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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 BIBLE

히브리어 사사기 3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웨엘레 학고임 아쉘 힌니아흐 아도나이 레낫소트 밤 엩 이스라엘 엩 콜 아쉘 로 야드우 엩 콜 말하모트 케나안

 

개역개정,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새번역,1 가나안 전쟁을 전혀 겪어 본 일이 없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려고, 주님께서 그 땅에 남겨 두신 민족들이 있다.
우리말성경,1 이들은 모든 가나안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입니다. 
가톨릭성경,1 가나안에서 벌어진 전쟁들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시험하시려고, 주님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은 이러하다. 
영어NIV,1 These are the nations the LORD left to test all those Israelites who had not experienced any of the wars in Canaan
영어NASB,1 Now these are the nations which the LORD left, to test Israel by them (that is, all who had not experienced any of the wars of Canaan;
영어MSG,1  These are the nations that GOD left there, using them to test the Israelites who had no experience in the Canaanite wars.
영어NRSV,1 Now these are the nations that the LORD left to test all those in Israel who had no experience of any war in Canaan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αι ταυτα τα εθνη αφηκεν ιησους ωστε πειρασαι εν αυτοις τον ισραηλ παντας τους μη εγνωκοτας παντας τους πολεμους χανααν
라틴어Vulgate,1 hae sunt gentes quas Dominus dereliquit ut erudiret in eis Israhelem et omnes qui non noverant bella Chananeorum
히브리어구약BHS,1 וְאֵלֶּה הַגֹּויִם אֲשֶׁר הִנִּיחַ יְהוָה לְנַסֹּות בָּם אֶת־יִשְׂרָאֵל אֵת כָּל־אֲשֶׁר לֹא־יָדְעוּ אֵת כָּל־מִלְחֲמֹות כְּנָעַן׃

 

 

󰃨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 '가나안 전쟁'은 B.C. 1405년경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창12:7;출3:8)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했던 정복 전쟁을 가리킨다. 이 엄청난 전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과거에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큰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뒤 그들을 이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큰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다(2:10). 그래서 이 전후(戰後) 세대는 그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몸소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본절은 이를 암암리에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 시험하려 하시며 -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여호와께서…남겨 두신 열국은 - 본문의 ‘남겨 두신 열국은’이 한글 개역 성경에는 제 2절에 나와 있지만 이에 해당되는 원문은 원어 성경의 제 1 절, 그것도 본장을 시작하는 첫머리에 나와 있다. 한글개역 성경이 이를 2절에 배치한 것은 한글과 히브리어의 문장 구조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는 하나 이렇게 번역할 경우 히브리어 원문이 명확하게 보여 주는 저자의 강조점이 흐려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원문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고 생략된 ‘웨엘레(그리고 이들은, and these) ’ 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원문에 따라 문장을 완성해 보면 ‘그리고 이들은 여호와께서 남아있게 하신 그 나라들(이다)’ 이 된다. 이처럼 원문에서는 동사(be)가 생략되어 있어서 압축적이고 깔끔한 뒤앙스를 던져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원문의 문장 구조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한꺼번에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일부를 남겨 두신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원어 성경에서는 본문 바로 뒷부분에 이들을 하나님께서 왜 남겨 두셨는지 그 목적을 설명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한편 ‘남겨 두신’으로 번역된 ‘힌니아흐’는 ‘머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 ‘누아흐'의 사역형(Hiphil) 완료 남성 3인칭 단수형이다. 이러한 사역형은 가나안 땅에 그 기존 원주민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계속해서 거하게 된 것이 그들에게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할 만한 막강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일부를 남겨 두신 이유가 본문 이하에 나오는데 첫째는 전쟁을 모르는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려는 것이며 (2 절), 둘째는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알아 보시기 위함이었다(1, 4절). 여기에 더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 그들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2: 22).

󰃨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 비교적 짧은 본문에서 두 단어가 집중적으로 거듭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목적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에트’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콜’ 이다. 먼저 ‘에트’ 는 동사의 대상이 되는 목적격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무려 세 번이나 사용함으로 본서 저자는 시험의 대상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보여 주려고 하였다. 즉 시험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이스라엘(에트 이스라엘)이며, 알지 못한 모든 사람(에트 콜 아쉐르 로 요데우)이다. 여기서 이들이 알지 못한 것은 모든 가나안 전쟁(에트 콜 밀르하모트 케나안)이다. 이처럼 본문은 ‘에트’ 란 단어를 사용하여 그 내용을 점차 구체화시키므로써 점층적으로 전개된다.

  두번째로 ‘콜’ 이라는 단어가 두 번 사용되었으나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전혀 번역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콜’의 의미를 살려서 본문을 직역하면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는 모든(콜) 사람을,가나안의 모든 (콜) 전쟁들을’ 이며 이는 곧 ‘가나안 모든 (콜) 전쟁들을 알지 못한 모든(콜) 사람을 이스라엘을’ 이란 뜻이 된다. 본서 저자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콜’ 을 사용함으로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가나안 정착 초기에 발생한 그 치열했던 모든 전쟁들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할 뿐더러 관심도 전혀 없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로 요데우(알지 못한)'에서 '요데우'의 원형 '야다'는 ‘남녀 사이의 성관계를 묘사’ 할 때도 사용하는 단어로서(창 4: 1) 경험적이고 실존적인 앎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도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했던 시대의 다음 세대들은 가나안 정복 초기에 벌어졌던 전쟁들의 내용이나 그 의미를 전혀 깊이있게 이해하거나 체험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가 치렀던 전쟁과 함께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 시켜주는 역사를 기억의 너머로 통째로 던져버렸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제 가나안은 더 이상 정복해야 할 땅이 아니라 그곳의 거민과 서로 어울려서 살아야 할 땅이었으며, 가나안 거민은 추방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결혼과 교류를 통하여 상호 교제하며 협력해야 할 사람들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어떻게 이곳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망각한,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세대였던 것이다.

󰃨 시험하려 하시며 - 본문은 ‘~하기 위하여 (in order to) ’ 라는 ‘목적’을 나타내는 전치사 ‘레’를 사용한 부정사 구문이다. 본절과 2절에서 본서 저자는 하나님이 열국을 남겨 두신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레’를 사용하는 부정사 구문을 도합 세 번 사용하고 있는데 본문이 그 중에 첫번째이다. ‘레낫쏘트’ 의 원형 ‘나싸'는 2:22에도 사용되었으며 본문에서 다시 한 번 사용함으로 하나님이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지 않은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거듭 밝혀 주고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란 시험의 내용이 기록된 2:22처럼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시험할 것인지 설명하고 있지는 않으나, 제 4절에서 구체적으로 시험의 목적을 밝혀 가나안 거민을 남겨 둔 이유를 재강조하고 있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빰’ 은 전치사 ‘빼'에 남성 3 인칭 복수 접미어가 붙어서 ‘그들을 통하여’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시험할 것인지 그 시험의 수단을 보여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이 남겨 두신 열국을 통해 이스라엘을 시험하려고 하셨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 WBC 주석(1-2절)

󰃨 사사기는 여호수아 13 장이 남겨놓은 내용을 여기서 다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그 땅 가운데 열방을 남겨두셨다. 차이점은 새로운 세대의 특성에 있다. 그들은 정복하도록 남겨진 땅을 갖고 있었지만, “야웨에 대해서나 혹은 그분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셨던 역사하심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2:10).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 아래서 살고 있는 세대다(2:12,14,20). 그들은 열방들을 정복하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몰수당한 세대다(2: 21). 그러므로 그들은 시험 아래 있는 나라다(2:22) . 이 시험은 두 갈래의 모습을 갖는다. 한 가지는 이스라엘이 과연 야웨께 순종할 것인지를 찾아보게 된다 (2:22: 3:4). 다른 하나는 그들을 전쟁 중에서 시험할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거룩한 전쟁을 이루어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3: 1-2). 니디취(Niditch)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신학적 요소를 취하면서 "전쟁하는 것은 배워지는 기술이며, 훈련의 문제다"라고 결정한다(55).

  여호수아서는 영웅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명령, 즉 모세의 율법(수 1:7-8)을 여호수아가 주의 깊게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제기한다. 사사기는 순종해야 한다는 명령과 더불어 시작하지 않고 도리어 불순종을 예견하게 하는 시험과 더불어 시작한다. 여호수아는 그 땅 민족들을 쫓아낼 것을 기대하고 있는 이스라엘 나라와 더불어 시작한다. 사사기는 그 땅에서 쫓아낼 수 없었던 바로 그 민족들 사이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발견하는 것은, 거룩한 전쟁에서의 대적들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간에 자녀들을 혼인시키면서 혈연적으로 굳건하게 묶여 있는 행복한 가문의 모습이다.

 



 

라크 레마안 다아트 도로트 베네이 이스라엘 렐라메담 밀하마 라크 아쉘 레파님 로 예다움

 

개역개정,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새번역,2 전에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알게 하여 주려고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이다.
우리말성경,2 이전에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 이는 오로지, 전에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이스라엘 세대들에게 전쟁을 알게 하고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영어NIV,2 (he did this only to teach warfare to the descendants of the Israelites who had not had previous battle experience):
영어NASB,2 only in order that the generations of the sons of Israel might be taught war, those who had not experienced it formerly).
영어MSG,2  He did it to train the descendants of Israel, the ones who had no battle experience, in the art of war.
영어NRSV,2 (it was only that successive generations of Israelites might know war, to teach those who had no experience of it before):
헬라어구약Septuagint,2 πλην δια τας γενεας των υιων ισραηλ του διδαξαι αυτους πολεμον πλην οι εμπροσθεν αυτων ουκ εγνωσαν αυτα
라틴어Vulgate,2 et postea discerent filii eorum certare cum hostibus et habere consuetudinem proeliandi
히브리어구약BHS,2 רַק לְמַעַן דַּעַת דֹּרֹות בְּנֵי־יִשְׂרָאֵל לְלַמְּדָם מִלְחָמָה רַק אֲשֶׁר־לְפָנִים לֹא יְדָעוּם׃

 

 

󰃨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 '그것'이란 1절에 언급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본래 이유와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분명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본절에서는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은 이유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쟁을 통해 하나님 당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알리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 수의 많고 적음이나 병기(兵器)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주려 한 것이다(A.C.Hervey, A.E.Cundall,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74).

󰃨 남겨 두신 열국 -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5절). 그런데 본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데에도 깊은 경륜(經綸)이 담겨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 역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는 일례이다(사 55:8,9).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 본문은 ‘~하기 위하여 (in order to)’ 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레’ 가 이끄는 부정사 ‘렐람메담'으로 시작되는 부정사구로서, 제 1절에서 언급된 ‘레낫쏘트(시험하려 하시며)’ 에 이어 여호와께서 열국을 남겨 두신 목적을 두번째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한글 개역 성경은 원어 성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

  원어 성경의 구조를 반영해서 직역하면 ‘오직 그들이 얼굴을 향해 알지 못하는 전쟁을 가르치기 위하여’ 라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된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하는 자에게’ 로 번역된 ‘레파님’은 ‘~을 향하여 (toward) ’라는 방향을 가리키는 전치사 ‘레’에 ‘얼굴’이라는 뜻의 명사 ‘파님’ 이 결합된 전치사구로서 ‘얼굴을 향하여’ 라는 뜻이다. 이는 서로 얼굴을 뚜렷하게 바라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는데, 이어 나오는 ‘예다움(알다)’의 뜻을 더욱 구체적이고 깊이 있고 체험적인 내용으로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본문은 얼굴을 대면하고 바라보면서 서로를 깊이 있고 친밀하게 알게 되는 것처럼 과거 그들의 선조들은 전쟁에 친숙했는데, 이후 세대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음으로 인해 전쟁에 친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로 번역된 ‘밀르하마’는 ‘전쟁’을 의미하는 명사이며, ‘밀르하마’ 뒤에 쓰인 ‘라크’는 ‘오직’이라는 부사로서 앞의 부정사 ‘렐람메드’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본문은 제 1 절에 이어 다시 한번 시험의 대상이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임을 밝히며, 그들에게 영적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육적인 시험을 주고 있음을 분명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열국을 남겨 두심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알지 못하는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선조들이 치렀던 정복 전쟁의 의미를 확실하게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이다. 즉 피흘리는 전쟁을 통해서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라 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의 의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평화의 가치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선물인 기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며, 가나안의 거짓된 우상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하는 것인지 보다 깊이 체험적으로 알도록 하셨던 것이다.

󰃨 알게 하려 하사 - 한글 개역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고 생략된 ‘라크’ 는 ‘오직 (only) ’ 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부사로서 ‘~하기 위하여’ 라는 의미의 단어 ‘레마안’의 의미를 강조해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본문의 뉘앙스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오직 알도록 하기 위하여’가 된다. 그리고 ‘알도록’ 의 목적어는 ‘그것 (전쟁)’ 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하여 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이 어떻게 얻어졌으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땅인지 도무지 알지 못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치열한 전쟁을 체험적으로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깨달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숙한 삶을 살게 하려고 하나님은 가나안 열국을 남겨 두신 것이다.

 

* WBC 주석(위와 동일)

 



 

하메쉩 사르네 페리쉬팀 웨콜 하케나아니 웨하치도니 웨하히위 요쉡 할 할레바논 메할 바알 헤르몬 아드 레보 하마트

 

개역개정,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새번역,3 그들은 바로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와 가나안 사람 모두와 시돈 사람과 히위 사람이다. 히위 사람은 바알헤르몬 산으로부터 저 멀리 하맛 어귀에까지 이르는 레바논 산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말성경,3 이들은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 모든 가나안 사람들, 시돈 사람들 그리고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의 레바논 산맥에 살고 있던 히위 사람들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의 다섯 제후, 온 가나안족, 시돈족, 바알 헤르몬 산에서 하맛 어귀에 이르는 레바논 산에 사는 히위족이다. 
영어NIV,3 the five rulers of the Philistines, all the Canaanites, the Sidonians, and the Hivites living in the Lebanon mountains from Mount Baal Hermon to Lebo Hamath.
영어NASB,3 These nations are: the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all the Canaanites and the Sidonians and the Hivites who lived in Mount Lebanon, from Mount Baal-hermon as far as Lebo-hamath.
영어MSG,3  He left the five Philistine tyrants, all the Canaanites, the Sidonians, and the Hivites living on Mount Lebanon from Mount Baal Hermon to Hamath's Pass.
영어NRSV,3 the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all the Canaanites, and the Sidonians, and the Hivites who lived on Mount Lebanon, from Mount Baal-hermon as far as Lebo-hamath.
헬라어구약Septuagint,3 τας πεντε σατραπειας των αλλοφυλων και παντα τον χαναναιον και τον σιδωνιον και τον ευαιον τον κατοικουντα τον λιβανον απο του ορους του βαλαερμων εως λοβωημαθ
라틴어Vulgate,3 quinque satrapas Philisthinorum omnemque Chananeum et Sidonium atque Eveum qui habitabat in monte Libano de monte Baalhermon usque ad introitum Emath
히브리어구약BHS,3 חֲמֵשֶׁת סַרְנֵי פְלִשְׁתִּים וְכָל־הַכְּנַעֲנִי וְהַצִּידֹנִי וְהַחִוִּי יֹשֵׁב הַר הַלְּבָנֹון מֵהַר בַּעַל חֶרְמֹון עַד לְבֹוא חֲמָת׃

 

 

󰃨 블레셋 -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 인종학상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가슬루힘' 지파(창 10:14)에 속한다. 이들은 사사 시대는 물론(10:7 ; 13:1-16:31), 사울과 다윗 때(삼상13:19-22 ; 14:52)와 남북 분열 왕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왕상 15:27 ; 사9:8-12). 이후 이들은 성경에 예언된(슥 9:5-7)대로 알렉산더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당했다(B.C. 332).

󰃨 다섯 방백 -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방백들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방백'(*, 사레네이)이란 호칭은 그리이스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또는 '타이라노스'(*)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곧 블레셋인들이 그리이스 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 성경에서 '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세렌'(*)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 족속에게만 사용되어졌다(16:5 ; 수 13:3 ; 삼상 5:8 ; 6:4 ; 7:7 ; 29:3,9 ; 대상 12:19). 한편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인들의 초기 중심지는 그랄(Gerar)이었다(창 20:1,2 ; 21:32,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돗 등 다섯 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 가나안 모든 사람 -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가리킨다. 1:1주석 참조. 당시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 시돈 사람 -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km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B.C. 2750여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통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후에 이들은 베니게인(Phoenicians)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 15:3). 1:31 주석 참조.

󰃨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 13:5에 근거해 팔레스틴 최북방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한다(Lange Commentary, 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75). 다음으로 '하말어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는 수리아 성읍 '하맛'(Hamath)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러나 대개는 '하맛에 들어가는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갓의 맞은편 북동쪽에 위치한 '르보(*, 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 히위 사람 -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 대상 1:15)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되어 진다.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참조. 그런데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 족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히위'(*)의 '와우'(*)와 '호리'(*)의 '레쉬'(*)가 혼동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 오흘리바마가 창36:2에서는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 가서는(창 36:20,25) 호리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AmarnaAge, B.C. 15세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 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 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 '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들의 호칭이었다(IDB).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블레셋 다섯 방백과 - ‘방백 ’으로 번역된 ‘싸르네’는 ‘전차의 차축’(왕상 7:30) 을 의미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 블레셋의 통치자에게만 적용되는 특수 용어인 (수 13:3 ; 삼상 5:8) ‘쎄렌'의 복수 연계형이다. 본문에서도 이 용어는 블레셋의 다섯 성읍인 가사, 가드,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을 각각 통치하던 왕들을 가리킨다. 블레셋은 이 다섯 왕들이 각각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연합해서 형성된 부족 연맹 국가였다.
󰃨 가나안 모든 사람과 -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은 팔레스틴 전역에 있는 모든 민족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라기보다 서쪽의 해안 평야 지대에 있는 거주민을 가리키는 제한된 의미로 사용되었다(수 13: 3)

󰃨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 본문은 전치사 ‘민~아드~’ 즉 ‘~으로부터~ 까지’ 란 구문을 사용해서 히위 족속의 거주 지역을 총괄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바알 헤르몬 산’ 은 수 13:5 에서는 ‘헤르몬산 아래 바알갓'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는 레바논산의 서쪽 지역에 있었던 지명이다. 그리고 ‘하맛 어구’ 에 해당하는 ‘레보 하마트’ 는 ‘하맛의 입구를 향하여’ 로 번역될 수 있다. 하맛의 입구 지역은 역사상 이스라엘이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을 때 북부 경계에 해당되는 지역이다(왕상 8:65). 한편 ‘히위 사람(웨하히위)'은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으로서(창 10: 17) ‘호리 족속’ 과 동일한 민족을 가리키는 것 같다(창 36:2, 20). 왜냐하면 ‘히위'라는 단어에서의 ‘와우'와 ‘호리' 라는 단어에서의 ‘레쉬'가 고대 문헌에서 혼용되어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WBC 주석

󰃨 편집자는 아직 남아 있는 열방들의 목록과 관련해서 확장된 설명을 하고 그 열방들에 관한 목록을 제시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서쪽에서부터 북쪽에 이르기까지 거의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사기에 나오는 내러티브의 복잡성에 대해서 그리고 내러티브 구조에 있어서 연대기적인 지속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보게 된다. 사사기의 첫 번째 장은 기본적으로 지파들의 활동들에 대해서 갈렙이 드빌과 헤브론을 점령하던 시기로부터 유다가 예루살랩을 점령하던 시기까지, 그리고 벧엘에 대한 점령 시기부터 단이 자신들의 해변가 영토를 상실하고 북쪽으로 이주하던 시기까지를 범위로 삼아 요약적으로 제시했다. 후자의 경우 삼손 내러티브 안에서 다시 재연될 것이다. 단 지파로 하여금 북쪽으로 이주하게 하는, 뒤이어 나오는 혼돈에 관한 묘사와 병행을 이루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3장은 유다가 블레셋 성읍들을 차지했다는 1장의 내용을 무시할 수 있으며, 그런 뒤에 그 일이 벌어진 시기가 언제였건 간에, 블레셋의 다섯 개의 모든 성읍들이 “남아 있던 땅” 이 대표적으로 제시되는 시기로 돌아간다(수 13: 2과 비교하라). 블레셋의 독특한 정부 형태는 쓰라님("관원" 혹은 "방백")(수 13:3; 삿 16:5. 8. 18. 23. 27. 30; 삼상 5:8. 11; 6:4. 12. 16; 7:7; 29:2. 6. 7; 대상 12:20; 시락서 46:18)이라는 표현을 통해 제시된다. 분명 블레셋의 중요한 다섯 개의 성읍들 각각은 쉐렌이라고 불리는 도시국가적인 통치자 혹은 도시국가의 왕을 갖고 있었다. 이 용어는 정부 형태의 많은 부분을 그리스로부터 차용해온 헷 족속 사이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seren은 군사 지휘권자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또한 블레셋 이민자들과 가나안 정복민들 그리고 이스라엘 정복민들을 통치대상으로 삼았다 블레셋의 기술적인 우월성은, 그들이 철기 연장들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삼상 13 : 19-22). 그들의 군사적 우월성은 팔레스타인 내부 지역
들에 지금껏 남아 있는 많은 성읍들에서 발굴되는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그들의 윤리적 특성이나 구별성도 이집트 벽화 등에 남아 있는 그들의 옷 차림을 통해서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도자기들과 항아리들 그리고 기타 여러 문물등과 장식들(도자기 제조에 쓰이는 하얀 재료 위에 검은 색과 붉은 색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나, 백조나 물고기 모티프 등을 활용하여 특징적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것
등) 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도자기와 기타 남아 있는 여러 문화적 유산들 역시 점차적인 발전을 보여 준다. 에게해에서 가져온 토속물로부터 팔레스타인에서 배운 가나안의 관습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를 채택하고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이 목록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양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블레셋 성읍들로부터 시돈 사이에 있는 땅을 대표하는 가나안 사람들에 관한 목록이다. 이 목록은 가나안에 관해서 원래부터 살던 매우 협소한 개념 규정을 따른 것이었겠지만, 5절에 제시된 내용과 잘 들어맞는다.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1: 1에 대한 “ 주석”을 보도록 하라.

  시돈 사람들은 시돈과 시돈이 관할했던 영토의 거주민들인데, 여기에는 분명히 두로가 포함되어 있다. 시돈에 대해서는 1:31 에 대한 “주석”을 보라.

  히위 사람들(창 10:17; 34:2: 36 : 2: 출 3: 8, 17 ; 13: 5; 23: 23 , 28: 33 : 2 ; 34 :11 ; 신 7: 1: 20 : 17: 수 3:10; 9:1 , 7: 11:3 , 19: 12:8 ; 24:11 : 삿 3:3. 5; 삼하24:7: 왕상 9:20: 대상 1:15: 대하 8:7 ) 은 약속의 땅에 거하던 민족 목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아내도록 명령된 민족 목록(출 3:8 ; 23:23: 신 20: 17: 수 9 : 1: 24 :11) 에 나오는 비셈족인 민족이다. 이들은 기브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수9 장) , 또한 헤르몬 산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수 11 :3 ). 결국 솔로몬은 그들을 성전 건축에 징용했다(왕상 9:20-21). 히위 족속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이에 관해서는 Hostetter, Nations Mightier and More Numerous, 72-76 를 보라. 여기 본문에서는 히위 족속을 명확하게 북쪽 가나안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 레바논 산은 지중해 연안과 평행을 이루며 뻗어 있고, 고도가 약 일만 피트 정도까지(3,048m) 솟아 있다. 바알 헤르몬은 분명 헤르몬 산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명이었으며, 그 곳이 바알을 섬기던 곳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곳은 여호수아의 북쪽 정복 전쟁의 한계선을 표시했다(수 11: 16-17). 레보 하맛은 종종 “하맛 입구”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바알벡 북쪽 오론테스 강의 원류 중 하나에 있던 국경도시 레브웨(Lebweh)를 지칭했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Sacred Bridge, 35를 보라). 이렇게 지리적 위치를 정하는 것은 이 목록을 이스라엘이 실제적으로 점유했던 중심 영토들을 넘어서는 것이 되게끔 하며, 다윗과 솔로몬만이 통치했던 확장된 영토를 지적해 준다. 연대기적으로 보자면, 이 목록은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여호수아 하에서 도달했던 경계선을 넘어 좀 더 확장된 경계선에 대해 제시해 주는 여호수아 13 장으로 이끌어 간다. 이 목록은 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실패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사기 1장의 블레셋 성읍들에 대한 유다의 정복들에 대해서도 무시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에게 부과된 임무와 직면하게 되는데,이 세대는 사사기 1장에 묘사된 것과는 다른 세대다. 왜냐하면 사사기 3: 1-5 에 묘사된 세대는 전쟁을 직면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늙은 연배(수 13:1) 로 인해 공존하도록 허락하셨던 열방들은, 지금은 너무나 어리기에 승리를 거두던 여호수아의 군대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던 세대를 만나고 있다. 이 세대는 여호수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계속해서 “야웨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주시마 맹세하셨고 그 조상들이 소유했고 그 안에서 살았던 바로 그 땅 전체를 이스라엘에게 주셨노라고"(수 21:43) 증거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가나안의 역사와 종교가 갖는 매력에 굴복하면서 거룩한 전쟁을 배우지 못한 채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서 정착할 것인가?

 

 

 



 

와이흐이우 레낫소트 밤 엩 이스라엘 라다아트 하이쉬메우 엩 미츠오트 아도나이 아쉘 치와 엩 아보탐 베야드 모쉐

 

개역개정,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새번역,4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과연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이다.
우리말성경,4 이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의 조상에게 명령하신 여호와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는지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남겨 두신 민족들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4 이 민족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시려는 것이었다.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에 순종하는지를 알아보시려는 것이었다. 
영어NIV,4 They were left to test the Israelites to see whether they would obey the LORD'S commands, which he had given their forefathers through Moses.
영어NASB,4 And they were for testing Israel, to find out if they would obey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which He had commanded their fathers through Moses.
영어MSG,4  They were there to test Israel and see whether they would obey GOD's commands that were given to their parents through Moses.
영어NRSV,4 They were for the testing of Israel, to know whether Israel would obey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which he commanded their ancestors by Mose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εγενετο ωστε πειρασαι εν αυτοις τον ισραηλ γνωναι ει ακουσονται τας εντολας κυριου ας ενετειλατο τοις πατρασιν αυτων εν χειρι μωυση
라틴어Vulgate,4 dimisitque eos ut in ipsis experiretur Israhelem utrum audiret mandata Domini quae praeceperat patribus eorum per manum Mosi an non
히브리어구약BHS,4 וַיִּהְיוּ לְנַסֹּות בָּם אֶת־יִשְׂרָאֵל לָדַעַת הֲיִשְׁמְעוּ אֶת־מִצְוֹת יְהוָה אֲשֶׁר־צִוָּה אֶת־אֲבֹותָם בְּיַד־מֹשֶׁה׃

 

 

󰃨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 여기서 말하는 시험의 뜻은 1절에서 말하는 시험의 뜻과는 다르다. 1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시험'이란 2:22에서 의미하듯 열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혀 그들의 신앙을 재확립케 하는 연단 내지 검증 과정을 가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22 주석을 참조하라.

󰃨 모세로...명하신 명령들 - 2:22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와 같은 말이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2:22 주석 참조.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남겨 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하셨더라 -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해서 있었다’가 된다. 이처럼 한글 개역 성경과는 달리 원어 성경에는 ‘남겨 두신’ 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 그리고 ‘레낫쏘트(시험하사)'는 본문에서 강의형(Piel)으로 사용되어서 강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과 동일한 ‘시험하다'란 단어가 본절을 전후한 여섯 절 안에서(2:22-3:4) 무려 세 번이나(2: 22; 3: 1, 4) 집중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반복을 통해 본서 저자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 안에 있는 족속들을 쫓아내지 않은 것이 의도적인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 속에서 우리가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누가 주체이고 누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스라엘 주위의 가나안 열국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선정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가나안의 역사를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 세상의 역사가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역사의 부산물로, 아니면 세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 집단 정도로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그러한 평가를 받을 대상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역사의 중심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 여호와께서...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 '명령들'에 해당되는 ‘미츠오트’ 와 ‘명하신’에 해당되는 ‘치와'는 모두 ‘차와’ 라는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단어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는 동일한 어원을 가진 단어를 명사와 동사로 두 번 반복해서 사용함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사
실과 더불어 그 내용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것은 다른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규율이나 법률과는 다른 것으로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지금까지 지켜오신 하나님이 그 권위와 위엄으로 내리신 명령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당연히 이 명령에 복종해야 했었다.

󰃨 모세로 - ‘빼야드’ 는 전치사 ‘빼'와 ‘손(hand)'을 의미하는 명사 ‘야드'가 결합된 전치사구이다. ‘빼'는 여기에서 ‘~안에’ 라는 뜻을 나타낼 수도 있고, ‘~을 통해서’라는 뜻을 나타낼 수도 있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모세의 손안에’, 혹은 ‘모세의 손을 통해서’가 된다. 즉, 모세를 중보자로 사용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령을 전달했다고 할 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세의 손안에 놓여진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의 명령을 전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으로 요약되고, 율법은 또다시 십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 저자는 더욱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인 십계명을 상기시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지켜야 할 명령의 명확성을 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추상적으로 막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주어졌던 것이다.

