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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그리스도인 / 그리스보 / 그리심산

그리스도인(Christian)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이 이름(행11:26;26:28;벧전4:16)은 신약시대에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오던 호칭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사용하던, 아마도 더 애호했던 다른 이름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참고. H.J. Cadbury, B.C.5, 1933, pp375이하).

1. 이 이름의 기원. 이 이름은 라틴어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라틴어에서 -iani로 끝나는 복수 명사는 한 장군에 속한 병사들, 여기서 비롯되어 한 개인에 속한 무리들을 뜻한다. 아구스도인(Augustiani)이라는 이름에는 이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적어도 A.D. 1세기 말 가이사의 종들과 부하들에게 가이사인(Caesariani)이란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복음서에는 헤롯인(헤롯 왕, Herodianoi)이란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 이름은 헤롯에 속한 무리들을 가리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처음에 '그리스도에 속한 병사들', '그리스도에 속한 가족' 혹은 '그리스도에 속한 무리들'로 생각되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달리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아구스도인이란 이름을 모방한 주장도 있다. 아구스도인은 네로 아구스도(네로 황제)를 환호하는 여론을 주도했던 네로의 열렬한 신봉자들의 조직화된 집단이었다. 종교인들의 열정과 황제를 환호나는 여론을 주도하던 무리들의 우스꽝스러운 충성이 둘을 은근히 비교하는 데서 모두 풍자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아구스도인이란 이름보다 오래 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2. 이 이름이 생긴 장소 및 시기. 이곳 교회의 사정을 훤히 알았던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으로 적고 있다(행11:26). 라틴어화된 형태는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맥락은 A.D. 1세기의 40년대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페터슨(Peterson)은 헤롯 아그립바 1세(행12:1, 개역 '헤롯 왕')와 맞먹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불러왔다고 주장하였다. 아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의 모델이었다면 이 이름은 A.D. 59년 이전에 생겼을 수가 없으며, 사도행전 11:26은 이 이름이 생겨난 날짜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그보다 선행하는 사건과 연관시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누가는 이 사건에 앞서 안디옥 교회를 과거 이교도였던 이방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던 첫 교회로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곧 안디옥 교회는 이교도들이 유대 종파가 아닌 기독교를 볼 수 있엇던 첫번째 장소였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오래지 않아 생겼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60년대에 와서는 자리를 굳혔다. 영리한 헤롯 아그립바 2세(행26:28)는 풍자적인 기분으로 이 이름을 바울에게 사용하고 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베드로는 네로 박해 직전 아마도 로마에서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택함받은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더라도 부끄러워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다(벧전4:16; 이 고난이 꼭 법정에서 정식 재판을 받는 것을 뜻하지는 않ㄴ느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네로황제는 "보통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고 있던" 종파에 거짓 혐의를 씌웠다고 한다. 

3. 이 이름의 근원. 사도행전 11:26의 동사 '크레마티조'(개역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비커만(Bickerman)은 이를 '자칭하였다'고 번역하면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름이었다고 주장한다. 비커만의 번역에도 일리가 있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으며, 안디녹의 이교도들이 이 이름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더 많다. 안디옥 이외의 다른 지역의 경우 이 이름을 사용한 것은 비그리스도인임이 확실하다. 그 예로 아그립바 왕이나 베드로전서에서의 비난자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말하는 '보통 사람들' 등이다. 이 동사는 자주 '공적으로 불리웠다'(참고. 롬7:3, 개역 '이르되')로 번역되곤 한다. 이에 따르면 이 동사는 이 새 종파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등록된 공식적 행위를 기리킨다(라틴식 이름은 등록에 따라 생긴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동사가 보다 느슨한 의미로 사용되었던 경우도 있다. 아마도 누가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별도의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던 첫 도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 한 정도였을 것이다. 이로부터 이 이름이 곧 손쉽게 공식적이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4. 그 이후의 이 이름의 사용. '그리스도인'은 원래 한 별명이었으나 '감리교도'라는 이름의 경우처럼 장본인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점차적으로 믿는 자들은 "네가 그리스도인이냐"는 물음에 대답해야 했다. 믿는 자들은 원래 모욕적인 의도로 생겼던 이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구속하신 자의 이름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벧전4:16). 그리고 이 이름에는 매우 적절한 요소가 있었다. 이 이름은 이 새로운 종교가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주었다. 크리스토스(Christos,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대부분의 이교도들에게 매추 낯설어 '선량하고 친절하다'는 뜻을 지닌 보통 이름인 크레스토스와 혼동하는 경우가 생겼다면 이 또한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리하여 2세기 초엽의 문헌에서 이 이름은 안디옥의 그리스도인 감독 이그나티우스나 이 지방의 이교도 총독 플리니에 의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스보(Crispus)

고린도에 거주하던 유대인으로 회당의 지도자였으며, 바울에 의해 인도되어 가족 전부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행18:8;고전1:14).

 

그리심산(Mt. Gerizim)

팔레스타인의 북쪽 중앙에 위치한 산으로, 에발 산의 바로 남쪽에 있다. 높이는 해발 약 870m이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로서, 동서를 잇는 대로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를 통과한다. 그리심 산은 역사의 초기부터 매우 중요한 성지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후 맨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며(창12:6-7), 야곱도 이곳에 단을 쌓았따(창33:17-20).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 강을 건넌 후에 율법의 축복을 말하기 위해 여섯 지파, 즉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지파를 이 산에, 그리고 율법의 저주를 낭독하기 위해 여섯 지파 곧 그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지파를 에발 산에 모이도록 명하였다. 이 명령은 여호수아에 의해 성취되었다(신11:29;27:12;수8:30-35). 그리고 이들 사이에 언약궤가 놓여 있었다.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서서 소리를 높여 '왕으로 선택된 나무의 우화'를 말하였다(삿9:7). 후에 이 산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룩한 산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산이 이 곳이라고 주장하고(창12:6;22:2). '여호와의 성소'(수24:26)가 그리심 산에 있는 성전을 가리킨다고 여기며, 포로기 이후에도 이곳에 성전을 세웠다. 즉, 예루살렘과 시온 산이 유대인에게 성산이듯이, 그리심 산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러하였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중 여인이 말한 '이 산'은 바로 그리심 산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요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