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덴 아라 뉜 카타크리마 토이스 엔 크리스토 예수
개역개정,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새번역,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영어NIV,1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영어NASB,1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영어MSG,1 With the arrival of Jesus, the Messiah, that fateful dilemma is resolved. Those who enter into Christ's being-here-for-us no longer have to live under a continuous, low-lying black cloud.
영어NRSV,1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1 ουδεν αρα νυν κατακριμα τοις εν χριστω ιησου μη κατα σαρκα περιπατουσιν αλλα κατα πνευμα
라틴어Vulgate,1 nihil ergo nunc damnationis est his qui sunt in Christo Iesu qui non secundum carnem ambulant
히브리어Modern,1 על כן אין אשמה באלה אשר הם במשיח ישוע המתהלכים בלא כבשר כי אם לפי הרוח׃
성 경: [롬8:1]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그러므로 이제 - '그러나 이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뉘니 데'(*)가 그 동안 진술했던 내용보다 한 차원 높으나 반대되는 내용으로 나아가기 위한 진술이라면(3:21), '그러므로 이제'(*, 아라 뉜)는 그동안 진술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기 위한 한 차원 높은 내용이 전개됨을 시사하는 접속사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는 본 구절 다음에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자'(*, 메 카타 사르카 페리파투신 알라 카타 프뉴마)란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who walk not after th flesh, but after the Spirit, KJV). 이 구절이 4절에 반복되고 있으나 다른 사본들(*, B, D)에는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비록 4절이 본절의 의미를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예수 안에 있는 자'만으로도 본절의 의미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오리려 공인 본문(Textus Receptus)과 같은 첨가가 본절에서 진술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즉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자'에 의해 한정을 받음으로써 성도가 정죄로부터 진정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해방되었다는 선포가 제한적인 의미만을 지니게 된다. 본절에서 바울이 '예수 안에 있는 자'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는 신앙 고백적인 선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된다.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행하기를 소원하지만 항상 죄의 법이 성도의 육신을 사로잡아 마음이 원하는 바를 못하게 한다. 이로 인해 성도는 심한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바울은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결코 정죄당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근거를 2절에서 34절에 걸쳐 자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호 가르 노모스 투 프뉴마토스 테스 조에스 엔 크리스토 예수 엘류데로센 세 아포 투 노무 테스 하마르티아스 카이 투 다나투
개역개정,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새번역,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 '영' ㉡다른 고대 사본에는 '나' 또는 '우리'
우리말성경,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영어NASB,2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 has set you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of death.
영어MSG,2 A new power is in operation.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like a strong wind, has magnificently cleared the air, freeing you from a fated lifetime of brutal tyranny at the hands of sin and death.
영어NRSV,2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 has set you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of death.
헬라어신약Stephanos,2 ο γαρ νομος του πνευματος της ζωης εν χριστω ιησου ηλευθερωσεν με απο του νομου της αμαρτιας και του θανατου
라틴어Vulgate,2 lex enim Spiritus vitae in Christo Iesu liberavit me a lege peccati et mortis
히브리어Modern,2 כי תורת רוח החיים במשיח ישוע שחררה אתי מתורת החטא והמות׃
성 경: [롬8:2]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 본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의 난제가 발생한다. (1) '예수 안에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단지 '생명'만을 수식하는가 아니면 '생명의 성령의 법'을 수식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2) '생명'이 '성령'을 수식하는가 아니면 '법'을 수식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 두 가지 난제는 함께 얽혀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6절). 따라서 생명은 성령과 불가 분리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란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원리를 가리킨다. 성령은 이 원리에 따라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란 표현은 '생명의 성령의 법' 전체를 수식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라는 표현을 수식어로 사용함으로써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오게 된 원천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죄와 사망의 법 - 혹자는 "모세의 법은 올바르나 힘이 없으며 죄의 법은 힘이 있으나 올바르지 않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힘이 있고 또한 올바르다"고 진술하고 있다(T.W. Manson). 여기서 맨슨은 '죄의 법'과 '모세의 율법'을 각각 분리시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율법을 변호해 주면서 본 구절을 오해하도록 한다. 그러나 바울의 진술에서 '율법'과 '정죄'는 분리될 수 없다. 비록 '율법' 그 자체는 '선하고 의롭고 거룩'할 지라도(7:12) 죄는 그 율법을 가지고 성도를 정죄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죄와 사망이 인간 가운데서 역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어떤 사본에는 '너'(*, 세) 대신에 '나'(*,메)가 사용되고 있다. 7장에서 바울이 줄곧 자기 자신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너'보다 '나'가 본절에 더욱 어울리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7:25절부터 바울은 일반인 주어로 '우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본장에서는 '나' 대신 '너희'와 '우리'를 번갈아 가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권위있는 사본들(*, B, G)이 '너'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너'라는 독법(讀法)이 '나'보다 더욱 타당하다. 한편 '해방하였음이라'는 표현은 '정죄함이 없나니'란 표현과 일맥 상통하지만, 전자는 보다 적극적인 표현인 반면 후자는 소극적인 표현이다.
토 가르 아뒤나톤 투 노무 엔 호 에스데네이 디아 테스 사르코스 호 데오스 톤 헤아우투 휘온 펨프사스 엔 호모이오마티 사르코스 하마르티아스 카이 페리 하마르티아스 카테크리넨 텐 하마르티안 엔 테 사르키
개역개정,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새번역,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우리말성경,3 율법이 육신으로 인해 연약해져서 할 수 없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량해 주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영어NIV,3 For what the law was powerless to do in that it was weakened by the sinful nature,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man to be a sin offering. And so he condemned sin in sinful man,
영어NASB,3 For what the Law could not do, weak as it was through the flesh, God did: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as an offering for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영어MSG,3 God went for the jugular when he sent his own Son. He didn't deal with the problem as something remote and unimportant. In his Son, Jesus, he personally took on the human condition, entered the disordered mess of struggling humanity in order to set it right once and for all. The law code, weakened as it always was by fractured human nature, could never have done that. The law always ended up being used as a Band-Aid on sin instead of a deep healing of it.
영어NRSV,3 For God has done what the law, weakened by the flesh, could not do: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to deal with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헬라어신약Stephanos,3 το γαρ αδυνατον του νομου εν ω ησθενει δια της σαρκος ο θεος τον εαυτου υιον πεμψας εν ομοιωματι σαρκος αμαρτιας και περι αμαρτιας κατεκρινεν την αμαρτιαν εν τη σαρκι
라틴어Vulgate,3 nam quod inpossibile erat legis in quo infirmabatur per carnem Deus Filium suum mittens in similitudinem carnis peccati et de peccato damnavit peccatum in carne
히브리어Modern,3 כי מה שלא יכלה התורה לעשות הנחלשה על יד הבשר עשה האלהים בשלחו את בנו בתואר בשר החטא ובעד החטא וירשיע את החטא בבשר׃
성 경: [롬8:3]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 율법은 죄에게 종 노릇하는 육신으로 하여금 율법 자체의 요구를 이루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율법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보겠다고 노력하면 할수록 7:24과 같은 비참함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하시나니 - 블랙(M. Black)은 본 구절을 주해하기를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게 하신다. 왜냐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본장 어느 곳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도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고 선포하지 않는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신 바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며, 이를 하나님께서는 성고가 율법을 성취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죄를 인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 하마르티아스'(*)는 영역 성경에서 '속죄 제물로서'(as an offering for sin, NASB)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해서'(to be a sin offering, NIV)라고 번역되기도 했다. 혹자는 그리스도의 업적과 관련지어 이러한 해석을 지지한다(Harrison, Black). 그리고 초대 교부 중에서도 이 해석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Origen). 그러나 본절뿐 아니라 본장 어느 곳에도 '속죄 제물'이 '제물'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페리'(*)란 전치사가 '...을 위해' 또는 '...을 인하여'라는 의미보다 '...에 관해' 또는 '...에 따라서'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본절은 '죄와 관련해서' 또는 '죄에 관해서'로 번역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Lenski).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 본절은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에 대한 암시이다. 예수는 죄가 없는 분이셨으나(히 4:15) 인간과 동일한 육신을 입으셨기에 죄의 유혹을 받았고 연약함도 경험하셨다. 이 과정을 통해서도 그는 범죄치 않으셨기에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던 것이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 -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시지만 인간의 연약한 육신을 입으사 인류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죄의 유혹과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셨고 거룩하신 몸에 죄 정(定)함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사 인간의 좌와 허물을 대속해 주심으로써 죄많은 인간과 달리 하나님의 요구를 온전히 성취하셨다.
히나 토 디카이오마 투 노무 플레로데 엔 헤민 토이스 메 카타 사르카 페리파투신 알라 카타 프뉴마
개역개정,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번역,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4 이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NIV,4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s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sinful nature but according to the Spirit.
영어NASB,4 in order that the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who do not walk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영어MSG,4 And now what the law code asked for but we couldn't deliver is accomplished as we, instead of redoubling our own efforts, simply embrace what the Spirit is doing in us.
영어NRSV,4 so that the just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who walk not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4 ινα το δικαιωμα του νομου πληρωθη εν ημιν τοις μη κατα σαρκα περιπατουσιν αλλα κατα πνευμα
라틴어Vulgate,4 ut iustificatio legis impleretur in nobis qui non secundum carnem ambulamus sed secundum Spiritum
히브리어Modern,4 למען תמלא חקת התורה בנו המתהלכים בלא כבשר כי אם לפי הרוח׃
성 경: [롬8:4]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육신을 좇지 않고 - 여기서 '육신'은 정죄된 육신을 가리킨다. 이미 정죄된 육신을 좇는 것은 육신대로 사는 것이며(13절) 육신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며 또한 인생의 목표를 육신을 만족시키는 데 두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성도가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육신에게 져서 비참함을 당하는 상태에 빠지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즉 바울이 지금 경계하고 있는 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육신에 져서 죄의 법 아래 사로잡히게 되는 사람이 아니라 전혀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추구하는 자 곧 불신자들의 상태에 대한 것이다.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 성도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의 삶을 사는 존재이다. 그러나 성도는 육신을 좇는 자가 아니라 영의 원리를 따라 사는 자이다. 이 영의 원리에서 가장 근본된 것은 복음이며, 성도는 성령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며 양자됨과 기업을 이어받는 것에 대한 보증을 받는다. 따라서 본 구절은 매우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성도에 대한 것이다.