 

* WBC 주석

󰃨 주석가들은 시험을 전쟁과 연결시키는 앞의 구절들과 이 구절을 너무 쉽게 대조한다. 이 전쟁이라는 시험은 “야웨께서 모세의 손을 통해 그들 조상들에게 명령하셨던 야웨의 계명들”에 대한 순종이라는 측면에서 규정된다. 여호수아 1:7-8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만약 그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계명들에 주의 깊게 복종하라고 가르치셨다. 사사기 2: 17 에서 조상들에게 주어진 계명들은 잘못된 숭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여기서 계명들은 신명기 율법이 그러했던 것처럼(신 7:1-5; 20:16-18) 잘못된 숭배를 금지하는 계명들에다가 거룩한 전쟁에 관한 율법을 하나로 묶는다. 사사기의 나머지 부분들은, 비록 사사기의 이 지점에서부터 “ 계명들”과 “모세”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사라지기는 하지만, 전쟁과 하나님을 향한 경배에 순종하라는 이 명령하에 진행된다.

 

 

 



 

우베네 이스라엘 야쉐부 베케렙 하케나아니 하힡티 웨하에모리 웨하프리지 웨하히위 웨하예부시

 

개역개정,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새번역,5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함께 섞여 살았다.
우리말성경,5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히위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가톨릭성경,5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과 섞여 살게 되었다. 
영어NIV,5 The Israelites lived among the Canaanites, Hittites, Amorites, Perizzites, Hivites and Jebusites.
영어NASB,5 And the sons of Israel lived among the Canaanites, the Hittites, the Amorites, the Perizzites,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영어MSG,5  But the People of Israel made themselves at home among the Canaanites, Hittites, Amorites, Perizzites, Hivites, and Jebusites.
영어NRSV,5 So the Israelites lived among the Canaanites, the Hittites, the Amorites, the Perizzites,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οι υιοι ισραηλ κατωκησαν εν μεσω του χαναναιου και του χετταιου και του αμορραιου και του φερεζαιου και του ευαιου και του ιεβουσαιου
라틴어Vulgate,5 itaque filii Israhel habitaverunt in medio Chananei et Hetthei et Amorrei et Ferezei et Evei et Iebusei
히브리어구약BHS,5 וּבְנֵי יִשְׂרָאֵל יָשְׁבוּ בְּקֶרֶב הַכְּנַעֲנִי הַחִתִּי וְהָאֱמֹרִי וְהַפְּרִזִּי וְהַחִוִּי וְהַיְבוּסִי׃

 

 

󰃨 마침내...거하여 -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수없이 반복하여 주신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족속들을 다 진멸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거나 통혼치 말며 우상 숭배치 말라는 것이었다(출 34:10-17 ; 신7:1-5 ; 수 23:11-26). 그리고 그에 불순종할 시 따르는 징벌에 대해서도 익히 일러주셨다(신 28:15-68). 그러나 이 모든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려하던 죄악에 빠지고 만다. 즉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용납한 결과(1:19,21,27-36)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6절).

󰃨 가나안 사람과...여브스 사람 - '기르가스 족속'(신 7:1)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라 불리우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에 거주하던 자들로서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도 불리웠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과 수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참조하라.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 원어 성경에는 한글 개역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마침내’ 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 그러나 한글 개역 성경은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침내' 라는 부사를 첨가해 본절을 번역하였다. 본절은 주어가 동사 앞에 사용되는 도치 구문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번역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와우' 접속사로 이끌어지고 있는데, 이 와우는 앞단락의 결과를 묘사하는 ‘그래서, 그 결과 (RSV, 80)'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에도 이러한 번역이 가능하다. 1:1 - 3:6까지 계속되는 사사기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실태와 신앙의 변질을 보여 주는 이러한 내용이 수록된 것은 앞으로 전개되는 사사 시대의 역사가 암울할 것임을 잘 보여 준다. 바로 앞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하여 가나안 거민을 그 땅에 남겨 두셨는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거민들 사이에 깊숙이 자리잡아 그들과 동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 사이에 거하여 - ‘사이에’로 번역된 ‘빼케레브’는 ‘~안에 (in) ’ 라는 뜻의 전치사 ‘빼’와 ‘가운데’ , ‘내부’ , ‘중심’ 등으로 번역되어 사물이나 몸,그리고 어떤 공동체의 가장 깊숙하고 중심되는 부분을 가리키는 명사 ‘케레브'가 결합된 전치사구로서 ‘가운데 안에’로 직역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거민들을 중심으로 공간적으로 내부 중앙에 거했다는 의미보다는 가나안 거민들의 풍습과 종교와 사상과 가치관 속으로 깊이 함몰되어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도, 그들 앞에 빛을 비추지도(마 5:14-16) 못하고, 오히려 그들과 타협하여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그들 사이에 묻혀 살았던 것이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섯 족속에 대하여는 출 3:8의 셜명을 참조하라.

 

* WBC 주석

󰃨 편집자는 요약적으로 이 시험들의 결과에 대해서 알려 주는데, 이 결과들은 사사기의 나머지 부분 전체를 지배한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순종하는 대신, 그리고 대적들을 파괴하는 대신 대적들과 함께 지낸다. 아미트(Amit)가 바라보듯이 “장로들의 시대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가나안 사람들을 정복하고 있었지만, 사사들의 시대 동안에는 동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Book of Judges, 157).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얼마나 나태했으며. 또한 그들 자신들을 이방 족속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데 얼마나 순응시켰는지를 그려낸다. 여기서 연대기적인 관점은 지나간 세대인 여호수아 이후의 첫 번째 세대를 길에 늘어뜨려서 이스라엘이 지금도 계속적으로 겪고 있는 경험을 묘사한다. 그들은 거룩한 전쟁이라는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적들을 쫓아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통적인 가나안 거주민들 목록에 나오는 민족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이 목록이 그들 주변의 열방들이 아니라 이전에 가나안 중심부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열방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여기서의 가나안 사람들은 3 절에 나오는 의미가 아니라 1 장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대 문헌에서의 헷 사람은 오늘날의 보가즈코이(Bogazkoy ) 지역인 하투샤(Hattusha) 도시에서 주전 1750년경부터 최소한 118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나툴리안(Anatolian) 왕국을 지칭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헷 사람들은 계속해서 카케미쉬(Carchemish)와 타르훈타샤(Tarhuntasha)를 통치했다. 그러므로 헷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이름을 시리아에 남겨두었는데, 왜냐하면 앗수르의 기록들은 그 지역을 하티(Hatti) 라고 지칭했기 때문이다. 분명 헷 사람들 역시 팔레스타인에 건너와서 정착했으며, 그 곳 사회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모리 사람들에 대해서는사사기 1:34에 대한 “주석” 을보라. 브리스 사람들(창 13:7, 15:20; 34:30: 출 3:8 , 17: 23:23: 33:2; 34:11 : 신 7: 1: 20: 17 ; 수 3: 10: 9: 1: 11 :3: 12:8: 17: 15: 24: ll: 삿 1 : 4-5: 3:5: 왕상 9:20: 대하 8 : 7; 스 9: ]; 유딧서 5:16 ; 에스드라 1서 8:69 ; 에스드라2서 1: 21)은 요셉 지파들의 땅인 사마리아 산지들에 살았다(수 17: 15).

  여부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통치했다(창 10:16: 15:21: 출 3 : 8, 17; 13 : 5; 23:23 ; 33 :2; 34 :11; 민 13 :29; 신 7: 1: 20 : 17 ; 수 3:10 ; 9:1; 11 :3: 12:8; 15: 8, 63 ; 18:16 : 24:11; 삿 1:21 ; 3:5 ; 19 :11 ; 삼하 5 :6, 8; 왕상 9:20: 대상 1: 14:11 :4, 6: 대하 8: 7; 스 9 : 1: 슥 9:7 ; 유딧서 5: 16; 에스드라 1서 8:69).

 

 

 



 

와이케후 엩 베노테헴 라헴 레나쉼 웨엩 베노테헴 노테누 리베네헴 와야아베두 엩 엘로헤헴

 

개역개정,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새번역,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 여러 민족의 딸을 데려다가 자기들의 아내로 삼았고, 또 자기들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
우리말성경,6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삼고 자기 딸들도 그들의 아들들에게 아내로 주면서 그들의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들은 그 민족들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또 저희 딸들을 그 민족들의 아들들에게 아내로 내주었다. 그러면서 그 민족들의 신들을 섬겼다. 
영어NIV,6 They took their daughters in marriage and gave their own daughters to their sons, and served their gods.
영어NASB,6 and they took their daughters for themselves as wives, and gave their own daughters to their sons, and served their gods.
영어MSG,6  They married their daughters and gave their own daughters to their sons in marriage. And they worshiped their gods.
영어NRSV,6 and they took their daughters as wives for themselves, and their own daughters they gave to their sons; and they worshiped their gods.
헬라어구약Septuagint,6 και ελαβον τας θυγατερας αυτων εαυτοις εις γυναικας και τας θυγατερας αυτων εδωκαν τοις υιοις αυτων και ελατρευσαν τοις θεοι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6 et duxerunt uxores filias eorum ipsique filias suas eorum filiis tradiderunt et servierunt diis eorum
히브리어구약BHS,6 וַיִּקְחוּ אֶת־בְּנֹותֵיהֶם לָהֶם לְנָשִׁים וְאֶת־בְּנֹותֵיהֶם נָתְנוּ לִבְנֵיהֶם וַיַּעַבְדוּ אֶת־אֱלֹהֵיהֶם׃ ף

 

 

󰃨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 과거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지 조항을 이제 이스라엘이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 조항이란 곧 신 7:3,4에 나오는 이방인과의 통혼(通婚) 금지 명령이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와 그것을 어졌을 경우의 결과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다. 먼저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므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 금지 조항을 어긴 데 대한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의 돌연한 멸망이다. 사실 그릇된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사항이다. 심지어 성경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그들이 갖고 온 우상을 섬기고 마는 과오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왕상 11:1-8). 또한창 6:1-5은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모하여 결혼한 결과 세상에 관영한 죄악에 물들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 이러서도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는 권도(勸導)가 주어지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고후 6:14).

󰃨 그들의 신들 -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준 가나안 종교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 즉 라스 솨마라서판(Ras Shamra)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엘'(El) 신, 그의 아들인 '바알'(Baal) 신, 바알의 누이이며 아내인 '아낫'(Anath) 신이 있다. 그리고 일명 '호론'(Horon)으로도 불리운 바알의 원수인 '못'(Mot)과 바다를 주관하는 '얌'(Yam) 일명 '리워야단'(Lotan) 신이 있다. 또한 아낫과 함께 가나안의 3대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taroth)신 등도 언급되어 있다(F. M. Cross). 그 외에도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중요한 가나안 신으로서는 블레셋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 성격이 비슷하여 바알과 이명 동신(異名同神)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솨마라 지방에서 바알신을 '다곤신의 아들'(The Son of Dagon)로 부르기도 했던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I.D.B.). 또한 라스솨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상 11:5) 등으로도 불리운 암몬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제반 신들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과 본서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아뭏든 이처럼 다양한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나안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하는것도 한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 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바드'(*)는 단지 생각이나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몸과 인격 전체를 바쳐 섬기는 종교적인 섬김(Service)을 의미한다(Lange). 그러므로 70인역(LXX)은 이 말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레이투르게인'(*) 즉 '예배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 원어 성경의 본문에는 3 인칭 복수 대병사 접미어가 무척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혼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뒤섞여 있다. 게다가 본문에 두번 나오는 ‘빼노테헴'은 동일한 단어인데도 한글 개역 성경은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는 단어, 즉 ‘그들의 딸들’ 과 ‘자기 딸들’ 로 번역하고 있다. 원어 성경의 대명사 접미어를 그대로 반영해서 본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딸들을 그들을 위해서 아내들로 취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혹은, 그들의 아들을 위해서) 주었다’ 이처럼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거민’ 둘 다 ‘그들’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나안 거민들을 동일한 인칭 접미어로 표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거민들이 서로 구분할 수조차도 없을 정도로 결합되고, 섞여서 살고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는 문학적 기교라 할 수 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선택하신 거룩한 백성’ (출 19:5 , 6) 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가나안 거민의 삶 가운데 깊이 들어감으로 결국 도저히 구분해 낼 수 없는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구나 가나안 거민과는 절대로 통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정한 명령(신 7: 3) 을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쉽게 저버렸던 것이다.

  한편 불신앙적이고도 무절제한 혼합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 원어 성경은 뚜렷하게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한글 개역 성경에서 ‘삼으며’로 번역되었으나 ‘그들을 위하여’로 직역되는 ‘라헴’이라는 단어가 혼합 결혼의 목적임을 잘 보여 준다. 또 다른 것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그들의 아들에게’ 라고 번역하고 있는 ‘리브네헴’ 이라는 단어이다. ‘리브네헴’ 에 사용된 전치사 ‘레’는 본문에서 ‘~ 을 위하여(for) ’ 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므로 이는 ‘그들의 아들들을 위해서’ 라는 의미이다. 이상의 두 가지 표현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방 민족과의 결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나 이방 민족들에 있어서나 모두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목적 아래 행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과 교류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욕구와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선택한 삶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여호
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고 썩어질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드는 유혹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 본문을 이끄는 접속사 ‘와우’는 ‘와우 계속법’으로 사용되어서, 앞문장과의 긴밀하고 급박한 연결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통혼함으로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가 바로 본문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와우 계속법 을 사용함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사람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던 이유는 통
혼을 통해 가나안 사람들이 자연스레 이스라엘 자손을 유혹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가나안의 토속신들에게 향하게 하고 하나님을 버리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신 7:3, 4),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에 있어서 신앙의 유무(有無)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할 때 신앙이 약해지거나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다시 회복하더라도 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럼에도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적인 판단으로 불신자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 6: 14).

 

* WBC 주석

󰃨 이스라엘의 두 번째 실패는 율법의 두 번째 사항에 대한 것이다: 우상 숭배를 가져온 혼합 결혼. 여호수야는 그들에게 이 점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경고했었지만(수 23:12-13) , 여호수아 사후의 이스라엘은 그 말을 청종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솔로몬의 정치적인 정략 결혼보다 더한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 주었는데, 즉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모습, 분리됨과 독특한 유일함이라는 인식을 버린 모습, 그리고 열방들과 비슷해지고자 하는 정체성이다. 이스라엘은 그들 안의 거의 전멸당한 지파와 결폰하는 것만을 거부했다(21:1 ).

 

 

 



 

와야아수 베네이 이스라엘 엩 하라 베에네 아도나이 와이쉬케후 엩 아도나이 엘로헤헴 와야아베두 엩 하베아림 웨엩 하아쉐로트

 

개역개정,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새번역,7 이스라엘 자손이 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우리말성경,7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했습니다. 
가톨릭성경,7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 저희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겨,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영어NIV,7 The Israelites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they forgot the LORD their God and served the Baals and the Asherahs.
영어NASB,7 And the sons of Israel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forgot the LORD their God, and served the Baals and the Asheroth.
영어MSG,7  The People of Israel did evil in GOD's sight. They forgot their GOD and worshiped the Baal gods and Asherah goddesses.
영어NRSV,7 The Israelites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forgetting the LORD their God, and worshiping the Baals and the Asherahs.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εποιησαν οι υιοι ισραηλ το πονηρον εναντι κυριου και επελαθοντο κυριου θεου αυτων και ελατρευσαν ταις βααλιμ και τοις αλσεσιν
라틴어Vulgate,7 feceruntque malum in conspectu Domini et obliti sunt Dei sui servientes Baalim et Astharoth
히브리어구약BHS,7 וַיַּעֲשׂוּ בְנֵי־יִשְׂרָאֵל אֶת־הָרַע בְּעֵינֵי יְהוָה וַיִּשְׁכְּחוּ אֶת־יְהוָה אֱלֹהֵיהֶם וַיַּעַבְדוּ אֶת־הַבְּעָלִים וְאֶת־הָאֲשֵׁרֹות׃

 

󰃨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카흐'(*)의 기본 뜻은 '잘못 놓다'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 마음 바깥에 내다 놓으므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망각한 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마음 중심에 여호와가 아닌 다른 것을 모시고 살 때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 바알들과 아세라들 - 여기서 '바알'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관장하던 가나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 어머니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참조하라.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형으로서 신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을 들 수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창 1:1 주석 참조. 둘째, 이것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던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 주석을 참조하라.

 

* 그랜드 주석

본절에서 11절까지는 옷니엘 사사에 의한 구원의 역사가 짧게 취급되어 있다.

󰃨 악을 행하여 - 하나님의 율법에 역행하는 행위가 곧 악으로 표현된다. 구체척으로 여기서는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한 행위를 일컫는다.

󰃨 아세라들 - 제의를 실행하는 성소나 제의 처소에 세워두었던 나무로 만든 기둥형태의 목상을 말한다. 보통 이 목상은 바알 신상의 맞은편에 서서 풍요의 여신인 아스다롯 여신을 상징했다. 여기서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은 바알 신이 여러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섬겨졌듯이(삿 2: 11 주석 창조), 아세라 목상도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로 섬겨졌음을 말한다.

 

* 옥스퍼드 주석

󰃨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 본절로부터 16:31까지는 14명에 이르는 개별 사사들의 활약상이 지역별로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사들은 과거 모세나 여호수아 그리고 왕정 시대의 왕들과 같이 이스라엘 전체를 인도하고 통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출신 지역이나 관련된 지파만을 인도했다. 본절부터 31 절까지는 그 가운데서 남부 지역에서 활동한 사사들의 사역을 소개하며 특히 11 절까지는 옷니엘의 활약상이 기록되었다. 특히 옷니엘에 대한 기사는 다섯 절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록이지만 여기에는 사사 시대 이스라엘 역사의 전형적인 구조인 ‘범죄→징계→회개→구원→망각→재타락’ 의 사이클 (cycle) 이 매우 선명하게 나타나며, 사사라는 직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 주므로 옷니엘은 이후에 나오는 다른 사사들의 모텔이 되는 전형적인 사사라 부를 수 있다. 본문에는 바로 사사기 전체의 순환 패턴 가운데 첫번째 부분인 이스라엘의 악행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서 ‘악’ 으로 번역 된 ‘하라’는 정관사 ‘하'와 ‘사악한’ , ‘해로운’ 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 ‘라'가 결합된 형태로 ‘사악한 것’ 또는 ‘해로운 것’ 을 의미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행한 악이 하나님을 향하여는 사악한 것이고, 자신들에게는 해로운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정관사 ‘하’는 악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는 다른 여러 가지의 악을 가리키기보다 구체적인 악을, 즉 문맥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우상 숭배를 행한 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여호와 목전에’로 번역된 ‘뻬에네 예흐와’는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들 안에서’가 된다. 이러한 표현은 여호와의 눈 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하는 악한 모습들이 사진으로 찍히듯이 찍혀서 명백하게 드러난 것을 보여 주고 있다.

󰃨 잊어버리고...섬긴지라 - 본문의 두 단어는 서로 형태면에서 그리고 내용면에서 대구를 이루고 있다. 둘 다 와우 계속법에 동사의 미완
료형을 사용하고 있으며, 동일한 인칭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내용면에서 볼 때, 하나님을 잊는 것과 다른 우상을 섬기는 문제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신을 섬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유한한 인간은 항상 무한한 신적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섬기면서 살아가는 종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만큼 우리는 더욱 악에 가까이 가고 우상 숭배의 가능성에 더욱 많이 개방된다. 물론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고 하여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완전히 망각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있었으나 가나안의 우상도 섬김으로 하나님 유일 신앙을 저버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대적인 다신론적 신앙을 결코 용납지 않으시며 이를 자신을 잊어버린 것으로 간주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 ‘합베알림’의 원형 ‘빠알'은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의 신으로서, 폭풍과 바람을 주관한다고 믿어졌으며 농경신이었다. 그리고 ‘하아쉐로트’의 원형 ‘아쉐라'는 ‘행운’ 또는 ‘기둥’ 이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의 여신으로서 풍요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졌으며, 주로 나무로 만든 기퉁 형태의 우상이었다. 본문에서 바알과 아세라가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수많은 우상들을 자신들의 삶 가운데 가지고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 WBC 주석(7-8절)

󰃨 이제 우리는 사사기의 첫 번째 스토리를 만나게 된다. 이 스토리는 독특하고 낯설다. 왜냐하면 이 스토리는 사사기 2:11-23 에서부터 가져온 골격에다가 구체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름들만을 덧붙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사기 3:7 = 사사기 2:11-13
사사기 3:8 = 사사기 2: 14
사사기 3:9 = 사사기 2: 16
사사기 3: 10 = 사사기 2: 18
사사기 3: 11 = 사사기 2:18-19

  아미트(Amit)는 “옷니엘 문단이 사사기 내에서 구조적 구문들(구조를 보여 주는 구문들)에 가장 많이 집중하는 문단임을 발견한다"(Book of Judges, 163). 이 문단은 패턴화되어 있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다가 새로운 한 요소가 등장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셨지만(신 4: 23) ,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언약을 잊어버리는 행동을 했다(삿 2: 2).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건져 주신 야웨를 잊어서는 안 된다(신 6: 12) . 잊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데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8: 11 ; 그리고 삿 3:5 - 6을 보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만들어 낸다(신 8: 14).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주 분명한 결과를 초래한다: 네가 형벌을 받을 것이다(신 8: 19). 여호수아 사후와 관련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처음 시작 문구는 “그들이 야웨를 잊었다" (삿3: 7) 는 것이다. 왕조 시대 이전 시기, 즉 사사기 시대 전체에 대한 요약은 "그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인 주를 잊어버렸다"(삼상 12 :9, NRSV) 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약적 진술들 사이에는, 비록 심판과 관련된 아무런 구체적인 표현들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모든 증거가 자리 잡고 있다. 신명기적 경고가 여전히 백성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이미 앞부분에서 논의했던 바알과 아세릇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끌고 간다. 아세롯(Asheroth)은 아세라의 복수 형태인데, 이 신은 2: 13 에 나오는 아스다롯과는 전혀 별개인 가나안 여신이다. 이 여신은 나무 기둥을 통해 대표되는 풍요의 여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배워 가면서 아세라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신들을 상정하고 보여 주는 기호와 상징물들을 다 찢어 버리고 없애야만 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언약 사항들을 따라야만 했다(출 34: 13: 신 7:5: 12:3). 아세라 숭배가 야웨 제의를 침공해 들어왔다는 데 위험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 틀림없어 보이며, 혹은 이런 행동에 반하는 율법들이 별다른 실효성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신 16: 21: 그리고 왕하 23: 6, 15 과 비교하라) . 기드온은 자기 아버지의 바알 제단과 아세라 상을 찍어내야만 했다(삿 6:25). 타아낙(Taanach)에서의 고고학적인 발굴은 아세라에 관한 좀 더 분명한 상정과 모습을 제공해 주었다. 실제로 고고학적인 발굴들은 매튜스(Matthews)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깜짝 놀랄 만한 결론에 다다르게 해 주었다.

  아세라는 우가릿 사람들의 여신이자 바알의 배우자인 아티라트(Athirat)와 통일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엘(El)의 여러 특성들을 차용해다가 야웨에게 부여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세라를 야웨의 배우자로 보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렇게 주장하는 입장은 쿤틸렛 아즈루드(Kuntillet Ajrud) 에서 발견된 그림들과 비문들을 통해 더 강화되었거나 혹은 최소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는데 , 이 고고학적 발견들에는 '야웨와 그의 아세라에 의하여'라는 구문이 들어 있었다…주변인적인 환경 속에서 날마다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벌여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아마도 야웨는 물론이고 가나안의 여신이나 혹은 그녀의 제의적 대상을 동시에 부르고 섬기는 것이 별로 부조화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80).

  패트릭 밀러는 아세라를 어떤 식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본문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았는데, 그는 이 본문에 대해서도 본문상의 오류이며 원래는 아세라가 아니라 아스타테를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야웨 안에 담겨 있는 신적인 특성들, 역할들 그리고 권능들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여신 숭배를 통해 나타나던 신성의 여성적 차원과 통합되어 흡수되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런 양상이 초창기 때부터 일어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이 자료가 “여성적인 차원이 아직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여전히 인정한다(30) . 그는 “ 이스라엘에서는 아세라 여신을 따로 구별해서 숭배하던 경배는 없었으며, 특정한 형태로 만들어진 아세라 상(나무로 만든 상) 같은 경우엔 극단적인 야웨주의자인 예후 같은 사람으로부터 수용될 수 있었다는 점을 발견한다"(35). 그는 이런 제의적 상징은 쉽게 모종의 여신과 동일시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아세라는 특히나 뜨개질이나 요리 등과 같이 일상적인 가정 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야웨를 인격화시키거나 야웨께 나아가는 중재적 역할”을 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야웨는 여성 신으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40).

  이 부분에 대한 밀러(Miller)의 묘사는 너무 궤변적이어서 실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과 성경 외적인 증거들은 야웨를 경배하는 것과 더불어 여성 신을 경배하는 것을 지시해 주고 있는데 , 이런 경배는 분명하게 풍요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기둥을 통해 대표적으로 제시되는데, 이 기둥은 나무와 성장하는 것들을 상징한다. 어떤 지역들에서는 심지어 야웨를 경배함에 있어서도 이 상징만을 사용했을 수
도 있다. 다른 지역들에서는 여신 그 자체를 제의 안에다가 개별적인 신으로서 통합시키거나 혹은 야웨의 파트너나 배우자로 통합시키곤 했다. 아스타테(Astarte)는 야웨 제의 바깥쪽에서 매우 강력한 개별적인 여신으로 머물렀던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반면에 아세라는 그녀를 섬기는 기둥과 지역적인 가사 활동의 관습을 통해 야웨 제의 그 자체 안에서 자기 자신만의 강력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스라엘은 야웨께서 주신 약속들, 명령들을 잊어버린 채 바알과 아세리를 섬겼으며, 심지어 원래부터 야웨께 바쳐진 장소들에서조차 이런 일들을 했다.

  승리에 관한 스토리가 들려지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행동을 보여 주는 그 어떤 동사도 등장하지 않으며 , 그 어떤 인물이나 해결되어야만 하는 내러티브의 긴장도 제시되지 않고 또한 그 어떤 클라이맥스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내용은 2장에서 제시된 골격 내용을 완벽하게 제시해 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이 내용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내용들은 이제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 스토리의 악인인 구산 리사다임조차도 무언가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이름인데, 그의 이름은 두 배나 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아람-나하라임이라는 먼땅에서부터 왔는데(창 24: 10: 시 60편 제목) , 그 곳은 두 개의 강이 있는 시리아 지역이다. 레이니는 여기에 제시된 이 이름이 수수께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서, 아람으로 대표되는 북동쪽 지역이 아니라 남쪽 지역에서 그 위치를 찾고자 한다.

  아람-나하라임은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테스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지역으로 확장해서 하란, 나홀, 베톨 등의 성읍들도 포함하는 지역이다. 주전 1500년에서 100년 사이의 이집트 자료들과 아마르나 서신 등은 이 지역에 대해서 나하라임("강들 사이")이라고만 언급한다(w. T. Pitard, ABD, 1:341). 70 인경에서는 “메소포타미아”라고 번역했으며, 신명기 23:4과 역대상 19:6을 본문
의 목록에 첨가했다. 표면상으로만 보자면, 이 본문은 3:3 에 나오는 경계선을 이후에 다윗이 그쪽 방향으로 정복했던 지역들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리사다임”이나 혹은 “나하라임”이라는 표현이 덧붙여지면서, 이 표현들은 대적들에게 두려움, 낯 섬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차원을 더 담게 해준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부터 사악한 왕이 왔다는 묘사는 신명기 28:49-50에 나오는 경고적인 위협
을 성취시켜 준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지명하여 보내 주신 구원자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왕인 어둡고 두 배나 악한 왕 사이의 전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사사기가 리더십과 관련하여 제공하는 여러 단서들 중 하나를 보여 주며, 좀 더 정확하게는 사사기가 나타내 주는 왕권에 관한 단서를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와 만나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 두 배나 악한 왕은 자기 자신의 길을 가며,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이 땅에 속한 방식을 취하는 사람이다. 8년 간의 통치라는 연대기적인 기록은 사사기에 나오는 20. 40. 80년이라는 다른 여러 도식적인 연도들과는 달리 이 스토리에 박진감을 더해 준다(서론에 나오는 “사사기의 연대에 관한 서론”을 보라) . 연대와 관련된 이와 같은 표시는 16:31에 이르기까지 사사기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며, 이런 점은 연대와 관련된 이런 표시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 주고 또한 17-21 장이 내러티브들에 대한 에필로그임을 나타내 준다. 웹(Webb)이 이 상황에 대해 표현하듯이 “이방신들을 섬기기로 선택한 사람들(7d절)은 이방 독재자를 섬기게 된다"([1987] 128).

