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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창조(물) / 창졸간 / 창질 / 창초 / 창포

창조/-물 creation

1. 성경의 신학, 창조 교리는 이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어떠한 과학적 이론과도 혼동되거나 동일시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성경이 창조에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인 연구와는 달리윤리적이며 종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이 창조에 대한 언급이나 신학적 입장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 두루 나타나는 것이지 창세기의 처음 부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같은 구절들이 바로 그러한 부분에 속한다. 구약의예언서에서는 이사야40:26,28;42:5;45:18, 예레미야10:12-16, 아모스 4:13, 시편에서는 83:6,9;90:2;102:25, 욥기서에는 38:4이하, 느헤미야 9:6, 그리고 신약에서는요한복음 1:1이 하, 사도행전 17:23, 로마서1:20,25;11:36, 골로새서 1:16, 히브리서 1:2;11:3, 요한계시록 4:11;10:6이 그것이다.
이 창조 교리를 고찰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구절은 히브리서 11:3로서 “믿음으로써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나는창조 교리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드러난 것이며따라서 신앙적인 입장에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는 문제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성경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과의 극명한 차이점이다. 창조 사역은 구속 사역 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으로 보통의 인간에게는 가려져 있는 것이며 단지 믿음으로만 지각할수 있는 문제이다.
창조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모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성경의 여러 군데에 다양하게기록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관한 언급으로는 창1:1;사44:24:45:12;시33:6, 성자 하나님에 관한부분으로는 요1:3,10;골1:16, 성령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는 창1:2;욥26:12 등에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의 일체 하나님의 각각의 위격이 창조 사역의 각기다른 부분을 감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사역 전체가 삼위 하나님 모두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히브리서 11:3에 나타나는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과 창세기 1:1에 기록되어 있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은 이 모든 세상이 어떤 선제적인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명령에 선행하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만들어진 것이며따라서 그 말씀 외에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만들어진것이 아님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바, 이것이 다른 만물들 중에서 물질이 영원하다거나(사실 창세기 1:1은 물질 세계에는태초의 시작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가태 우주에 다른 종류의 존재나 힘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하는 어떤 종류의이원론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하는 사상을 일축하기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로부터의 창조' 신학은 하나님이 그의 창조로부터 온전히 구별되어지며,범신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창조가 일종의 절대자의 현상적이거나 외부적인 현시가 아님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는 정해진 문구에 내포되어 있는 원창조 즉 무로부터 창조된 것은 창조 사역 가운데 맨 처음의 활동만이라고 하는 개념이 이 창조 주제에 대한성경의 가르침을 소멸시켜 버리지는 않는다. 인간은‘무로부터' (ex nihilo) 창조된 것이 아니라 땅의 흙으로부터 창조되었고(창2:7) 들짐승이나 공중의 새들도 흙으로 만들어졌다(창2:19). 이것은 이차적인 창조 즉 이미 창조된 물질을 사용하여 만드는 행위를 보여주며원 창조에 대한 사상을 성경이 증언하는 내용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에베소서 4:6의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창조 질서에 대하여 초월과 내재의 관계 가운데 거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이'만물을 초월하여' 계시고 또 '만물 바로 위에 계신다(롬9:5)고 하는 것은 그가 초월자 하나님이며 그의창조로부터 독립되어 있어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충족하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조는 반드시 단지그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해서만 결정하신 하나님의자유로운 행위로 이해되어야만 하며, 어떠한 방식으로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필요불가결하기 때문에 행한행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는 우주를 창조하셔야만 할 필요가 없으셨다(참고, 행17:25). 