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 프쉬케 엨수시아이스 휘페레쿠사이스 휘포타쎄스도 우 가르 에스틴 엨수시아 에이 메 휘포 데우 하이 데 우사이 휘포 데우 테타그메나이 에이신
개역개정,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새번역,1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십시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 사람은 누구나 위에서 다스리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란 있을 수 없고, 현재의 권위들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영어NIV,1 Everyone must submit himself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that which God has established. The authorities that exist have been established by God.
영어NASB,1 Let every person be in subjection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and those which exist are established by God.
영어MSG,1 Be a good citizen. All governments are under God. Insofar as there is peace and order, it's God's order. So live responsibly as a citizen.
영어NRSV,1 Let every person be subject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and those authorities that exist have been instituted by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 πασα ψυχη εξουσιαις υπερεχουσαις υποτασσεσθω ου γαρ εστιν εξουσια ει μη απο θεου αι δε ουσαι εξουσιαι υπο του θεου τεταγμεναι εισιν
라틴어Vulgate,1 omnis anima potestatibus sublimioribus subdita sit non est enim potestas nisi a Deo quae autem sunt a Deo ordinatae sunt
히브리어Modern,1 כל נפש תכנע לגדלת הרשיות כי אין רשות כי אם מאת האלהים והרשיות הנמצאות על יד אלהים נתמנו׃
성 경: [롬13:1]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각 사람 -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파사 프쉬케'(*)로 직역하면 '모든 영혼'(every soul)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모든 사람'(every man)이나 '모든 성도'(every believer)라고 표현하지 않고 '모든 영혼'으로 표현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 혹 여기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의 권력에 대해 성도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서의 질서에 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각 사람'(*)이라는 표현이 모든 사람 개개인을 표시하는 구약적 용법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런 의문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본문의 '각 사람'(*, every soul)은 몸(body)과 다른 것으로 구분되는 영혼(soul)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person)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본문은 소위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바울의 이 서신을 읽게 되는 로마의 기독교인 각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 있는 권세들 - '위에 있는 권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 대체로는 국가의 정치적 권세, 인간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로마의 권력(權力)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벧리우스(Dibelius)에 의해 제기되어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에 의해 결정적으로 주장된 다른 견해도 있다. 쿨만에 의하면 본문의 '권세들'(*, 여수시아이)은 인간의 권세와 천사적 권세 모두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바울이 '권세'(*, 여수시아)의 복수형을 사용했을 때 그것이 악한 천사나 선한 천사를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됐던 사례가 있다는 데 있다(8:38;엡 1:21;3:10;4:12;골 1:16). 이 주장이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1-7절의 맥락에서 볼 때 '권세'라는 말에 인간적인 것 외에 천사적인 존재가 내포된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세금'에 관한 언급은 이것이 세상의 인간적인 통치 권세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굴복하라 - 굴복(subjection)이라는 말은 순종(obedience)이라는 말보다 더 범위가 넓고 엄격한 관계를 표현해준다. 머레이(John Murray)는 이 굴복의 의미가 정부 관리들의 재판권과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즉 독자들은 그들 각자가 정부관리들의 재판권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그들의 권위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브루스(Bruce)는 본문으로 부터 쿨만(Cullmann)의 견해 즉 '권세들'(*, 여수시아이)이 천사적 세력(특히 악한 천사)을 가리킨다고 하는 주장을 반박한다. 브루스의 주장의 요지는 바울이 천사적인 세력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에게 굴복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천사적 세력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있으며 창조주이자 모든 악한 세력을 이기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골 1:16;2:10, 15).
권세는...모든 권세는 - 전자는 대표 단수형이고 후자는 복수형이다. 따라서 전자는 세상에 인간적 질서를 세우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일반 원칙임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개개의 구체적인 권력이 다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정치 권력에 대해 굴복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는 세상의 권세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한다.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원리이다. 그러나 이 말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편화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적용시키려고 하거나, 신앙인과 국가 권력과의 관계를 규정(規定)짓는 말로 확립하고자 할 때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어떤 권세가 악을 징벌하고 선을 장려하며, 선한 양심에 반(反)하는 방식으로 그 권세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권세가 '사랑과 정의'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율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행사되고 불의를 조장하며 악을 도모한다면 그때에는 그 권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 이에 대하여는 본장 1-7절 주제강해 '시민 복종과 불복종의 한계'와 '사회 참여에 관하여'를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모든 권세에 복종하라'고 한 바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바울은 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며 전자의 가능성 즉 이상적인 국가 권력과 그것의 집행에 대해서만 원칙적인 언급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국가의 권세에 대해서 (실제로는 로마의 권력) 그와 같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대로 법치주의에 근거한 로마의 권력이 그의 선교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이 작용했을 수 있다(행 28:16-28). (2) 모든 국가의 권력이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다는 것은 구약 성경적 배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라는 애굽의 왕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악명높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바로를 왕좌에 오르게 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이 구약의 증거이고 또한 바울이 취한 신앙이었다(9:17).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국가의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적 섭리라는 안목으로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정당성 보다는 모든 권력 위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바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하나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유대교 또는 유대주의와의 관계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를 싫어했고 그들로부터 자기들의 나라를 독립시키는 것을 소원했으며 더 나아가 반(反) 로마적인 행동도 불사했다(마 22:16, 17;막 12:14;눅 20:21, 22;요 8:33;행 5:36, 37). 이런 사정을 로마 권력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로마의 권력자들이 기독교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권력에 복종하라고 가르침으로써 불필요한 경계와 오해를 불식(拂拭)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4) 기독교 자체에서 생겨난 문제로 열광주의자에 관한 것이 있는데 이들은 하늘의 시민권 사상과 그리스도의 왕되심에 대한 열광 때문에 지상의 권력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졌다. 이런 신앙은 그 자체로도 문제려니와 로마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배경에 두고 볼 때,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한 바울의 진술은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다.
