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기본적인 신학과 구조
장로교가 지키고 있는 예배신학의 전통은 말씀과 성찬성례전을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줄기를 이어가는 데 있다. 특히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강조했던 칼뱅과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의 예배 신학 사상은 장로교의 모체인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구체화되어, 전 세계의 장로교회는 동일한 예배신학과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장로교 예배는 단순히 뜨거운 열심만 가지고 말씀을 외치고, 힘차게 찬송을 부르고, 울부짖는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 그 전통을 이어갈 수는 없다. 적어도 뜨거운 구원의 체험이 표현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신앙의 표현이 담긴 예배의 구성과 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예배란 마음의 뜻과 정성을 모든 총체적 표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원칙 아래서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는 초대교회가 지켰던 예배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즉, 주님이 부활하신 날 모두 모여서 위대한 구속의 역사를 깨닫고, 감격하여 말씀을 듣고, 성례전을 가졌던 그 예배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 예배는 개인의 의향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예배하는 공동체로 모여 질서있는 순서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의 장로교는 다음과 같은 예배의 내용을 주일에서 지켜 나가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예배 순서에 대한 이해
기독교의 예배는 반드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모아진 행위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예배의 제반행위는 방관적인 자세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순서마다 부여된 신학적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임(Gathering)
예배의 준비는 예배 선언이 있은 후에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준비는 예배 시작 전에 각 개인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은총을 새롭게 명상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정리하고,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과 만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적절하다.
이때에 악기를 통하여 조용히 연주되는 분위기 속에서 세상의 삶으로부터 헝클어진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는 자세는 예배를 위해 꼭 필요하다.
예배 선언(Invitation to Worship)
묵도로써 예배를 시작하는 것은 예배 전통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다음과 같은 말로 예배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타당하다.
"이제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우리의 하나님께 00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예배로 부름(Call to Worship)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중들을 예배 가운데 임하게 하는 순서로서 예배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것임을 알리는 부분이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순서가 바로 예배로 부름이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예배 인도자가 자신의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준다. 회중들은 엄숙한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가져야 할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응답송(Responsive Song)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진 후, 찬양대가 바로 응답송을 불러 회중들의 마음이 예배로 모아지도록 한다.
기원(Invocation)
인도자가 드리는 기원이란 오늘의 예배 속에 성령님으로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그 권능과 현존으로 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을 성결하게 해 달라는 것과 부족한 주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아 주시라는 매우 짧은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는 일반 기도와는 그 성격이 달라서 기원이라 부른다.
이 기원은 참회나 간구의 성격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을 감사하면서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정결하게 해달라는 것과 예배를 통하여 성령님의 임재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만을 구하는 것이 바로 기원의 내용이고 성격이어야 한다.
경배의 찬송(Hymn of Praise)
예배의 말씀을 통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시는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 앞에 모두가 일어서서 응답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가 곧 경배의 찬송이다. 이 찬송에 담긴 뜻은 죄인된 자신을 거룩한 존전에 예배하도록 불러 주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찬양으로 응답하는 것이다(행위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부분의 찬송은 주로 경배와 찬양의 뜻이 담긴 예배찬송을 부르게 된다.
성시 교독(Antiphonal Reading)
신약시대를 비롯하여 초대교회의 예배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찬송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보편적인 운율을 사용하여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결단을 다짐하는 찬송으로 훌륭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루터를 기점으로 하여 18세기의 웨슬리와 19세기의 생키와 같은 인물들에 의하여 현대의 찬송이 나오면서 회중들은 시편송을 외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기독교 예배의 전통에 자리 잡았던 시편의 소중함을 간직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시편 교독으로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시편 외에 적절한 성구를 모든 교독문을 활용하고 있다.
참회의 기도(Prayer of Confession)
여기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서 있는 실존으로 부끄러운 자아의 모습을 내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임재를 간구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의 용서받아야 할 사연을 함께 고백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무리들이 죄와 허물 가운데 있을 때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 참회의 기도는 예배 가운데 있어야 할 부분으로서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개혁교회 예배의 중요한 순서로서 지키게 되었다.
