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 Heth
노아의 후손 가나안의 아들이며 헷 족속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서 사라를 장사지낼 막벨라 굴을 샀다(창23:3-5,19). 헷은 헤브론 부근에 살았던 에서의 부인의 조상으로서, 리브가와 이삭은 에서가 헷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는 것을 반대하였다(창27:46).
헷 족속 Hittites
메소포타미아인들, 애굽인들(왕하7:6)과 더불어 헷 족속은 초기 이스라엘과 겨루었던 강력한 세 세력 중의 하나였다. 헷족속의 세력에 관한 성경적 묘사들이 한때는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A. D. 1871년 유브라데 지역의 칼케미쉬에서 발견된 유물들에 의해서 그들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이어서 1906-1907년 터키의 카투사 지역에서 휴고 윌클러의 발굴 작업에 의해서 완전히 증명되었다. 이 고대 헷 족속의 수도에서 발굴된 만여 개의 토판들은 여호수아가 서쪽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묘사한 '헷 족속의 온 땅' 수1:4)이라는 말을 확고히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원래 헷 족속 또는 '핫 족속'은 함의 자손이자 가나안의 둘째 아들인 헷(창10:15;대하1:13)의 후손이고 B. C. 3000년 중반기에 이르러 지금의 터키 중앙부인 헬리스 강을 따라 정착했다. 두꺼운 외투와 발가락쪽이 위로 세워진 신발 등의 헷 족속의 의상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의 추운 날씨를 반영해 준다. B. C. 2200년 무렵 이후 헷 족속은 북쪽에서 온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강력한 종족에 의해서 침입을 받았다. 그들은헷 족속의 지배계급이 되었고, 옛 헷 족속의 부도덕한문화를 받아들였다. 고대의 기념물들은 헷 족속을 높은 코와 우묵한 이마 그리고 두툼한 입술을 가진 땅딸막하고 다부진 사람들로 묘사한다. 헷 족속의 혈통은후리안 족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전역에 퍼져갔다. 후아라안 통치자들은 같은 시기에 북쪽타미아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헷 족속을 가나안 사람들 중에 있는 것으로열거한다(창15:20,출3:8,17:신7:1;20:17), 그들은 '그 땅거민' (창23:7)으로서 중앙 언덕지역에 살았다(민13:29;수11:3), B, C, 2029년경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은 헷 족속으로부터 막벨라 굴을 구입했다(창23:3-20;49:2932:50:13), 육십 년 후에 에서는 헷 족속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고(창26:34:36:2), 이것은 리브가의 근심이 되었다(창27:46),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모세의 금지(신20:17)에도 불구하고 헷 족속과의 연합은흔한 일이 되었다(삿3:5-6), 솔로몬으로부터 에스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헷 족속과의 결혼은 계속되었다(왕상11:1;스9:1).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의 백성들의 도덕성과 인종을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헷 사람이라' 라고 말하며 정죄했다(겔16:3,45).
터키 지역의 헷 족속의 역사는 옛 왕국(B. C. 1850-1550)과 신왕국(B. C. 1450-1200)으로 이어져 왔다. 모든 연대는 대략적인 것이다. 그들의 상형문자의 기록은 왕들의 목록과 통치기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않다. 쿠사라의 피트카나는 B. C. 1850년경에 헬리스강 서부에 왕조를 세웠다. 그의 아들 아니타는 경쟁국을 물리치고 카투사를 취하고 모든 소아시아 지역을굴복시켰다. 아니타의 아들 투드칼리야 1세의 연대를B. C. 1750년경으로 함으로써 그를 아브라함의 적이었던 디달(창14장)과 동일시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세부적인 헷 족속의 역사는 라바르나 1세(B. C. 1650)의 시리아 침략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의손자 무르실 1세는 B. C. 1570년에 알레포를 점령하는데에 성공했고, 이십 년 후에는 바벨론을 약탈했다.그러나 그가 암살된 후에 전통적인 헷족속의 봉건주의는 약한 계승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B. C, 15세기 초기에 애굽은 유브라데의 북쪽을 휩쓸었고, 애굽이 물러간 뒤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히브리족의 정복이 팔레스타인의 헷족속을 압도했다(B. C. 1406-1400, 수9:1;11:3). 그리는 동안 아나톨리아는 강력한 주권을 회복했고(참고, 잣1:260, 그는 새로 도입된 말이 끄는 전차를 이용했다(왕상 10:29). 수필룰리우마(B. C. 13851345)는 신 왕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 그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애굽통치 지역을 혼란케 함(비교. 같은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구산 리사다임의 침략, 삿3:8)으로써 그의 통치를 시작했다. 결국 수필룰리우마는후리안의 미타니를 합병했고 그의 경계를 레바논까지확장했으며, 전서부를 통치하게 되었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옷니엘의 지도 아래 사십 년간 평화를 이루었다(삿3:11). 그의 아들 무르실 2세(B. C. 1340-1310)는 당대 가장 강력한 왕조를 물려받았다.