호스테 호 안티타쏘메노스 테 엨수시아 테 투 데우 디아타게 안데스테켄 호이 데 안데스테코테스 헤아우토이스 크리마 렘프손타이
개역개정,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새번역,2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 따라서 권세에 대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니 거역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자초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 그러므로 권위에 맞서는 자는 하느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고, 그렇게 거스르는 자들은 스스로 심판을 불러오게 됩니다.
영어NIV,2 Consequently, he who rebels against the authority is rebelling against what God has instituted, and those who do so will bring judgment on themselves.
영어NASB,2 Therefore he who resists authority has opposed the ordinance of God; and they who have opposed will receive condemnation upon themselves.
영어MSG,2 If you're irresponsible to the state, then you're irresponsible with God, and God will hold you responsible.
영어NRSV,2 Therefore whoever resists authority resists what God has appointed, and those who resist will incur judgment.
헬라어신약Stephanos,2 ωστε ο αντιτασσομενος τη εξουσια τη του θεου διαταγη ανθεστηκεν οι δε ανθεστηκοτες εαυτοις κριμα ληψονται
라틴어Vulgate,2 itaque qui resistit potestati Dei ordinationi resistit qui autem resistunt ipsi sibi damnationem adquirunt
히브리어Modern,2 לכן כל המתקומם לרשות מרד הוא בצווי האלהים והמרדים ישאו את דינם׃
성 경: [롬13:2]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심판을 자취하리라 -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니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선한 사자들로서 선과 악을 구분하여 상과 벌을 준다면(3, 4절) 이 말은 수긍할 수 있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브루스(F.F. Bruce)가 제기한 질문처럼 만일 가이사가 자기 권세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영역을 주장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어떠한 권력이나 위정자가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 가령 가이사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부여해준 권세의 범위를 넘어 하나님의 자리에서 경배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이런 경우 우리는, 즉 사람과 하나님이 대립되는 경우, 그리고 반드시 양자 택일을 해야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선택해야 한다(행 4:19, 20;5:29). 만약 그렇지 않고 이 본문이 시간과 공간, 조건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불변의 원리라면 이것은 공의와 정의에 반(反)하는 각종 전제 정치 체재와 독재체재를 정당화해주는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넓은 의미 즉 하나님의 섭리의 면에서 본문을 이해하려 한다. 이들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바로'라고 하는 악한 왕도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워졌던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과 경륜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어떤 권력은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지 않으나 그것은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질서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것이다(Lenski). 반면 혹자는 본문을 사도들의 서신 전체 문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럴 경우 어떠한 권력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세의 목적과(3, 4) 범위 내에서만 복종을 요구할 수 있고 기독교인 역시 그러한 범위 안에서만 복종의 의무를 질 뿐, 정도를 벗어나 하나님께 돌려야 할 충성마저도 권력이 요구할 때는 저항할 수 있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본다(Bruce). 어떠한 개인이나 국가가 정권이나 권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을 때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기대하는 바와 상관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세를 오용(誤用)하거나 남용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후자의 견해가, 권력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를 바로 세우는데 타당한 견해라고 여겨진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하는 '심판'은 더이상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료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가령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받게 될 궁극적인 심판을 뜻하는지 아니면 지상의 권력에 의한 형벌을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3, 4절에 나타난 관원에 대한 언급과 '두려움의 동기'는 후자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고 본다. 일단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간에 사람이 지상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하면 그에 상응하는 법적 제재 및 보복적인 조치가 뒤따르는 것이 상례이다. 실제 성도들 가운데는 바르지 않은 권력에 저항하여 목숨까지 잃은 경우도 많은데, 목숨을 잃은 것은 말하자면 권력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인간의 심판을 받는 것이 낫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는 없다는 구약의 선지자적 정신의 구현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4:19;5:29)는 사도들의 신앙정신과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당하는 숭고한 믿음의 결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권세를 거스려 '심판'을 자취하는 자는 정당한 신앙적 이유를 떠나서 권세자들에 대한 그릇된 이해 속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반항하여 불순종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호이 가르 아르콘테스 우크 에이신 포보스 토 아가도 에르고 알라 토 카코 델레이스 데 메 포베이스다이 텐 엨수시안 토 아가돈 포이에이 카이 헼세이스 에파이논 엨스 아우테스
개역개정,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새번역,3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 통치자에 대해서는, 선한 일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고 악한 일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권세자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합니까?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 사실 지배자들이란 악행을 할 때에나 두렵지 선행을 할 때에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는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까?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권위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NIV,3 For rulers hold no terror for those who do right, but for those who do wrong. Do you want to be free from fear of the one in authority? Then do what is right and he will commend you.