 

 

 



 

와이하르 아프 아도나이 베이스라엘 와이므케렘 베야드 쿠솬 리쉬아타임 멜렠 아람 나하라임 와야아베두 베네이 이스라엘 엩 쿠솬 리쉬아타임 쉐모네 솨님

 

개역개정,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새번역,8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게 분노하시고, 그들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넘겨 주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리사다임을 여덟 해 동안 섬겼다.
우리말성경,8 이스라엘에 대해 여호와의 분노가 불타올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메소포타미아 왕인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아 넘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8년 동안 구산 리사다임을 섬겼습니다. 
가톨릭성경,8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아람 나하라임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덟 해 동안 쿠산 리스아타임을 섬겼다. 
영어NIV,8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Israel so that he sold them into the hands of Cushan-Rishathaim king of Aram Naharaim, to whom the Israelites were subject for eight years.
영어NASB,8 Then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Israel, so that He sold them into the hands of Cushan-rishathaim king of Mesopotamia; and the sons of Israel served Cushan-rishathaim eight years.
영어MSG,8  GOD's hot anger blazed against Israel. He sold them off to Cushan-Rishathaim king of Aram Naharaim. The People of Israel were in servitude to Cushan-Rishathaim for eight years.
영어NRSV,8 Therefore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Israel, and he sold them into the hand of King Cushan-rishathaim of Aram-naharaim; and the Israelites served Cushan-rishathaim eight years.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ωργισθη θυμω κυριος εν τω ισραηλ και απεδοτο αυτους εις χειρας χουσαρσαθωμ βασιλεως συριας ποταμων και εδουλευσαν αυτω οκτω ετη
라틴어Vulgate,8 iratusque Dominus contra Israhel tradidit eos in manus Chusanrasathaim regis Mesopotamiae servieruntque ei octo annis
히브리어구약BHS,8 וַיִּחַר־אַף יְהוָה בְּיִשְׂרָאֵל וַיִּמְכְּרֵם בְּיַד כּוּשַׁן רִשְׁעָתַיִם מֶלֶךְ אֲרַם נַהֲרָיִם וַיַּעַבְדוּ בְנֵי־יִשְׂרָאֵל אֶת־כּוּשַׁן רִשְׁעָתַיִם שְׁמֹנֶה שָׁנִים׃

 

󰃨 메소보다미아 -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Euphrates) 강과 티그리스(Tigris)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그처럼 북방에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팔레스틴' 가장 남쪽 지파인 유다의 지도자 옷니엘과 싸우기에는 그 거리상 지나치게 멀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9,10절). 때문에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이 메소보다미아를 가리킬 때 주로 북방 메소보다미아를 의미했지만 간흑 그것은 오론테스(Orontes)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틴 북방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 옷니엘의 싸움에 별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 구산 리사다임 -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창 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ary, Vol. II, p. 293).

󰃨 손에 파셨으므로 -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로서 사람을 노예로 파는 것(신 21:14 ; 28:68)을 가리킨다. 2:14 주석 참조. 그런데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사 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 '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 그랜드 주석

  본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긴데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기록하고 있다.

󰃨 메소보다미아 - 시리아를 뜻하는 '아람'과 강을 뜻하는 ‘나하르’의 복수형이 사용되어 ‘두강의 아람’을 뜻한다. 메소포타미아는 앗시리아, 바벨론이 다스렸으며 보통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중심으로 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일컫는다. 그런데 본절의 문제는 옷니엘과 싸우는 구산 리사다임의 출전지가 너무 멀다는데 있다. 그래서 혹자는 히브리어로 ‘아람’과 '에롬'이 철자상 비슷한 것으로 보아 ‘에롬’이 아람으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하여 ‘에롬’이라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의 왕이 가나안에 침입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NEB. NIV는 ‘메소포타미아’로 역 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를 표기하여 '아람 나하라임'이라 역 하여 '두 강의 아람'이란 의미를 살리고 있다. 그리고 LB는 '동부 시리아'로 역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강의 아람'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뜻하기 보다는 유프라테스 강 남서쪽의 오른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동북부 시리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메소포타미아는 앗시리아, 바빌로니아의 본 영토가 있는 곳이기 보다는 북부와 동부 시리아로 부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 구산 리사다임 - 아라비아 지역의 지명인 '구산'과 '사악하게', '범죄' 등을 의미하는 '레솨'의 복수형인 '리슈아타임'의 합성어로 '배나 사악한 구산'의 의미이다. 이 이름은 구산 왕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여 고통을 주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편 '구산'이란 이름은 창 10:8에 따라 바벨론의 왕인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나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 손에 파셨으므로 - 소유권을 넘긴다는 의미이다.

 

* 옥스퍼드 주석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 본문은 이스라엘의 악행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서 한글 개역 성경은 ‘이스라엘에게’라고만 번역함으로 ‘빼이스라엘’에서 사용된 전치사 ‘빼'의 정확한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본문에서 ‘빼’ 는 ‘대항하여(agaÍnst) ’ 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빼이스라엘’ 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을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반영해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의 코(얼굴)가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뜨거워졌다’가 된다. 이는 화가 난 사람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며 뜨거운 콧김을 뿜어 내는 모습을 언어로 옮긴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게 불타올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 '리쉬아타임(리사다임)’ 은 ‘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리쉬아'의 복수형이므로 ‘구솬 리쉬아타임'은 ‘죄들의 구산’, ‘범죄를 많이 저지른 구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이 왕이 얼마나 악한 왕이었는지를 암시하며, 이 왕에 의해 점령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도 짐작하게 한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 ‘메소보다미아’ 라고 번역하고 있는 ‘아람 나하라임’에서 ‘아람’ 은 지명이며, ‘나하라임’은 ‘강(river)’을 뜻하는 ‘나하르'의 쌍수형으로서 ‘두 강’ 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람 나하라임'은 ‘두 강들의 아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지역을 한글 개역 성경이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바벨론과 앗수르가 발흥한 ‘메소보다미아’로 이해할 때 그 출전지가 너무 멀다는 사실이다. NEB나 NIV, NRS는 이런 이유로 메소보다미아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Aram -naharaim’ 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이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 남서쪽의 오른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동북부 시리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섬겼더니 - 원어로 볼 때 본문의 형태는 제 7절에 나오는 ‘섬긴지라’ 와 완전히 동일하며, 이를 직역하면 ‘그리하여 그들을 섬겼다’ 이다. 본서의 저자가 이처럼 제 7절에서 사용한 단어와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이방 왕 구산 리사다임을 섬긴 사실을 기록한 것은 이 일이 바로 제 7절에 나오는 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를 섬긴 결과 임한 형벌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 WBC 주석(위와 동일)

 

 

 



 

와이즈아쿠 베네이 이스라엘 엘 아도나이 와야켐 아도나이 모쉬아 리베네 이스라엘 와요쉬엠 엩 오트니엘 벤 케나즈 아히 칼렙 핰카톤 밈멘누

 

개역개정,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새번역,9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다.
우리말성경,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갈렙의 동생이자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세우시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그가 곧 칼렙의 아우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다. 
영어NIV,9 But w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 he raised up for them a deliverer, Othniel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who saved them.
영어NASB,9 And when the sons of Israel cried 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for the sons of Israel to deliver them, Othniel the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영어MSG,9  The People of Israel cried out to GOD and GOD raised up a savior who rescued them: Caleb's nephew Othniel, son of his younger brother Kenaz.
영어NRSV,9 But when the Israelites cried out 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for the Israelites, who delivered them, Othniel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εκεκραξαν οι υιοι ισραηλ προς κυριον και ηγειρεν κυριος σωτηρα τω ισραηλ και εσωσεν αυτους τον γοθονιηλ υιον κενεζ αδελφον χαλεβ τον νεωτερον αυτου και εισηκουσε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9 et clamaverunt ad Dominum qui suscitavit eis salvatorem et liberavit eos Othonihel videlicet filium Cenez fratrem Chaleb minorem
히브리어구약BHS,9 וַיִּזְעֲקוּ בְנֵי־יִשְׂרָאֵל אֶל־יְהוָה וַיָּקֶם יְהוָה מֹושִׁיעַ לִבְנֵי יִשְׂרָאֵל וַיֹּושִׁיעֵם אֵת עָתְנִיאֵל בֶּן־קְנַז אֲחִי כָלֵב הַקָּטֹן מִמֶּנּוּ׃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원어 '자아크'(*)는 '힘을 다해 외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 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다(출 2:23).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 숭배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이다.

󰃨 한 구원자를 세워 -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을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15절;5:14;8:22).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6 주석을 참조하라.

󰃨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 옷니엘(Othniel)이 정확히 갈렙의 아우인지 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에서 살펴보았었다. 그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 그랜드 주석

본 절은 구산 리사다임의 혹독한 압제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의 호소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기록이다.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의 원어 '자아크'는 기본적으로 '재난이나 고통하에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 짖었다는 것은 구산 리사다임 왕의 혹독한 압제 아래서 당하는 고통에서 구해줄 것을 하나님께 호소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반응은 그들이 섬기고 있던 우상들이 그들을 악한 압제자에게서 구해 낼 수 없는 무능한 신들임을 깨달은 결과요, 하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한 신앙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는 거짓 신들을 버리고 참 신이신 여호와께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증표이다.

󰃨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해 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구원자'란 사사를 말한다. 여기서 사사를 '구원자'라고 부른 것은 적들의 압제하에서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그 고통에서 구해주는 일을 수행한 데서 연유한다.

 

*옥스퍼드 주석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본문은 사사기의 순환적인 역사 기록으로 볼 때 하나님의 ‘심판'에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회개’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 ‘부르짖으매’로 번역된 ‘와이즈아쿠’의 원형 ‘자아크'는 ‘울부짖다(cry out) ’ 는 뜻 외에 ‘부르다’ , ‘모으다’ 등으로도 번역되어 사사기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거나 모을 때(4:10,13; 6:34, 35; 12:2) 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보여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은 그들의 고통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외치는 절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용사로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극한 괴로움과 압제 가운데서 건져 주실 것을 간구하는 외침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 본문은 사사기의 순환적인 역사 기록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회개’ 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세워’ 로 번역된 ‘와야켐’은 계속적 ‘와우'와 ‘일어나다’ 는 뜻을 가진 동사 ‘쿰'의 사역 능동(Hiphil) 미완료형이 결합된 형태로서 ‘그래서 그가 일으키셨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본문에서 ‘와우’가 단순 접속사가 아닌 ‘와우 계속법’으로 사용되어 바로 앞 문장과의 관계를 아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즉,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있자마자 하나님께서 곧 구원자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 동안이나 섬기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셨다는 것을 암시하며, 그들이 부르짖자마자 하나님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구원자를 세우신 것을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에게 넘기셨을지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학수고대하고 계셨던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감동적으로 표현해 주신 바 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0).

  한편, ‘한 구원자’ 로 번역된 ‘모쉬아'는 '구원을 얻다', '승리하다’ 는 의미를 가진 동사 ‘야솨'의 사역 능동형(Hiphil) 분사로서 ‘구원얻게 하는 사람’ , 즉 ‘구원자’ 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 43:11에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 외에 '구원자(모쉬아)'가 없다고 하셨다. 본문에서도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대리 구원자를 세우셨을 뿐이다.

󰃨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옷니엘이라 - ‘구원하게 하시니’ 로 번역된 ‘와요쉬엠’ 은 한글 개역 성경이 잘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사역형(Hiphil)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일으키시는 동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와요쉬엠, 그가 구원하게 만들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힘으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때때로 사역자를 세워 그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도 한다. 본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에트'는 원래 목적격 조사이나 본문에서는 ‘~의 도움으로’ 라는 뜻의 전치사로 쓰였다. 따라서 ‘에트 오트니엘’은 ‘옷니엘의 도움으로’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시는 데 옷니엘의 도움이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본서 저자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문을 품을 가능성도 있는 단어인 ‘에트’를 사용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과정을 표현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사역자의 역할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는 데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홀로 이루지 않으시고 하나님 당신이 일으켜세운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자는 사역을 맡았을 때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실 테니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하면서 방관하거나 나태한 자세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인간이 부끄러운 죄투성이이며,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선한 일꾼으로 삼아, 당신의 크고 귀한 인류 구원 역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맡기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감사와 감격으로 그의 사역에 동참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속히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에 대해서는 1: 13의 설명을 참조하라.

 

* WBC 주석

󰃨 이스라엘 자손(브네이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사사기 안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나타내는 중심 표현으로서 56 차례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 백성들을 족장들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백성으로 나타내려는 표현이다. 편집자는 골격 구조에다가 새로운 요소를 첨가한다. 2: 18 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탄식함으로(민나아카탐) 그들을 불쌍히(임나헴) 여기셨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사사가 아니라 구원자(모쉬이아)를 일으켜 세우시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2장에서 제시한 오프닝 개요와 실제로 내러티브를 둘러싸고 있는 골격 사이의 복잡한 관계성을 보게 된다. 개인들에 관한 스토리들은 그 스토리들이 하나의 문집으로 묶여지기 이전에 당연히 그들만의 도입 부분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각각의 스토리들이 과연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사사기의 골격과 동일한 패턴을 갖고 있었는지는 의심스러운 일이다. 도입 부분이 갖고 있는 이런 복잡한 관계성은, 각각의 구원지들에 관한 내러티브들이 최종적인 편집자가 책 전체를 편집하고 하나로 “출간”하기 전에는 좀 더 작은 단위의 문집 형태를 띠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표준화된 도입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이런 복잡한 관계성은, 최종 편집자가 개별 스토리들에 나오는 개인들에 대해 사사로서 좀 더 폭넓게 감당했어야 했던 일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일성을 회복시켜 주고 지파들 간의 공의를 실현시켜 주며, 온 나라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들에 순종하도록 이끌어 주는 일 등을 확신을 갖고 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각각의 개별적인 스토리들 안에서 각각의 개인들을 “영웅들”로 해석하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스토리들을 아이러니컬하게 해석했는지를 보여 주는 방편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모세 이후의 지도자 모델로 사용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주기 위해 사용하셨던 가나안 땅의 약탈자들을 좀 더 닮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부르짖었다"는 표현은 사사기에 13 차례 등장하지만(3:9 . 15 : 4:10. 13 ; 6:6-7.34-35: 10:10. 14: 12 :2; 18 :22-23). 그 중 단 몇 차례만이(3: 9. 15 ; 6:6-7) 골격 구조로서의 역할을 하며, 10: 10, 14에서는 이 표현이 특정한 신학적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으로 활용된다(1 0: 10과 10: 14에 대한 “주석”을 보라). 이 표현은 기도하면서 부르짖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나(대하 20:9: 32 :20; 엘 1:14) 혹은 회개의 부르짖음(삿 10:10)을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콩켈(A. H.Konkel)이 NIDOTTE, 1: 1131-32 에서 지적하듯이 일반적으로는 고통을 되풀이해 호소하는 것을 보여 주며 , 특별히 전쟁에서의 패배(사 14: 31 ; 15:4-5.8: 렘 47:2 ;48:20: 참조. 렘 48 :31. 34) 와 대규모 재난(렘 25 :34: 겔 9:8: 1l :13) 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압제 때문에 부르짖는 것이지 , 내적인 부흥과 갱신을 위해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이 스토리는 하나님께서 단지 이스라엘이 부르짖기 때문에 응답하신다고 기록한다. 2 장에서부터 이어지는 해석은 이런 하나님의 응답을 하나님의 긍홀에 의한 것으로 카테고리를 제시한다.

  이 “구원자"(모쉬아)는 곤란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그 곤란부터 건져내기보다는 그들에게 도움을 가져다 준다. 이 동시는 신학적으로 거의 배타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야웨를 주어로 그리고 그분의 백성을 목적어로 두고 활용된다(R.1. Hubbard. Jr.. NIDOTTE, 2: 556). 그러므로 히브리 구원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행하는 사람이다. 오프닝 부분의 골격 부분에서는 이런 구원자로서의 역할이 모든 사사들의 기능이라고 보았지만(2: 16, 18), 옷니엘과 에훗만이 이런 특정한 호칭을 부여받았다. 삼손의 출생에 관한 선언이 바로 이 동사를 사용해서 그의 역할을 설명하고 묘사해 주지만, 그는 자신이 죽을 때만 이 일을 성취했었다. 이 호칭은 이 장에 나오는 주요한 두 명의 “ 영웅들”을 그들의 각기 다른 계승자들을 통해 구별해 준다. 이들은 이런 골격을 편집한 편집자가 사사들의 모습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거의 보지 못했던 사사의 본보기들로 자리 잡고 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6 : 14-15), 자신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했었다(6 : 36-37). 그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갑작스럽게 그분이 선택하신 구원 대리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시험을 받으셔야만 했다.

  편집자는 구원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숨겨 둔다. 그는 옷니엘을 중앙 무대로 가져오는데, 옷니엘은 갈렙이 제시한 도전에 응해서 1 : 11-13 에 나오듯이 드빌을 정복한 이후에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 옷니엘은 갈렙으로부터 새로운 영토를 선물로 받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명확했었고 또한 이런 모습은 그가 첫 번째 구원자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가족적인 측면에서 적절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갈렙의 사위로서 그는 야웨께 헌신되어 있지 않은 이방 결혼을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옷니엘은, 골격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나 자주 나중에 사사기에 첨가된 부분으로 간주되곤 한다. 가장 최근의 연구가인 스톤(Stone, “From Tribal Confederation to Monarchic State: 260-89) 은 옷니엘이 어떻게 사사기의 다른 모든 사사들이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척도로 삼아야 하는 표준을 제시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옷니엘은 야웨를 위해 올라가 정복 전쟁을 해야 하는 목록 중 유다 지파가 맨 처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1 :1-2) , 구원자 목록에서도 유다 지파를 맨 처음에 자리 잡게 해준다. 옷니엘은 하나님께서 무대 중심에 남아 계시게끔 한다. 옷니엘은 이스라엘이 8년 간의 억압을 받은 이후에 그들을 구원해 낸다. 옷니엘은 자신과 관련된 내러티브 안에 그의 인격 , 그의 두려움, 그의 의심 혹은 그의 탐욕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미트(Amit)는 설명한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인상은 오직 유다 지파에서 나온 사사만이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전쟁을 감당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며,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을 자신이 속한 지파의 필요들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한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필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으로 나타내 준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옷니엘은 이후에 아람 나하라임 인근 지역까지 모두 통치하게 될 다윗에 상당히 근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Book of Judges, 165). 사사기는 조금 지겹긴 하지만 옷니엘과 같은 골격을 형성해 주는 내러티브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 대신 사사기는 또한 불순종과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많은 스토리들도 첨가해야만 한다.

 

 

 



 

와테히 알라우 루아흐 아도나이 와이쉬포트 엩 이스라엘 와예체 람밀하마 와이텐 아도나이 베야도 엩 쿠솬 리쉬아타임 멜렠 아람 와타아즈 야도 알 쿠솬 리쉬아타임

 

개역개정,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새번역,10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리니,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전쟁터에 싸우러 나갔다. 주님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을 옷니엘의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옷니엘은 구산리사다임을 쳐서 이길 수 있었다.
우리말성경,10 여호와의 성령이 옷니엘에게 임하셨고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됐습니다. 그가 전쟁에 나갔을 때 여호와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셔서 그가 구산 리사다임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10 주님의 영이 오트니엘에게 내리니, 그는 이스라엘의 판관이 되어 싸우러 나갔다. 주님께서 아람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그의 세력이 쿠산 리스아타임을 억눌렀다. 
영어NIV,10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him, so that he became Israel's judge and went to war. The LORD gave Cushan-Rishathaim king of Aram into the hands of Othniel, who overpowered him.
영어NASB,10 And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him, and he judged Israel. When he went out to war, the LORD gave Cushan-rishathaim king of Mesopotamia into his hand, so that he prevailed over Cushan-rishathaim.
영어MSG,10  The Spirit of GOD came on him and he rallied Israel. He went out to war and GOD gave him Cushan-Rishathaim king of Aram Naharaim. Othniel made short work of him.
영어NRSV,10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him, and he judged Israel; he went out to war, and the LORD gave King Cushan-rishathaim of Aram into his hand; and his hand prevailed over Cushan-rishathaim.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εγενετο επ' αυτον πνευμα κυριου και εκρινεν τον ισραηλ και εξηλθεν επι τον πολεμον και παρεδωκεν κυριος εν χειρι αυτου τον χουσαρσαθωμ βασιλεα συριας και εκραταιωθη η χειρ αυτου επι τον χουσαρσαθωμ
라틴어Vulgate,10 fuitque in eo spiritus Domini et iudicavit Israhel egressusque est ad pugnam et tradidit Dominus in manu eius Chusanrasathaim regem Syriae et oppressit eum
히브리어구약BHS,10 וַתְּהִי עָלָיו רוּחַ־יְהוָה וַיִּשְׁפֹּט אֶת־יִשְׂרָאֵל וַיֵּצֵא לַמִּלְחָמָה וַיִּתֵּן יְהוָה בְּיָדֹו אֶת־כּוּשַׁן רִשְׁעָתַיִם מֶלֶךְ אֲרָם וַתָּעָז יָדֹו עַל כּוּשַׁן רִשְׁעָתָיִם׃

 

󰃨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여기서 '여호와의 신'(*, 루아흐 예호와)이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 모로 활동 하셨던 성령을 가리킨다. 창 1:2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성령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과 능력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편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은 구약 시대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임했던 적이 있다(6:34;11:29;13:25;삼상 10:9,10;16:13;대상 12:18). 여호와의 신은 가끔 백성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도 임했으며(민 27:18;단 4:8),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한 봉사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 임하기도 했다(출 31:3;35:31;민 11:25). 이는 오순절 이후로(행 2:1-5)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요 14:17).

󰃨 여호와께서...그 손에 붙이시매 -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기도하다(9절).

 

* 그랜드 주석

󰃨 여호와의 신이...임하셨으므로 - 여호와의 신이란 '성령'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성령의 임함은 한 번 임하면 영원히 떠나지 않는 신약 시대와는 달리 제한적이었고 한시적이었다. 즉 어떤 특정한 신적 사업을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였다가, 그 일이 완성되었을 때는 떠나갔다. 따라서 구약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중요한 어떤 일을 수행하거나 완성하기 위해 택정함을 입었음과 능력을 받았음을 말한다. 이에 따라 옷니엘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지목당하여 선택받았음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산 리사다임 왕의 세력을 물리치는 일 뿐만 아니라, 그 백성을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받았음을 말한다.

󰃨 그 손에 붙이시매...이기니라 - 여호아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아람 사람의 '손'에 파셨듯이, 적군의 왕을 옷니엘의 '손'에 넘기셨음을 말한다. 그리고 위의 단어들은 이스라엘이 해방되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압제자들을 항복시켰음을 말해 준다. 또한 이러한 승리와 해방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강조한다.

 

* 옥스퍼드 주석

󰃨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한글 개역 성경에서 ‘그에게’ 로 번역하고 있는 ‘알라이우’ 는 ‘~위에 ’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전치사 ‘알'에 남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형태로 직역하면 ‘그의 위에(upon him) ’ 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이 그 위에’ 임했다는 것은 신약 시대와 구별되는 구약 시대의 성령 사역의 특징을 보여 준다. 신약 시대에는 성령이 모든 신자 개개인의 ‘마음 안에(inheart) ’ 거하시며, ‘영원히 (forever) ’ 거하시지만(요 14: 16, 17) ,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시적으로 임하셨으며 그 사역이 종결되면 떠나가셨던 것이다(6:34; 11:29; 13:25; 14:6, 19 ; 삼상 10: 10 ; 11: 6).

  한편 ‘신’으로 번역된 ‘루아흐’는 원래 ‘공기’, ‘호흡’, ‘바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보이는 사물이나 인간의 마음과 동기를 움직이는 기능을 하는 실체를 지칭한다. 그리고 ‘루아흐’가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과 서로 결합되어 사용되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 삼위이신 성령님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바로 제 삼위 하나님이신 ‘루아흐’는 수면에 운행하셨으며(창 1: 2) , 노아 시대에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은 ‘루아흐’ 를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창 6:3). 이러한 하나님의 ‘루아흐’ 즉 하나님의 신은 사람들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힘으로 가득 채우신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신이 옷니엘에게 함께하였으며, 그 위에 머물러서 그를 지배함으로써, 그는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구원할 사사로 세워졌던 것이다.

󰃨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 ‘그가...사사가 되어 ’로 번역된 ‘와이쉬포트’는 접속사 ‘와우’와 ‘재판하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솨파트'의 미완료 3인칭 단수가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그가 재판했다 (and he judged)' 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 성경의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운 번역이다. 이처럼 본문을 뒷문장과 연결된 구문으로 이해하지 않고 독립적인 하나의 절로 이해할 때 한글 개역 성경이 자칫 보여줄 수 있는 단순한 이해, 즉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그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자마자 사사가 되고 곧 싸움에 나갔다)’ 라는 이해보다는 좀더 당시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부합할 수 있는 이해를 가져다 준다. 즉 옷니엘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그 결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격이 부여되었으며, 그러한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일정 기간 동안 통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그들을 압제하고 있는 구산 리사다임 왕과 싸움을 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유를 획득하게 하였던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라는 표현을 통해 옷니엘이 이스라엘 전체의 사사로 활동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사실 그가 활약한 지역은 가나안 남부 유다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각 지파는 사사 시대 전반에 걸쳐서 독립적인 지파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중앙 집권화된 일정한 권력에 의해 통제받았던 적은 없었던 부족 공동체였다(17:6). 이러한 배경 아래 세워진 사사는 각 지파에서 개별적으로 일어나서 자신의 지파를 억압하던 이방인을 몰아내고 자기 지파에만 구원을 가져다 주었던 제한된 통치권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럼에도 본문에서 모든 지파를 나타내는 ‘이스라엘’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제 7-11 절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와 구원이 사사 시대 이스라엘 전제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 ‘이기니라’ 로 번역된 ‘왓타아즈’ 의 원형 동사 ‘아자즈'는 ‘강하다(be strong) ’ , ‘도전하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을’ 이라는 목적격 조사의 의미로 번역된 ‘알’은 전치사로서 ‘~을 대항하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에 대항해서 강했다(도전했다)’ 가 된다. 이는 사사 옷니엘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구산 리사다임에 도전장을 내밀고 대항하여 그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의미이다. 여태껏 구산 리사다임은 이스라엘에 대해 8년 동안이나 지배권을 행사했으나, 이제 옷니엘에게 그것을 넘겨 주게 된 것이다. 한편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본서 저자가 ‘구산 리사다임'을 언급해야 할 경우에 인칭 대명사로 대치하지 않고 꼭 이름 전체를 다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름이 반복될 경우는 인칭 대명사로 대체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구산 리사다임의 경우에는 본문의 바로 앞에서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다시 한 번 전체 이름 (full name) 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본서 저자가 ‘구산 리사다임’ 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 (범죄를 많이 저지른 구산, 8절 설명 참조)를 사용해서 이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고난의 무게와 더불어 그에 상응해서 하나님이 일으키신 구원의 놀라운 능력을 보다 뚜렷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 WBC 주석

󰃨 "야웨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했다. 다시 한 번 이 내러티브는 2 장의 오프닝 골격 부분에는 나오지 않는 설명을 덧붙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영은 이제 앞으로 기드온과 입다에게도 임하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삼손과 더불어서 행하실 것이다(삿 3:10: 6:34; 1l :29: 13 :25: 14: 6. 19 ; 15:14). 사울과 다윗에 관한 내러티브들 역시 이처럼 야웨의 영이 임하시는 것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며, 때때로 야웨께서 부리시는 악한 영에 대해서도 보여 준다(삼상 10:6: 16:13-14: 19 :9: 삼하 23: 2). 영에 관한 언어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계획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주며, 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이제 나타나게 될 구원의 결과들을 인간들의 활동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치부할 수 없다.

  NIDOTTE의 저자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종종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서 개개인에 대해 그분의 주권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대리자로서 제시된다. 때로는 이런 영들의 활동 결과는 몹시 불행한 재난이나 파괴일 경우들도 있지만(도덕적인 의미에서 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삿 9:23: 삼상 16:14-16, 23 :18 :10: 19 :9),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힘을 공급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모습으로 역사하시곤 하며(겔 2:2), 또한 그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 줌으로써 그들을 변화시켜 주시곤 하고(왕상 18 : 12 : 왕하 2: 16: 겔 3:1 2, 14: 8; 3:11; 24 : 37: 1) ,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특별한 은사와 권능을 공급해 주시기도 한다(출 35:31 : 미 3:8). 종종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택하시고 소명을 주신 사람들 위에 임하사곤 한다. 이는 특별히 주님의 영감 속에서 선지자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에게 그렇다(70 인의 장로들, 민 11: 17. 25 : 사울, 삼상 10 :6, 10) . 이와는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은, 비록 성경에서 가끔씩은 주님께서 속이는 영들을 그들에게 부어 주셨다고 기록하기도 하지만(왕상 22:21-23: 참조 겔 14:9), 결국 그들은 스스로 이야기하는 자들이다.

 

  영을 받은 다른 사람들은 완전한 결과들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 멈춰 섰다(6:34-40). 입다는 자기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어리석은 서원을 했으며, 삼손의 행동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들이었다. 슈나이더 (Schneider) 는 이렇게 말한다.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이며, 또한 그 영이 그가 사사의 모델로서 역할을 하게끔 재확인시켜 주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입다와 삼손의 행동들에 대한 자신의 결론에 근거를 두고서, 슈나이더(Schneider) 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은 한 사람에게 그가 감딩해야 할 육체적이고 군사적인 행동들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 능력을 공급해 주지만, 그들이 지적인 선택들을 하는 데 있어서 눈멀게 할 수도 있었다”고 결론내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옷니엘은 이 영이 주는 능력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고 다스렸다". 2장의 골격은 우리에게 사사가 하는 일에 관한 내용을 미리 보여 주고 준비시켜 주었지만(2:16-19), 2장은 오직 “사사가 되었다(다스렸다)"는 내용에 대해 단지 분사 형태를 사용해서 그 직함의 타이틀로서만 보여 주었다. 편집자는 2장 밖에서는 사사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 타이틀로서가 아니라 다시 동사적인 언급들로 전환 시킨다. 그래서 이후에는 드보라(4:4), 마이너 사사들(10:2-3; 12:7-9, 11, 13-14), 삼손(15:20; 16:31) 그리고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것으로(사사로서 통치하시는 것으로) 표현된다. 2장에 나오는 골격은 이 직분이 하나님의 율법에 계속적으로 순종하는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려는 직분이라는 점을 넌지시 비춰 준다. 반면에 드보라의 경우엔 동료 시민들 간의 디툼과 논쟁을 해결해 주는 것이 이 직분이 갖는 모습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사라는 직분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10장에 나오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라. 사사가 갖는 기능이 무엇이건 간에, 2장은 우리에게 각각의 스토리들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준다. 즉 사사들이 긴 기간 동안 영향력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는 부적합했다는 점이다. 백성들은 짧은 기간 동안의 군사적인 대응과 격돌에서는 그들을 쫓을 수도 있지만, 법정에서의 일에 대해서나 혹은 성막 안에서의 일 등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
은 부적합성은 결국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도록 이끌고 가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왕을 추구하도록 만든다(21 :25).
  아람 나하라임의 왕, 즉 두 강 사이에 있던 시리아 땅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은 주석가들에게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영거(Younger. 106-7)는 도대체 이 이방 왕이 누구인가와 관련해서 서로 다른 여섯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1. 시리아의 총독이며, 이집트에서 온 이르수(Irsu)

  2. 에돔 출신의 알려지지 않은 구산이다. 이렇게 보려면 히브리어 본문의 아람을 에돔으로 약간 수정해야만 한다. 하박국 3:7 과 비교하도록 하라. 이 부분에서는 구산과 미디안이 평행을 이루며 나타난다.