B. C. 1320년대에 다시 부흥한 애굽의 19대 왕조는헷 족속의 권세에 도전했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압은 이를 방치했다(삿3:12-14). 그러나 오론테스에서헷 족속을 격퇴한 후에 바로 세티 1세는 무르실과 협정을 맺었다. B. C. 1315년의 유명한 협정은 근동지역을 여러 세력권으로 나누었다. 시리아와 헷에 닿은 북쪽, 베니게, 가나안, 애굽에 닿은 남쪽 등이다. 이렇게해서 얻은 안정은 이스라엘이 에훗과 삼갈의 승리(삿3:30-31)에 이은 팔십 년간의 평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 무와탈(B. C. 1310-1296)이 죽기 직전에 람세스 2세는 그의 부친이 맺은 협약을 파기했다. 그는 헷 족속과 대항했고 오론테스의 카데쉬에서 가까스로 살아났다. 간헐적인 싸움은 계속되었고, B. C. 1279년 카투실3세(B. C. 1290-1260)는 예전의 협약을 새롭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협약은 이어지는 반세기 동안 강하게효력을 발휘했다. 헷 족속의 쇠퇴가 이어졌다.
마지막 중요한 왕조는 카투실의 손자 아르누완다 3세(B. C. 1230-1200)였으며, 그는 가뭄과 시민 반란에 시달렸다. 마침내 서쪽의 침략적인 '해양 민족들'이 아나톨리아를 정복하고 카투사를 불지르고 헷 족속의제국을 영원히 파괴시켰다. 이들 해양 민족들의 이동은 테살리의 에게인들의 트로이와 크레테를 점령하는활동의 일부였다. 그러나 헷 족속의 문화는 남쪽에 있는 시리아의 도시 국가들의 문화 속에서 약 오백 년 동안 존속되었다. B. C. 1000년경 하맛의 왕 도이가 다윗왕을 지원했다(삼하8:9-10). 그리고 헷 족속은 솔로몬에 의하여 노예화되었다(왕상9:20-21). 그러나B. C. 853년 카르칼 전투에서 앗수르에 대항하는 아합의 동맹군들 중 하나가 하맛의 이르쿨레니였다. 칼케미쉬의 헷 족속의 성은 B. C. 717년에 와서야 앗수르의 손에 넘어갔다(참고, 왕하19:13). 독립의 정신은 계속해서 헷 족속을 괴롭혔고, 그들의 법전은 봉건 귀족정치에 대하여 관대함을 드러냈다. 이것은 제한적인 사형과 여성에 대한 우대 등의 권장할 만한 박애정신을 낳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심각한 도덕적 방종을 만들었다. 그들의 부패한 어머니 여신인 아데미' (행19:2435)를 숭배함에 있어서 헷 족속은 짐승과 같은 죄에 빠졌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부패시켰다(겔16:44-45).
혀 tongue
이 말은 원어적으로 혀뿐만 아니라 방언이나 말, 언어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성경에서는 이럴 때 대부분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의미하였다(참고. 창 10:5,20;에1:22;단3:4; 행 1:19;2:8). 또한 혀는 신체 기관 가운데 하나(출11:7;삿7:6;애4:4;막7:33)일 뿐만 아니라, 언어 또는 말을 나타내는 기관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출4:10;수10:21;욥6:30; 요일3:18). 말은 사상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혀는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발설하는 중추기관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지성과 의지는 혀의 작용으로 표현되었15:5;27:4;15:9;45:1;52:4; 3:13;14:11).
혀는 여러 가지 비유적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시편에서는 메시야로 예표되는 왕에 대한 찬미를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뱉어내는 혀를 필객의 붓으로 비유했으며(시45:1), 선지자 이사야는 이방 원수에 대해 진노하신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묘사에서 그 혀를 맹렬한 불에 비유했다(사30:27).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비록 신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제어하는 기관이기에 제어하지 못할 때에는 큰 힘을 발휘하여 삶의 진로를 바꾸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배의 키 또는 작은 불에 비유되었다(약3:3-6).
혁혁 excellent
밝고 뚜렷하거나 빛나는 모양.성경에서 위엄있고 위세있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에서 사용되었다(사66:15). 또한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던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에1:4).
현관 vestibule
집의 정면 문간을 지칭한다. 성경에는 모압 왕 에글론의 왕궁 현관(삿3:23)과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성전의 현관이 언급되어 있다(겔40:21,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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