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 운율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44조로 작사된 노래에, 한국적 리듬과 가락을 입혀 만든 한국 찬송이다.《찬송가(신작 증보판), 1995》656장에 채택되었던 찬송을 수정 채택한 것이다. 감리교 마경일(馬慶一, 1912-1987) 목사의 가사에, 역시 감리교인으로서 연세대 음대 학장을 역임한 나인용(羅仁容, 1936- ) 장로가 작곡한 것이다.
마경일(馬慶一, 1912- ) 목사는, 지금은 이북이 된 옛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에서 태어났다. 흔히 말하는 개성사람이다.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장로가 구한말에 세운 송도고보를 거쳐 감리교신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미국 듀크대학 대학원에 유학하였다. 동대문감리교회에서 목회하다가 감리교총리원 전도국 총무, 이화여고 교목실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장을 지냈다. 감리교는 감독제인데 웬「총회장」인가. 해설이 필요하다.
일제의 한국인 황민화정책으로 교회 탄압이 점점 가혹하여 1940년 감리교는,「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이라는 일본국 어용조직으로 변하게 되었다. 1945년 7월, 일제는 각 교단 대표들을 불러 강제로 단일단체로 합동시켜 놓았으나, 곧 광복이 되자 각 교단마다 교단의 정통성 문제를 놓고 싸우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감리교단도 이른바 재건파와 부흥파로 갈려 한동안 혼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1949년 4월 두 파의 대표들이 모여 합동을 결의하고 총회를 열어 교단 명칭을 기독교대한감리회로 개칭하고, 김유순 목사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김유순․양주삼 감독을 비롯하여 많은 교역자와 신자들이 순교 또는 납치 당하였다. 다음 해 부산에서 3부 연합연회와 총회가 모여 유형기 목사를 감독으로 선임하였으나, 그 결의사항에 불만을 품은 일부 회원들이 탈퇴하여「호헌 감리회」를 조직하였다. 1955년 이후 감리교는 분열의 악순환을 계속, 1974년 10월 김창희 목사가 감독이 되자 반대파 회원들이 마경일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임하고, 이른바「갱신파」라고 하였다. 1980년 9월 감리교는 하나가 되어 연회별 감독제를 채택함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마경일 목사는 많은 저서와 역서를 남겼다.
작곡자는 나인용(羅仁容, 1936~ ) 교수로서 감리교 장로다. 연세대 음대 및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연세대 작곡과 교수, 음대학장 역임.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작곡가협회 부이사장, 아시아 작곡가 연맹 한국위원회 회장 역임. 제2회, 제6회 대한민국작곡상, 한국음악상, 영창음악상 수상. 미국 위스컨신대(수페리어), 미네소타대(두루스), 풀브라이트 교수 역임. 현, 연세대학교 음대 명예 교수이며 나운영기념사업회 회장이다. 어린이 찬송가, 찬송가, 찬양곡 등 작품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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