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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고린도전서 11장 전체 원어 원문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미메타이 무 기네스데 카도스 카고 크리스투

 

개역개정,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새번역,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말성경,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가톨릭성경,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영어NIV,1 Follow my example, as I follow the example of Christ.
영어NASB,1 Be imitators of me, just as I also am of Christ.
영어MSG,1  It pleases me that you continue to remember and honor me by keeping up the traditions of the faith I taught you. All actual authority stems from Christ.
영어NRSV,1 Be imitators of me, as I am of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1 μιμηται μου γινεσθε καθως καγω χριστου
라틴어Vulgate,1 imitatores mei estote sicut et ego Christi
히브리어Modern,1 לכו בעקבותי כאשר גם אני הלך בעקבות המשיח׃
 
성 경: [고전11:1]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본절을 10장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1) 2절에서부터 새로운 주제 즉 교회의 예배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2) 문맥상 본절은 10:3과 상관성(相關性)을 갖는다. 바울은 10장에서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와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으며 그 권면의 모델로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즉 바울은 8장의 경고와 권면에 대한 결론으로 본절에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본받는 그리스도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모델로서(Godet) 그분의 삶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이었다(빌 2:4, 5). 그러나 그리스도나 바울의 삶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이타적인 삶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이타적인 삶이었다(10:33).

 

 

 

에파이노 데 휘마스 호티 판타 무 멤네스데 카이 카도스 파레도카 휘민 타스 파라도세이스 카테케테

 

개역개정,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새번역,2 여러분이 나를 모든 면으로 기억하며,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우리말성경,2 여러분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굳게 지키므로 내가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가톨릭성경,2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일에서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전한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 I praise you for remembering me in everything and for holding to the teachings, just as I passed them on to you.
영어NASB,2 Now I praise you because you remember me in everything, and hold firmly to the traditions, just as I delivered them to you.
영어MSG,2  (SEE 11:1)
영어NRSV,2 I commend you because you remember me in everything and maintain the traditions just as I handed them on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 επαινω δε υμας αδελφοι οτι παντα μου μεμνησθε και καθως παρεδωκα υμιν τας παραδοσεις κατεχετε
라틴어Vulgate,2 laudo autem vos fratres quod omnia mei memores estis et sicut tradidi vobis praecepta mea tenetis
히브리어Modern,2 ועל זאת אני משבח אתכם אחי כי זכרתם אתי בכל לשמר את הקבלות כאשר מסרתי לכם׃
 

성 경: [고전11:2]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개역성경 본문에는 생략되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새로운 주제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접속사인 '이제'(*, 데)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에서부터 새로운 주제를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Godet, Meyer).

󰃨 유전 - '유전'(*, 파라도세이스)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가르침으로서, 관습과 교훈은 물론 교리를 포함한다(갈 1:14; 골2:8; 살후 2:15;3:6). 이것은 바울 자신의 교훈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진 복음과 같은 것이다(Grosheide).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유전'은 교리보다는 구전(口傳)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준 교회의 관습을 의미한다(Godet, Meyer). 왜냐하면 이후의 본문들이 여자가 공예배 때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 너희를 칭찬하노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경고와 질책의 말을 하기에 앞서 먼저 그들이 바울의 가르침과 교훈을 잘 지킨 데 대해 칭찬의 말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에 깊은 상처없이 자신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일도록 하였다. 이것은 바울서신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를 증거하며 아울러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세심한 배려를 잘 보여준다.

 

 

 

델로 데 휘마스 에이데나이 호티 판토스 안드로스 헤 케팔레 호 크리스토스 에스틴 케팔레 데 귀나이코스 호 아네르 케팔레 데 투 크리스투 호 데오스

 

개역개정,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새번역,3 그런데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 ㉠그, '아내'로 번역할 수 있음 ㉡그, '남편'으로 번역할 수 있음
우리말성경,3 이제 나는 여러분이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가톨릭성경,3 그런데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영어NIV,3 Now I want you to realize that the head of every man is Christ, and the head of the woman is man, and the head of Christ is God.
영어NASB,3 But I want you to understand that Christ is the head of every man, and the man is the head of a woman, and God is the head of Christ.
영어MSG,3  In a marriage relationship, there is authority from Christ to husband, and from husband to wife. The authority of Christ is the authority of God.
영어NRSV,3 But I want you to understand that Christ is the head of every man, and the husband is the head of his wife, and God is the head of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3 θελω δε υμας ειδεναι οτι παντος ανδρος η κεφαλη ο χριστος εστιν κεφαλη δε γυναικος ο ανηρ κεφαλη δε χριστου ο θεος
라틴어Vulgate,3 volo autem vos scire quod omnis viri caput Christus est caput autem mulieris vir caput vero Christi Deus
히브리어Modern,3 אך חפץ אנכי שתדעו כי ראש כל איש המשיח וראש האשה האיש וראש המשיח הוא האלהים׃
 

성 경: [고전11:3]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본절은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바울이 전한 유전을 지킨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비판받을 점이 있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공예배 때에 남자와 동등하게 수건을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할지라도 이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창조 원리를 통해서 논증한다.

󰃨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바울은 교회에서 공예배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그 논증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세 단계의 질서이다. 본절에서 '머리'(*, 케팔레)는 '권위'를 의미하며, '유기체적인 복종'을 암시한다(Edwards, Morris, Meyer). 그리고 각 질서는 연합(union)에 의한 관계성을 나타내는데, 그 관계성은 교회의 질서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첫째 질서는 그리스도와 남자의 관계인데, 그리스도는 믿음을 통한 연합에 의해서 남자의 머리가 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그리스도와 남자의 연합 관계의 근거이다. 둘째 질서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인데, 남자는 결혼이라는 연합을 통해서 여자의 머리가 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 사상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즉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랑과 복종'의 관계로 설명되고 있다(엡 5:22;골 3:18, 19).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 남편과 아내가 동등하며, 아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속이 남편과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차이가 없다 할지라도(갈 3:28), 지상의 다른 관계들 즉주인과 종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섭리 아래에서도 여자의 복종의 위치는 지속된다(Godet, Meyer).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존재 자체의 우열이 아니라 사랑과 화합과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 질서에 있어서 남녀 관계 (창 3:16)는 지금도 존속(存續)하나 두 개체는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인격체이다. 그러나 남녀간의 성(性)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눅20:34-36). 셋째 질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인데, 하나님은 자신의 부성(Fatherhood)과 그리스도의 아들됨(Sonship)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신인(神人)이며 중보자(요 14:28;고전 3:23;15:24ff.)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의 머리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셨다(요 5:19;고전3:23;15:28). 특히 본절에서는 세 가지 질서 중 그리스도와 남자와의 관계가 제일 먼저 나타난다. 이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가능케 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서로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요체가 되기 때문이다.

 

 

 

파스 아네르 프로슈코메노스 에 프로페튜온 카타 케팔레스 에콘 카타이스퀴네이 텐 케팔렌 아우투

 

개역개정,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새번역,4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 ㉢또는 "4.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고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5.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는 '머리털을 잘라 버린 여자'와 같습니다. 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는데, 그러나 여자로서는 머리털을 잘라 버리거나 밀어 버린다고 하는 것은 수치이므로, 머리를 다시 길러야 합니다.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길게 길러서는 안 됩니다……" ㉣곧 '그리스도를' ㉤또는 '욕되게'
우리말성경,4 누구든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4 어떠한 남자든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영어NIV,4 Every man who prays or prophesies with his head covered dishonors his head.
영어NASB,4 Every man who has something on his head while praying or prophesying, disgraces his head.
영어MSG,4  Any man who speaks with God or about God in a way that shows a lack of respect for the authority of Christ, dishonors Christ.
영어NRSV,4 Any man who prays or prophesies with something on his head disgraces his head,
헬라어신약Stephanos,4 πας ανηρ προσευχομενος η προφητευων κατα κεφαλης εχων καταισχυνει την κεφαλη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4 omnis vir orans aut prophetans velato capite deturpat caput suum
히브리어Modern,4 כל איש אשר יתפלל או יתנבא וראשו מכסה מבזה הוא את ראשו׃



성 경: [고전11:4]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 - 본절에 나타난 기도나 예언이 행해지는 장소가 어디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혹자는 가정 예배라고 하며(Bachmann, Hofmann), 혹자는 교회의 공적인 예배라고도 한다(Grosheide, Meyer).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는 그 견해의 근거로서 8:1-11:1에서 가정 문제를 다루었으며 별다른 주제의 전환이없으므로 2절 이후에도 가정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미루어 기도나 예언도 가정 예배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2절에서 살핀 바와 같이 '데'(*, '이제')가 새로운 주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또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기도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본절의 기도와 예언은 전체 교회를 위한 활동으로(12:10;14:3, 4,22) 공적인 예배에서 행해진 것이다. 더욱이 5절 이하에 나타난 본장 내용에서도 공적인 예배를 전제로 바울의 권면이 전개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의 공간적 배경은 공적인 교회의 예배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기도와 예언'은 본서 14장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거기서 기도는 방언을 말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14:14-17).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서 말하는 기도를 방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Baur,Edwards).

