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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고린도전서 4장 전체 원어 원문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해설 해석

 

후토스 헤마스 로기제스도 안드로포스 호스 휘페레타스 크리스투 카이 오이코노무스 뮈스테리온 데우

 

개역개정,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새번역,1 사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말성경,1 이와 같이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들로 봐야 합니다. 
가톨릭성경,1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NIV,1 So then, men ought to regard us as servants of Christ and as those entrusted with the secret things of God.
영어NASB,1 Let a man regard us in this manner, as servants of Christ, and stewards of the mysteries of God.
영어MSG,1  Don't imagine us leaders to be something we aren't. We are servants of Christ, not his masters. We are guides into God's most sublime secrets, not security guards posted to protect them.
영어NRSV,1 Think of us in this way, as servants of Christ and stewards of God's mysteries.
헬라어신약Stephanos,1 ουτως ημας λογιζεσθω ανθρωπος ως υπηρετας χριστου και οικονομους μυστηριων θεου
라틴어Vulgate,1 sic nos existimet homo ut ministros Christi et dispensatores mysteriorum Dei
히브리어Modern,1 כן יחשב איש אתנו כמשרתי המשיח וסכני רזי אל׃


 

성 경: [고전4:1]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마땅히...여길지어다 - 바울은 3:23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후토스'(*, '그와 같이')를 사용하여 '일꾼'이라는 것과 '비밀을 맡은 자'라는 두 가지의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후토스'는 '그러므로', '그런즉', '이와 같이'등의 접속사로 사용되었으며 '로기제스도'(*, '여기다')와 함께 쓰여 '하나님의 것'이라는 결론을 토대로(3:23) 새롭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마땅히'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일꾼된 것과 비밀을 맡은 자 된 것의 당연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 그리스도의 일꾼 - 여기서 '일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휘페레타스'(*)는 본래 '노예'에 가까운 신분을 의미한다. 고대 전함에서 노를젓는 가장 하급 노예를 '휘페레테스' (*)라고 불렀는데 바울은 3:5에서 사용한 '디아코노이'(*, '사역자들', ministers)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Barrett). '휘페레타스'는 공관복음서에서도 '일꾼'이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나(눅 1:2),행 13:5에서는 요한을 칭할 때 '수종자'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였다.특히 본절에서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은 자신의 위치를 보다 겸손하게 나타내려 한것 같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분적인 지위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노예적 개념은 오히려 바울의 지도자됨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비밀을 맡은 자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천국의 '비밀'(*, 뮈스테리온)을 나타내시고 다른 자들에게는 숨기셨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마 13:11).'비밀'이라는 말은 초대 교회 속에서 신성한 의식이나 성례전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Barrett)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관계된 엄밀한 지식이나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졌다(골 1:26,27;2:2). 특별히 임무를 받은 자들 외에는 숨겨진 것이기에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는 '계시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Lightfoot). 이런 의미에서 바울과 같은 당시의 지도자들은 '계시된 진리의 교사들'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한편 '맡은 자'를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무스'(*)는 '오이코스'(*,'집')와 '네모'(*, '관리하다')의 합성어로서 한 집안의 행정 관리 및 재정을 맡아 관장하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직분의 행정적인 면을 강조하여 마치 바울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교회의 행정관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울은 교회의 구성원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는 영적 청지기로서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딛 1:7;벧전 4:10). '일꾼'이라는 단어는 가장 낮은 노예적 신분을 나타내는 반면 '맡은 자'라는 단어는 중간 관리인, 또는 위엄과 권위를 가진 직분이라는 점에서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명은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Lenski).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신비,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아 알수 없는 영적 진리를 그리스도께로부터 위임받아 전하는 일을 맡았다는 점에서 같은 직분임을 뜻한다.

 

 

 

호데 로이폰 제테이타이 엔 토이스 오이코노모이스 히나 피스토스 티스 휴레데

 

개역개정,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새번역,2 이런 경우에 관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실성입니다.
우리말성경,2 그리고 맡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신실함입니다. 
가톨릭성경,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영어NIV,2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영어NASB,2 In this case, moreover, it is required of stewards that one be found trustworthy.
영어MSG,2  The requirements for a good guide are reliability and accurate knowledge.
영어NRSV,2 Moreover, it is required of stewards that they be found trustworthy.
헬라어신약Stephanos,2 ο δε λοιπον ζητειται εν τοις οικονομοις ινα πιστος τις ευρεθη
라틴어Vulgate,2 hic iam quaeritur inter dispensatores ut fidelis quis inveniatur
히브리어Modern,2 הנה סוף דבר שלא יבקש מן הסכנים כי אם להמצא נאמן׃


 

성 경: [고전4:2]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바울은 지도자의 겸손과 권위를 동시에 강조한 후에 이에 덧붙여서 '히나'(*, '...하기 위하여')가 이끄는 또 하나의 목적절을 제시한다. 어떤 사본(*)에는 '구하다'라는 동사가 명령형(*, 제테이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너희는 충성을 구하라'는 뜻을 포함한다. 이렇게 해석하더라도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충성'이 청지기의 필수 불가결한 자질이라는 점이다. '충성'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는 문자적으로 '신실성이 발견되는 것'을 뜻한다. 청지기는 주인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아야 하며 완전히 신뢰할 수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Lenski), 특히 '충성이니라'에서 수동형 '휴레데'(*)를 사용하여 나타낸 것은 '충성되다'라는 인정이 개인이나 인간들의 판단에 있지 아니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청지기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뿐이며 자신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신실할 따름이다. 칼빈(Calvin)은 이와 같은 삶을 '건전하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양심의 순결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본절에 사용된 충성의의미는 구별된 몇몇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원리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12:28;엡4:11,12;딤후1:11;벧전 2:9).

 

 

 

에모이 데 에이스 엘라키스톤 에스틴 히나 휲 휘몬 아나크리도 에 휘포 안드로피네스 헤메라스 알 우데 에마우톤 아나크리노

 

개역개정,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새번역,3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3 내가 여러분에게 판단을 받든지 사람의 법정에서 판단을 받든지 그것은 내게 아주 작은 일입니다. 사실 나도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영어NIV,3 I care very little if I am judged by you or by any human court; indeed, I do not even judge myself.
영어NASB,3 But to me it is a very small thing that I should be examined by you, or by any human court; in fact, I do not even examine myself.
영어MSG,3  It matters very little to me what you think of me, even less where I rank in popular opinion. I don't even rank myself. Comparisons in these matters are pointless.
영어NRSV,3 But with me it is a very small thing that I should be judged by you or by any human court. I do not even judge myself.
헬라어신약Stephanos,3 εμοι δε εις ελαχιστον εστιν ινα υφ υμων ανακριθω η υπο ανθρωπινης ημερας αλλ ουδε εμαυτον ανακρινω
라틴어Vulgate,3 mihi autem pro minimo est ut a vobis iudicer aut ab humano die sed neque me ipsum iudico
히브리어Modern,3 ואני נקלה היא בעיני כי אתם דנים אתי או יום דין של בני אדם גם אני את נפשי לא אדין׃


 

성 경: [고전4:3]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주관적인 소욕(所慾)을 따라 함부로 판단했다. 그들의 판단은 마지막 날에 공력을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과(고후 5:10)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판단이다. 바울은 '아나크리노'(*)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판단이 심판이라는 의미보다는 편견에 의한 분별 또는 식별(discern)을 의미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당시 교회의 비난과 배척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는 심판대의 공정성과 위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매우작은 일에 불과한 것이었다. 설령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칭찬하며 천사와 같이 높였다고 할지라도 바울은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주인에게 충성할 자세를 가졌으며 '인간의 판단', '하나님의 판단'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고 자신의 선한 양심조차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판단의 기준이 변할 수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의 판단은 사도 바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선포한 것이다.

