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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이스마갸 / 이스마야 / 이스마엘 / 이스므래

이스마갸 Ismachiah

히스기야 시대의 레위인으로 성전 예물과 십일조 관리책임자인 고나냐와 시므이를 돕도록 임명된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대하31:13).

이스마야 Ishamiah

1.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다윗에게 와서 싸움을 돕던 30인의 두목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대상12:4).
2.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 지파를 관할하던 스불론지파의 관장(長지파를 관할하는 자)되었던 사람이며, 오바댜의 아들이다(대상27:19).

이스마엘 Ishmael 

1.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이다(창16장).누지(Nuzi) 문서에 의하면 고대 근동 지방의 몇몇 지역에서는 아내된 자가 임신을 할 수 없을 때 자기 남편에게 여자 노예를 주어서 아이를 낳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였던 것처럼 보여지는데, 이스마엘도 바로 그렇게 해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태어난 아이는 그 노예에게가 아니라 여주인에게 속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이미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창15:4)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에게 이룩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여(참고, 창 17:17:18:12-15) 절망적인 마음으로 이 약속을 종인 하갈을 통해서 억지로 이루려 했던 것이다(창 16:1-16 이스마엘이 태어난 때는 아브라함이 86세 되던 해(창16:1)로서,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던 동안이었다(창 13:18:14:13).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은 아니었으나 태어나기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이름을 지음 받았으며(창16:11), 13세가 되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사이의 언약의 표징(表徵)으로서 할례를 명하신 때에는 이스마엘 역시 아브라함 집안에 속한 자로서 할례를 받았다(창17:1,2425). 한때나마 그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의 아들로 믿었던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난 후에도 그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창21:11). 그러나 이삭이 젖을 떼게 되었을 즈음에 이스마엘은 그의 어머니 하갈과 함께 광야로 내쫓김을 당하게 되었다. 이유인즉 사라가 이스마엘을 이삭의 경쟁자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여종과 그녀의 아이를 내쫓는 것이 고대법의 모든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을 내쫓을 기회를 모색하던 사라는(창21장) 마침내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였다는 것을 구실삼아 아브라함의 동의를 구하고, 그같은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을 입었으며, 활쏘는 데 능한 인물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으셨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밖에서' 그의 생애를 위대한 것으로 만들어 주셨다(창17:20;21:13). 그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이스라엘의 후손과 마찬가지로 열두 아들을 낳아 큰 민족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다(창25:13-15). 그는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이후 애굽 여인과 결혼하여 바란 광야에서 살았지만 아브라함의 가족과의 관계를 완전히 깨뜨리지는 않았다. 그를 가리켜 들나귀의 성품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창16:12)은 후에 그의 후손인 이스마엘 족속이 확고하게 정착했던 이스라엘 족속에 대해 적대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던 것과 일치하나, 그의 생애 동안 이삭과의 사이에 어떤 적대감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아브라함의 재산 중 일부를 받았고(창25:6), 이삭과 함께 아브라함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였으며(⑨절), 이삭의 아들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또는 바스맛 - 창36:3)과 결혼하였다(28:9). 그는 137세까지 살다가 사망하였으며(창 25:17), 그의 장지는 알 수 없지만 회교도들은 그와 하갈이 메카의 카아바(Kaaba)에 묻혔다고 주장한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해석하였는데(갈4:21-5:1), 그는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 자',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 자'로 묘사하였다.
2. 다윗 왕가의 혈족 중 한 사람인 느다니야의 아들이다(왕하25:25). B. 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유다에 남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한 그달리야를 암살했던 반란 사건의 주모자였다(왕하25:23-25; 렘 40:8-41:18). 왕족이었던 이스마엘은 단지 일개 귀족의 후손에 불과한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임명된 것에 불만을 품었던 듯하다. 그는 유다의 대표적 군대 장관이었으나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탈출하여 함께 숨어 지냈던 그의 10명의 친구들을 이끌고 미스바로 귀환하여 그달리야와 가까운 척하면서 살해할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미스바에서 연회가 열리던 날 이스마엘과 그 동조자들은 그달리야와 그에 속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미스바에 주둔한 갈대아 군사들까지 모두 죽였다. 이 일 후에 이스마엘은 남아 있는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우상 숭배지요 적대국이었던 암몬으로 떠나려 하였으나 뒤늦게 이스마엘의 모든 악행을 듣고 백성들을 구출하고자 달려온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군병들에 의해 패하였고, 그와 그의 여덟 친구들은 암몬으로 도망쳤다. 이후의 이스마엘과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다.
3.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후손인 아셀의 셋째 아들이다(대상8:38;9:43).
4. 유다 왕 여호사밧의 치세 때에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을 다스리던 유다 지파의 방백이었던 스바댜의 아버지이다(대하 19:11).
5. 여호하난의 아들로, 제사장 여호야다가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불법으로 왕위에 올라 우상숭배와 폭력을 자행하던 아달랴를 넘어뜨리기 위한 혁명을 일으켰던 때에 여호야다를 도왔던 다섯 백부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대하23:1).
6. 포로 귀환 후 에스라의 개혁 때에 이방인 아내를 돌려보냈던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바스의 아들이다(10:22).

 

이스므래 Ishmerai 

베냐민지파 엘바알의 아들이다(대상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