  3. 미탄니(Mitanni)의 왕인 투쉬라타(Tushratta)

  4. 미탄니(Mittani)의 왕인 아르타타마 2세(Artatama II)

  5. 카케미쉬(Carchemish)의 히타이트족 통치자인 샤리 쿠쉬크(Sharri Kushkh)

  6. 새로운 본거지를 찾고 있던 유랑객들의 통치자

 

  영거 (Younger)는 다음과 같이 상당히 올바른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 제안은 모두 공상적인 해답들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바가 없다고 단순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애굽에서의 자료들은 나하린(Naharin)에 대해서 주전 약 1450 년경 투트모세 III세 치하에 있던 미탄니(Mitanni)왕국의 일부분이었음을 알려 준다(Younger. 107 를 보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이 왕이 이방 왕이었으며, 이 왕의 이름은 비록 히브리어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지만 매우 강력한 언어유희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름에 대해서 영거는 "어둡고 두 배로 사악한”이라고 번역했으며, 이 이름이 “분명히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아마도 부모들은 분명 자기 자녀들에게 이런 이름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104). 그러므로 우리는 이 왕의 진짜 이름은 모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다만 이스라엘이 그의 인간됨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편집자가 그의 이름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들이 이스라엘이 그로 인해 직면하게 된 더 깊은 곤란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갑절의 어려움(구산 리사다임) 에게 그의 상급으로 주어 버리셨으며, 그런 뒤에 “야웨께서 구산을 ... [옷니엘의] 손에 붙이셨으므로” 옷니엘을 통해 그를 제압하셨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유다의 손에 주셨었다(1 :2). 종종 하나님께서는 2장의 골격 부분에서 약속하셨듯이 이스라엘을 대적들과 노략자들의 손에 붙여 버리곤 하시면서(2:14; 그리고 6:1; 13:1 과도 비교하라), 남은 땅을 여호수아의 손에 주지 않으셨다 (2: 18). 하나님께서는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붙여 주겠다고 약속하신다(4:7 , 14). 그러나 대적을 손에 붙임 받는 것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랑거리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7:2,9, 14-15). 입다는 하나님께 대적을 자기 손에 붙여 달라고 간구하면서 자기 딸의 생명을 대가로 자기 바람을 얻었다(11:30 , 32).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입다의 손에 붙여 주시는데, 이것은 다시 한 번 지파들 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만을 가져왔을 뿐이었다(12:3). 유다 지파가 사사인 삼손을 대적들인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었을 때(15:12-13),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에 승리를 주셨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지만 물이 없음으로 인하여 탄식했었다(1 5:18). 대적들조차도 그들의 신들이 대적을 그들 손에 넘겨주셨노라고 찬양할 수 있다(1 6: 23- 24).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그들이 그 곳에 거주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북쪽 지역의 영토를 그들 손에 넘겨주셨노라고 선포하고 그들의 거룩하지 못한 제의를 확립한다. 1: 1 에서와 마찬가지로 20 : 28 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신탁을 받지만, 이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대적 - 이스라엘 지파들 중 하나인 베냐민 지파- 을 그들 손에 붙여 주시겠다는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손에 붙여 준다는 공식은 오프닝 골격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밀하게 잘 살펴보면 누군가의 손에 붙여 주시는 일은 내러티브 내에서도 각기 다른 장소들에서 벌어지며, 그것도 골격 부분에서처럼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사건들 속에서 각기 다른 매우 다양한 의미들을 담고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표현은 중성적이고 반복적인 언어다. 편집자는 이 공식을 내러티브 중 여러 다양한 지점들에서 매우 창조적이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활용한다.

 

 

 

 

 

 



 

와티쉬코트 하아레츠 알바임 솨나 와야모트 오트니엘 벤 케나즈

 

개역개정,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새번역,11 그 땅은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을 때까지 사십 년 동안 전쟁이 없이 평온하였다.
우리말성경,11 그러고 나서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그 땅이 평온했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리하여 이 땅은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 죽기까지 마흔 해 동안 평온하였다. 
영어NIV,11 So the land had peace for forty years, until Othniel son of Kenaz died.
영어NASB,11 Then the land had rest forty years. And Othniel the son of Kenaz died.
영어MSG,11  The land was quiet for forty years. Then Othniel son of Kenaz died.
영어NRSV,11 So the land had rest forty years. Then Othniel son of Kenaz died.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ησυχασεν η γη ετη πεντηκοντα και απεθανεν γοθονιηλ υιος κενεζ
라틴어Vulgate,11 quievitque terra quadraginta annis et mortuus est Othonihel filius Cenez
히브리어구약BHS,11 וַתִּשְׁקֹט הָאָרֶץ אַרְבָּעִים שָׁנָה וַיָּמָת עָתְנִיאֵל בֶּן־קְנַז׃ ף

 

󰃨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옷니엘이 죽었더라 - 이와 같은 표현은 다른 사사들의 행적을 마무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30절 ; 5:31 ; 8:28). 아무튼 본절은 옷니엘의 활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그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평안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백성들은 옷니엘이 죽자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 전철(前轍)을 되밟는데 그 결과 모압의 지배하에 놓이고 만다(12-14절).

 

* 그랜드 주석

󰃨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 - 적의 압제 아래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자들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을 다시 믿게 하며 언약에 순종하도록 하여 정치적, 종교적 '평화'를 구가하는 시대가 오게 했다는 것이다. 즉 옷니엘이 여호와께서 사사로 부르신 목적을 잘 이행했다는 증표이다. 한편, 이러한 표현은 삿 3:30; 5:31; 8:28 등에서도 나온다.

󰃨 옷니엘이 죽었더라 - 옷니엘의 죽음은 평화의 시대에 대한 종국을 말하며, 동시에 배교와 재난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됨을 암시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아람의 압제에서 구원하기 위해 세움받은 옷니엘의 구원 사건은 사사기서 전체의 모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배교(7절),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 압제자로 인한 고통(8절), 백성들의 탄식과 참회(9절), 사사등을 통한 구원(10절), 구원에 따르는 평화(11절)가 계속하여 다른 사건들 속에서도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역사의 악순환이 거듭됨을 말한다.

 

* 옥스퍼드 주석

󰃨 그 땅이 태평한 지 - 하나님의 구원은 ‘그 땅의 태평’ 이란 결과를 낳았다. 한글 개역 성경의 ‘그 땅’ 이란 표현이 잘 보여 주고 있듯이 본서 저자는 ‘땅’ 이라는 단어 ‘에레츠' 앞에 정관사 ‘하'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옷니엘의 통치로 인하여 평안을 되찾은 땅이 평범한 보통 땅이 아닌, 하나님이 언약의 선물로 주신 바로 그 땅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그 땅이 태평했다’라는 표현은 외적의 침략과 압제가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았다는 의미이다.

 

* WBC 주석

󰃨 옷니엘의 조용한 행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조용한 시대를 누리게끔 인도해 주는데, 그가 직분을 감당하던 그의 시대 때는 오직 한 문장의 전쟁 보고만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장 활기 찬 모습을 보이지 못한 사사라고 할 수 있는 옷니엘은 사사의 모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사는 리더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자기 삶을 전쟁이나 폭력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여호수아 11:23 과 14:15 은 쉼과 평온함을 보장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벌인 모든 가나안 전쟁의 목표라고 묘사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 사용되는 사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전쟁에 나서도록 이끌고 가지만, 사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평화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옷니엘, 에훗,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기드온은 이런 평온함을 얻는 데 성공했었다(삿 3:11 , 30: 5:31 : 8: 28). 단 지파는 라기스 거민들의 평온한 삶을 훼방한다(삿 18:7, 27). 그래서 해밀턴 (Hamilton) 은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었다.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시대를 살았던 장로들이 죽고 난 뒤 그 이후 세대를 살았던 옷니엘은 그의 뒤를 이어 사사라는 지위를 이어받아 수행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사사권의 모델을 제시해 준다. 믿음 없는 세대에서 살아남았던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듯이, 마찬가지로 믿음 있는 세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인 옷니엘과 같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와요시푸 베네이 이스라엘 라아소트 하라 베에네 아도나이와예하젴 아도나이 엩 에글론 멜렠 모압 알 이스라엘 알 키 아수 엩 하라 베에네 아도나이

 

개역개정,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새번역,12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들이 이렇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적이 되게 하여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셨다.
우리말성경,1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또다시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그들이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해 이스라엘에 맞서게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2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영어NIV,12 Once again the Israelites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and because they did this evil the LORD gave Eglon king of Moab power over Israel.
영어NASB,12 Now the sons of Israel again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So the LORD strengthened Eglon the king of Moab against Israel, because they had done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
영어MSG,12  But the People of Israel went back to doing evil in GOD's sight. So GOD made Eglon king of Moab a power against Israel because they did evil in GOD's sight.
영어NRSV,12 The Israelites again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the LORD strengthened King Eglon of Moab against Israel, because they had done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προσεθεντο οι υιοι ισραηλ ποιησαι το πονηρον εναντι κυριου και ενισχυσεν κυριος τον εγλωμ βασιλεα μωαβ επι τον ισραηλ δια το πεποιηκεναι αυτους το πονηρον εναντι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12 addiderunt autem filii Israhel facere malum in conspectu Domini qui confortavit adversum eos Eglon regem Moab quia fecerunt malum in conspectu eius
히브리어구약BHS,12 וַיֹּסִפוּ בְּנֵי יִשְׂרָאֵל לַעֲשֹׂות הָרַע בְּעֵינֵי יְהוָה וַיְחַזֵּק יְהוָה אֶת־עֶגְלֹון מֶלֶךְ־מֹואָב עַל־יִשְׂרָאֵל עַל כִּי־עָשׂוּ אֶת־הָרַע בְּעֵינֵי יְהוָה׃

 

 

󰃨 이스라엘 자손이...악을 행하니라 -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은 40여년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구가하는 동안(11절) 구산 리사다임의 수하에서 8년간이나 노예 생활하던 때의 비참함(8절)을 까맣게 잊어버렸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잘못과 죄의 악순환은 사사기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바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그리고 길이참으심을 멸시하는 완악한 백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우리들도 범할 수 있다. 즉 평안하고 안락한 여건 가운데서 살다 보면 우리도 자칫 향락과 정욕, 각종 죄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더 경성하여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빌 1:20).

󰃨 모압 -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간의 근친 상간(近親相姦)에 의해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창 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고자 요청할 때 이를 거절했었다(11:17). 그리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 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다(민 23:11 ; 24:10 ; 25:1-3).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다(신 23:3-6).

󰃨 에글론 - 이름의 뜻은 '젊은 황소'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 당시 모압의 왕이었던 자로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서부 지역을 한때 강점(强占)하였었다(13절).

󰃨 강성케 하사...대적하게 하시매 - 여기서 '강성케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자크'(*)는 '돕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는 곧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도리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려고 잡은 손을 놓으시고 대신 모압을 권능의 손으로 붙드신 것을 의미한다.

 

* 그랜드 주석

본절부터 30절까지는 에훗 사사의 구원 사건에 대하여 기록되어 었다.

󰃨 이스라엘 자손이 또 ... 악을 행하니라 - 사사 옷니엘이 죽고 난 후 이스라앨이 모세의 법을 떠나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쫓아가는 배교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악’은 7절에 비추어 볼 때 우상숭배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 모압 - 모압은 롯이 그의 큰 딸과의 근친상간으로 생긴 아들인 모압의 후손을 말한다(창 19: 30-38). 그들은 사해(死梅) 동편 아르논 강과 세렛 강 사이에 있는 영토에서 살았다.

󰃨 강성케 하사...대적하게 하시매 - '강성케 하다’의 원어 ‘하자크’는 전쟁에서 강함, 즉 강한 전투력(왕상 20: 23)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해 소극적인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적극적인 자세로 전쟁에 임하도록 하는 격려도 포함하는 단어이다(삼하 10 : 12). 따라서 하나님이 모압왕 에글론을 강성케 했다는 것은 그들의 군사력을 강하게 했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전쟁의 동기 또한 불어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모압의 강성함이 모압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온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말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부각시킨다. 더 나아가 모압은 이스라엘을 징게키 위한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함을 말해 준다

 

* 옥스퍼드 주석

󰃨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 본문은 사사기의 순환적인 역사 기록에서 하나님의 ‘구원 ’ 과 그후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망각’ 에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재타락’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본단락에서는 사사기의 순환적인 역사의 흐름 가운데 ‘망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재타락’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태평한 세월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본문을 직역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목전에 그 악을 행하기를 증가시켰다’가 된다. 한글 개역 성경에 ‘또’로 번역된 ‘와요씨푸’의 원형 ‘야싸프’ 는 ‘더하다, 계속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사역형(Hiphil)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때에는 ‘증가시키다’ , '늘리다 (enhance)' , 라는 의미가 되므로,본문에서 이스라엘은 태평의 기간이 길어지므로 그전에 행했던 악보다 더 큰 악을 많이 행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악’으로 번역된 ‘하라’는 ‘사악한’을 의미하는 형용사 ‘라' 앞에 정관사 ‘하'가 붙어서 여러 가지의 죄악 가운데서도 구체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악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이는 본서의 서론에서부터 계속 지적된 가나안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우상 숭배의 악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옷니엘 사사의 통치 아래 잠시 멈추었던 그 악을 그가 죽은 후에 다시 반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악의 정도 또한 더욱 증가시켰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였을 뿐 아니라 과거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얻어야 하는 역사 의식마저 결핍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시 우상 숭배의 악을 행하고 도덕적인 범죄를 저질러 재타락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그리 더디 걸리지 않았다.

󰃨 모압 왕 에글론 - ‘모압’ 은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브' 와 ‘ ~ 로부터 (from) ’ 라는 유래와 출처를 의미하는 전치사 ‘민’이 결합된 단어로서 ‘아버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이는 롯의 큰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워 취하게 하고 그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창 19:37). 그가 바로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는데, 이는 모압 족속이 얼마나 미천하고 부도덕한 근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런데 에훗 당시 이스라엘은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이러한 모압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한편 에글론이 다스리는 모압 나라는 사해 동쪽에 위치한 땅으로서, 아르논 강과 세렛 시내 사이에 있었다.

󰃨 강성케 하사 ... 대적하게 하시매 - ‘강성케 하사’ 로 번역된 ‘와예핫제크’의 원형 동사 ‘하자크’는 물리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을 강하고 견고하며 담대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모압 왕 에글론이 소유한 군사력을 강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압 왕과 그 군사들의 심리 상태도 담대하고 용기 백배하게 만드셨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대적하게 하시매 ’ 로 번역된 ‘알’은 전치사로서 ‘~ 을 대항하여 (against) ’ 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강하고 견고하며 담대해지도록 모압 왕 에글론의 세력과 정신력을 강화시키셨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하나님은 당신이 미워하시는 세력(신 23:3) 을 이용해서라도 우리를 징계하신다.

 

* WBC 주석

󰃨 에훗에 관한 스토리는 딱 한 구절에 불과한 골격 구절과 더불어 시작되는데,이 내용은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께서 모압 왕 에글론에게 힘을 주셨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 나온 골격 부분에 사용된 동사는 다른 골격 공식들에 나오는 내용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생소한 것이다. 전체적인 강조점은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에 놓여 있는데, 이 표현은 이 짧은 구절 안에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이 구절은 “계속해서 죄를 범했다”는 표현을 통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 골격 구절은 12-15 절에 나오는 해설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이다. 또한 이 부분은 나레이터가 현재 내러티브를 표현하는 데 정말로 필요한 골격 부분만을 사용하는 기교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이런 부분들은 내러티브의 긴장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 준다(Amit, Book of Judges, 174-75, 180를 보라).

  모압은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대적이다(출 15 : 15: 민 21:29: 22-24장; 신 23:4: 삼상 14: 47: 그리고 삼상 12:9 과 비교하라) . 또한 이들은 풍요의 신들을 섬기게끔 이스라엘을 유혹했던 최초의 이방 세력이기도 하다(민 25: 1; 그리고 삿 10:6 ; 왕상 11 :7, 33; 왕하 23: 13 과도 비교하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모압을 정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신 2:9: 그리고 삿 11: 15 , 17-18 과 비교하라) . 어떤 점에서 보면 다윗은 모압 왕과 평화스러운 관계를 만들기도 했지만(삼상 22:4) , 이내 모압 족속으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고 이스라엘에 종속되게끔 만들었다(삼하 8:2: 8:12; 23:20). 이후에 모압은 다만 잠깐 동안(왕하 3:7-26) 이스라엘을 배반했었다(왕하 1:1: 3:4-5: 그리고 모압 족속의 돌을 비교하라) . 그리고 지속적인 도발이 대적의 나라들로부터 계속되어 왔다(왕하 13 : 20).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데 모압을 사용하셨다(왕하 24:2). 선지자들은 반복적으로 모압에 대한 승리를 약속했었고(사 11 : 14; 25: 10) , 모압에 반하는 하나님의 선포들을 외쳤었다(사 15-16 장: 렘 48 장: 젤 25: 8-11 : 암 2: 1-3).

 

 

 

 



 

와예에소프 엘라우 엩 베네이 암몬 와아말렠 와예렠 와야크 엩 이스라엘 와이레슈 엩 이르 하테마림

 

개역개정,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새번역,13 에글론은 암몬 자손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를 점령하였다.
우리말성경,13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 사람들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패배시키고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했습니다. 
가톨릭성경,13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의 자손들을 모아 진군해 와서, 이스라엘을 치고 '야자나무 성읍'을 차지하였다. 
영어NIV,13 Getting the Ammonites and Amalekites to join him, Eglon came and attacked Israel, and they took possession of the City of Palms.
영어NASB,13 And he gathered to himself the sons of Ammon and Amalek; and he went and defeated Israel, and they possessed the city of the palm trees.
영어MSG,13  He recruited the Ammonites and Amalekites and went out and struck Israel. They took the City of Palms.
영어NRSV,13 In alliance with the Ammonites and the Amalekites, he went and defeated Israel; and they took possession of the city of palms.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προσηγαγεν προς αυτον παντας τους υιους αμμων και αμαληκ και επορευθη και επαταξεν τον ισραηλ και εκληρονομησεν την πολιν των φοινικων
라틴어Vulgate,13 et copulavit ei filios Ammon et Amalech abiitque et percussit Israhel atque possedit urbem Palmarum
히브리어구약BHS,13 וַיֶּאֱסֹף אֵלָיו אֶת־בְּנֵי עַמֹּון וַעֲמָלֵק וַיֵּלֶךְ וַיַּךְ אֶת־יִשְׂרָאֵל וַיִּירְשׁוּ אֶת־עִיר הַתְּמָרִים׃

 

󰃨 암몬 - 롯과 그 둘째딸 사이에서 난 '암몬'(창 19:38)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 따라서 모압 족속(12절)과는 형제국이 된다. 이들은 모압 북방의 랍바를 중심한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곧 요단 동편 지방이다(신 3:11). 이들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삼상 11:1-3 ; 왕하 24:2) 일찍이 모압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려 방해하기도 하였다(신 23:3-6).

󰃨 아말렉 자손 -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창 36:15,16). 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틴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지대였다. 이들은 사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격멸당하고 만 역사도 지니고 있다(6:1-7:25).

󰃨 종려나무 성읍 -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신 34:3 ; 대하 28:15).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동안 강력한 요새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선 이후 그곳을 재건치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했었다(수 6:26). 때문에 이후 여리고는 외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고 그 탓에 에글론의 연합군에게 쉽게 점령당하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95). 아무튼 이들이 이처럼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 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다.

 

* 그랜드 주석

󰃨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 모아 ... 와서 - 암몬은 롯이 둘째 딸과 잠자리를 같이 한데서 생겨난 아들,벤암미의 후손들이다(창 19: 38). 그들은 요단 동편에 있는 모압의 북동쪽에 있는 영토에서 살고 있었다. 한편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 팔레스틴 남방의 광야에서 시내 반도까지 이르는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족속이다. 결국 이 구문이 말하려는 것은 요단 동편의 암몬과 모압 그리고 팔레스틴 남부의 아말렉 족속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와서 유린했음을 말한다.

󰃨 이스라엘을 쳐서 - 여기서의 문제는 모압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점령한 땅의 범위와 피해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느냐는 것이다. ‘쳐서’의 원어 ‘나카’는 상대에 대한 가해 행위를 묘사하는 말로 29절에서는 ‘죽였으니’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RSV는 ‘패배시키다’(defeated)로, NIV는 ‘공격하다'(attack)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번역들에서 보듯이 정확한 피해의 성격과 규모와 범위에 대하여 알 수는 없지만 요단 강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 르우벤과 에브라임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약간의 땅이라고 추정된다(Lindsey).

󰃨 종려나무 성읍 - 여리고 성읍을 말한다(삿 1: 16 주석 참조). 요단 강 하류 계곡의 지배권은 누가 이 성읍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졌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성읍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여리고 성을 정령했다는 것은 요단 강 하류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칠 교두보롤 마련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 때의 여리고 성은 요새화되지 않았고 거민들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 옥스퍼드 주석

󰃨 에글론이...모아가지고 - 원어 성경에는 한글 개역 성경에 나오는 ‘에글론’이라는 인명이 없으며, 대신 동사 안에 포함된 인칭 대명사로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즉 ‘와예에쏘프'는 ‘그리고 그가 모았다’ 라는 의미인데, 이는 모압 왕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에 번역되지 않고 생략된 ‘엘라이우’는 ‘그에게로’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그에게로 모았다’이다. 이는 모압 왕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족속을 전시(戰時)에 동원시킬 만큼 강력한 군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한편 동사 ‘와예에쏘프’는 제 12절의 서두에 사용된 동사인 ‘와요씨푸’와 유사한 자음과 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발음이 유사한 두 동사의 사용을 통해 본서 저자는 암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더한 행위가 결국에는 그들을 압제하기 위해 이방 민족이 다른 민족들을 모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 암몬 족속의 조상은 모압 족속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모두 롯에게서 비롯된 형제 사이였으며, 모압과 동일하게 근친상간에 의하여 태어난 족속이다(창 19:36-38). 게다가 이 두 족속은 모두 여호와의 총회에 참여하는 것을 영원히 금지당하였다(신 23:3). 암몬은 요단 동편, 즉 아르논 강을 중심으로 모압 위쪽에 위치하여 모압과 긴밀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아말렉은 가나안 땅 남방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으로(민 13:29)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르비딤에서 공격했다가 패배한 경험이 있으며 (출 17:8) , 이러한 아말렉의 악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후에 그들을 진멸할 것을 명령했었다(신 25: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은 이후 사사기에서도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들 중에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6:3 , 33; 7:12).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심히 악한 세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략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했는가를 반증해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세 민족은 모두 이스라엘이 영적 · 도덕적으로 멸시하던 민족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그런 민족에게 침략을 당함으로써 자신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 와서...쳐서...점령한지라 - 본절에서 사용된 동사는 모두 ‘와우 계속법’ 을 나타내는 ‘와우'와 연결되어 있어서 사건이 일사천리로 이어져 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이러한 단어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저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무력하게 적들의 공격과 점령에 조금도 저항해 보지 못하고 종려나무(여리고) 성읍을 빼앗겼던 것이다. 한편 ‘점령하다’ 는 의미로 번역된 ‘와이르슈’의 원형 동사 ‘야라쉬'는 어떤 지역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압 왕 에글론은 여리고 성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거하거나 몰아낸 후 그곳을 완전히 점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종려나무 성읍 - ‘핫테마림’은 ‘대추야자(나무)’를 의미하는 ‘타마르'의 복수형에 정관사 ‘하'가 붙은 형태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 대추야자(또는 종려) 나무들의 성읍’ 이 된다. 이는 그 성읍에 종려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별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바로 여리고 성을 가리킨다(신 34:3).

 

* WBC 주석

󰃨 이스라엘은 단 하나의 대적이 아니라 동맹을 적으로 맞이하는데, 에글론은 군사력을 활용해서 동맹을 형성한다. 암몬은 모압의 북쪽에 인접한 이웃이었다. 반면에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들로서 에돔에 근거를 두고 있기는 했지만 여기저기를 방랑하면서 지내던 유목민 혹은 반유목민들이었다. 편집자는 여기서 뻔히 알 수 있는 동음이의(同률異義) 활용이나 혹은 아이러니한 비교를 한다. 에글론은 음성적으로는 에글로(“암소 혹은 어린 암소")와 비슷하며, 또한 에겔(“젊은 황소" 혹은 "황소")과 비슷하다. 이런 음성적인 유사성은 아골("둥글다” 혹은 “돌다")을 포함해서 좀 더 확장적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종려나무 성읍은 분명 여리고 인근에 있었을 것이다(신 34:3: 삿 1: 16: 3:13:대하 28: 15). 반면, 미탄은 이 곳의 위치를 사해 남서쪽의 타말(Tamar)로 잡는다. 에글론은 그 곳을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았으며(야라쉬),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가나안 영역을 그 거주민들로부터 빼앗으라고 명령하셨던 그 밥상을 뒤집어 버렸다(수 1:11 , 15: 3:10: 8:7: 12:1: 13 :1, 6, 12-13: 14: 12: 15:14.63 : 16:10: 17:12-13 , 18: 18:3: 19:47: 21:43 : 23:5 , 9, 13 : 24:4 , 8: 그리고 삿 1:19-21 , 27-33 : 2:6, 21 , 23 : 1l :21-24 : 14: 15: 18 : 7, 9 과 비교하라). 만약 이 성읍이 여리고라면, 에글론은 여호수아가 빼앗았던 바로 그 성읍들을 다시 빼앗기 시작한 것이며, 또한 강력한 선지자 발람이 할 수 없었던 일(민 22-24 장)을 성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은 정치적 동맹의 힘을 통해서 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에글론에게 주신 힘을 통해서 했던 것일까? 역사에 대한 이런 설명들(정치적 동맹 그리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다는 두 가지 설명)은 서로서로에게 어떠한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사사기 전체를 통해 계속해서 나타나며, 또한 이스라엘 안에서도 에훗을 그들의 리더로 세우면서,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훗을 구원자로 세우면서 이 질문을 보게 될 것이다. 두 가지 원인론이라는 문제에 대해 좀더 많은 내용을 살펴보려면 Amit, Book of Judges, 176-80 를 참조하도록 하라.

 

 

 

 

 

 



 

와야아베두 베네이 이스라엘 엩 에글론 멜렠 모압 쉐모네 에스레 솨나

 

개역개정,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새번역,14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모압 왕 에글론을 섬겼다.
우리말성경,14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18년 동안 모압 왕 에글론을 섬겼습니다. 
가톨릭성경,14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열여덟 해 동안 모압 임금 에글론을 섬겼다. 
영어NIV,14 The Israelites were subject to Eglon king of Moab for eighteen years.
영어NASB,14 And the sons of Israel served Eglon the king of Moab eighteen years.
영어MSG,14  The People of Israel were in servitude to Eglon fourteen years.
영어NRSV,14 So the Israelites served King Eglon of Moab eighteen years.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εδουλευσαν οι υιοι ισραηλ τω εγλωμ βασιλει μωαβ ετη δεκα οκτω
라틴어Vulgate,14 servieruntque filii Israhel Eglon regi Moab decem et octo annis
히브리어구약BHS,14 וַיַּעַבְדוּ בְנֵי־יִשְׂרָאֵל אֶת־עֶגְלֹון מֶלֶךְ־מֹואָב שְׁמֹונֶה עֶשְׂרֵה שָׁנָה׃ ס

 

󰃨 이스라엘 자손이...십 팔 년을 섬기니라 - 모압이 점령한 땅은 여리고 성뿐이다. 그런데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에글론을 섬긴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적 특성 때문에 그처럼 표현한 듯하다. 즉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개인이나 지파가 범죄하였어도 연대 책임을 강조,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곧잘 간주하였던 것이다.

 

* 그랜드 주석

󰃨 십팔년을 섬기더라 - 옷니엘 사사 시대에는 8년 동안 압제를 받았지만 에훗 사사 시대에는 18년 동안 압제를 받았다. 이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죄악이 깊어 갔음을 말함과 아울러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가 가중되어 갔음을 말해 주는 단면이다. 한편 '섬기다'는 것은 그들의 통치 아래서 노예 생활을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공물을 바쳤음을 의미한다.