율법의 요구 - '요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마'(*)는 '의로운 행동', '계명'(NEB), '규칙'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의로운 요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디카이오마'를 '의로운 요구'(the just requirement)로 해석하기를 좋아한다(Lenski, Hendriksen, Murray, Stott, Black, Harrison, Barmby). 사실상 본 구절에서 '디카이오마'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율법'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므로 문장이 매우 어색하게 된다. 그러므로 본절에서는 '디카이오마'가 '의로운 요구'로 번역되는 편이 매우 자연스럽다.
호이 가르 타카 사르카 온테스 타 테스 사르코스 프로누신 호이 데 카타 프뉴마 타 투 프뉴마토스
개역개정,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새번역,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가톨릭성경,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영어NIV,5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sinful nature have their minds set on what that nature desires; but those who live in accordance with the Spirit have their minds set on what the Spirit desires.
영어NASB,5 For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flesh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Spirit, the things of the Spirit.
영어MSG,5 Those who think they can do it on their own end up obsessed with measuring their own moral muscle but never get around to exercising it in real life. Those who trust God's action in them find that God's Spirit is in them--living and breathing God!
영어NRSV,5 For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Spirit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5 οι γαρ κατα σαρκα οντες τα της σαρκος φρονουσιν οι δε κατα πνευμα τα του πνευματος
라틴어Vulgate,5 qui enim secundum carnem sunt quae carnis sunt sapiunt qui vero secundum Spiritum quae sunt Spiritus sentiunt
히브리어Modern,5 כי אשר המה לבשר בעניני הבשר יחשבו ואשר לרוח בעניני הרוח יחשבו׃
성 경: [롬8:5]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육신을 좇는 자는...생각하나니 - 본절에는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영'을 '성령'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바울의 저서에 있어서 '영'(*, 프뉴마)은 '성령'을 의미할 때도 있으나 단지 죄의 원리 또는 그 세력과 대조되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종종 있으며, 본장 전체에서도 '영'이 반드시 '성령'으로 해석될 수 없는 곳이 많다. 따라서 여기서의 '영'은 성령이 아니라 다만 육신과 대조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의미한다. '육신을 좇는 자'가 육신을 위해 모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하는 자라고 하면 '영을 좇는 자'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하는 자다. 그리고 '영을 좇는 자'가 목표를 세우고 추구해 가는 모든 과정에는 성령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을 좇는 자'라고 해서 연약한 육신을 이기고 마음으로 원하던 바를 모두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을 좇는 자'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과 그것과 투쟁하는 죄의 법이 공존한다.
토 가르 프로네마 테스 사르코스 다나토스 토 데 프로네마 투 프뉴마토스 조에 카이 에이레네
개역개정,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새번역,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6 육신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가톨릭성경,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영어NIV,6 The mind of sinful man is death, but the mind controlled by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영어NASB,6 For the mind set on the flesh is death, but the mind set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영어MSG,6 Obsession with self in these matters is a dead end; attention to God leads us out into the open, into a spacious, free life.
영어NRSV,6 To set the mind on the flesh is death, but to set the mind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헬라어신약Stephanos,6 το γαρ φρονημα της σαρκος θανατος το δε φρονημα του πνευματος ζωη και ειρηνη
라틴어Vulgate,6 nam prudentia carnis mors prudentia autem Spiritus vita et pax
히브리어Modern,6 כי מחשבת הבשר היא המות ומחשבת הרוח היא החיים והשלום׃
성 경: [롬8:6]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 - 이는 사람의 가장 깊은 사고(思考)의 원천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육신'으로부터는 하나님과 아무상관없는 생각 곧 자기 중심적인 생각만이 나온다. 그러나 '영'에게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자 하는 생각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교훈하고자 하는 내용은 '영의 생각'을 가진 자는 오직 영의 일만을 좇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인간에게는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나는 두 종류의 생각이 있는데(7:21-23) 문제는 이 두 가지 생각에 의해 발생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 해결에 대한 답을 이미 1절에서 언급한 후, 바울은 미리 주어졌던 답에 대해 설명하기 위하여 다시 두 생각을 대립시키고 있다.
디오티 토 프로네마 테스 사르코스 에크드라 에이스 데온 토 가르 노모 투 데우 우크 휘포타쎄타이 우데 가르 뒤나타이
개역개정,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새번역,7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말성경,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더러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가톨릭성경,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영어NIV,7 the sinful mind is hostile to God. It does not submit to God's law, nor can it do so.
영어NASB,7 because the mind set on the flesh is hostile toward God; for it does not subject itself to the law of God, for it is not even able to do so;
영어MSG,7 Focusing on the self is the opposite of focusing on God. Anyone completely absorbed in self ignores God, ends up thinking more about self than God. That person ignores who God is and what he is doing.
영어NRSV,7 For this reason the mind that is set on the flesh is hostile to God; it does not submit to God's law--indeed it cannot,
헬라어신약Stephanos,7 διοτι το φρονημα της σαρκος εχθρα εις θεον τω γαρ νομω του θεου ουχ υποτασσεται ουδε γαρ δυναται
라틴어Vulgate,7 quoniam sapientia carnis inimicitia est in Deum legi enim Dei non subicitur nec enim potest
히브리어Modern,7 יען מחשבת הבשר רק שנאת אלהים היא באשר לא תשתעבד לתורת האלהים ואף איננה יכולה׃
성 경: [롬8:7]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 죄의 법 아래 사로잡혀 있는 육신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육신이 도모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 혹자는 본 구절을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의로운 법에 순종치 아니하고 의지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증거요, 이는 모든 비참함의 근거다"라고 했다(shedd). 이처럼 육신의 생각에 따라 사는 자는 자신의 의도가 있든 없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도전하기까지 한다.
할 수도 없음이라 - 자연인의 전적 불능(不能)과 전적 부패성을 보여준다. 오직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과 의지를 가질 수 있다.
호이 데 엔 사르키 온테스 데오 아레사이 우 뒤난타이
개역개정,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새번역,8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8 육신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영어NIV,8 Those controlled by the sinful nature cannot please God.
영어NASB,8 and those who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
영어MSG,8 And God isn't pleased at being ignored.
영어NRSV,8 and those who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
헬라어신약Stephanos,8 οι δε εν σαρκι οντες θεω αρεσαι ου δυνανται
라틴어Vulgate,8 qui autem in carne sunt Deo placere non possunt
히브리어Modern,8 ואשר המה בבשר לא יוכלו להיות רצוים לאלהים׃
성 경: [롬8:8]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육신에 있는...할 수 없느니라 - 본절은 7절의 논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생각을 하며, 이에 따라 육신의 일을 하게 된다. 즉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으므로 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행동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것이 죄의 법 아래에만 있는 자의 실상(實狀)이다.
휘메이스 데 우크 에스테 엔 사르키 알라 엔 프뉴마티 에이페르 프뉴마 데우 오이케이 엔 휘민 에이 데 티스 프뉴마 크리스투 우크 에케이 후토스 우크 에스틴 아우투
개역개정,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새번역,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은 육신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어NIV,9 You, however, are controlled not by the sinful nature but by the Spirit, if the Spirit of God lives in you. And if anyone does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he does not belong to Christ.
영어NASB,9 However, you are not in the flesh but in the Spirit, if indeed the Spirit of God dwells in you. But if anyone does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he does not belong to Him.
영어MSG,9 But if God himself has taken up residence in your life, you can hardly be thinking more of yourself than of him. Anyone, of course, who has not welcomed this invisible but clearly present God, the Spirit of Christ, won't know what we're talking about.
영어NRSV,9 But you are not in the flesh; you are in the Spirit, since the Spirit of God dwells in you. Anyone who does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does not belong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υμεις δε ουκ εστε εν σαρκι αλλ εν πνευματι ειπερ πνευμα θεου οικει εν υμιν ει δε τις πνευμα χριστου ουκ εχει ουτος ουκ εστι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9 vos autem in carne non estis sed in Spiritu si tamen Spiritus Dei habitat in vobis si quis autem Spiritum Christi non habet hic non est eius
히브리어Modern,9 ואתם אינכם בבשר כי אם ברוח אם אמנם רוח האלהים שכן בקרבכם כי מי שאין בו רוח המשיח איננו שלו׃
성 경: [롬8:9]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3:16;고후 6:16). 여기서 바울은 그동안(4-8절) 육신의 영을 대립시킨 목적을 밝히고 있다.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는 육신에 속하지 않는 자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다. 즉 성도가 비록 선을 행하기를 원할지라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성도로서의 신분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심으로써 '영에 속한 자'의 신분을 얻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본절에는 성령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매우 잘 나타나 있다. 즉 '성령'='하나님의 영'='그리스도의 영'과 같은 등식이 보여 주듯이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불가 분리의 관계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이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Teh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는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the Holy Ghost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령은 성도 가운데 거하시면서 성도의 영과 더불어 활동하신다(16절). 한편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에 의해서 뿐이다.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성도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믿게 하시며 또한 그는 성도안에 계시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신다. 따라서 성령이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이기에 그리스도께서 거하는 자이고(10a절)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에이 데 크리스토스 엔 휘민 토 멘 소마 네크론 디아 하마르티안 토 데 프뉴마 조에 디아 디카이오쉬넨
개역개정,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새번역,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말성경,10 그러나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몸은 죄로 인해 죽으나 영은 의로 인해 살아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영어NIV,10 But if Christ is in you, your body is dead because of sin, yet your spirit is alive because of righteousness.