사죄의 확신(Assurance of Pardon)
죄사함 받음의 확신은 참회의 기도 다음에 있어야 할 순서로서 회중들이 고백한 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서받은 것을 확실히 믿게 해 준다. 이 죄사함의 확신은 목사가 성경말씀에 의하여 회중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존재임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고백하는 그의 자녀들을 외면하거나 멸망케 하신 적이 없는 분임을 회중들에게 알게 한다.
영광송(Gloria)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말씀을 들은 회중들이 감격하여 모두 일어서서 용서받은 기쁨 속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 담긴 순서이다. 이 찬송은 개혁자들이 예배를 집례했던 때부터 가장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불렀다.
목회기도(Pastoral Prayer)
목회기도는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탁받아 섬기고 살피는 책임을 가진 목양자로서 그들이 살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발생된 죄와 모순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함은 물론, 나라와 민족, 그리고 자신이 보살피는 회중이 각종 상처와 질병과 가난과 억눌림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대표기도라는 이름으로 장로들이 오래 전부터 이 순서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예배에서 진행된 기도 내용은 타종교의 기도 내용과는 완전히 차별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즉, 타종교의 기도는 기도하는 무리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원 행위이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의를 주된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한 까닭에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감사가 주종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용서받아야 할 사연들을 내놓는 참회가 있어야 한다. 간구의 부분은 성도들의 단순한 육신적인 삶의 복을 위한 것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야 할 성도들로서 최선을 다하도록 이끌어 달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삼는다.
성경봉독(Scripture Lessons)
하나님이 예배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가장 분명하고 풍부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그러기에 개혁 당시부터 개신교 예배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말씀의 선포였으며, 이 전통은 지금도 우리 예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지켜지고 있다.
설교와의 관계에서 볼 때 설교는 성경말씀의 해석과 적용인데, 그만큼 성경봉독의 중요성이 예전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한다. 성경봉독 전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써 말씀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한다.
예 1 : 시작 -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절에서부터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찾는 시간을 준 다음) 이제 낭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끝 -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 2 : (성경의 본문을 읽은 후에) "이것은 우리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때 회중은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아멘" 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경봉독이 구약과 서신서와 복음서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 복음서는 목사가 봉독하도록 한다.
찬양(Anthem(s))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찬양대는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고 성전예배를 가졌을 때, 다윗 왕이 그들에게 성전에서 노래만을 하도록 사명을 주는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오늘의 예배 가운데서 찬양대가 맡은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설교 전에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장 아름다운 경외를 드리는 부분이며 예배자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함께 이끄는 헌신의 경험을 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찬양대의 찬양은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도록 마음의 그릇을 준비시키는 역할까지도 수행한다.
설교 전 기도(Prayer for Illumination)
설교 전에 드리는 기도는 말씀을 선포하기 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예배자들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어야 한다. 이 기도는 그날에 적당한 내용의 기도문을 사용하기도 하며 설교자가 기도할 수도 있다. 또는 회중들이 순서지에 기록된 기도를 함께 읽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많은 설교자들은 대체로 설교를 시작하기 직전에 성령님의 손에 말씀의 사역과 결과를 부탁하는 기도를 잠깐 동안 드리는 것이 보통이다.
설교(Sermon)
설교는 낭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현대의 언어로 회중들에게 다시 해석해 주고, 그들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현장화시키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해왔다. 그래서 설교란 기록된 하나님 말씀의 선포이며 해석이며 적용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그 말씀이 설교자를 통하여 나오기에 거기에는 설교자의 인간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내포된다. 그러나 회중은 설교 가운데 나타난 설교자의 인간적인 요소를 스스로 배제하고 하나님이 그 설교 속에서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의 경청과 함께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설교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길이다.
설교 후 기도(Prayer after Sermon)
설교 전 기도와 설교 후 기도는 장로교의 오랜 전통에 속한다. 설교 후 기도는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자라 결실을 맺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때로는 설교의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러한 때는 가장 간절하게 함으로써 설교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응답의 찬송(Hymn of Response)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를 통하여 선포된 다음에 예배자들이 즉각적인 감사의 응답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순서이다. 원래 개혁자들의 예배에서는 구제헌금을 함으로써 최소한의 감사와 응답의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회중찬송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된 이래 계시에 대한 응답을 하는 순서로 찬송을 많이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아니라 언제나 말씀 앞에 지체 없이 감사의 표현을 하는 예배자임을 보이는 뜻으로 본 순서는 진행되어야 한다.