 

* 옥스퍼드 주석

󰃨 이에...십팔 년을 섬기니라 -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18년이라는 기간은 첫 사사로 활약했던 옷니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구산 리사다임에게 억압을 당했던 8년의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기간이다. 게다가 그 억압의 강도도 훨씬 강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이에 ... 섬기니라’ 로 번역된 ‘와야아브두’의 원형 동사 ‘아바드'는 ‘(주인을 위해) 노예로 봉사하다’, ‘종이 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섬멸해야 할 이방 민족의 종으로 전락하여 압제 아래 힘든 노역을 감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며 우상을 숭배한 결과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멸시했던 민족을 도리어 자신들이 섬기는 비참한 자리로 떨어졌던 것이다.

 

* WBC 주석

󰃨 이스라엘이 에글론을 섬긴 햇수가 참으로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18 년 동안이었는데, 이는 일반적이지 않고 순환적이지 않은 숫자다. 서론에 있는 “사사기의 연대에 대한 서론” 부분을 보라.

 

 



 

와이즈아쿠 베네이 이스라엘 엘 아도나이 와야켐 아도나이 라헴 모쉬아 엩 에후드 벤 게라 벤 하예미니 이쉬 잍테르 야드 예미노 와이쉬레후 베네이 이스라엘 베야도 민하 레에글론 멜렠 모압

 

개역개정,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새번역,15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곧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에훗을 시켜,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보냈다.
우리말성경,15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을 그들의 구원자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칠 선물을 그를 통해 보냈습니다. 
가톨릭성경,15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곧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 에훗이다. 그는 왼손잡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훗을 시켜 모압 임금 에글론에게 공물을 보냈다. 
영어NIV,15 Again the Israelites cried out to the LORD, and he gave them a deliverer--Ehud, a left-handed man, the son of Gera the Benjamite. The Israelites sent him with tribute to Eglon king of Moab.
영어NASB,15 But when the sons of Israel cried 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for them, Ehud the son of Gera, the Benjamite, a left-handed man. And the sons of Israel sent tribute by him to Eglon the king of Moab.
영어MSG,15  The People of Israel cried out to GOD and GOD raised up for them a savior, Ehud son of Gera, a Benjaminite. He was left-handed. The People of Israel sent tribute by him to Eglon king of Moab.
영어NRSV,15 But when the Israelites cried out 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for them a deliverer, Ehud son of Gera, the Benjaminite, a left-handed man. The Israelites sent tribute by him to King Eglon of Moab.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εκεκραξαν οι υιοι ισραηλ προς κυριον και ηγειρεν αυτοις κυριος σωτηρα τον αωδ υιον γηρα υιου του ιεμενι ανδρα αμφοτεροδεξιον και απεστειλαν οι υιοι ισραηλ δωρα εν χειρι αυτου τω εγλωμ βασιλει μωαβ
라틴어Vulgate,15 et postea clamaverunt ad Dominum qui suscitavit eis salvatorem vocabulo Ahoth filium Gera filii Iemini qui utraque manu utebatur pro dextera miseruntque filii Israhel per illum munera Eglon regi Moab
히브리어구약BHS,15 וַיִּזְעֲקוּ בְנֵי־יִשְׂרָאֵל אֶל־יְהוָה וַיָּקֶם יְהוָה לָהֶם מֹושִׁיעַ אֶת־אֵהוּד בֶּן־גֵּרָא בֶּן־הַיְמִינִי אִישׁ אִטֵּר יַד־יְמִינֹו וַיִּשְׁלְחוּ בְנֵי־יִשְׂרָאֵל בְּיָדֹו מִנְחָה לְעֶגְלֹון מֶלֶךְ מֹואָב׃

 

󰃨 베냐민 사람...에훗 - 이스라엘의 제2대 사사인 '에훗'이 베냐민 출신이란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에글론의 압제하에 있던 여리고 성이 곧 베냐민지파에게 기업으로 할당되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수 18:21).

󰃨 왼손잡이 - 원어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는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70인역(LXX)을 이를 '암포테로덱씨오스'(*), 즉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 발달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이 같은 사실은 베냐민 지파 중에 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Lange, MatthewHen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p. 295 f).

󰃨 그를 의탁하여...공물을 바칠 때에 - 여기서 '그를 의탁하여'란 말은 '베야도'(*)로서 '그의 감독하에' 또는 '그를 통하여'란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모압에게 공물바치는 일을 에홋이 관리, 감독하였음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Commantary, Vol. II, p. 296).

󰃨 공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미느하'(*)의 원뜻은 '예물', '선물'이다(KJV). 그러나 여기서는 속국의 백성들이 종주국에게 바치는 '조공'(朝貢)을 가리킨다(RSV, NIV).

 

* 그랜드 주석

본절은 모압 왕 에글론의 심한 압제로 고통받던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고통을 탄원함에 따라 하나님이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사사 에훗을 보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 에훗의 소속을 가리킨다. 베냐민 지파의 땅이 모압의 연합군 아래 점령당했기에 그곳에서 사사가 나와 백성들을 구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한편, ‘게라’는 베냐민 지파의 한 씨족의 이름으로 추측된다(창 46: 21; 삼하 16: 5).

󰃨 왼손잡이 - 문자대로 번역하면 ‘오른손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오른손이 사고로 잘려 나갔거나 이용할 수 없을 만큼 팔을 다쳤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오른손보다 왼손을 잘 쓰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20:16에 의하면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전사(戰士)들의 특징은 ‘왼손잡이’들이었다. 측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전사였음을 나타낸다.

󰃨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 ‘그를 의탁한다’는 ‘그를 통하여’ (RSV), ‘그를 선택하여’ (LB), ‘그를 보내어’ (NIV) 등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번역들을 근거로 살펴볼 때 그는 조공을 바치는 일을 위해 선정된 사신(使톰)이나 책임자였음을 짐작할수 있다. 한편 고대 사회에서 공물을 바치는 자는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앨 백성이 에훗을 조공 바치는 책임자로 삼아 모압 왕에게 보냈다는 것은 에훗이 베냐민 지파의 뚜렷한 지도자였음을 짐작케 한다.

󰃨 공물 - 종주국에 바치는 조공을 위한 예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물은 농산물과 가축 그리고 금, 은과 값비싼 일상용품이었다고 추측된다.

 

* 옥스퍼드 주석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 본문은 9절 상반부에 기록된 구절과 한 단어(라헴)만 다르고 모음까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는 사사기 에 기록된 순환적인 이스라엘 역사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즉 제 7 - 12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 주변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 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스라엘의 망각, 이스라엘 백성의 또다시 시작되는 반역의 악순환이었다. 바로 이러한 흐름이 옷니엘 사사 시대의 기록에 이어 두번째로 기록되고 있는 에훗 사사 시대의 기록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서 저자는 인간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깨닫지도 못할 뿐 아니라 너무도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리고 죄와 회개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존재인 반면,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위해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속적 · 반복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드러내고 있다.

󰃨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쉬 잇테르 야드 예미노’를 ‘왼손잡이’로 번역한 것은 원문의 뉘앙스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번역이다. ‘이쉬'는 ‘사람(남자)’ 이라는 뜻의 명사이고, ‘잇테르’ 는 ‘닫힌’, ‘제한을 받는’을 의미하는 형용사이며, ‘야드’는 ‘손’을 의미하는 명사, 그리고 ‘예미노’는 ‘그의 오른쪽’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따라서 원문은 ‘그의 오른손이 닫힌(제한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이는 오른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인가 기능면에 있어서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게다가 베냐민 지파는 당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그 세력이 약한 지파에 속하였다. 하나님이 사사로 세운 에훗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남들을 지도할 만한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첫 사사로 세움받은 옷니엘은 드빌 정복으로 인해 이미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용맹을 인정받았으며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고 지도자로서의 자질 또한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번째로 세움을 입은 에훗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을 사사로 세우신 것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이렇듯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데는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 가문이 그렇게 큰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와 같이 약한 자를 선택하심으로 오히려 강하고 능력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 :26-29).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왼손잡이를 사사로 세우신 일도 그렇고, 특별히 그가 속한 지파, 즉 ‘베냐민’은 문자적으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이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지파에서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을 사사로 세우셨다는 것도 그러하다. 한편 에훗이 오른손이 불구인 왼손잡이였는지, 아니면 단지 선천적으로 왼손이 오른손보다 능하게 태어난 왼손잡이였는지 원문상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자를 지지하는 학자는 그가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가는 대표자였는데, 그는 에글론을 전혀 해할 수 없어 보이는 오른손 불구였기 때문에 에글론에 의해서 뽑혔다고 추정하는 데서 그 근거를 찾는다. 반면 후자를 지지하는 학자는 사사기 후반부에서 베냐민에 700명의 왼손잡이 용사가 있었다(20: 16) 는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본문과 20:16에 기록된 ‘왼손잡이’ 에 해당하는 원어는 같은데, 한 지파에 7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오른손 불구일 가능성은 없으며, 따라서 에훗도 오른손 불구인 왼손잡이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왼손을 잘 쓰는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20: 16 에 나오는 700명의 왼손잡이들은 오른손 불구가 아닌, 선천적으로 오른손보다 왼손이 더 발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장 16절과 21 절의 진술을 토대로 추론해 볼 때, 에훗은 오른손이 불구인 왼손잡이였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는 에글론에게 나아갈 때 오른쪽 다리 옷 속에 약 45cm나 되는 긴칼을 차고서도 검열당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에글론을 해할 수 없는 불구자였기 때문이며, 에글론
을 죽일 때 오른쪽 다리에 있는 칼을 왼손으로 빼내 왼손으로 찔렀던 것도 그가 오른손 불구라는 추측의 근거가 된다.

󰃨 그를 의탁하여...공물을 바칠 때에 - ‘그를 의탁하여’로 번역된 ‘빼야도’의 원뜻은 ‘그의 손을 통하여’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에훗을 대표자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훗은 여러 명의 수행원들을 거느리고(18절) 에글론에게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공물을 바친 지도자였다. 한편 우리는 사사 에훗이 옷니엘처럼 적군을 곧바로 제압하지 않고 비굴하게 공물을 바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는 기사를 의아하게 여기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단 한가지 틀에 얽매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닌, 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일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섣불리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편협한 인간의 이성 안에서 정형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 WBC 주석

󰃨 우리는 갑작스럽게 골격을 제시히는 언어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챔피언 “ 베냐민 지파사람인 왼손잡이 에훗”을 만난다. 이런 설명은 에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중 가장 작은 지파이면서 이후에 사울이 나오게 될 지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제시한다. 여리고는 베냐민 지파가 할당 받은 땅 안에 들어 있었다(수 18:21). 에훗은 “사사"라고 묘사되지 않고 "구원자"라고 묘사된다. 그의 이름은 "어디에 영광 혹은 장엄함이 있는가?”라는 의미로 보인다. 이 순간, 그 영광은 에글론의 손안에 들어 있다. 이 내러티브의 긴장은 바로 여기서 형성된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구원자인 "어디에 장엄함이 있는가?"를 그의 장엄한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보낼 때 말이다. 도대체 조공이 어떻게 구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에훗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문자적으로는 “오른손의 아들” 이라는 뜻을 가진 지파 사람이다. 그러나 에훗은 왼손잡이이며, 이는 문자적으로는 “오른편에 문제가 있는”이지만, 아마도 양손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LXX: HALOT: DCH:B10ck 161) .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건 상처를 입었거나 혹은 장애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없으며, 영거 (Younger, 114) 가 지적하듯이 ‘ 에훗의 플롯은
만일 모압 보초들만 그를 평범한 모습으로 본다면 제대로 진행된다." 에훗이 양손잡이라 하더라도 이 내러티브는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 사사기 20: 16을 보면, 7 백여 명의 베냐민 사람들이 왼손잡이이거나 이런 은사를 갖고 있었다. 에훗은 결국 개인적으로 일을 하겠지만, 그가 그렇게 행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그를 메신저로 보내는 골격 구조 속에서다. 조공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나(삿 3:15, 7-18 ; 삼하 8:2// 대상 18:2; 삼하 8:6/ /대상 18:6: 왕하 17:3-4: 대하 17 : ll: 26: 8 : 호 10 :6) 혹은 흔히 음식물을 제물로 드리는 경우 예배라는 측면에서(출 29:41: 30:9: 40:29 ; 레 2:1-23: 37; 민 4: 16-29 :39 ; 겔 42:13-46 :20) 기술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선물 등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단어인데, 여기서는 아마도 분명 에글론 왕의 기호에 잘 맞는 그런 내용물이었을 것이다. 본문은 대적 에글론이 모압 왕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사기는 독자들이 왕들이 생활하고 역할을 감당하는 방식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끔 해준다.

 

 

 

 

 

 

 

 

 

와야아스 로 에후드 헤렙 웰라흐 쉬네 페요트 고메드 오르카흐 와야흐골 오타흐 밑타하트 레마다우 알 예레드 예미노

 

개역개정,16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새번역,16 그러자 에훗은 길이가 한 자쯤 되는 양쪽에 날이 선 칼을 만들어서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우리말성경,16 한편 에훗은 길이가 1규빗 정도 되는 양날을 가진 짧은 칼을 만들어 자기 옷 속 오른쪽 허벅지에 숨겼습니다. 
가톨릭성경,16 에훗은 길이가 한 고멧 되는 양날 칼을 만들어, 옷 속 오른쪽 허벅다리에 찼다. 
영어NIV,16 Now Ehud had made a double-edged sword about a foot and a half long, which he strapped to his right thigh under his clothing.
영어NASB,16 And Ehud made himself a sword which had two edges, a cubit in length; and he bound it on his right thigh under his cloak.
영어MSG,16  Ehud made himself a short two-edged sword and strapped it on his right thigh under his clothes.
영어NRSV,16 Ehud made for himself a sword with two edges, a cubit in length; and he fastened it on his right thigh under his clothes.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εποιησεν εαυτω αωδ μαχαιραν διστομον σπιθαμης το μηκος και περιεζωσατο αυτην υπο τον μανδυαν επι τον μηρον τον δεξι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16 qui fecit sibi gladium ancipitem habentem in medio capulum longitudinis palmae manus et accinctus est eo subter sagum in dextro femore
히브리어구약BHS,16 וַיַּעַשׂ לֹו אֵהוּד חֶרֶב וְלָהּ שְׁנֵי פֵיֹות גֹּמֶד אָרְכָּהּ וַיַּחְגֹּר אֹותָהּ מִתַּחַת לְמַדָּיו עַל יֶרֶךְ יְמִינֹו׃

 

󰃨 한 규빗 - 히브리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길이의 기준 단위인 규빗(Cubit)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빗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곧 일반 규빗과 성전 규빗이다. 그중 일반 규빗은 신약 시대에도 널리 사용되던 단위로 한 규빗은 45.6cm였다. 그리고 성전 규빗은 일반 규빗보다 손바닥 폭만큼 더긴 53.2cm였다(겔 40:5). 본절에서는 에훗이 칼을 오른쪽 다리 옷 속에 숨겼다가 왼손으로 빼어 사용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칼은 일반 규빗으로 한 규빗인 칼이었던것 같다.

󰃨 좌우에 날선 칼 - '칼'에 해당하는 '헤레브'(*)는 장검(sword) 뿐 아니라 단검(dagger)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예리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훗이 준비한 칼도 예리하게 양날을 세운 일종의 단검이었다.

 

* 그랜드 주석

󰃨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 - 규빗은 어른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를 기준으로 하는 길이의 단위로 한 규빗은 약 45.6cm정도이다. 한편 좌우에 날선 칼은 양날을 가진 '단검'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약 45cm정도의 길이를 가진 단검은 오른쪽 허벅지에 찼을 때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을 것이며 모압 왕을 죽이기에도 적당한 길이였을 것이다.

󰃨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 상식적으로 에훗이 왼손잡이였기에 칼을 왼쪽다리에 차야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에 찼다는 것은 왕의 수비대가 무기를 숨기고 들어왔음을 감지하여도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위장하기 위함이었다. 즉 누구도 에훗이 왼손잡이기 때문에 칼을 오른쪽에 찼을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옥스퍼드 주석

󰃨 좌우에 날선 칼을 - ‘좌우에 날선’으로 번역된 ‘웰라흐 쉐네 페요트’를 직역하면 ‘그리고 두 개의 입을 가진’이라는 의미이다. 칼의 날을 입으로 표현한 것은 음식물을 게걸스럽게 먹는 입의 이미지를 사람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절단해 버리는 칼의 이미지에 연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한편 에훗이 한쪽만이 아닌 양쪽에 날이 있는 칼을 만들어서 준비한 것은 에훗이 자신의 거사를 반드시 성사시키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준다 하겠다.

󰃨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 한글 개역 성경에서 ‘다리’ 로 번역하고 있는 ‘예레크’ 는 좀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넓적다리 (thigh) ’를 뜻한다. 한편 ‘차고’ 로 번역된 ‘와야흐꼬르’의 원형 ‘하가르'는 ‘띠를 매다’, ‘행동할 준비를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단어는 에훗의 모습을 이중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에훗은 실제적으로 에글론 왕을 죽이기 위해 좌우에 날이 선 날카로운 칼을 직접 만들어서 오른쪽 허벅지 옷 안에 그것을 띠로 매어서 고정시켰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동은 그가 이제 에글론 왕을 죽이러 갈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에훗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왼손잡이 에훗이 칼을 왼편에 차지 않고 오른편에 찬 것은 에글론의 군사들에게 검열을 당하더라도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에훗이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예 검열을 하지 않거나 검열을 하더라도 왼쪽 다리, 혹은 왼쪽 허리쪽만 검열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 WBC 주석

󰃨 에훗은 양쪽으로 날카로운 날을 갖고 있는(문자적으로는 “그것에 두 개의 입을” 이다) 특수한 단도를 스스로 만들었다. 히브리어 척량 단위는 “규빗”으로 번역되었고 여기서만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위가 정확하게 어떤 정도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에훗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의 무기를 자기 오른편에 숨기는데, 이쪽은 그가 쉽게 자신의 왼손으로 칼을 뽑아들 수 있는 쪽이면서 동시에 보초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쪽이기도 하다. 니디취(57-58)는 "4장에서처럼 속임수 행동은 에로틱한 주제를 엮어내기 시작하는데, 이는 성적인 것과 공격적이고 논쟁적인 것을 연결시켜 주는 주제다”라고 말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강한 성적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는 “패배한 군인은 넉다운된, 강간당한 그리고 정복당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결론짓는다(58).

 

 

 

 



 

와야크렙 엩 함민하 레에글론 멜렠 모압 웨에글론 이쉬 바림 메오드

 

개역개정,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새번역,17 모압 왕 에글론에게 가서 조공을 바쳤다. 에글론은 살이 많이 찐 사람이었다.
우리말성경,17 그러고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선물을 가져갔습니다. 에글론은 매우 뚱뚱한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17 에훗은 모압 임금 에글론에게 공물을 갖다 바쳤다. 에글론은 매우 살진 사람이었다. 
영어NIV,17 He presented the tribute to Eglon king of Moab, who was a very fat man.
영어NASB,17 And he presented the tribute to Eglon king of Moab. Now Eglon was a very fat man.
영어MSG,17  He presented the tribute to Eglon king of Moab. Eglon was grossly fat.
영어NRSV,17 Then he presented the tribute to King Eglon of Moab. Now Eglon was a very fat man.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προσηνεγκεν τα δωρα τω εγλωμ βασιλει μωαβ και εγλωμ ανηρ αστειος σφοδρα
라틴어Vulgate,17 obtulitque munera Eglon regi Moab erat autem Eglon crassus nimis
히브리어구약BHS,17 וַיַּקְרֵב אֶת־הַמִּנְחָה לְעֶגְלֹון מֶלֶךְ מֹואָב וְעֶגְלֹון אִישׁ בָּרִיא מְאֹד׃

 

󰃨 비둔한 자 - '비둔한'에 해당하는 원어 '바리'(*)는 '통통한', '배부른', '풍성한' 등의 뜻으로 살이 비정상적으로 찐 상태를 의미한다. 에글론은 참으로 비만한 자였는데 그것은 그가 에훗의 칼에 찔렸을 때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던 점으로서도 알 수 있다(22절). 그런데 사사 시대 후기의 제사장 엘리도 심히 비둔한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와 관련 성경 기자는 엘리가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 때문이라고 언급하였다(삼상 4:18).

 

* 그랜드 주석

󰃨 비둔한 자이었더라 - '비둔한 자'의 원어 '이쉬바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이쉬'와 '살찐', '뚱뚱한'의 의미를 지닌 '바리'의 합성어로 '뚱뚱한 사람'을 뜻한다. 이는 그가 얼마나 남의 것을 많이 탈취하면서 살았는지를 암시한다.

 

* 옥스퍼드 주석

󰃨 공물을...바쳤는데 - ‘바쳤는데’ 로 번역된 ‘와야크레브’ 의 원형 ‘카라브'는 장소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가까이 오다(draw near) ’ , ‘접근하다 (approach) ’ 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사역 능동형 (Hiphil)으로 쓰여서 ‘(공물)을 가까이 가져오다’는 뜻이 된다. 즉 에훗은 에글론에게 상납해야 할 공물을 수행원과 함께 가지고 와 바치기 위해 에글론에게로 아주 가까이 나아갔던 것이다.

󰃨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 본문은 주어(웨에글론)와 보어(이쉬) 사이에 be동사 ‘하야'가 생략된 문장이다. 그리고 ‘비둔한’으로 번역된 ‘빠리’는 가축이나 사람의 살진(fat) 모습을 묘사하는 형용사로서 에글론이 뚱뚱한 사람이 었음을 알게 한다. 더욱이 이 단어에 ‘매우’ , ‘심히’ 라는 뜻으로서 형용사를 강조 수식하는 부사 ‘메오드’가 뒤에서 수식함으로써 모압 왕 에글론이 얼마나 뚱뚱했는지를 가히 짐작게 한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에글론은 매우 뚱뚱한 사람’이다. 본문에 be동사가 생략됨으로써 에글론의 뚱뚱한 면이 좀더 부각되고 있다. 에글론의 외모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이후에 벌어질 에훗의 에글론 암살 사건의 복선(代線)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에훗의 거사가 계획대로 오차없이 성공할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에글론의 외모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은 후에 계속되는 기사에서 에훗이 그를 암살할 때 그가 그의 뚱뚱한 몸매 때문에 동작이 둔해서 저항하기 어려울 것임을 보여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에글론의 외모에 대한 설명을 통해 에글론이 어떤 류의 사람인지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사람을 외모로 결코 판단할 수 없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압제자로서 비둔할 정도로 살찐 그의 모습은 자신의 궁궐에 들어앉아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쾌락의 사람, 탐심이 가득한 사람, 또한 이러한 탐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맘대로 약탈하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비쳐진다.

 

* WBC 주석

󰃨 나레이터의 관심은 에글론과 그의 큰 몸집에 집중되어 있다. 다시 한 번, 아이러니가 내러티브를 움직여 간다. “ 매우 비둔하다"(빠리 메오드)라는 언급은 굳이 비평적인 언급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몸이 빠리한 악한 사람들이 세속적인 존경을 얻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시 73 :4).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그들의 빠리와 더불어 자신들의 건강을 입증해 보였다(단 1: 15). 이 형용사는 또한 풍요 유혹적인 음식(합 1:16; 슥 11 : 16) 등도 지칭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 단어는 희생제물로 바치기 위해 준비한, 양질의 짐승들을 표현한다(창 41 :4, 20 : 왕상 4:23 : 겔 34 :3, 20). 그러므로 에글론은 한편으로는 매우 즐겁게 살이 포동포동한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희생제물로 드리기에 완벽한 피조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육체적인 상태 역시 그로 하여금 에훗의 계획에 딱 들어맞게끔 준비시켜 준다.

 

 

 



 

와예히 카아쉘 킬라 레하크리브 엩 함민하 와예솰라흐 엩 하암 노세에 함민하

 

개역개정,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새번역,18 에훗은 조공을 바친 뒤에, 그 조공을 메고 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우리말성경,18 에훗은 선물을 바친 후에 그것을 운반한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가톨릭성경,18 에훗은 공물을 다 바친 다음에 그 공물을 들고 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영어NIV,18 After Ehud had presented the tribute, he sent on their way the men who had carried it.
영어NASB,18 And it came about when he had finished presenting the tribute, that he sent away the people who had carried the tribute.
영어MSG,18  After Ehud finished presenting the tribute, he went a little way with the men who had carried it.
영어NRSV,18 When Ehud had finished presenting the tribute, he sent the people who carried the tribute on their 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εγενετο ως συνετελεσεν αωδ προσφερων τα δωρα και εξαπεστειλεν τους αιροντας τα δωρα
라틴어Vulgate,18 cumque obtulisset ei munera prosecutus est socios qui cum eo venerant
히브리어구약BHS,18 וַיְהִי כַּאֲשֶׁר כִּלָּה לְהַקְרִיב אֶת־הַמִּנְחָה וַיְשַׁלַּח אֶת־הָעָם נֹשְׂאֵי הַמִּנְחָה׃

 

* 그랜드 주석

󰃨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은 짐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공을 바치러 올 때 동행한 수행원들을 의미한다. 고대 사회에서 수행원의 크기는 종주국에 대한 존경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의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종주국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수행원이 조공을 바치는데 동원되어야 했으며 어떤 때는 필요 이상의 수행원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풍습에 따라 에훗도 여러 수행원들과 함께 조공을 바치러 갔음을 알 수 있다.

 

* 옥스퍼드 주석

󰃨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 본문은 ‘와예히’로 시작하고 있다. ‘와예히’는 ‘와우' 접속사에 ‘하야' 동사의 미완료형이 결합된 것으로, 주로 문장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할 때 문장 서두에 사용하는 관용어인데 직역하면 ‘그리고 ... 일이 발생했다’가 된다. 따라서 ‘와예히’의 의미를 살려서 본문 전체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공물을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완성했을 때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 가 된다. 이러한 문장을 사용하여 본서 저자는 이제 곧 무엇인가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에훗이 ... 마친’으로 번역된 ‘킬라’는 원형 동사 ‘칼라'의 강조를 나타내는 강의형(Piel) 이다. ‘칼라’ 동사의 의미는 ‘끝나다’ , ‘완료되다’ 인데 이는 에훗이 공물을 바치는 과정을 마쳤다는 문자적 의미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는 이제 이 모압 왕에게 굴욕의 표시로 계속 바쳤던 공물을 드리는 행위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 공물을 들고 온 그 백성을 보냈다’이다. ‘그 백성 ’ , 즉 ‘하암’은 사사 에훗의 지휘를 받는 이스라엘 수행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보내고’ 로 번역된 ‘와예솰라흐’는 원형 ‘솰라흐'의 강의형(Piel)이 사용되어서 에훗이 자신의 거사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굳은 결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에훗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었을텐데 모든 것을 혼자 수행하였던 것이다. 이는 에글론을 암살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보다는 혼자가 더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19 , 20절) .

 

* WBC 주석

󰃨 시점을 표현하는 구문인 “그가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라는 표현은 매우 세심하게 히브리 내러티브를 천천히 진행하도록 만들어 주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예상 밖의 핵심적인 순간을 준비하게 해준다. 에훗은 이제 자신이 땅에서 갖고 있던 소임은 다 마무리 했고 이제 막 자신의 천상의 소명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종들을 돌려보내는데, 이는 조공을 들고 오는 자들로서 그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다 마무리했으며, 또한 에훗이 갖고 있는 다음 계획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웨후 솹 민 하프실림 아쉘 엩 학길갈 와요멜 데발 세테르 리 엘레카 함멜렠 와요멜 하스 와예츠우 메알라우 콜 하오메딤 알라우

 

개역개정,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새번역,19 그러나 에훗 자신은 길갈 근처 돌 우상들이 있는 곳에서 되돌아와, 에글론에게 "임금님, 제가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왕이, 모시고 섰던 부하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모두 물러갔다.
우리말성경,19 그러고는 길갈 근처에 있는 우상들이 있는 곳에서 다시 발길을 돌려 자기만 되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왕이여, 제가 왕께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왕이 “조용히 하라!”라고 말하자 그의 모든 신하들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러나 그 자신은 길갈 근처 우상들이 서 있는 곳에서 되돌아가, "임금님,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이 시종들에게 "조용히 하여라!" 하고 말하자 그들이 모두 물러갔다. 
영어NIV,19 At the idols near Gilgal he himself turned back and said, "I have a secret message for you, O king." The king said, "Quiet!" And all his attendants left him.
영어NASB,19 But he himself turned back from the idols which were at Gilgal, and said, "I have a secret message for you, O king." And he said, "Keep silence." And all who attended him left him.
영어MSG,19  But when he got as far as the stone images near Gilgal, he went back and said, "I have a private message for you, O king." The king told his servants, "Leave." They all left.
영어NRSV,19 But he himself turned back at the sculptured stones near Gilgal, and said, "I have a secret message for you, O king." So the king said, "Silence!" and all his attendants went out from his presence.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εγλωμ ανεστρεψεν απο των γλυπτων μετα της γαλγαλ και ειπεν αωδ λογος μοι κρυφιος προς σε βασιλευ και ειπεν εγλωμ πασιν εκ μεσου και εξηλθον απ' αυτου παντες οι παραστηκοντες αυτω
라틴어Vulgate,19 et reversus de Galgalis ubi erant idola dixit ad regem verbum secretum habeo ad te o rex et ille imperavit silentium egressisque omnibus qui circa eum erant
히브리어구약BHS,19 וְהוּא שָׁב מִן־הַפְּסִילִים אֲשֶׁר אֶת־הַגִּלְגָּל וַיֹּאמֶר דְּבַר־סֵתֶר לִי אֵלֶיךָ הַמֶּלֶךְ וַיֹּאמֶר הָס וַיֵּצְאוּ מֵעָלָיו כָּל־הָעֹמְדִים עָלָיו׃

 

󰃨 길갈 - 성경에는 이름은 같으나 실제로는 다른 곳인 '길갈'이 여러 곳 나온다. 즉여리고 근처의 길갈(수 4:19)이 있는가 하면 갈릴리 지역의 길갈(수 12:23), 유다 경계지의 길갈(신 15:7)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에발 산 근처의 길갈(신 11:30) 및 엘리야와 엘리사가 관계된 길갈(왕하 2:1)도 있다. 여기서는 그가운데 사무엘의 순회 통치지이기도 하였던(삼상 7:16) 여리고 근처의 길갈을 가리키는 듯하다.

