에 선명히 다가온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이런 상황 묘사가 없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 이는 마가만의 특종 기사이다. 여기서 '다른 배'란 예수와 제자들이 탄배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탄 배를 말하는 데 이 배가 어디로 갔는지, 또 왜 함께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체 상황으로 미루어 추측할 수있을 뿐이다. 즉 예수의 가르침에 매료된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기 위해 그날 저물 때에(35절) 같이 출발했을 것이며 또한 예수 일행이 만났던 풍랑을 함께 경험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은 10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제자들외에 예수를 따라다닌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예수께 대한 관심은 낮이나 밤(35절), 그리고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카이 기네타이 라일랖스 메갈레 타 데 퀴마타 에페발렌 에이스 토 플로이온 호스테 아우토 에데 게미제스다이
개역개정,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새번역,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우리말성경,37 그때 매우 강한 바람이 불어와 파도가 배 안으로 들이쳐 배가 물에 잠기기 직전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영어NIV,37 A furious squall came up, and the waves broke over the boat, so that it was nearly swamped.
영어NASB,37 And there arose a fierce gale of wind, and the waves were breaking over the boat so much that the boat was already filling up.
영어MSG,37 A huge storm came up. Waves poured into the boat, threatening to sink it.
영어NRSV,37 A great windstorm arose, and the waves beat into the boat, so that the boat was already being swamped.
헬라어신약Stephanos,37 και γινεται λαιλαψ ανεμου μεγαλη τα δε κυματα επεβαλλεν εις το πλοιον ωστε αυτο ηδη γεμιζεσθαι
라틴어Vulgate,37 et facta est procella magna venti et fluctus mittebat in navem ita ut impleretur navis
히브리어Modern,37 ותקם רוח סערה גדולה וישטפו הגלים אל תוך האניה עד אשר כמעט נמלאה׃
성 경: [막4:37]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큰 광풍이 일어나며(*, 기네타이 라일랖스 메갈레 마네무) - 회오리처럼 밀어닥치는 바람을 최대한 확대 표현한 말로서 현장감과 긴박감을 더하는 마가의 문장 기법이다. 갈릴리 바다는 대체로 고요하고 음산한 기후를 이루고 있는데, 때때로 무서운 풍랑이 일어난다. 즉 지중해 수면보다 약 2oom아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헤르몬 산에서 요단 계곡 쪽으로 이상 기류가 흐를 때 그 기류가 깊은 웅덩이와 같은 갈릴리 바다로 급하게 내려와 회오리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이 때 물이 요동하여 무서운 풍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마가의 독특한 표현기법에 걸맞게 현재 시제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긴박하고 급격한 상황 변화를 묘사해 주고 있다.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 여기서 '부딪혀'(*, 에페발렌)는 미완료 시제로 '물결'(*, 퀴마타, '큰 파도')이 배를 계속해서 때려 정신없는 상태가 진행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같은 위험 상황은 극에 달하여 물이 '배에 가득하게'되는 절명의 순간에 이르게 하였다. 이에 대해 마태는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마 8:24), 누가는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 지라"(눅8:23)고 기술하여 한결같이 일촉 즉발(一觸卽發)의 침몰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한편 침몰 직전의 위기에 있는 배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면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첫째는 집단적인 의미에서 교회를 생각할 수 있다. 마가복음이 기록되던 당시에(약A.D. 70) 교회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적 해석은 적절하다고 본다. 둘째는 개인의 삶과 신앙의 위기로 해석할 수 있다.
카이 아우토스 엔 엔 테 프륌네 에피 토 프로스케팔라이온 카듀돈 카이 에게이루신 아우톤 카이 레구신 아우토 디다스칼레 우 멜레이 소이 호티 아폴뤼메다
개역개정,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새번역,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우리말성경,38 예수께서는 배 뒷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빠져 죽게 됐는데 모른 척하십니까?”
