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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의롭게 됨 / 의뢰 / 의리 / 의무

의롭게 됨 justification 

1. 단어의 의미. '의롭게 하다' 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로서, '무죄로 하다', '의롭다고 선언하다', 또는 '정죄'의 반대 의미를 뜻한다(신25:1;시17:15;롬8:33). 의롭게 하는 것은 재판관의행위다. 그러므로 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의롭게 되는 것'은 ‘판결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사43:9,26). 성경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창18:25)이고, 그가 사람을 대하는 것은 항상 법정적용어로 묘사되어 있다. 의로움, 즉 그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고이것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보복함으로써 재판장으로서의 그 자신의 의를 나타낸다(사7:11;사5:16;10:22;행17:31;롬2:5;3:5이하), 하나님의 판결이 유죄를 선언하는 그 어떤 사람도 소망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왕이시기 때문에 그가 의롭게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재판적인 면과 실행적인 면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적제사장과 같이 그는 피고인을 위하는 판결을 내리실뿐만 아니라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공개적으로 회복시킴으로 은혜를 적극적으로 행하실 것이다. '의롭게 하다' 라는 동사는 판결과 은혜 베풂의 양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사야 45:25 50:8에서 보여지는 이스라엘과 그 종을 의롭게 하는 것은그들의 운명에 있어서 변화를 통한 공개적 옹호이다. 그러나 바울이 설명하는 죄인들의 칭의는 단지호의적 판결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가 무죄로선언한 자들에게 호의를 베푸신다고 믿지만 그는 이것(양자삼음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용어들을 사용한다.
'의롭게 하다'는 또한 비법정적 문맥들에서 의로움을 돌리는 것으로 사용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롭다고 고백함으로써 그를 의롭게 하고(눅7:29;롬3:4은 시51:4을 인용한다),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의롭게 한다(욥32:2;눅10:29;16:15). 예루살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돔과 사마리아보다 더욱 죄를 지음으로써 소돔과 사마리아를 의롭게 했다고 말해진다(16:51). 수동적인 경우에는 의심, 비난, 그리고 불신에 반대되는 사건들에 의해서 옹호받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마11:19;눅7:35;딤전3:16;약2:21,24 이하).
바울과 야고보가 말한 현재적 칭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사함으로 의롭게 여기실 뿐 아니라 내적으로 갱신시킴으로 실제로 의롭게 만든다는크리소스톰, 어거스틴, 그리고 트렌트 공의회의 해석은 어원적인 뒷받침이 빈약하다. 야고보는 그 어느 것도 의미하는 것 같지 않고 바울은 의롭게 여겨지는 것만을 의미한 듯하다. '의롭게 하다'에 대한 바울의 동의어는 '의로움으로 여기다', '죄를 사하다’, ‘죄로 여기지 않다' 등이다(롬4:5,8). 이들이 뜻하는 것은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법적인 책임을 취소하고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칭의는 인간 안에서 행해진 행위가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된 판결이다. 분명히 둘은 함께 가지만 그들은 서로구분된다.
2. 바울에게 있어서의 칭의 신약에서 동사 '의롭게 하다'는 바울서신에서 주로 등장한다. 그리고 명사형인 '디카이오시스' 도 바울 서신에 두 번 등장한다(롬4:25;5:18). 이것은 신약의 저자들 가운데 바울만이 칭의 개념을 그의 구원론의 기초로 삼고 있음을 반영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칭의는 '행위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적인 율법 준수와 구원을 위한 피흘림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인간이 죄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의해서 죄를 사함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 이다(롬3:23;4;58;5:18이하). 바울의 칭의 교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죄인들을 사하신다는 핵심적복음진리를 그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형식화한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신약 안의 진리를 가장 고상하게 발전시켜 표현한 것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의' 를 드러낸다고 소개한다(롬 1:17). 이 구절은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첫째로, 의로운 인간의 지위를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믿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저'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주심으로 갖게 된 지위이다(롬5:17:9:30:10:3-10; 고후5:21;빌3:9), 둘째로, 복음이 정당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인들에게는 그들에게 마땅한 심판을 행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구원을 베푸시려고 죄인들을 의롭다 하심으로 그의 재판적 판결을 충족시키는 것이다(롬3:25이하).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 는 법정적 용어로서 죄인들을 하늘의 법정에서 재판장으로서의 그분의 정의에 편벽됨 없이 그들을 사하시고 죄인들에게 그의 의롭게 하는 칭의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를 드러낸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의'와 '구원' 이동등한 의미로 등장하는 이사야 40장 이하와 시편들에서 칭의의 배경을 찾는다(시98:2;사45:8;46:13;51:3-60.이러한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구절들을 어디에서도 인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명확한 증명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기억해야할 것은 앞의 본문들이 하나님의 압제받는 백성들을변호하는 하나님의 행위를 그의 '의' 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과의 언약 약속에 충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는 주로 전에는 그의 백성이 아니었고 그들에게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던 이방인의 칭의(⑨:24이하:10:19)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다른 상황인 것이다.