 

 

 

우덴 가르 에마우토 쉬노이다 알 우크 엔 투토 데디카이오마이 호 데 아나크리논 메 퀴리오스 에스틴

 

개역개정,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새번역,4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말성경,4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내가 의롭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십니다. 
가톨릭성경,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영어NIV,4 My conscience is clear, but that does not make me innocent. It is the Lord who judges me.
영어NASB,4 For I am conscious of nothing against myself, yet I am not by this acquitted; but the one who examines me is the Lord.
영어MSG,4  I'm not aware of anything that would disqualify me from being a good guide for you, but that doesn't mean much. The Master makes that judgment.
영어NRSV,4 I am not aware of anything against myself, but I am not thereby acquitted. It is the Lord who judges me.
헬라어신약Stephanos,4 ουδεν γαρ εμαυτω συνοιδα αλλ ουκ εν τουτω δεδικαιωμαι ο δε ανακρινων με κυρι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4 nihil enim mihi conscius sum sed non in hoc iustificatus sum qui autem iudicat me Dominus est
히브리어Modern,4 כי אינני יודע בנפשי רע ובכל זאת לא אצדק כי הדן אתי הוא יהוה׃



성 경: [고전4:4]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 한 인간의 업적에 대하여 판단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은 앞절에서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말한 이후 자신의 허물없음을 스스로 언급한 것이 궁색한 변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롬 7:19에 기록된 바와 같은 죄인의 고백을 염두에 두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원치않는 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책망할수 없다고 말한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칼빈(Calvin)은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전 생애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직분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또한 라이트푸트(Lightfoot)는 본절을 단순히 가상적인 진술로 취급한다. 바울은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하나의 가정적인 전제를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양자는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나 지도자의 직분과 권위를 설명하는 본절에서는 전자가 보다 타당한 것이라고 본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도적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태만이나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Lenski).

󰃨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 바울에게 있어서 의롭다함을 받은 '칭의'의 개념은 언제나 수동태로 나타난다. 본절의 '의롭다 함을 얻지'의 헬라어 '데디카이오마이'(*) 역시 '디카이오오'(*, '옳게 여기다')의 수동태로서 의롭다고 판결하시는 그리스도의 판단을 시사하고 있다. 사도의 직무에 충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는 고백은 철두철미하게 '이신 득의'에 근거한 것으로 자신의 충성도를 자랑하거나 비하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이행한 일을 정직한 것으로 판단하지만 심판자는 그 심령을 감찰하시고(잠 21:2) 판단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 '의'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바울이 궁극적인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점검한 것은 복음의 사역자된 모든 시대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태도이다. 복음의 사역자는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는가를 살피는 삶 가운데서 칭찬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5절).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과 모든 판단의 근거를 그리스도께 두는 바울의 겸손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다.

 

 

 

호스테 메 프로 카이루 티 크리네테 헤오스 안 엘데 호 퀴리오스 호스 카이 포티세이 타 크륖타 투 스코투스 카이 파네로세이 타스 불라스 톤 카르디온 카이 토테 호 에파이노스 게네세타이 헤카스토 아포 투 데우

 

개역개정,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새번역,5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5 그러므로 여러분은 때가 되기 전,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마십시오. 주께서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밝히시고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NIV,5 Therefore judge nothing before the appointed time; wait till the Lord comes. He will bring to light what is hidden in darkness and will expose the motives of men's hearts. At that time each will receive his praise from God.
영어NASB,5 Therefore do not go on passing judgment before the time, but wait until the Lord comes who will both bring to light the things hidden in the darkness and disclose the motives of men's hearts; and then each man's praise will come to him from God.
영어MSG,5  So don't get ahead of the Master and jump to conclusions with your judgments before all the evidence is in. When he comes, he will bring out in the open and place in evidence all kinds of things we never even dreamed of--inner motives and purposes and prayers. Only then will any one of us get to hear the "Well done!" of God.
영어NRSV,5 Therefore do not pronounce judgment before the time, before the Lord comes, who will bring to light the things now hidden in darkness and will disclose the purposes of the heart. Then each one will receive commendation from God.
헬라어신약Stephanos,5 ωστε μη προ καιρου τι κρινετε εως αν ελθη ο κυριος ος και φωτισει τα κρυπτα του σκοτους και φανερωσει τας βουλας των καρδιων και τοτε ο επαινος γενησεται εκαστω απο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5 itaque nolite ante tempus iudicare quoadusque veniat Dominus qui et inluminabit abscondita tenebrarum et manifestabit consilia cordium et tunc laus erit unicuique a Deo
히브리어Modern,5 על כן אל תשפטו שפוט לפני העת עד כי יבוא האדון אשר גם יוציא לאור את תעלמות החשך ויגלה את עצת הלבבות ואז תהיה תהלה לכל איש מאת האלהים׃


 

성 경: [고전4:5]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 바레트(Barrett)는 '판단하다'를 뜻하는 '크리네테'(*)를 궁극적인 최후 심판이 있기 전에 행하는 '예비 심문' 또는 '예비 조사'의 개념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판단을 임시적인 판단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이 최후의 심판에 어떠한 작용을 할 수 있는 예비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마지막 날의 심판은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위가 위임된 것로써 혐의에 대한 조사도 그리스도께서 하시며 판결도 그분께서 행하신다. 인간 행위에 대한 고발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죄인을 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판단'은 합당한 이해와 관찰 없이 조급하고 경솔하게 남을 평가하는 죄인의 판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Calvin). 한편 바울은 천사들을 판단할 수도 있는 인간의 권위가(6:3)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되는 최후의 날까지 유보되어 있음을 시사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와 그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 본절의 '때'를 가리키는 헬라어 '카이로스'(*)는 일정한 기간(롬 3:26)뿐만 아니라 한 순간의 시각(마 24:45)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약속된 시간'(an appointed time)으로서의 '최후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때'는 전장(前章)에 나오는 '그 날'(3:13)과 동일한 말임을 알 수있다. 그런데 이최후 심판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심판하게 될 이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도래하기 때문이다(마 25:31-46;요 5:24-30, Harris).

󰃨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 본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내용이다. 어두움 속에 숨겨진 악한 세력의 일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모두 드러날 것이다(고후 5:10).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모든 비밀조차도 밝히 드러날 것이다(마 10:26). 어두움 속에 숨겨진 인간 행위의 무질서는 그리스도의 밝은 빛에 의하여 모두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설픈 판단은 그 때까지 유보되는 것이다(요 12:48).

