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엨셀덴 에케이덴 카이 엘덴 에이스 텐 파트리다 아우투 카이 아콜루두신 아우토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개역개정,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새번역,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동행했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영어NIV,1 Jesus left there and went to his hometown, accompanied by his disciples.
영어NASB,1 Jesus went out from there and came into His hometown;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영어MSG,1 He left there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His disciples came along.
영어NRSV,1 He left that place and came to his hometown,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εξηλθεν εκειθεν και ηλθεν εις την πατριδα αυτου και ακολουθουσιν αυτω οι μαθητα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1 et egressus inde abiit in patriam suam et sequebantur illum discipuli sui
히브리어Modern,1 ויצא משם ויבא אל ארצו וילכו אחריו תלמידיו׃
성 경: [막6:1-6]
갈릴리에서의 설교와 치병 기적을 통한 예수의 분주했던 활동(제 2차 갈릴리 사역, 마 8:5-13:58)은 갈릴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옵으로써 새로운 국면(局面)을 맞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선교 사역의 연장 선상에서 또는 휴식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는 등의 여러 주장들이 있다. 어쨌든 예수의 활동에 변화가 온 것은 사실이다. 예수가 고향에 돌라왔을 때 환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배척을 받고 있는 장면은 평행구인 마 13:53-58에 잘 나타나 있다. 이로써 예수는 가버나움 중심의 갈릴리 사역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이방인의 거주지를 위시한 각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선교하시는 제 3차 갈릴리 전도 사역의 계기를 마련하신다.
성 경: [막6:1]
거기를 떠나서. - “거기”라는 말은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이야기를 옮겨갈 때 사용하는 장소적 부사로서 7:24 ;9:30 ; 10:1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가리키는 “거기”는 가버나움을 가리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5장의 이야기와 전혀 무리없이 본 사건이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가시니. - 예수의 고향은 나사렛이다(1:9, 24 ; 요 1:46). 이곳은 가버나움의 남서쪽에 있는 한적한 지방이다(마 2:23 주석 참조). 한편 “고향”으로 번역된 헬라어 “파트리스”는 원래 “조상으로부터 살아온 곳”, “자기의 원(原) 출생지”등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나사렛이란 장소가 예수의 출생지(베들레헴)는 아니라 해도 이곳 나사렛에서 30여년 간 자라났으며 또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점에서 예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누가는 예수가 자라난 곳은 나사렛이라고 장소명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눅 4:16). 여기서 예수가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 처음인가 아니면 두 번째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예수의 계속되는 박해 장면이 공생애 기간 내내 있었던 관계로 각 복음서 기자들이 자신의 편집의도에 따라 적절히 배치하였기 때문에 본 사건은 눅 4:16 이하 기사는 분명 예수의 제 1차 갈릴리 사역 중에 발생했던 것이며 그 방문 내용도 본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본문의 예수는 공생애 후기에 제 2차 고향 방문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맥상으로 보나 전체적인 예수의 활동상으로 보아 마가복음의 이야기가 마태의 기록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제자들도 좇으니라. - 예수의 고향 방문이 단순한 휴가나 가족 상봉만을 목적한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즉 예수는 일종의 랍비(Rabbi)로서 당신의 제자들을 대동하고 고향 방문길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이 사실을 다루지 않고 있는데 비해 마가는 제자들의 수행 장면을 분명히 기록함으로써 제자들이 예수를 좇으면서 계속 제자로서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있었음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Cranfield).
카이 게노메누 삽바투 에릌사토 디다스케인 엔 테 쉬나고게 카이 폴로이 아쿠온테스 엨세플레쏜토 레곤테스 포덴 투토 타우타 카이 티스 헤 소피아 헤 도데이사 투토 카이 하이 뒤나메이스 토이아우타이 디아 톤 케이론 아우투 기노메나이
개역개정,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새번역,2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우리말성경,2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놀라며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이런 것들을 어디서 배웠는가? 저런 지혜를 도대체 어디서 받았는가? 기적까지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가톨릭성경,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영어NIV,2 When the Sabbath came, he began to teach in the synagogue, and many who heard him were amazed. "Where did this man get these things?" they asked. "What's this wisdom that has been given him, that he even does miracles!
영어NASB,2 When the Sabbath came, He began to teach in the synagogue; and the many listeners were astonished, saying, "Where did this man get these things, and what is this wisdom given to Him, and such miracles as these performed by His hands?
영어MSG,2 On the Sabbath, he gave a lecture in the meeting place. He made a real hit, impressing everyone. "We had no idea he was this good!" they said. "How did he get so wise all of a sudden, get such ability?"
영어NRSV,2 On the sabbath he began to teach in the synagogue, and many who heard him were astounded. They said, "Where did this man get all this? What is this wisdom that has been given to him? What deeds of power are being done by his hands!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γενομενου σαββατου ηρξατο εν τη συναγωγη διδασκειν και πολλοι ακουοντες εξεπλησσοντο λεγοντες ποθεν τουτω ταυτα και τις η σοφια η δοθεισα αυτω οτι και δυναμεις τοιαυται δια των χειρων αυτου γινονται
라틴어Vulgate,2 et facto sabbato coepit in synagoga docere et multi audientes admirabantur in doctrina eius dicentes unde huic haec omnia et quae est sapientia quae data est illi et virtutes tales quae per manus eius efficiuntur
히브리어Modern,2 וביום השבת החל ללמד בבית הכנסת וישמעו רבים וישתוממו לאמר מאין לזה כאלה ומה היא החכמה הנתונה לו עד אשר נעשו גבורות כאלה על ידיו׃
성 경: [막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 예수는 회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회당을 방문한 선생에게 회당장이(5:22) 성경을 강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한편 예수는 이 회당을 통한 선교 사역에 매우 익숙했었다(1:21). 따라서 누가는 “규례대로”라는 말로 예수의 가르침이 지극히 상례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가 읽은 성경의 내용까지 밝히고 있다. 그 성경은 사 61:1, 2이었다. 그런데 본문의 회당 설교 이후 예수의 회당을 통한 선교는 큰 어려움에 봉착(逢着)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어찌됨이뇨. -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이다. 우선 청중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 사람의 받은 지혜....어찌됨이뇨”하며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와 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예수의 30여 년 성장 과정을 줄곧 지켜보아왔던 터라 예수의 탁월한 성경 교수를 경악스러움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천박한 시기심과 질투심의 노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분의 탁월한 지혜와 권능을 직접 목격하고서도 오히려 “그의 가르침과 그의 권능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로서냐 사단에게로서냐?”하는 의심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점이다. 즉 예수의 초월적 권능에 대해 신앙인은 “무릎”으로, 비신앙인은 “놀람과 의심”으로 맞아들인다.
우크 후토스 에스틴 호 테크톤 호 휘오스 테스 마리아스 카이 아델포스 야코부 카이 요세토스 카이 유다 카이 시모노스 카이 우크 에이신 하이 아델파이 아우투 호데 프로스 헤마스 카이 에스칸달리존토 엔 아우토
개역개정,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새번역,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목수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꺼려 하였다' ㉡또는 '예수에게 걸려 넘어졌다'
우리말성경,3 저 사람은 한낱 목수가 아닌가?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가 아닌가? 그 누이들도 여기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가톨릭성경,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영어NIV,3 Isn't this the carpenter? Isn't this Mary's son and the brother of James, Joseph, Judas and Simon? Aren't his sisters here with u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영어NASB,3 "Is not this the carpenter, the son of Mary, and brother of James and Joses and Judas and Simon? Are not His sisters here with u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영어MSG,3 But in the next breath they were cutting him down: "He's just a carpenter--Mary's boy. We've known him since he was a kid. We know his brothers, James, Justus, Jude, and Simon, and his sisters. Who does he think he is?" They tripped over what little they knew about him and fell, sprawling. And they never got any further.
영어NRSV,3 Is not this the carpenter, the son of Mary and brother of James and Joses and Judas and Simon, and are not his sisters here with u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 ουκ ουτος εστιν ο τεκτων ο υιος μαριας αδελφος δε ιακωβου και ιωση και ιουδα και σιμωνος και ουκ εισιν αι αδελφαι αυτου ωδε προς ημας και εσκανδαλιζοντο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3 nonne iste est faber filius Mariae frater Iacobi et Ioseph et Iudae et Simonis nonne et sorores eius hic nobiscum sunt et scandalizabantur in illo
히브리어Modern,3 הלא זה הוא החרש בן מרים ואחי יעקב ויוסי ויהודה ושמעון והלא אחיותיו אתנו פה ויהי להם למכשול׃
성 경: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 청중들의 입을 통해 예수의 신원이 밝혀지고 있다. 물론 이 말의 저의는 “이 사람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천한 신분이 아니냐?” 또는 “이 자가 랍비라 칭하면서 이적을 행하고 돌아다니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라는 비아냥거림이 숨겨져 있다. 이쨌든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출생이나 성장에 대한 언급이 없고 족보에 대한 언급도 없다. 여기서 비로소 예수의 신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다. 즉 예수에게 어머니와 형제. 자매가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목수였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목수의 아들”로 언급되고(13“55), 누가복음에서는 단순히 요셉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4:22). 즉 목수라는 직업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어쨌든 마가는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이고 목수의 직업을 가졌던 소시민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마리아의 아들임을 밝힌 것은 예수 탄생 설화, 즉 처녀 탄생과 간접적으로 연결지으려는 마가의 의도에서라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의견은 다음과 같다. 즉 유대인의 전통적 관습에 의하면 비록 아버지가 생존하지 않은 때에라 하더라도 그 자녀를 그의 어머니의 아들로 묘사하는 것이 용인(容認)되지 않았다(Taylor). 따라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에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어머니의 아들로 호칭하는 것으로써 사생아를 지칭하는 경멸적 표현이라는 점을 들어 예수를 경멸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Orgen). 이 주장은 당시 나사렛 사람들이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잔제한다면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다. 따라서 나사렛 사람들은 이와 같이 존경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예수를 생각할 때 비록 예수의 설교와 능력이 놀랄만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예수를 용납하지 못했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별히 그들의 말투(”아니냐.....아니냐...아니하냐“)로 볼 때 그들은 고의적이고도 맹목적으로 그리고 천박한 시기심에 따라 예수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야고보와 요셉과...그 누이들. - 이들은 예수의 사촌(Jerome)이나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다른 여인과 결혼하여 낳았던 자녀들(Epiphanius)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예수의 친 형제요 자매들이다. 사실 제롬과 에피파니우스의 견해는 모두 마리아가 죽기까지 순결(virginity)을 지켰다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더욱이 제롬의 견해는 심지어 요셉의 동정성(童貞性)까지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 그릇된 가설에 불과하다. 실로 여기 언급된 형제. 자매들은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출산 후,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자연스런 성관계로 인해 출생한 예수의 친동생들인 것이다(Helvidiys).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여겨지며, 초대교회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행 12:17 ; 15:13 ; 21:18 ; 고전 15:7 ; 갈 1:19 ; 2:9, 12)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하다(약 1:1)/ 그는 유대사가 요세푸스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변사(變死)한 것으로 나온다. 한편 “유다”는 공동 서신 가운데 유다서의 저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요셉과 시몬 및 기타 자매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 회심하여 초대교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1:14).
예수를 배척한지라(에스칸달리존토 엔 아우토). - 먼저 여기서 “배척하다”는 뜻은 “넘어지다”는 의미의 헬라어 “스칸달리조마이”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이 단어가 뜻하는 바는 이 뿐 아니라 “배척당하다”, “....와 말다툼하다”, “...을 공격하다” 등 다양하다. 어쨌든 본문을 직역하면 “그에게 걸려 넘어지다”는 뜻이다. 즉 마치 그들이 덫에 걸리듯 예수로 인해 걸려 넘어졌다는 의미이다. 실로 그들은 예수를 현상적, 육신적, 신적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함으로써(불신앙함으로써) 결국 그분을 통해 실족하고 또한 그분을 배척하게 된 것이다.
엘레겐 데 아우토이스 호 예수스 호티 우크 에스틴 프로페테스 아티모스 에이 메 엔 테 파트리디 아우투 카이 엔 토이스 슁게네신 카이 엔 테 오이키아 아우투
개역개정,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새번역,4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우리말성경,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배척당하는 법이다.”
가톨릭성경,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영어NIV,4 Jesus said to them, "Only in his hometown, among his relatives and in his own house is a prophet without honor."
영어NASB,4 And Jesus said to them,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hometown and among his own relatives and in his own household."
영어MSG,4 Jesus told them, "A prophet has little honor in his hometown, among his relatives, on the streets he played in as a child."
영어NRSV,4 Then Jesus said to them, "Prophets are not without honor, except in their hometown, and among their own kin, and in their own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4 ελεγεν δε αυτοις ο ιησους οτι ουκ εστιν προφητης ατιμος ει μη εν τη πατριδι αυτου και εν τοις συγγενεσιν και εν τη οικι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4 et dicebat eis Iesus quia non est propheta sine honore nisi in patria sua et in cognatione sua et in domo sua
히브리어Modern,4 ויאמר אליהם ישוע אין הנביא נקלה כי אם בארצו ובין קרוביו ובביתו׃
성 경: [막6:4]
선지자가...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 이 구절은 고향 사람들의 배척에 대한 예수의 반응으로서 당시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격언구를 인용한 것이다. 속담형의 이 인용구는 유대, 헬라 문헌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 “철학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어렵게 산다” 또는 “친밀함은 오히려 경멸을 낳는다”는 등의 격언구들이 있다. 그러나 유대 및 헬라 문헌들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예수가 “”선자자“(영감받은 선생 정도로 이해됨)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선지자“라는 말은 유대 및 이교도들의 속담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진정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의 실존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예수 자신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예수 의 평범한 모습, 곧 자신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본문에서 마가는 ”친척“과 ”자기 집“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가족까지 예수를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자로 묘사한다. 당시 예수 추종자들도 많았지만 반대자들도 많았음을 상기한다면, 고향 사람들과 가족들까지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것은 예수의 활동에 대한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위협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마가는 이와 같이 고조된 긴장을 표현함으로써 예수의 고독성과 당시 사람들의 불신앙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카이 우크 에뒤나토 에케이 우데미안 뒤나민 포이에사이 에이 메 올리고이스 아르로스토이스 에피데이스 타스 케이라스 에데라퓨센
개역개정,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새번역,5 예수께서는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우리말성경,5 예수께서는 그저 아픈 사람들 몇 명만 안수해 고쳐 주셨을 뿐 거기서 다른 기적은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영어NIV,5 He could not do any miracles there, except lay his hands on a few sick people and heal them.
영어NASB,5 And He could do no miracle there except that He laid His hands on a few sick people and healed them.
영어MSG,5 Jesus wasn't able to do much of anything there--he laid hands on a few sick people and healed them, that's all.
영어NRSV,5 And he could do no deed of power there, except that he laid his hands on a few sick people and cure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ουκ ηδυνατο εκει ουδεμιαν δυναμιν ποιησαι ει μη ολιγοις αρρωστοις επιθεις τας χειρας εθεραπευσεν
라틴어Vulgate,5 et non poterat ibi virtutem ullam facere nisi paucos infirmos inpositis manibus curavit
히브리어Modern,5 ולא יכל לעשות שם פלא רק על חלשים מעטים שם את ידיו וירפאם׃
성 경: [막6:5]
거기에서는 아무 권능도 행사할 수 없어. - 어떻게 보면 이와 같은 표현은 예수의 능력과 권위에 대한 치명적 표현이라고 몰 수 잇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한계성(限界性)을 강조한 것이기 보다 예수의 능동적인 절제를 이끌어낸 근본적인 원인을 은연중에 시사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평행구인 마 13:58에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았다”고 표현함으로써 예수가 의지에 따라 행치 않으셨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행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 예수의 능력 결여 때문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의 불신 때문인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즉 예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권능을 행할 수 없었던 상황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권능이 일어날 수 있는 큰 변수가 청중의 신앙이라는 사실이다. 즉 당신에게 치유의 은총을 덧입고자 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실로 사람의 믿음 없이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법이다. 예수의 권능과 사람의 믿음이 서로 만나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마 8:5-13). 따라서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라는 표현은 고향에 예수를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가 극소수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마가는 이와 같은 묘사를 통해 예수의 권위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만나는 신앙인의 책임있는 자세를 강조하려 한 것이다. 진정 예수의 권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① 당신의 백성에게 확고한 사랑의 증거를 제공하고 ② 신앙인의 최종적 구원을 위한 도구로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능의 발현에 앞서 무엇보다 그 대상인 인간의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권능 베푸실 구속론적인 근거를 스스로 거부한 자들에게는 그 어떤 은혜의 시여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카이 에다우마젠 디아 텐 아피스티안 아우톤 카이 페리에겐 타스 코마스 퀴클로 디다스콘
개역개정,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새번역,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다.
우리말성경,6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영어NIV,6 And he was amazed at their lack of faith. Then Jesus went around teaching from village to village.
영어NASB,6 And He wondered at their unbelief. And He was going around the villages teaching.
영어MSG,6 He couldn't get over their stubbornness. He left and made a circuit of the other villages, teaching.
영어NRSV,6 And he was amazed at their unbelief. Then he went about among the villages teaching.
헬라어신약Stephanos,6 και εθαυμαζεν δια την απιστιαν αυτων και περιηγεν τας κωμας κυκλω διδασκων
라틴어Vulgate,6 et mirabatur propter incredulitatem eorum
히브리어Modern,6 ויתמה על חסרון אמונתם ויסב בכפרים סבוב ולמד׃
성 경: [막6: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더라 .- 이 묘사는 고향 사람들의 배척을 예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또한 무척 당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고향과 자기 집이라는 친근한 의미와 기대는 그들의 골 깊은 불신앙으로 인해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이러한 실망은 4절에서 보여준 예수의 반응과 연관지어 본다면 회당 안에서의 설교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으로 인한 실망보다는 권능을 행하지 못한 실망감이 훨씬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4절에서는 당연한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로 받아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실망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이 마 8:10에 나온다. 즉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로마 백부장의 진실한 믿음을 보고 기이(奇異)하게 여기고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경탄하는 장면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예수의 복음이 유대인의 거부로 인해 오히려 이방인에게 전달되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극적인 장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역시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의 중요성이다. 또 한 가지 이 두 사겅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은, 예수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로 당황하는 제한적인 인간성을 지닌 철저한 인간이시라는 점이다(Robertson). 물론 이같은 모습이 예수의 거룩한 신성(神性)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실로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이신 예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빌 2:6) 놀라기도 하시고 울기도 하신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시었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 다시 예수는 전도 여행을 떠나고 있다. 결국 이 장면은 고향에서 예수의 활동은 실패로 끝나고 고향을 떠나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서 특별히 “두루 다니시며”란 미완료 시상을 지니고 있어 예수의 “가르치시는” 사역이 계속 진행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지속적 가르치심의 대상인 “모든 촌”이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갈릴리 지방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본문은 예수의 제 3차 갈릴리 사역 기간의(6:66-9:50) 실질적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예수는 제자 훈련에 박차를 가하셨으며, 당신의 십자가 수난에 관한 비밀을 서서히 공개 하시게 된다.