세례(Baptism)
세례는 모든 증인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인침을 받은 예전이다. 여기서 행한 서약은 집례자와 세례후보자 사이에서 이어지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이루어지는 예전으로서 그 내용과 의식이 진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물로 세례를 주기 전에 반드시 집례자는 성령님의 역사가 수반되는 예전이 되도록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수세는 열두 사도의 교훈(디다케)에 나타난 대로 세 가지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흐르는 물에 잠기는 것(immersion or submersion)과, 둘째는 물을 받아 거기에 잠기는 방법(immersion or submersion)과, 셋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 번 그 머리에 물을 뿌리는 방법(sprinkling)이다. 그 외에 물을 머리에 붓는 방법(pouring)도 있다.
평화의 인사(The Peace)
예배 순서에 성도의 교제가 있는 것은 1세기 예배의 '평화의 입맞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시대의 박해 속에서 주님의 은혜로 지내온 것을 감사하면서 갖는 순서였다. 이 순서는 예배의 역사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성찬성례전의 시작 부분에서 성도들이 전후좌우로 서로가 주 안에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오랜 전통이 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가 사랑과 화해를 실천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나타내게 된다. 이 순서가 광고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신앙고백(Creed)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는 예배 때마다 성삼위 일체 되신 하나님을 믿는 동일한 믿음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뜻에서 교회는 역사적으로 니케아 신경(325)와 사도신경(404)을 공적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고백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현장에서 함께 신앙고백으로 이어졌다. 그 위치는 루터의 독일어 미사와 쯔빙글리의 독일어 예배에서는 성경봉독 다음에 있었고 칼뱅과 부쳐의 예배에서는 설교 뒤에 있었다. 한국교회는 설교 전에 둔 전통을 지켜오고 있었으나 현대 많은 세계의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의 순서를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경청한 후에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현실이다. 본 교단도 최근의 세계의 개혁교회들과 호흡을 함께함이 좋다고 본다.
주기도(Lord's Prayer)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모든 기도의 모범이며 우리가 언제나 계속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의 전통에서 주기도문은 매우 중요한 순서이다.
17세기경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는 주기도문이 너무 형식화된 주문처럼 변질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한때 예배에서 금하기도 했으나 바로 회복되어 현대 모든 개혁교회 예배에서는 예배의 중요한 기도순서로 드리고 있다. 주기도문의 위치는 성찬성례전이 있는 예배에서는 성찬기도 다음이 되는 것이 적절하며 일반예배에서는 교회기도나 봉헌기도에 이어서 드리도록 함이 좋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찬기도나 교회기도 또는 봉헌기도 다음에 이어질 때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오며 이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함께 드립니다."
봉헌(Offering)
봉헌의 순서는 기독교 예전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이다. 오늘의 예배 속에서는 봉헌이란 단순히 돈을 바치는 행위를 지칭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봉헌의 의미는 '예물의 드림'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는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성도들이 드리는 응답의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다.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정성을 다하여 경청한 무리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감사의 응답으로 내어놓는 모든 마음과 정성의 표현이다.
성찬감사기도(Eucharistic Prayer)
제정의 말씀(The Words of Institution)
성찬성례전에서 제정된 말씀은 반드시 봉독하고, 그 말씀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해주어야 한다.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11장이나 복음서의 말씀(마 26장, 막 14장, 눅 22장) 중 어느 것이나 봉독할 수 있다. 이 제정의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은 현재 행하고 있는 성찬 성례전이 단순히 집례자의 권위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으로 제정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예전은 주님이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으로서 기독교의 가장 존엄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주님의 희생의 실재를 새롭게 경험하고 재현하는 의미를 선포하기 위하여 말씀의 해석과 적용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임재를 위한 기도(Epiclesis)
동방정교회나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성례전 거행에서 이 순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성물을 앞에 놓고 이 기도를 드린 후에는 그 성물들이 진실로 주님의 살과 피가 된다는 교리를 지금껏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는 이런 교리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령님의 임재 아래서 성찬성례전의 신비한 의미와 역사를 기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기도의 내용은 오직 성령님이 이 자리에 임하여 달라는 것과 임재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성찬에 참여한 무리들의 가슴에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이 성찬성례전은 인간의 단순한 언어와 연출만으로는 그 깊고 오묘한 진리를 깨닫기 힘들기 때문이다.