󰃨 돌 뜨는 곳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페실림'(*)의 기본 뜻은 '새기다'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3가지로 집약되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채석장의 의미 : KJV와 Living Bible은 이 해석을 취한다. 이것은 '돌을 뜨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파살'(*)에 따른 번역이다(Keil). (2) 기념 비석의 의미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강을 건넜으므로 이를 기념키 위해 여호수아는 길갈에 돌을 세운 적이있다(수 4:19-24). 그래서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는테 '페실림'은 바로 그곳에 세워진 기념비석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A.E. Cundall). (3) RSV, NIV, 공동번역에는 '페실림'이 '새겨진 돌' 또는 '우상들'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서도 '페실림'이 '우상'의 의미로 사용된 곳이 있다(신 7:25 ; 사 21:9 ; 렘 8:19). 이 세 가지 해석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세번째 견해이다. 그 이유는 '페실림'이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단어의 단수형 '페셀'(*) 역시 '새겨진 형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Lange, C.F.Pulipit Commentary).

󰃨 은밀한 일 - 공동 번역은 이를 '은밀히 드릴 말'로 번역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 정보' 곧 보안을 필요로 하는 중대사(重大事)를 가리킨다.

 

* 그랜드 주석

󰃨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 - 길갈은 수 4:19에서 알 수 있듯이 여리고 근처에 위치한 성읍이요,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너고 나서 기념비 12개를 세웠던 곳이다. 한편 ‘돌 뜨는 곳’에서 ‘뜨는’의 원어는 ‘페실'의 복수 ‘페실림’으로서 ‘우상들’, ‘채석장’, ‘조각한 기념비’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가지의 의미 중 어느 것이 이 문장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내 주느냐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 단어가 새긴 우상을 묘사하는데 21회나 사용되었기에 ‘우상들’이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돌 뜨는 곳’은 ‘돌로 만든 신상이
있는 곳’, 즉 이방신의 신전이나 제단이 있는곳을 의미하게 된다(Pulpit Commentary. Barney. NASB. NN). 한편 다른 견해는 돌을 채취하는 채석장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한 예로 Living Bible은 'at the quarries of Gilgal' 즉 길갈에 있는 ‘채석장’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KJV도 동일한 번역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견해는 ‘기념비’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요단 강 도하를  기념하기 위하여 길갈에 세운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기념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수 4: 19-24). 그리하여 ‘돌 뜨는 곳’은 길갈의 기념비가 있는 곳을 말한다고 주장한다(G.F. Moore). 이 밖에도 또 어떤학자는 지명 경계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근동에서는 어떤 왕이 정령한 영토의 경계선 위에 자신의 얼굴 형상을 새긴 돌비석을 세워 경계표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에 따라 모압 왕 에글론이 요단 강 계곡을 점령하면서 길갈에다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임을 천명하기 위하여 돌을 조각하여 경계표로 세운 것이라고 말한다. RSV는 ‘돌 뜨는 곳’을 ‘조각한 돌들’, 즉 형상을 새긴 경계표라고 번역하여 이 견해를 뒷받칭하고 있다. 한편 이상의 네가지 견해 중 비교적 가장 타당한 것은 네번째 견해이다. 왜냐하면 길갈에 신전이 있었다는 중거가 없을 뿐더러 있었으면 여호수아의 정복 때 훼파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갈 주위에 채석장이 있었다는 증거마저 빈약하다. 더욱이 본문을 잘 살피면 이에 대한 설득력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첫째 19절에서 에훗이 조공을 바치고 난 후 그의 수행원들과 함께 길갈 근처 돌 뜨는 곳까지 갔다가 자신만 ‘돌아온 것’은 그곳에 이스라엘 땅과 모압의 땅을 구분짓는 경계표가 있어서 그 경계만 넘으면 안전하였기에 수행원들을 안전지대까지 보내놓고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26절에도 보면 에훗 자신도 그 지역을 지나서 이스라엘의 영토 안으로 피신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같은 사실을 근거로 할 때 ‘돌 뜨는 곳’은 경계표임에 틀림이 없다.

󰃨 은밀한 일을...고하려 - ‘은밀하다’의 원어 ‘세테르’는 ‘비밀스럽다’는 의미이므로 은밀한 일이란 남들이 들어서는 안되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뜻한다.

󰃨 종용케하라 - ‘종용케 하라’의 원어 ‘하사’는 ‘잠잠하게 하다’ 또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이다. 이말은 에훗에게 한 말이 아니라 신하들이나 수비대에게 한 말로서 정숙을 요한 명령이 아니라 어전에서 물러갈 것을 명한 말이다.

 

* 옥스퍼드 주석

󰃨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 히브리어는 동사 자체에 인칭 접미어가 있기 때문에 강조하기 위한 특별한 의도가 없으면 인칭 대명사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문 초두에 3인칭 대명사 ‘후'가 사용된 것은 오직 에훗 혼자 모압 왕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은 ‘합페씰림’을 ‘돌 뜨는 곳’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 번역은 원어 성경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번역으로 보기는 어렵다. 원형 ‘페씰'은 ‘새기다’ , ‘조각하다’ , ‘돌을 다듬다’ 는 뜻을 가지 고 있는 동사 ‘파쌀'에서 파생된 단어로 ‘돌이나 나무, 또는 금속으로 다듬어서 만든 우상’ 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리고 ‘합페씰림’은 ‘페씰’의 복수형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이므로 이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우상을 만드는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처음 요단강을 건너 진을 친 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할례를 행했던 유서 깊은 지역이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잊지 않도록 요단강 바닥에서 건진 돌들을 쌓아놓은 지역이었다(수 4:20). 바로 이러한 신앙의 흔적이 남아있는 주변에 우상들을 만드는 채석장이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 먼저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의 정체성을 흐리고 자기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길갈 근처에 우상을 만드는 채석장을 두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이스라엘이 길갈 근처에 우상을 만드는 채석장을 만들었거나 그것을 허용할 만큼 여호와 절대 신앙이 흐려져 있었으며, 다신론 사상을 지니게 되었을 가능성이다.

󰃨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 ‘은밀한’ 으로 번역되어 있는 ‘쎄테르’는 ‘숨다(hide)’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 ‘싸타르'에서 유래한 단어 ‘비밀(secrecy)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쎄테르’는 ‘일’ , ‘사건’ 을 의미하는 명사 ‘따바르'의 연계형 ‘떼바르'와 연결되어서 ‘비밀스런 일(사건)’ 을 의미하는데, 이는 왕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들어서는 안된다는 뉘앙스를 주므로써 에글론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을 것이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은 본문을 동사를 사용해서 풀어서 번역함으로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해 주는 장점은 가지고는 있지만, 반면 원어 성경이 가지고 있는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지는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원어 성경에는 동사가 사용되지 않고 명사와 전치사 등 핵심적인 단어만 배열되어 있어서 에글론이 신경을 딴데로 쓸 잠시간의 여유도 갖지 못할 정도로 에훗이 긴장된 모습으로 재빨리 말하고 있는 것이 효과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서 본문을 번역하면 ‘나에게 비밀스런 사건이 당신에게, 왕이여'가 된다. 즉 에훗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지 않고 중심되는 단어만을 사용함으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공물을 가지고 왔던 사람이 조용히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은 상태에서 왕과의 대화를 요청하는 모습은 에글론과 신하들에게 긴장감을 더해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 왕이 명하여 종용케 하라 하매 - 한글 개역 성경에서 ‘종용케 하라’ 로 번역된 ‘하쓰’ 는 감탄사로서 ‘쉿, 조용해’ 라는 뜻을 전달한다. 에훗의 대화 요청을 듣고 왕이 이렇게 단 한마디의 감탄사만 사용하여 신하들을 물린 것은 왕이 에 훗의 말을 긴장 가운데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에훗과의 대화 내용을 자신의 신하들까지 물리고 혼자만 들어야 하는 비밀스런 내용으로 여겼음을 보여 준다.

󰃨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 ‘와예체우’는 ‘와우 계속법'으로 사용되어서 왕의 명령에 신하들이 지체없이 순종했음을 보여 주며, 원형 ‘야차'는 ‘밖으로 나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안에 있던 신하들이 다 밖으로 나갔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메알라이우’를 번역하지 않았는데, 이 단어는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과 ‘ ~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알'에 남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전치사구로서 ‘그의 위로부터 (아래로)’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에글론 왕이 있던 다락방에서 아래쪽 다른 곳으로 신하들이 나갔던 것이다. 또한 ‘모든’을 뜻하는 ‘콜’은 그 방 안에 에훗과 에글론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계획했던 대로 방안에는 왕과 에훗 단 둘이 남게 된 것이다.

 

* WBC 주석

󰃨 히브리어 불연속 구문은 이 내용을 제시하면서 앞에 나온 내용과 직접적인 대조를 이루게 하고, 또한 내러티브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끔 한다. 조공을 들고 왔던 사람들은 돌아간다. 그러나 에훗은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서는 지리적인 상황이 정확하게 어떠한가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에훗은 여호수아의 행동의 중심지(수 4:19-20: 5:9-10 : 9:6: 10 :6-7, 9, 15, 43: 14:6: 15:7) 였던 길갈까지 간다. 길갈은 2:1과 이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했다가 사사기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이 갖는 중심적인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포기해 버린 것인가? 백성들은 각자의 “거처들”로 돌아가 버린 것인가? 예배 중심지는 벧엘이나 아니면 실로(삿 18:31 : 21 : 12 , 19, 21 ) 로 옮겨져 버린 것인가? 여호수아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길갈에 있는 예배지와 군사적 중심지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나 사사들의 통치하에서 중심적인 예배지는 잊혀져 버렸다. 여호수아 시대 때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예배지였던 곳이 이제는 분명 이방 신들의 상징들인 "형상들"을 갖고 있게 되었다(신 7:5, 25: 12 :3: 삿 3: 19, 26 : 왕하 17 :41: 대하 33:19, 22 : 34:3-4, 7: 시 78:58: 사 10:10: 21 :9: 30 :22: 42: 8: 렘 8: 19 : 50:38 : 51 :47, 52: 호 II :2: 믹 1:7 : 5:12 ). 우리는 히브리어를 읽으면서 길갈이 뒤이어 나오는 대결의 장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에글론이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 인근에 진영을 갖추고 었었다는 것도 볼 수 있다(1 3 절) . 아마도 나레이터는 내러티브의 속도를 상당히 많이 , 빨리 가져가고 있고 그는 이렇게 속도를 올림으로써 독자들이 에훗이 자기 백성들이 있던 길갈에서부터 돌아와 왕이 있던 수도 성읍으로 돌아왔음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에훗이 왕의 앞을 떠난 후에 자신이 “당신에게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받았기에 갑작스럽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통해 속임수를 잘 처리하게끔 해준다. 모압 사람들은 우상들의 장소에 대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계시를 받을 수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글론은 비밀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
기 나온 히브리어인 '떼바르 쎄테르'은 “말씀", "일" 혹은 "문제" 등을 의미한다. 종종 이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 이나 혹은 "선지자들의 선포"라는 의미로서 등장하곤 한다. 에글론은 문제의 본질을 알아야만 했고 또한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그는 이런 비밀은 일대일의 자리에서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종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르고, 그들을 왕이 있는 곳에서 밖으로 내 보냈다.

 

 

 

 

 



 

웨에후드 바 엘라우 웨후 요쉡 바알라야트 함메케라 아쉘 로 레바도 와요멜 에후드 데발 엘로힘 히 엘레카 와야콤 메알 하킷세

 

개역개정,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새번역,20 에훗이 왕에게 다가섰을 때에, 마침 왕은 시원한 그의 집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에훗이 "임금님께 전하여 드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니,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말성경,20 그러자 에훗이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왕은 지붕 위에 있는 시원한 다락방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왕께 드릴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왔습니다”라고 에훗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톨릭성경,20 그래서 에훗은 시원한 윗방에 홀로 앉아 있는 에글론에게 다가갔다. 에훗이 "임금님께 전해 드릴 하느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니,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영어NIV,20 Ehud then approached him while he was sitting alone in the upper room of his summer palace and said, "I have a message from God for you." As the king rose from his seat,
영어NASB,20 And Ehud came to him while he was sitting alone in his cool roof chamber. And Ehud said, "I have a message from God for you." And he arose from his seat.
영어MSG,20  Ehud approached him--the king was now quite alone in his cool rooftop room--and said, "I have a word of God for you." Eglon stood up from his throne.
영어NRSV,20 Ehud came to him, while he was sitting alone in his cool roof chamber, and said, "I have a message from God for you." So he rose from his seat.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αωδ εισηλθεν προς αυτον και αυτος εκαθητο εν τω υπερωω τω θερινω αυτου μονωτατος και ειπεν αωδ λογος θεου μοι προς σε βασιλευ και εξανεστη απο του θρονου εγλωμ εγγυ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20 ingressus est Ahoth ad eum sedebat autem in aestivo cenaculo solus dixitque verbum Dei habeo ad te qui statim surrexit de throno
히브리어구약BHS,20 וְאֵהוּד בָּא אֵלָיו וְהוּא־יֹשֵׁב בַּעֲלִיַּת הַמְּקֵרָה אֲשֶׁר־לֹו לְבַדֹּו וַיֹּאמֶר אֵהוּד דְּבַר־אֱלֹהִים לִי אֵלֶיךָ וַיָּקָם מֵעַל הַכִּסֵּא׃

 

󰃨 서늘한 다락방 - 고대 근동 지방의 건축 양식에 따르면 지붕 위에 통풍이 잘 되도록 여러 개의 창문을 낸 다락방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했던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도 이러한 다락방이었다(막 14:15).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지붕 위에 이러한 다락방을 만들어 쉬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Shaw, Wycliffe Commentary).

󰃨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고할 일이 있나이다 - 에훗이 실제로 에글론에게 전달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에홋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자로 세우실 때, 이미 그에게 에글론을 죽이고 그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주셨을 것이다(15절).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명'이란 바로 그러한 명령을 가리킨다고 본다면 에홋은 단순히 에글론을 암살키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MatthewHenry). 에훗이 모압과의 전투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사람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28절)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 혹자(Bertheau)는 에글론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97). 그러나 본문에는 그러한 의미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에글론이 말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여 일어났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에훗의 말이 매우 비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여 더욱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에홋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좌석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 그랜드 주석

󰃨 서늘한 다락방 - '서늘한'의 원어 '메케라'는 '여름', '시원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름 궁전’ , ‘시원한 장소’ 등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서늘한 다락방이란 ‘왕의 여름 궁전에 있는 다락방’이란 의미가 된다(NIV. NEB). 보통 다락방은 일반적인 회의실이 아니라 중대사를 다룰 때 쓰이는 회의실이다. 따라서 왕이 중대한 논의를 위하여 에훗을 여름 궁전에 있는 다락방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반적으로 다락방은 건물의 한 구석에 지붕보다 높게 지은 부속건물로, 어떤 것은 탑과 같은 형태를 지니는 것도 있다. 모든 방면에 창을 내어 공기의 유통이 잘 되었기에 그 집에서 가장 편한 곳이었다.

󰃨 하나님의 명 -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즉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탁’(神託)을 의미한다.

󰃨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 이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거나 은밀한 일을 더욱 가까이에서 듣기 위함이 아니라 신탁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동으로 이해된다.

 

* 옥스퍼드 주석

󰃨 에훗이...왕은 - 본서 저자는 본절 상반절을 구성하는 두 문장에서 모두 주어를 문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왕’ 이라고 번역된 ‘후’ 는 인칭 대명사로서 ‘그(는)’ 를 뜻한다. 히브리어에서 주어를 동사 앞에 두는 것과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그 주어를 강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렇듯이 두 명의 인물 즉 에훗과 에글론에게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켜 곧 둘 사이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 서늘한 다락방에 - '알리야트'는 ‘다락방(roof -chamber) ’도 되지만 ‘윗방(upper room)'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는 창이 사방으로 나 있어서 바람이 서늘하게 들어오는 조용하고 평평한 지붕 위에 옥탑처럼 설치된 방을 의미한다. 팔레스틴 지역의 기후 특성상 더위로 찌는 듯한 낮 시간에 이렇게 시원한 방에 평안히 거하고 있는 왕의 모습은 이후에 다가올 그의 비참한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한다. 이처럼 인생은 예외없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에 싸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 본문은 제 19절에서 에훗이 왕에게 했던 말에서 한 단어만 바뀐 채 동일하게 표현된 문장이다. 즉 본절에는 19절에 쓰인 ‘쎄테르’ 대신 ‘엘로힘’ 이 쓰였었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쪽으로’ 이다. 한편 ‘하나님’ 으로 번역된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러 다양한 ‘신들’이라는 의미도 있다. 에훗은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엘로힘’이라는 말만 사용함으로써, 모압 왕 에글론으로 하여금 ‘신들’ 이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하였을 것이다. 에글론은 에훗의 그 말을 듣고 그가 섬기는 신 중의 하나가 자기에게 어떤 신탁을 내려준 것으로 생각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에훗 쪽으로 몸을 가까이했을 것이다.

󰃨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 ‘좌석’ 으로 번역된 ‘학킷쎄'는 문자적으로 ‘의자’ 라는 뜻인데, 왕이 앉아 있으므로 ‘보좌(throne)'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에서 정확하게 번역하지 않은 ‘메알’은 ‘~로부터 (from) ’ 라는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과 ‘~위에(upon) ’라는 뜻의 전치사 ‘알'이 결합된 단어로서 ‘학킷쎄’와 함께 전치사구를 이루며, 이는 ‘그 보좌 위로부터’ 라는 뜻이다. 에글론은 에훗의 말을 듣고 신탁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신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 보좌에서 지체없이 일어나 에훗 쪽으로 갔던 것이다.

 

* WBC 주석

󰃨 에훗은 왕이 앉아 있던 “서늘한 다락방 왕좌” 에 가까이 나아간다. 나레이터는 에글론이 혼자 있었다는 점을 불필요하게 강조한다. 에훗은 자신이 바라던 상황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에훗은 자신이 받은 다바르가 “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면서 대화 자체에 섬뜩하고 두려운 분위기를 덧붙인다. 여기 사용된 엘로힘(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이후에 사용될 좀 더 인격적인 이름 '야웨'라는 용어보다는 좀 덜 명확하고 이해하는 데는 좀 더 용이한 호칭이다.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왕은 자기 왕좌에서 일어났는데, 이는 아마도 경외심 때문이거나 혹은 당황해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에글론은 자기 자신을 에훗의 계획대로 흘러가도록 내맡기게 된다.

 

 

 



 

와이쉐라흐 에후드 엩 야드 세모로 와잌카흐 엩 하헤렙 메알 예레드 예미노 와이트카에하 베비테노

 

개역개정,21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새번역,21 그 때에 에훗은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왕의 배를 찔렀다.
우리말성경,21 그리고 에훗은 왼손을 뻗어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왕의 배를 찔렀습니다. 
가톨릭성경,21 그때에 에훗이 왼손을 뻗어 오른쪽 허벅다리에서 칼을 뽑아 그의 배를 찔렀다. 
영어NIV,21 Ehud reached with his left hand, drew the sword from his right thigh and plunged it into the king's belly.
영어NASB,21 And Ehud stretched out his left hand, took the sword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영어MSG,21  Ehud reached with his left hand and took his sword from his right thigh and plunged it into the king's big belly.
영어NRSV,21 Then Ehud reached with his left hand, took the sword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Eglon's belly;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εγενετο αμα του αναστηναι εξετεινεν αωδ την χειρα την αριστεραν αυτου και ελαβεν την μαχαιραν απο του μηρου του δεξιου αυτου και ενεπηξεν αυτην εις την κοιλιαν εγλωμ
라틴어Vulgate,21 extenditque Ahoth manum sinistram et tulit sicam de dextro femore suo infixitque eam in ventre eius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שְׁלַח אֵהוּד אֶת־יַד שְׂמֹאלֹו וַיִּקַּח אֶת־הַחֶרֶב מֵעַל יֶרֶךְ יְמִינֹו וַיִּתְקָעֶהָ בְּבִטְנֹו׃

 

󰃨 에훗이...왕의 몸을 찌르매 - 이에 대하여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에글론에게 전달될 하나님의 명령(20절)이 에글론의 귀가 아닌 가슴(heart)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말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강해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136).

 

* 그랜드 주석

 

* 옥스퍼드 주석

󰃨 에훗이 ... 칼을 빼어 ... 찌르매 - 본문 서두에 나오며 한글 개역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와이쉴라흐’는 원형이 ‘솰라흐'로 ‘뻗치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왼손을 오른쪽 허벅지쪽으로 뻗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은 에글론을 살해하기 위해 손을 뻗쳐 칼을 뽑아드는 장면을 생략해 버렸으나, 이처럼 원어 성경에서는 ‘와우'로 연결되는 세 개의 동사(와이쉴라흐, 와익카흐, 와이트카에하)를 사용해 살해 사건이 순간적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임을 나타내면서도 에훗이 에글론 왕을 살해하는 장면을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slow motion) 처럼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왕의 몸을 - 본문은 전치사 ‘빼'와 명사 ‘뻬텐'에 남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전치사 ‘빼'는 ‘~안으로(into) ’ 라는 뜻이며, 명사 ‘빼텐'은 ‘사람의 배(belly)'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의 배 안으로'가 된다. 본문은 이처럼 에훗이 칼을 잡고서 에글론 왕의 그 살찐 배를 깊이 찌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WBC 주석(21-22)

󰃨 이제 우리는 에훗이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조심스럽게 단검을 숨겨놓았던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종들을 양편 모두에서 나가도록 한 이유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또한 왕의 비만에 관해 언급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단검은 왕의 복부를 완벽하게 찔렀다. “기름"(하헤렙)이라는 단어는 희생 제사와 관련된 언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어휘이기도 하다(창 4:4: 출23: 18 : 레 4:26: 6:5: 8:25: 9:19-20, 24: 10:15 : 16:25: 신 32:38 : 왕상 8: 64 :대하 7:7 : 29 :35 : 35:14: 사 43:24). 만약 우리가 수수께끼 같은 히브리어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레이터는 조금은 어두운 유머를 사용하면서 이 장면을 서둘러 마무리한다. 보초가 신속하게 행동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유일한 해설은, 여기에 나타난 일종의 화장실 유머에서부터 찾아야만 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전쟁터에서 입은 이와 같은 상처에 관해서는 Younger, 118, n. 26을 보도록 하라. 그리고 Halpern, First Historians, 40와 비교하라.

 

 



 

와야보 감 한니찹 아하르 할라합 와이스고르 하헤렙 베아드 할라합 키 로 솰라프 하헤렙 미비테노 와예체 하파르쉐도나

 

개역개정,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새번역,22 칼자루까지도 칼날을 따라 들어가서 칼 끝이 등 뒤로 나왔다. 에훗이 그 칼을 빼내지 않았으므로, 기름기가 칼에 엉겨 붙었다.
우리말성경,22 칼의 손잡이도 칼날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에훗이 칼을 왕의 배에서 빼내지 않아 몸속의 지방이 칼날을 감싸고 등 뒤로 나왔습니다. 
가톨릭성경,22 칼날과 함께 자루까지 박혔는데, 에훗이 에글론의 배에서 칼을 뽑지 않았으므로 굳기름이 칼에 엉겨 붙었다. 
영어NIV,22 Even the handle sank in after the blade, which came out his back. Ehud did not pull the sword out, and the fat closed in over it.
영어NASB,22 The handle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over the blade, for he did not draw the sword out of his belly; and the refuse came out.
영어MSG,22  Not only the blade but the hilt went in. The fat closed in over it so he couldn't pull it out.
영어NRSV,22 the hil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over the blade, for he did not draw the sword out of his belly; and the dirt came out.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και επεισηνεγκεν και γε την λαβην οπισω της φλογος και απεκλεισεν το στεαρ κατα της φλογος οτι ουκ εξεσπασεν την μαχαιραν εκ της κοιλια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22 tam valide ut capulus ferrum sequeretur in vulnere ac pinguissimo adipe stringeretur nec eduxit gladium sed ita ut percusserat reliquit in corpore statimque per secreta naturae alvi stercora proruperunt
히브리어구약BHS,22 וַיָּבֹא גַם־הַנִּצָּב אַחַר הַלַּהַב וַיִּסְגֹּר הַחֵלֶב בְּעַד הַלַּהַב כִּי לֹא שָׁלַף הַחֶרֶב מִבִּטְנֹו וַיֵּצֵא הַפַּרְשְׁדֹנָה׃

 

󰃨 칼자루도...등뒤까지 나갔고 -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칼날이 에훗에 의해 힘있게 에글론의 몸에 꼽혔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 칼을...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에글론에게 내리신 심판을 거두지 아니하시므로 죽음의 저주가 끝까지 에글론과 함께 하였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한편 혹자는 이상과 같은 에훗의 암살 행위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의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홋의 행위는 성경에 나오는 여타 암살 행위(삼하 2:27 ; 4:6)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즉 일반적으로 암살 행위는 사적 원한과 야비한 정치욕(政治慾)에서 비롯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홋은 엄연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에글론을 응징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훗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 그랜드 주석

본절은 에훗이 얼마나 확실하게 에글론을 죽였는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 에훗이 에글론을 완전히 죽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RSV는 이 말 뒤에 히브리 원문에는 있으나 뜻이 모호하여 보통 번역하지 않는 구문을 번역하여 ‘그리고 오물이 나왔더라’(the dirt come out) 라고 붙여 쓰고 있다. 여기서 ‘오물’은 인분을 말하며 이 오물은 배로 나온 것이 아니라 칼에 찔린 고통으로 인해 항문으로 나온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엄정성을 보여 준다.

󰃨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 그의 체구가 뚱뚱하였기에 (17절) 당연한 결과이다.

 

* 옥스퍼드 주석

󰃨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 칼자루도 또한 그 칼날의 뒤를 따라서 들어갔다’ 가 된다. 칼자루까지 에글론의 두꺼운 배를 뚫고 들어간 것을 볼 때 우리는 에훗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에글론의 배를 찔렀는지 알게 된다. 단 한번에 찔러 죽이지 못하면 에글론 왕은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시위 군사들을 부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에훗 자신이 잡혀 죽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에훗은 칼자루까지 에글론의 뱃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힘껏 찔렀던 것이다.
󰃨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 한글 개역 성경은 본문을 칼끝이 등을 뚫고 나갔다는 의미로 번역을 하고 있으나, 원어 성경에서는 이와는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 끝이 ... 나갔고’로 번역된 ‘와예체’는 단지 ‘그리고 그것이 나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등뒤까지’ 로 번역된 ‘합파르쉐도나'는 ‘(빠져나가는) 구멍’을 의미하는 명사 ‘파르쉐돈'에 앞뒤로 각각 정관사 ‘하’와 방향 접미어 ‘아'가 결합되어 ‘(빠져나가는) 그 구멍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이 그 구멍을 향하여 나갔다’는 의미이며, 이는 ‘그리고 그(에훗)가 그 구멍(현관)을 향하여 나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르쉐돈’은 ‘배설물’을 의미하는 ‘페레쉬'에서 유래한 단어라는 점에서 라틴어 벌게이트역(Vulgate)이나 아람어 탈굼역(Targum) 에서는 본문을 ‘그리고 배설물이 나왔다’ 로 해석한다. 영어 번역본 KJV, RSV, NASB 등도 이러한 의미의 번역을 택한다. ‘배설물이 나왔다'는 번역을 따를 경우 에글론은 갑자기 칼에 찔리는 충격으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 ‘하헬레브(기름)’ 는 특히 ‘몸의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fat covering the interior of the body) ’ 을 가리킨다. 그리고 ‘빼아드’는 기본적으로 ‘~뒤에 (behind) ’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전치사로 ‘닫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동사와 함께 사용되어서 ‘~뒤에서 (문을) 닫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또한 한글 개역 성경에서 ‘영기었더라’로 번역된 ‘와아쓰꼬르'는 원형이 ‘싸가르' 로서 ‘닫다 (shut) ’ , ‘폐쇄하다(close)' , 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 기름이 그 칼날을 뒤에서 닫아버렸다’ 가 된다. 이러한 표현은 칼날이 에글론 왕의 배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는 모습을 의인화시켜서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묘사는 제 17절에서 에글론 왕을 ‘심히 비둔한 자’ 라고 셜명한 것과도 잘 상응한다. 그의 부와 사치를 드러내 주던 그의 뚱뚱한 몸은 이제 피와 기름이 뒤엉켜 칼날조차 다시 빼어내지 못한 끔찍하고도 추한 모습의 싸늘한 시체로 변한 것이다. 이처럼 제 21 절과 22절은 에훗이 에글론을 칼로 찌른 사건과 에글론이 죽는 과정을 회화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에서 권세 잡은 자라 할지라도 죄를 범한 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 WBC 주석(위와 동일)

 

 

 



 

와예체 에후드 함미스데로나 와이스고르 달레토트 하알리야 베야도 웨나알

 

개역개정,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새번역,23 에훗은 현관으로 나가, 뒤에서 다락방 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우리말성경,23 에훗은 곧 밖으로 나와서 다락방의 문들을 닫고서 걸어 잠갔습니다. 
가톨릭성경,23 에훗은 윗방 문을 닫아 잠그고서는 현관으로 나갔다. 
영어NIV,23 Then Ehud went out to the porch; he shut the doors of the upper room behind him and locked them.
영어NASB,23 Then Ehud went out into the vestibule and shut the doors of the roof chamber behind him, and locked them.
영어MSG,23  Ehud slipped out by way of the porch and shut and locked the doors of the rooftop room behind him.
영어NRSV,23 Then Ehud went out into the vestibule, and closed the doors of the roof chamber on him, and locked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εξηλθεν αωδ εις την προσταδα και απεκλεισεν τας θυρας του υπερωου επ' αυτον και εσφηνωσεν
라틴어Vulgate,23 Ahoth autem clausis diligentissime ostiis cenaculi et obfirmatis sera
히브리어구약BHS,23 וַיֵּצֵא אֵהוּד הַמִּסְדְּרֹונָה וַיִּסְגֹּר דַּלְתֹות הָעַלִיָּה בַּעֲדֹו וְנָעָל׃

 

󰃨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 에홋은 암살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있는 문들을 닫아 잠갔다. 다락방 안에 왕이 있을지라도 문이 잠겨 있으면 신하들이 왕의 허락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점(24절)을 에훗은 십분 이용한 것이다.