영어NASB,10 And if Christ is in you, though the body is dead because of sin, yet the spirit is alive because of righteousness.
영어MSG,10 But for you who welcome him, in whom he dwells--even though you still experience all the limitations of sin--you yourself experience life on God's terms.
영어NRSV,10 But if Christ is in you, though the body is dead because of sin, the Spirit is life because of righteousnes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ι δε χριστος εν υμιν το μεν σωμα νεκρον δι αμαρτιαν το δε πνευμα ζωη δια δικαιοσυνην
라틴어Vulgate,10 si autem Christus in vobis est corpus quidem mortuum est propter peccatum spiritus vero vita propter iustificationem
히브리어Modern,10 ואם המשיח בקרבכם אז הגוף מת הוא בדבר החטא והרוח חיים הוא בדבר הצדקה׃
성 경: [롬8:10]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 예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시고 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고 가르치심으로써 사람이 믿음으로 '영생'을 이 땅에서부터 소유하게 됨을 가르치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울도 이신 칭의(以信 稱義)를 근거로 성도의 영이 살아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5:18;6:11). 그러므로 성도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다. 몸은 죄의 도구가 된 육신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으나 영은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로 인해 살았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의미는 1절의 '정죄함이 없나니'란 말씀과 2절의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는 말씀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성도가 여전히 정죄받는 신분이라면 아직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지 않았으므로 살았다는 신분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정좌함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인 '영'은 죄의 포로가 된 육신과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을지라도,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신 의로 인해 살아 있는 존재이다.
에이 데 토 프뉴마 투 에게이란토스 톤 예순 에크 네크론 오이케이 엔 휘민 호 에게이라스 크리스톤 에크 네크론 조오포이에세이 카이 타 드네타 소마타 휘몬 디아 투 에노이쿤토스 아우투 프뉴마토스 엔 휘민
개역개정,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새번역,11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리스도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 ㉨그, '영을 통하여'
우리말성경,11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자기 영으로 인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영어NIV,11 And if the Spirit of him who raised Jesus from the dead is living in you, he who raised Christ from the dead will also give life to your mortal bodies through his Spirit, who lives in you.
영어NASB,11 But if the Spirit of Him who raised Jesus from the dead dwells in you, He who raised Christ Jesus from the dead will also give life to your mortal bodies through His Spirit who indwells you.
영어MSG,11 It stands to reason, doesn't it, that if the alive-and-present God who raised Jesus from the dead moves into your life, he'll do the same thing in you that he did in Jesus, bringing you alive to himself? When God lives and breathes in you (and he does, as surely as he did in Jesus), you are delivered from that dead life. With his Spirit living in you, your body will be as alive as Christ's!
영어NRSV,11 If the Spirit of him who raised Jesus from the dead dwells in you, he who raised Christ from the dead will give life to your mortal bodies also through his Spirit that dwells in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1 ει δε το πνευμα του εγειραντος ιησουν εκ νεκρων οικει εν υμιν ο εγειρας τον χριστον εκ νεκρων ζωοποιησει και τα θνητα σωματα υμων δια το ενοικουν αυτου πνευμα εν υμιν
라틴어Vulgate,11 quod si Spiritus eius qui suscitavit Iesum a mortuis habitat in vobis qui suscitavit Iesum Christum a mortuis vivificabit et mortalia corpora vestra propter inhabitantem Spiritum eius in vobis
히브리어Modern,11 ואם ישכן בקרבכם רוח המעיר את ישוע מן המתים הוא אשר העיר את המשיח מן המתים גם את גויותיכם המתות יחיה על ידי רוחו השכן בקרבכם׃
성 경: [롬8:11]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영에 속한 자]
예수를 죽은 자...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본절은 10절의 선포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다. 그 설명을 요약하면 성령이 내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 예수를 사망 권세로부터 살리심같이 다시 일으킴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영이 살아나는 것만을 진술하지 않고 성도의 '죽을 몸'이 다시 산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0절에서 바울은 '몸은 죄를 인하여 죽은 것이나'라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죽을 몸이 산다고 진술하고 있다. 형식상으로 볼 때 그 두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내용면에서 그 두 진술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즉 몸은 죄로 인해 죽는다. 그렇지만 영은 의로 인해 살았다. 이와 같이 죽을 몸도 영이 성령에 의해 살게 된 것처럼 다시 살게 된다.
아라 운 아델포이 오페일레타이 에스멘 우 테 사르키 투 카타 사르카 젠
개역개정,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새번역,12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12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하는 육신에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영어NIV,12 Therefore, brothers, we have an obligation--but it is not to the sinful nature, to live according to it.
영어NASB,12 So then, brethren, we are under obligation, not to the flesh, t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영어MSG,12 So don't you see that we don't owe this old do-it-yourself life one red cent.
영어NRSV,12 So then, brothers and sisters, we are debtors, not to the flesh, t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헬라어신약Stephanos,12 αρα ουν αδελφοι οφειλεται εσμεν ου τη σαρκι του κατα σαρκα ζην
라틴어Vulgate,12 ergo fratres debitores sumus non carni ut secundum carnem vivamus
히브리어Modern,12 לכן אחי חיבים אנחנו לא לבשר לחיות לפי הבשר׃
성 경: [롬8:12]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하나님의 후사(後嗣)]
그러므로 - 이 접속사는 1절에서 11절까지의 진술을 다시 실제의 삶에 적용하는 주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 혹자는 성도가 성령께 빚진 자라고 해석하고 있다(Calvin). 또 다른 학자는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도록 이미 받았고 받고 있으며 장차 받게 될 모든 축복과 비교할 때 성도가 빚진 자라고 설명한다(Hendriksen). 이처럼 '빚진 대상'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은 그 대상을 바울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런데 본절의 '빚진 자'를 '성령'께 빚진 자로 해석하게 되면 그 의미가 매우 축소된다. 오히려 성도는 구원의 전과정에 있어서 성삼위 하나님께 빚진 자다. 특히 1:14에서 바울은 자신을 복음에 대하여 빚진 자라고 하였는데 이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은혜에 대하여 빚진 자라는 의미를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 본 구절은 '빚진 자'로서의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다. 그리고 이 제안은 13절과 14절에 의해 더 보충되고 있다. 본 구절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바울의 이 제안은 다시 7장과 같은 갈등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왜냐하면 7:24의 절규는 성도가 육신대로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7:24과 같은 비참한 경험후에 성도가 자포 자기하여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를 그만두는 것과 관련된다. 성도는 현실 삶에서 죄와의 투쟁 가운데 절망을 겪지만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 절망을 극복하셨으므로 그에 의해서 극복된 축복을 소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도는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보장된 승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고 그토록 심각한 좌절감이 찾아올 때에 예수 믿기를 포기하면, 이것은 곧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에이 가르 카타 사르카 제테 멜레테 아포드네스케인 에이 데 프뉴마티 타스 프랔세이스 투 소마토스 다나투테 제세스데
개역개정,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새번역,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13 만일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영어NIV,13 For if you live according to the sinful nature, you will die; but if by the Spirit you put to death the misdeeds of the body, you will live,
영어NASB,13 for if you are living according to the flesh, you must die; but if by the Spirit you are putting to death the deeds of the body, you will live.
영어MSG,13 There's nothing in it for us, nothing at all. The best thing to do is give it a decent burial and get on with your new life.
영어NRSV,13 for if you live according to the flesh, you will die; but if by the Spirit you put to death the deeds of the body, you will live.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ι γαρ κατα σαρκα ζητε μελλετε αποθνησκειν ει δε πνευματι τας πραξεις του σωματος θανατουτε ζησεσθε
라틴어Vulgate,13 si enim secundum carnem vixeritis moriemini si autem Spiritu facta carnis mortificatis vivetis
히브리어Modern,13 כי אם תחיו לפי הבשר מות תמתון ואם על ידי הרוח תמותתו את מעללי הבשר חיה תחיו׃
성 경: [롬8:13]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하나님의 후사(後嗣)]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9절). 그러나 아직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면서 사는 존재이다(23절). 이 사실을 모르고 절망 가운데서 고민하다가 육신에게 져서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믿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영원히 사망의 종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바울은 구원을 성도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성취하려는 것을 경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원리를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최후 승리는 성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얻게 해주시는 것이다. 엡 6:10-19에서 바울은 성도가 대적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나열했는데, 그 중에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뿐이다. 만일 이러한 바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본절을 인간의 노력과 연관지어 이해하면 쉽게 새로운 율법주의로 빠지게 된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뿐 아니라 교회사 전체에 있어서도 성령의 역사는 성도의 어떤 노력이나 의지 여하에 따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에 따라 나타났다. 그러므로 본절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 때에 당연히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란 말씀을 인간의 노력과 행위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7:24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져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호소이 가르 프뉴마티 데우 아곤타이 후토이 휘오이 데우 에이신
개역개정,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새번역,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그, '아들들'
우리말성경,14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가톨릭성경,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영어NIV,14 because those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영어NASB,14 For all who are being led by the Spirit of God, these are sons of God.
영어MSG,14 God's Spirit beckons. There are things to do and places to go!
영어NRSV,14 For all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childre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4 οσοι γαρ πνευματι θεου αγονται ουτοι εισιν υιοι θεου
라틴어Vulgate,14 quicumque enim Spiritu Dei aguntur hii filii sunt Dei
히브리어Modern,14 כי כל אשר רוח אלהים ינהגם בני אלהים המה׃
성 경: [롬8:14]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하나님의 후사(後嗣)]
하나님의 영으로...하나님의 아들이라 -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이기에 당연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9절)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가르치셨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
우 가르 엘라베테 프뉴마 둘레이아스 팔린 에이스 포본 알라 엘라베테 프뉴마 휘오데시아스 엔 호 크라조멘 압바 호 파테르
개역개정,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새번역,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 ㉬그, '아들의 신분으로' 또는 '아들 됨'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그리스어 음역
우리말성경,15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가톨릭성경,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영어NIV,15 For you did not receive a spirit that makes you a slave again to fear, but you received the Spirit of sonship. And by him we cry, "Abba, Father."
