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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성령 / 성례

성령 Holy Spirit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한 위격(마28:19;고후13:13).
1. 원어적 고찰. '루아흐'는 초기 히브리인의 사고에서부터 줄곧 명백하게 드러나는 다양한 의미들을 지니고 있었다.
(1) 바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하고도 강한 힘으로서(창8:1;출10:13,19;민11:31;왕상18:45;잠25:23; 렘 10:13;호13:15;욘4:8), 이러한 개념으로 쓰일 때에는 거의 매번 강렬한 힘이나 파괴력을 지닌 개념과 함께 나타난다(출14:21; 왕상19:11;시48:7;55:8;사7:2;겔27:26;욘1:4).
(2) 숨(즉, 소량의 공기), 또는 영(창6:17;7:15,22;시 31:5;32:2;전3:19,21;렘10:14;51:17;겔11:5)으로, 인간(및 짐승)의 목숨이나 생동력 그 자체로 보이는 신비한 힘이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흩어져 버리거나 활기를 띨 수 있는 것이기도 하며(창41:8;민5:14,30;삿8:3;왕상21:5;대상5:26;욥21:4;잠29:11;렘51:17;단2:1,3), 약화되거나 줄어들 수도 있고(수5:1; 왕상10:5;시143:7;사19:3)다시 소생할 수도 있었다(창45:27;삿15:19;삼상3:12), 즉하나의 인간을 구성하는 이 역동적인 힘은 쇠약해지거나 갑자기 요동칠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3) 신적인 능력으로, 이 개념은 사람들이 자신들 내부의 어떤 힘으로부터 이끌렸다고 보이는 경우를 '루아흐'를 통해서 묘사할 때 드러나는 것인데, 이것은단순한 생동력의 표출이 아니라 사로잡는 능력이 포함된 초자연적인 힘이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나(삿3:10;6:34;11:29;13:25;14:6;15:14이하;삼상11:6, 초기 예언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이들을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예언적 선포를 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신적인 ‘루아흐'였다(민 24:2;삼상10:6,10;19:20,23이하).
이러한 개념들은 서로 간에 구분할 수 있는 일련의의미들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독자들은 각기다른 의미들이 서로간에 융합되어 다른 의미에 그 잔상을 남기는 경우까지를 볼 수 있다. 다음의 예들이 그러한 경우들이다. 1과 2의 의미가 서로 겹치는 경우는 시78:39, 1과 3의 의미가 겹치는 경우는 왕상18:12; 왕하2:16;겔3:12,14, 2와 3의 의미가 그러한 경우는 민5:14,30;삼상16:1416;호4:12, 그리고 1과 2 및 3이 한꺼번에 겹쳐서 나타나는 경우는 겔37:9에서 볼 수 있다.적어도 맨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들이 '루아흐'가 나타나는데 있어서 모두 일어났고, 또 '루아흐'의 의미들이 엄격하게 구분되어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특별히 히브리 사상에서 초기에는 신적인 '루아흐'와 인류학적인 '루아흐' 간에 구별을 전제하지 않았으며, 반면에 인간의 '루아흐'가 하나님의 '루아흐' 와 동일시될 수도 있었다(창6:3;욥27:3;32:8;33:4;34:14이하;시104:29이하).
또한 '루아흐' 라는 개념은 실존적인 용어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 개념의 중심에는 신비하고도 두렵기조차 한 능력에 대한 '경험'이 내포되어 있는데, 이 능력은 바람의 강력하고도 보이지 않는 힘이기도 하고, 생동력의 신비함이기도 하며, 변형시킬 수 있는 여타의능력이기도 해서 모든 '루아흐'는 신적인 에너지의 모든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후기의 용법에 있어서는 인간의 영, 천사나 귀신의영, 및 신의 영이라는 의미들이 탁월하게 드러나고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신약에서 '프뉴마' 라는 단어는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지니는 것이 가능토록 해주는 인격체의 차원을 지시하는데 거의 40번이나 사용되었다(막2:8;행7:59;롬1:9;8:16;고전5:3-5;살전5:23;약2:26. 인간이 고통, 즉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과의완전한 관계에 이르지 못하는 해로운 한계를 경험하게 될 때, 그렇게 만들었다고 느끼는 어떤 능력, 곧 더럽고 악한 귀신의 영이라는 의미로는 이 ‘프뉴마’ 라는 단어가 조금 더 자주 사용되었다(주로 공관복음이나 사도행전에서, 마8:16;막1:23,26이하;9:25;눅4:36;11:24,26;행19:21이하,15이하;딤전4:1;계16:13이하).때로는 하늘의선한 영들에 대한 언급도 있고(행23:8이하;히1:7,14), 또한 죽은 자의 영들에 대한 언급도 있다(눅24:37,39;히12:23;벧전3:19. 비교. 고전5:5). 그러나 신약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언급은 하나님의 영즉 성령에 관한 것으로 무려 250회 이상 나온다. 동시에 더 오래되고 넓은 분포의 의미가 요3:8;20:22;행8:39;살후2:8;계11:11;13:15에 아직도 모호한 상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게다가 특별히 이러한 '프뉴마'가 언급하는 것이 인간의 영인지 신의 영인지 완전히 결정해 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구절들도 여럿 있다(막14:38;눅1:17,80;고전14:14;고후4:13;엡1:17;딤후1:7;약4:5;계22:6).
