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번역하다 / 번제 / 번제소 / 번조하다 / 번쩍이다

번역하다 interpret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 이 일이 행해진 까닭은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의 이스라엘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히브리어를(마1:23;요1:41;행9:36;히7:2) 헬라어권의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대표적으로 히브리어 '임마누엘' 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며(마1:23), 아람어 '달리다굼' 을 번역하면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다(막5:41).

번제 burnt offering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던 제사 양식이며, 번제 이외에도 소제와 화목제 등의 제사 양식이 있었다. 번제는 일반적으로소, 양, 염소 등을 제물로 드렸으나 이것을 감당할 수없는 경우에는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드릴 수 있었다(레1:14;5:7;12:6). 제물은 반드시 흠없는 수컷이어야 하였다(레22:19). 번제는 소제, 전제와 함께 드려졌으며,이때는 고운가루, 기름, 포도주 등을 정해진 양대로 섞어서 드렸다(출29:38-46). 번제 의식은 먼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희생 제물이 예배자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였고(레1:4), 안수한 제물의 예배자가 가져와서 단 북편에서 잡고(11절),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면(6절) 제사장이 제사를 집행하였다. 희생 제물의 피는 번제단 사면에 뿌렸으며(레1:5,11), 가죽을 제외한 육질은 각을 떴다. 그리고나서내장과 정갱이는 물에 씻어서 제단 위에 올렸으며 그것들을 남김없이 전부 태웠다(12-13절). 가죽은 제사를집전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다(레7:8).
한편 번제물이 조류일 경우에는 제사장이 그것을단으로 가져가 머리를 비틀어 끊고 날개 자리에서 몸을 두 동강이 나지 않게 찢어서 단 위에 불사르며, 피는단 곁에 흘려야 하였다. 그리고는 멱통과 더러운 것을제하여 단 동편의 번제단의 재를 긁어 모아 버리는 곳에 태우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는데 그것은여호와를 기쁘시게 했다(레 1:1417). 예배자는 번제를통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욥1:5)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다짐했다(왕상3:4,15).
기드온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아 바알 제단을 부수고 아세라 상을 찍어 번제를 드렸다(삿6:26). 또한입다는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외동딸을 번제로 드렸으며(11:31), 솔로몬은 기브온에서일천 번제를 드렸다(왕상3:4).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준비한 제사도 번제였다(18:33-38). 또한 욥은 자식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하여 아침에 일어나 자식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리기도 하였다(욥1:5). 사무엘은 사울 왕의 그릇된 제사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보다 그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책망하였다(삼상15:22). 이 말은 성경 전체에 있어 합당한예배를 위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강조되었다.
시편 기자는 위선적인 예배를 버리고 상한 심령으로 제사를 드려야 함을 강조했고(시51:16-17), 이사야와 예레미야, 호세아와 미가 등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진실한 행함이 선행되지 않는 위선적인 제사 의식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다(사1:11-17;렘6:20-21;호6:6;미6:6-8). 신약에 와서 예수께서도 같은맥락에서 가르치셨는데,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아니하심(마9:13)을 말씀하시면서 당시의 율법적 위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책망하셨고, 이웃 사랑하는 것이 번제물보다 낫다고 한 어떤 서기관은 예수께 칭찬을 듣기도 하였다(막12:33),

번제소 place of burnt offering

번제를 드릴 희생 제물을 잡는 장소.단 북편 회막의 뜰을 가리킨다(레4:29. 참고. 레1:11).

번조하다 fret oneself

마음의 답답함과 초조함. 이사야 선지자는 우매한 종교에 대한 경고에서 신접한 자와 마술사가 받을 고통을 언급했는데, 그들이 고통을 못이겨 부리는 짜증과 분노를 번조라고 표현하였다(사8:21 공동번역 '짜증나다' ).

번쩍이다 glitter

순간적으로 빛이 나타나는 모양을 가리킨다. 이 말은 칼 혹은 창과 관련하여 언급되었는데, 이는 군사적인 위용이나(나3:3) 하나님의 심판의 무시무시함을 의미한다(신32:41). 또한 예수의 재림을 비유적으로 묘사할 때도 사용되었는데, 번개와 그에 동반되는 섬광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재림의 돌발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섬광은 넓은 지역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보여지기 때문에 재림이 비밀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만천하에 드러남을 나타낸다. 성경에서 보여지는 이 말의 의미는 앞절의 미혹하는 자의 이야기에 이어 언급된 것으로 보아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마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