󰃨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 본절에서 '머리'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신체적인 머리'로 해석하는 것이다(Erasmus, Beza, Bengel, Meyer). 본절의 앞에서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라고 말함으로 신체적인 머리를 말하며, 5절에서도 같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그리스도'로 해석한다(Hofmann, Maier, Osiander, Ruckert). 3절에서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한 것은 본절에서 머리를 그리스도로 해석하기 위한 선언이었다고 본다. 이 두 견해는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머리에 수건을 쓰는 상징을 헬라 관습처럼 이중적인 알레고리(allegory)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교회질서 속에서 남자에게 여자에 대한 주권을 부여했는데, 만약 남자가 여자에 대한 순종의 상징인 수건을 머리에 쓴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체적인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머리를 부끄럽게 한 남자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주권을 부여한 영적인 머리 즉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파사 데 귀네 프로슈코메네 에 프로페튜우사 아카타칼륖토 테 케팔레 타카이스퀴네이 텐 케팔렌 아우테스 헨 가르 에스틴 카이 토 아우토 테 엨쉬레메네

 

개역개정,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새번역,5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를 밀어 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 ㉥곧 '남편을' ㉦또는 '욕되게'
우리말성경,5 또한 누구든지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머리를 민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5 그러나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는 머리가 깎인 여자와 똑같습니다.
영어NIV,5 And every woman who prays or prophesies with her head uncovered dishonors her head--it is just as though her head were shaved.
영어NASB,5 But every woman who has her head uncovered while praying or prophesying, disgraces her head; for she is one and the same with her whose head is shaved.
영어MSG,5  In the same way, a wife who speaks with God in a way that shows a lack of respect for the authority of her husband, dishonors her husband.
영어NRSV,5 but any woman who prays or prophesies with her head unveiled disgraces her head--it is one and the same thing as having her head shaved.
헬라어신약Stephanos,5 πασα δε γυνη προσευχομενη η προφητευουσα ακατακαλυπτω τη κεφαλη καταισχυνει την κεφαλην εαυτης εν γαρ εστιν και το αυτο τη εξυρημενη
라틴어Vulgate,5 omnis autem mulier orans aut prophetans non velato capite deturpat caput suum unum est enim atque si decalvetur
히브리어Modern,5 וכל אשה אשר תתפלל או תתנבא וראשה פרוע מבזה היא את ראשה יען בזה היא כמו מגלחה׃


 

성 경: [고전11:5]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무릇 여자로서...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여자가 공예배시에 수건을 써야 하는 이유를 당시 관습을 통해서 논증하고 있다. 여자가 공예배에서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면 머리를 민 것과 같다는 것은 당시 헬라 여인들이나 유대 여인들에게 있어서 긴 머리는 여성다움을 표현하는 장식과 같은 것이었으며 짧은 머리는 매춘부와 같은 부도덕한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Grosheide,Meyer). 여기서 긴 머리는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과 동일시된다고 본다(15절).

 

 

 

에이 가르 우 카타칼륖테타이 귀네 카이 케이라스도 에이 데 아이스크론 귀나이키 토 케이라스다이 에 크쉬라스다이 카타칼륖테스도

 

개역개정,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새번역,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우리말성경,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으십시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 
가톨릭성경,6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십시오. 머리를 밀거나 깎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
영어NIV,6 If a woman does not cover her head, she should have her hair cut off; and if it is a disgrace for a woman to have her hair cut or shaved off, she should cover her head.
영어NASB,6 For if a woman does not cover her head, let her also have her hair cut off; but if it is disgraceful for a woman to have her hair cut off or her head shaved, let her cover her head.
영어MSG,6  Worse, she dishonors herself--an ugly sight, like a woman with her head shaved. This is basically the origin of these customs we have of women wearing head coverings in worship, while men take their hats off. By these symbolic acts,
영어NRSV,6 For if a woman will not veil herself, then she should cut off her hair; but if it is disgraceful for a woman to have her hair cut off or to be shaved, she should wear a veil.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ι γαρ ου κατακαλυπτεται γυνη και κειρασθω ει δε αισχρον γυναικι το κειρασθαι η ξυρασθαι κατακαλυπτεσθω
라틴어Vulgate,6 nam si non velatur mulier et tondeatur si vero turpe est mulieri tonderi aut decalvari velet caput suum
히브리어Modern,6 כי האשה אם לא תתכסה גם תתגלח ואם בזיון הוא לאשה להכסם או להתגלח תתכסה׃


 

성 경: [고전11:6]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만일 여자가...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 개역성경 본문에서는 '왜냐하면'(*, 가르)이 생략되어 있다. 본절은 5절에 대한 원인절로서 여자가 공예배에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본절에서 바울의 권면은 당시 기존 관습과 상식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 범주 안에서 공예배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시 기존 관습에서 여자가 머리가 짧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여자가 짧은 머리를 하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1) 애통이나 슬픔을 표시할 때이다(신 21:12). (2) 조신(操身)하지 않거나 간음의 죄를 범했을 때이다. 그래서 매춘부는 짧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기에 본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 짧은 머리는 여자의 수치였다. 반면에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 사이에서 긴 머리는 여자다운 우아한 장식으로 여겨졌으며(Meyer), 여자의 권위와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바울이 당시의 기존 관습을 인정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한 나라의 관습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을 때 그 관습이 인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네르 멘 가르 우크 오페일레이 카타칼륖테스다이 텐 케팔렌 에이콘 카이 옼사 데우 휘파르콘 헤 귀네 데 돜사 안드로스 에스틴

 

개역개정,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새번역,7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 ㉧또는 '반영'
우리말성경,7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됩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가톨릭성경,7 남자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영어NIV,7 A man ought not to cover his head, since he is the image and glory of God; but the woman is the glory of man.
영어NASB,7 For a man ought not to have his head covered, since he is the image and glory of God; but the woman is the glory of man.
영어MSG,7  men and women, who far too often butt heads with each other, submit their "heads" to the Head: God.
영어NRSV,7 For a man ought not to have his head veiled, since he is the image and reflection of God; but woman is the reflection of man.
헬라어신약Stephanos,7 ανηρ μεν γαρ ουκ οφειλει κατακαλυπτεσθαι την κεφαλην εικων και δοξα θεου υπαρχων γυνη δε δοξα ανδρ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7 vir quidem non debet velare caput quoniam imago et gloria est Dei mulier autem gloria viri est
히브리어Modern,7 והאיש איננו חיב לכסות את ראשו כי הוא צלם אלהים וכבודו אבל האשה היא כבוד האיש׃


 

성 경: [고전11:7]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본절에서 바울은 여자가 머리에 수건 써야 하고, 남자가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창조 질서에서 찾고 있다.

󰃨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 대로 창조하셨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이 땅을 다스리는 주권을 주셨다(창 1:26-28).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形狀)'이라 함은 여러 의미를 갖지만 그 중에 하나는 자연에 대한 사람의 '주권'을 포함한다(Edwards,Godet).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의 절정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받았다(시8편). 또한 남자가 '하나님의 영광'이라 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남자는 창조자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위엄을 세상에 드러내며 그를 존귀케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처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권적 지위를 소유하고, 창조주를 세상에 밝히 드러냄으로 존귀케 하는 존재인 남자가 '순종의 표'인 수건을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서 벗어남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며 '마땅히'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땅히'로 번역된 헬라어 '오페일레이'(*)는 '의무가 있다', '해야만 한다'는 뜻을 갖는다(ought, NIV).

󰃨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 본절은 여자가 당시의 습관대로 머리에 수건을 써야할 이유를 말하고 있다. 여자가 수건을 쓰는 것은 자신의 정절과 순결, 그리고 복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남자를 존귀케 하며 또한 자신을 성별(聖別)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창 1:26-28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바울은 여자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여자가 남자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한다(De Wette).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로부터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8, 9절) 결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있다(Edwards.Godet, Meyer).

 

 

 

우 가르 에스틴 아네르 에크 귀나이코스 알라 귀네 엨스 안드로스

 

개역개정,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새번역,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우리말성경,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8 사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영어NIV,8 For man did not come from woman, but woman from man;
영어NASB,8 For man does not originate from woman, but woman from man;
영어MSG,8  (SEE 11:7)
영어NRSV,8 Indeed, man was not made from woman, but woman from man.
헬라어신약Stephanos,8 ου γαρ εστιν ανηρ εκ γυναικος αλλα γυνη εξ ανδρος
라틴어Vulgate,8 non enim vir ex muliere est sed mulier ex viro
히브리어Modern,8 כי אין האיש מן האשה כי אם האשה מן האיש׃


 

성 경: [고전11:8]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 본절은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논증에 대한 근거로서, 여자의 기원을 말한다. '...에게서'의 헬라어 '에크'(*)는 '기원'이나 '근원'을 의미하는 전치사로서, 아담의 갈비뼈를 통한 여자의 창조를 암시한다(창 2:21).

 

 

 

카이 가르 우크 에크티스데 아네르 디아 텐 귀나이카 알라 귀네 디아 톤 안드라

 

개역개정,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새번역,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말성경,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됐습니다. 
가톨릭성경,9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영어NIV,9 neither was man created for woman, but woman for man.
영어NASB,9 for indeed man was not created for the woman's sake, but woman for the man's sake.
영어MSG,9  (SEE 11:7)
영어NRSV,9 Neither was man created for the sake of woman, but woman for the sake of man.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γαρ ουκ εκτισθη ανηρ δια την γυναικα αλλα γυνη δια τον ανδρα
라틴어Vulgate,9 etenim non est creatus vir propter mulierem sed mulier propter virum
히브리어Modern,9 גם לא נברא האיש בעבור האשה כי אם האשה בעבור האיש׃


 

성 경: [고전11:9]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 본절은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을 진술하고 있다. 이 진술을 통해서 바울은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씀으로 자신의 순결과 사랑의 복종을 표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함을 시사한다. 창 2:20에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실 때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또한 창 2:18에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되어 있다. 물론 이 말씀들은 남자에 대한 여자의 종속성(從屬性)이나 여자에 대한 남성 우위론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혼자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주권을 발휘할 수 없다(창 1:28). 그 주권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과 복종의 관계에 있을 때 온전하게 행사될 수 있는 것이다.