2. 성서적 고찰. 구약에서는 신약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성령의 개념들이 많이 나타난다.흔히 구약에 있어서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선택받은 개인에게 부여된 능력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성령의 사역은 매우 넓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성령은 창조 사역의 행위자시다(시104:30), 동물과 사람과 같은 생명체는 성령의 사역의결과이다. 둘째, 성령은 도덕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행위자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에 대해 느끼시고 반응하시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이다. 성령은 죄악을 용납하지 않으신다(사4:4). 신실한 사람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는 성령을 소멸할까봐 두려워한다(시51:11). 불순종한 사울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을때 성령이 떠난 것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삼상16:14. 셋째, 구약에서 성령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출애굽 때에 하나님의 신이백성 가운데 임했던 것처럼 성령은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도 거하신다(학2:5). 성령은 브사렐에게 지혜를 부여하시고(출31:2-3), 그 외에도 많은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셨다(삿3:10;6:34:11:29:13:25;삼상11:6. 이 언급은 신약에서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특정한 사람에게 주어졌던 '성령의 충만' 이라는 말과 상응한다(행4:8). 한편 메시야적 예언에서는 한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부여되는 성령의 특별한 즐거움의 때로서 메시야의 날을 대망하고 있다(사32:15:44:3;59:21;겔36:27:39:29;욜2:28). 넷째, 성령은 예언을 하게 하신다(민11:29:24:2-9;삼상10:6,10;삼하23:2;왕상22:24;느9:30;호9:7;욜2:28;미3:8;슥7:12), 이상의 모든 언급에 성령의인격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혜로우시고(사40:13;단4:18) 죄와 악을 미워하시며(사63:10) 죄가 범해진 곳에서는 그것을 해결하신다. 그는 거룩하시고 선하시다(느9:20;시143:10). 시편 1397-8은 온 땅위에 편만하신 성령의임재를 보여준다. 또한 이사야 63:10은 사람들이 성령을 거부할 때 성령은 사람들을 대적하시는 분이 되시며, 이사야 63:14 은 쉼을 주시는 성령과 그의 백성을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할수 있게 한다. 성령의 활동은 신약성경에 매우 자세하게 나타난다. 그는 우리 안에 거하시고(요14:17),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시며 (26절), 증거하시고(15:26), 죄를 깨닫게 하시며 (16:8), 인도하시고, 말씀하시고, 알리신다(13-15절). 또한 그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며(행1:16; 벧후1:21) 그의 종에게말씀하시고(행8:29) 일꾼을 부르시며 (13:2) 그들을 파송하시고(4절) 어떤 행동은 금지하시며 (16:6-7) 우리를위해 중보하신다(롬8:26). 성령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사랑하고(15:30), 뜻을 가지며(고전12:11), 생각하고(롬8:27), 통달하시고 말씀하신다(고전2:10-13),
성령은 한 인격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를 속이거나 시험하려는 일도 생길 수 있으며 (행5:3-4,9), 거스려(7:51) 근심하게 하거나(엡4:30) 욕되게 하고(히10:29) 훼방할 수도 있다(마12:31). 성령은 성부, 성자와 함께 동일한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14:16-17),그가 함께 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오히려 유익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의 곁을 떠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16:7).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것은 곧 예수를 소유한 것이다(롬8:9-11), 하나님은 영의 속성을 가지셨으며(요4:24) 사람들 안에 거하시고 일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신다.