 

 

 

타우타 데 아델포이 메테스케마티사 에이스 에마우톤 카이 아폴론 디 휘마스 히나 엔 헤민 마데테 토 메 휘페르 하 게그랖타이 히나 메 헤이스 휘페르 투 헤노스 퓌시우스데 카타 투 헤테루

 

개역개정,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6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나와 아볼로에게 적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격언의 뜻을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배워서, 어느 한 편을 편들어 다른 편을 얕보면서 뽐내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6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을 위해 이것을 나 자신과 아볼로에게 적용해 설명했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우리를 통해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한 것을 배워 어느 한 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대적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6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나 자신과 아폴로에게 적용시켜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분이 ‘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어NIV,6 Now, brothers, I have applied these things to myself and Apollos for your benefit, so that you may learn from us the meaning of the saying, "Do not go beyond what is written." Then you will not take pride in one man over against another.
영어NASB,6 Now these things, brethren, I have figuratively applied to myself and Apollos for your sakes, that in us you might learn not to exceed what is written, in order that no one of you might become arrogant in behalf of one against the other.
영어MSG,6  All I'm doing right now, friends, is showing how these things pertain to Apollos and me so that you will learn restraint and not rush into making judgments without knowing all the facts. It's important to look at things from God's point of view. I would rather not see you inflating or deflating reputations based on mere hearsay.
영어NRSV,6 I have applied all this to Apollos and myself for your benefit, brothers and sisters, so that you may learn through us the meaning of the saying, "Nothing beyond what is written," so that none of you will be puffed up in favor of one against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6 ταυτα δε αδελφοι μετεσχηματισα εις εμαυτον και απολλω δι υμας ινα εν ημιν μαθητε το μη υπερ ο γεγραπται φρονειν ινα μη εις υπερ του ενος φυσιουσθε κατα του ετερου
라틴어Vulgate,6 haec autem fratres transfiguravi in me et Apollo propter vos ut in nobis discatis ne supra quam scriptum est unus adversus alterum infletur pro alio
히브리어Modern,6 ואת זאת אחי הסבתי על עצמי ועל אפולוס בעבורכם למען תלמדו בנו שלא יתחכם איש יותר ממה שכתוב פן תתגאו איש בשם איש לנגד רעהו׃


 

성 경: [고전4:6]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너희를 위하여...본을 보였으니 - 바울과 아볼로의 모범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과 칭찬만을 기대하는 행위가 아니다. 여기서 '본을 보였으니'로 번역된 헬라어 '메테스케마티사'(*)는 '적용하다', '변형시키다'(빌 3:21) 또는 '변장하다'(고후 11:13, 14)의 뜻으로 사용된 '메타스케마티조'(*)의 능동태로서 '의지를 가지고 자신에게 적용시켰다'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규범을 자신과 아볼로의 관계에 적용(適用)시켰다는 것이다. 바울이 앞에서 사용한 여러 비유들에 의하면 그들은 때로 심는 자와 물주는 자(3:5-9), 터 닦는 자와 건축자 등과 같은 협력자로서의 공동체적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질 칭찬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과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판단하실 분은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지도자적 자질을 더욱 빛내준다. 또한 규범을 자신들에게 적용시켰다는 바울의 변호는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분쟁이 선한 사도들(예를 들면 구체적인 언급이 생략됨 베드로와 같은자)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들의 당파 싸움을 부추기는 거짓 교사들이있음을 고발하고 있다(J. Calvin).

󰃨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배워...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쟁이 그들의 자화 자찬(自畵自讚)과 교만에 기인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특히 '교만해지다'를 뜻하는 헬라어 '프쉬시오오'(*)는 다른 곳에서 오직 한 번만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비하여(골 2:18) 본 서신에서는 여러번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18,19절;5:2; 8:1;13:4등). 여기서 교만은 스스로 '자랑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바울이나 아볼로)를 자랑함으로써 서로 속에서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분쟁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를 자랑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또 하나에 대한 시기와 멸시는 스스로도 해결할 수없는 파벌 싸움에 휘말리게 하였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쟁과 파벌을 초래한교만을 말씀 안에서 잘라내는 일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기록한 말씀'(*, 게그랖타이)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에 관하여 바울 자신이 본 서신 1장에서 부터 지금까지 기록해 모든 교훈(1:10,30,31; 3:16-21)들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교만하지 말며 겸손할 것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는 구약성경 말씀(잠 16:18;22:4;사 57:15)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전자의 견해를 취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교훈한 것 중에 인용한 말씀이 많고(1:19,31;2:9;3:19,20)뿐만 아니라 본절에서는 '우리에게 배워'라는 말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한 말씀'이란 바울이 본서신 1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기록해 온 모든 교훈을 의미한다(Harris).

 

 

 

티스 가르 세 디아크리네이 티 데 에케이스 호 우크 엘라베스 에이 데 카이 엘라베스 티 카우카사이 호스 메 라본

 

개역개정,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새번역,7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두가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우리말성경,7 누가 당신을 구별합니까? 당신이 가진 것 가운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받은 것이라면 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가톨릭성경,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영어NIV,7 For who makes you different from anyone else? What do you have that you did not receive? And if you did receive it, why do you boast as though you did not?
영어NASB,7 For who regards you as superior? And what do you have that you did not receive? But if you did receive it, why do you boast as if you had not received it?
영어MSG,7  For who do you know that really knows you, knows your heart? And even if they did, is there anything they would discover in you that you could take credit for? Isn't everything you have and everything you are sheer gifts from God? So what's the point of all this comparing and competing?
영어NRSV,7 For who sees anything different in you? What do you have that you did not receive? And if you received it, why do you boast as if it were not a gift?
헬라어신약Stephanos,7 τις γαρ σε διακρινει τι δε εχεις ο ουκ ελαβες ει δε και ελαβες τι καυχασαι ως μη λαβων
라틴어Vulgate,7 quis enim te discernit quid autem habes quod non accepisti si autem accepisti quid gloriaris quasi non acceperis
히브리어Modern,7 כי מי הפליא אותך ומה בידך אשר לא קבלתו ואם קבלתו למה תתהלל כאיש אשר לא קבל׃


 

성 경: [고전4:7]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바울은 세 가지의 질문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교만을 지적하며 왜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 본절에서 '구별하다'(*, 디아크리노)는 말은 '추려내다' 또는 '다르게 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Lenski, Barrett). 첫번째 질문은 그들 가운데서 다르게 나타나려 하는 자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 질문 가운데서 두 가지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모두 같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교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근신할 것을 요구한다. (2)또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를 동일하게 입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앞에서 특혜(特惠)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들은 하나님 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우월감의 근거로 삼음으로 인하여 마치 자신들에게 주어진 은사들 조차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들의 욕심을 자랑하는거짓 은사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것이다. 설령 구별된다 할지라도 그 판단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사도는 첫번째 질문을 통해서 '누가 너희를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구분지었느냐'는 반문을 한 것이다(1:12). 사도의 이 같은 질문에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1:13)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동일한 자들이 아니냐'(1:2)라는 책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아무런 정당성도 가질 수가 없다. 그들이 가진 지식, 혈통, 재산, 생명, 심지어 신앙까지라도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자랑은 무익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 세번째 질문은 두번째 질문과 유사한 것으로서 '모든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인데 어찌하여 스스로가 잘나서 그와 같은 것을 누리고 있는 양 자랑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바울은 점진적인 질문의 방법을 통하여 그들의 교만이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奪取)하는 오만한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은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와 공로를 자랑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들 조차 함께 판단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칼빈(Calvin)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 속에서 겸손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발견한다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데 케코레스메노이 에스테 에데 에플루테사테 코리스 헤몬 에바실류사테 카이 오펠론 게 에바실류사테 히나 카이 헤메이스 휘민 쉼바실류소멘

 