카이 프로스칼레이타이 투스 도데카 카이 에릌사토 아우투스 아포스텔레인 뒤오 뒤오 카이 에디두 아우토이스 엨수시안 톤 프뉴마톤 톤 아카다르톤
개역개정,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새번역,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다. / ㉢그, '더러운'
우리말성경,7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영어NIV,7 Calling the Twelve to him, he sent them out two by two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evil spirits.
영어NASB,7 And He summoned the twelve and began to send them out in pairs,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the unclean spirits;
영어MSG,7 Jesus called the Twelve to him, and sent them out in pairs. He gave them authority and power to deal with the evil opposition.
영어NRSV,7 He called the twelve and began to send them out two by two,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the unclean spirits.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προσκαλειται τους δωδεκα και ηρξατο αυτους αποστελλειν δυο δυο και εδιδου αυτοις εξουσιαν των πνευματων των ακαθαρτων
라틴어Vulgate,7 et circumibat castella in circuitu docens et convocavit duodecim et coepit eos mittere binos et dabat illis potestatem spirituum inmundorum
히브리어Modern,7 ויקרא אל שנים העשר ויחל לשלח אותם שנים שנים ויתן להם שלטן על רוחות הטמאה׃
성 경: [막6:7-13]
이제 새로운 형태의 활동이 시작된다. 12제자의 파송은 ① 예수의 선교 활동이 조직화, 저변화되어감을 보여 주며 ② 그 활동영역이 확장되고 장기화됨을 보여 준다. 따라서 본문 이하에서부터 예수의 선교 활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됨을 알 수 있다.
성 경: [막6:7]
열 두 제자를 부르사. - 예수는 제자 파송 직전에 그들에게 선교에 관련된 유의 사항을 설교하시기 위해 그들을 부르셨다. 평행 구절인 마 10:1ff.에서는 이같은 표현에 좀더 보충적 설명이 가해지고 있다. 예수는 이미 3:14에서 12제자를 선택하신 바 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선택된 원래 목적(3:14, 15)을 실현키 위해 그들을 파견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둘씩 둘씩 보내시며. - 예수께서 당신이 훈련한 사람들을 똑립적으로 파송한 첫 번째 경우이다. 한편 눅 10:1에서 70명을 불러 파송할 때도 둘씩 둘씩 짝지어 파송한 이유는 유대인의 풍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1:1 ; 14:13 ; 행 13:2, 4 ; 16:40). 즉 이것은 신 17:6에 나타난 바와 같이 증인을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을 세우라는 관습에 근겋산 것으로서 예수도 역시 천국 복음 전파 활동에 관한 증인으로서 제자들을 파송할 때 이와 같은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6쌍의 제자들은 갈릴리 전역에 여섯 방향으로 산개(散開)되어 천국 확장 사업에 매진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보내시며”(아포스텔레인)란 말 속에는 “보내는 사람을 공식적으로 대표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권위를 부여하신 후 파송하셨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제자들은 보냄받은 자로서 예수의 권위에 힘입어 그분의 거룩한 뜻만을 각 지역에 펴야 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 이 구절은 파송하는 제자들에게 주는 직무이다. 평행 본문인 눅 9:1에서는 병고치는 능력을 첨가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파송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다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능력을 준 것은 12, 13절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 복음 전파와 병의 치유를 위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실로 사단의 권세가 정복되는 그곳에 주의 복음이 생명력 넘치게 자라나며 모든 부정하고 파괴적인 것들이 소멸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건설되는 것이다.
카이 파렝게일렌 아우토이스 히나 메덴 아이로신 에이스 호돈 에이 메 랍돈 모논 메 페란 메 아르톤 메 에이스 텐 조넨 칼콘
개역개정,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새번역,8 그리고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우리말성경,8 그리고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여행길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먹을 것이나 자루도 챙기지 말고 전대에 돈도 넣어 가지 말라.
가톨릭성경,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영어NIV,8 These were his instructions: "Take nothing for the journey except a staff--no bread, no bag, no money in your belts.
영어NASB,8 and He instructed them that they should take nothing for their journey, except a mere staff--no bread, no bag, no money in their belt--
영어MSG,8 He sent them off with these instructions: "Don't think you need a lot of extra equipment for this. You are the equipment. No special appeals for funds. Keep it simple.
영어NRSV,8 He ordered them to take nothing for their journey except a staff; no bread, no bag, no money in their belts;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παρηγγειλεν αυτοις ινα μηδεν αιρωσιν εις οδον ει μη ραβδον μονον μη πηραν μη αρτον μη εις την ζωνην χαλκον
라틴어Vulgate,8 et praecepit eis ne quid tollerent in via nisi virgam tantum non peram non panem neque in zona aes
히브리어Modern,8 ויצו אותם אשר לא ישאו מאומה לדרך זולתי מקל לבדו לא תרמיל ולא לחם ולא נחשת בחגורה׃
성 경: [막6:8-9]
이 구절은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주는 여행 지침이다.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 평행 본문인 마 10:10, 눅 9:3에서는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고 명한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지팡이는 보호를 목적으로 한 복자들이 소지하는 몽둥이고 마가복음의 지팡이는 보행에 도움을 주는 여행용 지팡이라고 보면서, 보행에 도움을 주는 것만 허용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구애됨 없이도 예수의 의도는 계속 이어지는 명령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본문의 “양식”은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다 포함되며, “주머니”는 양식이나 생필품을 넣고 다니는 여행 가방을, “전대”는 일종의 허리띠로서 동전 등을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돈”(칼로스)은 로마와 헬라에서 통용되던 작은 구리 동전으로서 소량의 잔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신”은 일종의 샌달(sandal) 같은 매우 간편한 여행용 신발을 가리킨다. “두 벌 옷”은 “여벌의 옷”이라는 뜻으로 이 같은 여분의 옷은 여행자가 노숙(露宿)할 때 밤의 한 기운을 막아주는데 매우 요긴하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조차 금하셨다. 한편 지팡이와 신을 신는 것만 허용된 것이 출 12:11과 비슷한 것에 착안하여 출애굽과 광야에로의 여행을 앞두고 내려졌던 명령과 일치시켜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출애굽적인 긴박감과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ㅣ존하는 출애굽 신앙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U. Mauser). 이 주장은 앞에서 두 사람씩 짝지어 보내는 전통과 더불어 가치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명령을 이해하면 ① 먼저 자신들이 전파하는 복음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자기 신변에 대한 염려는 일체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② 제자들이 매일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 신뢰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③ 복음 전파나 병자 치유를 위해 부름 받은 전도자는 청빈(淸貧)해야 한다는 규범적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자기가 의지할 수 있는 모든 소유를 버림으로써 하나님께 절대 의존할 수 있도록, 즉 자기소유에 의존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약화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명령은 결국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으로부터 출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12제자들에게 위임하려는 사명이 매우 긴박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이해서일 것이다.
알 휘포데데메누스 산달리아 카이 메 엔뒤세스데 뒤오 키토나스
개역개정,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새번역,9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말성경,9 신발만 신고 옷도 두 벌씩 가져가지 말라.
가톨릭성경,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영어NIV,9 Wear sandals but not an extra tunic.
영어NASB,9 but to wear sandals; and He added, "Do not put on two tunics."
영어MSG,9 (SEE 6:8)
영어NRSV,9 but to wear sandals and not to put on two tunics.
헬라어신약Stephanos,9 αλλ υποδεδεμενους σανδαλια και μη ενδυσησθε δυο χιτωνας
라틴어Vulgate,9 sed calciatos sandaliis et ne induerentur duabus tunicis
히브리어Modern,9 רק להיות נעולי סנדל ושתי כתנות לא ילבשו׃
카이 엘레겐 아우토이스 호푸 에안 에이셀데테 에이스 오이키안 에케이 메네테 헤오스 안 엨셀데테 에케이덴
개역개정,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새번역,1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우리말성경,10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 집에 머물라.
가톨릭성경,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영어NIV,10 Whenever you enter a house,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town.
영어NASB,10 And He said to them, "Wherever you enter a house, stay there until you leave town.
영어MSG,10 "And no luxury inns. Get a modest place and be content there until you leave.
영어NRSV,10 He said to them, "Wherever you enter a house,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e place.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ελεγεν αυτοις οπου εαν εισελθητε εις οικιαν εκει μενετε εως αν εξελθητε εκειθεν
라틴어Vulgate,10 et dicebat eis quocumque introieritis in domum illic manete donec exeatis inde
히브리어Modern,10 ויאמר אליהם במקום אשר תבאו בית איש שבו בו עד כי תצאו משם׃
성 경: [막6:10]
뉘 집에 들어가거든....거기 유하라. - 평행 본문 마 10:11에는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그곳에 유(留)”하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신세를 질 만한 집을 찾으라는 말인데, 그 조건은 아마도 경제적 여건도 고려해야 했을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전도 활동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거처할 집을 정하면 떠날 때까지 옮기지 말고 한 집에 머물라는 이유는 제자들의 행동이 주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최초 거주지에 만족치 못하고 더 편한 안식처를 찾아 여러 집으로 옮겨 다니게 되면 주민들 간에 불화를 조성하고 또 좋지 않은 소문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면 주민들에게 폐를 많이 끼치게 됨으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배려(配慮)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한 집을 정했으면 많은 불편이 있다 해도 참고 떠날때까지 거처를 옮기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곧 자신의 안락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사명자의 태도인 동시에 이웃에게 선한 이미지(image)를 제공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께 영광돌려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태도인 것이다.
카이 호스 안 토포스 메 뎈세타이 휘마스 메데 아쿠소신 휘몬 에크포류오메노이 에케이덴 엨티낰사테 톤 쿤 톤 휘포카토 톤 포돈 휘몬 에이스 마르튀리온 아우토이스
개역개정,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새번역,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거든, 그 곳을 떠날 때에 너희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을 고발할 증거물로 삼아라."
우리말성경,11 어느 집이든지 너희를 반기지 않거나 너희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떠나면서 경고의 표시로 발에 붙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
가톨릭성경,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영어NIV,11 And if any place will not welcome you or listen to you,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when you leave,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NASB,11 "Any place that does not receive you or listen to you, as you go out from there, shake the dust off the soles of your feet for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MSG,11 "If you're not welcomed, not listened to, quietly withdraw. Don't make a scene. Shrug your shoulders and be on your way."
영어NRSV,11 If any place will not welcome you and they refuse to hear you, as you leave, shake off the dust that is on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οσοι αν μη δεξωνται υμας μηδε ακουσωσιν υμων εκπορευομενοι εκειθεν εκτιναξατε τον χουν τον υποκατω των ποδων υμων εις μαρτυριον αυτοις αμην λεγω υμιν ανεκτοτερον εσται σοδομοις η γομορροις εν ημερα κρισεως η τη πολει εκεινη
라틴어Vulgate,11 et quicumque non receperint vos nec audierint vos exeuntes inde excutite pulverem de pedibus vestris in testimonium illis
히브리어Modern,11 וכל אשר לא יקבלו אתכם ולא ישמעו אליכם צאו משם ונערו את עפר כפות רגליכם לעדות להם אמן אני אמר לכם לסדם ולעמרה יקל ביום הדין מן העיר ההיא׃
성 경: [막6:11]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듣지도 아니하거든. - 이 구절은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제자들에게 전도 활동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암시를 주고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암시는 심지어 당신의 고향에서조차 배척받은 바 있는 예수 자신의 경혐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복음 증거자로서 배척당하게 될 상황에서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계신다.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증거를 삼으라. -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의 생활 습관 중의 하나이다. 즉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방 땅을 밟거나 여행하고 돌아올 때는 발과 옷에 묻은 이방 땅의 먼지를 모두 떨어내는 관례가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신 것은 복음을 배척하는 지역은 마치 이방인 지역과 같이 멸망의 자리에 놓이게 됨을 알리고 또 복음을 거절한 자들이 그들 스스로에 대하여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즉 어떤 의식주의(儀式主義)를 고수하거나 편당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하는 경멸적 행위를 유대인들에게 함으로써 반대자들에게 복음을 거부(拒否)하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잘못인가를 분명히 알려주기 위한 목적에서 이 같은 행동을 명하신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위는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만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진리를 선명하게 밝히기 위한 상징적 행위로서 그들이 급기야 구원의 가능성에서 단절됨을 선언하는 한 증거이다. 이는 개인적 원한 관계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복음과 그 권위를 거부했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카이 엨셀돈테스 에케뤼쏜 히나 메타노에소신
개역개정,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새번역,12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우리말성경,12 제자들은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전파했습니다.
가톨릭성경,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영어NIV,12 They went out and preached that people should repent.
영어NASB,12 They went out and preached that men should repent.
영어MSG,12 Then they were on the road. They preached with joyful urgency that life can be radically different;
영어NRSV,12 So they went out and proclaimed that all should repent.
헬라어신약Stephanos,12 και εξελθοντες εκηρυσσον ινα μετανοησωσιν
라틴어Vulgate,12 et exeuntes praedicabant ut paenitentiam agerent
히브리어Modern,12 ויצאו ויקראו לשוב בתשובה׃
성 경: [막6:12]
회개하라 전파하고. - 제자들의 선교 주제가 스승인 예수의 선교 주제와 일치하고 있다. 즉 예수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1:15). 다른 평행 본문에는 이런 묘사가 없으나 마가는 예수와 제자들의 선교, 그리고 세례 요한의 선교 메시지를 일치시킴으로써 천국 복음 전파의 대주제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1:4). 그리고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제자들의 활동까지 “회개”라는 말로 묶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실로 천국 입성의 전제 조건은 과거의 죄악된 삶의 길과 방식을 전격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참된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이 “회개”와 “믿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병행된다.
카이 다이모니아 폴라 엨세발론 카이 엘레이폰 엘라이오 폴루스 아르로스투스 카이 에데라퓨온
개역개정,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새번역,13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병을 고쳐 주었다.
우리말성경,13 그들은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고 수많은 환자들에게 기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영어NIV,13 They drove out many demons and anointed many sick people with oil and healed them.
영어NASB,13 And they were casting out many demons and were anointing with oil many sick people and healing them.
영어MSG,13 right and left they sent the demons packing; they brought wellness to the sick, anointing their bodies, healing their spirits.
영어NRSV,13 They cast out many demons, and anointed with oil many who were sick and cure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δαιμονια πολλα εξεβαλλον και ηλειφον ελαιω πολλους αρρωστους και εθεραπευον
라틴어Vulgate,13 et daemonia multa eiciebant et unguebant oleo multos aegrotos et sanabant
히브리어Modern,13 ויגרשו שדים רבים ויסוכו בשמן חלשים רבים וירפאום׃
성 경: [막6:13]
귀신을 쫓아내며....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 제자들의 복음 전파와 병행되는 정신적(영적), 육체적 치유 사역의 대표적 행위가 각각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치유 이적은 복음의 진실을 확증하고 많은 사람들을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한 궁극적 목적하에 이뤄졌다. 한편 이를 통해 볼 때 제자들의 활동이 설교내용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치병 기적까지 일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예수의 활동이나 제자들의 활동은 주 가지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즉 하나는 복음 선포 즉 설교와 가르침을 통한 진리 선포이다. 다른 하나는 치병 활동을 통하여 육체적, 정신적 병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참으로 온전한 인간 구원은 사람의 영과 육이 모두 구원을 얻는 전인적인 구원임을 보게 된다. 결국 지상에서 펼쳐지는 모든 선교 활동은 인간의 영. 육 모두가 구원의 대상이 됨을 실천해 보여야 할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보듯이 제자들의 치료 방법은 예수의 방법과 차이점이 있다. 즉 기름을 발라 치유한 점이다. 이러한 치유 방법은 복음서 중 이곳과 눅 10:34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치유 방법은 당시 유대교와 헬레니즘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당시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 같은 방법의 치유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같은 기름 바름은 단지 그것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측면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약 5:14, 15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병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도움 곧 신유의 은혜와 그 능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하여 로마 카톨릭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에서 도유(Unction)라는 성례전을 제정하여 환자에게 기름 바름을 통한 죄사함과 병나음을 소원하게 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9세기 카톨릭 개혁 시대에는 병든 자가 아니더라도 죽음에 직면한 자에게 교회가 베풀 수 있는 최종 예식으로 이 도유를 행하게하여 그로 하여금 죽음을 예비하게 했다. 흔히 이것을 부유식(傅油式) 또는 종유식(Extreme Unction)이라 부른다.
카이 에쿠센 호 바실류스 헤로데스 파네론 가르 에게네토 토 오노마 아우투 카이 엘레곤 호티 요안네스 호 밮티존 에게게르타이 에크 네크론 카이 디아 투토 에네르구신 하이 뒤나메이스 엔 아우토
개역개정,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새번역,14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니, 헤롯 왕이 그 소문을 들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고, / ㉣또는 '침례자'
우리말성경,14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헤롯 왕도 그 소문을 듣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 살아났다. 그래서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 침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4 King Herod heard about this, for Jesus' name had become well known. Some were saying, "John the Bapt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and that is why miraculous powers are at work in him."
영어NASB,14 And King Herod heard of it, for His name had become well known; and people were saying, "John the Baptist has risen from the dead, and that is why these miraculous powers are at work in Him."
