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테 호모이오데세타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데카 파르데노이스 하이티네스 라부사이 타스 람파다스 하우톤 엨셀돈 에이스 아판테신 투 뉨피우
개역개정,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새번역,1 "그런데,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 “그때 하늘나라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열 명의 처녀와 같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 “그때에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영어NIV,1 "At that time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like ten virgins who took their lamps and went out to meet the bridegroom.
영어NASB,1 "Then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comparable to ten virgins, who took their lamps and went out to meet the bridegroom.
영어MSG,1 "God's kingdom is like ten young virgins who took oil lamps and went out to greet the bridegroom.
영어NRSV,1 "Then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like this. Ten bridesmaids took their lamps and went to meet the bridegroom.
헬라어신약Stephanos,1 τοτε ομοιωθησεται η βασιλεια των ουρανων δεκα παρθενοις αιτινες λαβουσαι τας λαμπαδας αυτων εξηλθον εις απαντησιν του νυμφιου
라틴어Vulgate,1 tunc simile erit regnum caelorum decem virginibus quae accipientes lampadas suas exierunt obviam sponso et sponsae
히브리어Modern,1 אז תדמה מלכות השמים לעשר עלמות אשר לקחו את נרותיהן ותצאנה לקראת החתן׃
성 경: [마25:1]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그 때에(*, 토테) - 마태복음에서 자주(약 90회) 사용되는 단어이다.(2:7; 24:9). 특히 본서에서는 이 용어가 어떤 구체적인 시간이나 시점을 나타내기 보다는 대략적 시간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본문의 '그때에'라는 것은 인자가 오는 때, 즉 종말적 심판의 때를 말한다. 그 종말적 심판의 때에 대한 묘사는 이미 24장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24:29, 31, 36, 50, 51).
천국은 마치...같다 하리니 -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의 양면적 성격을 이해시키기 위해 심판과 더불어 친국의 극히 제한된 일면을 제시하고 계신다. 여기서 '천국'에 대해서는 3:2; 4:17; 13:11등의 주석을 참조하라.
등(*, 람파다스) - 접시 모양의 그릇 한쪽 끝에 등근 심지를 담가 호롱불처럼 불을 밝히는 기름등인지 아니면 계속 불을 밝히기 위해서 기름을 가끔 묻혀 사용하는 횃불인지는 본문을 통해 알 수 없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아 기름을 넣어 사용하는 등잔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유대인들은 이 등을 기다란 막대 끝에 매달아 그것을 치켜들어 신부를 맞으러 오는 신랑의 행로를 밝게 했다고 한다. 이때 이러한 등불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했는데, 만일 등불을 들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는 불청객이나 강도로 취급받았다. 한편 여기서 등이 나타내는 의미는 성도가 주의 재림을 맞아 마땅히 준비하여야 할 어떤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성도의 외형적인 신앙 생활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쳐녀 - 유대인의 결혼식에는 몇가지 절차(節次)가 있었다. 즉 일반적으로 신랑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자기 집을 떠나 신부를 데리러 신부의 집에 간다. 그리고 신부의 집에서 종교 의식을 비롯한 여러 예식을 마치고 나서 해가 질 즈음에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신랑이 돌아올 때 사람들은 상당한 거리까지 그들을 배웅한다. 한편 잔치는 며칠동안 계속되었는데 공식적으로는 신랑의 집에서 베풀어졌다. 물론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신랑의 집이 매우 먼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모든 예식이 치러지기도 헹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러한 경우에 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미련한 처녀의 잔치 참여를 거부한 자가 신랑이 아니라 신부의 아버지여야 함에도 본문에는 신랑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공식적인 잔치를 통해 비로소 두 사람의 결혼은 성립되었다. 여기서 '처녀'(*, 파르데노스)란 신부가 아닌 결혼 잔치에 초대된 신부의 들러리(bridesmaid)를 가리킨다. 이들은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 신부를 데려오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그들 일행을 혼인 잔치에로 인도(引導)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이 '처녀'의 숫자가 '열 명'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10'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이런 측면에서 성경에는 10이라는 수치와 관련된 내용이 자주 등장하며(출 20:3-17; 시 33:2), 특히 예수께서는 당신의 비유 중에서 '10'이란 숫자를 자주 언급하셨다.(28절; 눅 15:8; 19:13-17). 이와 더불어 '10'명은 하나의 유대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이었으며, 여러 종교 집회를 위해 필요한 정족(定足)인원이었다. 그리고 유대의 풍속에는 장례 행렬이나 결혼 행렬의 들러리로 반드시 10명의 인원이 필요했다고 한다(Talmud). 이런 관점에서 본문의 '열처녀'는 모든 시대에 예수를 신앙하는 모든 신자들을 가리킨다(Lenski). 특히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예수의 재림을 대망하는 '기다리는 공동체'로서 역사적 교회를 예시(豫示)하는 주의 순결한 처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구원과 신랑 예수의 인격적 유대 관계는 항상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다(Lange).