개역개정,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새번역,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노릇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말성경,8 여러분은 이미 배가 불렀고 이미 부유해졌고 우리 없이 왕 노릇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정말 왕처럼 다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 노릇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톨릭성경,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영어NIV,8 Already you have all you want! Already you have become rich! You have become kings--and that without us! How I wish that you really had become kings so that we might be kings with you!
영어NASB,8 You are already filled, you have already become rich, you have become kings without us; and I would indeed that you had become kings so that we also might reign with you.
영어MSG,8  You already have all you need. You already have more access to God than you can handle. Without bringing either Apollos or me into it, you're sitting on top of the world--at least God's world--and we're right there, sitting alongside you!
영어NRSV,8 Already you have all you want! Already you have become rich! Quite apart from us you have become kings! Indeed, I wish that you had become kings, so that we might be kings with you!
헬라어신약Stephanos,8 ηδη κεκορεσμενοι εστε ηδη επλουτησατε χωρις ημων εβασιλευσατε και οφελον γε εβασιλευσατε ινα και ημεις υμιν συμβασιλευσωμεν
라틴어Vulgate,8 iam saturati estis iam divites facti estis sine nobis regnastis et utinam regnaretis ut et nos vobiscum regnaremus
히브리어Modern,8 הן כבר שבעתם כבר עשרתם ובלעדינו מלכתם ולו מלכתם למען נמלך אתכם גם אנחנו׃


 

성 경: [고전4:8]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하였도다 - 본절은 고린도교인들의 오만 불손한 행동들에 대한 야유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실제적인 그들의 삶을 묘사한 내용일 수도 있다. 7절에서의 질문들은 '너희가 정말 그러하냐?'는 반어적인 표현임에 틀림없으나 본절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취급하기에는 다소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그들 삶은 모든 면에 있어서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풍요는 감사와 찬양으로 돌려지지 아니하고 교만의 근거로 사용되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특별히 주목해야 될 것은 '배부르며'(*, 케코레스메노이)의 완료분사와 '부요하며'(*, 에플루테사테)와 '왕 노릇하였다'(*, 에바실류사테) 등의 부정 과거 동사가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Barrett). 이러한 특징은 '이미' 성취되었음을 시사하는 헬라어 본문의 부사 '에데'(*)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Lightfoot). 그들은 완성될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보면서긴장을 가지고 죄악의 요소들과 싸워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풍요(豊饒)와 배부름 속에서 즉 영적 교만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상태에 빠졌고 현재도 계속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벌써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함께 우리도 한번 왕 노릇을 해 볼 것이 아닙니까?',공동번역). 그리고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다'는 구절은 무슨뜻인가? 이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지니게 된 영적 지식이 바울과 같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인한 것인데 이제는 그러한 사도들이 없이도 그들이 모든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Harris).

󰃨 우리가 너희와 함께...왕 노릇하기를 원하노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을 제외하고 허황된 종말론적 사고 속에서 왕노릇하려 할 것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보는 미래 지향적인 시각 속에서 함께 왕 노릇하기를 간구한다. 혹자는 하반절에 쓰인 '왕 노릇하기를'을 전반절의 부정 과거 동사 '에바실류사테'와 서로 구분하여 전반절의 왕노릇은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하반절은 장차 올세상에서 왕 노릇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려 하지만 구태여 구별지을 필요는 없는 것같다(Lenski).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그릇된 종말론적 시각을 수정하고 장차 올 세상에서왕 노릇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만 속에서 만들어 놓은 스스로의 왕 노릇을 포기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종말은 아직 완성될 수 없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유보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부요와 배부름은 자신의 곤고와 가련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교만 속에서 만들어진 거짓 왕 노릇이 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 3:17).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고후 5:7) 어떤 불의한 환경 속에서도 자만하지 않는 겸손을 찾는 일뿐이다.

 

 

 

도코 가르 호 데오스 헤마스 투스 아포스톨루스 에스카투스 아페데잌센 호스 에피다나티우스 호티 데아트론 에게네데멘 토 코스모 카이 앙겔로이스 카이 안드로포이스

 

개역개정,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새번역,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9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들같이 맨 끝자리에 두셨으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가톨릭성경,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영어NIV,9 For it seems to me that God has put us apostles on display at the end of the procession, like men condemned to die in the arena. We have been made a spectacle to the whole universe, to angels as well as to men.
영어NASB,9 For, I think, God has exhibited us apostles last of all, as men condemned to death; because we have become a spectacle to the world, both to angels and to men.
영어MSG,9  It seems to me that God has put us who bear his Message on stage in a theater in which no one wants to buy a ticket. We're something everyone stands around and stares at, like an accident in the street.
영어NRSV,9 For I think that God has exhibited us apostles as last of all, as though sentenced to death, because we have become a spectacle to the world, to angels and to mortals.
헬라어신약Stephanos,9 δοκω γαρ οτι ο θεος ημας τους αποστολους εσχατους απεδειξεν ως επιθανατιους οτι θεατρον εγενηθημεν τω κοσμω και αγγελοις και ανθρωποις
라틴어Vulgate,9 puto enim Deus nos apostolos novissimos ostendit tamquam morti destinatos quia spectaculum facti sumus mundo et angelis et hominibus
히브리어Modern,9 כי אחשב שהאלהים הציג אתנו השליחים שפלי השפלים כבני תמותה כי היינו לראוה לעולם גם למלאכים גם לבני אדם׃


 

성 경: [고전4:9]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하나님이...미말(微末)에 두셨으매 우리는...구경거리가 되었노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방종과 안일을 일깨우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이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가 하는 사실을 회상한다. '미말'(*, 에스카투스)에 두었다는 말은 다스리는 자와 거리가 먼 인생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는 비천한 자들의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그리고 '구경거리'를 뜻하는 '데아트'(*)은 '극장'과 같이 구경거리가 있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서(행19:29,31) 당시 원형 경기장(Colosseum)에서 맹수들에게 찢겨 죽어간 고난의 삶을 암시한다(행 8:1). 그들은 죽기로 작정되어 십자가 위에서 구속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시대의 고난앞에서 주의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순교의 삶을 살았다. 바울은 자신을 그 순교 대열에 내어 놓음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에게 항상 사랑과 열심을 나타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허세를 경고하고 있다.

 

 

 

헤메이스 모로이 디아 크리스톤 휘메이스 데 프로니모이 엔 크리스토 헤메이스 아스데네이스 휘메이스 데 이스퀴로이 휘메이스 엔돜소이 헤메이스 데 아티모이

 

개역개정,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새번역,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0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어리석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지만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높고 귀하나 우리는 낮고 천합니다. 
가톨릭성경,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영어NIV,10 We are fools for Christ, but you are so wise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honored, we are dishonored!
영어NASB,10 We are fools for Christ's sake, but you are prudent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distinguished, but we are without honor.
영어MSG,10  We're the Messiah's misfits. You might be sure of yourselves, but we live in the midst of frailties and uncertainties. You might be well-thought-of by others, but we're mostly kicked around.
영어NRSV,10 We are fools for the sake of Christ, but you are wise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held in honor, but we in disrepute.
헬라어신약Stephanos,10 ημεις μωροι δια χριστον υμεις δε φρονιμοι εν χριστω ημεις ασθενεις υμεις δε ισχυροι υμεις ενδοξοι ημεις δε ατιμοι
라틴어Vulgate,10 nos stulti propter Christum vos autem prudentes in Christo nos infirmi vos autem fortes vos nobiles nos autem ignobiles
히브리어Modern,10 אנחנו סכלים למען המשיח ואתם חכמים במשיח אנחנו חלשים ואתם גבורים אתם נכבדים ואנחנו נקלים׃