영어MSG,14 King Herod heard of all this, for by this time the name of Jesus was on everyone's lips. He said, "This has to be John the Baptizer come back from the dead--that's why he's able to work miracles!"
영어NRSV,14 King Herod heard of it, for Jesus' name had become known. Some were saying, "John the baptizer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and for this reason these powers are at work i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ηκουσεν ο βασιλευς ηρωδης φανερον γαρ εγενετο το ονομα αυτου και ελεγεν οτι ιωαννης ο βαπτιζων εκ νεκρων ηγερθη και δια τουτο ενεργουσιν αι δυναμεις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14 et audivit Herodes rex manifestum enim factum est nomen eius et dicebat quia Iohannes Baptista resurrexit a mortuis et propterea inoperantur virtutes in illo
히브리어Modern,14 וישמע עליו המלך הורדוס כי נודע שמו ויאמר יוחנן הטובל קם מן המתים ועל כן פעלות בו הגבורות׃
성 경: [막6:14-29]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본문은 예수의 제자들이 행하는 선교 활동(6:13 ; 30-45절) 사이에 삽입된 일종의 중간 삽화이다(마 14:1-12 ; 눅 9:7-9), 따라서 13절과 30절을 곧바로 연결하여 읽어도 무방하다. 마가는 예수의 활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아 성공적인 성과를 올릴 때에 이 삽화를 통해서 세례 요한의 죽음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게하여 예수의 본질과 그 사역의 혼동을 불식시키고 메시야의 선구자에 불과한 세례 요한과 메시야 되신 예수 사이에 엄격한 구분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막6: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 13절의 내용과 무난하게 연결되는 듯하다. 즉 제자들의 활동을 통해 예수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문은 예수의 제 3차 갈릴리 사역 중간에 발생한 일로 볼 수 있다.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 헤롯대제(Herod the Great)와 부인 말타스(Malthace) 사이에 태어난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를 가리킨다. 그는 헤롯 대제 사후 분봉왕으로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한 나라의 1/4 영주)이 되었다. 그는 왕의 신분을 얻지 못한 군주였는데 로마의 칼리굴라(Galigula) 황제 시절에 로마로부터 왕의 신분을 얻으려 하다가 실패하여 A. D. 39년에 실각(失脚)하였다. 그럼에도 여기서 왕이라는 칭호를 쓴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헤롯을 왕이라고 호칭했을 가능성이 있거나 아니면 마가가 역설적인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용한 것 같다(Taylor). 어쨌든 헤롯은 아버지보다 유능하지 못하다고 평가되었다. 그는 아라비아 왕인 아레타스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지먄 자신의 동생 처인 헤로디아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때문에 본처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이에 불만을 품은 아라비아는 전쟁을 일으켜 헤롯을 패전시켰다. 한편 당시 헤롯이 “들은”것은 12제자들의 전도 사역을 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의 남서쪽 해변 위에 있는 디베랴(Tiberias)까지 먼 전도 여행을 했는데, 이 디베랴는 헤롯이 그의 수도를 세운 곳으로 당시의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Tiberius)의 이름을 따서 디베랴로 부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헤롯이 “들은”것은 이러한 제자들의 활동 이상으로 예수의 권능 있는 사역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오히려 앞의 견해보다 이 견해가 더욱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14-16절의 주된 관심이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살았났도다.- 헤롯은 자신의 비윤리적 행동을 비판한 세례 요한을 죽인 후 늘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있던 중 예수의 활동을 보면서 세례 요한이 예수 안에서 되살아나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실로 범죄자는 심리 상태가 늘 불안하며 항상 피해 의식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과 결부시켜 생각하거나 큰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 이는 헤롯의 종교관을 반영한 말로서 헤롯은 세례 요한이 살아 생전에는 이적을 행하지 못했으나(요 10:41) 그가 부활함으로써 이제 이적을 행하게 되었다고 단정했던 것이다. 특별히 본문에서 “능력”(에네르구신)이란 “활동적인 능력”, “힘찬 역사” 등을 의미하는 말로서 당시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가 헤롯에게 얼마나 큰 이미지(image)로 다가갔는지를 예상케 한다. 여하튼 헤롯이 이 미신적인 발상은 결국 예수의 활동 자체가 자신에게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안겨 줄 것이라는 불길(不吉)한 예감을 느겼음을 반영 하는 것이라 본다.
알로이 엘레곤 호티 엘리아스 에스틴 알로이 데 엘레곤 호티 프로페테스 에스틴 헤 호스 헤이스 톤 프로페톤
개역개정,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새번역,15 또 더러는 말하기를 "그는 엘리야다" 하고, 또 더러는 "옛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우리말성경,15 또 “그는 엘리야다”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는 예언자다. 옛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영어NIV,15 Others said, "He is Elijah." And still others claimed, "He is a prophet, like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영어NASB,15 But others were saying, "He is Elijah." And others were saying, " He is a prophet, like one of the prophets of old."
영어MSG,15 Others said, "No, it's Elijah." Others said, "He's a prophet, just like one of the old-time prophets."
영어NRSV,15 But others said, "It is Elijah." And others said, "It is a prophet, like one of the prophets of old."
헬라어신약Stephanos,15 αλλοι ελεγον οτι ηλιας εστιν αλλοι δε ελεγον οτι προφητης εστιν η ως εις των προφητων
라틴어Vulgate,15 alii autem dicebant quia Helias est alii vero dicebant propheta est quasi unus ex prophetis
히브리어Modern,15 ואחרים אמרו כי הוא אליהו ואחרים אמרו כי נביא הוא או כאחד הנביאים׃
성 경: [막6:15]
어떤 이는 .... 엘리야라 하고......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 아마도 헤롯의 신하가 헤롯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세례 요한이 되살아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엘리야나 아니면 선지자로 여긴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로 보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활동을 선지자의 활동이나 엘리야가 와서 활동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들이 예수를 엘리야로 생각한 것은 유대인들의 신앙 중의 하나가 여호와께서 심판의 날에 앞서 엘리야를 보낼 것이라는 약속(말 4:5)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예언한 바 있는 “오실 이”(1:7)가 엘리야 이외에 다른 특정 인물이라 볼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예수의 활동이 당시 유대인들이 설화를 통해 알고 있는 엘리야의 활동과 비슷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언급되는 “선지자”는 신 18:15-19에 예언된 “그 선지자”(the prophet)와 같은 어떤 특정한 선지자가 아니라 조상들의 시대에 활동하였던 많은 예언자들과 같은 반응들을 살펴 볼 때 당시 부활 사상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죽은 사람이 부활하여 다른 사람의 몸 속에서 활동한다는 헤롯의 말은 매우 흥미있다. 이것은 단순한 부활이 아니라 윤희설과 비슷하다. 이로 보건대 당시에는 영혼 불멸 사상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쿠사스 데 호 헤로데스 에펜 오티 혼 에고 아페케팔리사 요안넨 후토스 에스틴 아우토스 에게르데 에크 네크론
개역개정,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새번역,16 그런데 헤롯이 이런 소문을 듣고서 말하기를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살아났구나" 하였다.
우리말성경,16 이런 이야기를 듣고 헤롯이 말했습니다. “내가 목 자른 요한이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나 보다!”
가톨릭성경,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6 But when Herod heard this, he said, "John, the man I beheaded,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영어NASB,16 But when Herod heard of it, he kept saying, "John, whom I beheaded, has risen!"
영어MSG,16 But Herod wouldn't budge: "It's John, sure enough. I cut off his head, and now he's back, alive."
영어NRSV,16 But when Herod heard of it, he said, "John, whom I beheaded, has been raise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ακουσας δε ο ηρωδης ειπεν οτι ον εγω απεκεφαλισα ιωαννην ουτος εστιν αυτος ηγερθη εκ νεκρων
라틴어Vulgate,16 quo audito Herodes ait quem ego decollavi Iohannem hic a mortuis resurrexit
히브리어Modern,16 וישמע הורדוס ויאמר יוחנן אשר אנכי נשאתי את ראשו מעליו הוא קם מן המתים׃
성 경: [막6:16]
내가 목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 여기서 헤롯의 불안한 마음이 간접적으로 강하게 표출된다. 신하들이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만 헤롯은 틀림없이 예수의 활동이 죽은 세례 요한의 활동이라고 본다. 여기서는 자신이 직접 “내가 목베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이 직접적인 책임을 의식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복수하러 올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두려워하는 헤롯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이러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예수가 부활한 세례 요한일 것이라고 단정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우토스 가르 호 헤로데스 아포스테일라스 에크라테센 톤 요안넨 카이 에데센 아우톤 엔 테 퓔라케 디아 헤로디아다 텐 귀나이카 필맆푸 투 아델푸 아우투 호티 아우텐 에가메센
개역개정,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새번역,17 헤롯은 요한을 잡아오게 하여서, 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헤롯이 자기와 형제간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헤롯이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므로,
우리말성경,17 헤롯은 전에 요한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고 결국 요한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둔 적이 있었습니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 때문에
가톨릭성경,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영어NIV,17 For Herod himself had given orders to have John arrested, and he had him bound and put in prison. He did this because of Herodias, his brother Philip's wife, whom he had married.
영어NASB,17 For Herod himself had sent and had John arrested and bound in prison on account of Herodias, the wife of his brother Philip, because he had married her.
영어MSG,17 Herod was the one who had ordered the arrest of John, put him in chains, and sent him to prison at the nagging of Herodias, his brother Philip's wife.
영어NRSV,17 For Herod himself had sent men who arrested John, bound him, and put him in prison on account of Herodias, his brother Philip's wife, because Herod had married her.
헬라어신약Stephanos,17 αυτος γαρ ο ηρωδης αποστειλας εκρατησεν τον ιωαννην και εδησεν αυτον εν τη φυλακη δια ηρωδιαδα την γυναικα φιλιππου του αδελφου αυτου οτι αυτην εγαμησεν
라틴어Vulgate,17 ipse enim Herodes misit ac tenuit Iohannem et vinxit eum in carcere propter Herodiadem uxorem Philippi fratris sui quia duxerat eam
히브리어Modern,17 כי הוא הורודס שלח לתפש את יוחנן ויאסרהו בבית הסהר בגלל הורודיה אשת פילפוס אחיו כי אתה לקח לו לאשה׃
성 경: [막6:17-18]
전에 헤롯이 ...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 여기서부터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14-16절은 이 이야기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세례 요한을 헤롯이 직접 목을 베었다는 언급과 세례 요한의 부활이라는 생각으로 두려워하는 헤롯의 모습은 그 이유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 의문을 겨기서 밝히고 있다. 이제 이야기는 14-16절의 시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가는 “전에”라는 시간부사를 사용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는 헤롯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헤롯이 자기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를 들은 것이 비판의 이유이다. 그 행위는 출 20:14, 17의 간음 금지와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근친 상간(레 20:21) 금지를 범한 것이다. 사실 헤롯 가문의 가계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살인과 치정(癡情)이 뒤엉킨 참으로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본문에 언급된 헤로디아는 헤롯 대제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인 아리스토볼로스(Aristobolos)의 딸로서 자신의 이복 삼촌인 헤롯 빌립 1세(Herod Philip)의 아내 였으나 그 남편을 버리고 남편의 형제이자 자신의 이복 삼촌인 헤롯 안티파스와 재혼하였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지도자의 범죄로 보고 과거의 예언자들처럼 단호하게 비판하였다. 즉 다윗왕의 간음에 대해 나단이 비판하였던 것처럼(삼하 12:1-15) 또 지도자들의 죄악을 무섭게 비판했던 엘리야처럼(왕상 18:1-15 ; 21:17-29 ; 왕하 1:1-16 ; 대하 21:12-15) 세례 요한 역시 그렇게 했다. 특히 18절의 “말하되”(엘레겐)는 미완료 시상으로 세례 요한이 거듭해서 헤롯의 불의를 직고했음을 보여준다. 실로 세례 요한은 불의에 대해서는 권력의 힘도 개의치 않고 직언(直言)과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이것은 그의 소명 의식에서 발동된 것이라고 본다(1:3). 이러한 세례 요한의 행동에 대한 헤롯의 첫 반응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는 것이었다. 마가는 세례 요한의 투옥처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요한이 베레아 지방에 속하며, 사해 동쪽에 위치한 요새 마케루스(Machaerus) 산성의 감옥에 투옥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마가는 요한의 투옥 이유가 “그 여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즉 헤롯이 헤로디아를 위해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마도 헤로디아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24절에서 헤로디아가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 그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19절에서는 헤로디아가 죽이고자 마음 먹었음을 밝히고 있고 20절에서는 역시 요한을 죽이는 것에 헤롯이 반대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헤로디아의 요구에 의해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혔음이 분명하다. 한편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 요한의 투옥 이유 가운데 또다른 이유는 그가 민중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헤롯이 정적(政敵)을 이찌감치 제거할 목적으로 투옥시켰다고 전한다. 어찌되었든 세례 요한은 경건하고 의로운 메시야의 선구자이자 그 시대 정신으로서 끝내 불의한 정치 집단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엘레겐 가르 호 요안네스 토 헤로데 호티 우크 엨세스틴 소이 에케인 텐 귀나이카 투 아델푸 수
개역개정,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새번역,18 요한이 헤롯에게 형제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18 요한이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데려간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 왔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영어NIV,18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s wife."
영어NASB,18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s wife."
영어MSG,18 For John had provoked Herod by naming his relationship with Herodias "adultery."
영어NRSV,18 For John had been telling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s wife."
헬라어신약Stephanos,18 ελεγεν γαρ ο ιωαννης τω ηρωδη οτι ουκ εξεστιν σοι εχειν την γυναικα του αδελφου σου
라틴어Vulgate,18 dicebat enim Iohannes Herodi non licet tibi habere uxorem fratris tui
히브리어Modern,18 יען אשר אמר יוחנן אל הורדוס אשת אחיך איננה מתרת לך׃
헤 데 헤로디아스 에네이켄 아우토 카이 에델렌 아우톤 아포크테이나이 카이 우크 에뒤나토
개역개정,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새번역,19 그래서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원한을 품고, 요한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19 그래서 헤로디아는 원한을 품고 요한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영어NIV,19 So Herodias nursed a grudge against John and wanted to kill him. But she was not able to,
영어NASB,19 Herodias had a grudge against him and wanted to put him to death and could not do so;
영어MSG,19 Herodias, smoldering with hate, wanted to kill him, but didn't dare
영어NRSV,19 And Herodias had a grudge against him, and wanted to kill him. But she could not,
헬라어신약Stephanos,19 η δε ηρωδιας ενειχεν αυτω και ηθελεν αυτον αποκτειναι και ουκ ηδυνατο
라틴어Vulgate,19 Herodias autem insidiabatur illi et volebat occidere eum nec poterat
히브리어Modern,19 ותשטם אותו הורודיה ותבקש המיתו ולא יכלה׃
성 경: [막6: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 문자적으로 “헤로디아가 요한에게 원한을 계속(미완료 시제) 품고 있었다.” 더나아가서 “헤로디아가 반드시 그를 처벌받게 할 것이다” 등의 뜻으로 헤로디아의 깊디깊은 적의를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더깊은 죄악(살인)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 가르 헤로데스 에포베이토 톤 요안넨 에이도스 아우톤 안드라 디카이온 카이 하기온 카이 쉬네테레이 아우톤 카이 아쿠사스 아우투 폴라 에포레이 카이 헤데오스 아우투 에쿠엔
개역개정,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새번역,20 그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고, 또 그의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오히려 달게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0 그것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헤롯이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요한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을 달게 듣곤 했습니다.
가톨릭성경,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20 because Herod feared John and protected him, knowing him to be a righteous and holy man. When Herod heard John, he was greatly puzzled; yet he liked to listen to him.
영어NASB,20 for Herod was afraid of John, knowing that he was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he kept him safe. And when he heard him, he was very perplexed; but he used to enjoy listening to him.
영어MSG,20 because Herod was in awe of John. Convinced that he was a holy man, he gave him special treatment. Whenever he listened to him he was miserable with guilt--and yet he couldn't stay away. Something in John kept pulling him back.
영어NRSV,20 for Herod feared John, knowing that he was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he protected him. When he heard him, he was greatly perplexed; and yet he liked to listen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0 ο γαρ ηρωδης εφοβειτο τον ιωαννην ειδως αυτον ανδρα δικαιον και αγιον και συνετηρει αυτον και ακουσας αυτου πολλα εποιει και ηδεως αυτου ηκουεν
라틴어Vulgate,20 Herodes enim metuebat Iohannem sciens eum virum iustum et sanctum et custodiebat eum et audito eo multa faciebat et libenter eum audiebat
히브리어Modern,20 כי הורדוס ירא את יוחנן בדעתו כי הוא איש צדיק וקדוש ויגן בעדו והרבה עשה בשמעו אליו ויאהב לשמע אתו׃
성 경: [막6:20]
헤롯이.....두려워하여 보호하며.......달게 들음이러라. - 19절에서는 헤로디아가 요한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20절에서는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 곧 아무런 범죄를 저지른 일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요한을 “보호하려는”(미완료 시제로 계속적인 헤로디아의 간청에 대해 헤롯이 거듭하여 요한의 신변을 보호해왔음을 암시) 사람으로 묘사되어 두 사람이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따라서 마가는 헤로디아를 상대적으로 매우 악한 여자로 부각시킨다. 이러한 묘사가 평행 구절인 마 14:5에서는 없고 다만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했다고만 밝힌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헤롯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요한의 비판을 긍정하면서(“달게 들음이라”) 내적으로 몹시 괴로워하는 매우 심약하고 우유 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가는 이와 같이 헤로디아와 헤롯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헤로디아의 악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헤롯의 선함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례 요한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요한으로부터 공격받은 헤롯이 직접 요한을 가리켜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요한의 의로움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카이 게노메네스 헤메라스 유카이루 호테 헤로데스 토이스 게네시오이스 아우투 데이프논 에포이에이 토이스 메기스타신 아우투 카이 토이스 킬리아르코이스 카이 토이스 프로토이스 테스 갈릴라이아스
개역개정,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새번역,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요인들을 청하여 놓고, 잔치를 베풀었는데,
우리말성경,21 그런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헤롯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인사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가톨릭성경,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영어NIV,21 Finally the opportune time came. On his birthday Herod gave a banquet for his high officials and military commanders and the leading men of Galilee.