영어NASB,15 For you have not received a spirit of slavery leading to fear again, but you have received a spirit of adoption as sons by which we cry out, "Abba! Father!"
영어MSG,15 This resurrection life you received from God is not a timid, grave-tending life. It's adventurously expectant, greeting God with a childlike "What's next, Papa?"
영어NRSV,15 For you did not receive a spirit of slavery to fall back into fear, but you have received a spirit of adoption. When we cry, "Abba! Father!"
헬라어신약Stephanos,15 ου γαρ ελαβετε πνευμα δουλειας παλιν εις φοβον αλλ ελαβετε πνευμα υιοθεσιας εν ω κραζομεν αββα ο πατηρ
라틴어Vulgate,15 non enim accepistis spiritum servitutis iterum in timore sed accepistis Spiritum adoptionis filiorum in quo clamamus Abba Pater
히브리어Modern,15 כי לא קבלתם רוח עבדות לשוב לירא כי אם קבלתם רוח משפט בנים אשר בו קראים אנחנו אבא אבינו׃
성 경: [롬8:15]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하나님의 후사(後嗣)]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 '무서워하는 종의 영'과 비슷한 의미로 딤후 1:7에서는 '두려워하는 마음'(*, 프뉴마 데일리아스)이 언급되고 있다. 성도를 두렵게 하며 속박하는 것은 율법이다. 성도는 율법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율법이 주는 두려움과 속박(bondage)에서 벗어났다. 결국 성도는 율법을 통해서 성도를 정죄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신분이므로 결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는 것이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보다 왕과 백성의 관계로 더 많이 이해되었다. 비록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언급되었을지라도 신약 시대처럼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J. Jeremias). 양자(養子)의 원리는 바울 신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그 근원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마 6:9;막 14:36). 그리고 바울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친다.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거하심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으로 인쳐 주시는 것이다.
아바 아버지 -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아멘 아멘...'의 형식과 함께 '아바 아버지'란 용어가 '예수의 고유한 언어 구사 방법'(ipsissima vox Jesu)이라고 주장한다(요 20:11-29 주제 강해 '예수의 언어 사용에 나타난 자기 계시' 참조).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바 아버지'란 용어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1)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철저한 복종과 긴밀한 관계, (2) 아들로서의 권위를 나타낸다. 예수는 이와 같은 용어를 제자들에게도 가르치셨는데(마 6:9), 이 용어는 신약 시대의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 '아바'는 어린아이의 언어에서 유래되었다. 탈무드(Talmud)에 언급된 "어린이가 젖을 떼면서 밀맛을 볼 때에 '아바'(*)와 '임마'(*) 곧 '아빠'와 '엄마'란 말을 배우게 된다"란 구절이 그 사실을 잘 암시한다. 그리고 탈굼역(The Targum)도 사 8:4을 "어린이가 '아바'와 '임마'라고 부르기를 배우기 전에"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바'는 매우 친밀한 언어로 하나님을 경외할 분으로만 알았던 유대인들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바'로 부를 수 없었으며 기도 형식의 문헌에조차 결코 사용된 적이 없다(J. Jeremias).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양자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과 부자(父子)관계 속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아바'란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우토 토 프뉴마 쉼마르튀레이 토 프뉴마티 헤몬 호티 에스멘 테크나 데우
개역개정,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새번역,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16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영어NIV,16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영어NASB,16 The Spirit Himself bears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영어MSG,16 God's Spirit touches our spirits and confirms who we really are. We know who he is, and we know who we are: Father and children.
영어NRSV,16 it is that very Spirit bearing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αυτο το πνευμα συμμαρτυρει τω πνευματι ημων οτι εσμεν τεκνα θεου
라틴어Vulgate,16 ipse Spiritus testimonium reddit spiritui nostro quod sumus filii Dei
히브리어Modern,16 והרוח ההוא מעיד ברוחנו כי בני אלהים אנחנו׃
성 경: [롬8:16]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하나님의 후사(後嗣)]
성령이 친히...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 본절은 성도가 '양자의 영'을 받은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즉 성도는 양자의 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양자의 영이신 성령으로부터 친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증거받는다.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 "우리의 마음이 믿음으로 차 있을 때에만 우리의 입이 열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바로 기도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믿음은 헛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에이 데 테크나 카이 클레로노모이 클레로노모이 멘 데우 슁클레로노모이 데 크리스투 에이페르 쉼파스코멘 히나 카이 쉰돜사스도멘
개역개정,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새번역,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우리말성경,17 우리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분과 더불어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가톨릭성경,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영어NIV,17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영어NASB,17 and if children, heirs also, heirs of God and fellow 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uffer with Him in order that we may also be glorified with Him.
영어MSG,17 And we know we are going to get what's coming to us--an unbelievable inheritance! We go through exactly what Christ goes through. If we go through the hard times with him, then we're certainly going to go through the good times with him!
영어NRSV,17 and if children, then heirs, heirs of God and joint heirs with Christ--if, in fact, we suffer with him so that we may also be glorified wit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7 ει δε τεκνα και κληρονομοι κληρονομοι μεν θεου συγκληρονομοι δε χριστου ειπερ συμπασχομεν ινα και συνδοξασθωμεν
라틴어Vulgate,17 si autem filii et heredes heredes quidem Dei coheredes autem Christi si tamen conpatimur ut et conglorificemur
히브리어Modern,17 ואם בנים אנחנו גם ירשים נהיה ירשי אלהים וחברי המשיח בירשה אם אמנם נתענה אתו למען גם אתו נכבד׃
성 경: [롬8:17]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하나님의 후사(後嗣)]
자녀이면...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 혹자는 '자녀'와 '후사'(後嗣)는 의미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진술한다(Black). 그러나 '자녀'는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용어이며 '후사'는 상속(相續)과 관계되는 용어이다. 바울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성도의 권세를 본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과 가족 관계에 들어가 그 가족의 구성원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하나님의 후사로서의 권세도 동시에 가진 신분이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이 고난은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서로 투쟁함으로써 비롯되는 내적인 고난(7:23, 24)일 수도 있으며 의를 인하여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마 5:10;벧전 3:14).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받는 고난일 수 있다(딤후 2:3). 어떤 의미의 고난이든 그것은 잠시 동안 받게 되는 것이며(고후 4:17), 궁극적으로 성도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37절).
로기조마이 가르 호티 우크 앜시아 타 파데마타 투 뉜 카이루 프로스 텐 멜루산 돜산 아포칼뤼프데나이 에이스 헤마스
개역개정,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새번역,18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말성경,18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성경,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어NIV,18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영어NASB,18 For I consider that the sufferings of this present time are not worthy to be compared with the glory that is to be revealed to us.
영어MSG,18 That's why I don't think there's any comparison between the present hard times and the coming good times.
영어NRSV,18 I consider that the sufferings of this present time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about to be revealed to us.
헬라어신약Stephanos,18 λογιζομαι γαρ οτι ουκ αξια τα παθηματα του νυν καιρου προς την μελλουσαν δοξαν αποκαλυφθηναι εις ημας
라틴어Vulgate,18 existimo enim quod non sunt condignae passiones huius temporis ad futuram gloriam quae revelabitur in nobis
히브리어Modern,18 כי אחשב אשר ענויי הזמן הזה אינם שקולים כנגד הכבוד העתיד להגלות עלינו׃
성 경: [롬8:18]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현재의 고난 - 이는 무엇보다도 성도가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23b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이 고난은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투쟁함으로써 성도에게 찾아오는 비참한 경험과도 연관이 있다. 이로 보아 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신분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의 삶 속에서 그 두 법의 투쟁이 죽는 날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됨으로써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된다. 이처럼 바울은 성도가 부활의 몸 곧 영광스러운 몸(고전 15:43, 44)을 입어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고전 15:50) 사실을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 가르 아포카라도키아 테스 크티세오스 텐 아포칼륖신 톤 휘온 투 데우 아페크데케타이
개역개정,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새번역,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 '아들들'
우리말성경,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어NIV,19 The creation waits in eager expectation for the sons of God to be revealed.
영어NASB,19 For the anxious longing of the creation waits eagerly for the revealing of the sons of God.
영어MSG,19 The created world itself can hardly wait for what's coming next.
영어NRSV,19 For the creation waits with eager longing for the revealing of the childre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9 η γαρ αποκαραδοκια της κτισεως την αποκαλυψιν των υιων του θεου απεκδεχεται
라틴어Vulgate,19 nam expectatio creaturae revelationem filiorum Dei expectat
히브리어Modern,19 כי הבריאה תערג ועיניה תלויות להתגלות בני אלהים׃
성 경: [롬8:19]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피조물 -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의 초점을 인간에게 맞추었으나 이제는 보다 영역을 넓혀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장차 있게 될 성도의 영광이 성도들뿐 아니라 전체 피조물의 회복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다른 피조물조차 악의 지배를 받게 되어 전 우주가 무질서 가운데 빠졌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본 구절은 성도가 하나님의 후사로서 자기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과 피조물의 회복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즉 피조물들조차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의 영광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1) 인간의 타락과 함께 피조물들도 그 타락의 영향권에 들게 되었고 (2) 하나님 자녀가 그 영광을 회복함으로써 피조물들도 그 영광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Hendriksen).
