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의 손절 문제
자기 말을 들어야만 자기한테 잘해줘야만 친구인가요? 친구끼리 싸울 수도 있고, 부부끼리 다툼을 수도 있으며, 부모님이 내 말을 안 들을 수 있고, 자식이 내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이고, 친구는 친구입니다. 예를 들어 '너랑 말 안 통한다, 그만 친구하자'라고 할 수 있지만, 서로 말이 안 통해도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손절이나 피곤한 인간관계를 멀리하라는 얘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게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사랑과 기다림의 중요성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나의 실수도 있지만, 지나온 세월을 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친구는 더 깊어지고, 부부 역시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 조율하고 맞춰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한 번의 인생에서 피곤하게 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나와 마음이 맞지 않다고 손절해버리면 결국 나도 손절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단절해가는 것은 결국 인생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기독교와 사랑의 관계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가 사랑할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외모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먼저 사랑해주시는 것이며, 그 사랑은 나아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듭니다.
기독교와 쇼펜하워의 철학 비교
쇼펜하워는 세상의 고통을 강조하면서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상의 존재와 생명에 대한 축복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며,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독교 복음이 제공합니다. 쇼펜하워와 같은 철학자들이 고통과 권태를 강조하는 반면, 기독교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생명과 사랑의 의미
기독교의 핵심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과 존재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손절보다는 공존하는 삶
인생은 여행과 같고, 그 여정 속에서는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 모두 존재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고, 손절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지만, 결국 함께 존재하며 이해하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인간관계의 의미입니다.
결론: 기독교인의 삶의 기쁨
기독교인의 삶은 결코 손절하거나 단절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기독교 복음은 우리에게 사랑과 공존의 가치를 가르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의 고통과 권태를 넘어 사랑과 생명의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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