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holy name
거룩하고 위엄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로 이이름 속에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구별되어지는 것이아니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들과 거기서 파생된 하나님의 거룩하신 행동들을 포함하고 있다(레22:32-33). 따라서 성호를 욕되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는데(레20:3) 이같은 내용은 십계명의제3계명에도 잘 나타나 있다(출20:7). 한편 시편을 기록한 여러 기자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의지하며 (시33:21), 송축하며(103:1; 145:1), 자랑하며 (105:3), 감사하라고(106:47) 노래하고 있다.
성화 Sanctification, Sanctify
성경에서성화의 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며, 이는 히브리어 동사 어근 '카다쉬'가 지니는 기본적인 두 가지 의미와 상응한다. '카다쉬'의 첫번째 기본적 의미는 '구별하다' (분리하다)는 것으로, 성화(또는 거룩함)를 위치, 지위, 관계의 측면에서 보고 있으며, 이 경우에는 ‘잘라내다’ ‘분리해내다’ ‘특정한 용도로 구별하다' '봉헌하다' '일상적이며 속되고 세상적인 것과 구별하여 거룩한 것으로 여기다'로 번역된다.
‘카다쉬’의 두번째 기본적인 의미는 ‘빛나다’(brightness)는 것으로 조건, 상태, 과정과 관련되어 있으며, 신약에 나오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내적 변혁이 정결, 도덕적 정직을 가져오고, 거룩한영의 생각들이 선하고 경건한 외적 생활로 표현되것을 뜻하게 된다.
1. 구약. 성화의 기본적인 두 가지 의미는 대략 제사장적 의미와 예언자적 의미로 볼 수 있지만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며, 두 가지 의미 모두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1) 하나님은 위엄 속에 거룩하시며, 신성한 타자성 속에 신비로우시며, 인간과 죄와 땅에서 저 높히떠나 존재하신 것으로 묘사된다(참조, 출3:5;사6:3이하).
그의 백성은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하다 하라고권고를 받으며(사8:13),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게하시며 그의 백성들 속에서 또는 그의 백성들에 의해 거룩하게 되실 것이라 말씀하신다(이것은 그의백성이 그에게 보이는 태도와 그와 맺는 관계를 통하여 그가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숭고하심이 인정받게 될 것을 뜻한다).
성화된 사물이나 인격은 사람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구별된 것으로 인식된다(예를 들면, 안식일, 창2:3; 제단, 출29:37; 회막, 출29:44; 옷, 레8:30; 금식일, 욜1:14; 집, 레27:14; 밭,레27:17; 백성, 출19:14; 회중, 욜2:16; 제사장, 출28:41). 여기에는 내적 변화가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의 제의는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소속되어 그의 도구로만 사용되도록 하나님에 의해구별된 백성이 범하는 죄를 대비해 마련된 것이다.
(2) 이것들은 근본적으로 외적이며 제의적인 성화의 사례들이긴 하지만 때로는 보다 깊은 내적 현실이 수반되기도 하였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거룩하라'는 하나님의 훈계는 그의 백성들에게 도덕적이며 영적인 응답을 요구한 것이며 그의 뜻에 순종하여 그의 뛰어나신 도덕적 의, 순결, 도덕적 악에 대한 혐오, 남을 위한 사랑의 관심을 본받을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거룩하신 이는 악에서 떠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의 행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셨기(출19:4)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이었으므로(신4:7;시73:28) 그의 백성의 거룩함도 이와 같은 것이어야 했다. 선지자들은 단순한 외적 성화의 위험성을 경계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할 것을 촉구하였다. 선지자들은 실천적 성화가 뒤따르지 않는 외적인 '거룩한' 제의들을 비난하기까지 하였다(사1:4,11;8:13).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이방 민족 가운데서 거룩하지 못한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도덕적 측면과 제의적 측면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던 성결법(레17-26장)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2. 신약. 구약에서와 같이 신약에서는 성화의 두 가지(혹은 이중적) 용법이 나타나지만 구약에서와 다른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인다. 공관복음에서 ‘거룩하게 하다'는 동사는 두번이나 제의적 의미로 사용되어, 금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성전이며,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제단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마23:17,19). 여기서 성화의 일차적 의미는 봉헌으로, 금과 예물은 봉헌되고 구별된 것으로, 이미 거룩한 성전과 제단과의 관계로 인해 특별히 신성하고 귀중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용법과 병행되지만, 인격적 영역과 관계되기 때문에 보다 높고 보다 직접적으로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구속 사업을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며(또는 봉헌하시며),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아버지를 거룩하게 하도록 명하신다(요 10:36;17:19;마6:9).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해지며(히13:12), 아버지가 진리의 말씀을 통해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요 17:17 의 말씀에서도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요 17:17 이나 이와 비슷한 본문들에서 성화의 관념은 도덕적이며 영적인 변화의 방향으로 그 의미의 폭을 넓히고 잇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서는 성화의 외적 의미와 내적 의미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함으로 그의 형제들을 구별되게 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자격을 갖추게 한다는 의미에서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이들의 죄를 구속하고(히2:17) 이들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심으로써(히9:13이하)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나 이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완성된 사실로 생각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다(히10:10,14). 이와 동시에 점진적 성화의 권고도 없지 않다(참조, 히12:14. 여기서 성화 또는 거룩함은 지위의 성격보다 상태의 성격을 더 많이 지닌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성화' 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서신들이 말하는 '칭의' (justification)와 어느 모로 비슷하지만 이 서신들에서의 ‘성화’ 의 용법들을 지나치게 구분해서는 안된다. 바울의 경우도 성화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먼저, 몇몇 경우에 바울은 칭의만이 아니라 성화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에게 수여된 지위로 간주한다. 성화에서 파생된 '성도' 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의 지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짐'을 뜻한다. 고전1:2. 참조․ 벤전1:2). 한 부모가 믿는 자일 때 믿지 않는 배우자와 자녀들도 거룩하게 되는 특권을 갖게 되는데 이 대리적 성화(vicarious sanctification)도 지위의 성격을 갖는 성화이다(고전7:14).