 

 

 

디아 투토 오페일레이 헤 귀네 엨수시안 에케인 에피 테스 케팔레스 디아 투스 앙겔루스

 

개역개정,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새번역,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에 ㉩권위의 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 ㉩그, '권위를'
우리말성경,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 위에 권위의 표를 둬야 합니다. 
가톨릭성경,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생각하여, 그 머리에 권한의 표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영어NIV,10 For this reason, and because of the angels, the woman ought to have a sign of authority on her head.
영어NASB,10 Therefore the woman ought to have a symbol of authority on her head, because of the angels.
영어MSG,10  Don't, by the way, read too much into the differences here between men and women.
영어NRSV,10 For this reason a woman ought to have a symbol of authority on her head, because of the angel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δια τουτο οφειλει η γυνη εξουσιαν εχειν επι της κεφαλης δια τους αγγελους
라틴어Vulgate,10 ideo debet mulier potestatem habere supra caput propter angelos
히브리어Modern,10 על כן האשה חיבת להיות לה כפה על ראשה בעבור המלאכים׃


 

성 경: [고전11:10]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 '이러므로'는 본절이 8, 9절을 전제로 이제까지 논증한 것에 대한 결론임을 나타낸다. '천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창조 때에 함께 일하였으며(욥 38:7), 죄인들의 회개와 개종을 기뻐하며(눅 15:7, 10), 성도들을 보호하기도 한다(시 138:1;엡 3:10;히12:22). 또한 천사들은 사람들을 섬겨서(히 1:14) 성도들의 삶과 신앙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실현되도록 한다. 그런데 본절에서 '천사들을 인하여'(*, 디아 루스 앙겔루스)는 해석이 다양하다. (1) 그리스도인의 예배를 지켜 보게 하기 위해서 이교도가 보낸 스파이로 생각한다(Storr, Flatt).(2) 교회의 예언자로 해석한다(Beza). (3) 가장 신실(信實)한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본다(Clement). (4) 악한 천사로서(창 6:2) 예배 때 수건을 쓰지 않은 여자를 보고 색욕을 일으킨다고 본다(Tertullian). (5) 선한 천사로서, 예배 때 함께 참석해서 지켜보는 것으로 해석한다(Hodge, Morris, Meyer, Ruckert). 이런 해석들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것은 마지막 견해이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은 선한 천사들이 예배를 지켜보기 때문에 창조 질서에 어긋나지 않도록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권세 아래 있는 표'는 헬라어로 '엑수시아'(*)로서, 본문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Grosheide).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엑수시아'가 되는 이유는 당시 헬라의 여자가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자신을 매춘부로 취급하는 것으로 여자로서의 권위와 존엄성을 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여자가 자신의 머리에 이런 권세있는 표식을 함으로, 창조 때에 함께 사역하고 성도들과 함께 현존하여 예배를 지켜보는 천사들에게 창조 질서에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주며, 천사들을 예우(禮遇)함과 동시에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세울 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는 것이다.

 

 

 

플렌 아우테 귀네 코리스 안드로스 우테 아네르 코리스 귀나이코스 엔 퀴리오

 

개역개정,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새번역,11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1 그러나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영어NIV,11 In the Lord, however, woman is not independent of man, nor is man independent of woman.
영어NASB,11 However, in the Lord, neither is woman independent of man, nor is man independent of woman.
영어MSG,11  Neither man nor woman can go it alone or claim priority. Man was created first, as a beautiful shining reflection of God--that is true. But the head on a woman's body clearly outshines in beauty the head of her "head," her husband.
영어NRSV,11 Nevertheless, in the Lord woman is not independent of man or man independent of woman.
헬라어신약Stephanos,11 πλην ουτε ανηρ χωρις γυναικος ουτε γυνη χωρις ανδρος εν κυριω
라틴어Vulgate,11 verumtamen neque vir sine muliere neque mulier sine viro in Domino
히브리어Modern,11 אבל אין האיש בלא אשה ואין האשה בלא איש באדון׃


 

성 경: [고전11:11]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이제까지 바울은 창조 질서를 통해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이며, 예배시에도 순종의 표인 수건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해야 한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주 안에서 서로 하나인 것을 밝힘으로 여자의 지위에 대해 변호하고 있다.

󰃨 그러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렌'(*)은 앞서 진술된 내용에도 '불구하고' 라는 의미이다. 비록 본질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순결과 복종을 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 하나라는 의미이다.

󰃨 주 안에는 - 여기서 '주'(*, 퀴리오)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의미한다(Godet). 왜냐하면 12절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그에게 복종하며, 그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며(갈 5:6;엡 1:7) 주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하나라는 의미이다(갈3:28). 그렇다고해서 바울이 이제까지 논증한 여자의 순종성에 대해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본절은 주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구속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호스페르 가르 헤 귀네 에크 투 안드로스 후토스 카이 호 아네르 디아 테스 귀나이코스 타 데 판타 에크 투 데우

 

개역개정,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새번역,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 ㉪그, '여자를 통하여'
우리말성경,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가톨릭성경,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를 통하여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영어NIV,12 For as woman came from man, so also man is born of woman. But everything comes from God.
영어NASB,12 For as the woman originates from the man, so also the man has his birth through the woman; and all things originate from God.
영어MSG,12  The first woman came from man, true--but ever since then, every man comes from a woman! And since virtually everything comes from God anyway, let's quit going through these "who's first" routines.
영어NRSV,12 For just as woman came from man, so man comes through woman; but all things come from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2 ωσπερ γαρ η γυνη εκ του ανδρος ουτως και ο ανηρ δια της γυναικος τα δε παντα εκ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2 nam sicut mulier de viro ita et vir per mulierem omnia autem ex Deo
히브리어Modern,12 כי כאשר האשה מן האיש כן גם האיש על ידי האשה וכל זאת מאלהים׃


 

성 경: [고전11:12]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가르'(*, '왜냐하면')가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다. 본절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여자와 남자가 하나이며, 상호 의존적인 관계라는 사실의 근거를 제시한다.

󰃨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 '남자에게서'(*, 에크 투 안드로스)에서 '에크'는 '...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 사물의 기원과 근원을 표시한다. 본문은 여자의 기원이 남자임을 말한다. 이것은 8절의 반복으로서,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되었음을 상기시킨다(창 2:21).

󰃨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 '말미암아'는 헬라어 '디아'(*)로서 본절은 여자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는 사람의 '일반적인 출생 과정'을 말하고 있다(Morris). 이처럼 여자가 남자에게서(에크) 태어났고,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디아) 태어났다고 하는 구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과정과 질서를 바울이 염두에 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설사 바울이 그것을 염두에 두었다 할지라도 본절에서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서로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 여기서 '...에게서' 역시 '에크'(*)라는 의미로서 기원과 원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창조 질서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과정 속에서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두 존재의 기원은 결국 하나님이다(창 1, 2장).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며, 동등하며,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

 

 

 

엔 휘민 아우토이스 크리나테 프레폰 에스틴 귀나이카 아카타칼륖톤 토 데오 프로슈케스다이

 

개역개정,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새번역,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말성경,13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가톨릭성경,13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어울리는 일입니까?
영어NIV,13 Judge for yourselves: Is it proper for a woman to pray to God with her head uncovered?
영어NASB,13 Judge for yourselves: is it proper for a woman to pray to God with head uncovered?
영어MSG,13  Don't you agree there is something naturally powerful in the symbolism--a woman, her beautiful hair reminiscent of angels, praying in adoration; a man, his head bared in reverence, praying in submission?
영어NRSV,13 Judge for yourselves: is it proper for a woman to pray to God with her head unveiled?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ν υμιν αυτοις κρινατε πρεπον εστιν γυναικα ακατακαλυπτον τω θεω προσευχεσθαι
라틴어Vulgate,13 vos ipsi iudicate decet mulierem non velatam orare Deum
히브리어Modern,13 שפטו נא בנפשכם הנאוה לאשה להתפלל אל האלהים בגלוי ראש׃


 

성 경: [고전11:13]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 바울은 이제까지 여자가 하나님께 수건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해야 한다는 논증을 마친 후, 이런 논증들이 틀렸는가를 고린도 교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지혜를 가지고 판단하라고 권면한다. '마땅하냐'(*, 프레폰)의 의미는 바울 자신이 이제까지 논증한 것의 적절성과 타당성에 대한 것으로 당연히 수건을 써야 한다는 호소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다음 절에서 여자는 긴 머리를 가지거나 수건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인간의 본성(本性)이 말하고 있다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데 헤 퓌시스 아우테 디다스케이 휘마스 호티 아네르 멘 에안 코마 아티미아 아우토 에스틴

 

개역개정,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새번역,14 자연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우리말성경,14 여러분의 본성 그 자체가 가르쳐 주듯이 남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그에게 부끄러움이 되지만 
가톨릭성경,14 이미 자연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자기에게 수치가 되지만,
영어NIV,14 Does not the very nature of things teach you that if a man has long hair, it is a disgrace to him,
영어NASB,14 Does not even nature itself teach you that if a man has long hair, it is a dishonor to him,
영어MSG,14  (SEE 11:13)
영어NRSV,14 Does not nature itself teach you that if a man wears long hair, it is degrading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 ουδε αυτη η φυσις διδασκει υμας οτι ανηρ μεν εαν κομα ατιμια αυτω εστιν
라틴어Vulgate,14 nec ipsa natura docet vos quod vir quidem si comam nutriat ignominia est illi
히브리어Modern,14 או הלא גם הטבע בעצמו ילמד אתכם כי איש אשר יגדל פרע שער ראשו חרפה היא לו׃


 

성 경: [고전11:14]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바울은 앞절의 질문에 대한 반어적인 답을 주고 있다.

