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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바라다 / 바라바 / 바라보다 / 바락 / 바란

바라다 desire

생각대로 혹은 소원대로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두로왕 히람이 솔로몬의 성전 짓는 계획을 듣고 기뻐하며 백향목과 잣나무를 솔로몬이 필요한 만큼 보내주겠다고 할 때 '바라다'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히람은 재목을 보내준 대가로 궁정에서 쓸 식물을 원했다(왕상5:89). 시편에서는 여호와를 기대하는 것이 도움과 방패가 된다고 노래할 때 쓰였으며(시33:20), 주께 기도하고 구했다는 뜻으로 쓰기도 했다(5:3). 시편에서 가장많이 쓰인 말로 이 말의 의미는 역시 하나님과 그 말씀을 기대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를 바란다고 했을 때, 이 구절에는 단순한 간구 이상의 기대와 희망 그리고 든든한 신뢰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게 된다(시25:3. 참고. 사49:23). 따라서 시편의 기자는 거듭 여호와와 그 말씀과 그 인자하심을 바라라고 당부하고 있다(시31:24;33:18,22; 38:15;130:5).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안식일의 참뜻을 설명하시면서 이사야의 예언(사42:1이하)을 인용함으로써 자기의 하는 일이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주셨는데 이때 인용하신 이사야의 예언의 마지막 구절은 이방 민족들도 예수의 이름을 '바라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마12:21). 이 말은 복음서 이후 바울 서신에서 믿음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시작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늙기까지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통하여 많은 민족이 나게 하시리라는 약속을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고 믿었다고(롬4:17-22) 했으며, 참된 소망에 대하여 설명할 때는 볼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소망하기 위해서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롬8:24-25). 사랑의 은사가 주어지면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게 된다(고전13:7).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곧 영원하고 참된 것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다(히11:1).

바라바 Barabbas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까지 하여 투옥된 유명한 죄수(마27:16;막15:7;눅23:19). 요한은 바라바를 강도라고 기술하고 있다(요18:40). 명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석방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빌라도는 이 전례를 좇아 예수를 석방하려 했으나(마27:15;막15:9), 대제사장은 유대인 군중들을 충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대신 바라바를 풀어주도록 요구하였다(막15:11-14). 예수에게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있던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를 풀어주고 싶어했으나 군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예수 대신 바라바를 석방하고 말았다. 마태복음의 헬라 사본 가운데 테오도시온역은 바라바의 원래 이름을 '바라바 예수' (마27:17, 공동 · 새번역 · 개정판 난외주)라고 표기하고 있다.

바라보다 see

일반적으로는 가시적인 현상에 대한 시각적인 감각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창22:4;신 32:52;행21: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13:14). 바라보다는 말은 또한 순수한 영적인 의미로서의 바라보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며(시63:2) 이러한 표현은 인내와 기다림(사8:17;벧후3:12-13) 또는 그에 따른 소망(애4:17;미 7:7;욘2:4)을 나타내기도 한다. 출애굽기 16:10과 민수기 16:42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의 영광이나 임재의 목격을 의미하며 하박국 2:1에서는 파수꾼이 상대의 동태를 자세히 살피듯이 지켜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때로는 찾다, 바라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찾고 바라기를 권고하고 있다(호12:6). 그 외에도 쳐다보거나 관찰하다(욥35:5),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다 (삿5:28), 앞을 내다보다(히11:26)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특별히 히브리서 12:2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경주의 목표설정을 가리키는 말로 '예수를 바라보자' 고하였다.

바락 Barak

이스라엘 장수이며, 납달리 게데스에 살던 아비노암의 아들이었다(삿4:6). 가나안 왕 야빈에게는 군대장관 시스라가 있었는데 야빈과 시스라는 철병거 900승으로 20년동안 이스라엘을 심하게 괴롭혀 왔다. 그때 여사사 드보라가 납달리 게데스에 살던 바락을 불러내어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향하여 전쟁을 벌일 것을 지시했다. 바락은 납달리와 스불론 연합군 10,000명으로 시스라를 공격해 승리하고 시스라의 군대를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도주한 시스라는 드보라의 예언대로 우연히 그 지역에 장막을 쳤던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삿4:24). 사무엘상에서는 바람을 '베단'으로 표기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의 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삼상12:11). 또한 신약의 히브리서에는 바락이 믿음으로 놀라운 일들을 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히11:32).

바란 Paran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활동했던 시내 반도 중앙의 매우 넓은 광야를 가리킨다(창21:21). 대부분 석회암이 덮여 있는 불모지였으며 신명기에 나오는 크고 두려운 광야가 이곳이라고 여겨진다(신1:19). 모세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두령된 사람들을 뽑아서 가나안을 탐지하기 위하여 보냈던 곳도 바란 광야였다(민 13:1-4). 이들이 탐지 활동을 끝낸 후 돌아온 곳은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였다(민13:26).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자주 진을 쳤는데(민12:16), 바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던 산 가운데 하나로서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신33:2;합3:3). 이곳에서 다윗은 600명 가량의 무리를 이끌고 다니다가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용감하기까지 한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삼하25:2-44) 그녀는 갈멜족 나발의 아내였다. <참조> 광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