바울에서 나타나는 성화의 두번째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고 새 생명을 얻은 의롭게 된 신앙인의 도덕 및 영적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성화(거룩함)에 있으며(살전4:3), 완전한 성화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것을 경험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성화된 삶의 내용과 규범은 그리스도이다. 신앙인이 은혜로 성장하여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은 이 신앙인 안에서 재생된다. 율법의 문자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되는 이 경험에서 인간의 영은 영이신 주님에 의해 자유함을 얻게 된다(고후3:17-18). 인간의 성화에는 성령이 작용하시나 성령은 진리의 말씀과 믿음의 기도와 신앙인들의 교제(엡5:26)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신앙인들의 교제에서는 성령의 사랑과 거룩함을 보여야 한다(히 12:14). 성화의 자원들을 주도하는 것은 신앙이며, 이 신앙은 성령에 의해 생겨난다.
칭의가 죄의 형벌로부터 구속받는 것을 함축하듯이 성화는 죄의 오염, 박탈,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속받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이 후자의 구속의 강도, 광대, 단계들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믿는 자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까지 흠없이 보전되기를 비는 기도 다음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를) 이루시리라”(살전5:23-24)는 주장이 뒤따른다. 이러한 주장은 세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1) 하나님은 성화를 단번에 이루시는가? 믿음에 의한 성화(sanctification by faith)란 칭의의 경우와 똑같이 완전한 성화가 선물로 주어지며, 따라서 믿는 자는 즉각적으로 거룩하게 되어 단번에 실제적인 성화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회심에 뒤따르는 결정적 경험에서 옛 사람은 단번에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뿌리는 뽑힌다,혹은 죄의 원리는 근절된다고 역설한다. 어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을 받아야 할 필요성과 성령의 역사의 증거로 성령의 은사(특히 방언의 은사)를 발휘할 것을 강조한다. 다른 이들은 신약의 가르침은 이 견해와 확연하게 반대되며, 교리, 논증, 호소, 권고와 같은 이성적 주장을 펴는 서신들은 이 견해와 상치된다고 여긴다.
(2) 하나님은 성화를 믿는 자의 생시에 모두 이루시는가? 성화 경험의 결정적 성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성화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사람들 양편 모두에게서 자신들은 성화된 삶의 매우 높은 단계를 성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와 같은 유의명령들을 강조하면서 여기서 '온전' 완전)의 의미를 '성숙'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들은 온전한 사랑을 이생에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죄 없는 완전' (sinless perfection)의 과도한 주장은 대개 죄에 대한 서술이나 요구되는 도덕적 생활의 표준을 최소화시킨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의 법에 합치하지 못하거나 빕하는 것'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으로 정의되기 보다는 오히려 '알고 있는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 (웨슬레)으로 정의된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의 죄에 대한 정의는 공개적이며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된 상태와 빠뜨린 죄(sins of omission)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손상되지 않은 성화와 흠 없는 완전은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다른 사람들도 완전한 사랑의 동기를 갖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핀네이(C. G. Finney)가 성경은 '명백히 의무를 능력 수준으로 한정한다'고 한 주장은 요구되는 도덕적 생활의 표준을 최소화시킨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851)에서 “율법의 언어 자체가 그 요구하는 것들이 아무리크든 작든 주체의 능력 수준으로 잡고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할 때 여기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던,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발휘하라는 것임이 명백하다. 온전한 성화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따르는 데 있고, 율법은 우리가 가진 힘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일진대 온전한 성화의 상태는 자연적 능력을 근거로 하여 이생에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판명된다" (p. 407)고 쓰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신 6:5을 슬퍼할 만큼 오해한데 근거한다.
(3) 하나님은 믿는 자의 행위 없이 성화를 독단적으로 이루시는가? 죄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성화의 표준을 최소화시키는 사람들은 성화를 이룩하는 인간의 노력을 부당하게 강조하는 위험에 빠져있다. 그러나 성화의 책임부담)을 모두 하나님에게 지우는 이와 반대되는 극단도 있다. 하나님은 성도를 즉각적으로 만들어 내시거나 점차적으로 기독교인에게 은혜나 영을 주입하시는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은 인간을 아무런 도덕적 소질도 갖지 못한 단순한 로보트로 격하시킴으로써 비도덕적인 성화를 만들어 내는 것과 다름 없으며, 비도덕적 성화(immoral sanctification)란 어불성설이다. 인간의 내재적인 영적 성격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성령의 비인격적 역사를 부정한다. 이들은 또한 성령이 인간 정신의 의식적 과정을 통하지 않고 직접 무의식에 역사한다는 주장들도 의심스러워 한다.
신앙인은 죄와의 투쟁의 치열성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가져서는 안되며(롬7-8 장;갈5장), 또한 성화는 자신의 악한 경향들과 맞서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분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도덕적 성취의 점진적 과정도 있지만 또한 신앙인 내부에 신비스러운 성화의 역사도 일어난다. 이것은 성령과 신앙인이 각기 어떤 것에 기여하는 단순한 협동작업(synergism)이 아니다. 은혜의 역설 속에서 그것은 성령에 기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신앙인에 기인하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진리의 법에 대한 신앙적 인식과 신앙인의 사랑의 응답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그 순전한 결과는 영적 성숙이 이웃에게 사랑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은혜의 믿음에 의해, 성령에 의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요일3:3) 신앙인에게 성화의 완성은 다음과 같은 확증으로 나타난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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