영어NASB,21 A strategic day came when Herod on his birthday gave a banquet for his lords and military commanders and the leading men of Galilee;
영어MSG,21 But a portentous day arrived when Herod threw a birthday party, inviting all the brass and bluebloods in Galilee.
영어NRSV,21 But an opportunity came when Herod on his birthday gave a banquet for his courtiers and officers and for the leaders of Galilee.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γενομενης ημερας ευκαιρου οτε ηρωδης τοις γενεσιοις αυτου δειπνον εποιει τοις μεγιστασιν αυτου και τοις χιλιαρχοις και τοις πρωτοις της γαλιλαιας
라틴어Vulgate,21 et cum dies oportunus accidisset Herodes natalis sui cenam fecit principibus et tribunis et primis Galilaeae
히브리어Modern,21 ויבא היום המכשר כי הורדוס ביום הלדת אתו עשה משתה לגדוליו ולשרי האלפים ולראשי הגליל׃
성 경: [막6:21]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잔치 할새. - 이 구절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헤로디아임을 암시한다. 즉 “기회 좋은 날”이란 헤롯의 보호 장벽을 뛰어넘어 세례 요한을 죽이기에 좋은 날이라는 것이 문맥상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좋아할 사람은 헤로디아가 된다. 헤로디아가 왜 좋아했는지는 24절에 나오고 있다. 그것은 요한을 죽이겠다는 자신의 의견을 거절할 수 없도록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좋은 날”은 헤롯의 생일이다. 그날은 매우 큰 기념 잔치로서 대연(大宴)을 베푼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교적 관습으로 치부하여 이 생일 지키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헤롯은 자기 생일에 이교도들 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생일 잔치를 펼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였다(Lenski). 한편 본문의 “잔치”(데이프논)는 가장 친근하고 귀한 손님들을 모시는 큰 만찬(晩餐)을 가리킨다. 한편 마가는 이 생일에 초대되는 사람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그 첫째가 “대신들”이다. 대신들은 헬라어로 “메기스타네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위대한”, “큰”(great, large), “중요한”(important)의 뜻을 가진 “메가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따라서 고위 관리자나 유력자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봉왕 아래에 있는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직속 고위 관료로 부는 것이 타당하다. 두 번째로 “천부장”들이다. 이들은 1,000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장교로서 군사적으로 고위 계층의 인물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갈릴리의 귀인들, 즉 갈릴리 지방의 유지 및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나열한 사람들의 성격을 보아 헤롯의 권세가 상당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비판(20절)과 요한의 능력에 찬 활동(14-16절)을 두려워하는 헤롯의 모습을 통해 마가는 비록 세례 요한이 그의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지만 그에게 대한 요한의 심대한 힘을 은연중에 나타내 보이고 있다.
카이 에이셀두세스 테스 뒤가트로스 아우투 헤로디아도스 카이 오르케사메네스 에레센 토 헤로데 카이 토이스 쉬나나케이메노이스 에이펜 호 바실류스 토 코라시오 아이테손 메 호 에안 델레스 카이 도소 소이
개역개정,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새번역,22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서, 헤롯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왕이 소녀에게 말하였다. "네 소원을 말해 보아라. 내가 들어주마."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의 딸 헤로디아가'
우리말성경,22 그때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춤을 춰 헤롯과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왕이 그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내가 다 들어주겠다.”
가톨릭성경,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영어NIV,22 When the daughter of Herodias came in and danced, she pleased Herod and his dinner guests.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me for anything you want, and I'll give it to you."
영어NASB,22 and when the daughter of Herodias herself came in and danced, she pleased Herod and his dinner guests; and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me for whatever you want and I will give it to you."
영어MSG,22 Herodias's daughter entered the banquet hall and danced for the guests. She dazzled Herod and the guests.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me anything. I'll give you anything you want."
영어NRSV,22 When his daughter Herodias came in and danced, she pleased Herod and his guests; and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me for whatever you wish, and I will gi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εισελθουσης της θυγατρος αυτης της ηρωδιαδος και ορχησαμενης και αρεσασης τω ηρωδη και τοις συνανακειμενοις ειπεν ο βασιλευς τω κορασιω αιτησον με ο εαν θελης και δωσω σοι
라틴어Vulgate,22 cumque introisset filia ipsius Herodiadis et saltasset et placuisset Herodi simulque recumbentibus rex ait puellae pete a me quod vis et dabo tibi
히브리어Modern,22 ותבא בת הורודיה ותרקד ותיטב בעיני הורדוס ובעיני המסבים עמו ויאמר המלך אל הנערה שאלי ממני את אשר תחפצי ואתן לך׃
성 경: [막6:22]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 헤로디아와 그의 전남편 빌립 사이에서 태어난 여아로서 이름은 “살로메”라고 하였다(Josephus). 그 당시 그녀의 아니는 14-15세 또는 17세 아니면 20세 이하 정도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그 이유는 마가가 사용한 “그 여아”를 뜻하는 헬라어 “코라시온”이라는 말이 이제 막 어린 소녀 티를 벗어나 결혼기에 이른 처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살로메가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게 된다. 아마 그녀가 자청해서라기 보다 그녀의 어미 헤로디아의 지시로 연석에 앉은 손님들이 어느 정도 취기가 돌았을 때에 무대로 나아갔을 것이다(Marrher). 한편 본문의 정황, 곧 모두가 흡족했던 것으로 보아 춤솜씨가 매우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분봉왕의 딸이면 공주라고 부를 수 있는데 과연 그런 신분으로 연회장에서 춤을 추었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런 술자리에서 춤추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용된 무희들(일종의 위안부)로서 대개 천한 신분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더욱이 당시 연회석상에서 추던 춤은 노출이 심한 옷에 매우 외설적이고 음란한 몸짓으로 남성들의 말초 신경을 극도로 자극하는 춤이었던 관계로 감히 왕족의 고귀한 신분으로서 그런 춤을 춤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헤롯 궁전의 도덕이 땅에 떨어질 만큼 문란(紊亂)하고 퇴폐적이었음을 감안할 때 그녀의 음란한 몸짓은 능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헤로디아와 그의 딸을 아주 부정한 자로 강조하고 있는 마가의 의도대로라면 헤로디아는 요한이 비판했던 부도덕한 결혼의 책임을 져야 하는 간교하고 음란한 여자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그런 여자라면 자기의 딸을 공중의 눈요기감으로 능히 춤추게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무엇이든지.....내가 주리라. - 당시 특권 계급의 專橫)과 무소 불위(無所不爲)한 그들의 횡포 및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헤이한 기풍을 감지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우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자기 과시적인 헤롯의 인간성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카이 오모센 아우테 호티 호 에안 메 아이테세스 도소 소이 헤오스 헤미수스 테스 바실레이아스 무
개역개정,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새번역,23 그리고 그 소녀에게 굳게 맹세하였다. "네가 원하는 것이면,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우리말성경,23 헤롯은 그 소녀에게 맹세까지 하면서 약속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 주겠다.”
가톨릭성경,23 “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영어NIV,23 And he promised her with an oath, "Whatever you ask I will give you, up to half my kingdom."
영어NASB,23 And he swore to her, "Whatever you ask of me, I will give it to you; up to half of my kingdom."
영어MSG,23 Carried away, he kept on, "I swear, I'll split my kingdom with you if you say so!"
영어NRSV,23 And he solemnly swore to her, "Whatever you ask me, I will give you, even half of my kingdom."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ι ωμοσεν αυτη οτι ο εαν με αιτησης δωσω σοι εως ημισους της βασιλειας μου
라틴어Vulgate,23 et iuravit illi quia quicquid petieris dabo tibi licet dimidium regni mei
히브리어Modern,23 וישבע לה לאמר כל אשר תשאלי ממני אתן לך עד חצי מלכותי׃
성 경: [막6:23]
맹세하되. - 이는 구두로 제시된 왕의 인준 및 서약으로서 결코 변경을 할 수 없는 절대 약속인 것이다. 따라서 헤롯은 그 어떤 일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한편 율법에는 이 같은 맹세의 불변성이 강조되고 있다(민 5:21).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 헤롯은 딸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고 있다. 즉 자기가 다스리고 있는 땅의 절반을 딸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무엇인가를 후히 주고자 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속담과 같은 말이다(왕상 13:8 ; 에 5:3 ; 7:2). 사실 이러한 약속은 헤롯의 신분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헤롯은 자기 영토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주권을 지닌 통치자가 아니라 로마의 명령을 받는 하급 군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헤로디아의 딸의 춤솜씨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허풍스럽고도 과장된 반응을 표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자기 맹세의 올무에 걸려들고 말았다.
헤 데 엨셀두사 에이펜 테 메트리 아우테스 티 아이테소마이 헤 데 에이펜 텐 케팔렌 요안누 투 밮티스투
개역개정,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새번역,24 소녀가 바깥으로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무엇을 달라고 청할까요?"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여라." / ㉥또는 '침례자'
우리말성경,24 소녀는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할까요?” 그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
가톨릭성경,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영어NIV,24 She went out and said to her mother, "What shall I ask fo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she answered.
영어NASB,24 And she went out and said to her mother, "What shall I ask for?" And she said,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영어MSG,24 She went back to her mother and said, "What should I ask for?" "Ask for the head of John the Baptizer."
영어NRSV,24 She went out and said to her mother, "What should I ask for?" She replied, "The head of John the baptizer."
헬라어신약Stephanos,24 η δε εξελθουσα ειπεν τη μητρι αυτης τι αιτησομαι η δε ειπεν την κεφαλην ιωαννου του βαπτιστου
라틴어Vulgate,24 quae cum exisset dixit matri suae quid petam et illa dixit caput Iohannis Baptistae
히브리어Modern,24 ותצא ותאמר לאמה מה אשאל ותאמר את ראש יוחנן המטביל׃
성 경: [막6:24]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 여기서 헤로디아의 음모(陰謀)가 드러난다. 그런데 헤로디아와 그의 딸이 공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단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두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가정할 수 있다. 먼저 공모했을 가능성은 딸이 어머니에게 찾아와서 무엇을 구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라는 대답에 조금도 놀라는 기색도 없이 돌아가 덧붙여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달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은 충분히 사전모의를 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전 모의를 했으면 왜 그 어미에게로 찾아가 물었겠는가 하는 점이 의문시 된다. 따라서 딸은 어머니와의 사전 모의 없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가능성을 포함할 수 있는 제 3의 가정은 모의는 하되 헤로디아의 결정적인 문제, 즉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은 헤로디아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카이 에이셀두사 유뒤스 메타 스푸데스 프로스 톤 바실레아 에테사토 레구사 델로 히나 엨사우테스 도스 모이 에피 피나키 텐 케팔렌 요안누 투 밮티스투
개역개정,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새번역,25 소녀는 급히 왕에게로 돌아와서 청하였다. "곧바로 서둘러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내게 주십시오." / ㉦또는 '침례자'
우리말성경,25 소녀가 곧장 왕에게 달려가 요구했습니다. “지금 곧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제게 주십시오.”
가톨릭성경,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 당장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영어NIV,25 At once the girl hurried in to the king with the request: "I want you to give me right now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영어NASB,25 Immediately she came in a hurry to the king and asked, saying, "I want you to give me at onc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영어MSG,25 Excited, she ran back to the king and said, "I want the head of John the Baptizer served up on a platter. And I want it now!"
영어NRSV,25 Immediately she rushed back to the king and requested, "I want you to give me at onc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εισελθουσα ευθεως μετα σπουδης προς τον βασιλεα ητησατο λεγουσα θελω ινα μοι δως εξ αυτης επι πινακι την κεφαλην ιωαννου του βαπτιστου
라틴어Vulgate,25 cumque introisset statim cum festinatione ad regem petivit dicens volo ut protinus des mihi in disco caput Iohannis Baptistae
히브리어Modern,25 ותמהר מאד לבוא אל המלך ותשאל לאמר רצוני אשר תתן לי עתה בקערה את ראש יוחנן המטביל׃
성 경: [막6:25]
저가 곧....급히 들어가. - 헤로디아의 딸은 헤롯의 약속 의지가 옅어지기 전에 그리고 그 고조된 분위기가 식기 전에 잽싸게 자신들의 음모를 수행할 생각으로 “곧”, “급히” 헤롯에게 달려가 소청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 세례 요한의 최후가 심히 비극적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케 하는 소름끼치는 요구이다. 여기 “소반”은 대형 접시(charger)를 가리킨다(마 14:8).
카이 페릴뤼포스 게노메노스 호 바실류스 디아 투스 호르쿠스 카이 투스 아우나나케이메누스 우크 에델레센 아우텐 아데테사이
개역개정,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새번역,26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한 것과 거기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소녀가 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말성경,26 왕은 몹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맹세한 것도 있고 손님들도 보고 있어서 그 요구를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영어NIV,26 The king was greatly distressed,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his dinner guests, he did not want to refuse her.
영어NASB,26 And although the king was very sorry, yet because of his oaths and because of his dinner guests, he was unwilling to refuse her.
영어MSG,26 That sobered the king up fast. But unwilling to lose face with his guests, he caved in and let her have her wish.
영어NRSV,26 The king was deeply grieved; yet out of regard for his oaths and for the guests, he did not want to refuse her.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περιλυπος γενομενος ο βασιλευς δια τους ορκους και τους συνανακειμενους ουκ ηθελησεν αυτην αθετησαι
라틴어Vulgate,26 et contristatus rex propter iusiurandum et propter simul recumbentes noluit eam contristare
히브리어Modern,26 ויתעצב המלך מאד אך בעבור השבועה והמסבים עמו לא רצה להשיב פניה׃
성 경: [막6:26]
왕이.....자기의 맹세한 것. - 헤롯은 자기가 한 맹세에 대해서 몹시 후회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맹세”(디아 투스 호르쿠스)란 복수로 표기되어 있어 그의 맹세가(23)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 확인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같은 맹세가 잔치에 참속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것이라서 자신의 위신과 체면 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진퇴 양난에 빠지게 됐다. 그리고 20절에서 언급된 바처럼 헤롯이 요한을 지금껏 계속해서 두둔해왔기 때문에 헤롯의 딜레마(dilemma)는 더욱 심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체면 유지는 한 사람의 의로운 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보다 더욱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되고 만다. 여기서 22, 23절에 이미 묘사된 바 있듯이 헤롯이 치밀하지 못하여 지도자로서 판단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여진다. 즉 무능하고 마음이 여린 것으로 비춰진다. 물론 이 같은 기질은 그의 심성 자체가 온유해서라기보다 그가 진리와 정의에 대해 용기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결국 그는 간교한 헤로디아의 올무에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었다.
카이 유데오스 아포스테일라스 호 바실류스 스페쿨라토라 에페탘센 에에네크데나이 텐 케팔렌 아우투 호 데 아펠돈 아페케팔리센 아우톤 엔 테 퓔라케
개역개정,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새번역,27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서,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호위병은 나가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서,
우리말성경,27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 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호위병은 가서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가톨릭성경,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영어NIV,27 So he immediately sent an executioner with orders to bring John's head. The man went, beheaded John in the prison,
영어NASB,27 Immediately the king sent an executioner and commanded him to bring back his head. And he went and had him beheaded in the prison,
영어MSG,27 The king sent the executioner off to the prison with orders to bring back John's head. He went, cut off John's head,
영어NRSV,27 Immediately the king sent a soldier of the guard with orders to bring John's head. He went and beheaded him in the prison,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ευθεως αποστειλας ο βασιλευς σπεκουλατωρα επεταξεν ενεχθηναι την κεφαλη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27 sed misso speculatore praecepit adferri caput eius in disco et decollavit eum in carcere
히브리어Modern,27 ומיד שלח המלך אחד הטבחים ויצוהו להביא את ראשו׃
성 경: [막6:27]
시위병(스페쿨라토라). - 라틴어 “스빼꿀라또르”(speculator)에 해당하는 말로서 “정탐꾼”, “정찰병”, “감시자” 혹은 “사형 집행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용어는 시위병 곧 궁을 지키며 왕의 신변 경호를 위해 있는 병사를 가리킨다. 한편 이때 헤롯은 마케루스 궁 안에 머물렀으며 그 사형 집행 장소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카이 에넹켄 텐 케팔렌 아우투 에피 피나키 카이 에도켄 아우텐 토 코라시오 카이 토 코라시온 에도켄 아우텐 테 메트리 아우테스
개역개정,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새번역,28 쟁반에 담아 소녀에게 주고,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우리말성경,28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돌아와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그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영어NIV,28 and brought back his head on a platter. He presented it to the girl, and she gave it to her mother.
영어NASB,28 and brought his head on a platter, and gave it to the girl; and the girl gave it to her mother.
영어MSG,28 brought it back on a platter, and presented it to the girl, who gave it to her mother.
영어NRSV,28 brought his head on a platter, and gave it to the girl. Then the girl gave it to her m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28 ο δε απελθων απεκεφαλισεν αυτον εν τη φυλακη και ηνεγκεν την κεφαλην αυτου επι πινακι και εδωκεν αυτην τω κορασιω και το κορασιον εδωκεν αυτην τη μητρι αυτης
라틴어Vulgate,28 et adtulit caput eius in disco et dedit illud puellae et puella dedit matri suae
히브리어Modern,28 וילך ויכרת את ראשו בבית הסהר ויביאהו בקערה ויתנהו לנערה והנערה נתנה אתו אל אמה׃
성 경: [막6:28]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주니. - 시위병이 명령에 따라 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담아 오는 동안 헤로디아의 딸은 침착하게 그 연회 석상에서 기다렸던 것 같다. 참수된 요한의 머리는 그 냉혈적(冷血的)인 딸에게 주어졌고 그 딸은 다시 어미에게 그것을 건네 주었다. 여기서 헤로디아의 악마성이 부각된다. 살인을 공모. 교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머리를 직접 받아들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어떤 전승에 따르면 이때 요한의 머리을 전해 받은 헤로디아는 그의 머리 핀 끝으로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었던 세례 요한의 혀를 찔러보고 또 그의 혀를 뽑아 내기까지 했다고 전한다(마 14:10, 11).
카이 아쿠산테스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엘돈 카이 에란 토 프토마 아우투 카이 에데칸 아우토 엔 토 므네메이오
개역개정,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새번역,29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무덤에 안장하였다.