 

성 경: [고전4:10]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 이런 식의 반어적인 대구는 본절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미련함', '약함','비천함'을 나열함으로써 앞절에서 말한 구경거리가 구체적으로 자신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연고로' 바보가 되었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세상 지혜와 경험을 소유함으로 마치 자기들만 지혜로운 자들인 것처럼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연고로'(*, 디아 크리스톤)라는 말은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말이다.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엔 크리스토)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교제함으로'라는 뜻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스스로 세상 지혜에 대하여 무지(無知)한 자들이 되었으며(1:17,21;3:18)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비천한 자같이 매맞으며 핍박을 당하는 자(11,12절)가 되었다. 그러나 이에 반해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까닭에 지혜롭고 강하며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굉장한 역설(paradox)이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못하였으면서도(3:1,2) 서로를 판단하며 사도들 없이 왕 노릇하기를 서슴지 않는 것을 신랄하게 책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해지고, 약하고, 비천해진 것은 인간의 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고후 12:9) 또한 영광의 기준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불의한 영광과 세속적 지혜를 비교함에 있어서 자신을 과감하게 낮출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멸시하는 인간의 지혜를 고발함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아크리 테스 아르티 호라스 카이 페이노멘 카이 잎소멘 카이 귐니튜오멘 카이 콜라피조메다 카이 아스타투멘

 

개역개정,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새번역,11 우리는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말성경,11 바로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떠돌고 
가톨릭성경,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영어NIV,11 To this very hour we go hungry and thirsty, we are in rags, we are brutally treated, we are homeless.
영어NASB,11 To this present hour we are both hungry and thirsty, and are poorly clothed, and are roughly treated, and are homeless;
영어MSG,11  Much of the time we don't have enough to eat, we wear patched and threadbare clothes, we get doors slammed in our faces,
영어NRSV,11 To the present hour we are hungry and thirsty, we are poorly clothed and beaten and homeless,
헬라어신약Stephanos,11 αχρι της αρτι ωρας και πεινωμεν και διψωμεν και γυμνητευομεν και κολαφιζομεθα και αστατουμεν
라틴어Vulgate,11 usque in hanc horam et esurimus et sitimus et nudi sumus et colaphis caedimur et instabiles sumus
히브리어Modern,11 ועד השעה הזאת הננו רעבים גם צמאים וערמים ומכים באגרף ואין מנוח לנו׃



성 경: [고전4:11]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定處)가 없고 - 위에 나타난 사도들의 목마름과 헐벗음, 매맞음은 고린도 교인들의 부요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쪽은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배부름과 부요속에서 왕노릇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쪽은 복음을 인하여 고난과 굶주림에서 허덕이고 있다면 참으로 모순된 현상(결과)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으로 가르친 사도들의 형편이 이러하다면 그들의 부요와 배부름이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의 현상에서 실제적으로 겪은 고난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서술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 강조하려 한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것과는 달리 매맞는 것은 외부적인 힘에 의한 고난으로서 이러한 용어는 노예나 범죄자들에게 행하는 가혹한 행위를 뜻할 때 사용된 것이다(행 14:19). 그들은 신체적 학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난도 동시에 받았다. 유대인의 신분을 포기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다가 동족인 유대인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될 때 그가 가졌던 정신적 외로움은 컸을 것이며 특별히 '바로 이시간까지'라는 표현 속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사도들의 고난은 그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이방인인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까지 외면을 당하므로 그의 고통이 더욱 심했음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그들의 자기 도취와 어리석은 영적 교만을 책망하고 있다(고후11:26).

 

 

 

카이 코피오멘 에르가조메노이 타이스 이디아이스 케르신 로이도루메노이 율로구멘 디오코메노이 아네코메다

 

개역개정,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새번역,12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우리말성경,12 수고하며 우리 손으로 일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오히려 축복해 주고 핍박을 당하면 참고 
가톨릭성경,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영어NIV,12 We work hard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curs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it;
영어NASB,12 and we toil, working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revil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영어MSG,12  and we pick up odd jobs anywhere we can to eke out a living. When they call us names, we say, "God bless you."
영어NRSV,12 and we grow weary from the work of our own hands. When reviled, we bless; when persecuted, we endure;
헬라어신약Stephanos,12 και κοπιωμεν εργαζομενοι ταις ιδιαις χερσιν λοιδορουμενοι ευλογουμεν διωκομενοι ανεχομεθα
라틴어Vulgate,12 et laboramus operantes manibus nostris maledicimur et benedicimus persecutionem patimur et sustinemus
히브리어Modern,12 ויגעים אנחנו בעמל ידינו קללונו ונברך חרפונו ונסבל׃


 

성 경: [고전4:12]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 '수고하여'(*, 코피오멘)라는 말은 바울이 설교하거나 교회를 관리하는 일들을 시사할 때 자주 사용되었던 단어이며(15:10;16:16;갈 4:11;골 1:29;살전 5:12) '일을 하며'를 뜻하는 분사 '에르가조메노이'(*)는 육체적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들은 서로 중복되어 있으므로 노동을 강조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본절에서는 교회를 돌보는 일과 육체적 노동을 각기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교회를 돌보는 일에도 열심을 다했으며 자신의 생계를 위한 육체적 노동에도 열심을 다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에 의하여 개종한 사람들에게 생계를 의존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직업을 가짐으로써 생활을 유지해 나갔다(행 18:3;살후 3:9). 즉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쓸 것을 벌어 가면서 전도를 하였다(살전 2:9)는 뜻으로 손수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자신의 생활비와 전도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充當)했음을 가리킨다.

 

 

 

뒤스페무메노이 파라칼루멘 호스 페리카다르마타 투 코스무 에게네데멘 판톤 페맆세마 헤오스 아르티

 

개역개정,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새번역,13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13 누가 우리를 비웃고 헐뜯으면 선한 말로 대답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물의 찌꺼기처럼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영어NIV,13 when we are slandered, we answer kindly. Up to this moment we have become the scum of the earth, the refuse of the world.
영어NASB,13 when we are slandered, we try to conciliate; we have become as the scum of the world, the dregs of all things, even until now.
영어MSG,13  When they spread rumors about us, we put in a good word for them. We're treated like garbage, potato peelings from the culture's kitchen. And it's not getting any better.
영어NRSV,13 when slandered, we speak kindly. We have become like the rubbish of the world, the dregs of all things, to this very day.
헬라어신약Stephanos,13 βλασφημουμενοι παρακαλουμεν ως περικαθαρματα του κοσμου εγενηθημεν παντων περιψημα εως αρτι
라틴어Vulgate,13 blasphemamur et obsecramus tamquam purgamenta huius mundi facti sumus omnium peripsima usque adhuc
히브리어Modern,13 גדפו אתנו ותנחנן ונהי כגללי העולם ולסחי לכלם עד עתה׃


 

성 경: [고전4:13]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교만함에 대한 책망]

󰃨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 본문은 앞에서 지금까지 서술해온 고난의 역사를 결론적으로 정리한다. 그들은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사람이 됨으로써 십자가의 충실한 종이 될수 있었다. 혹자들은 '페리카다르마타'(*, '더러운 것')라는 단어 속에서 희생의 개념을 찾으려 한다(L. Morris, C.K.Barrett).다시 말해서 '페리카다르마타'는 청소를 깨끗이 한 후에 버리게 되는 오물을 의미하는데 바울은 자신이 바로 이 오물이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을 깨끗게 하는 희생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 단어는 종교적 정화를 나타내는 속죄 양의 개념을 선명하게 나타내지는 않지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 했다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한다. 그리고 '만물의 찌끼'에서 '찌끼'(*, 페리프세마)란 말은 물로 닦아내고 문지르면 없어지는 옷이나, 물건, 사람몸의 때(dirt)를 가리킨다. 따라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한 사도들의 고난을 언급하면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얼마나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모욕하며 배척했는가 하는 것을 정확히 나타내 준다. 그들은 이 지상의 모든 것들로 부터 소외된 찌꺼기와 폐물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소명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골 1:24).

