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마무리: 신약 히브리서로의 전환
약속한 대로 창세기 강해는 11장까지 오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신약으로 넘어가 히브리서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창세기 강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12장부터 시작되는데, 잠시 쉬게 되어 아쉽기도 하지만 12장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바벨탑 이야기: 언어의 혼잡
오늘 본문은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으로, 언어의 혼잡에 대한 성경의 깊은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언어'라는 단어와 '말'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언어와 말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 수 있는데, 언어는 기능적 측면을 다루고, 말은 결과를 낳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도 '다바르'라는 단어로 표현되며, 이 말은 선포된 후 행동과 결과를 가져옵니다. 말은 힘이 있고, 기능적 의미를 가진 언어와 구분됩니다.
'옮기다'라는 단어의 의미
인류는 원래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2절에서 '옮기다'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옛날 주거 형태가 오늘날처럼 견고한 벽돌 구조가 아니었고, 대부분 텐트 형식의 임시 구조물이었기 때문에 이동할 때마다 먼저 '말뚝'을 뽑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의미가 '옮기다'라는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던 중, 인류는 시날 평지에 정착하게 됩니다.
벽돌과 역청의 의미
창세기 11장 3절에서 인류는 벽돌을 만들고 역청을 사용하여 성과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벽돌을 굽는 기술은 고도로 발전한 건축 기술을 의미하며, 역청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사용한 재료입니다. 그런데 이 역청을 인간이 사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제공한 것이 아닌, 인간이 발전시킨 기술을 의미합니다. 역청의 사용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문명과 기술을 자기 욕심과 이기심으로 변질시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벨탑의 의도: 흩어짐을 피하고 이름을 내다
바벨탑을 쌓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고, 둘째, '흩어짐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흩어짐을 피하고자 이름을 내었다'고 번역해야 정확합니다. 이는 자랑이나 교만의 의미가 아니라, 인류가 자기들의 안전과 후손의 번영을 위해 탑을 쌓으려 했다는 의미입니다. 바벨탑은 사실상 인류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상 숭배적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바벨탑의 실패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고, 이는 인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은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스스로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드시고, 그 결과 인류는 흩어지게 됩니다.
성령 강림과 바벨탑의 회복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면서, 성령의 역사로 인류의 언어가 회복됩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오순절 사건은 각국의 언어로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바벨탑에서 흩어졌던 인류가 성령을 통해 다시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강림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선교적 사명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이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사명이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는 이 사명을 위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온 땅에 흩어져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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