영어NASB,3 For rulers are not a cause of fear for good behavior, but for evil. Do you want to have no fear of authority? Do what is good, and you will have praise from the same;
영어MSG,3 Duly constituted authorities are only a threat if you're trying to get by with something. Decent citizens should have nothing to fear. Do you want to be on good terms with the government? Be a responsible citizen and you'll get on just fine,
영어NRSV,3 For rulers are not a terror to good conduct, but to bad. Do you wish to have no fear of the authority? Then do what is good, and you will receive its approval;
헬라어신약Stephanos,3 οι γαρ αρχοντες ουκ εισιν φοβος των αγαθων εργων αλλα των κακων θελεις δε μη φοβεισθαι την εξουσιαν το αγαθον ποιει και εξεις επαινον εξ αυτης
라틴어Vulgate,3 nam principes non sunt timori boni operis sed mali vis autem non timere potestatem bonum fac et habebis laudem ex illa
히브리어Modern,3 כי השליטים אינם לפחד למעשים הטובים כי אם להרעים ועל כן אם רצונך שלא תירא מן הרשות עשה הטוב והיה לך שבח ממנה׃
성 경: [롬13:3]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관원들은 - 공동번역은 본문을 '통치자들'로 번역하고 있다. 이 복수형은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통치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통치자들'로 표현되는 대상은 권력의 상충부 즉 최고 통지권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로마의 관리들을 다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표현 속에서 바울은 아마 자기가 겪었던 로마의 관리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행 19:35-41; 21:31-40;22:24-30;24:10).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 공동번역은 '악한 일', '선한 일'을 '악을 행하는 자',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본문의 '악한일...선한 일'은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행하는 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편 통치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1, 2절에 나오는 권세의 개념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권세는 선을 보장하고 악을 규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만약 어떤 권세가 이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선을 담보하거나 악을 제어하는 기능에서 이탈하여 애초의 전제에 반(反)하는 방식으로 권세가 행사될 때 그 권세는 권세의 수여자(授與者)인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2절). 그런데 바울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아마 이것은 바울의 경험때문일 것이다. 그에게는 로마법에 의한 통치 또는 법에 의한 질서 유지가 여러차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네가...아니하려느냐 - 공동번역은 본문을 의문문으로 보지 않고 서술문으로 보아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십시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의문문으로 표현한 개역성경의 번역이 바울이 강조한 바를 더욱 강하게 나타내 보여준다고 본다. 바울은 복수를 사용하지 않고 '너'라는 2인칭 대표단수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복수를 써서 표현하는 것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는 표현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대단히 강한 인상을 남기는 수사적 표현이다. 사실 권력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대상이다. 왜냐하면 권력은 막강한 힘으로 사람의 정신과 육체에 타격을 주거나 제한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다. 여기서의 '악'은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악, 즉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은 통치자들의 권한이, 궁극적인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허락된 권력과 그 권력의 효력이 미치는 영역 내에서의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 즉 실정법(實定法)을 위반하는 행위만을 처벌하는 것으로 한정됨을 의미한다.
선을 행하라...칭찬을 받으리라 - 본문에서 '그에게'는 물론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칭찬을 받는다'는 말은 어떤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여기에는 보상의 개념이 없으며 단지 인정을 받는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 선을 행해야 하는 동기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상당히 현실적인 동기이다.
데우 가르 디아코노스 에스틴 소이 에이스 토 아가돈 에안 데 토 카콘 포이에스 포부 우 가르 에이케 텐 마카이란 포레이 데우 가르 디아코노스 에스틴 엨디코스 에이스 오르겐 토 토 카콘 프라쏜티
개역개정,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새번역,4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성경,4 그는 여러분에게 선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악을 행한다면 두려워하십시오. 그는 공연히 칼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가톨릭성경,4 지배자는 그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악을 행할 경우에는 두려워하십시오. 그들은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악을 저지르는 자에게 하느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그분의 일꾼입니다.
영어NIV,4 For he is God's servant to do you good. But if you do wrong, be afraid, for he does not bear the sword for nothing. He is God's servant, an agent of wrath to bring punishment on the wrongdoer.
영어NASB,4 for it is a minister of God to you for good. But if you do what is evil, be afraid; for it does not bear the sword for nothing; for it is a minister of God, an avenger who brings wrath upon the one who practices evil.
영어MSG,4 the government working to your advantage. But if you're breaking the rules right and left, watch out. The police aren't there just to be admired in their uniforms. God also has an interest in keeping order, and he uses them to do it.
영어NRSV,4 for it is God's servant for your good. But if you do what is wrong, you should be afraid, for the authority does not bear the sword in vain! It is the servant of God to execute wrath on the wrongdoer.