 

 

 

우크 엔트레폰 휘마스 그라포 타우타 알 호스 테크나 무 아가페타 누데토

 

개역개정,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새번역,14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4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영어NIV,14 I am not writing this to shame you, but to warn you, as my dear children.
영어NASB,14 I do not write these things to shame you, but to admonish you as my beloved children.
영어MSG,14  I'm not writing all this as a neighborhood scold just to make you feel rotten. I'm writing as a father to you, my children. I love you and want you to grow up well, not spoiled.
영어NRSV,14 I am not writing this to make you ashamed, but to admonish you as my beloved children.
헬라어신약Stephanos,14 ουκ εντρεπων υμας γραφω ταυτα αλλ ως τεκνα μου αγαπητα νουθετω
라틴어Vulgate,14 non ut confundam vos haec scribo sed ut filios meos carissimos moneo
히브리어Modern,14 ולא לביש אתכם אני כתב הדברים האלה כי אם מזהיר אתכם כבני האהובים׃


 

성 경: [고전4:14]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 상반부에 나타난 반어적인 풍자와 비유는 사라지고 부드럽고 친근감(親近感) 있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바울의 엄격하고 딱딱한 어조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극한 분노와 책망 속에서도 사랑으로 권면하고자 하는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한편 '부끄럽게 하려고'(*, 엔트레폰)란 표현은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었는데(6:5;15:34) 그곳에서는 오히려 부끄럽게 하려고 경고의 말들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절의 문맥은 그것과 다른 의도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격한 분노 속에서도 아버지의 따뜻함과 같은 위로를 나타내려 하였음을 바로 이어지는 후반절에서 명백히 밝히기 때문이다.

󰃨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 여기서 바울의 의도는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녀에 대한 사랑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랑하는'이라는 말과 '권하려 하는'이라는 말이 결코 그들의 죄악마저도 덮어두고자 하는 의도로 쓰인 것은 아니다. '권한다'는 것은 '권면한다'는 것과 같은 보다 부드러운 해석으로 번역될 수도 있으나 아버지의 훈계와 같은(엡 6:4) 보다 준엄하고 권위적인 훈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렇듯 '사랑'과 '훈계'를 동시에 나타내고자 하여 사용한 부자(父子) 개념은 다음 절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에안 가르 뮈리우스 파이다고구스 에케테 엔 크리스토 알 우 폴루스 파테라스 엔 가르 크리스토 예수 디아 투 유앙겔리우 에고 휘마스 에겐네사

 

개역개정,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새번역,15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우리말성경,15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1만 명의 선생이 있더라도 정작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가톨릭성경,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영어NIV,15 Even though you have ten thousand guardians in Christ, you do not have many fathers, for in Christ Jesus I became your father through the gospel.
영어NASB,15 For if you were to have countless tutors in Christ, yet you would not have many fathers; for in Christ Jesus I became your father through the gospel.
영어MSG,15  There are a lot of people around who can't wait to tell you what you've done wrong, but there aren't many fathers willing to take the time and effort to help you grow up. It was as Jesus helped me proclaim God's Message to you that I became your father.
영어NRSV,15 For though you might have ten thousand guardians in Christ, you do not have many fathers. Indeed, in Christ Jesus I became your father through the gospel.
헬라어신약Stephanos,15 εαν γαρ μυριους παιδαγωγους εχητε εν χριστω αλλ ου πολλους πατερας εν γαρ χριστω ιησου δια του ευαγγελιου εγω υμας εγεννησα
라틴어Vulgate,15 nam si decem milia pedagogorum habeatis in Christo sed non multos patres nam in Christo Iesu per evangelium ego vos genui
히브리어Modern,15 כי גם אם היו לכם רבבות אמנים במשיח אין לכם אבות רבים כי אנכי הולדתי אתכם בישוע המשיח על ידי הבשורה׃


 

성 경: [고전4:15]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 '스승'으로 번역된 '파이다고구스'(*)는 엄격하게 말해서 스승이라고 할 수는 없는 지위이다. 이들은 아버지의 지도에 따라 아들을 가르치며 아들이 아들로서의 예의 범절을 지킬 수 있도록 돌보는 노예들이다(slave-guide). 갈라디아서에서는 몽학 선생으로 번역되었는데(갈 3:24) 이들은 아들을 학교에 데리고 가는 수행원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다. 보편적으로 '파이다고구스'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는데 (1)하나는 '가르친다'는 지식적 개념이며 (2) 또 하나는 '지도한다'는 지도권의 개념이다. 로버트슨(A.T.Robrt-son)은 전자의 개념을 강조하여 가르치는 가정 교사라는 긍정적 개념으로 이해하며, 바레트(Barrett)는 후자의 개념을 강조하여 지도권을 행사하는 하나의 집단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본절에서는 가르치는 것과 지도권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해석상에 무리는 따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바울의 의도는 단지 '일만'(*, 뮈리우스)이라는 풍자적 수사법을 사용하여 스스로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거짓 교사들의 신분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J. Calvin). 그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아버지 앞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하게 된 많은 이방인들에게 영적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녀들에게 생계비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12절) 그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마다 그들을 향한 지난날의 해산의 고통을 상기시키면서(10-13절;갈 4:19) 돌아올 것을 강청한다. 바울은 모든 복음의 지도자들에게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만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다른 지도자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고린도 교회 설립자인 자신의 위치와 권리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1) 본능적인사랑을 발휘하는 아버지의 속성을 나타내려 하였다. 즉 그들에 대한 자신의 책망및 권면이 진실된 것이며 책망의 동기 또한 부성애적(父性愛的) 사랑에서 기인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2)다른 복음 지도자들보다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보다 친숙한 관계로 묘사한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바울은 자신이 그들을 낳았음에고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복음을 통하여'라는 강조점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아비'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으로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계속해서 그들을 젖과 밥으로(3:2) 양육하는 영적 아버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의 고린도 교회에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교인들을 권면하며 훈계하고 의로 양육하려 한 자들보다는 지도자라는 직책(職責)만을 얻기에 급급한 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직접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고(행 18:1-11), 그 교인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한 참된 영적 아비였다(1:3;3:2).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어그러진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1:11, 12) 심한 책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라칼로 운 휘마스 미메타이 무 기네스데

 