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바람' 혹은 '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살아있는 존재, 특별히 하나님과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숨과 바람은 성령을 상징한다(요20:22). 다른 상징들은 비둘기(마3:16; 막1:10;눅3:22;요1:32), 기름(눅4:18;행10:38;요일2:20), 생수(사44:3;요4:14;7:37-39), 보증(고후1:22) 등이다. 구약의 첫머리에 '하나님의 신' (창1:2)이라는표현이 나타나며, 하나님 스스로 성령을 '나의 신' 이라고 부르고 있다(6:3). 또한 성령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개인에게 부여되었는데(브사렐-출31:3;사사들3:10;6:34;11:29;다윗-삼상16:13), 이것은 시한부적인 것이어서 죄를 지은 다윗은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마소서' (시51:11)라고 회개하며 기도하고 있다. 또 성령은 메시야 위에 임했으며(사11:2;42:1;61:1),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통하여 역사하신다(슥4:6).
복음서에서는 구약에서처럼 성령이 특별한 목적을위하여 특정한 사람에게 임한다. 세례 요한과 그의 부모(눅1:15,41,67), 시므온(2:25-27), 그리고 사람으로서의예수(마1:18,20;3:16;막1:8,10;눅1:35;3:16,22;4:1,14,18;요1:32-33)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성령을 약속하셨다(요7:37-39). 또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16,26;16:7-15에서 성령의 사역과 본질을 보혜사, 모든 것을 가르치심,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함, 예수를 증거함, 죄와 의와심판을 알게 함, 진리로 인도함, 자의로 말하지 않고들은 것을 말함, 장차 올 일을 보여줌, 그리고 예수를영화롭게 함 등으로 가르치셨다.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오순절에 기도가운데 제자들에게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계시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양상으로 임하는 사건이 오순절에 시작되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와 불의 혀 같은 것이 나타나며 제자들이 모두 성령에 충만하여 각 나라의 방언을 하였다. 절기를지키기 위하여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고, 요엘 2:28-32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였다.

이날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된 사람의 수가 3,000명에 달했고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공동체로 출발하였다. 초대 교회를 위협하는 첫번째 위기가 지나간 후 그들은 '다 성령이 충만하여' (행4:31) 더욱 결속력을 갖게 되었다. 성령의도우심으로 이방인들이 처음으로 개종하였을 뿐 아니라 방언도 말하였다(10:44-48). 바울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때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였다(19:1-7).
신약에는 신자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묘사로 가득 차 있다(롬8:1-27),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분’ (고전12:11), ‘몸은 성령의 전' (6:19), '성령의 열매'(갈5:22-23) 등은 그 좋은 예이다. '성령 충만하라 (엡5:18)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체험을 의미한다(롬8:9). 성부께서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하나님이신 것처럼 성령도 하나님이심에 틀림이 없다. 창조 사역 가운데도 성자와 함께 참여하셨으며,구약과 복음서 가운데서도 한 위격으로 활동하셨고,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는 교회와 성도들을 거룩하게하시는 이로 기록되어 있다.

성례 Sacraments

성례(라. 사크라멘툼, sacramemtum)라는 말이 신학 전문 용어로서 기독교 신앙의 일정한 의식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것은 신약보다 훨씬 후대에 교리가 정교화되던 시기에 속한다. 불가타역 라틴어 성경은 헬라어 뮈스테리온(mysterion, 비밀, 신비)을 많은 곳에서 뮈스테리움(mysterium)으로 번역하면서도 몇몇 곳(엡5:32;골1:27;딤전3:16;계1:20;17:7)에서는 사크라멘툼으로 번역하고 있다. 초기 교회에서 사크라멘툼이란 말은 어떤 의식이나 성사(聖事, sacred thing)를총칭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크라멘툼이란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될 때에는소송 당사자들이 공탁한 담보물이나 신성한 목적에바쳐진 담보물을 뜻하거나 로마 군인이 황제에게한 서약 또는 여기서 비롯되어 어떤 서약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관념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담보나 증거로 이것을 받으면 충성의 서약이그 안에 포함되는 성례의 개념이 생기게 되었으며,시간이ㅣ 나면서 '사크라멘툼' 이란 말은 신적 제도인 두 가지 주요한 의식인 세례와 성찬에 한정하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사크라멘툼이란 말은 여러세기 동안 보다 넓은 의미로도 계속 사용되어 12세기의 성 빅토르 위고(Hugo of st Vitor)는 30성례까지도 말할 수 있었으나 같은 시대에 살았던 피터롬바아드(Peter Lombard)는 7성례로 한정하였으며,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이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개혁 교회와 로마 가톨릭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성례(로마 가톨릭에서는 聖事라고 한다)의 정의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내적이며 영적인 축복을 담보하여 보여 주는 외적이며 가시적인징표라는 것이다. 이 정의는 불가시적인 것과 비슷한 면을 지닌 가시적 형태에 관한 글을 썼던 어거스틴에게 의존하는 바가 많다. 이 '요소’ (element),혹은 가시적 형태에 그리스도의 제정의 말씀이 덧붙여질 때 성례가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 성례는'가시적인 말씀' (혹은 '보이는 말씀’, 'the visibleword')이라 할 수 있다. (참조. Auqustine, Tractson the Gospel of John 80).