그는 그렇게 하시기로 선택하셨을 뿐이다. 이 양자 간의 차이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으며, 오직 그러할 경우에만 그가주 하나님이시며 무조건적인 절대자로 초월자 하나님이실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그가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신다'는 점에서 그는 그의 창조 안에 내재해 계시고(비록 창조로부터는 독립해 계시지만), 창조된 세계는 그 존재를 계속하려면 전적으로 그의 능력에 의존해야만 한다. '만물이 그 안에(엔 아우토, Év auty) 함께 섰으며' (골1:17),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 (행17:28).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다'(계4:11. 비교).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창조되었느니라, '골1:16 라는 말씀은 창조의 목적과목표를 일러준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세상을 창조하셨다. 다른 말로 창조는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하여 계획된 사건, 즉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무대'인 것이다.
2. 창조에서의 날'의 의미. 창조 사건에서 '날'이라는 단어는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단어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가장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이 단어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24시간의 하루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가리켜 사용되기도 하였고( ‘주의 한 날', 사 2:12 이하), 시간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기간을 지칭할 때('맛사의 날' 즉 '시험의 날', 시95:8),천년이라는 장기간의 시간에도 사용되었다(시90:4).창조에서의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견해에 입각해서 어떤 학자들은 창조 사역이 문자적으로 6일 만에 모두끝났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질학과도 합치하지 아니하고 더욱이 그것은 성경의 문학에서 자주사용되는 시적이거나 상징적 내지 도식적인 배열 등의 표현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되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창조 때의 하루가 장기간의 시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주장하여 지질학적인 연구 결과와 조화를 이루어 보려고 시도하는데, 현 세대에 통용되는 과학 이론에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러한 주장은 그 과학적 이론의 변화에 따라서 너무나도 쉽게 변해 버리기 일쑤이다. 대신 창세기 1장이 공교하게 잘 구성된 문학적 구조로 된 것이며 따라서 연대기적인 시간이나 순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단언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위에서 지적된 위험 가능성들을 피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된 또하나의 문제는 '저녁과 아침' 이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1장의 저자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모를 가능성이 있다. 다음과 같은 추정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는 ‘저녁과 아침' 이라는 문구가 일몰부터 일몰까지 즉 저녁으로부터 아침을 경유하여 다음 저녁에 이르는 것을 하루로 계산하는 유대인의 방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가정이 있다. 또는 '저녁’은 어떤 한 기간의 완성으로 그 출발점(terminus a quo)은 빛의 창조로 밝아오게 된 아침이며, 반면 그 뒤에 나오는 '아침' 은 새 날의 시작으로 옛 날의 밤이라는 한 기간의 끝으로 보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각기 서로간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며 그 의미들도 모호하게 보인다.
어떤 학자들은 창조 사역이 실제로 6일 동안 끝났다기 보다는 창세기의 저자들이 6일 동안 계시로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고 주장함으로써 6일' 이라는 문제의 난해함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여섯 가지 환상이 창세기 저자에게 주어졌으며 그 각각의 환상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양상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환상은 모라는 말씀으로 두 정확하게 '하나님이 가라사대시작하여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째 날이니라'로 마치는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본다. 게다가 그 기록 자료의 여섯 개의 단위는 각기 비슷한 구조와 각각의 결론을 맺는 간기를 포함한 여섯 개의 유사한 토판에 기록되어졌을 것이라는 논의까지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흥미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창세기 1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이 세상 만물을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교훈이며 이를 위하여 창세기 저자는 1장을 잘 짜여진 문학적인 구성으로 배열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방법에 관하여 사실 어떠한 주석도 덧붙일 수가 없다.