우리말성경,29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시신을 가져다가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가톨릭성경,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영어NIV,29 On hearing of this, John's disciples came and took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영어NASB,29 When his disciples heard about this, they came and took away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영어MSG,29 When John's disciples heard about this, they came and got the body and gave it a decent burial.
영어NRSV,29 When his disciples heard about it, they came and took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헬라어신약Stephanos,29 και ακουσαντες οι μαθηται αυτου ηλθον και ηραν το πτωμα αυτου και εθηκαν αυτο εν τω μνημειω
라틴어Vulgate,29 quo audito discipuli eius venerunt et tulerunt corpus eius et posuerunt illud in monumento
히브리어Modern,29 וישמעו תלמידיו ויבאו וישאו את גויתו וישימוה בקבר׃
성 경: [막6:29]
요한의 제자들이....장사하니라. -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가 이제 마무리된다. 당시 요한과 긴밀히 소식을 교환하고 있었던 그의 제자들은(마 11:2) 스승의 죽음을 전해듣고 살의(殺意)가 채 가라낮지 않은 마케루스 성에 찾아가 담대히 스승의 목없는 시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한편 요한의 죽음으로 헤롯은 자기와 요한과의 관계가 모두 끝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같은 헤롯의 만행을 깊이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A. D. 30년 나바티아 족(Nabataeans)과의 전투에서 참패했을 때 그것이 헤롯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었다고 단정할 만큼 헤롯과 그 가족의 만행을 두고두고 되새기고 있었다. 한편 마태는 본 사건을 기술하면서 요한의 제자들이 장사(葬事)를 마친 후 그 모든 일을 예수께 고했다고 전한다(마 14:12). 이로써 결국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 이야기의 배경 역할을 하게 된다. 실로 세례 요한이 생존시 고백했듯이 그 자신은 쇠하여야 하겠고 오실 그분, 곧 예수는 흥하여야 했던 것이다(요 3:30).
카이 쉬나곤타이 호이 아포스톨로이 프로스 톤 예순 카이 아펭게일란 아우토 판타 카이 호사 에포이에산 카이 호사 에디닼산
개역개정,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새번역,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몰려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그에게 보고하였다.
우리말성경,30 사도들이 예수께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가톨릭성경,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영어NIV,30 The apostles gathered around Jesus and reported to him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영어NASB,30 The apostles gathered together with Jesus; and they reported to Him all that they had done and taught.
영어MSG,30 The apostles then rendezvoused with Jesus and reported on all that they had done and taught.
영어NRSV,30 The apostles gathered around Jesus, and told him all that they had done and taught.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συναγονται οι αποστολοι προς τον ιησουν και απηγγειλαν αυτω παντα και οσα εποιησαν και οσα εδιδαξαν
라틴어Vulgate,30 et convenientes apostoli ad Iesum renuntiaverunt illi omnia quae egerant et docuerant
히브리어Modern,30 ויקהלו השליחים אל ישוע ויגידו לו את כל אשר עשו ואת אשר למדו׃
성 경: [막6:30-44]
이 사건을 오병 이어(五餠二漁)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평행 본문은 마 14:13-21과 눅 9:10-17에 있다. 정소는 게네사렛 호수 동쪽 해안 지대일 것이다. 마가의 기록에서 특징적인 것은 서론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사천 명을 먹이신 일을(8:1-10) 그 후편으로 다루고 있으며 제자들과의 대화가 좀더 많은 점이 돋보인다. 또 삽화로 나온 헤롯의 잔치 곧 헤롯 궁전의 현란하고 호화로운 분위기와 예수가 일개 서민의 주식에 불과한 음식으로 배부르게 해야 했던 일반 백성들의 궁핍한 형편을 극적으로 잘 대비시키고 있다(Lane). 한편 본 이적은 사복음서(요 6:1-15) 모두가 소개 되는 유일한 기사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성 경: [막6: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고하니.- 이 구절은 13절에 이어지는 것이다. 즉 제자들이 파송받아 복음 전파와 치병 기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와 예수께 보고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마가는 제자들의 활동 기간이나 그 활동 내용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이 예수의 위임을 받아 갈릴리 전역에 흩어져 선교 사명을 완수하고 동아온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마가는 “모여”라는 말을 현재 시제로 묘사함으로써 그 장면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라는 말 대싱에 “사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마가는 본절에서만 유일하게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토로스”라고 하는데 이는 “특수한 사명을 띠고 파송받은 사신”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복음 전파와 치병 활동을 위해 특별히 파송받은 것이므로 적절한 단어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Gould). 어쨌든 예수께서는 그들이 감격어린 음성으로 전하는 모든 선교 활동의 보고를 하나하나 귀담아 들으시는 성실함을 보이셨다(눅 9:10).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듀테 휘메이스 아우토이 캍 이디안 에이스 에레몬 토폰 카이 아나파우사스데 올리곤 에산 가르 호이 에르코메노이 카이 호이 휘파곤테스 폴로이 카이 우데 파게인 유카이룬
개역개정,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새번역,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1 그런데 거기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와 제자들은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외딴 곳으로 가서 잠시 쉬라.”
가톨릭성경,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영어NIV,31 Then, because so many people were coming and going that they did not even have a chance to eat, he said to them, "Come with me by yourselves to a quiet place and get some rest."
영어NASB,31 And He said to them, "Come away by yourselves to a secluded place and rest a while." (For there were many people coming and going, and they did not even have time to eat.)
영어MSG,31 Jesus said, "Come off by yourselves; let's take a break and get a little rest." For there was constant coming and going. They didn't even have time to eat.
영어NRSV,31 He said to them, "Come away to a deserted place all by yourselves and rest a while." For many were coming and going, and they had no leisure even to eat.
헬라어신약Stephanos,31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δευτε υμεις αυτοι κατ ιδιαν εις ερημον τοπον και αναπαυεσθε ολιγον ησαν γαρ οι ερχομενοι και οι υπαγοντες πολλοι και ουδε φαγειν ηυκαιρουν
라틴어Vulgate,31 et ait illis venite seorsum in desertum locum et requiescite pusillum erant enim qui veniebant et rediebant multi et nec manducandi spatium habebant
히브리어Modern,31 ויאמר אליהם באו אתם לבדד אל מקום חרבה ונוחו מעט כי רבים היו הבאים והיצאים עד לאין עת להם לאכול׃
성 경: [막6:31]
따로 한적한 곳에...쉬어라. - 제자들의 활동 보고에 대한 예수의 반응은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배려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전도 활동을 하는 동안 상당히 피로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제자들을 아끼는 스승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의 펴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휴식은 새로운 내일을 위한 영. 육의 재충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생각되어야 한다. 사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쉬어라”(아나파우사스데)는 말은 중간태 명령형으로서 “충분히 휴식을 회복하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장소가 매우 분주한 장소인 것으로 보여진다. 즉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마가의 전형적인 묘사법으로서 예수가 가는 곳에는 항상 군중이 쉴새 없이 모여들고 있는 생동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가는 이와 같은 장면 연출을 통해 예수 활동을 극적으로 고조시키려 하고 있다. 즉 식사할 겨를조차 없이 분주하게 활동하는 예수의 열정적 모습과 그를 좇는 수많은 무리들을 통해 당시 예수의 영향력을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모여든 군중들 중에는 유월절이 다가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예수와 제자들의 활동을 통해 그 명성을 듣고 모여든 주총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한편 본문의 “한적한 곳”(에레모스)이란 외롭고 적막한 “광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마가는 본 사건을 기록하면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광야에서의 휴식”이란 주제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즉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셨던 곳이 광야였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이 선지자 이사야(사 63:14)와 예레미야(렘 31:2) 때에 이르러, 하나님의 새 백성이 제 2의 출애굽 때에 받기로 약속된 제 2의 휴식(a seoind rest)에 대한 모형으로 발전하였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바로 이 약속을 성취했다. 왜냐하면 구름 기둥과 불 기둥 대신 예수가 곧 하나님의 임재이며, 만나 대신 예수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떡, 곧 생명의 양식이 되셨기 때문이다.
카이 아펠돈 에이스 에레몬 토폰 토 플로이오 캍 이디안
개역개정,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새번역,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우리말성경,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영어NIV,32 So they went away by themselves in a boat to a solitary place.
영어NASB,32 They went away in the boat to a secluded place by themselves.
영어MSG,32 So they got in the boat and went off to a remote place by themselves.
영어NRSV,32 And they went away in the boat to a deserted place by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απηλθον εις ερημον τοπον τω πλοιω κατ ιδιαν
라틴어Vulgate,32 et ascendentes in navi abierunt in desertum locum seorsum
히브리어Modern,32 וילכו משם באניה אל מקום חרבה לבדד׃
성 경: [막6:32]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 예수와 제자들이 무리들을 피하는 방법으로 육지에서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아마도 그들은 호수 북동쪽으로 갔을 것이다. 이때 예수를 좇던 무리들은 황급히 요단강 본류에서 갈릴리 호수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얕은 곳을 따라 요단강을 횡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한적한 곳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호숫가에서 배를 이용하여 다른 호숫가로 이동하는 점이다. 그러나 눅 9:10을 참고하면 행선지는 이름이 “어촌”이라는 뜻을 지닌 “벳새다”라 하는 광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45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건너편 벳새다”로 가라고 지시한다. 그렇다면 33절에서의 도착 지점은 “베새다”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같은 모순은 갈릴리 해변에는 이 지명을 지닌 곳이 두 곳(갈릴리 북동쪽과 갈릴리 서안쪽)이었다고 봄으로써 어느 정도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갈릴리 북동쪽 벳새는 헤롯 빌립이 도시(city)로 승격시키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딸인 율리아스(Julias)의 이름을 따서 그곳에 명명함으로써 벳새다 율리아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카이 에이돈 아우투스 휘파곤타스 호이 오클로이 카이 에페그노산 아우톤 폴로이 카이 페제 아포 파손 톤 폴레온 쉬네드라몬 에케이 카이 프로엘돈 아우투스 카이 쉬넬돈 프로스 아우톤
개역개정,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새번역,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들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우리말성경,33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마을에서 달려 나와 길을 따라 걸어가서 그들보다 그곳에 먼저 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영어NIV,33 But many who saw them leaving recognized them and ran on foot from all the towns and got there ahead of them.
영어NASB,33 The people saw them going, and many recognized them and ran there together on foot from all the cities, and got there ahead of them.
영어MSG,33 Someone saw them going and the word got around. From the surrounding towns people went out on foot, running, and got there ahead of them.
영어NRSV,33 Now many saw them going and recognized them, and they hurried there on foot from all the towns and arrived ahead of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ειδον αυτους υπαγοντας οι οχλοι και επεγνωσαν αυτον πολλοι και πεζη απο πασων των πολεων συνεδραμον εκει και προηλθον αυτους και συνηλθον προ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33 et viderunt eos abeuntes et cognoverunt multi et pedestre et de omnibus civitatibus concurrerunt illuc et praevenerunt eos
히브리어Modern,33 וההמון ראה אותם יצאים ויכירהו רבים וירוצו שמה ברגליהם מכל הערים ויעברו אותם ויאספו אליו׃
성 경: [막6:33]
많은 사람이 저희인줄 안지라. - 이 구절로 보아 군중들이 배가 떠난 뒤 뒤늦게 야 배에 탄 자들이 예수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문맥상 적절치 못하다. 오히려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예수의 일행이라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호수 주면에 있는 여러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각각 자기 마을에서 호수를 가로질러 가는 배를 보고(아마 당시 역풍으로 인해 배의 진행이 지체된 듯함)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예수의 일행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호숫가에 위치한 여러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도 예수의 일행을 알아보았다면 그들은 이미 예수에 대한 명성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로 보여진다.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해 주는 구절이 곧이어진다.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徒步)로....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 이는 마가의 현장감 넘치는 문장 기법이 돋보이는 장면으로 휴식을 위해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는 예수의 일행과 그 일행을 따라 달리는 군중들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즉 부정적 시각에서 보면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시달리며 피곤해 하는 예수의 일행을 생각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휴식하러 떠나는 예수의 일행을 조보(徒步)로 좇아가는 군중들의 열성을 생각할 수 있다. 실로 예수께 대한 기대로 충만했던 무리들의 열정은 대했다. 그들은 수십km가 넘는(가버나움에서 벳새다까지는 약 30km) 먼거리를 지칠 줄 모르고 걸어 예수의 일행보다 먼저 당도했던 것이다. 예수께 대한 무리들의 기대 심리는 이제 최고조에 달했음을 알게 한다.
카이 엨셀돈 에이덴 호 예수스 폴륀 오클론 카이 에스플랑크니스데 엪 아우투스 호티 에산 호스 프로바타 메 에콘타 포이메나 카이 에릌사토 디다스케인 아우투스 폴라
개역개정,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새번역,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우리말성경,34 예수께서 도착해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영어NIV,34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eaching them many things.
영어NASB,34 When Jesus went ashore, He saw a large crowd, and He felt compassion for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영어MSG,34 When Jesus arrived, he saw this huge crowd. At the sight of them, his heart broke--like sheep with no shepherd they were. He went right to work teaching them.
영어NRSV,34 As he went ashore, he saw a great crowd; and he had compassion for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34 και εξελθων ειδεν ο ιησους πολυν οχλον και εσπλαγχνισθη επ αυτοις οτι ησαν ως προβατα μη εχοντα ποιμενα και ηρξατο διδασκειν αυτους πολλα
라틴어Vulgate,34 et exiens vidit multam turbam Iesus et misertus est super eos quia erant sicut oves non habentes pastorem et coepit docere illos multa
히브리어Modern,34 ויצא וירא המון עם רב ויהמו מעיו עליהם כי היו כצאן אשר אין להם רעה ויחל ללמד אותם דברים הרבה׃
성 경: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 앞절에서 묘사된 바와 같ㅇ이 군중들이 예수가 탄 배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 예수 일행이 도착하기전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예수는 배를 대고 배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이것 역시 마가의 특유한 묘사이다. 항상 배, 바다, 군중이 함께 등장한다(3:7-9 ; 4:1,36 ; 5:2, 21).
목자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 자신을 만나려고 모여드는 군중들을 보고 예수는 휴식의 장(場)을 빼앗긴데 대한 불쾌한 반응을 보이시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와 제자들의 피곤함을 모두 잊고 깊은 감동과 연민의 정을 강하게 느끼셨다. 실로 예수의 이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이야말로 모든 구원과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마 14:14 주석 참조). 한편 예수의 이같은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목자없는 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는 민 27:17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서 예수께서 간혹 사용하신 표현이다(마 9:36). 이 말은 먼저 자기 의무를 잊은 거짓 목자에 대한 비판적 이해할 수 있다(왕하 22:17 ; 겔 34:5). 왜냐하면 당시 율법학자, 바리새인, 서기관 증의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무리들이 예수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따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 행위가 당시 종교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진리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이 무리들에게 진리를 공급해주지 않았음으로 무리들은 진리에 심히 굶주려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반대로 예수 자신이 지금부터 민중의 새로운 목자로 나선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가 배에서 내려 자신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기며 여러 가지로 가르친다고 표현하였다. 사실 양보다 더 그의 인도자를 필요로 하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목자없는 양은 살았으나 이미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물도, 꼴도, 안식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세처럼 그의 백성을 인도하며(사 40:11), 다윗처럼 그들에게 휴식을(겔 34:23-25) 제공하심으로(Lane Mauer) 그들 이스라엘의 참 목자가 되셨던 것이다(요 10:1ff).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무리들과 굶주려 있는 무리들을 향한 예수의 인간애는 애절한 것이었다. 8:2에 나오는 4.000명 급식 이적에서 보여준 예수의 감정은 무리들의 영적인 굶주림만 아니라 육체적 굶주림까지 걱정하며 애통해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인간 사랑은 인간의 영. 육 구원, 즉 전인(全人) 구원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뒤에 나오는 급식 이적에 대한 이해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이 그르침의 주 내용은 천국 복음일 것이다. 이에 대해 누가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 기록하고 있다(눅 9:11). 그리고 마태와 누가는 각각 병고치시는 장면을 더불어 기록하고 있다(마 14:14 ; 눅 9:11). 이로 보건대 예수는 모인 무리들의 모든 필요(영. 육간)을 채워 주셨음을 보게 된다. 진정 그 무리들에게 “부족함”이 없는 목자가 주어진 것이다(시 23:1).
카이 에데 호라스 폴레스 게노메네스 프로셀돈테스 아우토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레구신 호티 에레모스 에스틴 호 토포스 카이 에데 호라 폴레
개역개정,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새번역,35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우리말성경,35 날이 저물어 가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은 빈 들인데 시간도 벌써 많이 늦었습니다.
가톨릭성경,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영어NIV,35 By this time it was late in the day, so his disciples came to him. "This is a remote place," they said, "and it's already very late.
영어NASB,35 When it was already quite late,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place is desolate and it is already quite late;
영어MSG,35 When his disciples thought this had gone on long enough--it was now quite late in the day--they interrupted: "We are a long way out in the country, and it's very late.
영어NRSV,35 When it grew late,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is a deserted place, and the hour is now very late;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ηδη ωρας πολλης γενομενης προσελθοντες αυτω οι μαθηται αυτου λεγουσιν οτι ερημος εστιν ο τοπος και ηδη ωρα πολλη
라틴어Vulgate,35 et cum iam hora multa fieret accesserunt discipuli eius dicentes desertus est locus hic et iam hora praeterivit
히브리어Modern,35 ויהי כאשר רפה היום לערוב ויגשו אליו תלמידיו לאמר הנה המקום חרב והיום רד מאד׃
성 경: [막6:35-36]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 급식 이적의 치밀한 도입부를(30-34) 거쳐 이제 본론부에 들어선다. 이곳에 도착한 시각이 언제쯤인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동안 예수가 가르쳤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시각은 일반적으로 저녁 먹을 시간 곧 초저녁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예수는 가르치느라고 시간이 지난 것을 못느끼는 듯하며 그 시간의 경과를 제자들이 예수에게 보고하며 제안하고 있다. 그 제안은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고 사람들을 해산시키자는 것이었다. 이유는 그곳이 “빈들” 곧 보통 때는 인적이 없는 한적한 광야이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곳이 베새다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곳이었따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벳새다 남쪽의 “엘바디하” 평야가 동쪽으로 뻗어 있는 구릉의 중간 지역이라고 한다. 여하튼 실로 현상적으로 볼 때에 시간적, 장소적으로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가까운 마을로 나가 각자 식사를 해결하게 하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을 하였다. 이와 같은 제안을 통해 예수와 제자들의 활동이 31절의 묘사와 같이 식사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열정적(熱情的)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해 준다. 그리고 식사 시간을 지나칠 정도로 예수의 활동과 청중들의 태도가 진지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설교 현장은 빈 들이었지만 그들의 진지함과 열정은 빈 들을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촌”(아그루스)은 들판에 자연 발생적으로 이뤄진 조그마한 촌락을, “마을”(코마스)은 조금 발달된 소읍을 가리킨다.