케제만과 다른 학자들은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의는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구원의 약속 완성)과그의 창조세계 (하나님의 주권회복)에 대한 신실성을지키는 은혜로운 능력의 사용으로 생각한다. 둘 다 바울적이다. 그러나 로마서 3:25-26의 '의로움' 과 26절의 '의로운’ 이 둘 다 속죄물이 된 한 사람에게 죄를 전가시킴으로써 죄인을 구하는 법정적 보복(3:5)이 아니라 곤고한 자를 구하시는 그의 은혜로운 신실성만을지칭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속죄물에 관한 사상이 전체 흐름상 더 적합할 것같다. 신실성만을 강조하면 26절의 '의로운 그리고 의롭게 하는 자' 에서 '그리고' 가등장하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둘이 아닌 하나의 사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위없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가 단순히 유대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발전시킨 논쟁의 도구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음의 사실들이 논쟁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게 할 것이다. 첫째, 로마서는 바울의 복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창의교리는 바울의 복음의 근간을 이룬다. 둘째, 세 곳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의 확신을 개인적 용어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모든 진술은 칭의적 용어로 되어 있다(고후5:16-21;갈2:15-21;빌3:414), 로마서 7:7 이하에서바울은 율법의 정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 필요성은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칭의의 선포로만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롬8:1이하;갈3:19-4:7). 바울의 개인적 신앙이 그의 칭의의 지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셋째, 칭의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근원적인 축복의 행위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칭의는 과거로부터 구하면서 동시에 미래에 소망을 주기때문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의로운 자에게 약속된모든 축복, 즉 바울이 칭의를 양자됨과 유산상속권과더불어 묘사하는 하늘의 축복으로서의 용납을 의미한다(롬8:14이하;갈4:4이하). 이 소망은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칭의는 종말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화된 종말의 심판으로서 취소할 수없는 최종적 판결이다. 그러므로 칭의를 받은 인간은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롬8:33-39). 그의 영화도 확실한것이다(롬8:30), 그러므로 다가올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서의 심문은 칭의를 받은 인간에게서 행위에 근거한 보상(롬4:10이하;고후5:10)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그의 칭의된 지위(고전3:15)를 빼앗을 수는 없다.넷째, 바울의 구원교리는 칭의를 그 토대로 삼고 있다. 칭의에 대한 그의 신앙은 기독교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는 은혜와 믿음의 세계적 종교라는사상을 전개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롬1:16;3:29 이하;갈3:8-14,28이하).
바울이 은혜(롬3:24;4:4이하), 그리스도의 순종과 구원의 구원론적 의미(롬3:24이하;5:16이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롬5:5-9), 구속(롬3:24;갈3:13;엡1:7)과 화해(고후5:18이하)의 의미, 언약관계(갈3:15이하), 믿음(롬4:23;10:8이하), 그리스도와의 연합(롬8:1;갈2:17), 양자삼음과 성령의 은사(롬8:10; 갈4:6-8),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확신(롬5:118:33이하) 등을 설명할 때에도 칭의의 관계에서 하고 있다. 구약의 구원에 관한 암시, 예언, 그리고 사건 등을 설명한 때에도 칭의의 관계에서 설명한다(롬 1:17과 갈3:11은 합24 인용, 록3:21:4:38은 창 15:6시 32:1 이하를 인용, 갈3.8은 창123을 인용, 갈4:21은 창21:10을 인용). 다섯째, 칭의는 바울의 역사철학 이해의 열쇠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를 운행하는 주된 목적이 죄인들을 칭의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대표자를 통해서 인류를 다룬다고 말한다.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사람' 즉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고전15:45이하롬 5:12)이다. 첫사람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정죄와 죽음이 오게 했고, 둘째 사람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진 모든 이를 위해 칭의와 생명의 주인이 되었다(롬5:16이하).
아담의 타락 이후 죽음이 전 인류를 지배했으나(롬 5:1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을 그의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즉, 그의 자손들 중에 하나)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리라(즉, 칭의받으리라고 약속하셨다(롬4:4,9-22;갈3:6,16).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의 율법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계시하셨다. 율법은 구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려고 주어졌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함으로써 칭의의 필요성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롬3:20;5:20;7:5,7-13), 그러므로 율법은 몽학선생(파이다고고스, 주인의 자녀들을 학교까지 인도하는 가정의 노예)의 역할을 했다(갈3:19-24). 하나님의 준비교육의 시대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끝이 났다(갈3:23-25;4:1-5).
그리스도의 사역이 의미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을 갖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세워놓은 배타주의를 폐지한 것이다(엡2:14이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신칭의는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없이 선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와 언약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이다(갈3:26-29), 불행하게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그들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시도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음이 의로움에 이르는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임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롬 9:30-10:21). 그러므로 많은 자연적 가지들은 역사적 언약 공동체의 감람나무로부터 잘리워졌고(롬11:16이하), 교회는 이제 주로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타락한 이스라엘의 선택된 남은 자들이 자격이 없는 이방인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믿음에 이르고 결국에는 죄사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남아 있다(롬11:23-32).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그들 자신의 행위로가 아니라 불순종하고 불경건한 자들을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구원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다(롬11:30-36), 이러한 사상들은 바울의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관점 속에 있는 칭의의 중심성을 드러낸다.