헬라어신약Stephanos,4 θεου γαρ διακονος εστιν σοι εις το αγαθον εαν δε το κακον ποιης φοβου ου γαρ εικη την μαχαιραν φορει θεου γαρ διακονος εστιν εκδικος εις οργην τω το κακον πρασσοντι
라틴어Vulgate,4 Dei enim minister est tibi in bonum si autem male feceris time non enim sine causa gladium portat Dei enim minister est vindex in iram ei qui malum agit
히브리어Modern,4 כי משמשת אלהים היא לטוב לך אך אם הרע תעשה ירא כי לא לחנם חגרת חרב היא כי משמשת אלהים היא נקמת בקצף מכל עשה הרע׃
성 경: [롬13:4]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 공동번역은 본문을 "통치자는 결국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선을 이루는 자'라는 표현보다는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심부름꾼'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권세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다만 악을 제거하고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그 본질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현상적 고찰에서부터 얻어진 결론일 뿐 권세를 세우신 하나님의 원칙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들 위에 모든 제도, 특히 통치 권력 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천지 창조에서도 나타나듯 질서와 조직은 하나님의 근본 속성이다. (2) 또한 그 질서와 조직을 통하여서만이 교회와 성도가 이 땅 위에서 보호받으며 원래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다(딤전 2:1, 2). 실로 모든 권위와 통치의 모체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러한 뜻을 이 땅위에서 실제로 구현시키기 위하여 파생적으로 그 권력의 일부를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통치자는 그 통치권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범위(category)내에 있을 때 그 권세의 신적인 기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법을 월권할 때는 이미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며 단지 성도를 단련시키는 하나의 악한 도구로 전락될 뿐이다. 따라서 성도는 원(源) 권력이자 모법(母法)인 하나님의 뜻과 법을 따라 마음으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선지자적 경고를 부단히 해야 한다. 이러한 통치자와 성도간의 관계성은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엡 6:1)는 사도 바울의 또 다른 메시지와 일맥 상통한다.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 여기서는 '두려움'의 동기가 강조되고 있다. 본문에서 '공연히'는 '근거없이', '목적없이'의 뜻이다. 그리고 '칼'은 헬라어 '마카이라'(*)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로마의 단검을 가리키는 말로 시민을 사형시킬 때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칼'이 구체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세의 힘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사소한 잘못에서부터 극형에 이르기까지 그 형벌을 부과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세의 총체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칼'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합법적인 권세이며, 목적없이 임의대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노하심 - 여기서의 '진노'는 헬라어 '오르게'(*)의 번역인데 이 말이 신적 진노 곧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세속적 진노 곧 통치자의 진노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혹자는 '진노'(*, 오르게)라는 말이 본서에서 사용될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근거로 하여(1:18;4:15) 전자, 즉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Lenski, Morrison). 그러나 다른 학자는 3-5절의 문맥상 후자, 즉 지상적 통치자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본다(Kasemann). 원칙적인 면에서 보면 지상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기능, 즉 선을 도모하고 악을 징벌하는 기능에 충실하다고 할 때 이 권세에 의한 진노는 곧 하나님의 진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떤 통치자가 선을 금하는 법을 만들고 악을 도모한다고 할 때 그 법에 저항하다가 당하는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문의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이자 그것의 대행자인 지상적 통치자의 진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통치자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행(代行)하는 자로서 선을 추구하고 악을 제거해야 하는 본연의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한계 안에서 그에게 주어진 '칼'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디오 아낭케 휘포타쎄스다이 우 모논 디아 텐 오르겐 알라 카이 디아 텐 쉬네이데신
개역개정,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새번역,5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말성경,5 그러므로 복종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을 위해서도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5 그러므로 하느님의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도 복종해야 합니다.
영어NIV,5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submit to the authorities, not only because of possible punishment but also because of conscience.
영어NASB,5 Wherefore it is necessary to be in subjection, not only because of wrath, but also for conscience' sake.
영어MSG,5 That's why you must live responsibly--not just to avoid punishment but also because it's the right way to live.
영어NRSV,5 Therefore one must be subject, not only because of wrath but also because of conscience.
헬라어신약Stephanos,5 διο αναγκη υποτασσεσθαι ου μονον δια την οργην αλλα και δια την συνειδησιν
라틴어Vulgate,5 ideo necessitate subditi estote non solum propter iram sed et propter conscientiam
히브리어Modern,5 על כן עלינו להכנע לא לבד בעבור הקצף כי גם בעבור דעת חובתנו׃
성 경: [롬13:5]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 국가의 권세에 굴복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권세'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그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권세자가 하나님의 사자 즉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선을 장려하며 악을 징계한다는 대의 명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이 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성도는 그 권한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를 인하여만...양심을 인하여 - 본문의 '노를 인하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to avoid God's Wrath)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RSV). 권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므로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뒤따른다고 볼 수 있고, 국가 권력은 이를 대행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바울은 '양심'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행 23:1;24:16;고후 1:12;4:2;딤전 1:5) 이 양심으로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고 악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느끼며 또한 하나님께 대해서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이 양심을 따라 정당한 권세에 굴복해야 한다. 결국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당위성(當爲性)을 갖는 것이라고 할진대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도 권세에 굴복해야 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감과 충성을 위해서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권력에 복종하는 동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양심의 준수에서 나타나야 한다. 한편 '양심을 인하여' 즉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공동번역)라는 표현은 기독교인이 지상의 권력에 대하여 지녀야 할 태도의 기준이 융통성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는 것으로 해석하게 한다. 여기서의 양심은 분명히 하나님 말씀의 법에 근거한 양심이다. 따라서 어떤 지상의 권력이 '권선징악'에 합당하게 그 권위를 행사한다면 마땅히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 권력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혹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양심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칼을 휘두른다면(4절) 지상의 권력에 의한 핍박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행 4:19, 20). 또한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이므로 모든 제도에 대해 순종함에 있어서 주를 위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벧전 2:13).