아폴뤼손 아우투스 히나 아펠돈테스 에이스 투스 퀴클로 아그루스 카이 코마스 아고라소신 헤아우토이스 아르투스 티 가르 파고신 우크 에쿠신
개역개정,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새번역,36 이 사람들을 헤쳐, 제각기 먹을 것을 사 먹게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말성경,36 사람들을 보내 가까운 마을이나 동네에 가서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시지요.”
가톨릭성경,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영어NIV,36 Send the people away so they can go to the surrounding countryside and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thing to eat."
영어NASB,36 send them away so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countryside and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thing to eat."
영어MSG,36 Pronounce a benediction and send these folks off so they can get some supper."
영어NRSV,36 send them away so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country and villages and buy something for themselves to eat."
헬라어신약Stephanos,36 απολυσον αυτους ινα απελθοντες εις τους κυκλω αγρους και κωμας αγορασωσιν εαυτοις αρτους τι γαρ φαγωσιν ουκ εχουσιν
라틴어Vulgate,36 dimitte illos ut euntes in proximas villas et vicos emant sibi cibos quos manducent
히브리어Modern,36 שלח אותם וילכו אל החצרים והכפרים מסביב לקנות להם לחם כי אין להם מה לאכל׃
호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아우토이스 도테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파게인 카이 레구신 아우토 아펠돈테스 아고라소멘 데나리온 디아코시온 아르투스 카이 도소멘 아우토이스 파게인
개역개정,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새번역,3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우리말성경,37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가톨릭성경,37 예수님께서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영어NIV,37 But he answered,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said to him, "That would take eight months of a man's wages! Are we to go and spend that much on bread and give it to them to eat?"
영어NASB,37 But He answered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And they said to Him, "Shall we go and spend two hundred denarii on bread and give them something to eat?" Shall we go and spend two hundred denarii on bread and give them something to eat?"
영어MSG,37 Jesus said, "You do it. Fix supper for them." They replied, "Are you serious? You want us to go spend a fortune on food for their supper?"
영어NRSV,37 But he answered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said to him, "Are we to go and buy two hundred denarii worth of bread, and give it to them to eat?"
헬라어신약Stephanos,37 ο δε αποκριθεις ειπεν αυτοις δοτε αυτοις υμεις φαγειν και λεγουσιν αυτω απελθοντες αγορασωμεν διακοσιων δηναριων αρτους και δωμεν αυτοις φαγειν
라틴어Vulgate,37 et respondens ait illis date illis manducare et dixerunt ei euntes emamus denariis ducentis panes et dabimus eis manducare
히브리어Modern,37 ויען ויאמר אליהם תנו אתם להם לאכלה ויאמרו אליו הנלך לקנות לחם במאתים דינר ונתן להם לאכלה׃
성 경: [막6:37]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제자들의 제안에 대해 예수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준비하여 청중들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예수는 강조적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너희가”(훼메이스) 먹을 것을 주라 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능력을 과시한 명령이기 보다 오히려 제자들의 절대적 무능을 일깨우고 또 그들의 당신께 대한 영적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라 본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 제자들의 대답은 예수의 명령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듯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리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가 필요하다는 조로 예수께 반문을 한 것이다. 제자들은 청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들이 파악한 청중의 숫자를 통해 식사에 필요한 예산을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200데나리온은 당시 한 사람의 하루 임금을 한 데나리온이라고 할 경우 한 사람이 약 8개월 정도 벌 수 있는 액수일 것이다. 혹자(Bruce)의 주장대로 당시 제자들에게 이만한 돈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제자들에게는 매우 큰 돈이었음이 분명하다. 특별히 요 6:7에서 빌립이 200데나리온을 사용해도 청중들을 먹이기에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로 당시 제자들의 능력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계산에 밝았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불합리하게 보이는 명령을 내리고 계신 그분의 뜻과 그분의 초합리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無知)했다는 사실이다.
호 데 레게이 아우토이스 포수스 아르투스 에케테 휘파게테 카이 이데테 카이 그논테스 레구신 펜테 카이 뒤오 잌뒤아스
개역개정,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새번역,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 그들이 알아보고 말하였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우리말성경,38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라.” 그들이 알아보고 말씀드렸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가톨릭성경,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38 "How many loaves do you have?" he asked. "Go and see." When they found out, they said, "Five--and two fish."
영어NASB,38 And He said to them, "How many loaves do you have? Go look!" And when they found out, they said, "Five, and two fish."
영어MSG,38 But he was quite serious. "How many loaves of bread do you have? Take an inventory." That didn't take long. "Five," they said, "plus two fish."
영어NRSV,38 And he said to them, "How many loaves have you? Go and see." When they had found out, they said, "Five, and two fish."
헬라어신약Stephanos,38 ο δε λεγει αυτοις ποσους αρτους εχετε υπαγετε και ιδετε και γνοντες λεγουσιν πεντε και δυο ιχθυας
라틴어Vulgate,38 et dicit eis quot panes habetis ite et videte et cum cognovissent dicunt quinque et duos pisces
히브리어Modern,38 ויאמר אליהם כמה ככרות לחם יש לכם לכו וראו וידעו ויאמרו חמש ושני דגים׃
성 경: [막6:38]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 예수는 직접 문제 해결에 참여한다. 먼저 예수는 즉시 구할 수 있는 떡이 몇 개인지 제자들에게 알아보라고 명한다. 제자들은 이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같은 말씀을 하신데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①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상황을 판단하지 말고 자신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계신 예수께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즉 문제의 해결자로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예수께 전적인 의뢰를 하는 참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② 비록 하찮은 존재이나 예수의 도구로 사용 되기만 하면 위대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요(롬 4:17),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고전 1:27).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확인된 음식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다. 떡과 물고기의 숫자는 4복음서 모두 동일하다. 다만 요한 복음에서는 떡이 구체적으로 보리떡이고 소유자가 어린 아이임을 덧붙이고 있다(요 6:9). 이 음식의 양은 37절에서 제자가 어림잡아 산출한 예산과 대비되어 엄청나게 부족한 것임을 강조한다. 거기 모인 5,000명 이상의 군중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양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처럼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고 더군다나 어린 아이가 먹으려고 소유했던 것임을 감안한다면 한 사람의 식사 양으로 충분한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마 14:17 ; 요 6:9, 13 주석 참조). 이로 보건대 마가는 아주 적은 양으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사실에 강조점을 두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 밝힌 음식의 양은 기적의 효과를 고무시키기 위한 배경이 된다.
카이 에페탘센 아우토이스 아나클리나이 판타스 쉼포시아 쉼포시아 에피 토 클로로 코르토
개역개정,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새번역,3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여, 모두들 떼를 지어 푸른 풀밭에 앉게 하셨다.
우리말성경,39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풀밭에 무리를 지어 앉히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영어NIV,39 Then Jesus directed them to have all the people sit down in groups on the green grass.
영어NASB,39 And He commanded them all to sit down by groups on the green grass.
영어MSG,39 Jesus got them all to sit down in groups of fifty or a hundred--they looked like a patchwork quilt of wildflowers spread out on the green grass!
영어NRSV,39 Then he ordered them to get all the people to sit down in groups on the green grass.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επεταξεν αυτοις ανακλιναι παντας συμποσια συμποσια επι τω χλωρω χορτω
라틴어Vulgate,39 et praecepit illis ut accumbere facerent omnes secundum contubernia super viride faenum
히브리어Modern,39 ויצו אותם לשבת כלם חברה חברה לבדה על ירק הדשא׃
성 경: [막6:39-40]
명하사....떼를 지어...앉게 하시니....앉은지라. - 예수의 행동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함으로 나아간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청중들을 무리지어 앉게 하라고 지시한다. 여기서 “떼를 지어”(쉼포시아 쉼포시아)란 마치 집안에서 식탁 주위에 앉은 것처럼(주로U자형으로 앉음) 옹기 종기 모여 앉은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게 모여 앉은 한 때가 50명 혹은 100명씩 되는 규모였다. 한편 마가는 그들이 앉은 장소가 “푸른 잔디”위임을 밝히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50명씩 앉게 하라고 명하나(눅 9:14) 푸른 잔디라는 말은 없다. 마태와 함께 “푸른 잔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마가는 이 단어를 통해 의도하는 바가 있다. 먼저 35절에서 언급한 “빈들”이 황량한 광야가 아니라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들판임을 암시해 줌으로써 식사를 위한 준비와 함께 한층 더 희망적인 분위기를 창출한다. 또 “푸른 잔디”에 앉게 하는 예수의 지시는 시 23편을 연상케 한다. 즉 목자가 양떼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듯한 모습을 이 구절에서 보게 된다. 결국 예수는 설교도 하시고 푸른 초장 위에서 음식까지 먹임으로써 민중의 손색없는 목자가 된다. 이는 34절에 나오는 예수의 탄식과 잘 어울린다. 또 “푸른 잔디”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편히 “쉼”과 평화로운 풍경이다. 참으로 예수 앞에서 쉼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마가는 그려내고 있다. 그와 더불어 “푸른 잔디”는 그 때가 팔레스틴의 우기가 막 끝난 후인 3,4월경이었음을 보여준다(마 14:19). 특히 요한은 이 때를 유월절이 가까운 때(니산월 14일, 태양력으로 3, 4월경)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요 6:4). 그렇다면 이때는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양으로 잡하시기 만 1년 전의 사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50명 또는 100명 단위로 무리를 지어 앉는 것은 식사와 교제를 위한 공동체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야영(野營)생활을 연상케 한다(출 18:21).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설교와 더불어 제 2의 출애굽을 경험하면서 예수와 함께 하는 새 공동체를 경험게 한다. 이와 같은 이해는 급식 기적의 최고점이라고 할 수 있는 41-44절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이끌어들인다. 한편 40절에 언급된 바 있는 “떼로”(프라시아이 프라시아이)에서 “프라시아이”란 “작은 정원”, “꽃밭”이나 “정원”같은 인상을 주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아마 이러한 인상은 무리들이 매우 질서있게 앉아 있었고, 또 그들이 입은 옷들의 색깔이 매우 다양했음을 은연중에 나타내 주고 있다 할 것이다(Donald W. Burdick).
카이 아네페손 프라시아이 프라시아이 아나 헤카톤 카이 아나 펜테콘타
개역개정,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새번역,40 그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
우리말성경,40 그래서 사람들은 100명씩, 50명씩 무리를 지어 앉았습니다.
가톨릭성경,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영어NIV,40 So they sat down in groups of hundreds and fifties.
영어NASB,40 They sat down in groups of hundreds and of fifties.
영어MSG,40 (SEE 6:39)
영어NRSV,40 So they sat down in groups of hundreds and of fifties.
헬라어신약Stephanos,40 και ανεπεσον πρασιαι πρασιαι ανα εκατον και ανα πεντηκοντα
라틴어Vulgate,40 et discubuerunt in partes per centenos et per quinquagenos
히브리어Modern,40 וישבו להם שורות שורות למאות ולחמשים׃
카이 라본 투스 펜테 아르투스 카이 투스 뒤오 잌뒤아스 아나블렢사스 에이스 톤 우라논 율로게센 카이 카테클라센 투스 아르투스 카이 에디두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히나 파라티도신 아우토이스 카이 투스 뒤오 잌뒤아스 에메리센 파신
개역개정,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새번역,41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축복하신 다음에,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리고 그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우리말성경,41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린 후 빵을 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갖다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도 그들 모두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영어NIV,41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 loaves. Then he gave them to his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He also divided the two fish among them all.
영어NASB,41 And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ward heaven, He blessed the food and broke the loaves and He kept giving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m; and He divided up the two fish among them all.
영어MSG,41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wo fish, lifted his face to heaven in prayer, blessed, broke, and gave the bread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in turn gave it to the people. He did the same with the fish.
영어NRSV,41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he looked up to heaven, and blessed and broke the loaves, and gave them to his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and he divided the two fish among them all.
헬라어신약Stephanos,41 και λαβων τους πεντε αρτους και τους δυο ιχθυας αναβλεψας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υλογησεν και κατεκλασεν τους αρτους και εδιδου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ινα παραθωσιν αυτοις και τους δυο ιχθυας εμερισεν πασιν
라틴어Vulgate,41 et acceptis quinque panibus et duobus piscibus intuens in caelum benedixit et fregit panes et dedit discipulis suis ut ponerent ante eos et duos pisces divisit omnibus
히브리어Modern,41 ויקח את חמשת ככרות הלחם ואת שני הדגים וישא עיניו השמימה ויברך ויפרס את הלחם ויתן לתלמידיו לשום לפניהם ואת שני הדגים חלק לכלם׃
성 경: [막6:41]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제자들에게 주어. - 예수는 유대의 전통적인 공동 식사 관습에 따라 자신이 가장의 위치에서 그리고 그 모인 무리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삼고 먼저 하늘을 향해 감사와 찬양을 한다. 특히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은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상징한다(요 11:41 ; 17:1). 그리고 이때 드리는 기도의 형식은 “찬송하리로다! 땅에서 양식을 내신 만유의 왕이신 주 우리 하나님이시여 !”일 것이다. 한편 이러한 예수의 행위를 성만찬과 연결시키는 해석들도 있지만 적절하지 못하다. 여기서는 포도주도 없고 또한 성만찬에는 없는 물고기가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동 식사의 전통적 관습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한 다음, 직접 떡을 떼어 제자들로 하여금 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고 또 물고기도 그렇게 하셨다. 이것 역시 유대 공동 식사의 관습 곧 가장 또는 그 식탁의 주빈이 음식을 떼어 나누어주는 전통적 관례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떼어”(카테크라센)란 직설법 부정 과거 시상으로서 그 행위의 사실성의 장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뒤어어 언급된 “주어”(에디두)는 능동태 미완료 시상으로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 나눠주어 분배케 하셨음을 암시한다. 실로 그 떡은 떼시는 예수의 손 안에서 계속 커져서 예수께서 무리들을 모두 먹이실 때까지 불어났을 것이다. 마가는 예수의 이적 사역을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 아직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덩이를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 단어는 기적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떡과 물고기가 골고루 돌아갔음을 밝힘으로써 창조의 능력으로 만물을 주장하시는 예수의 초월적(超越的)인 군능을 단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
카이 에파곤 판테스 카이 에코르타스데산
개역개정,42 다 배불리 먹고
새번역,42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우리말성경,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가톨릭성경,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영어NIV,42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영어NASB,42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영어MSG,42 They all ate their fill.
영어NRSV,42 And all ate and were filled;
헬라어신약Stephanos,42 και εφαγον παντες και εχορτασθησαν
라틴어Vulgate,42 et manducaverunt omnes et saturati sunt
히브리어Modern,42 ויאכלו כלם וישבעו׃
성 경: [막6:42]
다 배불리 먹고. - 이 표현은 매우 함축적 의미를 시사한다. 우선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이야기를 총 마감하고 있다. 즉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 처지였으나 사실상 불가능했던 환경, 그리고 궁여 지책(窮餘之策)으로 등장한 아주 작은 양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38절 주석 참조)의 빈약함에 대조되어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배부르게 되었다는 말로 기적을 완결짓는다. 또 다른 의미는 배부르다는 말은 충분히 만족해 하는 표현이다. 즉 더 이상 부족하지 않다는 말이다. 충분한 식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세째로 생각할 수 있는 의미는 식사가 공동체 안에서 교제의 장이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50명, 100명 단위로 식사가 진행되었다. 이것은 더불어 나눔을 뜻하고 모두 하나됨을 뜻한다. 그들 모두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주 마리로 큰 이적을 이루신 예수를 중심으로하여 모두가 함께 배불리었으므로 하나의 공동 식사를 한 셈이다(40절 주석 참조). 마지막으로 모두가 배불리었으니 풍요와 여유가 있고 따라서 공동체 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 장면은 31절의 분주함이나 33절의 군중 이동과 같은 긴박감과는 대조적으로 평온한 휴식을 연상케 한다(39절 주석 참조). 따라서 마가가 묘사하는 기적의 장면은 이 이야기의 서론부에서 표현된 상식 밖의 기대와는 달리 소박(素朴)하게 처리된다. 그 기적에 대해 놀라거나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식사의 평화로움이 깃드는 조용한 잔치로 인상지워진다. 이것은 마가가 표현한 예수의 이상적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참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카이 에란 클라스마톤 도데카 코피누스 플레레이스 카이 아포 톤 잌뒤온
개역개정,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새번역,43 빵 부스러기와 물고기 남은 것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우리말성경,43 제자들이 12바구니에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12바구니 가득 거두어 들였습니다.
가톨릭성경,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영어NIV,43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of bread and fish.
영어NASB,43 and they picked up twelve full baskets of the broken pieces, and also of the fish.
영어MSG,43 The disciples gathered twelve baskets of leftovers.
영어NRSV,43 and they took up twelve baskets full of broken pieces and of the fish.