테 가르 마타이오테티 헤 크티시스 휘페타게 우크 헤쿠사 알라 디아 톤 휘포탘산타 에프 엘피디
개역개정,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새번역,20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말성경,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분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도 소망 가운데 있으니
가톨릭성경,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어NIV,20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rustration, not by its own choice, but by the will of the one who subjected it, in hope
영어NASB,20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utility, not of its own will, but because of Him who subjected it, in hope
영어MSG,20 Everything in creation is being more or less held back. God reins it in
영어NRSV,20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utility, not of its own will but by the will of the one who subjected it, in hope
헬라어신약Stephanos,20 τη γαρ ματαιοτητι η κτισις υπεταγη ουχ εκουσα αλλα δια τον υποταξαντα επ ελπιδι
라틴어Vulgate,20 vanitati enim creatura subiecta est non volens sed propter eum qui subiecit in spem
히브리어Modern,20 כי נכבשה הבריאה להבל לא מרצונה כי אם למען הכבש אתה אלי תקוה׃
성 경: [롬8:20]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 인간의 타락은 자기 자신만 허무(虛無)한 데로 이끈 것이 아니라 그의 지배하에 있던 다른 모든 피조물까지 허무하게 만들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이러한 허무를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전 1:1-11;2:11-23). 피조물은 스스로 허무한 데 굴복하지 않았고 인간으 타락에 동참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저주하는 가운데 피조물도 인간과 함께 허무한 데 굴복하도록 명하셨다(창 3:17, 18). 이러한 사실은 본절의 '굴복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타게'(*)가 제 2단순 과거 수동태로서 '굴복을 당하였다'는 의미를 지닌 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was made subject, KJV). 한편 이러한 현상은 만물의 지배자인 인간이 타락하여 그 지배권을 사단에게 빼앗기게 됨으로써 발생케 되는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다. 즉 만물의 대표자인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당하는 허무를 그 인간에 종속된 피조물도 함께 당하게 된 것이다.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 피조물들은 각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자기에게 부여된 임무에 순종한다. 피조물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부패해 갈지라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히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이 땅에 도래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에프 헬피디)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때에 그들도 썩지 않는 영광을 함께 얻게 되기 때문이다.
호티 카이 아우테 헤 크티시스 엘류데로데세타이 아포 테스 둘레이아스 테스 프도라스 에이스 텐 엘류데리안 테스 돜세스 톤 테크논 투 데우
개역개정,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새번역,21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1 이는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영어NIV,21 that the creation itself will be liberated from its bondage to decay and brought into the glorious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
영어NASB,21 that the creation itself also will be set free from its slavery to corruption into the freedom of the glory of the children of God.
영어MSG,21 until both creation and all the creatures are ready and can be released at the same moment into the glorious times ahead. Meanwhile, the joyful anticipation deepens.
영어NRSV,21 that the creation itself will be set free from its bondage to decay and will obtain the freedom of the glory of the childre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τι και αυτη η κτισις ελευθερωθησεται απο της δουλειας της φθορας εις την ελευθεριαν της δοξης των τεκνω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1 quia et ipsa creatura liberabitur a servitute corruptionis in libertatem gloriae filiorum Dei
히브리어Modern,21 אשר הבריאה גם היא תשחרר מעבדות הכליון אל חרות כבוד בני האלהים׃
성 경: [롬8:21]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 바울은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0, 41)라고 진술했다. 이와 같이 각 피조물이 각기 다른 영광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간의 타락과 함께 그 영광들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어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 혹자는 본 구절의 '피조물'이 전우주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인간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E. Brunner).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22절과 23절에 의해 부정된다. 그리고 바울의 진술대로(고전 15:40, 41) 각 피조물은 각기 고유한 영광을 지니고 있으나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인간과 대립된 관계에 놓여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허무하고 썩어질 것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다시 회복하게 될 때 전우주는 본래의 질서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피조물들도 각기 자기의 영광된 위치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바울은 피조물이 자기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 그들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계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죄와 불의에서 하나님의 절대 자유, 즉 구원과 영생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 또한 그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게 됨을 시사하고 있다. 본절의 '이르는 것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류데로데세타이'(*)가 미래 수동형인 점은 그와 같은 사실을 확증해 준다. 한편 본절의 내용은 19절에서 22절까지가 피조물의 회복 자체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도가 자기의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조물의 회복은 성도의 영광의 회복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완성될 때에 다음과 같은 사 11:6-9의 예언이 완성될 것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害)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은 태초의 에덴 동산의 회복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로 앞으로 회복될 영광은 이러한 에덴 동산의 영광보다 더욱 뛰어날 것이다(P. Robertson).
오이다멘 가르 호티 파사 헤 크티시스 쉬스테나제이 카이 쉬노디네이 아크리 투 뉜
개역개정,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새번역,22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말성경,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영어NIV,22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as in the pains of childbirth right up to the present time.
영어NASB,22 For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groans and suffers the pains of childbirth together until now.
영어MSG,22 All around us we observe a pregnant creation. The difficult times of pain throughout the world are simply birth pangs. But it's not only around us; it's within us. The Spirit of God is arousing us within. We're also feeling the birth pangs.
영어NRSV,22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in labor pains until now;
헬라어신약Stephanos,22 οιδαμεν γαρ οτι πασα η κτισις συστεναζει και συνωδινει αχρι του νυν
라틴어Vulgate,22 scimus enim quod omnis creatura ingemescit et parturit usque adhuc
히브리어Modern,22 כי ידענו אשר הבריאה כלה יחד תאנח ותחיל עד הנה׃
성 경: [롬8:22]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피조물이...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 - 바울은 인간이 본래의 영광과 자유를 회복해야 할 필연성을 피조물이 그 일을 위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과 비교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조물조차도 영광의 회복을 위해 탄식하며 신음하고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자신의 회복을 위해 탄식하며 신음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본절에 깊이 암시되어 있다. 바울은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자기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범우주적인 요구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한편 본절의 '이제까지'(*, 아크리 투 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이 저주와 고통을 받았으며, 이 저주와 고통이 주의 재림시까지 현재적으로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한다(Murray, Meyer).
우 모논 데 알라 카이 아우토이 텐 아파르켄 투 프뉴마토스 에콭네스 헤메이스 카이 아우토이 엔 헤아우토이스 스테나조멘 휘오데시안 아펰데코메노이 텐 아폴뤼트로신 투 소마토스 헤몬
개역개정,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새번역,23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 ㉢그, '아들의 신분으로' 또는 '아들 됨'
우리말성경,23 그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조차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됨,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영어NIV,23 Not only so,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our adoption as sons,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영어NASB,23 And not only this, but also we ourselves, having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even we ourselves groan within ourselves, waiting eagerly for our adoption as sons, the redemption of our body.
영어MSG,23 These sterile and barren bodies of ours are yearning for full deliverance.
영어NRSV,23 and not only the creation,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while we wait for adoption,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헬라어신약Stephanos,23 ου μονον δε αλλα και αυτοι την απαρχην του πνευματος εχοντες και ημεις αυτοι εν εαυτοις στεναζομεν υιοθεσιαν απεκδεχομενοι την απολυτρωσιν του σωματος ημων
라틴어Vulgate,23 non solum autem illa sed et nos ipsi primitias Spiritus habentes et ipsi intra nos gemimus adoptionem filiorum expectantes redemptionem corporis nostri
히브리어Modern,23 ולא זאת בלבד כי גם אנחנו אף אם יש לנו בכורי הרוח נאנח בנפשנו ונחכה למשפט הבנים פדות גויתנו׃
성 경: [롬8:23]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 성도 자신이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오직 그리스도이시다(고전 15:20, 23). 다만 성도는 처음 익은 열매되신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그러면 '처음 익은 열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 세가지 견해로 요약될 수 있다. (1) '성령의 보증',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성도의 '출생 증명서'라는 견해와(Kasemann, James Dunn) (2) 성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누릴 완전한 후사에 대한 서약이라는 주장(Hodge), 그리고 (3)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가 몸의 부활을 하게 될 것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모든 선물을 가리킨다는 견해(Godet, Philippi) 등이 그것이다. 세 가지 견해가 모두 일견 타당하나 마지막 견해가 더욱 구체적이고 지배적이다. 한편 '처음 익은 열매'(*, 아파르켄)를 받는 대상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사도 시대처럼 이적과 기사와 각양 은사를 체험한 깊은 신앙을 소유한 일부 성도에게 적용된다(Reiche, Erasmus, de Wette). (2) 오순절 성령의 체험을 맛본 초대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중생의 체험을 한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된다(Meuer, Calvin, Bengel, Keil). 이중에서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성도는 구원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거룩함을 입은 자이나 예수께서 만유(萬有)를 회복하실 때를 기다리는 자다(행 3:21).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성도의 몸 안에서 투쟁하고 있다. 다만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죄인을 해방시켰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몸의 구속'(球贖)을 기다리며 산다. 이렇게 될 때 성도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두 법의 투쟁에 의해 빚어지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테 가르 엘피디 에소데멘 엘피스 데 블레포메네 우크 에스틴 엘피스 호 가르 블레페이 티스 엘피제이
개역개정,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새번역,24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우리말성경,24 이는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
가톨릭성경,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영어NIV,24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영어NASB,24 For in hope we have been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y does one also hope for what he sees?
영어MSG,24 That is why waiting does not diminish us, any more than waiting diminishes a pregnant mother. We are enlarged in the waiting. We, of course, don't see what is enlarging us.
영어NRSV,24 For in hope we were saved. Now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o hopes for what is seen?
