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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수리(하다) / 수리삿대 / 수리아 / 수리아 안디옥 / 수리엘

수리/-하다 garnish

고장난 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고치는 것을 말하며, 질서있게 놓다, 치장하다는 의미와(마12:44:눅11:25), 강하고 단단하게 하다는 의미로도 쓰였으며, 주로 성전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왕하 12:5.12;29:3:34:8,10).

수리삿대 Zurishaddai

광야에서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였던 슬루미엘의 아버지(민1:6;2:12;7:36,41;10:19).

수리아 Syria

유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큰 나라로, 동쪽의 유브라데 강과 서쪽의 지중해, 그리고 남쪽의 팔레스타인과 북쪽의 길리기아 지방이 그 경계로 되어 있다. 여러 민족들이 함께 모여 합중국 형태를 이루고 있는 수리아는 다메섹, 안디옥, 실루기아, 발무아, 라오디게아 등의 대도시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다메섹이 중심지였다. 수리아라는 이름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에 보편화되었으며, 앗시리아의 단축형이었던 이 이름은 대개는 시리아로 더 자주 사용되었다. 구약에서는 아람으로, 신약에서는 수리아로 불리워 왔다. 이곳은 즉, 수리아 남동부의 다메섹을 중심으로 한 아람 왕국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통일 왕국 시대에는 수리아와 이스라엘이 대립 관계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소바 왕 하닷에셀과 더불어 동맹하여 다윗을 대적하였으나 패망하였고(삼하8:5), 솔로몬 왕 말년까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있다가 소바 왕 르손에 의해 독립되었다(왕상11:2325).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하닷 왕 때 사마리아를 여러 차례 포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왕하6-7장), 하사엘 왕 때에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일부 성읍들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들 벤하닷이 요아스 왕에게 패함으로 인하여 그 성읍들을 이스라엘에게 되돌려 주어야만 했다(왕하13:22-25) 아람 왕 르신은 북이스라엘과 동맹하여 남유다를 공격하였으나(사 7:1-6) 유다 왕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군대 지원을 요청하여 수리아를 즉시 격퇴시켰고, 이로 인해 수리아는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다(왕하16:79). 한편 이스라엘과 유다가 합병하여 수리아와 전쟁을 하기도 하였다(대하22:5). B. C. 73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수리아는 바벨론, 바사, 마게도냐, 로마,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어 국호를 시리아로, 수도를 다메섹으로 정하였다.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 목축에 적합하였던 수리아는 상업, 군사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는데 팔레스타인보다 강대국이었다. 북 수리아에 위치해 있는 라스샴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우가릿 문서에 의하면 수리아의 종교와 문화가 팔레스타인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던 것으로 보이며,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도 수리아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선지자 엘리사에게 문둥병을 고침받은 나아만장군의 이야기에도 이곳이 언급되어 있다(왕하5장;눅4:27).

수리아 안디옥 

<보라> 안디옥

수리엘 Zuriel

므라리 가문에 속해 있는 레위인이며, 아비하일의 아들이다(민3:35).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할 당시 므라리 족속의 족장이었는데 이 족속은 장막 북쪽에 진을 치고 생활하였다. 그들은 장막의 뼈대를 세운 목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