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온1(Maon)
갈렙 계열의 유다 지파 사람으로, 삼매의 아들이자 벳술의 아버지(대상2:45).
마온2(Maon)
유다 산지의 성읍으로(수15:55),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한때 이곳에 피해 있었다(삼상23:24). 아비가일의 전 남편 나발은 이곳의 지주로서 많은 부를 소유한 자였으나 다윗이 도움을 청했을 때 거절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였다(삼상25:2-38). 오늘날의 '텔 마인'으로 생각되며,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13.6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성읍은 원추형의 높은 구릉의 정상에 있었고 사해 쪽으로 완만한 경사지에는 초지가 발달해 있다.
마을(village)
도시가 아닌 고장에서 여러 집이 이웃하여 살아가는 동네를 말하며 촌락이라고도 한다(마14:15;21:2;막8:23). 인구적인 면에서 보면 읍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읍에 달하지 못하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 경계는 유동적이어서 베들레헴은 '동네'(눅2:4) 또는 '촌'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요7:42). <참조> 동리
마음(mind)
'레브'는 사물의 중심(신4:11, 공동번역 '하늘 한 가운데까지';욘2:3;마12:40)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모호하기는 하지만 이 히브리 단어의 어근이 중심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신체 기관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이지 않다. 가장 분명한 언급은 사무엘상 25:37이다. 사무엘하 18:14과 열왕기하 9:24에서는 일반적으로 좀더 넓은 의미에서 내부기관들을 언급하는 듯이 보이는데 특별히 앞의 구절에서 압살롬이 작은 창 셋이 그의 '심장'을 찌르기까지 살아 있었다고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특히 내부 기관이 생리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것은 히브리적 사고의 전형적인 면이다. 예를 들어 시편 104:15에서 '마음'은 포도주와 양식으로 윤택케 된다. 비록 생리학적으로는 틀린 말일지 모르지만, 아래에 요약되어 있는 바와 같이, 넓은 의미에서 마음이 속 사람(inner man)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이 말은 진실이다.
히브리인들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관찰보다는 주관적인 경험을 통하여 생각하였다. 그 결과 지나치게 세분화하는 오늘날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다. 본질적으로 히브리인들이 생각하고 이야기했던 인간은 육체적이고 지적이고, 정신적인 그의 모든 속성들을 포함한 전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제하는 중심부가 마음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 사람(또는 짐승)으로 하여금 현재의 그가 되게끔 하는 것과 그의 모든 행동들을 다스리는 것(잠4:23)은 바로 마음이다. 성품, 인격, 의지, 마음 등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마음'의 의미 가운데 일부분들을 반영하는 현대의 용어인 것이다.
로빈슨(H.Wheeler Robinson)은 '레브'와 '레바브'가 사용되는 의미들을 아래와 같이 구분하였다.
1. 물리적으로 또는 비유적으로('가운데'; 29회).
2. 인격, 내적인 삶 또는 일반적으로 성격(257회, 예. 출9:14;삼상16:7;창20:5).
3. 의식의 감정적인 상태(166회)로서 가장 폭넓은 영역에서 발견된다. 취한 상태(삼상25:46), 기쁨 또는 슬픔(삿18:20;삼상1:8), 곤고함(삼상4:13), 용기 또는 두려움(창42:28), 사랑(삼하14:1).
4. 지적인 활동들(204회), 주의(출7:23), 생각(신7:17), 기억(신4:9), 이해(왕상3:9), 전문적인 기술(출28:3).
5. 의지(volition) 또는 목적(195회, 삼상2:35). 이 의미는 구약에서 가장 독특한 사용례임.
신약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사용되었는데, 스미스(C. Ryder Smith)는 아래와 같이 글을 썼다. "그것(마음)은 육체와의 관련을 전적으로 상실한 것은 아니다(참고. 고후3:3). 오히려 그것은 의지(예.막3:5), 지성(예.막2:6,8), 감정(예. 눅24:32)의 자리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마음이 사람을 의미하는데 가장 가까운 용어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성경에서는 두뇌가 의식, 생각, 또는 의지의 중심이라고 언급하는 곳이 없다. 도리어 그렇게 여겨지는 곳은 마음이다. 비록 거기에는 감정이 개입되기도 하지만 구분이 되는 한 감정과 관련해서는 하부기관들(예. 내장 등)이 더욱 자주 사용된다. 의식, 사고, 의지 등에 대하여 '정신'(mind)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감정들에 대하여 '마음'(hear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오늘날 대부분의 일반인들에 비하여 성경이 심리학적인 관심을 한층 낮게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신'은 어쩌면 성경에서 사용되는 '마음'에 가장 가까운 현대의 용어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정신보다 광의의 용어로서 성경은 헬라 철학에서처럼 이성적이거나 정신적인 작용을 구분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되는 큰 계명은 아마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되 네 마음을 다하여 - 즉 네 목숨을 다하여 - 네 뜻을 다하여, 네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를 의미할 것이다"(예. 막12:30,33).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이와같이 행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창6:5;렘17:9). 구약성경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라는 깨달음의 정점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성취된다(엡3:17). 예외적으로,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이 온전한 사람들도 있다(왕상15:14;시37:31;행13:22). 비록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다윗의 모범이 분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진실이 아니며 여전히 회개와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왕하23:25의 요시야).
마음의 올바른 자세는, 겸손과 회개의 상징이자 '상한 심령'(히. 루아흐)과 같은 의미인 상하고 깨어진 상태(시51:17)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지 아니하는 심령은 굳은 돌같은 심령이므로 이러한 깨어짐이 필요하다(겔11:19). 반대로 여호와의 뜻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둔하고', '할례받지 못한' 심령이다.
여호와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며 외모에 속지 않으신다(삼상16: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기도는 '하나님 나를 살펴 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 주소서'(공동번역, 시139:23), '내 마음을 정결케 하소서'(시51:10)가 되어야 한다. '새 마음'은 악인들이 품어야 할 목표가 되어야 한다(겔18:31).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더 이상 외면적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되어(렘31:33)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마음은 지켜져야 하며(잠4:23, 공동번역 '복된 삶의 샘'), 교사들은 학생들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잠23:26). 하나님을 보는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이며(마5:8),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이다(엡3:17).
마음판(tablet of heart)
솔로몬이 잠언에서 자신의 교훈을 잊지 말고 명심할 것을 당부하는 말로 '마음판에 새기라'고 기록하고 있다(잠3:3;7:3). 이는 아마도 모세의 율법이 돌판에 기록되었던 것을 염두에 둔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죄가 정과 뾰족한 차돌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렘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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