󰃨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 고대 헬라 세계에서는 철학자들이 머리를 길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대개의 남자들이 긴 머리를 하는 예는 극히 부분적으로 행해진 일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의하여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 '본성'(*, 퓌시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본질에 대한 천성적인 감각과 인지를 말한다(Meyer). 그래서 남자는 본성적으로 긴 머리를 갖는 것이 부끄러운 일로 안다. (2)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자의 본래적인 신체 구조를 암시한다(Godet). 이는 15절에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남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을 본성적으로 부끄럽게 느낄 뿐만 아니라 신체 구조상 긴머리는 여자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긴 머리를 소유한다면 그것은 남자의 권위와 명예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나실인(민 6:5;겔 44:20)이다. 그들은 머리에 삭도를 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긴 머리는 하나님에게 구별된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행 21:17-16 주제 강해 '나실인<Nazirite>제도' 참조).

 

 

 

귀네 데 에안 코마 돜사 아우테 에스틴 호티 헤 코메 안티 페리볼라이우 데도타이 아우테

 

개역개정,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새번역,15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긴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5 여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그녀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이것은 긴 머리가 그녀에게 쓰는 것을 대신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5 여자가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너울 대신에 긴 머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5 but that if a woman has long hair, it is her glory? For long hair is given to her as a covering.
영어NASB,15 but if a woman has long hair, it is a glory to her? For her hair is given to her for a covering.
영어MSG,15  (SEE 11:13)
영어NRSV,15 but if a woman has long hair, it is her glory? For her hair is given to her for a covering.
헬라어신약Stephanos,15 γυνη δε εαν κομα δοξα αυτη εστιν οτι η κομη αντι περιβολαιου δεδοται αυτη
라틴어Vulgate,15 mulier vero si comam nutriat gloria est illi quoniam capilli pro velamine ei dati sunt
히브리어Modern,15 אבל האשה כי תגדל שערה פאר הוא לה כי נתן לה השער לצניף׃


 

성 경: [고전11:15]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 긴 머리는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과 동일시되며, 그것은 하나님이 여자에게만 허락하신 권세이다. 여자가 긴 머리를 갖는 것은 본성이 아름답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남자와 구별된다. 또한 긴 머리나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여자의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낸다.

 

 

 

에이 데 티스 도케이 필로네이코스 에이나이 헤메이스 토이아우텐 쉬네데이안 우크 에코멘 우데 하이 엨클레시아이 투 데우

 

개역개정,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새번역,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우리말성경,16 이 문제에 대해 누가 논쟁하고 싶어 할지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6 누가 논쟁을 벌이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관습이 없고 하느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영어NIV,16 If anyone wants to be contentious about this, we have no other practice--nor do the churches of God.
영어NASB,16 But if one is inclined to be contentious, we have no other practice, nor have the churches of God.
영어MSG,16  I hope you're not going to be argumentative about this. All God's churches see it this way; I don't want you standing out as an exception.
영어NRSV,16 But if anyone is disposed to be contentious--we have no such custom, nor do the churches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ι δε τις δοκει φιλονεικος ειναι ημεις τοιαυτην συνηθειαν ουκ εχομεν ουδε αι εκκλησιαι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6 si quis autem videtur contentiosus esse nos talem consuetudinem non habemus neque ecclesiae Dei
히브리어Modern,16 ואם יחשב איש לערער עלינו אין לנו מנהג כזה ולא לקהלות האלהים׃


 

성 경: [고전11:16]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예배시 수건을 쓰는 문제]

󰃨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 - '변론하려는'(*, 필로네이코스)은'사랑하는'(*, 필로스)과 '싸움'(*, 네이코스)의 합성어로서,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기기 위해서 '변론을 위한 변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절에서 바울이 이 말을 언급하는 것은 헬라인들의 국민적 특성인 변론이 무익하며 잘못된 습관임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 하나님의 모든 교회 - 단순히 '모든 교회'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라는 것을 부가하여 수식하는 것은 모든 교회들의 거룩성과 존귀함을 나타낸다. 이는 헬라인들이 교회의 관습에 대해서 경솔하게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교회에 대한 존경을 강조한다.

󰃨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 '급례'(規例)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변론하는 것이다(Calvin, De Wette, Edwards, Meyer). (2)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이다(Bengel, Godet, Maier).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의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변론하는 것이 헬라인들의 관습(custom)이라고 하나(Mey-er), 그것은 무익한 습관(habit)에 불과한 것이다(Godet). 더욱이 이제까지 바울이 공예배 때에 여자가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의 정당성에 대해 논증해 왔기 때문에 본절은 그런 논증의 결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투토 데 파랑겔론 우크 에파이노 호티 우크 에이스 토 크레이쏜 알라 에이스 토 헤쏜 쉬네르케스데

 

개역개정,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새번역,17 다음에 지시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일에 관해 나는 여러분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모임이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해롭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7 In the following directives I have no praise for you, for your meetings do more harm than good.
영어NASB,17 But in giving this instruction, I do not praise you, because you come together not for the better but for the worse.
영어MSG,17  Regarding this next item, I'm not at all pleased. I am getting the picture that when you meet together it brings out your worst side instead of your best!
영어NRSV,17 Now in the following instructions I do not commend you, because when you come together it is not for the better but for the worse.
헬라어신약Stephanos,17 τουτο δε παραγγελλων ουκ επαινω οτι ουκ εις το κρειττον αλλ εις το ηττον συνερχεσθε
라틴어Vulgate,17 hoc autem praecipio non laudans quod non in melius sed in deterius convenitis
히브리어Modern,17 והנה בצותי את זאת לא אוכל לשבח אתכם על אשר תקהלו יחד לא להועיל כי אם לרעה׃


 

성 경: [고전11:17]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 내가 명하는 이 일에 - '이 일'(*, 투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2-16절에서 언급한 여자가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한 논증 전체를 가리킨다(Grosheide). (2) 바울이 다음 절에 이어서 명령하는 성만찬(聖晩餐)에 대한 것을 가리킨다(Godet).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바울은 16절에서 이미 여자가 공예배시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완전한 결론을 맺었다. 따라서 '투토'를 16절 이전의 내용에 연결시킨다는 것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은 이어서 논할 성만찬에 대한 것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다수의 영역본들은 본절을 '다음의 명령에서'(in thefollowing directives, NIV) 혹은 '이어지는 교훈에서'(in the followinginstructions, RSV)라고 해석하고 있다.

󰃨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 본절은 공예배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점을 권하기 전에, 먼저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했던 2절의 내용과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이제부터 명령할 성만찬의 규례를 고린도 교인들이 경솔히 생각하고 행함으로 범죄하였으며, 교회 내에 파벌이 형성되어 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책망하려고 한다.

󰃨 이는 저희의 모임이...해로움이라 - 본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지 않은 이유를 드러낸다. 고린도 교인들의 모임은 편당(偏黨)을 이루어서(19절)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22절) 주의 만찬에 불경하게 참예하였기 때문에 유익이 되지 못하였다.

 

 

 

프로톤 멘 가르 쉬네르코메논 휘몬 엔 엨클레시아 우쿠오 스키스마타 엔 휘민 휘파르케인 카이 메로스 티 피스튜오

 

개역개정,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새번역,18 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 ㉫'예배 회중에' 또는 '예배 모임에'라는 뜻
우리말성경,18 첫째는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가톨릭성경,18 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영어NIV,18 In the first place, I hear that when you come together as a church, there are divisions among you, and to some extent I believe it.
영어NASB,18 For, in the first place, when you come together as a church, I hear that divisions exist among you; and in part, I believe it.
영어MSG,18  First, I get this report on your divisiveness, competing with and criticizing each other. I'm reluctant to believe it, but there it is.
영어NRSV,18 For, to begin with, when you come together as a church, I hear that there are divisions among you; and to some extent I belie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18 πρωτον μεν γαρ συνερχομενων υμων εν τη εκκλησια ακουω σχισματα εν υμιν υπαρχειν και μερος τι πιστευω
라틴어Vulgate,18 primum quidem convenientibus vobis in ecclesia audio scissuras esse et ex parte credo
히브리어Modern,18 כי בראשונה שמעתי שיש מחלקות ביניכם כאשר תועדו בקהל ומקצתו אני מאמין׃



성 경: [고전11:18]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 첫째는 - '첫째'(*, 프로톤)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을 처망하는 논증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나 '둘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간에 분분하다. (1) '둘째'에 해당되는 사항이 없다(Hofmann, Morris). 따라서 '프로톤'은 '첫째로'(firstl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조적인 표현으로서 '주로'(principally)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프로톤'만 본문에 사용된다면 타당하지만, 본문에서는 '멘'(*, '진실로')과 더불어 사용되고 있기에 타당치 않다(Godet). (2) 34절 내용으로 이해한다(Edwards, Grosheide). 왜냐하면 34절에서 바울이 더 하고 싶은 말들을 가서 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은 둘째 책망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절에는 구체적인 책망의 내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책망하기를 원했다면 아마도 책망의 내용이 기록되었을 것이다(Godet). (3) 20절에서 둘째 책망이 시작된다고 본다(De Wette, Olshausen, Ruckert). 그러나 20절의 '그런즉'(*, 운)은 새로운 내용을 말한다기보다는 앞서 말한 것을 요약하는 것으로(Grosheide), 앞의 내용과 지속적이고 확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견해 또한 적절치 못하다. (4)12-14장을 둘째 책망으로 이해한다(Heinrici, Meyer, Osiander).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주의 만찬에 대해 소홀히 하는 문제를 책망하고, 12:1에서부터는 새로운 주제, 곧 은사의 문제에 대해 책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실은 12 :1에서 '데'(*, '그러나')를 사용해서 11장과 연결된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주제로 화제를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 진다는 것이다(Meyer). 이상의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 교회에 - '교회에'(*, 엔 테 엑클레시아)에서 관사 '테'(*)는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는 삽입되어 있으나 고대 사본(*, A,B,C,D)에는생략되어 있으므로 관사 '테'는 생략되어도 무방하다. 관사 '테'가 없을 경우, '교회에'는 '모임의 장소'가 아니라 '모임'을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장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모임의 성격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Edwards, Godet).