헬라어신약Stephanos,24 τη γαρ ελπιδι εσωθημεν ελπις δε βλεπομενη ουκ εστιν ελπις ο γαρ βλεπει τις τι και ελπιζει
라틴어Vulgate,24 spe enim salvi facti sumus spes autem quae videtur non est spes nam quod videt quis quid sperat
히브리어Modern,24 כי נושענו בתקוה אך התקוה הנראה לעינים איננה תקוה כי איך ייחל איש לדבר אשר הוא ראה׃
성 경: [롬8:24]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 성도는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산다. 이 소망은 믿음 없이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구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소망을 성도에게서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은 오직 믿음뿐이다. 이런 점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표현이나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표현은 결국 같은 의미이다. 한편 본절에 '구원을 얻었으매'로 번역된 헬라어 '에소데멘'(*)은 과거 시제로서 성도가 구원을 얻은 것이 이미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중생의 체험으로 죄의 종에서 해방된 성도는 이 땅에서 장차 도래할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지만, 이미 성령의 인치심으로 하나님의 권속(眷屬)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본 구절은 히 11:1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과 잘 조화된다. 성도는 믿음으로 자기가 이미 구원받은 자임을 확신한다. 비록 완전한 구원이 아직 실체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믿음으로 그 실체(實體)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그 실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이처럼 현실 세계에서 장차 이루어질 소망을 믿고 바라게 하는 기독교의 진리는 '보이는 물질만이 실상이요 믿을 것'이라고 하는 유물론(唯物論)과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다.
에이 데 호 우 블레포멘 엘피조멘 디 휘포모네스 아펰데코메다
개역개정,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새번역,25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말성경,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한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가톨릭성경,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영어NIV,25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yet have, we wait for it patiently.
영어NASB,25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see, with perseverance we wait eagerly for it.
영어MSG,25 But the longer we wait, the larger we become, and the more joyful our expectancy.
영어NRSV,25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see, we wait for it with patience.
헬라어신약Stephanos,25 ει δε ο ου βλεπομεν ελπιζομεν δι υπομονης απεκδεχομεθα
라틴어Vulgate,25 si autem quod non videmus speramus per patientiam expectamus
히브리어Modern,25 אבל אם נקוה לאשר לא ראינהו נחכה לו בסבלנות׃
성 경: [롬8:25]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소망과 인내]
만일(*, 에이) - 바울이 이 접속사를 사용한 것은 성도가 마땅히 받았어야만 하는 것을 받지 못한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도가 이미 받았으나 그 실체가 손에 잡힌 바 되듯이 완성될 때까지 소망 가운데 있어야 함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 성도는 성령에 의해 양자의 보증(保證)과 구원의 보증을 동시에 얻었다. 그러나 아직 탄식하면서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려야 한다. 옛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이미 죽었으나 아직 완전한 구원은 완성되지 못했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이는 성도가 성령의 법과 죄의 법의 투쟁에서 비롯된 갈등을 겪지만 이를 극복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하신 자유에 대한 기쁨과 감격 가운데서 살아야 할 것에 대한 권면이다. 더불어 바울은 성도가 소망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이 '참음으로'(*, 디 휘포모네스)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위해 사는 성도의 삶에는 갖은 환난과 역경이 수반되므로 여기에는 오래 참는 인내가 요구된다. 인내하는 목적은 성도의 소망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대 궁극적으로 성취된다는 데 있다.
호사우토스 데 카이 토 프뉴마 쉬난틸람바네타이 테 아스데네이아 헤몬 토 가르 티 프로슠소메다 카도 데이 우크 오이다멘 알라 아우토 토 프뉴마 휘페렌튕카네이 스테나그모이스 알랄레토이스
개역개정,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새번역,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우리말성경,26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께서 친히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가톨릭성경,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영어NIV,26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영어NASB,26 And in the same way the Spirit also helps our weakness; for we do not know how to pray as we should,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ings too deep for words;
영어MSG,26 Meanwhile, the moment we get tired in the waiting, God's Spirit is right alongside helping us along. If we don't know how or what to pray, it doesn't matter. He does our praying in and for us, making prayer out of our wordless sighs, our aching groans.
영어NRSV,26 Likewise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for we do not know how to pray as we ought, but that very Spirit intercedes with sighs too deep for words.
헬라어신약Stephanos,26 ωσαυτως δε και το πνευμα συναντιλαμβανεται ταις ασθενειαις ημων το γαρ τι προσευξωμεθα καθο δει ουκ οιδαμεν αλλ αυτο το πνευμα υπερεντυγχανει υπερ ημων στεναγμοις αλαλητοις
라틴어Vulgate,26 similiter autem et Spiritus adiuvat infirmitatem nostram nam quid oremus sicut oportet nescimus sed ipse Spiritus postulat pro nobis gemitibus inenarrabilibus
히브리어Modern,26 וכן גם הרוח תמך אתנו בחלשותינו כי לא ידענו מה להתפלל כראוי אכן הרוח הוא מפגיע בעדנו באנחות עמקות מדבר׃
성 경: [롬8:26]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성령의 중보 기도]
이와 같이 - 이 접속사는 성도가 탄식하면서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참음으로 기다림을 지칭한다(Black).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성령은 성도를 양자로 보증해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최종적으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도와 주신다. 성도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계시면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요 16:13) 양자로서의 보증이 성도 안에서 확실히 성취되도록 도와주신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보혜사(保惠師)이시다(요 14:16, 26;16:7). 한편 본절의 '도우시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난틸람바네타이'(*)는 '쉬난틸람바노마이'(*)의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준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본절과, 마르다가 마리아의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인 눅 10:40에만 나온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연약해 있을 때에 성도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신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 본 구절은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성도는 연약하기에 영적 힘을 공급해주는 통로인 기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도는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기도의 능력도, 기도할 내용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본 구절은 성령께서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 즉 성령께서 성도들 편에 서서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실들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신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C.H. Dodd). 성도가 갈등으로 인해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성도보다 더 심한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성도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며 구원에 대한 보증이다.
호 데 에라우논 타스 카르디아스 오이덴 티 토 프로네마 투 프뉴마토스 호티 카타 데온 엔튕카네이 휘페르 하기온
개역개정,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새번역,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 '분께서는'
우리말성경,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7 And he who searches our hearts know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the Spirit intercedes for the saints in accordance with God's will.
영어NASB,27 and He who searches the hearts knows what the mind of the Spirit is, because He intercedes for the saint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영어MSG,27 He knows us far better than we know ourselves, knows our pregnant condition, and keeps us present before God.
영어NRSV,27 And God, who searches the heart, knows what i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the Spirit intercedes for the saint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7 ο δε ερευνων τας καρδιας οιδεν τι το φρονημα του πνευματος οτι κατα θεον εντυγχανει υπερ αγιων
라틴어Vulgate,27 qui autem scrutatur corda scit quid desideret Spiritus quia secundum Deum postulat pro sanctis
히브리어Modern,27 והחקר לבבות יודע את אשר יחשב הרוח כי כרצון האלהים יפגיע בעד הקדושים׃
성 경: [롬8:27]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성령의 중보 기도]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 본 구절에서 바울은 성부나 성자 하나님과는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성령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동시에 바울은 성부 하나님과 성령의 활동을 구별한다(Black).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의 구원 계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 구원 계시를 바탕으로 해서 성도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요 14:26;16:7-14).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하나님의 뜻대로'에 해당되는 헬라어 '카타 데온'(*)은 직역하면 '하나님을 따라 '란 의미이다. 여기에는 개역성경처럼 '뜻'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성부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위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데 그 강조점이 있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별개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거대한 구원 계획에 따라 활동하신다.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도 성부의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이다멘 데 호티 토이스 아가포신 톤 데온 판타 쉬네르게이 에이스 아가돈 토이스 카타 프로데신 클레토이스 우신
개역개정,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새번역,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말성경,28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
가톨릭성경,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영어NIV,28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영어NASB,28 And we know that God causes all things to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영어MSG,28 That's why we can be so sure that every detail in our lives of love for God is worked into something good.
영어NRSV,28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love God,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헬라어신약Stephanos,28 οιδαμεν δε οτι τοις αγαπωσιν τον θεον παντα συνεργει εις αγαθον τοις κατα προθεσιν κλητοις ουσιν
라틴어Vulgate,28 scimus autem quoniam diligentibus Deum omnia cooperantur in bonum his qui secundum propositum vocati sunt sancti
히브리어Modern,28 והנה ידענו כי לאהבי אלהים הקרואים בעצתו הכל יעזר לטוב להם׃
성 경: [롬8:28]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성령의 중보 기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주어졌다는 인상이 본절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를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성도로 선택함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서 비롯된다. 또한 본 구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부르심을 입은 자'를 동격(同格)으로 취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이에 대한 헬라어 본문은 '판타 쉬네르게이 에이스 아가돈'(*)으로 직역하면 '모든 것이 선을 위해 함께 역사한다'이다. 즉 만물 또는 모든 일이 선을 목표로 하여 협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본 구절이 나타내는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만물로하여금 선을 위해 역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이 주어가 되지 않고 '만물'이 주어가 된 것은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본에는 '하나님'(*, 호 데오스)을 주어로 삽입시키고 있다. 만물은 하나님의 섭리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모든 것은 선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도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원동력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사실에 있다(27절).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적용은 31-39절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호티 후스 프로에그노 카이 프로오리센 쉼모르푸스 테스 에이코노스 투 휘우 아우투 에이스 토 에이나이 아우톤 프로토토콘 엔 폴로이스 아델포이스
개역개정,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번역,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가톨릭성경,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어NIV,29 For those God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likeness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영어NASB,29 For whom He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com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ethren;
영어MSG,29 God knew what he was doing from the very beginning. He decided from the outset to shape the lives of those who love him along the same lines as the life of his Son. The Son stands first in the line of humanity he restored. We see the original and intended shape of our lives there in him.