성물 분할(떡과 잔을 나눔)(Breaking the Bread)
칼뱅과 같은 개혁자들은 떡과 잔을 나누어 주기 전에 떡을 들어 주님이 하신 대로 축사하고 성물(떡)을 쪼개는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시행하였다. 그리고 잔을 들어 축사한 후, 주님이 하신 말씀을 반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여기서 회중들은 자신을 위하여 주님의 그 귀하신 살이 찢기고 상하였음을 회상하고, 그 보혈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엄숙한 의미를 전달받는다. 이 순간은 성찬성례전의 절정을 이루는 시간으로서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목사들에 의하여 매우 성실하게 이어져 내려온 순서이다.
성찬 참여(Communion)
주님의 떡과 잔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었던 것과 같이 회중들이 집례자가 성물을 축사한 후에 주는 떡과 잔을 받으면서 주님의 희생에 감격하고 주님의 지체가 되는 신비한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순서이다. 이 순서가 요식적인 행위가 되지 않고 예전의 절정에 이르는 순서가 되도록 집례자와 회중은 최선을 다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다음의 몇 가지 참여의 형태를 지켜야 한다.
먼저, 집례자가 먼저 스스로 성물을 먹은 후에 분병분잔 위원들에게 주어 받아먹게 한다. 그 다음에 세례받은 회중들만이 받게 한다.
그 다음으로, 개혁교회 전통에 회중들의 참여 방법은 다음 세 형태가 있다. 하나는 분병분잔위원들이 성물을 회중들에게 가져다주는 방법이 있다. 둘째는 세례교인들을 일어서게 하여 받게 한다. 셋째는, 앞으로 회중들이 나아와서 받아 가게 한다.
성찬 후 감사기도(Post-Communion Prayer)
이 순서는 떡과 잔을 나눈 다음에 이어진다.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결한 희생에 의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끝없이 이어져야 할 감사의 사연이다. 더욱이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주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예전을 마무리 지으면서 감사를 드리고 결단의 찬송을 부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순서는 감사의 기도를 예배 순서지에 적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 함께 기도드리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은 결단을 찬송으로 표현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하다.
위탁(파송)의 말씀(Charge)
이 부분은 회중들을 세상 한가운데로 파송하면서 주는 마지막 부탁이다. 여기서의 공식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한 주간을 주님의 자녀로 승리하십시오."
그러나 이 문장만을 매주일 계속할 때 그 반복에서 오는 비효과성 때문에 많은 예배 인도자들은 그날의 설교 내용을 한두 문장으로 다시 요약해 주면서 주님의 백성으로서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갈 것을 부탁한다.
축도(강복선언)(Benediction)
축도(강복선언)의 근원은 구약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아브라함을 선택한 순간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 복을 빌 때 그 응답으로 복을 내려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창 12:3). 이렇게 복을 빌어 주는 공식행위는 제사장의 고유한 권한이며, 그들의 특유한 의무였다. 그러므로 이 축도는 예배드리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심을 선언(강복선언)하는 예배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칼뱅을 비롯한 개혁교회의 예배는 대부분 민수기 6:24 이하의 아론의 축도를 사용하였고, 그 지역에서는 지금도 이 축도를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그러나 미국의 침례교와 장로교의 일부에서는 고린도후서 13:13의 바울의 축도를 애용하는 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두 개의 축도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둘 중에 하나만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본 교단은 총회에서 바울의 축도 끝말에는 "축원하옵나이다."를 사용하도록 결의한 바 있다.
교회소식(Announcement)
교회소식은 실질적으로 예배의 부분이 아니고 예배하는 공동체가 알아야 할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가 시작하기 전이나 축도가 끝난 다음에 예배와 분리된 상태로 교회소식을 갖는 것이 정상이다. 공동체를 위한 소식란이 예배 가운데 있음으로 생기는 부작용이 적지 아니함을 경험한 많은 교회가 소식을 예배 순서에서 분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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