디아 투토 가르 카이 포루스 텔레이테 레이투르고이 가르 데우 에이신 에이스 아우토 투토 프로스카르테룬테스
개역개정,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새번역,6 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또한 조세를 바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을 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6 여러분이 조세를 바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6 여러분이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러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영어NIV,6 This is also why you pay taxes, for the authorities are God's servants, who give their full time to governing.
영어NASB,6 For because of this you also pay taxes, for rulers are servants of God, devoting themselves to this very thing.
영어MSG,6 That's also why you pay taxes--so that an orderly way of life can be maintained.
영어NRSV,6 For the same reason you also pay taxes, for the authorities are God's servants, busy with this very 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6 δια τουτο γαρ και φορους τελειτε λειτουργοι γαρ θεου εισιν εις αυτο τουτο προσκαρτερουντες
라틴어Vulgate,6 ideo enim et tributa praestatis ministri enim Dei sunt in hoc ipsum servientes
히브리어Modern,6 כי לזאת אף משלמים אתם את המס כי משרתי אלהים המה השקדים על זאת׃
성 경: [롬13:6]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공세를 바치는 것 - 바울은 국가에 대한 의무 이행 즉 복종의 구체적인 예로 납세(納稅)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본문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이미 로마 국가가 부과한 세금을 내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납세를 거부하거나 납세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혹 로마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이교도의 국가인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징벌이 두려워서 억지로 세금을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교 국가라 하더라도 로마 정부가 가진 권위를 부여하신 분이 하나님이므로 세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자는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납세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바울의 납세관이 복음서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해 영향받았다고 본다(Lenski). 한편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여기에 나온 권세에의 복종은 지상의 권세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천사나 보이지 않는 권세자들에 대한 복종이라고 했는데, 이레니우스(Irenaeus)는 그의 저서 '이단 논박'(Against Heresies, V. 24)에서 본 구절에 대하여 이 문맥에서 말하는 권세에의 복종을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이 아니라 지상의 통치 세력에 대한 복종임을 증거했다.
하나님의 일군 - 본문의 '일군'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이투르고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본래 제정 일치(祭政一致) 사회의 왕적 제사장직에서 온 말로 70인역에서는 '제사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코이네(Koine) 헬라어 개념에서는 일반적인 국가의 관리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또한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의 문헌들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고귀한 봉사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15:16, 27;눅 1:23;행 13:2;고후 9:12 등). 대개의 학자들은 이 말이 4절의 '사자'(*, 디아코노스)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말이라고 본다(Murray, Bruce).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 여기서 '이 일'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볼 경우 이는 관원들의 직무를 부분적으로만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원들이 오직 세금을 징수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직무를 가리킨다고 보는데(Lenski) 이렇게 보는 것이 본문의 의미를 좀더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원들이 세금 징수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통치자들에게도 깊은 의미를 제공한다. 즉 통치자들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위임해준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하며 그들의 직무가 갖는 이러한 성격을 잘 인식하고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 한편 '항상 힘쓰느니라'는 말은 적어도 통치자들이 공공의 일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포도테 파신 타스 오페일라스 토 톤 포론 톤 포론 토 토 텔로스 토 텔로스 토 톤 포본 톤 포본 토 텐 티멘 텐 티멘
개역개정,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새번역,7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
우리말성경,7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사람을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하십시오.
가톨릭성경,7 여러분은 모든 이에게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내야 할 사람에게는 조세를 내고 관세를 내야 할 사람에게는 관세를 내며,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십시오.
영어NIV,7 Give everyone what you owe him: If you owe taxes, pay taxes; if revenue, then revenue; if respect, then respect; if honor, then honor.
영어NASB,7 Render to all what is due them: tax to whom tax is due; custom to whom custom; fear to whom fear; honor to whom honor.
영어MSG,7 Fulfill your obligations as a citizen. Pay your taxes, pay your bills, respect your leaders.
영어NRSV,7 Pay to all what is due them--taxes to whom taxes are due, revenue to whom revenue is due, respect to whom respect is due, honor to whom honor is due.
헬라어신약Stephanos,7 αποδοτε ουν πασιν τας οφειλας τω τον φορον τον φορον τω το τελος το τελος τω τον φοβον τον φοβον τω την τιμην την τιμην
라틴어Vulgate,7 reddite omnibus debita cui tributum tributum cui vectigal vectigal cui timorem timorem cui honorem honorem
히브리어Modern,7 לכן תנו לכל איש כחובתכם המס לאשר לו המס המכס לאשר לו המכס והמורא לאשר לו המורא והכבוד לאשר לו הכבוד׃
성 경: [롬13:7]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권세에 대한 의무]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 '공세'(*, 포론)는 피정복민이 지배 국가에 바치는 '조공'(朝貢)을 의미하며 '국세'(*, 텔로스)는 국가에 내는 세금을 가리킨다. 6절에서는 독자들이 세금을 바쳐야 하는 근거와 세금을 부과하는 정당서을 묘사한 것이고 본절에서는 마땅히 납세를 해야 할 것임을 언급한다. 만약 당시의 모든 성도들이 다 세금내는 일을 잘 준수하였다면 바울이 본절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이로 보아 당시에 세금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들이 세상의 일상적인 질서, 현세의 정치 질서를 부정하는 열광주의자들이었을 것이라고 본다(Kasemann). 따라서 바울은 본절을 통해 그들에게 현세의 질서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이 질서 안에 머물러 있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 여기서 두려움과 존경은 실제적으로 권력 또는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내면적인 태도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권력에 대해서 절대적인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秩序)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정당한 두려움과 존경을 품어야 한다.