헬라어신약Stephanos,43 και ηραν κλασματων δωδεκα κοφινους πληρεις και απο των ιχθυων
라틴어Vulgate,43 et sustulerunt reliquias fragmentorum duodecim cofinos plenos et de piscibus
히브리어Modern,43 וישאו מן הפתותים מלוא סלים שנים עשר וגם מן הדגים׃
성 경: [막6:43]
남은 떡 조각..... 열 두 바구니에 차게. - 앞절에서 밝힌 기적의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그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다. 즉 모두가 배불렀을 뿐만 아니라 먹고 남았다는 말은(그것도 최초의 음식 양보다 훨씬 많게) 넉넉한 공동 식사였음을 확인해 준다. 여기서 남은 떡과 물고기를 거두어 담은 “바구니”(코피노스)는 유대 사람들이 평소에 휴대하고 다니는 것으로서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휴대용 작은 바구니이다. 요즈음으로 말한다면 손가방 정도일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스스로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이 바구니에 점심 식사와 몇 가지 생필품을 넣어 가지고 여행을 했다고 한다(W. W. Wessel). 한편 남은 떡과 물고기를 담은 바구니가 12개인 것은 제자들의 수가 12명인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음식을 각 사람에게 날라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남은 음식을 거둔 사람도 제자들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특히 요 6:12에서는 예수가 직접 제자들에게 남은 음식을 거두라고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제자들의 수가 “12명”이었으므로 떡과 물고기를 담은 수효는 12 바구니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한편 이러한 “12”란 숫자는 상징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를, “남은 것”은 구약에서 누누이 강조해온 “남은 자” 사상(스 9:8)을 은연중에 암시 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Talor Grant). 더욱이 예수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생명의 떡으로 오신 당신이 기갈(飢渴) 중에 있는 뭇심령들에게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히 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셨을 것이다(요 10:10).
카이 에산 호이 파곤테스 투스 아르투스 호세이 펜타키스킬리오이 안드레스
개역개정,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새번역,44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었다.
우리말성경,44 빵을 먹은 남자 어른만도 5,000명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영어NIV,44 The number of the men who had eaten was five thousand.
영어NASB,44 There were five thousand men who ate the loaves.
영어MSG,44 More than five thousand were at the supper.
영어NRSV,44 Those who had eaten the loaves numbered five thousand men.
헬라어신약Stephanos,44 και ησαν οι φαγοντες τους αρτους ωσει πεντακισχιλιοι ανδρες
라틴어Vulgate,44 erant autem qui manducaverunt quinque milia virorum
히브리어Modern,44 והאכלים מן הלחם היו כחמשת אלפי איש׃
성 경: [막6: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 - 식사가 끝났을 때 군중의 수효가 밝혀진다. 아마도 50명 또는 100명씩 모여 앉았었꼬 식사 동안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오천 명의 수를 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가는 남자만 오천 명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마 14:21에서는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남자만 오천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표현법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으로 그들은 남자 장정만을 공식적인 통계에 넣는다(민 1:3). 따라서 본문에서 가리킨 “남자”는 청중이 모두 남자로만 구성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남녀로 구성된 청중 중 남자만 수효를 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급식 대상이 된 사람의 수효는 약 2만 명 정도로 훨씬 불어나게 될 것이다. 마가는 이러한 암시를 통해 독다로 하여금 예수의 권능이 얼마나 탁월하고 놀아운 것인지를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물온 이 이적은 단지 “떡”이나 “오천 명”이라는 현상적 사실에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의 “인류 구원”이라는 궁극적 목적에로 모든 독자들의 눈길을 이끈다.
카이 유데오스 에낭카센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엠베나이 에이스 토 플로이온 카이 프로아게인 에이스 토 페란 프로스 베드사이단 헤오스 아우토스 아롤뤼세 아폴뤼에이 톤 오클론
개역개정,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새번역,45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우리말성경,45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 벳새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사람들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가톨릭성경,45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영어NIV,45 Immediately Jesus made his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on ahead of him to Bethsaida, while he dismissed the crowd.
영어NASB,45 Immediately Jesus made His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ahead of Him to the other side to Bethsaida, while He Himself was sending the crowd away.
영어MSG,45 As soon as the meal was finished, Jesus insisted that the disciples get in the boat and go on ahead across to Bethsaida while he dismissed the congregation.
영어NRSV,45 Immediately he made his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on ahead to the other side, to Bethsaida, while he dismissed the crowd.
헬라어신약Stephanos,45 και ευθεως ηναγκασεν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εμβηναι εις το πλοιον και προαγειν εις το περαν προς βηθσαιδαν εως αυτος απολυση τον οχλον
라틴어Vulgate,45 et statim coegit discipulos suos ascendere navem ut praecederent eum trans fretum ad Bethsaidam dum ipse dimitteret populum
히브리어Modern,45 ואחרי כן האיץ בתלמידיו לרדת באניה ולעבור לפניו אל עבר הים אל בית צידה עד שלחו את העם׃
성 경: [막6:45-52]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평행 본문은 마 14:22-33 ; 요 6:16-21에 나타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평행 본문이 없다. 이 기적 사건은 앞서 급식 기적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52절에서 급식 이적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물 위에서 일어난 기적이 본문 이외에 4:35-41에서 나오는데 그 기적의 주제는 자연 현상까지 제압(制壓)하는 예수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도 같은 주제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은 4:35-41에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예수가 자발적으로 제자들과 합유하기 위해 취하신 행동이었다.
성 경: [막6:45]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 급식 기적 직후 예수는 친히 무리들을 서둘러서 해산시키기 위해 먼저 제자들을 배로 떠나보내고 있다(32절 주석 참조). 그 상황은 매우 급한 것처럼 비춰진다. 특히 본문에서 “즉시”(유데오스)와 “재촉하사”(에나그카센, ‘억누르다’, ‘강권하다’, 강요하다‘는 뜻)란 말은 예수께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제자들을 몰아세우셨는지를 짐작케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금 전까지 고조되었던 급식 기적의 분위기와는 달리 서둘러 군중을 해산시키고 장소를 옮기려 한 까닭이다. 마가는 그 이유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평행 본문인 요 6:14, 15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즉 급식 기적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그 선지자”곧 메시야라고 하면서 그분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비록 당신을 메시야로 알되 인간들의 궁극적인 구원자로 알기 보다 정치적(政治的) 성격의 메시야로 오해함으로써 극도의 흥분 상태로 이끌리던 무리들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기 위해, 예수는 그들과의 교제를 잠시 중단하기를 원하셨다.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 -제자들에게 가라고 지시한 장소는 “벳새다”이다. 평행 본문 마 14:22-33에서는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물 위의 기적 직후 닿은 곳이 “게네사렛”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요 6:17에서는 가버나움을 향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기적을 언급하고 있는 3복음서가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행서지가 “벳새다”, “가버나움”, “게네사렛” 등으로 나타나는 것은 서로 비슷한 방향에 위치하기 때문에 나타난 착오 때문일 수도 있고 또한 도착한 곳과, 육지 도착 후 다시 재개된 사건과 그 발생한 곳이 각 복음서간에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불일치는 늘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 엄급된 “벳새다”는 32절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듯이 급식 기적 사건이 일어났던 벳새다 율리아스(Bethsaida Ju;ias, 눅 9:10)가 아니라 갈릴리 서안의 가버나움 근처에 위치한 또 하나의 벳새다일 것이다. 어쨌든 예수께서는 당신의 복음 선교의 활발한 전개를 위해서 뿐 아닐라 무지한 민중들의 그릇된 메시야관을 훼파(毁破)하기 위해 갈릴리 해안을 두루 다니시며 당신의 목적을 수행해 가셨다. 진정 예수께서는 무리들이 가장 많이 모여 당신께 가장 극진한 칭송을 할 때가 바로 당신께 가장 위험한 위기적 상황임을 자각하셨던 것이다.
카이 아포탘사메노스 아우토이스 아펠덴 에이스 토 오로스 프로슠사스다이
개역개정,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새번역,46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우리말성경,46 그들을 보내신 뒤 예수께서는 기도하려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영어NIV,46 After leaving them,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to pray.
영어NASB,46 After bidding them farewell, He left for the mountain to pray.
영어MSG,46 After sending them off, he climbed a mountain to pray.
영어NRSV,46 After saying farewell to them, he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헬라어신약Stephanos,46 και αποταξαμενος αυτοις απηλθεν εις το ορος προσευξασθαι
라틴어Vulgate,46 et cum dimisisset eos abiit in montem orare
히브리어Modern,46 ויהי אחר שלחו אתם ויעל ההרה להתפלל׃
성 경: [막6:46]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예수는 군중들을 다 해산시키고, 제자들을 떠나 보낸 후 혼자 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들어간다. 문자적으로 볼 때 예수는 기도하실 목적으로 “산속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단순히 외견상으로 볼 때 이 장면은 예수 자신에게 삼한 갈등이나, 고민 또는 밀려오는 고독감을 이기지 못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요 6:14, 15에서의 보고(報告)처럼 그때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31절 주석 참조)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사명, 곧 고통과 배척당함과, 죽임당해야 할 사명 완수를 방해하는 바로 이 같은 유혹을 물리치시고 그들의 무지에 대한 염려를 해결하시기 위해 산속으로 기도하러 가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가 함께 예수께서는 헤롯왕의 박해가 임박해옴을 예감하시어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혼자 조용히 하나님과의 깊은 영교(靈交)를 하시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실로 예수가 활동 초기에 지신의 기적 사건을 비밀에 부치도록 지시했던 사실과(1:44), 지금의 공개된 대규모 대중 집회를 서둘러 해산시킨 점, 그리고 6:14에서 묘사된 헤롯의 불안을 종합해보면 헤롯의 공격을 충분히 예감하고 있었으며 그 문제로 예수는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수는 이와 같이 큰 사건을 전후하여 혼자 기도하는 경우가 어려 번 있었다(1:35 ; 14:32-36 ; 눅 3:21 ; 5:16 ; 6:12 ; 9:18, 28 ; 11:1 ; 22:41, 44). 이렇듯 어려운 일, 위험하고 힘든 일을 앞두고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은 그분이 지니신 능력과 권위와 지혜가 과연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를 조용히 증거해 주고 있다. 실로 혼잡한 곳을 피하여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볼 수 있는 곳(“산”)에서 그분과 속깊은 영적 교제를 하신 예수에게 그 어떤 어려운 난관도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카이 옾시아스 게노메네스 엔 토 플로이온 엔 메소 테스 달라쎄스 카이 아우토스 모노스 에피 테스 게스
개역개정,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새번역,47 날이 저물었을 때에,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셨다.
우리말성경,47 밤이 되자 배는 호수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습니다.
가톨릭성경,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영어NIV,47 When evening came, the boat was in the middle of the lake, and he was alone on land.
영어NASB,47 When it was evening, the boat was in the middle of the sea, and He was alone on the land.
영어MSG,47 Late at night, the boat was far out at sea; Jesus was still by himself on land.
영어NRSV,47 When evening came, the boat was out on the sea, and he was alone on the land.
헬라어신약Stephanos,47 και οψιας γενομενης ην το πλοιον εν μεσω της θαλασσης και αυτος μονος επι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47 et cum sero esset erat navis in medio mari et ipse solus in terra
히브리어Modern,47 ויהי ערב והאניה באה בתוך הים והוא לבדו ביבשה׃
성 경: [막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뭍에 계시다가. - 마가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 기법이 돋보이는 장면 묘사로, 본 사건의 장소와 시간에 대한 배경 설명이다. 급식 이적이 있었을 때 이미 저녁 때가 되었으므로(35절)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다는 것은 아주 긴 시간이 아닌 약간의 시간이 경과했음을 보여준다. 이때의 시간은 계절적으로 본 사건이 유월절 기간에 있었던 것으로 단정한다면(31절) 오후 6시가 넘어가는 늦은 저녁으로 본다. 그렇지만 유월절의 보름달 아래서 해변에 있는 사람은 능히 호수 한 가운데 있는 배를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지금 기도하러 들어가셨던 산에서 내려오셔서 해변의 평지에 계신다. 즉 예수는 “산”(오로스)에 계신 것이 아니라 “뭍”(게), 곧 바다에 대칭되는 육지 위에 계신 것이다. 그리고 배의 위치는 갈릴리 바다의 가운데이다. 이것은 예수가 물 위를 걸어오신 것이 얕은 곳을 걸어 온 것이 아니라 깊으 곳을 그것도 한 가운데까지 걸어왔음을 암시해준다. 또 예수가 뭍에 서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예수가 뭍에서부터 바다 가운데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 설정(設定)이 될 수 있다. 마가는 이러한 이해를 통해 예수의 기적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카이 이돈 아우투스 바사니조메누스 엔 토 엘라우네인 엔 가르 호 아네모스 에난티오스 아우토이스 페리 테타르텐 퓔라켄 테스 뉰토스 에르케타이 프로스 아우투스 페리파톤 에피 테스 달라쎄스 카이 에델렌 파렐데인 아우투스
개역개정,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새번역,48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이 노를 젓느라고 몹시 애쓰는 것을 보셨다. 바람이 거슬러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가시다가,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하셨다.
우리말성경,48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강한 바람 때문에 노 젓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나아가시다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영어NIV,48 He saw the disciples straining at the oars, because the wind was against them. About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 he went out to them, walking on the lake. He was about to pass by them,
영어NASB,48 Seeing them straining at the oars, for the wind was against them, at about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 He came to them, walking on the sea; and He intended to pass by them.
영어MSG,48 He could see his men struggling with the oars, the wind having come up against them. At about four o'clock in the morning, Jesus came toward them, walking on the sea. He intended to go right by them.
영어NRSV,48 When he saw that they were straining at the oars against an adverse wind, he came towards them early in the morning, walking on the sea. He intended to pass them by.
헬라어신약Stephanos,48 και ειδεν αυτους βασανιζομενους εν τω ελαυνειν ην γαρ ο ανεμος εναντιος αυτοις και περι τεταρτην φυλακην της νυκτος ερχεται προς αυτους περιπατων επι της θαλασσης και ηθελεν παρελθειν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48 et videns eos laborantes in remigando erat enim ventus contrarius eis et circa quartam vigiliam noctis venit ad eos ambulans super mare et volebat praeterire eos
히브리어Modern,48 וירא אותם מתעמלים בשוטם כי הרוח לנגדם ויהי כעת האשמרת הרביעית ויבא אליהם מתהלך על פני הים ויואל לעבור לפניהם׃
성 경: [막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 갈릴리 바다는 지중해보다 200m 아래에 위치하여 주변의 협곡을 통해 회오리같은 바람이 가끔 불어와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4:37 주석 참조). 이 바람은 제자들이 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역풍(逆風)으로, 배를 목적지에서 자꾸만 이탈시켜 항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었던 것같다. 이 묘사는 첫 번째 바다 위의 기적에서 묘사된(4:37) “광풍”과는 성격이 다른 은근하고도 끈덕진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여기서 먼저 “괴로이”(바사니조메누스)란 “시험하다”, “고문하다”, “지치게 하다”는 뜻을 지닌 수동태 현재 분사로서 비록 제자들 중에 어부 출신들이 많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을 느끼고 심히 고통 당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보시고”(이돈)는 “주목하다”는 뜻인 “호라오”의 제 2과거형 분사로서 예수께서 그 광경을 지속적으로 예의 주시하셨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갈릴리 바다의 폭이 약 10km 라고 할 때 배의 위치가 바다 한가운제이므로 뭍으로부터 약 5km 정도 떨어진 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과연 뭍에서 먼 거리에 있는 제자들의 노젓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적어도 보통 사람의 시야밖에 있었거나 조그마한 형체로서 사람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또 날이 저물어 어두워진 상태에서 식별(識別)이 더욱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추측도 가능하다. 예수는 이미 배를 타고 떠나는 제자들을 보았을 것이고 조그마한 점같은 물체만 보아도 제자들이 탄 배로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때 유월절 즈음이었다면 비록 바람이 세차게 물었다 하더라도 보름달이 호수 전체를 비추고 있었을 것이므로 시야가 그렇게 흐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바람이 불고 있었으므로 멀리서도 항해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직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모두 부정한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전히 제자즐의 현재 당하고 있는 고초를 신적인 직관(intuition)으로 조용히 응시하고 계셨을 것이다.
밤 사경 즈음에. - 유대인들의 시간 구분법으로는 밤을 3등분하는 것이(초경-해질때부터 오후 10시까지, 이경-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삼경 곧 새벽-오전 2시부터 해 뜰때까지) 상례였으나 그들이 로마 통치하에 편입됨으로써 밤을 4등분하는(일경-오후 6시에서 9시, 이경-오후 9시에서 12시, 삼경-새벽 12시에서 2시, 사경-새벽 3시에서 6시) 관례가 생겨났다. 마가는 바로 이 로마인의 시간 부분법에 맞추러 본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 예수는 제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물위를 걸어 그들에게로 갔다. 그러나 문제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서술처럼 보인다. 여기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는 그들의 곁을 지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가 된다. 이 말은 예수의 의도를 표현한 것이기보다 그 순간 막 일어나려는 일을 목격한 사람이 받은 독특한 인상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W. W. Wessel). 그렇지 않다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향해 소리치지 않았다면 곧장 지나치기라도 할 듯이 그 배를 향해 곧장 걸으신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스치듯 걸어가셨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로 이 구절은 결코 예수께서 그들의 고난을 간과하고자 하심이 아니요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들이 당신을 향한 믿음을 보일 때 그들을 구원코자 하셨던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기들 배로 초청하여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며 예수를 향한 전적인 신뢰를 보일 것을 원하신 것이다(히 11:6). 즉 예수는 제자들의 신앙에 근거한 초청(招請)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Lenski).
호이 데 이돈테스 아우톤 페리파툰타 에피 테스 달라쎄스 에돜산 판타스마 에스틴 카이 아네크랔산
개역개정,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새번역,49 제자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고 소리쳤다.
우리말성경,49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톨릭성경,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영어NIV,49 but when they saw him walking on the lake, they thought he was a ghost. They cried out,
영어NASB,49 But when they saw Him walking on the sea, they supposed that it was a ghost, and cried out;
영어MSG,49 But when they saw him walking on the sea, they thought it was a ghost and screamed, scared out of their wits.