󰃨 분쟁 - '분쟁'(*, 스키스마타)은 본서 1:10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그것은 본절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이 다음 절에서 '편당이 있어야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본절에서의 분쟁은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에서 생겨난 대립을 가리킨다.

󰃨 대강 믿노니 - 바울은 들었던 분쟁에 관한 소문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소문들의 진위(眞僞)를 가려볼 때 분쟁의 사실들이 분명하기에 책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 소문의 진위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데이 가르 카이 하이레세이스 엔 휘민 에이나이 히나 카이 호이 도키모이 파네로이 게논타이 엔 휘민

 

개역개정,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새번역,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9 여러분 가운데 옳다 인정받는 사람들이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분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영어NIV,19 No doubt there have to be differences among you to show which of you have God's approval.
영어NASB,19 For there must also be factions among you, in order that those who are approved may have become evident among you.
영어MSG,19  The best that can be said for it is that the testing process will bring truth into the open and confirm it.
영어NRSV,19 Indeed, there have to be factions among you, for only so will it become clear who among you are genuine.
헬라어신약Stephanos,19 δει γαρ και αιρεσεις εν υμιν ειναι ινα οι δοκιμοι φανεροι γενωνται εν υμιν
라틴어Vulgate,19 nam oportet et hereses esse ut et qui probati sunt manifesti fiant in vobis
히브리어Modern,19 כי אף צריכות כתות להיות ביניכם למען יודעו הנאמנים בכם׃


 

성 경: [고전11:19]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 '편당'(*, 하이레세이스)은 어원적으로 '선택'(choice) 혹은 '좋아함'(preference)에서 유래된 것으로, '단체'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차별'(differences, NIV) 혹은 '파벌'(fractions, RSV)을 가리킨다. '있어야'(*, 데이)는 존재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의미한다.

󰃨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 본절은 교회 내에 편당이 존재하는 목적을 긍정적으로 나타낸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와 파벌은 때때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지만, 그런 위기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며, 그 위기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쉬네르코메논 운 휘몬 에피 토 아우토 우크 에스틴 퀴리아콘 데잎논 파게인

 

개역개정,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새번역,20 ㉬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 ㉬그, '그러므로'
우리말성경,20 그러므로 여러분이 분열돼 있으니 여러분이 함께 모인다 해도 그것은 주의 만찬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20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영어NIV,20 When you come together, it is not the Lord's Supper you eat,
영어NASB,20 Therefore when you meet together, it is not to eat the Lord's Supper,
영어MSG,20  And then I find that you bring your divisions to worship--you come together, and instead of eating the Lord's Supper,
영어NRSV,20 When you come together, it is not really to eat the Lord's supper.
헬라어신약Stephanos,20 συνερχομενων ουν υμων επι το αυτο ουκ εστιν κυριακον δειπνον φαγειν
라틴어Vulgate,20 convenientibus ergo vobis in unum iam non est dominicam cenam manducare
히브리어Modern,20 ועתה כאשר תקהלו יחד אין זה לאכל סעודת האדון׃


 

성 경: [고전11:20]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 그런즉 - '그런즉'(*, 운)은 앞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는 것으로 앞절과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앞절의 편당은 주의 만찬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우크 에스틴 퀴리아콘 데이프논 파게인) - 본문은 세 가지로 해석된다. (1) "너희는 주의 만찬을 먹을 의도가 없이 모였다는 해석이 있다(Alford). 그러나 29, 30절은 고린도 교인들이 주의 만찬을 먹기 위해서 함께 모였다"는 것을 암시하므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2) "너는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는 해석이 있다(Meyer).이 해석은 '에스틴'(*, '...이다')에 부정사(infinitive)가 뒤따라 올 때 가능하다. (3) "이것은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해석이 있다(De Wette, Maier). NIV에서도 "너희가 먹는 것은 주의 만찬이 아니다"(it is not Lord's Supperyou eat)라고 해석함으로써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세 견해 중 첫째 견해는 본문상의 내증(內證)에 위배되기에 타당치 않지만 나머지 두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당시 주의 만찬은 '애찬'(love-feast)과 '성만찬'(Eucharist)이 결합된 형태였던 바, 교인들은 집에서 형편에 따라 먹을 것을 싸가지고 교회에 모여서 공동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다(행 2:46;고후 8:14). 이런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애찬에서부터 교제를 나누지 않고 먼저 먹고 취함으로(21절)애찬과 성만찬을 일반 식사로 전락시켜 버렸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만찬이 주의 만찬이 아니라고 단언하였다. 한편 '주의'(*, 퀴리아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만찬을 제정(制定)하고, 만찬에 초대하며 주관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헤카스토스 가르 토 이디온 데잎논 프롤람바네이 엔 토 파게인 카이 호스 멘 페이나 호스 데 메뒤에이

 

개역개정,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새번역,21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우리말성경,21 이는 먹을 때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 음식을 먼저 먹어서 어떤 이는 배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1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영어NIV,21 for as you eat, each of you goes ahead without waiting for anybody else. One remains hungry, another gets drunk.
영어NASB,21 for in your eating each one takes his own supper first; and one is hungry and another is drunk.
영어MSG,21  you bring in a lot of food from the outside and make pigs of yourselves. Some are left out, and go home hungry. Others have to be carried out, too drunk to walk. I can't believe it!
영어NRSV,21 For when the time comes to eat, each of you goes ahead with your own supper, and one goes hungry and another becomes drunk.
헬라어신약Stephanos,21 εκαστος γαρ το ιδιον δειπνον προλαμβανει εν τω φαγειν και ος μεν πεινα ος δε μεθυει
라틴어Vulgate,21 unusquisque enim suam cenam praesumit ad manducandum et alius quidem esurit alius autem ebrius est
히브리어Modern,21 כי כל אחד מקדים לקחת סעודתו בעת האכילה וזה ירעב וזה ישתכר׃


 

성 경: [고전11:21]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 이는 먹을 때에...어떤 이는 취함이라 - '이는'(*, 가르)은 앞절에서 바울이고린도 교인들이 행한 만찬을 부정한 이유를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함께 모일 때까지 기다려서 만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먹고 마심으로' 만찬을 통해 참된 교제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거룩한 주의 만찬을 무시한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이 나눈 만찬은 주의 만찬이 아니라고 책망한 것이다.

 

 

 

메 가르 오이키아스 우크 에케테 에이스 토 에스디에인 카이 피네인 에 테스 엨클레시아스 투 데우 카타프로네이테 카이 카타이스퀴네테 투스 메 에콘타스 티 에이포 휘민 에파이네소 휘마스 엔 투토 우크 에파이노

 

개역개정,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새번역,22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22 여러분이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하찮게 여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22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영어NIV,22 Don't you have homes to eat and drink in? Or do you despise the church of God and humiliate those who have nothing? What shall I say to you? Shall I praise you for this? Certainly not!
영어NASB,22 What! Do you not have houses in which to eat and drink? Or do you despise the church of God, and shame those who have nothing? What shall I say to you? Shall I praise you? In this I will not praise you.
영어MSG,22  Don't you have your own homes to eat and drink in? Why would you stoop to desecrating God's church? Why would you actually shame God's poor? I never would have believed you would stoop to this. And I'm not going to stand by and say nothing.
영어NRSV,22 What! Do you not have homes to eat and drink in?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church of God and humiliate those who have nothing? What should I say to you? Should I commend you? In this matter I do not commend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2 μη γαρ οικιας ουκ εχετε εις το εσθιειν και πινειν η της εκκλησιας του θεου καταφρονειτε και καταισχυνετε τους μη εχοντας τι υμιν ειπω επαινεσω υμας εν τουτω ουκ επαινω
라틴어Vulgate,22 numquid domos non habetis ad manducandum et bibendum aut ecclesiam Dei contemnitis et confunditis eos qui non habent quid dicam vobis laudo vos in hoc non laudo
히브리어Modern,22 האין לכם בתים לאכל ולשתות בהם או התבוזו את קהל אלהים ותכלימו את אשר אין בידם מאומה מה אמר לכם העל זאת אשבח אתכם אינני משבח׃


 

성 경: [고전11:22]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을 우롱하는 문제]

󰃨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 고린도 교인들이 주의 만찬에서 행한 모습들은 마치 집에서 먹는 일반 식사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만찬에 그런 식으로 참여할려면 집에 가서 하라고 책망한다.

󰃨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의 모임으로서(15: 9;빌 3:6), 그 모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육신적인 만족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로 그들에게 있어 주의 만찬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 '빈궁한 자'는 단순히 '가난한 자'의 차원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부자들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하나님의 백성을 분리하고 구별지어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열등감과 굴욕감에 빠지게 하였다.