가톨릭성경,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38 Jesus was in the stern, sleeping on a cushion. The disciples woke him and said to him, "Teacher, don't you care if we drown?"
영어NASB,38 Jesus Himself was in the stern, asleep on the cushion; and they woke Him and said to Him, "Teacher, do You not care that we are perishing?"
영어MSG,38 And Jesus was in the stern, head on a pillow, sleeping! They roused him, saying, "Teacher, is it nothing to you that we're going down?"
영어NRSV,38 But he was in the stern, asleep on the cushion; and they woke him up and said to him, "Teacher, do you not care that we are perishing?"
헬라어신약Stephanos,38 και ην αυτος επι τη πρυμνη επι το προσκεφαλαιον καθευδων και διεγειρουσιν αυτον και λεγουσιν αυτω διδασκαλε ου μελει σοι οτι απολλυμεθα
라틴어Vulgate,38 et erat ipse in puppi supra cervical dormiens et excitant eum et dicunt ei magister non ad te pertinet quia perimus
히브리어Modern,38 והוא ישן על הכסת באחרי האניה ויעירו אותו ויאמרו אליו רבי האינך דאג לנו כי נאבד׃
성 경: [막4:38]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 이 표현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보다 더 섬세한 표현으로 37절에서 묘사된 급격한 상황 변동과 극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즉 예수께서 '고물'(*, 프륌나, '배 뒤편')에서 베개까지 베고 주무신다는 묘사는 풍랑으로 인해 배가 침몰 직전에 있는 상황과는 극명한 차이를 이룬다. 한편 혹자(Lange)에 따르면 '당시 배들 안에는 신분이 높은 손님이 오를 경우를 대비하여 고물에 작은 의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그 곳에서 양탄자나 베개가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고 했다. 어쨌든 이 '베개'(*, 프로스케파라이온)라는 단어앞에 정관사(*, 토)가 쓰여진 것으로 보아 그 배에는 단 한개의 베개만이 있었음이 분명하며 예수께서는 이 베개에 머리를 두고 잠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풍랑과 전혀 상관이 없는 평온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로 예수께서 잠이 든 이유는 물론 밤에 수면을 하는 일상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낮 동안 내내 무리들을 가르치신 연고로 인해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곤하셨기 때문에 깊이 잠드셨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도 역시 우리와 같은 성정(性情)을 지니신 참 인간이심을 입증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께서 잠드신 본 장면은 침몰 직전에 있는 배 안팎의 혼란상과 대비하여 절대적인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같은 안정성은 우주 만물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근본으로 하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롬 8:39). 한편 앞절(37절)에서 침몰하는 배를 교회나 개인의 삶과 신앙의 위기로 상징한다면 예수의 평온한 모습은 교회와 개인의 위기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자로서의 모습이라 본다. 다시 말해 마가복음 기자는 이와 같은 광경을 소개하면서 교회와 개인의 이같은 일시적 혼란은 예수에게로 돌아감으로써 영원한 평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요 14:1).
제자들이 깨우며 - 여기서 '깨우며'에 해당하는 원어 '에게이루신'(*)은 현재 시제를 취하여 매우 다급한 모습을 더욱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다. 마태의 현장성(現場性) 짙은 기술 특징이 돋보인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원망섞인 어투로 예수를 불러 깨운다. 이러한 제자들의 다급한 외침은 진정 그들이 예수가 누구이신지 아직 완전히 파악치 못한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해서 원망섞인 볼멘 소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여기서 제자들이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주여'라고 부름). 이같은 마가의 표현은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를 구주와 죄인과의 관계가 아닌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무례하게 예수를 대한 사실에 간접적으로 일침을 가하고 있다고 보겠다. 실로 우리가 예수를 향하여 어떤 호칭으로, 어떤 외침을 부르짖는가에 따라 우리 신앙의 수준이 간접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카이 디에게르데이스 에페티메센 토 아네모 카이 에이펜 테 달라쎄 시오파 페피모소 카이 에코파센 호 아네모스 카이 에게네토 갈레네 메갈레
개역개정,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새번역,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우리말성경,39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파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고요하라! 잠잠하라!” 그러자 바람이 멈추고 호수가 잔잔해졌습니다.