 

* 그랜드 주석

󰃨 현관에 나와서 - 현관의 원어 ‘미스데론'은 '주랑', '현관 내부'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정확한 형체에 대한 정보는 없다. 추측컨데 현관은 여러 개의 기둥들만 나란히 서 있고 벽이 없는 누각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 이러한 행동은 왕의 죽음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여 자신의 안전지대로 안전하게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한 에훗의 지혜였다. 이런 지혜는 다락문을 신하들이 왕의 허락없이는 열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 옥스퍼드 주석

󰃨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 '현관에’로 번역된 ‘함미쓰떼로나’는 ‘배열하다’는 뜻을 지닌 사용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된 원형 ‘미쓰떼론'에 정관사 ‘하'와 방향을 나타내는 접미어 ‘아'가 각각 앞뒤에 붙은 것이다. 그런데 명사 ‘미쓰떼론’은 현관을 의미하는 단어인지, 통풍이 되는 창문과 같은 구멍을 의미하는 단어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아마도 에훗은 다락방에 여러 개나 있는 창문과 같은 구멍으로 나와서 문을 닫고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와예체(나와서)’에는 와우 계속법이 사용되었다. 이는 에훗이 에글론을 죽인 후에 지체하지 않고 신속하게 행동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잠그니라 - 원형 ‘나알'은 ‘매다(tie)'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당시에는 문을 오늘날과 같은 자물쇠가 아닌 가죽끈으로 단단히 매어 잠궜던 풍습을 반영한다. 원어 성경의 이러한 사소한 단어를 통해서도 당시의 생활 풍습을 엿볼 수 있다.

 

* WBC 주석(23-24)

󰃨 에훗은 왕을 홀로 "왕좌"에 둔 채 자기 혼자만 왕의 뒤편에서 문들을 잠근 채 도망쳐 나간다. 키숄름(Chisholm, “What’s Wrong with This Picture?") 은 왕의 신하들과 보초들이 기다리고 있던 바깥쪽 방과 왕의 집무실은 중간에 왕을 알현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홀을 통해 분리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에훗은 왕의 집무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걸어잠글 수 있었다(이처럼 문을 걸어잠그는 것을 다시 재구성해 보고 설명하는 것에 관해서는 P. J. King and 1. E. Stager, Life in BibJicaJ IsraeJ[Louisvi!le: Westminster John Knox, 2001] 31-33를 보도록 하라) . 그는 왕을 알현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홀을 떠나서 보초들이 있던 바깥 지역들을 통과하고 자신이 들어왔던 것과 똑같은 길을 통해 궁을 떠났을 것이다. 에훗이 바깥쪽 방에 있던 보초들을 지나갈 때, 그들은 에훗이 왕에게 갖고 있던 용건이 끝났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깥쪽 방과 왕의 집무실 사이에 있는 알현홀에 들어갔을 것이다. 결국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왕의 부름이 없게 되자, 신하들은 왕의 허락 없이 다시 왕의 집무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무언가 예상치 않았던 상황을 발견한다 - 문이 잠겨 있었따 - 그리고 간단한 설명이 주어진다: 왕이 발을 가리우신다. 모블리 (Mobley) 는 문학적 결과에 대해서 아주 훌륭하게 설명한다: "에글론의 내장과 그 냄새조차도 에훗이 도망하는 것을 돕는다"("Ehud and the Monoliths," 84).

 

 

 



 

웨후 야차 와아바다우 바우 와이레우 웨힌네 달레토트 하알리야 네울로트 와요메루 아크 메시크 후 엩 라그라우 바하달 함메케라

 

개역개정,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다락문들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새번역,24 에훗이 나간 뒤에, 그의 부하들이 와서 다락방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왕이 그 시원한 다락방에서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 ㉠히, '발을 가리다'
우리말성경,24 그가 가고 난 후에 신하들이 와서 다락방의 문들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서 “왕께서 시원한 다락방에서 용변을 보고 계시나 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24 에훗이 나간 뒤에 에글론의 신하들이 와서 윗방 문이 잠긴 것을 보고, '시원한 방에서 뒤를 보고 계시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영어NIV,24 After he had gone, the servants came and found the doors of the upper room locked. They said, "He must be relieving himself in the inner room of the house."
영어NASB,24 When he had gone out, his servants came and looked, and behold, the doors of the roof chamber were locked; and they said, "He is only relieving himself in the cool room."
영어MSG,24  Then he was gone. When the servants came, they saw with surprise that the doors to the rooftop room were locked. They said, "He's probably relieving himself in the restroom."
영어NRSV,24 After he had gone, the servants came. When they saw that the doors of the roof chamber were locked, they thought, "He must be relieving himself in the cool chamber."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και αυτος εξηλθεν και οι παιδες αυτου εισηλθον και ειδον και ιδου αι θυραι του υπερωου αποκεκλεισμεναι και ειπαν μηποτε προς διφρους καθηται εν τη αποχωρησει του κοιτωνος
라틴어Vulgate,24 per posticam egressus est servique regis ingressi viderunt clausas fores cenaculi atque dixerunt forsitan purgat alvum in aestivo cubiculo
히브리어구약BHS,24 וְהוּא יָצָא וַעֲבָדָיו בָּאוּ וַיִּרְאוּ וְהִנֵּה דַּלְתֹות הָעֲלִיָּה נְעֻלֹות וַיֹּאמְרוּ אַךְ מֵסִיךְ הוּא אֶת־רַגְלָיו בַּחֲדַר הַמְּקֵרָה׃

 

󰃨 발을 가리우신다 - 이러한 말은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 사람의 생리적인 현상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즉 이 말은 '용변을 보다' 또는 '잠을 자다', '휴식을 취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삼상 24:8에서도 이 같은 말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용변을 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모압 왕 에글론이 발을 가리운 곳이 다락방으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잠을 자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다락방은 담화 장소(삼상 9:25)나 기도처(단 6:10) 이외에 거실로도 사용된 곳이었다(행 1:13).

 

* 그랜드 주석

󰃨 발을 가리우신다 - '발을 가린다'는 것은 히브리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표현인데 이는 ‘잠을 잔다' 또는 ‘용변을 본다’ 는 뜻으로 인간의 생리현상을 달리 표현한 완곡어법이다. 그런데 RSV. LB. NIV는 모두 이를 ‘용변을 보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문맥상 다락방에서 휴식을 위한 '잠을 잔다'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 옥스퍼드 주석

󰃨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 원문은 한글 개역 성경보다 더욱 역동적인 뉘앙스를 전달해 주고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고 생략된 ‘웨힌네’ 라는 단어는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거나 관찰자 자신의 놀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감탄사로서 보통 ‘보라!’ 로 해석된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보았다. 그런데 보라! 그 다락의 문이 잠겨 있었다’가 된다. 문이 잠겨 있는 상황은 신하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 ‘필연’으로 번역된 ‘아크’는 확신이나 강조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불변화사이다. 우리 말로 ‘필연’은 부사적 용법으로 쓰여 어떤 원인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반드시 따르는 것을 나타내는 명사이므로, 본문의 ‘아크’는 ‘틀림없이’, ‘확실히’라고 하는 화자의 확신을 나타내는 부사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리고 원어 성경에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 ‘왕이’ 라고 번역하고 있는 단어는 없고, 3인칭 대명사 ‘후’가 그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또한 한글 개역 성경에는 ‘서늘한’을 뜻하는 ‘함메케라’가 번역되지 않고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가리우신다’ 로 번역된 ‘메씨크'는 ‘~을 덮다 (cover) ’ 는 의미와 ‘(휘장)을 하다’ 는 의미를 가진 동사 ‘싸카크'의 능동태 분사형으로서 ‘덮고 있는 중’ 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원문에 충실하게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확실히 그 자신이 그의 발들을 서늘한 다락방 안에서 덮고 있는 중이다’가 된다.

  한편 ‘발을 가리운다’ 즉 문자적으로 ‘발을 덮는다’ 는 표현은 ‘잠을 잔다’ 또는 ‘용변을 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이며, 본문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 모두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에훗이 에글론의 배를 찔렀을 때 배설물이 나왔다면 문이 닫혀 있었지만 냄새가 났을 것이고, 그 냄새를 맡은 신하들은 왕이 용변을 보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둘째, 에글론이 배설물을 배출하지 않은 채 죽었다면 냄새는 없었을 것이고, 신하들은 왕이 서늘한 다락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 WBC 주석(위와 동일)

 

 

 

 



 

와야힐루 아드 보쉬 웨힌네 에넨누 포테아흐 달레토트 하알리야 와이케후 엩 함마프테아흐 와이프타후 웨힌네 아도네헴 노펠 알차 멭

 

개역개정,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들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가지고 열어 본즉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새번역,25 그러나 ㉡오랫동안 기다려도 왕이 끝내 다락방 문을 열지 않으므로,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고 보니, 왕이 죽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히,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기다려도'
우리말성경,25 그들은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왕이 여전히 다락방 문을 열지 않아 그들이 열쇠를 가져다가 열어 보니 그들의 왕이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25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에글론이 윗방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어 보니, 저희 주군이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이었다. 
영어NIV,25 They waited to the point of embarrassment, but when he did not open the doors of the room, they took a key and unlocked them. There they saw their lord fallen to the floor, dead.
영어NASB,25 And they waited until they became anxious; but behold, he did not open the doors of the roof chamber. Therefore they took the key and opened them, and behold, their master had fallen to the floor dead.
영어MSG,25  They waited. And then they worried--no one was coming out of those locked doors. Finally, they got a key and unlocked them. There was their master, fallen on the floor, dead!
영어NRSV,25 So they waited until they were embarrassed. When he still did not open the doors of the roof chamber, they took the key and opened them. There was their lord lying dead on the floor.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και προσεμειναν αισχυνομενοι και ιδου ουκ ην ο ανοιγων τας θυρας του υπερωου και ελαβον την κλειδα και ηνοιξαν και ιδου ο κυριος αυτων πεπτωκως επι την γην τεθνηκως
라틴어Vulgate,25 expectantesque diu donec erubescerent et videntes quod nullus aperiret tulerunt clavem et aperientes invenerunt dominum suum iacentem in terra mortuum
히브리어구약BHS,25 וַיָּחִילוּ עַד־בֹּושׁ וְהִנֵּה אֵינֶנּוּ פֹתֵחַ דַּלְתֹות הָעֲלִיָּה וַיִּקְחוּ אֶת־הַמַּפְתֵּחַ וַיִּפְתָּחוּ וְהִנֵּה אֲדֹנֵיהֶם נֹפֵל אַרְצָה מֵת׃

 

󰃨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 성경 원문(*, 와야히루 아드 보쉬)에는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까지 기다렸다'(And they tarried till theywere ashamed)로 나와 있다. 이는 곧 왕이 너무 오래동안 지체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고서 자신들이 방심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 자기 주가 이미 죽어 - 신하들은 왕이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과연 에글론은 영원한 잠을 자고 있었다(Matthew Henry).

 

* 그랜드 주석

󰃨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 한글 성경을 보면 그들이 그저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같아 보이지만 이는 원문 성경에 있는 ‘부쉬’라는 단어를 빼고 번역한 것이다. 한편 ‘부쉬’는 '부끄러워하다’, ‘당황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구문은 ‘그들이 부끄러울 때까지 기다려도’로 번역되어야 한다. 결국 이 말은 왕이 오랫동안 기척이 없음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때까지’라는 의미이다.

 

* 옥스퍼드 주석

󰃨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 한글 개역 성경에서 ‘그들이...기다려도'로 번역된 ‘와야힐루’의 원형 ‘훌'은 ‘연속적으로 돌다(go around
in succession)’ , ‘돌아가다 (turn toward) ’ 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오래 ’ 로 번역된 ‘아드뽀쉬’는 ‘ ~ 까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드’ 와 ‘부끄러워하다’, ‘실망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뿌쉬'의 부정사가 연결된 부정사구로서 ‘부끄러워하기까지 ’ 혹은 ‘실망하기까지’ 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문장 전체를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부끄러워하기까지 주위를 거닐면서 서성거렸다’ 가 된다. 이는 신하들이 왕이 발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한 그 다락방 앞에서 계속 서성거리면서 왕이 인기척을 하고 문을 열 때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 기다리기로 했던 결정이 스스로 부끄러워지거나 실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들의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될수록 그들은 점점 불안한 생각에 휩싸였을 것이다.

󰃨 왕이...열지 아니하는지라 - 한글 개역성경은 ‘그런데 보라!’로 번역되는, 강조와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웨힌네 ’ 를 번역하
지 않은 채 생략하였다. 본서 저자는 ‘힌네’를 사용함으로 독자들에게 왕이 계속적으로 문을 열지 않아 그들의 신하들이 가지게 된 불안감과 초조함을 잘 전달해 주고 있다. 한편 ‘열다’ 로 번역된 ‘포테아흐’ 는 원형 동사 ‘파타흐'의 분사형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왕이 문을 열지 않고 있었던 시간이 결코 짧지 않고, 꽤 오래 지속되었음을 전달해 주고 있다. 왕이 다락방에 들어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은 일이 이전에는 없었으며, 에훗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더욱 마음을 졸이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그 문을 주시하면서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 아무리 기다려도 왕이 나오지 않자 신하들은 초조하고 불안하여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마침내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었다. ‘열쇠’로 번역된 ‘마프테아흐'는 ‘열다’ , ‘풀어놓다’ 는 의미를 가진 동사 ‘파타흐'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여는 것', '푸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열쇠는 자물통에 들어가는 열쇠(key) 와 같은 것이 아니라 묶여 있는 끈을 푸는 데 사용되었던 도구로 보인다(23절 설명 참조).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 ‘본즉’ 으로 번역하고 있는 ‘웨힌네’ 는 본절의 전반부에서도 사용된 단어로서 문을 열고 다락방 안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왕의 시체를 본 신하들의 놀라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 본문은 분사를 두 번 사용함으로(노펠 -엎드러졌더라, 메트- 죽어) 에글론 왕이 죽어 있는 상태를 현장감 있고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뜻밖의 참상에 신하들의 눈은 놀라움과 당황함으로 휘퉁그래졌을 것이다. 한때 암몬과 아말렉군을 동원하여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할 정도로 능력있고 혈기 왕성하던 자신들의 왕이 비참하게 죽어서 피를 홍건하게 흘린 채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머지 않아 지도자를 잃은 자기 나라가 이스라엘 저항 세력에 의해 큰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 WBC 주석

󰃨 신하들은 무언가를 기대한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그들에게 찾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했던 것일까? 그들은 그들의 왕을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일까? 결국 왕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그들이 움직인다. 그들은 문을 연다. 이게 무슨 장면이란 말인가! 그들의 주, 그들의 위엄, 그들이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복종과 헌신을 맹세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던 바로 그 왕이 땅바닥에 엎드러져 있었다. 죽은 채로 말이다! 왕은 화장실에서 죽임당했다. 바로 이것이 살찐 왕이 너무나 부주의했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그에게 마지막 조공을 드렸던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은 에글론이라는 왕가의 살찐 송아지를 희생 제물로 이끌고 간, 아주 치명적인 것이었다.

 

 

 

 

 



 

웨에후드 니믈라트 아드 히트마흐메함 웨후 아발 엩 하프실림 와이말레트 핫세이라타

 

개역개정,26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새번역,26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은 몸을 피하여, 돌 우상들이 있는 곳을 지나서 스이라로 도망쳤다.
우리말성경,26 한편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에훗은 도망쳤습니다. 그는 우상들이 있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쳤습니다. 
가톨릭성경,26 그들이 지체하는 동안에 에훗은 몸을 피하였다. 우상들이 있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몸을 피하였다. 
영어NIV,26 While they waited, Ehud got away. He passed by the idols and escaped to Seirah.
영어NASB,26 Now Ehud escaped while they were delaying, and he passed by the idols and escaped to Seirah.
영어MSG,26  While they were standing around wondering what to do, Ehud was long gone. He got past the stone images and escaped to Seirah.
영어NRSV,26 Ehud escaped while they delayed, and passed beyond the sculptured stones, and escaped to Seirah.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και αωδ διεσωθη εως εθορυβουντο και ουκ ην ο προσνοων αυτω και αυτος παρηλθεν τα γλυπτα και διεσωθη εις σειρωθα
라틴어Vulgate,26 Ahoth autem dum illi turbarentur effugit et pertransiit locum Idolorum unde reversus fuerat venitque in Seirath
히브리어구약BHS,26 וְאֵהוּד נִמְלַט עַד הִתְמַהְמְהָם וְהוּא עָבַר אֶת־הַפְּסִילִים וַיִּמָּלֵט הַשְּׂעִירָתָה׃

 

󰃨 스이라 - 본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지명이다. 따라서 '스이라'는 그 말의 뜻대로 '삼림' 지역을 의미하는 것 같다(Hervey). 27절은 그곳이 에브라임 산지의 어느 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곳은 에훗이 추적자들로부터 피하기 쉬운 곳이다.

 

* 그랜드 주석

본절은 에글론의 죽음을 확인하는 동안 에훗은 이미 안전지대로 탈출하였음을 기술하고 있다.

󰃨 돌 뜨는 곳을 지나 - 모압의 지계표를 넘어 섰다는 말로 모압왕의 영향권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였음을 의미한다(19절 주석 참조).

󰃨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 스이라에 대해서는 본절 외에 성경 다른 부분에서는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추측컨대 이곳은 숲이 많고 거칠어서 숨기 좋은 에브라임 산지의 어느 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 옥스퍼드 주석

󰃨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 ‘그들의 기다리는’으로 번역된 ‘히테마흐메함’의 원형 동사 ‘마하흐'는 ‘지체하다’, ‘미루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본문에서는 재귀형(Hithpael) 3인칭 복수형으로 쓰였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들 스스로가 지체하는 동안에’ 이며, 이는 신하들이 자신들의 왕이 죽자 어쩔 줄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 예기치 못한 돌발 사태를 수습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던 것을 보여 준다.

󰃨 에훗이 피하여...도망하니라 - 한글 개역 성경에 각각 ‘피하여’와 ‘도망하니라’로 번역된 ‘니믈라트’와 ‘와임말레트’는 모두 하나의 원형 동사가 변형된 형태이다. 즉 이들은 ‘스스로를 안전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말라트'의 단순 재귀형(Niphal)으로서 전자는 ‘와우' 접속사 없는 완료형이며, 후자는 계속적 ‘와우'가 있는 미완료형이다. 계속적 와우가 사용될 경우 미완료는 완료의 의미를 갖게 되므로 이 둘은 시제와 의미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에훗은 스스로를 안전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불필요하게 보이는 동일한 단어의 반복은 에훗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달아났는지 잘 보여 준다.

󰃨 스이라로 - 원형 ‘세이라'는 ‘털이 많은’ , ‘거칠한’을 의미하는 형용사 ‘사이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는 ‘세이라’가 수풀이 많은 지역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곳은 요단 저지대인 길갈이나 여리고 근처가 아니라 아마도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한 성읍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 27절에 ‘에브라임 산지’ 가 언급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 WBC 주석

󰃨 나레이터는 과정을 전환시키고 장면을 바꾸어 도망친 에훗에게로 장면을 돌이키기 위해 분리적 문장을 사용한다. 나레이터는 이를 통해서 에훗의 족적을 지난 길갈에서의 이미지에서부터 다시 추적한다 이번에 에훗은 "상들을 지나쳐" 지나가는데, 그는 분명 그들로부터 아무런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스이라에 도착하는데, 이 성읍은 우가릿 문헌에는 등장하지만 지리학자들이 아직 위치를 알지 못하는 성읍이다. 레이니(Rainey)는 이 곳이 성읍이 아니라 지형적인 특색을 갖고 있는 한 지역일 것이라고 본다. 즉 “나무가 많은
숲”이라고 본다. 하지만 군대를 점호하는 정황으로 보아 아마도 이 곳은 성읍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싶다. 형상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것(19절)은 기본적인 에훗 내러티브의 행동을 묶어 준다. "두 번에 걸쳐 페실림을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이 모험이 갖고 있는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핵심을 잘 제시해 준다. 3: 19 - 26 보다 앞부분에 나왔던 모든 내용들은 예비적인 내용들이었으며,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하강 국면에 접어든 내용들이다.

 

 

 



 

와예히 베보오 와이트카 밧쇼팔 베할 에프라임 와예레두 임모 베네이 이스라엘 민 하할 웨후 리페네헴

 

개역개정,27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새번역,27 그가 그 곳에 이르러 에브라임 산간지방에서 소집 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따라 산간지방에서 쳐내려갔다. 에훗이 그들을 앞장섰다.
우리말성경,27 그가 그곳에 도착해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를 앞장세우고 그와 함께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가톨릭성경,27 그곳에 다다른 에훗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다 나팔을 불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에훗을 앞세우고 산에서 내려갔다. 
영어NIV,27 When he arrived there, he blew a trumpet in the hill country of Ephraim, and the Israelites went down with him from the hills, with him leading them.
영어NASB,27 And it came about when he had arrived, that he blew the trumpet in the hill country of Ephraim; and the sons of Israel went down with him from the hill country, and he was in front of them.
영어MSG,27  When he got there, he sounded the trumpet on Mount Ephraim. The People of Israel came down from the hills and joined him. He took his place at their head.
영어NRSV,27 When he arrived, he sounded the trumpet in the hill country of Ephraim; and the Israelites went down with him from the hill country, having him at their head.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και εγενετο ηνικα ηλθεν και εσαλπισεν κερατινη εν ορει εφραιμ και κατεβησαν συν αυτω οι υιοι ισραηλ και αυτος εμπροσθε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27 et statim insonuit bucina in monte Ephraim descenderuntque cum eo filii Israhel ipso in fronte gradiente
히브리어구약BHS,27 וַיְהִי בְּבֹואֹו וַיִּתְקַע בַּשֹּׁופָר בְּהַר אֶפְרָיִם וַיֵּרְדוּ עִמֹּו בְנֵי־יִשְׂרָאֵל מִן־הָהָר וְהוּא לִפְנֵיהֶם׃

 

󰃨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중 울창한 삼림이 있는 구릉 지대를 일컫는다. 이곳은 가나안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개 에스드랠론 평지에서부터 유다 산지와 맞닿는 지점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수 16:1). 비교적 토양이 비옥한 곳이었으므로 수확물도 많이 났었다고 한다.

󰃨 나팔을 불매 - 이처럼 에훗이 나팔을 분 것은 백성들을 소집할 뿐 아니라(6:34;삼상 13:3) 동시에 전쟁과 같은 비상 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 그랜드 주석

󰃨 에브라임 산지 - 삿 2:9 주석 참조.

󰃨 나팔을 불매 - 문자적으로 ‘전쟁 나팔을 불었다'이다. 이는 전쟁에 나갈 군인을 소집하기 위함이었다(삿 6: 34; 삼상13: 3). 에훗이 이렇게 신속히 전쟁을 위해 군사 소집을 한 것은 왕이 죽어 혼란에 빠져있는 모압을 쳐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 에훗이 앞서가며 - 사사는 이민족(異民族)의 압제 하에서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구해내어 해방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군사적 지도자였으므로 에훗이 백성들 앞에 서서 가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 옥스퍼드 주석

󰃨 그가 이르러서는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왔을 때~이 발생했다’가 된다. 본문 서두에 사용된 ‘와예히’는 보통 문장 서두에 사용되어서 새로운 사건이나 상황이 시작되는 것을 가리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이다. 본문에서도 ‘와예히’는 에훗이 스이라에 도착하여 단지 안전을 위해 머물러 있지만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 나팔을 불매 - ‘나팔’로 번역된 ‘쇼파르'는 ‘수양의 뿔(ram' s horn)'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 수양의 뿔을 잘라 만든 나팔과 같은 것으로 긴 신호음을 냈었다(6:34 ; 삼상13 :3 ; 왕상 1: 34).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것을 기점으로 하여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하고 있는 모압의 세력을 타도하기 위해서 긴 양각 나팔 소리로써 군사들을 모집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훗이 군사들을 모집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 직역하면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함께 그 산으로부터 아래로 내려왔다’가 된다. 에훗의 나팔 소리를 듣고 많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였고, 에훗은 그들을 규합하여 함께 에브라임 산지로부터 요단 저지대로 내려왔던 것이다. 이러한 본문을 통해 볼 때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의 압제를 받을 당시 산지에 거주했다고 추정되는데,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넓고 기름진 평원은 다 빼앗긴 채로 산지에서 숨어서 지냈던 것을 짐작게 한다.

󰃨 에훗이 앞서가며 - 원어 성경에는 동사가 없이 두 단어로만 문장이 구성되어 있어서 박진감을 더해 주고 있다. ‘에훗’ 으로 번역된 ‘웨후’ 는 ‘그리고 그가’ 라는 뜻이며, ‘앞서가며’ 로 번역된 ‘리프네헴’ 은 ‘그들의 얼굴 앞에(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들의 얼굴 앞에서’가 된다. 이는 에훗이 군사적 지도자가 되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있는 모습을 나타낼 뿐,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에훗이 앞서서 갔다는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산지에서 내려온 이스라엘 모든 무리들을 정열시켜 놓고 그들에게 다음 지시를 하기 위해 에훗이 그들 앞에 섰던 것이다.

 

* WBC 주석

󰃨 이 부분에서 히브리어 동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어는 여호수아 6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의 뿔”이나 혹은 나팔에서 나는 소리를 특징적으로 묘사한다 동일한 동사가 사사기 3:21 에 나타나는데, 그부분에서는 단검이 에글론의 몸 속으로 찔려 들어가는 것을 묘사하면서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또한 야엘이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천막 말뚝을 박을 때 다시금 등장한다. 기드온은 군대를 점호하면서 나팔을 불었고 (6:34) , 또한 백성들에게 나팔을 불게 해서 미디안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빠져 도망치게 할 때도 마찬가지로 했다 (7:18-22). 마지막으로 들릴라는 삼손의 힘의 비밀을 발견하려고 베틀 바디로 그의 머리카락을 썼지만 헛수고로 돌아가 버렸다(1 6:14). 그러므로 밀고 불고 하는 일들은 내러티브들에서 행동, 군대를 전쟁터로 소환하는 것, 한 여인의 영웅주의를 송축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비열하게 속이는 것 등에서 활용된다. 나팔은 음악적인 기구가 아니었다. 나팔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송축하고 표현할 때 엄숙하게 사용되곤 했으며(출 19 : 16, 19: 20: 18: 속 9: 14: 그리고 삼하 6 : 15: 시 47 :6 : 98:6: 용 2: 1: 속 1: 16 등도 비교하라) , 백성들에게 종교력에 있어서 거룩한 날들을 알릴 때 사용되었고(레 25 :9: 시 81:3( 히 . 4절) ), 국가적인 금식을 선포하거나(욜 2: 15) , 새로운 왕을 선포할 때 사용되었다(왕상 1 :34, 39, 41 : 왕하 9: 13) . 나팔의 중요한 기능에는 전쟁에서 신호를 보내거나 경고를 할 때 사용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수 6 : 4-20: 삿 6:34: 7:8-22 : 삼상 13 :3 : 삼하 2:28: 18 : 16 : 20:1 , 22: 사 18:3 : 렘 42 : 14: 51:27 : 겔 33:3-6 : 호 5:8: 8: 1:
암 2:2: 3:6) .

  레이니(Rainey) 는 이렇게 말한다. “에브라임 산지는 베냐민 지파, 에브라임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던 산지 영역 전체를 일컬을 때 사용하던 일반적인 지리적 용어다. 하지만 지금 이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에훗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Sacred Bädge, 137).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름에 응한다. 이 구문은 매우 지역적인 내러티브에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풍취를 풍겨 준다. 과연 중심 지파들, 특히 베냐민 자손들과 요셉 자손들의 군대만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표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일까? 나레이터는 에훗이 군대 앞에서 가지고 있는 지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보여 준다. 이 지위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그림자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리더가 갖고 있는 위상이다.