 

 

 

에고 가르 파렐라본 아포 투 퀴리우 호 카이 파레도카 휘민 호티 호 퀴리오스 예수스 엔 테 뉰티 헤 파레디데토 엘라벤 아르톤

 

개역개정,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새번역,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우리말성경,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 
가톨릭성경,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영어NIV,23 For I received from the Lord what I also passed on to you: The Lord Jesus, on the night he was betrayed, took bread,
영어NASB,23 For I received from the Lord that which I also delivered to you, that the Lord Jesus in the night in which He was betrayed took bread;
영어MSG,23  Let me go over with you again exactly what goes on in the Lord's Supper and why it is so centrally important. I received my instructions from the Master himself and passed them on to you. The Master, Jesus, on the night of his betrayal, took bread.
영어NRSV,23 For I received from the Lord what I also handed on to you, that the Lord Jesus on the night when he was betrayed took a loaf of bread,
헬라어신약Stephanos,23 εγω γαρ παρελαβον απο του κυριου ο και παρεδωκα υμιν οτι ο κυριος ιησους εν τη νυκτι η παρεδιδοτο ελαβεν αρτον
라틴어Vulgate,23 ego enim accepi a Domino quod et tradidi vobis quoniam Dominus Iesus in qua nocte tradebatur accepit panem
히브리어Modern,23 כי כה קבלתי אנכי מן האדון את אשר גם מסרתי לכם כי האדון ישוע בלילה ההוא אשר נמסר בו לקח את הלחם׃
 

성 경: [고전11:23]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 본절의 선언을 통해서 바울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1) 성만찬에 대해서 이미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달하였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성만찬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그런 죄를 범하였다고 변명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1) 바울이 성만찬 규례를 그리스도께 받았다.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성만찬의 규례가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서 바울이 성만찬 규례를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것인가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있어 왔다. 반대의 이유는 본절의 '주께'(*, 아포 투 퀴리우)에서 직접적인 전달을 의미하는 전치사 '파라'(*)를 사용하지 않고 간접적인 전달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바울이 사도 전통(傳統)이나 사도들에게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Beza, Hofmann).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아포'가 단순히 간접적인 전달의 경우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사도 요한은 '저에게서 듣고'(*, 앞 아우투)라는 말을 할 때 '아포'를 사용하였다(요일 1:5). 또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아포칼립세오스) 것이라고 말할 때 '아포'를 사용하였다(갈 1: 12). 이로 보아 성만찬의 규례는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것으로서(Bengel, Calvin, Meyer, Olshausen), 바울이 전한 성만찬 규례의 권위의 확고성(確固性)을 내포한다.

󰃨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 '잡히시던'(*, 파레디데토)은 예수께서 유다에 의해 배반당한 것을 의미한다. '파레디데토'는 '파라디도미'(*, '내어주다')의 미완료 과거로서 그 배반이 갑작스런 충동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의도된 계획의 성취임을 시사한다. 예수는 배반 당하시던 그날 밤에 유다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성만찬 규례를 제정하셨다.

󰃨 떡을 가지사 - '떡'은 성만찬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아니라, 유월절 식사 과정에서 성만찬을 제정하였기 때문에(마 26:17-19; 눅 22:7-20) 아마도 무교병이었을 것이다(Godet, W.H.Mare).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성만찬의 의미는 '떡'이나 '포도주'가 어떤 것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Grosheide).

 

 

 

카이 유카리스테사스 에클라센 카이 에이펜 투토 무 에스틴 토 소마 토 휘페르 휘몬 투토 포이에이테 에이스 텐 에멘 아남네신

 

 

개역개정,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새번역,24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위하여 깨어진'
우리말성경,24 감사하시고 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니 이 예를 행해 나를 기념하라.” 
가톨릭성경,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영어NIV,24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영어NASB,24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영어MSG,24  Having given thanks, he broke it and said, This is my body, broken for you. Do this to remember me.
영어NRSV,24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d said, "This is my body that is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헬라어신약Stephanos,24 και ευχαριστησας εκλασεν και ειπεν λαβετε φαγετε τουτο μου εστιν το σωμα το υπερ υμων κλωμενον τουτο ποιειτε εις την εμην αναμνησιν
라틴어Vulgate,24 et gratias agens fregit et dixit hoc est corpus meum pro vobis hoc facite in meam commemorationem
히브리어Modern,24 ויברך ויבצע ויאמר קחו אכלו זה גופי הנבצע בעדכם עשו זאת לזכרוני׃
 

성 경: [고전11:24]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성만찬 규례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본서에 나타난다(23-25절;마26:26-29;막 14:22-25;눅 22:17-20). 본서에 나타난 성만찬 규례는 세 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과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 예를 들면, '기념하라'(24절; 눅 22:19), '새언약'(25절;눅22:20) 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실은 아마도 누가가 바울의 추종자였으며,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에 동참하였던 때문일 것이다(Edwards).

󰃨 축사하시고(*, 유카리스 테사스) - 본절에서는 누가복음의 경우와같이(눅 22:19) '사례하다'(to give thanks)의 뜻을 가진 '유카리스테오'(*)가 사용되었으나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 사용된 것은 '축복 하다' 혹은 '찬양하다'의 뜻을 가진 '율로게오'(*)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양자가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축복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은 유대인의 유월절 식사 관습의 일부인 봉헌(奉獻) 의식을 반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의식을 통해서 일반적인 떡을 성만찬의 떡으로 바꾸셨다(Grosheide).

󰃨 떼어(*, 에클라센) - 이는 '떡을 쪼갠다'의 의미로 공동 식사의 한 모습이다. 떡을 떼는 행위는 유월절 식사의 경우 애굽에서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며, 성만찬의 규례에서는 고난을 당해서 찢길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상징한다.

󰃨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 개역성경에는 '찢긴'(*,클로메논)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사본상의 문제이다. 고대 사본(*, A,B,C)에는 이것이 빠져 있기때문에 혹자는 이것을 생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Hort, Lachmann, Tischendorf). 혹자는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이나 비잔틴 사본에 기록 되어 있음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삽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De Wette, Hofmann, Reiche). 문맥상 그것은 '떼어'와 연관되는데 이유는 그리스도의 '찢긴 몸'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찢긴'을 삽입하는 것이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너희를 위하는'은 성만찬의 목적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직접 행한 것임을 시사한다.

󰃨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이것을 행하여'는 성만찬이 영구한 제도로서 사도들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까지도 영원히 행하여야 할 규례임을 시사한다. '나를 기념하라'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으며 누가복음에만 나타나고 있다(눅 22 :19). '기념하라'는 '상기시켜 기억하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이 '유월절 규례를 기념하라'(출 12:14)신 명령을 상기시킨다. 이런 그리스도의 명령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규례를 계속 지켜왔던 것처럼 성만찬 규례를 기억하고 지켜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하신 명령은 새로운 성만찬 규례를 의미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아마도 "너희가 성만찬을 기념할 때, 어린양의 피로 조상을 구원한 것을 기억하지 말고 너희를 구원할 나와 내 희생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Godet, 눅22:1-23 주제 강해 '성만찬과 성찬식' 참조).

 

 

 

호사우토스 카이 토 포테리온 메타 토 데잎네사이 레곤 투토 토 포테리온 헤 카이네 디아데케 에스틴 엔 토 에모 하이마티 투토 포이에이테 호사키스 에안 피네테 에이스 텐 에멘 아남네신

 

개역개정,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새번역,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우리말성경,25 이와 같이 식사 후에 또한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 예를 행해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가톨릭성경,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영어NIV,25 In the same way, after supper he took the cup,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whenever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영어NASB,25 In the same way He took the cup also, after supper,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as often as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영어MSG,25  After supper, he did the same thing with the cup: This cup is my blood, my new covenant with you. Each time you drink this cup, remember me.
영어NRSV,25 In the same way he took the cup also, after supper,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as often as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헬라어신약Stephanos,25 ωσαυτως και το ποτηριον μετα το δειπνησαι λεγων τουτο το ποτηριον η καινη διαθηκη εστιν εν τω εμω αιματι τουτο ποιειτε οσακις αν πινητε εις την εμην αναμνησιν
라틴어Vulgate,25 similiter et calicem postquam cenavit dicens hic calix novum testamentum est in meo sanguine hoc facite quotienscumque bibetis in meam commemorationem
히브리어Modern,25 וכן גם את הכוס אחר הסעודה ויאמר הכוס הזאת היא הברית החדשה בדמי עשו זאת לזכרוני בכל עת שתשתו׃



성 경: [고전11:25]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 식후에 - 본절은 만찬이 다 끝난 후가 아니라 떡을 다 먹은 후를 의미한다.

󰃨 이와 같이 -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잔을 가지사 사례 하시고'로 성만찬의 두번째 의식을 언급한다(마 26:27; 막 14:23). 그러나 누가복음과 본서에서는 '이와 같이'라는 어구로 그와 같은 축사의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 이 잔은 - 혹자는 잔이 없이는 포도주를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본문 '잔'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rosheide). 그러나 본문에서의 '잔'은 잔에 담겨진 '포도주'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본절에서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진술함으로 포도주 마시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 본절은 누가복음의 기록과 동일하다(눅 22:20). 단지 누가복음에는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가 부가되어 있다. 반면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막 14:24)고 되어 있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혹자는 바울이 원시 사도 교회(Primitive ApostolicalChurch)에서 사용되었던 원형(原形)을 말한다고 주장한다(Holsten).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표현은 유대계 기독 교회에서 사용된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Godet). 한편 본절의 '새 언약'은 '모세의 언약'(출 24:8)과 대조된다. 모세의 언약에서는 언약을 체결하는 과정이 다섯 단계이다(출 24:3-11). (1) 언약 체결을 위한 준비 작업.(2) 여호와의 언약서 낭독. (3) 백성들의 준행 서원. (4) 언약의 피를 뿌림. (5) 70인 장로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서 체결 완료를 의미하는 공동 식사를 나눔. 이런 과정을 거친 옛 언약은 희생의 피를 필요로 하며 피를 뿌림으로 언약 당사자들간의 책임을 인식하게 하였고 이런 언약 의식은 매년 유월절 만찬 때 상기(想起)되었다. 그러나 이런 모세의 옛 언약은 애레미야에 의하여 선포된 새 언약으로 대치되었다(렘31:31-34). 예레미야는 모세의 언약을 이스라엘이 파괴하였음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관계를 맺고, 모든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 죄를 기억지 않게 하겠다는 내용임을 소개한다. 예레미야가 말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예수의 '새 언약'에 대한 예표로서, 더 이상 동물의 희생의 피로 맺는 언약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히, 단번에 이룬 새 언약임을 암시한다. 본절의 '새 언약'은 바로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새 언약을 가리키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명령에 따라서 성만찬을 통해 이를 기념한다.