가톨릭성경,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영어NIV,39 He got up,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waves, "Quiet! Be still!" Then the wind died down and it was completely calm.
영어NASB,39 And He got up and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sea, "Hush, be still." And the wind died down and it became perfectly calm.
영어MSG,39 Awake now, he told the wind to pipe down and said to the sea, "Quiet! Settle down!" The wind ran out of breath; the sea became smooth as glass.
영어NRSV,39 He woke up and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sea, "Peace! Be still!" Then the wind ceased, and there was a dead calm.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διεγερθεις επετιμησεν τω ανεμω και ειπεν τη θαλασση σιωπα πεφιμωσο και εκοπασεν ο ανεμος και εγενετο γαληνη μεγαλη
라틴어Vulgate,39 et exsurgens comminatus est vento et dixit mari tace obmutesce et cessavit ventus et facta est tranquillitas magna
히브리어Modern,39 ויעור ויגער ברוח ויאמר אל הים הס ודם ותשך הרוח ותהי דממה גדולה׃
성 경: [막4:39]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바람을 꾸짖으시며...이르시되 - 여기서는 37, 38절에서 묘사되었던 대혼란과 대조되는 아주 평온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즉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진 것이다.그 이유는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를 타일렀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꾸짖으시며'(*, 에페티메센)와 '그치고'(*, 에코파센)등이 부정 과거시제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즉각적이고단 일회적인 사실을 암시하고 표현이다. 즉 예수께서는 권위에 찬 음성으로 한 번 꾸짖으셨고 이에 견주어 더 이상의 반복이 필요 없을 정도로 풍랑이 잔잔하여진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 문자적으로 '침묵하라'(조용하라), '말하지 말라'(재갈을 물어라)는 뜻이다. 특별히 '잠잠하라'(*, 시오파)는 바람을 향한 현재 명령형으로 '(지금 당장) 그 부는 것을 그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고요하라'(*, 페피모소)는 풍랑이는 바다를 향한 완료 명령형으로 '(더이상의 활동을 중지하고) 그냥 그 상태로 조용히 있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 현상을 인격적 대상으로 삼고 꾸짖고 타이르는 것은 자연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 문자적으로 '크나큰 잔잔이 형성되다'는 뜻으로 마치 언제 풍랑이 있었느냐는 듯이 완전한 평화의 상태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실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권위와 능력을 한껏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이 자연을 지배하시고 곤궁에서 구원하신다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74:13, 14;107:28, 29 등). 지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本體)로서 바로 그 하나님의 능력을 수행하고 계신 것이다.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티 데일로이 에스테 후토 포스 우크 에케테 피스틴
개역개정,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새번역,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우리말성경,4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가톨릭성경,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영어NIV,40 He said to his disciples, "Why are you so afraid? Do you still have no faith?"
영어NASB,40 And He said to them, "Why are you afraid? Do you still have no faith?"
영어MSG,40 Jesus reprimanded the disciples: "Why are you such cowards? Don't you have any faith at all?"
영어NRSV,40 He said to them, "Why are you afraid? Have you still no faith?"