3. 창세기 1장과 과학. 그러면 창세기 1장과 지질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과학이론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추구되어 왔다. 과학과 조화를 이루어 보려는 견해는 과학과 성경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 정확한 일치를 모색해 보려는 것이다. 지질학적인 지층과 창세기의 진술 사이에 연대기적인 순서를 맞추어 볼 수 있는 일치점을 끌어내려고 한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그 종류대로' 라는 구절이 진화론에 대한 완벽한 반박의 자료라고 주장한다. 즉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의 '종류' 라는 단어 (qP(민), '…으로부터' 라는 전치사)가 하나님이 피조물들을 자신들의 가계에서 재생산하도록 만드셨다는 일반적인 관찰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불분명하다. 만일 이 히브리어 단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면 생물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결국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생명이 태동하고 하나님이 그 과정의 뒤에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단언하고 있으며 그래서 창세기 1장이 진화론이나 물질에 관한 어떠한 이론에 대해서도 확증해 주거나 부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창세기 1:2은 이 세계의 역사 중에 공백기간이 있다는 이론에 관한 근거로 많이 제시되었다. 그 구절의 번역문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즉 땅은 완전하게 창조되었지만 그 후에 무슨 일인가 일어나서 무질서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결과로 하나님은 그 혼돈 상태를 재정비하시는 것으로 세상을 재창조하셨다고 본다. 이러한 시간적인 공백기 때문에 이 견해는 성경과 차이가 난다고 보이는 장기간의 지질학적인 시간을 메꾸어 줄 수 있게 되었다. 원 창조 사역은 시간을 측정할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났으며 지질학적 연대 계산에도 여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알아두어야 할 것은 창세기 1:2은 지질학적인 증거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 번역도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히브리어로 정상적으로 보게 되면 '.… 하였다' 이지'... 하게 되었다' 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이 창세기 2장에서 제 2의 창조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 근거는 창세기 2장이 1장과는 다른 연대기적인 순서가 나타난다고 보기 매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만일 창세기 2장이 2장과 3장에 이어지는 온전한 설화의 일부이며, 2장은 단지 유혹 이야기에 대한 서론격으로 아직 창조 이야기를 설명하려는 어떠한 시도, 즉 연대기적인 창조 사건의 순서를 보여주려는 것이 전혀 아닌 상태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사실 불필요한 설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창세기 1장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 가지 좋은 토론의 가치가 있지만 모든 이들이 이 장의 중심적인 진술인 하나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단순하게 관찰하여 확신한다면 이 구절의 본질을 통하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4. 고대 근동의 창조 이론들. 수메르와 아카드의 창조 신화는 깊음과 지혜의 신인 엔키(Enki)가 신들의 거주지인 닢푸르(Nippur)에서 원초적인 바다신 남무(Nammu)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후 대지의 어머니이신닌-마(Nin-mah)의 도움을 받아 진흙으로 연약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로 알려진 바벨론 창세기에서는 최고신에아(Ea)의 아들 마르둑신이 티아맛 (참고, 히, Dinn'테흠’ - 깊음)을 쳐부수고 그의 부하였던 킹구(Kingu)의 피를 진흙에 섞어 인간을 창조하여 신들을 섬기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신화에 태양신 라(Ra)가 자신의 눈물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는 공통적으로(혼돈 보다는)물이 없는 원초적 상태의 어둠의 개념이 나타나며 창조는 무로부터(ex nihilo) 나온 신의 행위이며 인간은 직접적인 신의 개입으로 신들을 섬기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설명은 분명히 유일신론이며 유일무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신들의 투쟁이나 특정한 도시나 민족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한 의도가 없다는 것이 상기한 신화들과의 차이점이다.

창졸간 sudden 

미처 어찌할 수도 없는 갑작스러운 사이를 이르는 말(잠3:25 새번역 '갑자기' ).

창질 gangrene

어원적으로 물거나 먹다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파들어간 상처' 또는 '암종양' 이나' 악성 궤양을 일컫는다. 바울은 악하고 헛된 말이 미치는 해악을 창질에 비유하고 있다(딤후2:17, 공동번역 '암', 새번역 '악성종기').

창초 beginning of the creation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창조가 시작된 맨 처음을 일컫는 말이다(막13:19).

창포 calamus

천남성과(科)의 다년생 식물로서 못이나 습지에서 자라며, 줄기와 그 뿌리에는 특이한 향기가 있다(아4:14). 또한 창포는 성소에서 쓰이는 관유의 재료였으며(출30:23), 에스겔 당시 주요한 무역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겔27:19, 공동번역 '향초 줄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