신약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가? 성례를 받으면 어떤 영적 혜택이 있으며, 영적 혜택은 어떻게 전달되는가?성례는 몇 가지 이유에서 계속 거행되어야 한다.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성례를 계속 거행할 것을 당부하셨으며, 성례는 본질적으로 복음 계시에 필수적인 신적 행위의 상징으로 거행되기 때문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할 성례는 두 가지 뿐이다. 이 이외의이른바 다른 성례(로마 가톨릭이 말하는 가운데 세례와 성찬을 제외한 다섯 성사: 견진, 신품,혼인, 고백, 병자성사)는 세례와 성찬과 같은 지위를 부여받을 만한 성서적 근거가 빈약하다. 세례와성찬(주의 만찬)은 교회 시작 때부터 교회의 복음선포와 교회 생활과 결합되고 있다(행2:41-42;고전10:1-4 참조). 이 두 성례는 구약의 의무적인 의식들인 할례와 유월절과 연계되고 있다(골2:11; 고전5:7;11:26), 기독교 생활은 시작에서부터 계속하여 성례의 거행과 결부되고 있다(행2:38;고전11:26). 기독교인의 성례의 의무에 관한 성경의 말씀 속에는성결과 완전에 관한 가장 심오한 가르침들이 내재되어 있다(롬6:1-3;고전12:13;엡4:5). 성례에 관한 직접 언급하지 않은 많은 구절들(예를 들면 요3장:6장: 19:34;히10:22)도 그 근저에 성례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신 대분부는 특히 세례를 베풀 것을 명하고 있고 성찬을 거행할 것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마28:19-20). 아울러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그의 종들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성례를 거행하는 일을 위시하여 이들에게 맡기신 과업은 세상이 끝나기 전에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바울 또한 성찬(주의 만찬)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일로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함을 의심하지 않는다(고전11:26). 마태와 마가는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분부의 말씀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초기 교회가 이를 실천한 사실(행 2:42;20:7;고전10:16;11:26)은 이를 보충하고도 남는다.
성례의 효험은 그리스도께서 성례를 제정하시고 분부하신 데 달려 있다. 요소들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요소들의 신앙적 사용이다. 이 요소들을 통하여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롬6:3;고전10:16). 죄사함(행2:38), 죄 씻음(행22:16. 참조.엡5:26), 영적인 활성화(골2:12)는 세례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은 성찬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전10:16;11:27). 세례와 잔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으심에 관해 이야기 하신 가르침 속에서 서로 연결되며(막10:3839), 세례와 잔이 주는 신성한 의무들을 기억하는 교회의 정신 속에서도 서로 결합된다(고전10:1-5).
성례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22:20;고전11:25) 하신 대로 언약 의식이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마28:19).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희생으로 시작되었으며 (참조.출24:8;렘31:31-32) 그 축복은 복음과 성례에서 하신 그의 말씀과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사도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말씀 선포에 뒤이은 성례의 거행을 통하여 축복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행2:38 이하). 성례에 의미와 효험을 가져다 준 것은 성례에 동반한 복음말씀 혹은 약속이었다. 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았다(행 19:1-7). 어떤 사람들은 성례를 받고서도 영적 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행8:12,21;고전 11:27;10:5-12), 고넬료와 그의 가족의 경우(행10:44–48)에서 우리는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을 먼저 받았던 사람들의 한 본보기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들도 성례를 축복을 주는 것으로, 또는 의무로 알고 세례를 받았다.
성례를 올바로 받을 때 성례는 믿는 자에게 축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 축복이 성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성례를 통해 전달되는 축복은 신앙과 경건에 관한 강한 성경적 강조점과 어떤 방식으로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성경에 규정된 원리들에 따라 거행되는 성례는 항상 우리의 구원의 위대한 근거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기시켜 주며 우리가 받은 바 소명에 합당하게 해야 할 의무들을 기억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