영어NRSV,29 For those whom he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in order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within a large family.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τι ους προεγνω και προωρισεν συμμορφους της εικονος του υιου αυτου εις το ειναι αυτον πρωτοτοκον εν πολλοις αδελφοις
라틴어Vulgate,29 nam quos praescivit et praedestinavit conformes fieri imaginis Filii eius ut sit ipse primogenitus in multis fratribus
히브리어Modern,29 כי את אשר ידעם מקדם אתם גם יעד מקדם להיות דומים לדמות בנו למען יהיה הבכור בתוך אחים רבים׃
성 경: [롬8:29]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성령의 중보 기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 본 구절은 '예정'(豫定)의 목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사건이 (1)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변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2)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때부터 계속 변화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 두 견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두 입장에 대한 학자들의 분류는 헨드릭슨(Hendriksen)에 의해 잘 설명되었다. 즉 (1)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그레이다너스(Greijdanus), 렌스키(Lenski), 머레이(Murray), 그리고 리델보스(Ridderbos)와 같은 학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2)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칼빈(Calvin), 크랜필드(Cranfield), 로버트슨(Robertson), 그리고 잔(Zahn)과 같은 학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헨드릭슨(Hendriksen)은 두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두번째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성화(聖化)의 교리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그의 형상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소망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3:21에서 지금까지 진술한 바울의 논리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
후스 데 프로오리센 투투스 카이 에칼레센 카이 후스 에칼레센 투투스 카이 에디카이오센 후스 데 에디카이오센 투투스 카이 에돜사센
개역개정,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새번역,3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말성경,30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영어NIV,30 And those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those he called, he also justified; those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영어NASB,30 and whom He predestined, these He also called; and whom He called, these He also justified; and whom He justified, these He also glorified.
영어MSG,30 After God made that decision of what his children should be like, he followed it up by calling people by name. After he called them by name, he set them on a solid basis with himself. And then, after getting them established, he stayed with them to the end, gloriously completing what he had begun.
영어NRSV,30 And those whom he predestined he also called; and those whom he called he also justified; and those whom he justified he also glorified.
헬라어신약Stephanos,30 ους δε προωρισεν τουτους και εκαλεσεν και ους εκαλεσεν τουτους και εδικαιωσεν ους δε εδικαιωσεν τουτους και εδοξασεν
라틴어Vulgate,30 quos autem praedestinavit hos et vocavit et quos vocavit hos et iustificavit quos autem iustificavit illos et glorificavit
히브리어Modern,30 ואת אשר יעדם מקדם אתם גם קרא ואת אשר קראם אתם גם הצדיק ואת אשר הצדיקם אתם גם פאר׃
성 경: [롬8:30]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성령의 중보 기도]
미리 정하신 그들을...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본절은 29절과 함께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구원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교리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는 '믿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이 믿음에 의해서 확정되며, 칭의와 영화도 믿음에 의해서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의 전과정에 있어서 '믿음'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바울은 굳이 그 단어를 삽입시킬 필요가 없었다. 바울이 본절에서 구원의 과정을 자세히 나열한 것은 성도로 하여금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치 않는(39절) 사랑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바울이 나열한 단어 하나하나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암시되어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언급했던 것처럼 구원의 모든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동사 '의롭다 하시고'와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각각 헬라어로 '에디카이오센'(*)과 '에돝사센'(*)인데 이들은 모두 과거 시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이지만, 이미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확고하게 세워져 있음을 나타낸다.
티 운 에루멘 프로스 타우타 에이 호 데오스 휘페르 헤몬 티스 칻 헤몬
개역개정,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새번역,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우리말성경,31 그러면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가톨릭성경,31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영어NIV,31 What, then, shall we say in response to this?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영어NASB,31 What then shall we say to these things? If God is for us, who is against us?
영어MSG,31 So, what do you think? With God on our side like this, how can we lose?
영어NRSV,31 What then are we to say about these things? If God is for us, who is against us?
헬라어신약Stephanos,31 τι ουν ερουμεν προς ταυτα ει ο θεος υπερ ημων τις καθ ημων
라틴어Vulgate,31 quid ergo dicemus ad haec si Deus pro nobis quis contra nos
히브리어Modern,31 ועתה מה נאמר על זאת אם האלהים לנו מי יריב אתנו׃
성 경: [롬8:31]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이 일'은 직접적으로는 28-30절까지 언급된 것을 지칭하지만 보다 포괄적으로는 3:21부터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 전체를 지칭한다. 다만 28-30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전체 구속 사역을 요약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마귀와 변론할 때 다른 말보다도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 1:9)고 말했던 것을 유다가 언급한 적이 있다. 선악간(善惡間)의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시면 그 무엇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다.
호스 게 투 이디우 휘우 우크 에페이사토 알라 휘페르 헤몬 판톤 파레도켄 아우톤 포스 우키 카이 쉰 아우토 타 판타 헤민 카리세타이
개역개정,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새번역,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말성경,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주신 분께서 어떻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가톨릭성경,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영어NIV,32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how will he not also, along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영어NASB,32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delivered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with Him freely give us all things?
영어MSG,32 If God didn't hesitate to put everything on the line for us, embracing our condition and exposing himself to the worst by sending his own Son, is there anything else he wouldn't gladly and freely do for us?
영어NRSV,32 He who did not withhold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all of us, will he not with him also give us everything else?
헬라어신약Stephanos,32 ος γε του ιδιου υιου ουκ εφεισατο αλλ υπερ ημων παντων παρεδωκεν αυτον πως ουχι και συν αυτω τα παντα ημιν χαρισεται
라틴어Vulgate,32 qui etiam Filio suo non pepercit sed pro nobis omnibus tradidit illum quomodo non etiam cum illo omnia nobis donabit
히브리어Modern,32 אשר על בנו יחידו לא חס כי אם נתנו בעד כלנו הלא גם יתן לנו עמו את הכל׃
성 경: [롬8:32]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본 구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던 내용 즉,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창 22:12),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창 22:16)을 연상시킨다. 바울은 본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실례로 들어 이신 칭의를 설명하였으나 거기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기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음에 있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친 기사는 아브라함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주므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사도 바울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4장에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아마도 본서의 핵심 장(章)이라 할 수 있는 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건에 그 이야기를 적용시키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Gifford, Sanday, Dunn). 그렇다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에게 내어 주신 사실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기사와의 유비 관계에서 적절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처럼 성부 하나님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해 대속물이 되게 하셨다. 둘째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칠 때 많은 고통과 고초가 따랐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김없이 준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로 하여금 온갖 수난과 고초가 따르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집행과정을 겪도록 그대로 허용하셨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이상의 지극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대속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 '만일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우리 모든 사람'은 26절에 기록된 '성령의 간구하심을 힘입은 자들'이요, 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며 29, 30절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에 의해 '선택된 자'들을 가리킨다.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여기서 '모든 것'은 구원 자체도 될 수 있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 및 모든 피조물도 포함될 수 있다. 심지어 천사도 성도를 위하여 '부리는 영'으로서 활동하고 있다(히 1:14).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요 3:16) 성도를 위해 다른 무엇을 아끼겠는가 ! 그러므로 이것은 성도의 위치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티스 엥칼레세이 카타 에클렠톤 데우 데오스 호 디카이온
개역개정,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새번역,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말성경,33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의롭다고 인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톨릭성경,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영어NIV,33 Who will bring any charge against those whom God has chosen? It is God who justifies.
영어NASB,33 Who will bring a charge against God's elect? God is the one who justifies;
영어MSG,33 And who would dare tangle with God by messing with one of God's chosen?
영어NRSV,33 Who will bring any charge against God's elect? It is God who justifies.
헬라어신약Stephanos,33 τις εγκαλεσει κατα εκλεκτων θεου θεος ο δικαιων
라틴어Vulgate,33 quis accusabit adversus electos Dei Deus qui iustificat
히브리어Modern,33 מי יענה בבחירי אלהים הן אלהים הוא המצדיק׃
성 경: [롬8:33]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 31절의 '대적하리요'와 '송사(訟事)하리요'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송사하리요'란 단어는 법정적(法定的)인 술어로서 곧이어 언급되는 '칭의'와 직접적으로 연관지어진다. 사단이 여호와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송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듭 책망하시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사하시고 아름다운 옷과 깨끗한 관을 씌우셨다(슥 3:1-5). 여호수아 자신이 깨끗했기에 송사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재판장되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그를 깨끗케 하셨기에 여호수아는 사단의 송사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본절에서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논지(論旨)이다.
티스 호 카타크리논 크리스토스 예수스 호 아포다논 말론 데 에게르데이스 호스 카이 에스틴 엔 뎈시아 투 데우 호스 카이 엔튕카네이 휘페르 헤몬
개역개정,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새번역,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우리말성경,34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죽었을 뿐 아니라 살리심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가톨릭성경,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영어NIV,34 Who is he that condemns? Christ Jesus, who died--more than that, who was raised to life--is at the right hand of God and is also interceding for us.
영어NASB,34 who is the one who condemns? Christ Jesus is He who died, yes, rather who was raised, who is at the right hand of God, who also intercedes for us.
영어MSG,34 Who would dare even to point a finger? The One who died for us--who was raised to life for us!--is in the presence of God at this very moment sticking up for us.
영어NRSV,34 Who is to condemn? It is Christ Jesus, who died, yes, who was raised, who is at the right hand of God, who indeed intercedes for us.
헬라어신약Stephanos,34 τις ο κατακρινων χριστος ο αποθανων μαλλον δε και εγερθεις ος και εστιν εν δεξια του θεου ος και εντυγχανει υπερ ημων
라틴어Vulgate,34 quis est qui condemnet Christus Iesus qui mortuus est immo qui resurrexit qui et est ad dexteram Dei qui etiam interpellat pro nobis
히브리어Modern,34 ומי הוא יאשימם הן המשיח אשר מת וביותר אשר נעור מעם המתים הוא לימין האלהים והוא יפגיע בעדנו׃
성 경: [롬8:34]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누가 정죄하리요 - 성도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기에 율법의 정죄에서도 해방되었다(1절). 비록 죄의 법에서 사로잡혀 마음이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성도는 어느 누구에게도 정죄를 당하지 않는 신분을 지니고 있음을 바울은 본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는...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바울은 26절에서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성령은 성도의 연약한 삶을 위해 간구하시지만 성자 그리스도는 정죄받을 성도를 위해 변호하시고 탄원하신다. 비록 본절에 언급된 '간구하다'(*, 엔튕카네이)가 기도의 형식을 나타내지만, 본절에서 이 단어가 지닌 진정한 의미는 성도를 위한 그리스도의 변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자신이 성취한 구속 사역을 근거로 자기 백성된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변호해 주신다.