3. 칭의의 근거. 바울에 의해서 로마서에서 말해졌듯이 칭의교리는 신정론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같이 보인다. 1:18-3:20에 있는 칭의의 배경은 죄에 있어서 인류의 연대성과 심판의 불가피성이다. 2:5-16에서 바울은 그의 심판날 교리를 진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심판의 원리는 '모든 사람이 그의 행위를 따라' (2:6)라는 것이다. 심판의 잣대는 하나님의 율법일 것인데, 이것은 인간이 알고 있는 최고의 형식인 것이다(만약 모세의 법을 모르면 양심의 법을 따라서, 2:12-15). 증거물은 '사람들의 은밀한 것' 이다(2:16. 오직 율법을 지킨 자들만이 칭의받을 소망을 갖게 된다(2:7,10,12이하). 그러나 율법(모세의 법이든 양심의 법이든)을 지킨 자들은 하나도 없다.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고 모두가 범죄했다(3:9이하). 그러므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인류 전체의 정죄함이다. 이방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정죄를 받는다. 왜냐하면 율법을 어긴 유대인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2:17-27), 모든 사람은 죽음의 운명에 처해 있는 것과 같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육체는 하나도 없다' (롬3:20;시143:2). 그러나 이제 바울은 믿음을 가진 죄인들의 현재적 칭의를 선포한다(3:21 이하),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불경건한 자들을 의롭게 만드신다(3:23이하:4:5이하). 이 구절들의 역설 가치는 이곳의 헬라어들이 70인역의 출애굽기 23:7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을 것이다' )과 이사야 5:220이하 '회있을진저 익인을 의롭다 하는 자들이여' )에서 사용된 사실에 의해서 더욱 명료해진다. 그렇다면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무슨 근거로 하나님은 재판장으로서의 자신의 정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불경건한 자들을 의롭다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하나님께서 정의로운 근거에 기초해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즉, 죄인들을 대신하여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율법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그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고 그 형벌을 감당하기 위해서 '율법 아래 태어났다' (갈4:4). 그는 그의 피, 즉 죽음에 의해 죄인들의 죄를 없애셨다(롬3:25;5:9).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그는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킨 자의 지위를 얻게 하셨다(롬5:19). 그는 '죽기까지 순종 하셨다(빌2:8). 그의 의의 삶은 불의한 자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고 이것은 율법의 저주를 당한 것이었다(갈3:13;사53:421). 십자가에 달린 그의 위격 안에서 그의 백성들의 죄는 심판받았고 속함받았다. 이러한 그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롬5:18).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죄를 알지도 못하지만 사람들을 대신하여 죄가 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고후5:21).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삼으셨다(고전1:30). 이것은 개신교 신학에서 '그리스도의의의 전가' 라는 말로 표현된다. 요점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지위를 공유하는 것을 허락하심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다(롬5:19).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행위에 따라 대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떠한 인위적이고 무작정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언약적 연합의 실제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것도 기독교의 기본적 사실이다. 그의 칭의 교리는 그 의미를 분석하는 첫단계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다(갈2:17;고후5:21),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그들이 율법의 요구를 개인적으로 지켜서가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그들을 대표해서 지킨 그분 안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에 근거해서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는 재판장으로서 이와같은 방법으로 그의 정의를 드러낸다. 이러한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의' 를 드리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용안에서 그는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의로우시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는 것을 증명한다(롬 3:25이하). 핵심적 단어들이 강조를 위해서 반복되는데, 이것은 문제의 중요성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의 정의를 폐하시는 행위를 선포하는 것 같은 복음의 메시지는 오히려 그의 의를 드러낸다. 죄인들을 칭의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을 의롭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속죄제물로 내어놓음으로써 그 안에서 인류의 죄가 심판받고 죄가에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것에 근거하여 구약시대의 믿음을 가진 죄인(시130.3이하)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시대의 신자들까지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는 것이다.
4. 칭의의 수단. 그리스도를 믿음이 의가 수용되고 칭의가 부여되는 수단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죄인들은 믿음에 '의하여' 또는 '통하여' (헬. 피스테이, 디아또는 에크 피스테오스) 칭의받는다. 바울은 믿음을 칭의의 원인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믿음이 공로가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믿는 자들을 ‘공로적 행위를 하지 않은 자들' (롬4:5)이라고 말하고 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4:16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의롭게 여겨진' 아브라함의 경우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행위 없는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됨을 증명하는 것이다(롬4:3이하;갈3:6은 창15:6을 인용). 바울은 로마서 4:59에서 창세기본문(창15:6)을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그가 의미하는 바는 문맥에서 밝혀주듯이 아브라함의 믿음, 즉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 그의 칭의의 수단이었다. '의로 여김 받았다'는 말은 '의와 같은 것으로' 또는 '의에 이르는 것' 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중 후자가 옳다. 바울은 믿음이 칭의의 원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로마서 4장에서 칭의의 원인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칭의 받는 수단을 말하는 것이다.