메데니 메덴 오페일레테 에이 메 토 알렐루스 아가판 호 가르 아가폰 톤 헤테론 노몬 페플레로켄
개역개정,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새번역,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우리말성경,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가톨릭성경,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영어NIV,8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 for he who loves his fellowman has fulfilled the law.
영어NASB,8 Owe nothing to anyone except to love one another; for he who loves his neighbor has fulfilled the law.
영어MSG,8 Don't run up debts, except for the huge debt of love you owe each other. When you love others, you complete what the law has been after all along.
영어NRSV,8 Owe no one anything, except to love one another; for the one who loves another has fulfilled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8 μηδενι μηδεν οφειλετε ει μη το αγαπαν αλληλους ο γαρ αγαπων τον ετερον νομον πεπληρωκεν
라틴어Vulgate,8 nemini quicquam debeatis nisi ut invicem diligatis qui enim diligit proximum legem implevit
히브리어Modern,8 ואל תהיו חיבים לאיש דבר זולתי אהבת איש את רעהו כי האהב את חברו קים את התורה׃
성 경: [롬13:8]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사랑의 의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 본문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성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갚지 않고 남겨두는 빚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이란 성도들이 지불해야 하는 빚으로서 '다갚음'이 없는 영원한 부채라는 것이다. 한편 '아무에게든지'라는 표현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는 대상이 '성도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까지 확장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다 이루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켄'(*)은 현재완료형이다. 이는 사랑하는 순간 율법을 이룬 것임을 말해준다. 여기서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마 5:7).
토 가르 우 모이큐세이스 우 포뉴세이스 우 클렢세이스 우크 에피뒤메세이스 카이 에이 티스 헤테라 엔톨레 엔 토 로고 투토 아나케팔라이우타이 엔 토 아가페세이스 톤 플레시온 수 호스 세아우톤
개역개정,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새번역,9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 ㉠출 20:13-15; 17; 신 5:17-19; 21 ㉡레 19:18
우리말성경,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고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이 모든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이 말씀 가운데 다 요약돼 있습니다. 출20:13-15,17;레19:19;신5:17-19
가톨릭성경,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 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말로 요약됩니다.
영어NIV,9 The commandments, "Do not commit adultery," "Do not murder," "Do not steal," "Do not covet," and whatever other commandment there may be, are summed up in this one rule: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영어NASB,9 For thi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if there is any other commandment, it is summed up in this saying,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영어MSG,9 The law code--don't sleep with another person's spouse, don't take someone's life, don't take what isn't yours, don't always be wanting what you don't have, and any other "don't" you can think of--finally adds up to this: Love other people as well as you do yourself.
영어NRSV,9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any other commandment, are summed up in this wor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헬라어신약Stephanos,9 το γαρ ου μοιχευσεις ου φονευσεις ου κλεψεις ου ψευδομαρτυρησεις ουκ επιθυμησεις και ει τις ετερα εντολη εν τουτω τω λογω ανακεφαλαιουται εν τω αγαπησεις τον πλησιον σου ως εαυτον
라틴어Vulgate,9 nam non adulterabis non occides non furaberis non concupisces et si quod est aliud mandatum in hoc verbo instauratur diliges proximum tuum tamquam te ipsum
히브리어Modern,9 כי מצות לא תנאף לא תרצח לא תגנב לא תענה עד שקר לא תחמד ועוד כאלה כלולות הנה במאמר הזה ואהבת לרעך כמוך׃
성 경: [롬13:9]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사랑의 의무]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 바울은 율법의 예로 십계명을 들고 있다(6, 7, 8, 10계명).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율법인 십계명의 조항을 들어 그가 말하려고 하는 바, 사랑이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가를 말해주려고 한다. 인용에 있어서 부모 공경과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조항은 생략했는데, 이는 바울이 자신의 논리 전개상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Calvin). 즉 바울은 사랑과 관련하여 이웃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는 항목들을 선택했거나, 아니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항에 해당되는 율법 조항을 들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는 '...을 하지 말라'하는 금령(禁令)이 '사랑'이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규범으로 대치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 바울은 레 19:18을 예증 문구로 인용하면서 사랑의 결정적인 가치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 계명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율법의 핵심이고 완성임을 명백히 보여준다(막 12:31;갈 5:14;약 2:8).
헤 라가페 토 플레시온 카콘 우크 에르가제타이 플레로마 운 노무 헤 아가페
개역개정,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새번역,10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우리말성경,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가톨릭성경,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영어NIV,10 Love does no harm to its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영어NASB,10 Love does no wrong to a neighbor; love therefor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영어MSG,10 You can't go wrong when you love others. When you add up everything in the law code, the sum total is love.