티스 헤마스 코리세이 아포 테스 아가페스 투 크리스투 들맆시스 에 스테노코리아 에 디오그모스 에 리모스 에 귐노테스 에 킨뒤노스 에 마카이라
개역개정,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새번역,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우리말성경,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배고픔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겠습니까?
가톨릭성경,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영어NIV,35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영어NASB,35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ibulation, or distress,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peril, or sword?
영어MSG,35 Do you think anyone is going to be able to drive a wedge between us and Christ's love for us? There is no way! Not trouble, not hard times, not hatred, not hunger, not homelessness, not bullying threats, not backstabbing, not even the worst sins listed in Scripture:
영어NRSV,35 Who wi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Will hardship, or distress,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peril, or sword?
헬라어신약Stephanos,35 τις ημας χωρισει απο της αγαπης του χριστου θλιψις η στενοχωρια η διωγμος η λιμος η γυμνοτης η κινδυνος η μαχαιρα
라틴어Vulgate,35 quis nos separabit a caritate Christi tribulatio an angustia an persecutio an fames an nuditas an periculum an gladius
히브리어Modern,35 מי יפרידנו מאהבת המשיח הצרה או מצוקה או משטמה או רעב אם עריה או סכנה או חרב׃
성 경: [롬8:35]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본절은 바울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것을 나열하고 있다(Black). 고후 11:23-27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보다 세부적으로 진술했으나 본절에서는 그 경험을 요약하여 대표적인 용어를 선택하여 진술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이 질문은 앞에서 언급했던 질문들(31, 33, 34절)을 포괄한다. 어느 누구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으며, 송사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고 본 구절의 질문은 39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된 대답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난(*, 들마시스) - 이는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여섯 가지를 대표하며 '고난'(17, 18절)과 같은 표현이다.
곤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노코리아'(*)는 '행동이 제한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 표현은 바울 자신이 옥에 갇힌 경험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기근(*, 리모스) - 이는 민족이나 지역적인 차원의 기근일 수 있으나, 본절이 바울 자신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굶주리며 마시지 못한(고후 11:27) 경험을 나타내는 것같다.
적신(*, 귐노테스) - 이는 고후 11:27의 '헐벗었음'과 원어상 동일하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자기의 겉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할 만큼(딤후 4:13) 항상 입을 것조차 변변치 않았다.
카도스 게그랖타이 호티 헤네켄 수 다나투메다 홀렌 텐 헤메란 엘로기스데멘 호스 프로바타 스파게스
개역개정,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44:22
우리말성경,36 기록되기를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시44:22
가톨릭성경,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영어NIV,36 As it is written: "For your sake we face death all day long; we are consider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영어NASB,36 Just as it is written, "FOR YOUR SAKE WE ARE BEING PUT TO DEATH ALL DAY LONG; WE WERE CONSIDER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영어MSG,36 They kill us in cold blood because they hate you. We're sitting ducks; they pick us off one by one.
영어NRSV,36 As it is written, "For your sake we are being killed all day long; we are accounted as sheep to be slaughtered."
헬라어신약Stephanos,36 καθως γεγραπται οτι ενεκα σου θανατουμεθα ολην την ημεραν ελογισθημεν ως προβατα σφαγης
라틴어Vulgate,36 sicut scriptum est quia propter te mortificamur tota die aestimati sumus ut oves occisionis
히브리어Modern,36 ככתוב כי עליך הרגנו כל היום נחשבנו כצאן טבחה׃
성 경: [롬8:36]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 본절은 시 44:22의 인용문이다. 혹자는 바울이 이 인용문을 사용한 것을 안티오커스(Antiochus)의 폭정하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비참한 고난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한다(Calin). 바울이 고후 4:11에서도 본절과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 자신뿐 아니라 당시 성도들이 당하던 박해와 고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안티오커스(Antiochus)의 폭정에 의한 고난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본절은 바울이 35절에서 언급한 여러 환난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욱 합리적이다.
알 엔 투토이스 파신 휘페르니코멘 디아 투 아가페산토스 헤마스
개역개정,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새번역,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우리말성경,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인해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가톨릭성경,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영어NIV,37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영어NASB,37 But in all these things we overwhelmingly conquer through Him who loved us.
영어MSG,37 None of this fazes us because Jesus loves us.
영어NRSV,37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헬라어신약Stephanos,37 αλλ εν τουτοις πασιν υπερνικωμεν δια του αγαπησαντος ημας
라틴어Vulgate,37 sed in his omnibus superamus propter eum qui dilexit nos
히브리어Modern,37 אבל בכל אלה גברנו מאד על ידי האהב אתנו׃
성 경: [롬8:37]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이 표현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니코멘'(*)은 신약성경 중 오직 여기서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를 혹자는 '우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얻고 있느니라'(We are winning an overwhelming victory)라고 풀이하기도 한다(Black). 그리고 렌스키(Lenski)도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가장 혁혁(赫赫)한 승리를 지속적으로 성취하고 있다'(We keep achiving the most brilliant victory)로 해석한다. 바우어(Bauer)는 '휘페르니코멘'(*)이 '정복하다'란 동사의 강의형으로 '영광스러운 승리'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실제로 영역 성경 중에는 이 단어의 '정복'이라는 의미에 강조점을 두어 '우리는 정복자들 그 이상이다'(We are more than conquerors)로 번역하고 있는 것도 있다(KJV, RSV, NIV). 아무튼 본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이'(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페페이스마이 가르 호티 우테 다나토스 우테 조에 우테 앙겔로이 우테 아르카이 우테 에네스토타 우테 멜론타 우테 뒤나메이스
개역개정,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새번역,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우리말성경,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이나 생명도, 천사들이나 악마들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능력도,
가톨릭성경,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영어NIV,38 For I am convinc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either angels nor demons, neither the present nor the future, nor any powers,
영어NASB,38 For I am convinc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powers,
영어MSG,38 I'm absolutely convinced that nothing--nothing living or dead, angelic or demonic, today or tomorrow,
영어NRSV,38 For I am convinc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ruler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powers,
헬라어신약Stephanos,38 πεπεισμαι γαρ οτι ουτε θανατος ουτε ζωη ουτε αγγελοι ουτε αρχαι ουτε δυναμεις ουτε ενεστωτα ουτε μελλοντα
라틴어Vulgate,38 certus sum enim quia neque mors neque vita neque angeli neque principatus neque instantia neque futura neque fortitudines
히브리어Modern,38 ובטוח אנכי כי לא המות ולא החיים לא מלאכים ולא שררות ולא גבורות לא ההוה ולא העתיד׃
성 경: [롬8:38]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바울은 본절과 39절 상반절에서 어떤 피조물도 그리고 어떠한 상황과 여건도 성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방해할 수 없음을 진술하고 있다.
권세자들(*, 아르카이) - 이는 본래 바울 신학에서 천사의 한 부류에 속하지만(엡 1:21) 주로 사단의 세력하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들을 지칭한다(엡 2:2;6:12). 그리고 특히 바울은 본절에서 '사망'과 '생명', '현재 일'과 '장래 일'과 같이 서로 대조되는 어법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본절의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부리시는 영인 천사와 대조되는 영, 곧 사단에 의해 조종되는 악한 영들을 의미한다.
능력(*, 뒤나메이스) - 이 단어에 대해 혹자는 '폭풍, 천둥과 번개, 그리고 지진과 같은 자연의 힘'으로 해석한다(Lenski). 혹자는 '능력'이 '천사들'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Calvin). 아무튼 본절에서 '능력'이 '천사'를 지칭하든지 '악의 세력'을 지칭하든지 '신적(神的)인 세력'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테 휲소마 우테 바도스 우테 티스 크티시스 헤테라 뒤네세타이 헤마스 코리사이 아포 테스 아가페스 투 데우 테스 엔 크리스토 예수 토 퀴리오 헤몬
개역개정,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새번역,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영어NIV,39 neither height nor depth, nor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wi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that is in Christ Jesus our Lord.
영어NASB,39 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ed thing,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영어MSG,39 high or low, thinkable or unthinkable--absolutely nothing can get between us and God's love because of the way that Jesus our Master has embraced us.
영어NRSV,39 nor height, nor depth, nor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wi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in Christ Jesus our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39 ουτε υψωμα ουτε βαθος ουτε τις κτισις ετερα δυνησεται ημας χωρισαι απο της αγαπης του θεου της εν χριστω ιησου τω κυριω ημων
라틴어Vulgate,39 neque altitudo neque profundum neque creatura alia poterit nos separare a caritate Dei quae est in Christo Iesu Domino nostro
히브리어Modern,39 לא הרוח ולא העמק ולא כל בריה אחרת יוכלו להפרידנו מאהבת האלהים אשר היא במשיח ישוע אדנינו׃
성 경: [롬8:39]
주제1: [성화와 성령]
주제2: [구원에의 확신]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 앞에 언급된 아홉 가지 모두 '피조물'이라는 표현 속에 포함된다. 피조물 중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 구별할 것 없이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을 언급하기 위해 바울은 아홉 가지의 단어를 나열했던 것이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본 구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a절)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적인 대답이다. 그리고 이 대답은 37절의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진술에 따라 나오게 되는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의 견인(堅忍)뿐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근원이다. 성도는 7:24과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시켰다는 사실과(2절) 함께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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