헬라어신약Stephanos,40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τι δειλοι εστε ουτως πως ουκ εχετε πιστιν
라틴어Vulgate,40 et ait illis quid timidi estis necdum habetis fidem et timuerunt magno timore et dicebant ad alterutrum quis putas est iste quia et ventus et mare oboediunt ei
히브리어Modern,40 ויאמר אליהם למה ככה אתם חרדים איך אין לכם אמונה׃
성 경: [막4:40]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어찌하여...무서워 하느냐...어찌 믿음이 없느냐 - 공동체든 개인이든 위기에 처하면 누구나 당황하고 무서워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불신앙적 언행(38절)에 대하여 꾸짖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마태복음에서는 풍랑을 잔잔하게 하기 전에 나온다(마 8:26). 즉 먼저 제자들을 꾸짖고 바람을 꾸짖는다. 아마도 마태는 '풍랑'을 무서워하는 제자들을 꾸짖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던 듯하다. 그러나 마가는 제자들의 '믿음'이 결여된 것에 대한 꾸짖음에 더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에 이같은 차이가 생겨났을 것이다. 한편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본문이 권위 있는 사본들(시내, 베자, 바티칸)에는 '아직까지'(*, 우포)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고 이에 근거해 공동번역에서는 '아직도...'라고 번역되어 있다. 오히려 이것이 올바른 번역이라 할수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의미로 이 꾸짖음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풍랑이 일어났을 때의 지나간 일에 대한 꾸지람일 수 있다. 즉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에 대하여 원망어린 말투로 구원을 요청한 사실에 대한 책망일 수 있다. 둘째는 예수께서 바다를 잔잔하게한 기적을 보여준 후 '아직도 두려운가?'하고 반문하는 어투와 '아직도 믿음이 없는가?'하고 반문하는 형태의 말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기적을 보았으니 믿음을 굳게 가지라는 의미로 예수의 꾸지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타당하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이란 예수의 인격 안에 현존하며 활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말한다. 예수께는 제자들의 몰이해와 믿음의 결여에 대해 여러 번 책망하셨는데, 여기 기록된 것이 최초의 사건이다(7:18;8:17,18,21,33; 9:19).
카이 에포베데산 포본 메간 카이 엘레곤 프로스 알렐루스 티스 아라 후토스 에스틴 호티 카이 호 아네모스 카이 헤 달라싸 휘파쿠우신 아우토
개역개정,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새번역,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우리말성경,41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하면서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도 복종하는가?”
가톨릭성경,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영어NIV,41 They were terrified and asked each other, "Who is this? Even the wind and the waves obey him!"
영어NASB,41 They became very much afraid and said to one another, "Who then is this, that even the wind and the sea obey Him?"
영어MSG,41 They were in absolute awe, staggered. "Who is this, anyway?" they asked. "Wind and sea at his beck and call!"
영어NRSV,41 And they were filled with great awe and said to one another, "Who then is this, that even the wind and the sea obey him?"
헬라어신약Stephanos,41 και εφοβηθησαν φοβον μεγαν και ελεγον προς αλληλους τις αρα ουτος εστιν οτι και ο ανεμος και η θαλασσα υπακουουσιν αυτω
라틴어Vulgate,41 (없음)
히브리어Modern,41 וייראו יראה גדולה ויאמרו איש אל רעהו מי אפוא הוא אשר גם הרוח והים שמעים לו׃
성 경: [막4:41]
주제1: [종의 비유]
주제2: [풍랑을 잔잔케 하심]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 문자적으로 '크나큰 두려움으로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히브리인들의 강조적 표현에 해당한다. 여기서 두려워하였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께 대하여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에 대한 놀라움 곧 일종의 종교적 경외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실로 '두려워 한다'는 것은 예수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과 일치시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을 대하듯이 예수를 대하는 제자들의 심적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의 구체적 표현이 다음에 나오는 반문하는 형식의 문구이다. 즉 '저가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가?'하는 질문을 함으로써 이 글을 읽고 듣는 사람들에게 암시적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시89:9;107:25-30). 그 대답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그렇게 하신다'일 것이다. 따라서 이 물음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논한 것으로 예수께 대한 본질적이고도 존재론적인 물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로 마가는 이와 같은 기적 사건을 소개하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을 것이다. 한편 박해와 순교의 현장에 놓여 있던 로마교회 신자들에게 이 마가복음의 메시지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가히 상상할 만하다. 이 사건은 시련과 박해의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평안을 갖게 해주었을 것이다(사 63:9;벧전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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