 



 

와요멜 알레헴 리데푸 아하라 키 나탄 아도나이 엩 오예베켐 엩 모압 베에드켐 와예레두 아하라우 와일케두 엩 마베로트 하야르덴 레모압 웨로 노테누 이쉬 라아볼

 

개역개정,28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새번역,28 "나를 따라라! 주님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다." 그가 이렇게 외치자, 그들이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으로 가는 요단 강 나루를 점령하고 한 사람도 건너가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말성경,28 에훗이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인 모압 사람들을 너희 손에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따라 내려가서 모압으로 가는 요단 강 나루터를 차지하고 아무도 건너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28 그때에 에훗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 뒤를 따라오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원수 모압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들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으로 가는 요르단 건널목들을 점령하고서는,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다. 
영어NIV,28 "Follow me," he ordered, "for the LORD has given Moab, your enemy, into your hands." So they followed him down and, taking possession of the fords of the Jordan that led to Moab, they allowed no one to cross over.
영어NASB,28 And he said to them, "Pursue them, for the LORD has given your enemies the Moabites into your hands." So they went down after him and seized the fords of the Jordan opposite Moab, and did not allow anyone to cross.
영어MSG,28  He said, "Follow me, for GOD has given your enemies--yes, Moab!--to you." They went down after him and secured the fords of the Jordan against the Moabites. They let no one cross over.
영어NRSV,28 He said to them, "Follow after me; for the LORD has given your enemies the Moabites into your hand." So they went down after him, and seized the fords of the Jordan against the Moabites, and allowed no one to cross over.
헬라어구약Septuagint,28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καταβαινετε οπισω μου οτι παρεδωκεν κυριος ο θεος τους εχθρους υμων την μωαβ εν χειρι υμων και κατεβησαν οπισω αυτου και προκατελαβοντο τας διαβασεις του ιορδανου της μωαβ και ουκ αφηκαν ανδρα διαβηναι
라틴어Vulgate,28 qui dixit ad eos sequimini me tradidit enim Dominus inimicos nostros Moabitas in manus nostras descenderuntque post eum et occupaverunt vada Iordanis quae transmittunt in Moab et non dimiserunt transire quemquam
히브리어구약BHS,28 וַיֹּאמֶר אֲלֵהֶם רִדְפוּ אַחֲרַי כִּי־נָתַן יְהוָה אֶת־אֹיְבֵיכֶם אֶת־מֹואָב בְּיֶדְכֶם וַיֵּרְדוּ אַחֲרָיו וַיִּלְכְּדוּ אֶת־מַעְבְּרֹות הַיַּרְדֵּן לְמֹואָב וְלֹא־נָתְנוּ אִישׁ לַעֲבֹר׃

 

󰃨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붙이셨느니라 - 이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권능을 확신한 지도자 에홋이 이스라엘을 통솔한 것은 당시 이미 자기들의 왕 에글론을 잃고 지휘 체제를 갖추지 못한 모압군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이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고 할 수있는데 실제로 이스라엘은 모압군 일만명 가량을 죽이는 대승을 거둔다(29절).

󰃨 요단 강 나루를...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 여기서 말하는 '요단 강 나루'는 모압땅 맞은 편, 여리고 앞의 요단 강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한편 에훗이 이처럼 요단강 나루를 지킨 데에는 이중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있던 모압군(13절)이 강을 건너 모압땅으로 도망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압 본토에서부터 소식을 들은 모압인들이 원군(援軍)은 형성, 요단 강을 넘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에훗의 봉쇄 작전은 주효(奏效)하였는바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였던 모압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29,30절).

 

* 그랜드 주석

󰃨 요단 강 나루를 잡아 - '잡다'의 원어 '라카드'는 적군을 각종 덫이나 그물 그리고 함정 등으로 포획하는 것을 연상시킬 때 쓰는 단어이다. 이에 따라 에훗은 요단 강 서편의 길갈 근처에 있는 '요단 강 나루'를 점령하여 적군을 잡기 위한 함정이나 덫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한편, 에훗이 요단 강 나루를 점령한 것은 요단 서편에 상주하고 있던 모압 군대와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하여 모압 본진으로 도망하는 것을 막아 효율적으로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요단 동쪽에 있는 모압의 본토에서 쳐들어올 군대를 효율적으로 막기 위함이었다. 이 작전은 성공을 거두어 모압 사람 일만 명을 죽였다.

 

* 옥스퍼드 주석

󰃨 나를 따르라 - ‘따르라’ 로 번역된 ‘리드푸’의 원형 ‘라다프'는 수동적으로 남의 뒤를 따르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가 아니라 적극적,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서 추적하고 뒤쫓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 그리고 ‘나를’ 로 번역된 ‘아하라이’는 ‘나의 뒤를 (after me) ’ 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에훗이 그의 앞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무리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 그리고 불타는 의욕으로 그의 뒤를 적극적으로 추격하듯이 쫓아오라고 한 말이다. 에훗은 지도자로서 앞서 본을 보이는 한편, 그의 추종자들에게도 자기와 동일한 열심으로 모압을 쳐부수러 가자고 독려한 것이다.

󰃨 여호와께서...붙이셨느니라 -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고 생략되었으나 원어 성경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 가 사용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나를 따르라’ 라고 하는 앞 문장의 이유가 된다. 에훗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추종자들을 독려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독려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대적 모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의 추종자들을 강하게 독려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붙였다’로 번역된 ‘나탄’은 ‘주다 (give) ’는 뜻을 가진 동사이다. 이는 하나님이 누구에게 선물을 주는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이미지를 전달해 준다.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을 이스라엘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모압을 향해 돌진할 수 있으며 그 적과 대항해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모압과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완료형(나탄)’ 을 사용하여 이미 승리가 주어진 것처럼 소리 높여 외치는 에훗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확신과 담대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 한글 개역 성경에서 ‘나루’로 번역하고 있는 ‘마빼로트’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나루’는 국어 사전에서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다 목에서 배가 닿고 떠나고 하는 일정한 곳’ 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배를 대고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만든 강가의 한 장소를 가리킨다. 그러나 ‘마빼로트’ 는 ‘여울’ 또는 ‘가로지르는 길’ , ‘셋길’ 을 의미하는 명사 ‘마빠라'의 복수형으로서 영어로는 ‘fords’ 로 번역된다 (KJV, N ASB, RSV, NIV, LB). ‘ford’ 즉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알아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강을 건너 요단 통편 자기 나라로 도망가기 위해 요단강 중 걸어서 건널 수 있을 만큼 수위가 낮은 곳으로 모압 군사들이 몰려올 것을 대비해, 이스라엘 군사들이 미리 그곳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에훗의 치밀한 전술이기도 했다. 에글론 왕이 참혹하게 살해당하자 모압의 장수들은 머지 않아 이스라엘군이 여세를 몰아 종려나무 성읍 모압 진으로 공격해 올 것으로 판단하여 요단의 여러 여울을 통해 모압 땅으로 가려고 하였던 것이며, 에훗이 바로 이것을 간파하여 요단 여울에서 미리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결코 한 사람도 건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며, 이는 저자의 강조점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준다. 본문에서 사용된 부정어 ‘로’는 ‘알'보다 더욱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부정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단어로서 ‘결코’ 건너지 못하게 했음을 나타낸다. 또한 ‘남자’를 뜻하는 ‘이쉬’를 정관사 없이 사용하여 ‘한 사람’을 의미하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손을 피해서 도망간 모압 군사들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날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전쟁은 완전한 승리였으며, 모압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군사가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패배했던 것이다.

 

* WBC 주석

󰃨 에훗은 야웨께서 모압을 그들의 손에 붙여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쫓아오라고 군대를 독려한다. 에훗은 왕을 하나하나 신속하게 해치운다. 이제 전쟁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요단 강을 건너가는 것을 장악하고 그래서 대적들이 강을 건너 자신들의 영토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 에훗이 여기서 야웨를 언급하는 모습은 이 내러티브의 특징에 대해서, 에훗과 야웨의 본성과 특징에 대해서 논쟁을 일으킨다. 15 절에 나오는 내러티브의 골격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야웨께 부르짖었고, 야웨께서 에훗을 일으키셨다고 말했었다. 그 부분에서부터 지금 28 절에 이르기까지 야웨는 이 내러티브에서 전혀 등장하시지 않는다. 나레이터는 야웨께서 모든 행동들을 계획하고 지시하면서 상황 속에 개입하고 계신다는 점을 청중들이 확신할 수 있도록 내러티브의 기교로서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레이터는 에훗이 재주껏 일들을 자기 손으로 진행시키고 하나님을 제외시켜 버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게끔 하고자 하는 것인가? 야웨는 에훗의 계책들에 대해 승인하고 계신 것인가? 아니면 승인하지 않고 계신 것인가? 이와 관련된 학자들의 주장은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블락(Block , 71) 은 나레이터의 침묵에 대해서 “귀머거리화”라고 부르면서, 야웨는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노골적인 방식을 사용하셔야만 했는데, 그것은 그것만이 활용 가능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에훗의 모습에 대해서 가나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과 비교한다. 영거(Younger , 124- 25)는 이 내러티브의 설명이 하나님께서 ‘흠결이 있는 개인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목적들을 성취하시는 것을 강조하는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영거가 보기엔, 에훗은 결코 옷니엘 같은 사람이 아니며, 그 대신 "계략적이고 잔인한” 사람일 뿐이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책략들을 승인하거나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영거는 에훗이 하나님을 위해 모든 위험을 감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칭찬해 준다(1 26) . 클라인 (Klein, Triumph of Irony, 39) 은 야웨는 에훗의 속임수와 정반대 입장이신 것으로 본다. 이런 판단은 우리의 “ 정제되고 철학적인” 도덕 의식을 고대 문명의 정쟁과 자기 방어적인 행동에 반하는 모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고대의 독자들이 에훗의 행동에 대해서 무엇이건 비난의 목소리를 내거나 들었을지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에훗과 삼갈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노략자들로부터 구원하는 데 있어서 비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뜻밖의 군사 전략은 각각의 스토리들에 그들만의 독특한 정취와 호소력을 담고 있다.

 

 

 

 



 

와야쿠 엩 모압 바에트 하히 카아세렡 알라핌 이쉬 콜 솨멘 웨콜 이쉬 하일 웨로 니믈라트 이쉬

 

개역개정,29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새번역,29 그 때에 그들이 쳐죽인 건장하고 용맹스러운 모압 군인의 수는 모두 만 명이나 되었는데,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29 그때 그들이 모압 사람 1만 명 정도를 죽였는데 그들은 모두 건장하고 용맹한 사람들이었으며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29 그때 그들이 쳐 죽인 모압인들은 만 명가량 되었는데, 모두 건장하고 힘이 세었지만 한 사람도 몸을 피하지 못하였다. 
영어NIV,29 At that time they struck down about ten thousand Moabites, all vigorous and strong; not a man escaped.
영어NASB,29 And they struck down at that time about ten thousand Moabites, all robust and valiant men; and no one escaped.
영어MSG,29  At that time, they struck down about ten companies of Moabites, all of them well-fed and robust. Not one escaped.
영어NRSV,29 At that time they killed about ten thousand of the Moabites, all strong, able-bodied men; no one escaped.
헬라어구약Septuagint,29 και επαταξαν την μωαβ εν τω καιρω εκεινω ωσει δεκα χιλιαδας ανδρων παντας τους μαχητας τους εν αυτοις και παντα ανδρα δυναμεως και ου διεσωθη ανηρ
라틴어Vulgate,29 sed percusserunt Moabitas in tempore illo circiter decem milia omnes robustos et fortes viros nullus eorum evadere potuit
히브리어구약BHS,29 וַיַּכּוּ אֶת־מֹואָב בָּעֵת הַהִיא כַּעֲשֶׂרֶת אֲלָפִים אִישׁ כָּל־שָׁמֵן וְכָל־אִישׁ חָיִל וְלֹא נִמְלַט אִישׁ׃

 

󰃨 다 역사요 용사라 - 여기서 '역사'는 원어로 '솨멘'(*)으로서 '신체적으로 강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용사'는 '하일'(*)로 전쟁에 능한 '용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재산이나 권세 같은 것을 갖추어서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도 의미한다(룻 2:1).

 

* 그랜드 주석

󰃨 다 역사요 용사라 - '역사'에 해당하는 원어 '솨멘'은 '뚱뚱한', '살찐' 등의 의미로서 '풍성한', '잘 사는 자'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여기서 뜻하는 이들은 아마 귀족이나 군대 장관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용사'에 해당하는 원어 '하일'은 주로 싸움에 능하고 용기있는 군인을 일컫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죽은 모압인들은 모두 전쟁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군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군인들의 죽음은 모압이 결정적으로 패배했음을 말하며 모압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군사적 손실이었기에 이스라엘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80년의 태평성대를 누렸다.

 

* 옥스퍼드 주석

󰃨 죽였으니 - 원형 ‘나카'는 원래 ‘치다(strike)' , ‘때리다 (hit) ’ 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뜻이 더 확장되어서 ‘때려죽이다’는 뜻까지 포용하게 된 것이다. 이 단어는 본서가 시작되는 제 1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거민과의 전투에서 승리해서 그들을 죽였을 때 자주 사용되던 단어이다(1 :4, 5, 8, 10, 12, 17, 25). 그런 반면 본장에서는 에글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13 절). 그런데 이제 본문에서 다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방을 몰아낸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다 역사요 용사라 - 한글 개역 성경과 달리 원어 성경에는 ‘모두’ , ‘다’ 를 의미하는 단어 ‘콜'이 두 번이나 쓰였다. 이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잡혀 죽은 모압 군사들이 ‘모두’ 역사(力士)이며, ‘모두’ 용사(勇士)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처럼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결코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군사들은 요단강 나루(여울목)에서 그들이 요단강 나루를 통해 도망칠 것을 간파하고 미리 효과적으로 매복을 하고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셨으므로 일만 명 가량이나 되는 강한 용사들을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역사’로 번역하고 있는 ‘솨멘’은 ‘살찌다’는 의미의 동사 ‘솨만'에서 유래하여 ‘기름진(fa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창 49:20 ; 겔 34: 16) 신체적으로 살이 많이 찌고 기름기가 흐르는 우람한 모습을 묘사한다. 본서 저자는 제 17절에서 유사한 뜻을 가지고 있는 ‘빠리' 즉 ‘비둔한’이란 단어로 에글론 왕의 모습을 묘사하였었다. 그의 왕도 살이 쪘었고, 그의 용사들도 모두 살이 쪘다는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착취함으로 자기 배를 채웠는지를 알게 한다.

 

* WBC 주석

󰃨 대적 병사들은 그들의 왕과 마찬가지로 "살찐"자들이었는데(빠리가 아니라 솨멘), 이는 “전쟁에 적합하다"(이쉬 하일)는 평행 구문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부정적인 특성이 아니라 긍정적인 특성이었다. 전쟁 이외의 다른 정황 속에서는(삿 3 : 29: 20: 44 , 46: 삼상 31: 12; 삼하 ll: 16; 24: 9; 대상10 : 12; 11 :22; 26 : 8; 느 II : 6; 시 76:6; 랩 48 : 14: 나 2 :4), 이 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어 사용되곤 했다(창 47:6: 출 18:21 , 25: 왕상 1 :42; 그리고 사 5:22 과도 비교하라) . 하나님의 리더십 하에서 치러진 전쟁은 우리가 예측한 바로 그런 모습으로 끝난다: 그 어떤 대적도 도망치지 못했다. 옷니엘과 에훗의 통솔하에서 이스라엘 군사들은 시험을 통과했으며, 또한 어떻게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언어는 13 절의 주제와 행동을 뒤집는다. 그 부분에서는 에글론의 동맹은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라엘을 무찔렀다(나케). 여기서는 살해당한 왕의 군대들은 요단 강을 건너고자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죽였다(나케).

 

 



 

왙티카나 모압 바욤 하후 타하트 야드 이스라엘 와티쉬코트 하아레츠 쉐모님 솨나

 

개역개정,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새번역,30 그 날 모압은 굴복하여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그 뒤로 그 땅에는 팔십 년 동안 전쟁이 없이 평온하였다.
우리말성경,30 그날 모압은 이스라엘의 손에 굴복했고 그 땅이 80년 동안 평온했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날 이렇게 모압은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하였다. 그 뒤에 이 땅은 여든 해 동안 평온하였다. 
영어NIV,30 That day Moab was made subject to Israel, and the land had peace for eighty years.
영어NASB,30 So Moab was subdued that day under the hand of Israel. And the land was undisturbed for eighty years.
영어MSG,30  That day Moab was subdued under the hand of Israel. The land was quiet for eighty years.
영어NRSV,30 So Moab was subdued that day under the hand of Israel. And the land had rest eighty years.
헬라어구약Septuagint,30 και ενετραπη μωαβ εν τη ημερα εκεινη υπο την χειρα ισραηλ και ησυχασεν η γη ογδοηκοντα ετη και εκρινεν αυτους αωδ εως ου απεθανεν
라틴어Vulgate,30 humiliatusque est Moab die illo sub manu Israhel et quievit terra octoginta annis
히브리어구약BHS,30 וַתִּכָּנַע מֹואָב בַּיֹּום הַהוּא תַּחַת יַד יִשְׂרָאֵל וַתִּשְׁקֹט הָאָרֶץ שְׁמֹונִים שָׁנָה׃ ס

 

󰃨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이는 이스라엘이 사사 옷니엘의 치하에서 누렸던 태평 시대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11절). 그리고 전 사사 시대를 걸쳐서도 한 사사밑에서 가장 긴 평화를 누렸던 기간이기도 하다(5:31;8:28;10:2, 3;12:7-15;16:31).

 

* 그랜드 주석

󰃨 팔십 년 동안 평안하였더라 - 이 태평 시대의 기간은 전례없는 것이었고 사사 시대 동안 가장 긴 평화의 시대였다.

 

* 옥스퍼드 주석

󰃨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 ‘수하에’ 로 번역된 ‘타하트 야드’ 에서 ‘타하트’ 는 ‘~의 아래 (under) ’ 를 의미하는 전치사이며, ‘야드’ 는 ‘손 (hand)' 이란 의미의 명사이므로 ‘타하드 야드’ 를 직역하면 ‘손 아래에’이다. 그런데 ‘야드’, 즉 ‘손’은 권력, 능력, 권위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환유적 표현으로 쓰였으므로 ‘타하트 야드 이스라엘’ 은 ‘이스라엘의 권위 아래에’ 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항복하매’ 로 번역된 ‘왓틱카나’ 의 원형 동사 ‘카나'는 기본형이 단순 수동형(Niphal)으로서 ‘정복되다(be subdued)'는 의미를 갖는 동사이며(삼상 7: 13) ,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해지다(be humbled) ’ 는 의미도 동시에 갖는다(레 26:41). 즉 이제 모압은 이스라엘의 권위 아래에 정복되었으며, 그들의 마음까지도 오만한 자세에서 낮고 겸손한 자세로 변모되었음을 보여 준다. 에훗은 모압을 상대로해서 조금도 빈틈이 없는 철저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옛 권위를 회복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첫 사사 옷니엘의 사역을 마무리할 때 사용된 문구가 에훗의 사역을 마무리하는 본문에서도 그 기간을 제외하고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11절 설명 참조). 이는 일차적으로는 그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완곡하게 표현하면서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이 황폐화되는 고통 속에서 쉬게 되었음도 드러내고 있다.

 

* WBC 주석

󰃨 결국 이스라엘은 가장 긴 쉼의 기간 - 80년- 을 갖게 된다. 폴친(Polzin)은 "3:30에 언급된 80년이라는 평화 기간은 우리가 이스라엘이 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그들의 회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에훗의 생애의 기간에만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본다(Moses and Deuteronomist, 161). 사사기 편집자는 평화와 쉼이라는 주제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자들의 사역에 복을 주고 계신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평화는 순종이나 혹은 회개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여기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여호수아의 목표 - 전쟁으로부터의 평온한 쉼 - 을 얻고 있다(수 ll :23 ; 14 :15; 그리고 삿 3:11 ; 5:31 ; 8 : 28과도 비교하라). 선지자들에게는 이런 평온한 쉼은 미래의 소망이 되었다(사 14:7; 30:15 ; 32 :17: 렘 46:27).

 

 

 



 

 

웨아하라우 하야 솸갈 벤 아나트 와야크 엩 페리쉬팀 쉐쉬 메오트 이쉬 베말마드 하바카르 와이솨 감 후 엩 이스라엘

 

개역개정,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새번역,31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가 되었다.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만으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쳐죽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
우리말성경,31 아낫의 아들 삼갈이 에훗의 뒤를 이었는데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고 그 또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가톨릭성경,31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가르가 나왔다. 그는 소몰이 막대로 필리스티아인 육백 명을 쳐 죽였다. 삼가르도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영어NIV,31 After Ehud came Shamgar son of Anath, who struck down six hundred Philistines with an oxgoad. He too saved Israel.
영어NASB,31 And after him came Shamgar the son of Anath, who struck down six hundred Philistines with an oxgoad; and he also saved Israel.
영어MSG,31  Shamgar son of Anath came after Ehud. Using a cattle prod, he killed six hundred Philistines single-handed. He too saved Israel.
영어NRSV,31 After him came Shamgar son of Anath, who killed six hundred of the Philistines with an oxgoad. He too delivered Israel.
헬라어구약Septuagint,31 και μετα τουτον ανεστη σαμεγαρ υιος αναθ και επαταξεν τους αλλοφυλους εις εξακοσιους ανδρας εκτος μοσχων των βοων και εσωσεν αυτος τον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31 post hunc fuit Samgar filius Anath qui percussit de Philisthim sescentos viros vomere et ipse quoque defendit Israhel
히브리어구약BHS,31 וְאַחֲרָיו הָיָה שַׁמְגַּר בֶּן־עֲנָת וַיַּךְ אֶת־פְּלִשְׁתִּים שֵׁשׁ־מֵאֹות אִישׁ בְּמַלְמַד הַבָּקָר וַיֹּשַׁע גַּם־הוּא אֶת־יִשְׂרָאֵל׃ ס

 

 

󰃨 삼갈 -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과 더불어 6인의 소사사로 불리우는 자이다. 본서 서론, '이스라엘의 사사들' 참조. 한편 삼갈에 대해서는 본절 외에 여자 사사 드보라의 노래에서 한번 더 언급된다(5:6). 그렇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형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에홋의 뒤를 잇는 사사로서 드보라의 활동 시기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에홋 당시 이스라엘은 80년 동안 태평했으니(30절) 아마 삼갈은 에훗이 죽고 난 후 드보라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의 일시적 혼란기, 즉 일부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때에 잠시 사사로 활동했던 것 같다.

󰃨 소 모는 막대기 - 당시 팔레스틴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정도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하였다 한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299).그런데 삼갈이 이처럼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막대기를 가지고 600명의 블레셋인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또 다시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증거해준다.

 

* 그랜드 주석

본절은 전설적인 사사인 삼갈이 블레셋의 압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 삼갈 - 삼갈의 출신지와 활동사항 그리고 그의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없다. 단지 드보라의 노래 속에서 한 번 언급될 뿐이다(삿 5: 6). 그래서 삼갈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가나안 여신인 ‘아낫’(Anath)과 그 이름이 같은 것에 근거하여 그를 ‘바알과 그의 배우자인 아낫’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느 학자는 아낫이 바벨론식 이름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다른 어느 학자는 바닷 사람의 첫 이주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가한 반유목 용병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학설들은 논즈이 없는 추측들일 뿐이다. 한편, 삼갈의 사사직은 에훗의 죽음 이전에 받았음을 삿 4:1은 암시한다. 삿 4:1에서는 삼갈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고 에훗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삼갈의 사사직은 에훗이 너무 늙어 사사직을 잘 수행할 수 없을 때 수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소 모는 막대기 - 고대 근동지방의 농부의 막대기는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그것의 길이는 약 2.4m였고 한쪽 끝에는 뾰족하고 큰 못이 달려 있었으며 다른 한쪽에는 끌과 같은 모양의 쇠가 붙어 있었다. 이것은 소 모는 일 뿐만 아니라 땅을 일구는 쟁기의 역할도 했다. 한편 삼갈이 농기구로써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다는 것은 그의 힘이 대단했음을 말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그에게 그만한 일을 이루도록 능력을 허락하셨음을 말한다.

󰃨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 그가 일생 동안 죽인 숫자인지 한 번에 죽인 숫자인지 기록에 나타나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 옥스퍼드 주석

󰃨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 삼갈의 사역에 대해서는 본절의 단 한 절만 기록되어 있으며, 원어 성경에는 ‘사사’에 해당되는 단어도 없다. 그리고 ‘에훗의 후에 ’ 로 번역된 ‘웨아하라이우’는 ‘그리고 그의 뒤에(and after him)'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었다’ 가 된다. 본서 저자는 그에게 사사라는 칭호도 붙이지 않았고,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다는 기록도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계셨다는 진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삼갈 역시 후반절에 묘사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므로' 사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칭호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도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했느냐가 훨씬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다. 삼갈은 바로 이러한 점을 깨닫게 해 준다.

󰃨 소 모는 막대기로 - ‘빼말르마드’는 도구를 나타내는 전치사 ‘빼’와 원형 ‘말르마드’가 결합된 형태이다. ‘말르마드’는 가축 등을 훈련시키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 ‘라마드'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가축을 길들이는 막대기'를 의미한다. 그 길이는 대략 2.4m 정도였고, 한쪽에는 뾰족하고 큰 못이, 그리고 다른 쪽에는 끌과 같은 모양의 쇠가 붙어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 이러한 평범한 농기구를 사용했다는 것을 통해 삼갈이 일개 목자 혹은 농사꾼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은 이렇게 잘 훈련된 용사가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자를 들어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셔서, 당시 지중해변에 거주하며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강력한 블레셋을 꺾어 그들의 동진 정책을 저지하게 하는 큰 일을 이루셨던 것이다.

󰃨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 히브리어는 주어가 동사 안에 있기 때문에 인칭 대명사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본문은 삼갈도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3인칭 대명사 ‘후’를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also)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부사 ‘깜’ 도 사용하고 있다. 삼갈은 비록 ‘사사’ 라는 칭호로서 기록되지는 못했던 자였지만,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함으로 사사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 WBC 주석

󰃨 사사기는 삼갈에 대해서는 단 한 구절만을 할애하는데, 이는 사사기 5장에 나오는 드보라의 찬양 속에 그가 등장하는 것을 준비해 준다. 내러티브의 골격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어떤 요소도 삼갈에 대해서는 제시되지 않는다. 사실 에훗 내러티브는 다음 구절 (4 : 1) 까지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삼갈은 에훗 내러티브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 또한 3:1 에서 도입되었던 내용 즉 열방 사이에서 시험하는
것과 관련된 내러티브들에 마무리를 가져다준다. 옷니엘은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에훗은 자기 백성을 요단 강을 통해 분리되어 있던 이웃 모압으로부터 구원했다. 삼갈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했는데, 블레셋은 남겨져 있던 열방 중 첫 번째 나라였다(3 : 3) .

  삼갈이 과연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그의 부모인 아낫은 가나안의 가장 큰 세 신의 이름 중 하나와 동일하다. W. A. Maier III , ABD, 1: 225-27를 보라. 크레이기(P. C. Craigie, “A Reconsideration of Shamgar ben Anath [Judg 3:31 and 5:6J." JBL 91[1972J 239-40) 는 벤 아낫이라는 이름은 “ 전쟁 신과 같은 인물” 에 토대를 둔 군사적 호칭이며 , 마리 서판에 나오는 하네안스(Haneans) 같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F. C. Fensham, “Shamgar ben Anath,'’ JJVES 20[1961J 197-98를 보라). 소긴(Soggin, 57) 은 이 이름에 대해서 가나안 사람의 이름이라고 본다.

  벤 아낫은 또한 지명으로도 볼 수 있다(수 19:38: 삿 1: 33). 슈팍(N. Shupak, “New Light on Shamgar ben 'Anath" Bib 70[1989J 517-25) 은 이 이름을 이집트의 군사 파견단과 연계시키는데, 여기에는 몇몇 후리아 사람(Hurrian) 의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이 내용은 철기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의 이집트 자료들에 등장한다. 매튜스(Matthews. 62-63) 는 이를 토대로 좀 더 논의를 진전시킨다.

  벤 아낫은 주전 12세기경 이집트에서 고용한 하비루 용병들이 사용했던 흔한 이름이었다. 그들은 가나안 전쟁의 신이 갖고 있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전쟁에서 광포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과, 자신들이 군사 간부에 속해 있다는 점을 표시하곤 했다. 그러므로 야엘 스토리에 삼갈이 언급되고 있는 점은 바로 람세스 Ill ( 주전 1198-1190년)가 북부 가나안에서 블레셋과 대치하던 행동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갈이 이스라엘 백성 중 어느 지파에 속해 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의 이름은 호르인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영거(Younger) 는 “학자들이 동의하는 유일한 내용은, 아낫의 아들 삼갈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뿐이다” 라고 분석한다(129-30) . 그러나 이 점에 대한 동의조차도 의문시될 수 있다. 과연 원독자들은 이처럼 불분명한 증거에서 정말로 이런 결론을 도출해 냈을까? 과연 나레이터는 지금 이 부분의 내용이나 혹은 5 : 6 에서 이야기해 주는 것 이상으로 청중들이 삼갈에 관해 알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일을 했는데, 이는 마치 후기의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 속에서 제멋대로 행동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삼갈은 사사기의 이 부분에 나타나는 모습을 통해서 그리고 드보라의 찬양 속에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모습을 통해서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과 직면할 때 제시하시는 시험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를 옷니엘과 에훗과 더불어 본보기로 보여 주는 사람
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거(130)는 삼갈을 옷니엘과 평행을 이루면서 “이상적이고 비순환적인(즉 마이너) 타입의 사사라고 제시한다. 옷니엘은 유다 지파에 편입된 그나스 족속 사람이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으며, 삼갈은 어느 지파에 속해 있는지가 불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들 각자는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사사들 - 바락, 기드온,아비멜렉, 입다, 삼손 등 - 은 시험을 받으면서 이들만큼 훌륭하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 각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의 흠결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