개역개정,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새번역,16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말성경,16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따라 행하십시오. 
가톨릭성경,16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영어NIV,16 Therefore I urge you to imitate me.
영어NASB,16 I exhort you therefore, be imitators of me.
영어MSG,16  I'm not, you know, asking you to do anything I'm not already doing myself.
영어NRSV,16 I appeal to you, then, be imitators of me.
헬라어신약Stephanos,16 παρακαλω ουν υμας μιμηται μου γινεσθε
라틴어Vulgate,16 rogo ergo vos imitatores mei estote
히브리어Modern,16 על כן אני מבקש מכם ללכת בעקבותי׃


 

성 경: [고전4:16]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바울은 자주 이와 갈은 성격의 말들을 반복하고 있다(갈 4:12;빌 3:17;살전 1:6;2:14;살후 3:7,9).이것은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아버지의 심정일 수도 있으나 결코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를 따르는 자들이 개인적으로 사도 바울 주변에 붙어 다니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면 그것은 본절의 의도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L. Morris). 바울이 본받으라고 주장한 본받음의 내용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C.K. Barrett). 그러나 설령 바울이 자신의 삶을 본받으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않는 것은 복음을 드러내고자 일평생 고난속에서 살았던 그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통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11:1). 따라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자 되라'는 바울의 이 선언은 단순한 자신의 추종자나 바울 당파의 일원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1)바울이 본을 보인 사랑의 실천과 (2)그의 겸손과 고난에의 동참, (3)지적 교만과 불손한 태도를 버리고 신앙안에서 화합(和合)하는 것, (4)결론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

 

 

 

디아 투토 에펨프사 휘민 티모데온 호스 에스틴 무 테크논 아가페톤 카이 피스톤 엔 퀴리오 호스 휘마스 아남네세이 타스 호두스 무 타스 엔 크리스토 예수 카도스 판타쿠 엔 파세 엨클레시아 디다스코

 

개역개정,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새번역,17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 ㉡또는 '보냅니다'
우리말성경,17 이를 위해 나는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그가 여러분에게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내 생활방식을 생각나게 해 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7 이러한 연유로 내가 티모테오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입니다. 내가 어디에 가든지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야 하는 나의 원칙들을 그가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영어NIV,17 For this reason I am sending to you Timothy, my son whom I love, who is faithful in the Lord. He will remind you of my way of life in Christ Jesus, which agrees with what I teach everywhere in every church.
영어NASB,17 For this reason I have sent to you Timothy, who is my beloved and faithful child in the Lord, and he will remind you of my ways which are in Christ, just as I teach everywhere in every church.
영어MSG,17  This is why I sent Timothy to you earlier. He is also my dear son, and true to the Master. He will refresh your memory on the instructions I regularly give all the churches on the way of Christ.
영어NRSV,17 For this reason I sent you Timothy, who is my beloved and faithful child in the Lord, to remind you of my ways in Christ Jesus, as I teach them everywhere in every church.
헬라어신약Stephanos,17 δια τουτο επεμψα υμιν τιμοθεον ος εστιν τεκνον μου αγαπητον και πιστον εν κυριω ος υμας αναμνησει τας οδους μου τας εν χριστω καθως πανταχου εν παση εκκλησια διδασκω
라틴어Vulgate,17 ideo misi ad vos Timotheum qui est filius meus carissimus et fidelis in Domino qui vos commonefaciat vias meas quae sunt in Christo sicut ubique in omni ecclesia doceo
히브리어Modern,17 ובעבור זאת שלחתי אליכם את טימותיוס בני האהוב והנאמן באדון והוא יזכיר לכם את דרכי במשיח כאשר מלמד אנכי בכל מקום בכל קהלה וקהלה׃


 

성 경: [고전4:17]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 바울이 디모데를 처음 만난 것은 실라와 함께 제2차전도 여행을 하던 중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파할때이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서 그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은 충실한 일꾼이었으며 바울의 사역 후반기에는 마가 이상으로 바울의 사역에 참여하였던 동역자다.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을 듣고 디모데를 파송한다. 바울이 지금 디모데와 동행하고 있지 않음에도(디모데는 실라와 함께 마게도냐에서 하역 중)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 디모데를 파송하는 것은 그만큼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신임이 큰 것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본절의 파송은16:10, 11의 기록과 비교해 볼때 약간의 난점이 제기된다. 본절의 '보내었노니'(*, 에펨프사)는 부정 과거 시제로서 과거의 행동을 가리키고 있으나 16:10,11은 미래적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레트(Barrett)는 서신상에 쓰여진 부정 과거는 때로 현재 시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디모데는 현재 파송되지만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 보다는 늦게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디모데가 다른 목적지를 경유하여 고린도에 도착하도록 명령된 것으로 이해한다. 한편 렌스키(Lenski)는 편지는 배편으로 보내지고 디모데는 육로를 따라 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편지보다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파송하는 것은 그 만큼 (1)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을 반영하며(2)그의 표현대로 '신실한 아들' 디모데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확신했다는 것을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디모데는 이편지를 고린도에 보낼 즈음에 마게도냐 지방을 통해 고린도로 향하고 있는 도중이었음을 알 수있다(행 19:22).

󰃨 각 교회에서 기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문맥에서 볼때 각처에서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역적인 모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를 특수한 임무로 파송(派送)함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특수한 처방법을 명령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지난 날의 가르침의 내용을 상기시키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의 잊어버린 기억들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누렸던 복음의 능력들을 상기시키려고 한다(1:18). 왜냐하면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는 것 중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딤후 3:16, 17).

 

 

 

호스 메 에르코메누 데 무 프로스 휘마스 에퓌시오데산 티네스

 

개역개정,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새번역,18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교만해진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8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교만해졌습니다. 
가톨릭성경,18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가지 않을 것으로 여겨 우쭐거리고 있습니다.
영어NIV,18 Some of you have become arrogant, as if I were not coming to you.
영어NASB,18 Now some have become arrogant, as though I were not coming to you.
영어MSG,18  I know there are some among you who are so full of themselves they never listen to anyone, let alone me. They don't think I'll ever show up in person.
영어NRSV,18 But some of you, thinking that I am not coming to you, have become arrogant.
헬라어신약Stephanos,18 ως μη ερχομενου δε μου προς υμας εφυσιωθησαν τινες
라틴어Vulgate,18 tamquam non venturus sim ad vos sic inflati sunt quidam
히브리어Modern,18 הן יש מתנשאים כאלו לא אבוא אליכם׃


 

성 경: [고전4:18]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특징이다.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시기인 A.D. 51년 경까지 고린도에 머물렀다고 추정해 볼 때 제 3차 여행 중에 서신을 쓰고 있는 이 시점은(A.D. 53-58) 결코 오랜 시간이 지난 때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불과 몇년 사이에 이토록 교만한 자들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들 중에 일부는 교인들의 방종을 부추기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면서도 바울이 차지했던 영적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울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대하며 바울이 이뤄놓은귀한 설교 활동의 열매를 훔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 하며(9:17) '그의 몸은 약하고 그의 말은 시원치 않다'(고후10:10)고 조소(嘲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 내의 거짓 교사들이었을 것이다.

