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법사(teacher of the law)
율법 교사를 가리키는 말로, 모세 율법에 대한 전문가들이었다. 힐렐의 손자이자 사도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을 가리켜 이 말이 쓰였고(행5:34),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갖고 그레데로 보내졌던 세나를 가리키는데(딛3:13, 공동번역 '법률가')도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5:17에는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집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많은 교법사(공동번역 '율법학자들')들이 앉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교사(teacher)
학문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소정의 자격을 가지고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도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시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다"(공동번역 '...변호할 자들', 새번역 '지도자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교사들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가리킨다(사43:27). 신약에서는 교회의 직제 가운데 하나로 사도, 선지자와 함께 교사가 언급되었다. 그들은 입교된 개종자들을 인도하고 교인들의 신앙 생활을 지도하였다(행13:1;고전12:28-29;엡4:11;딤후1:11). 한편 같은 원어가 '선생'으로 복음서에 많이 번역되었따(마8:19).
교양(nurture)
문화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쌓아 길러지는 마음의 윤택함과 전문적 분야의 학문과 지식을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자녀들의 주의 교양과 훈계로(공동번역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 양육하라고 권면한 바울의 말에 사용되었다(엡6:4).
교육/-하다(education)
신구약 성경에서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은 종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는 있지만, 종교 교육을 위한 공식적인 학교의 설립을 요구하는 모세의 법령은 없다.
1. 구약시대의 교육. 유대인들 사이에서 교육의 첫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율법인 토라를 배우고 순종하는 것이고, 두번째 목적은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면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소년들에게는 상술과 가정을 돌보는 것, 식사 법의 적용을 가르쳤고, 소녀들에게는 좋은 아내가 되는 법 등을 가르쳤다. 가정은 교육과정에 있어서 처음이며 가장 효과적인 기관으로 간주되었으며, 아울러 부모들은 어린이들에게 첫번째인 가장 효과적인 교사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책임은 창세기 18:19에 나타나는데, 거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식과 식속들을 주의 길로 걷도록 훈련시키기를 기대하였다. 잠언 22:6은 부모들이 자기의 아이들을 주의 말씀에 따라 가르치게끔 하는 또 다른 가족적인 충고이다. 신명기 6:7은 부모들이 하나님을 자기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해 준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명시하시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일반적인 생활의 행위들을 사용하곤 했다.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이나 종교적인 의미가 스며들어 있는 생활의 모든 명령은 행위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토라로 훈련을 받는 것은 매우 일찍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자기의 아이들에게 말과 본보기에 의한 법(율법)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었다. 어린이는 팔과 이마에 성구함을 붙인 그의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 거에요"라는 자연스런 질문이 어린이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곤 했던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는 말씀은 모든 사람에 대한 명령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가 12살이 되면 그 어린이들이 율법을 알고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토라의 교육을 마쳤다고 믿는다. 어린이는 그 때에 "율법의 아들"로 알려지게 된다. 이러한 완성(마침)의 증거로서 아버지는 성구함을 아들의 팔과 이마에 동여 매준다. 이마에 붙어있는 상자는 율법이 반드시 기억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다른 상자는 왼쪽 팔에 놓는다. 그래서 팔짱을 끼게 되거나, 기도하기 위해 깍지를 끼면 상자는 가슴을 누르게 된다. 가슴을 누르는 상자의 의미는 율법을 사랑하고 순종해야만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소녀는 집에서 교육을 받는다. 어머니는 소녀가 훌륭한 부인과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꼭 알아야 될 것을 가르친다. 소녀는 특별한 휴일과 안식일에 집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배뭉ㄴ다. 그러한 준비로 소녀는 그런 행사 뒤에 있는 풍습과 역사의 의미를 배운다. 소녀는 여러 기술, 즉 바느질, 옷감짜기, 병의 치료 등을 배운다. 또한 그녀는 노래, 춤, 플룻이나 하프 등과 같은 악기를 다루어야만 한다. 유대인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 종교적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따(레10:10-11). 제사장과 레위인은 백성이 바친 희생의 제물로 살아가면서 국가의 종교 교사가 된다. 외관상으로 본다면 그들의 교육적 기능은 썩 잘 유지되지는 못했다. 여호사밧 왕의 부흥 기간 동안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가르치는 기능은 다시 자리를 잡았고 비로소 백성들은 율법을 배웠다(대하17:7-9).
제사장들의 부족한 교육 사역은 예언자들의 가르침으로 보충되었다. 이러한 예언자들로서 최초의 사람인 사무엘은 라마에서 예언자 학교를 세움으로 항구적인 개혁을 시도했다(삼상19:19-20). 후에 또 다른 예언자 학교가 다른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이 장소에서의 중요한 공부는 율법과 그것에 대한 해석이었다.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선지자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학생들은 예언자들도 아니었다. 아모스는 이런 학교들에서 공부하지 않았던 예언자로서 주목할만한 본보기이다(암7:14-15).
2. 신약시대의 교육.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기간 중 성전 예배가 금지되면서 외형적인 모습의 회당이 존재하게 되었다. 포로 기간 중 그들은 기도와 성경을 읽기 위해 작은 그룹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회당은 급속도로 퍼지고 중요한 교육의 기관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회당 예배는 공동체의 종교적 생활에 중요한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 사이의 초급학교 제도는 회당과 관련해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예수님 당시에도 젊은이를 위한 학교가 실제적으로 모든 중요한 공동체에 자리잡고 있었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회당 "참석자"였다. 만일에 회당에 학생이 12명 이상이 되면 보조교사가 주어졌다. 회당 학교에서의 주된 교육 목표는 종교적인 것이었다. 구약성경은 이런 가르침의 주요 대상이었으며, 또한 이곳에서는 읽기, 쓰기, 수학을 가르쳤고, 암기, 연습과 반복 등은 교육의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소년들은 다섯 살에 "책의 집"에서 공식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5년 동안 최소한 반나절 이상, 일주일에 5일을 회당에서 공부했다. 부모들은 아들을 정오에 데리고 와서 저녁에 데리고 갔으며, 수업 중에 소년은 농사나 목수일과 같은 것은 배우지 않았다. 소년이 회당에서 배운 것 이상을 훈련받기 원한다면 그는 율법학사에게 가야 했다. 다소의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고급 이론을 훈련받았다(행22:3).
공식적인 교육방법이 신약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들을 가르쳤다(막4:1-2). 예수는 스승 그 이상이었기에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스승으로서 알려졌다. 그는 청중들을 사로잡는 도전과 권위를 가지고서 가르치는 하나님이 보내신 스승이었다. 주님이 부활하였을 때, 그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온 세상으로 나아가 가르칠 것을 명령했다(마28:19-20). 사도행전 2:42;4:1-2;5:21,28을 보면, 가르침은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에서 매우 종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신약성경은 가르침을 교회의 중요한 기능으로 여겼으며, 가르침은 감독(오늘날 목사와 상응하는 직분)의 중요한 기능으로 간주되었다(딤전3:2;딛1:9). 자원으로 봉사하는 교사 또한 교회의 일 중 중요한 것이었다(약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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