영어NRSV,10 Love does no wrong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ing of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10 η αγαπη τω πλησιον κακον ουκ εργαζεται πληρωμα ουν νομου η αγαπη
라틴어Vulgate,10 dilectio proximo malum non operatur plenitudo ergo legis est dilectio
히브리어Modern,10 האהבה לא תרע לרע על כן האהבה קיום התורה כלה׃
성 경: [롬13:10]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사랑의 의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본문은 사랑의 소극적인 의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성도들은 이런 의미에서의 사랑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이런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사랑도 강조되어야 한다. 사랑은 능동적인 것이고 따라서 모종의 행동을 필연적으로 유발시키지만 그것이 결코 이웃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의 '완성'(*, 플레로마)은 '충만'으로 번역될 수도 있으나 8절의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와의 조화를 생각할 때 전자의 번역이 더 분명한 의미를 드러낸다고 본다. 그러나 사랑으로 율법이 충만해진다고 하는 것도 의미있는 것이다.
카이 투토 에이도테스 톤 카이론 호티 호라 에데 휘마스 엨스 휲누 에게르데나이 뉜 가르 엥귀테론 헤몬 헤 소테리아 에 호테 에피스튜사멘
개역개정,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새번역,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말성경,11 여러분이 이 시기를 알고 있는 것처럼 벌써 잠에서 깨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1 또한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1 And do this, understanding the present time. The hour has come for you to wake up from your slumber, because 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영어NASB,11 And this do, knowing the time, that it is already the hour for you to awaken from sleep; for now salvation is nearer to us than when we believed.
영어MSG,11 But make sure that you don't get so absorbed and exhausted in taking care of all your day-by-day obligations that you lose track of the time and doze off, oblivious to God.
영어NRSV,11 Besides this, you know what time it is, how it is now the moment for you to wake from sleep. For salvation is nearer to us now than when we became believers;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τουτο ειδοτες τον καιρον οτι ωρα ημας ηδη εξ υπνου εγερθηναι νυν γαρ εγγυτερον ημων η σωτηρια η οτε επιστευσαμεν
라틴어Vulgate,11 et hoc scientes tempus quia hora est iam nos de somno surgere nunc enim propior est nostra salus quam cum credidimus
히브리어Modern,11 וכזאת עשו מדעתכם את הזמן כי כבר הגיעה השעה להקיץ מן השנה כי ישועתנו קרובה עתה מהיום אשר באנו להאמין׃
성 경: [롬13:11]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각성]
이 시기를 알거니와 - 본문의 '시기'(*, 카이로스)는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시간'(*, 크로노스)이 아니라 '계절'(season)과 같이 어떤 특성을 가진 개념의 시간이다. 여기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카이론'(*, '그 시기를')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주의 재림으로 오게 될 역사의 종말을 그 시기의 성격이나 현상들을 통해 깨닫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은 주의 가르침(마 24장)에 근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가 주는 의미를 바로 깨달으라고 하는 바울의 촉구가 담겨있는 표현이다.
우리의 구원이 - 본문의 '구원'은 현재의 고난으로부터의 탈피 또는 점진적인 구원의 과정에 참여함이 아니라 종말론적이고 최종적인 완성으로서의 구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주의 강림 때 일어날 미래적 구원의 정점(定點)이 더 가까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믿을 때보다 - 믿기 시작했을 때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으나 혹자는 이것을 세례와 관련시켜 세례받은 때로 보기도한다(Kasemann). 적어도 초대교회에서 믿음을 갖는 것과 세례를 받는 것은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었으므로 '처음 믿을 때'를 세례받을 때로 보아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가까왔음이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귀테론'(*)은 비교급으로 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성도의 최종적인 구원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역사가 종말과 우주적인 구원을 목표로 하고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이루어진다.
헤 뉰스 프로에콮센 헤 데 헤메라 엥기켄 아포도메다 운 타 에르가 투 스코투스 에뒤소메다 데 타 호플라 투 포토스
개역개정,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새번역,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우리말성경,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가톨릭성경,12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영어NIV,12 The night is nearly over; the day is almost here. So let us put aside the deeds of darkness and put on the armor of light.
영어NASB,12 The night is almost gone, and the day is at hand. Let us therefore lay aside the deeds of darkness and put on the armor of light.
영어MSG,12 The night is about over, dawn is about to break. Be up and awake to what God is doing! God is putting the finishing touches on the salvation work he began when we first believed.