5. 바울과 야고보. 어떤 이들은 야고보서 2:14-26이 하나님의 구원의 근거가 믿음과 행위의 이중적 근거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가정하에 야고보의 가르침은 비울의 율법폐기주의적인 행위없는 이신칭의와 모순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야고보의 가르침을 오해한 것 같다. 기억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에 그들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의롭게 하다' 라는 단어로 표현한 사람은 신약의 저자들 중에 바울뿐이다. 그러나 야고보가 '칭의 받는 것'에 관하여 말할 때에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참되고 옳은 것으로 인정되거나 증명된다는 일반적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이때에도 그 사람이 그가 말한 대로의 또는 말하여진 대로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의심했다(참고, 마11:19). 이와같은 의미로 한 사람이 칭의받는다는 것은 그가 참 믿음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 즉 그의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칭의는 또한 실제에 있어서 바울의 칭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야고보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15:6을 인용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용납된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야고보는 이 말이 30년 후에 완성된 것으로 주장한다. 즉 아브라함이 그의 독생자 이삭을 제단의 제물로 바쳤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의 행위에 의해서 의롭게 된 것이다. 이것에 의해서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되었다'. 그의 믿음이 그에 합당한 행위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가 참으로 믿는 자임을 나타낸 것이다. 라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약2:25). 이 문맥에서 야고보가 주장하는 것은 '믿음', 즉 선한 행위가 따르지 않는 귀신들도 갖고 있는 단순한 교리는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바울도 전적으로 동의했을 것이다(고전6:9; 엡5:5이하; 딛 1:16).

의뢰 

<보라> 의지

의리 righteousness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의, 정의와 원어는 같은 말로 이 의를 행할 때는 형통하여지며(렘22:15) 또한 의가 거하는 성읍을 신실한 성읍이라고 하였다(사1:21). 잠언 기자는 불의한 제물은 무익하지만 의리(공동번역 '바르게 살면')는 사람을 살린다고 하였다(잠10:2).

의무 due benevolence

마땅히 해야 할 직무 또는 법률로써 강제하는 행위, 성경에서는 부부간의 의무(고전7:3)와 율법의 의무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할례를 꼭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를 지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자라고 이야기한다(갈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