 

 

 

호사키스 가르 에안 에스디에테 톤 아르톤 투톤 카이 토 포테리온 피네테 톤 다나톤 투 퀴리우 카탕겔레테 아크리스 후 엘데

 

개역개정,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새번역,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6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가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어NIV,26 For whenever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영어NASB,26 For as often as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e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영어MSG,26  What you must solemnly realize is that every time you eat this bread and every time you drink this cup, you reenact in your words and actions the death of the Master. You will be drawn back to this meal again and again until the Master returns. You must never let familiarity breed contempt.
영어NRSV,26 For as often as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e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헬라어신약Stephanos,26 οσακις γαρ αν εσθιητε τον αρτον τουτον και το ποτηριον τουτο πινητε τον θανατον του κυριου καταγγελλετε αχρις ου αν ελθη
라틴어Vulgate,26 quotienscumque enim manducabitis panem hunc et calicem bibetis mortem Domini adnuntiatis donec veniat
히브리어Modern,26 כי בכל עת שתאכלו את הלחם הזה ותשתו את הכוס הזאת הזכר תזכירו את מות אדנינו עד כי יבוא׃


 

성 경: [고전11:26]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 하면')가 생략되어 있으나 헬라어 사본에는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가르'를 보존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1) 본절이 예수의 강화(講話, discourse)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Ewald). (2) 22절의 '칭찬하지 아니하노라'의 이유로 생각한다(Hofmann). (3) 앞절의 '나를 기념하라'와 연관성을 갖는다(Godet, Hodge). 이런 견해들 중 마지막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이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성만찬을 행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오실 때까지'(*, 아크리스 후 엘데)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념하라'와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기념하는 행위'는 주가 재림할 때까지 지속된다. 이처럼 본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지칭하는 것이나, 그것은 단순히 기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기념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에 대한 확신이다(Edwards, Godet). 한편 '전하는 것이니라'(*, 카탕겔레테)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행위'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한다(Edwards). '말'로 알리는 것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바울이 역설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2) '카탕겔레테'가 '알리다' 혹은 '선포 하다'라는 뜻으로, '말'로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Meyer). 두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라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代贖的)인 죽음과 부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인 고백과 대중적인 선포는 물론 성만찬 의식을 통해서 증거하고 대대로 전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Godet).

 

 

 

호스테 호스 안 에스디에 톤 아르톤 에 피네 토 포테리온 투 퀴리우 아낰시오스 에노코스 에스타이 투 소마토스 카이 투 하이마토스 투 퀴리우

 

개역개정,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새번역,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빵이나 잔을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주의 몸과 피를 짓밟는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7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영어NIV,27 Therefore, whoever eats the bread or drinks the cup of the Lord in an unworthy manner will be guilty of sinning against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영어NASB,27 Therefore whoever eats the bread or drinks the cup of the Lord in an unworthy manner, shall be guilty of the body and the blood of the Lord.
영어MSG,27  Anyone who eats the bread or drinks the cup of the Master irreverently is like part of the crowd that jeered and spit on him at his death. Is that the kind of "remembrance" you want to be part of?
영어NRSV,27 Whoever, therefore, eats the bread or drinks the cup of the Lord in an unworthy manner will be answerable for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27 ωστε ος αν εσθιη τον αρτον τουτον η πινη το ποτηριον του κυριου αναξιως ενοχος εσται του σωματος και αιματος του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27 itaque quicumque manducaverit panem vel biberit calicem Domini indigne reus erit corporis et sanguinis Domini
히브리어Modern,27 לכן מי שיאכל מן הלחם הזה או ישתה מכוס האדון שלא כראוי יאשם לגוף אדנינו ולדמו׃


 

성 경: [고전11:27]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바울의 관심은 성만찬의 규례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그는 성만찬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23-25절)과 자신의 견해(26절)를 밝히고, 이런 규례를 고린도 교인이 처했던 상황에 적용시켜 고린도 교인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Grosheide).

󰃨 그러므로(*, 호스테) - 이것은 이제까지 말한 성만찬의 규례를 적용시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를 나타낸다.

󰃨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 '이나'(*, 에)는 '그리고'(and)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or)을 의미한다(Godet, Grosheide, Meyer).그것은 떡을 먹거나 잔을 마시는 두 가지 행위 중에 어느 하나라도 합당치 않게 행하면 범죄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당시의 성만찬은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식사 동안에 떡을 먹고 그 후에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에, 떡을 합당하게 먹는다 할지라도 잔을 합당치 않게 마실 경우도 있다. 반면에 카톨릭은 본절의 '에'를 근거로 해서 둘 중의 하나만을 행하고도 성만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Godet). '합당치 않게'(*, 아낙시오스)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회개하지 않은 악한 양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다(Olshausen, Theodoret). (2)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참여하는 것이다(Billroth, Chrysostom). (3) 주어진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이 참여하는 것이다(Luther). (4) 자기 성찰(self-examination))이 없이 참여하는 것이다(Bengel). (5)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기념하지도 않고, 그를 경외하지도 않으며 타인들을 사랑하지 않고 참여하는 것이다(Flatt). (6) 죄인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기억함과 감사함이 없이 참여하는 것이다(Godet). 이런 견해들 중 (5)와 (6)의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은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도들간의 교제로 생각지 않고 단지 헬라인의 관습처럼 즐거운 연회로 행하였기때문이다.

󰃨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 합당치 않게 성만찬에 참여했을 때 범죄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 그래서 카톨릭과 루터교는 본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재적 임재를 의미하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상징'에 대한 범죄는 곧 상징이 나타내는 대상에 대한 영적(靈的) 범죄이기에(Godet, Meyer) 그들의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

 

 

 

도키마제토 데 안드로포스 헤아우톤 카이 후토스 에크 투 아르투 에스디에토 카이 에크 투 포테리우 피네토

 

개역개정,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새번역,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말성경,28 그러니 사람이 자기를 살핀 후에 빵을 먹고 잔을 받도록 하십시오. 
가톨릭성경,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영어NIV,28 A man ought to examine himself before he eats of the bread and drinks of the cup.
영어NASB,28 But let a man examine himself, and so let him eat of the bread and drink of the cup.
영어MSG,28  Examine your motives, test your heart, come to this meal in holy awe.
영어NRSV,28 Examine yourselves, and only then eat of the bread and drink of the cup.
헬라어신약Stephanos,28 δοκιμαζετω δε ανθρωπος εαυτον και ουτως εκ του αρτου εσθιετω και εκ του ποτηριου πινετω
라틴어Vulgate,28 probet autem se ipsum homo et sic de pane illo edat et de calice bibat
히브리어Modern,28 יבחן האיש את נפשו ואז יאכל מן הלחם וישתה מן הכוס׃


 

성 경: [고전11:28]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보다 진보된 내용을 다루려고 하는 것을 암시한다. 즉 성만찬을 합당하게 참여하기 원한다면 해야 할일이 있다는 의미이다.

󰃨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 '살피고'(*, 도키마제토)는 예수의 인격에 관한 자신의 마음 가짐을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Godet). 그래서 본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사함으로 기념하며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지에 대해서 스스로 살펴야 함을 의미한다.

 

 

 

호 가르 에스디온 카이 피논 크리마 헤아우토 에스디에이 카이 피네이 메 디아크리논 토 소마

 

개역개정,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새번역,29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가리킴, / ㉠다른 고대 사본에는 '주님의 몸'
우리말성경,29 주의 몸이 의미하는 것을 모르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가 받을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9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영어NIV,29 For anyone who eats and drinks without recognizing the body of the Lord eats and drinks judgment on himself.
영어NASB,29 For he who eats and drinks, eats and drinks judgment to himself, if he does not judge the body rightly.
영어MSG,29  If you give no thought (or worse, don't care) about the broken body of the Master when you eat and drink, you're running the risk of serious consequences.
영어NRSV,29 For all who eat and drink without discerning the body, eat and drink judgment against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 γαρ εσθιων και πινων αναξιως κριμα εαυτω εσθιει και πινει μη διακρινων το σωμα του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29 qui enim manducat et bibit indigne iudicium sibi manducat et bibit non diiudicans corpus
히브리어Modern,29 כי האכל והשתה שלא כראוי אכל ושתה דין לנפשו יען אשר לא הפלה את גוף האדון׃


 

성 경: [고전11:29]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본절은 앞절에서 밝힌내용, 즉 자기 자신을 살피고 먹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 '분변치'(*, 디아크리논)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 물질적인 떡과 주의 몸을 구별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Beza,Grosheide, Hofmann). (2) 혹자는 떡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라 주장한다(Godet).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타내는 성별된 떡과 포도주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죄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성도가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사하며 동참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성만찬의 가치와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Grosheide).