영어NRSV,12 the night is far gone, the day is near. Let us then lay aside the works of darkness and put on the armor of light;
헬라어신약Stephanos,12 η νυξ προεκοψεν η δε ημερα ηγγικεν αποθωμεθα ουν τα εργα του σκοτους και ενδυσωμεθα τα οπλα του φωτος
라틴어Vulgate,12 nox praecessit dies autem adpropiavit abiciamus ergo opera tenebrarum et induamur arma lucis
히브리어Modern,12 הלילה חלף והיום קרב לכן נסירה נא את מעשי החשך ונלבשה את כלי נשק האור׃
성 경: [롬13:12]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이 시기를 알거니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 '깊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콰센'(*)은 '진전되었다', '많이 지났다'의 의미를 갖는 '프로코프토'(*)의 부정 과거 시제로서 '밤이 많이 지났다'는 의미도 포함되지만, '이미 밤이 지났다'는 의미가 더욱 많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낮이 '가까왔으니'(*, 엥기켄)는 완료형으로 '이미 와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 선포를 한 시점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왔다(*, 엥기켄)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해석이 더욱 타당하다. 한편 '밤'이 현세상이라면 '낮'은 구원이 있는 천국을 가리킨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신천 신지(新天新地)가 가까왔음을 말해주는데 이 종말의 가까움에 관한 바울의 표현에 대해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날'이 임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1) 바울의 '가까움'에 대한 강조를 인간들이 계산하는 연대기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예언적 전망'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베드로가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2) 바울의 '가까움'에 대한 강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감옷을 입자"는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현재적 경건의 삶을 촉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참빛이 왔기 때문에 낮의 세력이 성도들에게 임하였으나 실제로는 밤이다. 즉 성도들은 여전히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눅 16:8). 따라서 지금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죄의 세력에 대한 전투적인 삶이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 - 바울은 낮과 밤에 다른 옷을 입는 것에 착안하여 지금 벗어버려야 할 것과 새로 입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본문은 어두움으로 상징되는 죄악 곧 사단의 일과 빛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일의 대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두움을 악한 세력으로, 빛을 선한 세력으로 대비시키는 것은 당시에 일반화된 관행이었으므로 독자들은 이것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령 쿰란 문서에 의하면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인다. 한 부류는 어두움의 사자에 의해 지배를 받고 다른 한 부류는 빛의 왕자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러다가 말세에는 이들 두 세력이 큰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그것을 가리켜 '빛의 아들들과 어두움의 아들들의 전쟁'이라고 한다(Vermes). 바울은 전쟁용사의 무장(武裝)에 대해서 엡 6:13-17에 자세히 기록한 바 있는데 본 구절의 '갑옷'도 성도의 전투적인 삶을 잘 보여준다. 성도들은 비록 어두움의 세상과 접하며 살지만, 성도의 실체는 낮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싸움이 수반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성도의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것이므로 주의 강림으로 드러날 영광과 변화될 삶을 기대하며 살아간다(고후 3:18;4:14).
호스 엔 헤메라 유스케모노스 페리파테소멘 메 코모이스 카이 메다이스 메 코이타이스 카이 아셀게이아이스 메 에리디 카이 젤로
개역개정,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새번역,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우리말성경,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동합시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가톨릭성경,13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영어NIV,13 Let us behave decently, as in the daytime, not in orgies and drunkenness, not in sexual immorality and debauchery, not in dissension and jealousy.
영어NASB,13 Let us behave properly as in the day, not in carousing and drunkenness, not in sexual promiscuity and sensuality, not in strife and jealousy.
영어MSG,13 We can't afford to waste a minute, must not squander these precious daylight hours in frivolity and indulgence, in sleeping around and dissipation, in bickering and grabbing everything in sight.
영어NRSV,13 let us live honorably as in the day, not in reveling and drunkenness, not in debauchery and licentiousness, not in quarreling and jealousy.
헬라어신약Stephanos,13 ως εν ημερα ευσχημονως περιπατησωμεν μη κωμοις και μεθαις μη κοιταις και ασελγειαις μη εριδι και ζηλω
라틴어Vulgate,13 sicut in die honeste ambulemus non in comesationibus et ebrietatibus non in cubilibus et inpudicitiis non in contentione et aemulatione
히브리어Modern,13 וכמו ביום נתהלכה בצניעות לא בזוללות ובשכרון ולא בבעילות ועשות זמה ולא במריבה וקנאה׃
성 경: [롬13:13]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이 시기를 알거니와]
낮에와 같이 단정히...시기하지 말며 - '낮에와 같이'라는 표현은 지금이 밤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성도들이 실제로 낮에 살고 있다고 여기고 생활하라는 것이다.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가 나열되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단정히 행하는 것과 상반된다. 이러한 무절제한 성적인 방탕과 시기로 인한 싸움은 죄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러한 속성을 이겨내지 못하면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한편 바울이 본서를 쓰고 있던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분위기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Harrison).
알라 엔뒤사스데 톤 퀴리온 예순 크리스톤 카이 테스 사르코스 프로노이안 메 포이에이스데 에이스 에피뒤미아스
개역개정,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새번역,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우리말성경,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애쓰지 마십시오.
가톨릭성경,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영어NIV,14 Rather, clothe yourselves with the Lord Jesus Christ, and do not think about how to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영어NASB,14 But put on the Lord Jesus Christ, and make no provision for the flesh in regard to its lusts.
영어MSG,14 Get out of bed and get dressed! Don't loiter and linger, waiting until the very last minute. Dress yourselves in Christ, and be up and about!
영어NRSV,14 Instead, put on the Lord Jesus Christ, and make no provision for the flesh, to gratify its desire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αλλ ενδυσασθε τον κυριον ιησουν χριστον και της σαρκος προνοιαν μη ποιεισθε εις επιθυμιας
라틴어Vulgate,14 sed induite Dominum Iesum Christum et carnis curam ne feceritis in desideriis
히브리어Modern,14 כי אם לבשו את האדון ישוע המשיח ודאגו לבשרכם אך לא להגביר התאות׃
성 경: [롬13:14]
주제1: [국가와 사회 생활의 윤리]
주제2: [이 시기를 알거니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 본 구절은 신자의 전신 갑주(엡 6:13-17)를 요약적으로 명제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칼빈(Calvin)은 본문을 가리켜 '영의 권능으로 강하여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모든 성결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를 뜻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옷 입는다는 말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한 바 됨을 의미한다(6:1-10).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공동번역은 본문을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요"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육신의 일 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욕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내어두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육신에 관한한 모든 것이 악하다고 하는 의미가 전혀 없다. 다만 그것이 정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으로 움직여질 때 죄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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