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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오멜 / 오목 / 오묘 / 오므리 / 오바댜

오멜 omer

한 에바의 10분의 1에해당되는 고체량의 단위이다. 원어 '오메르' 는 한 단의 곡식을 의미하며, 오늘날 약 2. 3 1 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중에 내린 만나의 양은 1인당한 오멜씩이었다(출16:16,32-33).

오목 ebony

원산지는 인도와 에디오피아이며, 무겁고 검은 박달나무의 심재材)로서, 로도 섬의 상인들이 베니게와 교역한 상품이다(겔27:15). 이 나무는 나이테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담흑색으로 견고하여 목공예나 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며 귀중하게 여겨졌다. 드단 사람들은 두로에 가서 이 나무를 팔았다고 한다. 고대에는베니게인, 애굽인, 바벨론인, 로마인들이 오목과 상아를 수입해다가 그릇이나 가구 또는 우상을 만드는데사용하였다(공동번역 '박달나무', 새번역 '흑단').

오묘 secret

심오하고 미묘함. '감추다', '비밀' 이란 뜻에서 나온 말로,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계시나(시49:4), 하나님의 지혜의 위대성(욥11:6-7) 등을 가리키는데 쓰여졌다. 미래의 일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오묘한 것으로(신29:29) 인간에겐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일에 대해서는 주를 신뢰하고 그분께 맡겨야 한다.

오므리 Omri 

1.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B. C. 876-869년까지 재위했다. 시므리의 계승자이며 오므리 왕조의 창시자이고 아합의 아버지이다.오므리는 바아사의 아들 엘라 왕의 치세 때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다. 그가 B. C. 876년경 깁브돈에서블레셋과 싸우고 있을 때 신복 시므리가 엘라에 반역하여 왕과 그 가족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이에분개한 백성들은 오므리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며 시므리는 단 7일간 통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왕상16:8-18), 그 후 이스라엘 내에 내분이 일어나 백성의절반은 오므리를 지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지지했다. 디브니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으나 이스라엘의 유명한 가문의 자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권에 대한 투쟁은4년간 지속되다가 디브니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오므리는 북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들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27절). 그는 세밀에게 은 두 달란트를 지불하고 사마리아를 구입하여 수도를 다르시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이 수도 천도는 다윗의 예루살렘에 비교될 만한 공적이었고(24절), 100년 이상 북 이스라엘에게 함락되지 않는 요새가 되었다.
오므리는 국내외적으로도 그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남 유다와의 계속된 불화로 국력이 약해진 것을 알고 유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의 말 아달라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의 결혼으로 더 밀착된 관계를 맺었다(왕하8:18;대하21:6, 오므리는 모압을 정복하고 속국으로 삼아 무거운 조공을 바치도록 했으며, 아르논 강 북쪽의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베니게(페니키아)와도 동맹을 맺었다. 오므리는 아들 아합을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킴으로써 조약을 보증했는데, 이 동맹이 결과적으로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초래했다. 그러나 오므리의 업적으로 인한 그의 명성은 그의 사후 1세기가 더 지나서도 사마리아는 '오므리의 집'으로, 이스라엘 땅은 '오므리의 땅'으로 불릴 정도였다는 앗수르문서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한편 열왕기서 기자는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다' (왕상16:25)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기자의 관심이 오므리의 정치적 업적보다 종교적 정책에 더 쏠려서 오므리가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답습하고 혼합주의적 종교 습관이 오므리치세 동안에 이스라엘에 널리 확산되었음을 가리켜 평가한 내용이다. 오므리는 아들 아합에게 왕위를 계승시켰고(B. C. 869), 죽은 후 사마리아에 장사되었다.

2. 베냐민 지파의 사람으로 베겔의 아들(대상7:8).
3. 유다의 자손으로 이므리의 아들이며,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이다(대상9:4).
4. 미가엘의 아들로서 다윗 통치시 잇사갈 지파의 관장(행정관)이었다(대상27:18).

오바댜 Obadiah

1. 이스라엘아합 왕의 궁내대신으로서 하나님을 섬긴 경건한 사람이다. 그는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비롯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했을 때, 그들을 50명씩 2개조로 나누어 굴 속에 은거하게 했다. 그는 또한 갈멜 산에서 바알과 하나님의 선지자가 대결할 기회를 만들었다(왕상18:3-19).
2. 다윗의 후손이며, 하나냐의 아들 중 하나이다(대 싱3:21),
3. 잇사갈 지파의 한 족장으로서, 족장 이스라히야의 둘째 아들이다(대상7:3).
4.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사울의 후손이며, 아셀의 아들이다(대상 8:38:9:44).
5.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최초의 귀환민 가운데 한레위인으로 스마야의 아들이다(대상9:16), 그는 느헤미야 11:17에서 삼무아의 아들 '압다'로 불리운다.
6. 갓 자손의 족장으로 시글락에 있는 다윗의 군대에 가담한 용사이다(대상12:9).
7. 다윗 통치시 스불론 지파의 관장이었던 이스마야의 아버지이다(대상27:19).
8. 유다 왕 여호사밧이 율법을 가르치도록 유다의 성읍으로 파송한 방백들 중 한 사람이다(대하17:7-9).
9. 유다 왕 요시야 시대의 레위인으로 성전 복구 공사를 감독한 사람이다(대하34:12).
10. 에스라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요압 자손으로 여히엘의 아들이다(스8:9).
11. 율법 엄수의 계약서에 인을 쳤던 제사장들 중 한 사람이다(느10:5).
12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에 성 문안의 곳간을 지키던 문지기이다(느12:25).
13. 유다의 한 선지자로 오바댜서를 기록한 사람이다(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