 

 

 

일류소마이 데 타케오스 프로스 휘마스 에안 호 퀴리오스 델레세 카이 그노소마이 우 톤 로곤 톤 페퓌시오메논 알라 텐 뒤나민

 

개역개정,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새번역,19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속히 여러분에게로 가서, 그 교만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말성경,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여러분에게 속히 가서 그 교만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가톨릭성경,19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는 여러분에게 곧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쭐거리는 이들의 말이 아니라 힘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어NIV,19 But I will come to you very soon, if the Lord is willing, and then I will find out not only how these arrogant people are talking, but what power they have.
영어NASB,19 But I will come to you soon, if the Lord wills, and I shall find out, not the words of those who are arrogant, but their power.
영어MSG,19  But I'll be there sooner than you think, God willing, and then we'll see if they're full of anything but hot air.
영어NRSV,19 But I will come to you soon, if the Lord wills, and I will find out not the talk of these arrogant people but their power.
헬라어신약Stephanos,19 ελευσομαι δε ταχεως προς υμας εαν ο κυριος θεληση και γνωσομαι ου τον λογον των πεφυσιωμενων αλλα την δυναμιν
라틴어Vulgate,19 veniam autem cito ad vos si Dominus voluerit et cognoscam non sermonem eorum qui inflati sunt sed virtutem
히브리어Modern,19 אבל בוא אבוא אליכם בזמן קרוב אם ירצה האדון ואדעה לא את דברי המתרוממים כי אם את גבורתם׃


 

성 경: [고전4:19]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주께서 허락하시면...속히 나아가서 - '주께서 허락하시면'(*, 에안 호 퀴리오스 델레세)이란 말은 조건을 전제로 한 말로서 인간적인 인정과 감정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뜻에 자신의 전도 계획을 맡기는 참된 주의 종의 태도를 보여준다. 즉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계획하고 애쓰는 바울 일지라도 그의 계획과 앞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로서의 바울의 모범을 다시 발견한다. 그런데 16:8에서 바울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다고 말하나 본절에서는 '속히 가기를 원한다'고 하여 약간의 모순이 발생하는 듯 보인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16:8과 본절을 모순된 것으로 생각하여 이들이 서로 다른 서신서 들에 의하여 재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J. Weiss, J. Hering). 그러나 우리는 바울 당시의 여행 문화가 오늘날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역이나 터미날에 나가면 당장 운송 수단을 만날수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여행을 위하여 오랜 기간 준비해야 하며 때로는 항로를 이용하기 위하여 몇달 몇일씩 항구에 대기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필기 도구나 타자지가 없는 환경 속에서 이 많은 분량의 편지를 기록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4장과 16장을 집필하는 사이에 대두될 수 있는 시간의 경과와 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C.K.Barrett). 바울은 본절에서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가기를 소원하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그들이 더이상 실수하지 않기를 경고하고 있으며 16장에서는 구체적인 시간, 곧 오순절 이후라는 계획(計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타났듯이 바울의 여행 계획에 모순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16:8에서 바울이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도 에베소에서 전도 활동을 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행 14:27;고후 2:12;골 4:3). 그러므로 바울의 이 같은 표현은 자신의 에베소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특별히 효과적인 복음 전파의 기회가 자기에게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에베소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허락하시면' 속히 너희에게 가겠다는 간절한 심정을 지니고 있다.

 

 

 

우 가르 엔 로고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알 엔 뒤나메이

 

개역개정,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새번역,20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말성경,20 이는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0 하느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0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talk but of power.
영어NASB,20 For the kingdom of God does not consist in words, but in power.
영어MSG,20  God's Way is not a matter of mere talk; it's an empowered life.
영어NRSV,20 For the kingdom of God depends not on talk but on power.
헬라어신약Stephanos,20 ου γαρ εν λογω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αλλ εν δυναμει
라틴어Vulgate,20 non enim in sermone est regnum Dei sed in virtute
히브리어Modern,20 כי מלכות האלהים איננה בדבר שפתים כי אם בגבורה׃


 

성 경: [고전4:20]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이 있음이라 -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교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서 공관복음서에서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나 바울서신 가운데서는 본서에서 제일 많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그리스도의성육신과 재림으로 성취될 메시야 왕국을 의미한다(막 1:15). 즉 대체적으로 다음과같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1)이 세상 끝날에 도래하게 될(마19:28; 25:31) 하나님의 신천 신지(계 21장)이다. (2)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 이미 성도들간에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눅 17:21),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현재 영적으로 지배하시며 그들의 삶 속에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두번째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본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도입하여 저들을 책망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1:5,6과 본장8절이 시사한 대로 모든 구변과 지식에 풍족한 수준에 있었으나 생활의 실제적인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과 거리가 먼 시기(猜忌)와 심한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들의 새로운 삶(고후 5:17)과 그 능력(요 3:3-8)을 암시한 것이다. 즉 고린도 교인들의 삶의 공동체 곧 교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과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말'(*, 로고스)에있지 아니하고 에서 '말'은 '능력'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어 말에 상응한 내용이 따르지 않는 단순히 '헛된말'이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한편 '능력'은 가시적인 것으로서 예수께서 그의 왕국을 선포할 때에 나타났던 기적들(눅 11:20)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본절에서는 인간의 공허한 웅변과 대조를 이루는 능력,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변화된 품성, 새 사람으로서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린 의와 거룩함과 화평을 이루는 실제적인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보다 타당할 것 같다(L. Morris, J. Calvin). 따라서 바울은 인격과 삶의 변화, 즉 행동으로 나타나는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헛된 말과 지식 즉 영적 교만 속의 열매없는 신앙 생활을 고발하고 있다.

 

 

 

 

티 델레테 엔 랍도 엘도 프로스 휘마스 에 엔 아가페 프뉴마티 테 프라우테토스

 

개역개정,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새번역,21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채찍을 들고 여러분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우리말성경,21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매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가면 좋겠습니까?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가면 좋겠습니까? 
가톨릭성경,21 여러분은 어느 것을 원합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매를 들고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까?
영어NIV,21 What do you prefer? Shall I come to you with a whip, or in love and with a gentle spirit?
영어NASB,21 What do you desire? Shall I come to you with a rod or with love and a spirit of gentleness?
영어MSG,21  So how should I prepare to come to you? As a severe disciplinarian who makes you toe the mark? Or as a good friend and counselor who wants to share heart-to-heart with you? You decide.
영어NRSV,21 What would you prefer? Am I to come to you with a stick, or with love in a spirit of gentleness?
헬라어신약Stephanos,21 τι θελετε εν ραβδω ελθω προς υμας η εν αγαπη πνευματι τε πραοτητος
라틴어Vulgate,21 quid vultis in virga veniam ad vos an in caritate et spiritu mansuetudinis
히브리어Modern,21 ומה תחפצו הבוא אבוא אליכם בשבט או באהבה וברוח ענוה׃

 

성 경: [고전4:21]

주제1: [그리스도의 사도가 주는 교훈]

주제2: [자비로운 권면]

󰃨 매...사랑...온유한 마음 - 이것들은 모두 하나의 생각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바울은 14절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과 훈계하는 것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 바 있다. 본절에서도 매와 사랑을 대치시키지 않는다. 만약 바울이 매를 가지고 나아갔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에 근거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아픈 채찍으로 훈계하든지 사랑과 온유한 마음로 격려하든지 간에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사설(邪說)과 교만으로부터 해방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바울이 매를 택하느냐, 사랑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편 '매'를 가리키는 '라브도스'(*)는 공관복음서에서 전도자들이 지니는 지팡이를 의미하기도 하였으며(마 10:10;막 6:8) 때로는 지배자의 상징으로서 홀을 의미하기도 하였다(히11:21). 그 외에 '목자의 지팡이' 또는 '스승의 매'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아버지가 자녀를 훈계하는(14절)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Le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