󰃨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마'(*)는 '심판'을 의미한다(Judgment, NIV).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원한 심판을 의미할 경우에는 관사 '토'(*)가 부가된다(Godet, Meyer). 더욱이 다음 구절들에서, 바울이 합당치 못한 성만찬의 참여에 대한 결과로서 일시적인 심판을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30, 31절). 그러나 회개와 개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일시적인 징계는 영원한 심판에 대한 전조(前兆)이다(32절).

 

 

 

디아 투토 엔 휘민 폴로이 아스데네이스 카이 아르로스토이 카이 코이몬타이 히카노이

 

개역개정,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새번역,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 ㉡그, '잠자는'
우리말성경,30 이로 인해 여러분 가운데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에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이미 죽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영어NIV,30 That is why many among you are weak and sick, and a number of you have fallen asleep.
영어NASB,30 For this reason many among you are weak and sick, and a number sleep.
영어MSG,30  That's why so many of you even now are listless and sick, and others have gone to an early grave.
영어NRSV,30 For this reason many of you are weak and ill, and some have died.
헬라어신약Stephanos,30 δια τουτο εν υμιν πολλοι ασθενεις και αρρωστοι και κοιμωνται ικανοι
라틴어Vulgate,30 ideo inter vos multi infirmes et inbecilles et dormiunt multi
히브리어Modern,30 בעבור זאת יש בכם חולים וחלשים רבים והרבה ישנו המות׃


 

성 경: [고전11:30]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 이러므로 - 이 말은 본절이 앞절에 대한 증거임을 시사한다.

󰃨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 '약한 자'(*, 아스데네이스), '병든 자'(*, 아르로스토이), '잠자는 자'(*, 코이몬타이)를 이해함에 있어서 혹자는 영적인 측면으로만 해석한다(Eichhorn, Krause, Morus).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라면 '약한 자'나 '병든 자'는 의미상 같은 것이기에 꼭 그렇게만 해석되지 않으며 '잠자는 자'는 '죽은 자'를 나타내는 용어이다(Edwards). 따라서 오히려 본절은 성만찬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함이 영적 병약함과 죽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까지도 초래하게 됨을 시사한다.

 

 

 

에이 데 헤아우투스 디에크리노멘 우크 안 에크리노메다

 

개역개정,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새번역,31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핀다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1 우리가 자신을 잘 분별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영어NIV,31 But if we judged ourselves, we would not come under judgment.
영어NASB,31 But if we judged ourselves rightly, we should not be judged.
영어MSG,31  If we get this straight now, we won't have to be straightened out later on.
영어NRSV,31 But if we judged ourselves, we would not be judged.
헬라어신약Stephanos,31 ει γαρ εαυτους διεκρινομεν ουκ αν εκρινομεθα
라틴어Vulgate,31 quod si nosmet ipsos diiudicaremus non utique iudicaremur
히브리어Modern,31 כי אם נבחן את נפשנו לא נהיה נדונים׃


 

성 경: [고전11:31]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사본에 따라 '데'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고(*, A,B,D), '가르'(*, '왜냐하면')로 대체(代替)되기도 한다(C 사본). 그러나 '데'가 더 신빙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Godet) 문맥상으로도 알맞다. '데'는 논쟁에 귀한 논리적인 진보롤 나타내는 것으로, 성만찬과 하나님의 징계 문제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살폈으면'(*, 디에크리노멘)은 29절과 상관성을 갖는데, 그것은 주의 몸과 피의 가치를 분명히 이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Godet). '판단을 받지'(*, 에크리노메다)는 29절의 '죄를 먹고 부시느니라'와 연관된다. 29절에서 '죄'가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본절에서도 '판단'은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한다.

 

 

 

크리노메노이 데 휘포 투 퀴리우 파이듀오메다 히나 메 쉰 토 코스모 카타크리도멘

 

개역개정,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32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2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께 심판을 받아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2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셔도,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과 함께 단죄받지 않도록 우리를 교육하시는 것입니다.
영어NIV,32 When we are judged by the Lord, we are being disciplined so that we will not be condemned with the world.
영어NASB,32 But when we are judged, we are disciplined by the Lord in order that we may not be condemned along with the world.
영어MSG,32  Better to be confronted by the Master now than to face a fiery confrontation later.
영어NRSV,32 But when we are judged by the Lord, we are disciplined so that we may not be condemned along with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ρινομενοι δε υπο κυριου παιδευομεθα ινα μη συν τω κοσμω κατακριθωμεν
라틴어Vulgate,32 dum iudicamur autem a Domino corripimur ut non cum hoc mundo damnemur
히브리어Modern,32 וכאשר נדון נוסר על יד האדון למען לא נחיב עם העולם׃


 

성 경: [고전11:32]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에 대한 대조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 본문에서도 '판단을 받는 것'과 '징계를 받는 것'은 동일시 된다. 본절의 '하나님의 징계'는 잘못한 자식을 회개케 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수단이다(딤전 1:20 ;딤후 2: 25;딛 2:12;히 12:6).

󰃨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징계하시는 목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그 징계는 영원한 심판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심판의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Edwards). 한편 바울은 앞절과 본절에서 세 가지 용어를 통해 세단계의 '판단'에 대해 논증한다(Godet). 첫 단계는, '디에크리노멘'(*)으로서(31절)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크리노메노이'(*, '판단을 받는 것')로서(32절)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세상과 함께 정죄(情罪)받지 않게 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셋째 단계는, '카타크리도멘'(*, '죄정함을 받은')으로서(32절) 마지막 심판때에 영원한 심판을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호스테 아델포이 무 쉬네르코메노이 에이스 토 파게인 알렐루스 아크데케스데

 

개역개정,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새번역,33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33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 서로 기다리십시오. 
가톨릭성경,33 그러므로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영어NIV,33 So then, my brothers, when you come together to eat, wait for each other.
영어NASB,33 So then, my brethren, when you come together to eat, wait for one another.
영어MSG,33  So, my friends, when you come together to the Lord's Table, be reverent and courteous with one another.
영어NRSV,33 So then, my brothers and sisters, when you come together to eat, wait for one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33 ωστε αδελφοι μου συνερχομενοι εις το φαγειν αλληλους εκδεχεσθε
라틴어Vulgate,33 itaque fratres mei cum convenitis ad manducandum invicem expectate
히브리어Modern,33 על כן אחי בהקהלכם יחד לאכל תחכו איש אל רעהו׃


 

성 경: [고전11:33]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 그런즉(*, 호스테) - 이것은 이제까지 성만찬에 대해 논증한 것에 대한 결론임을 시사한다.

󰃨 형제들아 -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권속(眷屬)들을 향해 자주 사용하는 애정어린 표현이다. 바울은 본장 2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책망과 유사한 강력한 권면을 하기 전에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권면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Godet).

󰃨 서로 기다리라 - '기다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에크데케스데'(*)는 두가지로 해석된다. (1) '환영하다'(to welcome) 혹은 '용납하다'(to receive). (2) '기다리다'(to wait). 혹자는 전자로 해석해서 '만찬에 서로 용납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Hofmann, Ruchert). 그러나 본절에서는 후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Edwards, Godet). 왜냐하면 본절은 21절의 '프롤람바네이'(*, '취함이라')와 대조되기 때문이다.

 

 

 

 

에이 티스 페이나 엔 오이코 에스디에토 히나 메 에이스 크리마 쉬네르케스데 타 데 로이파 호스 안 엘도 다이탘소마이

 

개역개정,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새번역,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바로잡겠습니다.
우리말성경,34 누구든지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먼저 먹도록 하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머지 문제들은 내가 가서 말하겠습니다. 
가톨릭성경,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미리 먹어,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그 밖의 것은 내가 가서 일러 주겠습니다.
영어NIV,34 If anyone is hungry, he should eat at home, so that when you meet together it may not result in judgment. And when I come I will give further directions.
영어NASB,34 If anyone is hungry, let him eat at home, so that you may not come together for judgment. And the remaining matters I shall arrange when I come.
영어MSG,34  If you're so hungry that you can't wait to be served, go home and get a sandwich. But by no means risk turning this Meal into an eating and drinking binge or a family squabble. It is a spiritual meal--a love feast. The other things you asked about, I'll respond to in person when I make my next visit.
영어NRSV,34 If you are hungry, eat at home, so that when you come together, it will not be for your condemnation. About the other things I will give instructions when I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34 ει δε τις πεινα εν οικω εσθιετω ινα μη εις κριμα συνερχησθε τα δε λοιπα ως αν ελθω διαταξομαι
라틴어Vulgate,34 si quis esurit domi manducet ut non in iudicium conveniatis cetera autem cum venero disponam
히브리어Modern,34 וכי ירעב איש יאכל בביתו פן תקהלו לאשמה ויתר הדברים אתקן בבאי׃

 

성 경: [고전11:34]

주제1: [올바른 공적 예배와 성찬]

주제2: [성만찬에 대한 교훈]

󰃨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 본절은 22절과 연관성을 지닌다. 그것은 어떠한 형편의 사람이든지 간에 먹고 마시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갖고 성만찬에 참여하려면 집에 가서 먹으라는 의미이다.

󰃨 이는 너희의 판단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본절은 허기를 메우려고 성만찬에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 이유는 잘못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29-32절) 받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성만찬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

󰃨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 '그 남은 것'(*, 타로이파)은 성만찬 외에 다른 문제들에 대한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만찬에 대해서 지금 말하지 못한 세부적인 사항을 의미한다(Godet, Grosheide). 본절은 성만찬의 규례에 대한 설명을 맺으며 바울이 부언하는 내용이다. '귀정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탁소마이'(*)는 '정돈하다'라는 의미하며(Edwards,Hodge) 아울러 사도 바울의 권위를 암시한다. 바울은 사도로서 모든 규례를 제정하고 정비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