영어NRSV,49 But when they saw him walking on the sea, they thought it was a ghost and cried out;
헬라어신약Stephanos,49 οι δε ιδοντες αυτον περιπατουντα επι της θαλασσης εδοξαν φαντασμα ειναι και ανεκραξαν
라틴어Vulgate,49 at illi ut viderunt eum ambulantem super mare putaverunt fantasma esse et exclamaverunt
히브리어Modern,49 והם בראתם אתו מתהלך על פני הים חשבו כי מראה רוח הוא ויצעקו׃
성 경: [막6:49]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 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온 예수를 보면서 놀라고 있다. 특히 “소리지르니”(아네크랔산)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거함치며 두려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제자들의 심적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로 그들은 예수의 모습을 실체가 없는 환영으로 보았던 것이다(마 14:26 주석 참조). 여기서 “....인가 하여”(에돜산)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에서 내린 자연적인 결론으로 이해된다(Robertson). 즉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과 경험에만 따른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한계(限界)였다. 한편 이 장면은 당시 유령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민담 형식으로 널리 소개되어 있었던 것임을 반영해 준다. 그리고 유령에 대한 인상은 심히 두려운 존재로 퍼져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제 제자들이 예수를 보고 그분의 실체로 여기지 못한 것은 너무나 뜻밖의 상황, 즉 산에서 기도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던 예수가 갑자기 시. 공을 넘어 물위로 나타난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4:35-41에서 광풍 제압 기적을 경험한 제자라면 적어도 이 상황에서 어느 정도 침착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는 바람불고 혼란스런 밤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얼굴을 분명히 식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인해 유령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심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체온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판테스 가르 아우톤 에이돈 카이 에타라크데산 카이 유데오스 엘랄레센 멭 아우톤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다르세이테 에고 에이미 메 포베이스데
개역개정,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새번역,50 그를 보고, 모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우리말성경,50 그들 모두 예수를 보고 겁에 질렸습니다. 그러자 곧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톨릭성경,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영어NIV,50 because they all saw him and were terrified. Immediately he spoke to them and said, "Take courage! It is I. Don't be afraid."
영어NASB,50 for they all saw Him and were terrified. But immediately He spoke with them and said to them, "Take courage; it is I, do not be afraid."
영어MSG,50 Jesus was quick to comfort them: "Courage! It's me. Don't be afraid."
영어NRSV,50 for they all saw him and were terrified. But immediately he spoke to them and said, "Take heart, it is I; do not be afraid."
헬라어신약Stephanos,50 παντες γαρ αυτον ειδον και εταραχθησαν και ευθεως ελαλησεν μετ αυτων και λεγει αυτοις θαρσειτε εγω ειμι μη φοβεισθε
라틴어Vulgate,50 omnes enim eum viderunt et conturbati sunt et statim locutus est cum eis et dixit illis confidite ego sum nolite timere
히브리어Modern,50 כי כלם ראוהו ויבהלו אז דבר אתם ויאמר אליהם חזקו כי אני הוא אל תיראו׃
성 경: [막6:50]
안심하라(다르세이테). - “용기를 내라”,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는 뜻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용기와 위로를 더하는 강한 명령이다. 그들은 이제(현재형) 더 이상 바람과 유령의 악몽에 짓눌리지 말고 예수를 바라보고 담대히 떨쳐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위로의 말은 치유 이야기 속에서도 자주 나온다(10:49 ; 마 9:2, 22). 따라서 이 단어의 사용 의미는 분명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두 가지 의미의 문제 해결을 생각할 수 있는데 먼저는 바람으로 인해 향해가 곤란한 상황이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유령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내니 두려워 말라고 안심시키고 있다. 여기서 “내니”(에고 에이미, It is I)라는 말은 마치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모세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실 때의 표현인 “여호와”,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표현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출 3:14). 따라서 예수의 “나” 선언은 곧 신의 현현(theophany)으로서의 당신의 존재 계시로 이해된다(요 8:58). 이러한 예수의 자계시(自啓示)는 심한 두려움에 놓여있던 제자들에게는 더없는 위로와 격려가 아닐 수 없다. 즉 바람과 풍랑과 지구의 중력까지도 정복하시고 바다 위에 우뚝 서 계신, 그분이 바로 제자들이 믿고 따른 자신들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지닌 모든 공포와 유혹을 물리쳐주실 수 있는 만유의 주이심을 “내니”라는 그 한 마디를 통해 전달하신 것이다. 한편 “두려워 말라”(메 포베이스데)는 말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지금 당장 그 무서워하는 상태를 중단하라(stop fearing)는 참으로 단호한 명령이다. 이제 나 예수가 너희들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께서 그 험한 바다 위를 친히 걸어오신 이유이며 목적이었다.
카이 아네베 프로스 아우투스 에이스 토 플로이온 카이 에코파센 호 아네모스 카이 리안 에크 페리쑤 엔 헤아우토이스 엨시스탄토 카이 에다우마존
개역개정,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새번역,51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 그래서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우리말성경,51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영어NIV,51 Then he climbed into the boat with them, and the wind died down. They were completely amazed,
영어NASB,51 Then He got into the boat with them, and the wind stopped; and they were utterly astonished,
영어MSG,51 As soon as he climbed into the boat, the wind died down. They were stunned, shaking their heads, wondering what was going on.
영어NRSV,51 Then he got into the boat with them and the wind ceased. And they were utterly astounded,
헬라어신약Stephanos,51 και ανεβη προς αυτους εις το πλοιον και εκοπασεν ο ανεμος και λιαν εκ περισσου εν εαυτοις εξισταντο και εθαυμαζον
라틴어Vulgate,51 et ascendit ad illos in navem et cessavit ventus et plus magis intra se stupebant
히브리어Modern,51 וירד אליהם אל האניה והרוח שככה וישתוממו עוד יותר בלבבם ויתמהו׃
성 경: [막6:51]
바람이 그치는지라. - 예수의 기적이 물 위로 걷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바람을 잠재우는 권능까지 나타내고 있다. 즉 예수는 무언의 명령으로서 바람의 기운을 지치게 만드셨던 것이다. 결국 이 기적의 주제는 자연을 다스리는 신적(神的) 권위가 예수에게 있음과 그러한 권능의 모든 귀결점은 바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마가는 본 사건을 기록하면서 베드로가 물에 뛰어든 사실에 관해 침묵하고 있다(마 14:28-31). 이는 아마도 마가에게 예수의 행적에 관한 귀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베드로가 자신의 철없이 날뛰던 모습을 통한히 여긴 나머지 물에 뛰어든 장면에 대해 침묵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마음에 심히 놀라니. - 이 말은 내색하지 않고 놀란다는 말인데 예수가 물 위로 걸어오심과 당신께서 배위로 오르시는 것과 동시에 바람이 잠잠해진 사실을 보고 놀라와하는 표현이다. 평행 본문 마 14:33에서는 제자들이 그들 앞에 서신 예수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신적 권위를 느끼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마태의 장면에 비하여 마가의 묘사는 제자들이 기적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놀라기만 하는 것으로 소개한다. 이러한 차이는 마태가 제자들의 외면적 행동에 그 초점을 맞추어 기술한데 비해 마가는 제자들의 숨겨진 내면적 상황을 주시했던 데서 비롯된다. 즉 마가는 비록 제자들이 예수께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바른 신앙 고백을 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마음속 깊이에서는 여전히 완전한 믿음에 이르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잠재해 있었음을 여실히 노출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자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뒤이어 일관된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마가는 영적 감각이 무디고 현명치 못한 것으로 제자들의 실체를 묘사하고 있다.
우 가르 쉬네칸 에피 토이스 아르토이스 엔 가르 헤 카르디아 아우톤 페포로메네
개역개정,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새번역,52 그들은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우리말성경,52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빵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영어NIV,52 for they had not understood about the loaves; their hearts were hardened.
영어NASB,52 for they had not gained any insight from the incident of the loaves, but their heart was hardened.
영어MSG,52 They didn't understand what he had done at the supper. None of this had yet penetrated their hearts.
영어NRSV,52 for they did not understand about the loaves, but their hearts were hardened.
헬라어신약Stephanos,52 ου γαρ συνηκαν επι τοις αρτοις ην γαρ η καρδια αυτων πεπωρωμενη
라틴어Vulgate,52 non enim intellexerant de panibus erat enim cor illorum obcaecatum
히브리어Modern,52 כי לא השכילו בדבר ככרות הלחם מפני טמטום לבבם׃
성 경: [막6:52]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 마가는 물 위에서 일어난 두 기적을 보고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놀란 일을 제자들이 급식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만약 그들이 앞선 오병이어의 이적의 의미, 곧 우주의 주관자와 참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이 그곳에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했다고 한다면 그들은 예수가 물 위로 걸으실 뿐 아니라 물결을 잠재우신 것을 보고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로 그들의 가장 큰 과오는 험악한 환경을 극복하는 지혜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가 과연 누구이신지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기족론적 지식(知識)의 결핍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마 14:33 ; 16:16 ; 요 6:68, 69) 등에서 자신들의 예수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전인격적으로 수용하고 그 삶에서 구체적으로 이해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모히려 “마음이 둔하여져”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막6:53-56]
게네사렛에서의 활동을 요약하여 치병 기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평행 본문은 마 14:34-36에만 나온다. 내용도 서로 비슷하다. 그리고 두 본문 모두 의도적으로 압축된 묘사를 하고 있다. 즉 본문은 수많은 사건을 요약한 일종의 삽화로서 “치료자”되신 그분의 이미지를 강렬히 부각시키고 있다.
카이 디아페라산테스 엘돈 에피 텐 겐 겐네사렡 카이 프로소르미스데산
개역개정,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새번역,52 그들은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우리말성경,52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빵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영어NIV,52 for they had not understood about the loaves; their hearts were hardened.
영어NASB,52 for they had not gained any insight from the incident of the loaves, but their heart was hardened.
영어MSG,52 They didn't understand what he had done at the supper. None of this had yet penetrated their hearts.
영어NRSV,52 for they did not understand about the loaves, but their hearts were hardened.
헬라어신약Stephanos,52 ου γαρ συνηκαν επι τοις αρτοις ην γαρ η καρδια αυτων πεπωρωμενη
라틴어Vulgate,52 non enim intellexerant de panibus erat enim cor illorum obcaecatum
히브리어Modern,52 כי לא השכילו בדבר ככרות הלחם מפני טמטום לבבם׃
성 경: [막6: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 이야기가 앞절과 무리없이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52절에 이어 계속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문제가 생긴다. 즉 출발할 때 “벳새다”를 향하라고 예수가 지시한 것으로 45절에 언급되었었는데 그렇다면 예정지와는 다른 곳에 도착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45절 주석 참조). 이에 대해 예수의 일행의 운 목적지는 갈릴리 서안의 벳새다였으나 온 밤 동안의 심한 바람 때문에 그 벳새다에서 몇 km 떨어진 게네사렛에 도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본문 이하 내용은 바람을 잠잠케 하신 이적과 약간의 시차를 둔 독립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예수 일행은 호수 건너 게네사렛에 도착하셨는데 그곳은 호수 서쪽에 위치한 막달라(Magdala) 북쪽의 광야이든지 아니면 광야에 있는 한 도시였을 것이다(Dalman). 게네사렛은 한 도시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갈릴리 서안의 한 평야지대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게네사렛 평야의 토양이 매우 비옥했기 때문에 그곳에는 많은 촌락들이 군데군데 형성되어 있었다. 한편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s)는 이곳에 대해 “이곳은 자연의 야심작(野心作)이라 불리울 수 있다. 그 까닭은 이곳이 근본적으로 서로 섞여 살 수 없는 식물들까지도 함께 섞여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했다.
카이 엨셀돈톤 아우톤 에크 투 플로이우 유데오스 에피그논테스 아우톤
개역개정,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새번역,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우리말성경,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예수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어NIV,54 As soon as they got out of the boat, people recognized Jesus.
영어NASB,54 When they got out of the boat, immediately the people recognized Him,
영어MSG,54 As soon as they got out of the boat, word got around fast.
영어NRSV,54 When they got out of the boat, people at once recognized him,
헬라어신약Stephanos,54 και εξελθοντων αυτων εκ του πλοιου ευθεως επιγνοντε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54 cumque egressi essent de navi continuo cognoverunt eum
히브리어Modern,54 ויהי כצאתם מן האניה אז הכירהו׃
성 경: [막6:54-55]
예수신 줄을 알고...달려 돌아다니며. - 예수 일행이 도착한 시간이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낮 시간일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뭍에 나와 있었고 사람들은 곧 예수라는 사실을 알아 본다 그 사람들은 그 지역 여러 곳에 다니며 소식을 알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환자들을 메고 예수 앞으로 달려오는 장면을 마가 특유의 분주하고 생동적이며 긴박감 있는 묘사로 처리하고 있다. 특히 2:4에서도 한 번 언급된 바 있는 “침상”의 이동 장면은 가히 예수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예수에 대한 명성이 “게네사렛”에서 아주좋게, 특히 병고치는 기적으로 신뢰있게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장면을 급식 기적의 결과와 함께(45절 주석 참조) 생각해보면 예수의 인기와 명성, 그리고 영향력은 마치 어떤 크나큰 변화를 예감케라도 하듯이 민중들 사이에 놀랍게 퍼져가고,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당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치가들에게도(헤롯처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이는 결국 더욱 짙게 다가오는 핍박(逼迫)의 그림자를 예감케 한다.
페리에드라몬 홀렌 텐 코란 에케이넨 카이 에릌산토 에피 토이스 크라밭토이스 투스 카코스 에콘타스 페리페레인 호푸 에쿠온 호티 에스틴
개역개정,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새번역,55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가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상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말성경,55 사람들은 온 지역을 뛰어다니며 예수께서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아픈 사람들을 자리에 눕힌 채 짊어지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성경,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영어NIV,55 They ran throughout that whole region and carried the sick on mats to wherever they heard he was.
영어NASB,55 and ran about that whole country and began to carry here and there on their pallets those who were sick, to the place they heard He was.
영어MSG,55 People ran this way and that, bringing their sick on stretchers to where they heard he was.
영어NRSV,55 and rushed about that whole region and began to bring the sick on mats to wherever they heard he was.
헬라어신약Stephanos,55 περιδραμοντες ολην την περιχωρον εκεινην ηρξαντο επι τοις κραββατοις τους κακως εχοντας περιφερειν οπου ηκουον οτι εκει εστιν
라틴어Vulgate,55 et percurrentes universam regionem illam coeperunt in grabattis eos qui se male habebant circumferre ubi audiebant eum esse
히브리어Modern,55 וירוצו בכל סביבותיהם ויחלו לשאת את החולים במשכבות אל כל מקום אשר שמעו כי שם הוא׃
카이 호푸 안 에이세포류에토 에이스 코마스 에 에이스 폴레이스 에 에이스 아그루스 엔 타이스 아고라이스 에티데산 투스 아스데눈타스 카이 파레칼룬 아우톤 히나 칸 투 크라스페두 투 히마티우 아우투 핲손타이 카이 호소이 안 헾산토 아우투 에소존토
개역개정,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새번역,56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우리말성경,56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을이든 도시든 농촌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시장에 데려다 두고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질 수 있도록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들은 모두 병에서 나았습니다.
가톨릭성경,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영어NIV,56 And wherever he went--into villages, towns or countryside--they placed the sick in the marketplaces. They begged him to let them touch even the ed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him were healed.
영어NASB,56 Wherever He entered villages, or cities, or countryside, they were laying the sick in the market places, and imploring Him that they might just touch the fringe of His cloak; and as many as touched it were being cured.
영어MSG,56 Wherever he went, village or town or country crossroads, they brought their sick to the marketplace and begged him to let them touch the edge of his coat--that's all. And whoever touched him became well.
영어NRSV,56 And wherever he went, into villages or cities or farms, they laid the sick in the marketplaces, and begged him that they might touch even the frin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it were healed.
헬라어신약Stephanos,56 και οπου αν εισεπορευετο εις κωμας η πολεις η αγρους εν ταις αγοραις ετιθουν τους ασθενουντας και παρεκαλουν αυτον ινα καν του κρασπεδου του ιματιου αυτου αψωνται και οσοι αν ηπτοντο αυτου εσωζοντο
라틴어Vulgate,56 et quocumque introibat in vicos vel in villas aut civitates in plateis ponebant infirmos et deprecabantur eum ut vel fimbriam vestimenti eius tangerent et quotquot tangebant eum salvi fiebant
히브리어Modern,56 ובכל מקום אשר יבא אל הכפרים או הערים ואל השדות שם שמו את החולים בחוצות ויתחננו לו כי יגעו רק בציצת בגדו והיה כל אשר נגעו ונושעו׃
성 경: [막6:56]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열정적 활동과 사람들의 열관적인 추종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활동 영역이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조그마한 “마을”이나 잘 발달되고 붐비는 “도시”나 한적한 들판 위에 세워진 “촌”이나를 불문하고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그 어디나 선교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본문에서 보호자들이 환자들을 “시장”에 두고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예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인 시장을 당신의 복음전파 대상지로 택했던 것 같다. 이 “시장”(아고라)은 한 마을 어귀에 있는 넓은 광장으로 이곳에는 마을 법정과 공공 기관이 형성되며, 또 사람들의 상거래와 교제의 장소로 활용된다. 이러한 분주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에서 예수의 선교 사역이 진행된다는 것은 참으로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손을 대게. - 먼저 “옷가”란 “옷가에 다는 술” (5:27)을 가리키는 말로서 예수는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율법이 명한 바에 따라(민 15:37-39 ; 신 22:12) 옷가에 술을 달고 다니셨던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예수의 옷가에 손을 대기라도 허락할 것을 바라고 있다. 특별히 여기서 “간구하니”(파레칼룬)는 능동태 미완료 시상으로서 무리들의 간곡한 요청이 거듭거듭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믿음이었다. 이와 같은 장면이 혈루증 여인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5:27). 마가는 이와 같은 열광적이고 열정적이며 생동감있는 예수의 치병 활동을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는 말로 끝맺는다. 물론 사람들이 완전한 치유의 은총을 입은 것은 그들이 예수의 옷가를 만졌기 때문은 아니다. 비록 그들의 행동 근저에는 당시 팽배(膨湃)해 있던 미신적 의도가 곁들여져 있었다고 할망정, 예수가 그들을 치유하신 것은 분명 예수의 옷가라도 만지기를 열망했던 그들의 순수한 믿음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법이다(히 11:6). 여하튼 본문의 마지막 글귀는 예수의 활동은 성공적이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 열기가 높아짐을 느끼게 하며 갈릴리 사역이 거의 절정에 다다랐다는 조용한 암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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