펜테 데 에산 엨스 아우톤 프로니모이 카이 하이 펜테 모라이
개역개정,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새번역,2 그 가운데서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우리말성경,2 그 가운데 다섯 명은 어리석고 다섯 명은 슬기로웠다.
가톨릭성경,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영어NIV,2 Five of them were foolish and five were wise.
영어NASB,2 "Five of them were foolish, and five were prudent.
영어MSG,2 Five were silly and five were smart.
영어NRSV,2 Five of them were foolish, and five were wise.
헬라어신약Stephanos,2 πεντε δε ησαν εξ αυτων φρονιμοι και αι πεντε μωραι
라틴어Vulgate,2 quinque autem ex eis erant fatuae et quinque prudentes
히브리어Modern,2 חמש מהן היו חכמות וחמש כסילות׃
성 경: [마25:2]
주제1: [종말을 대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그 중에 다섯은 - 여기서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5명씩 양분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숫자에 대한 의미보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인 교회 안에도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련하다'로 번역된 원어 '모라이'(*)는 '우둔한', '얼빠진' 등의 의미로서, 특별히 두 부류의 대별되는 처녀들의 모습 중 이 말이 앞서 언급된 것은(3, 8절) 어리리석은 처녀들의 행태를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와 함께 '슬기 있다'로 번역된 '프로니모이(*)는 지혜롭고 준비성과 분별력이 있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해 나갈수 있으며, 또한 매사에 신실한 것을 가리킨다(24:25). 실로 이 양자는 겉보기에는(처녀, 함께 초대된 들러리 모두 등을 가짐) 하나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신랑이 올 때 그들의 감추어진 내면과 그 사실성 여부가 극명히 노출되고 말 것이다(7, 8절).
하이티네스 모라이 라부사이 타스 람파다스 헤아우톤 우크 엘라본 멛 헤아우톤 엘라이온
개역개정,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새번역,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말성경,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져왔지만 기름은 챙기지 않았다.
가톨릭성경,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어NIV,3 The foolish ones took their lamps but did not take any oil with them.
영어NASB,3 "For when the foolish took their lamps, they took no oil with them,
영어MSG,3 The silly virgins took lamps, but no extra oil.
영어NRSV,3 When the foolish took their lamps, they took no oil with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3 αιτινες μωραι λαβουσαι τας λαμπαδας εαυτων ουκ ελαβον μεθ εαυτων ελαιον
라틴어Vulgate,3 sed quinque fatuae acceptis lampadibus non sumpserunt oleum secum
히브리어Modern,3 הכסילות לקחו את הנרות ולא לקחו עמהן שמן׃
성 경: [마25:3]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불을 밝힐 때 사용할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로 묘사한다. 그런데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 여분의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인지 전혀 기름을 등에 넣지 않았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Robertson, Hendriksen). 한편 '기름'이란 등불을 밝히는 근원적 요소로서 만약 등을 성도들의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1절) '기름'은 그 신앙 생활의 원초적 힘이 되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졔하는 생명력 넘치는 내면적 생활과 성령, 믿음등이라고 할 수 있다(사 61:1 ; 슥 4장 ; 히 1:9). 특히 본문에서는 그러한 성령의 역할 중 중생케 하시며 내주(內住)하셔서 가르치시고 변화시키는 충만한 역사(役事)를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체험조차 얻지 못한 외형적 신자(church-man)로 볼 수 있다. 실로 형식적인 교회출석, 봉사, 선교 등의 외면적인 신앙 생활이 아니라 성령의 사로잡힌 바 되고 믿음과 사랑의 역동적인 힘에 의해서 나타나는 신실한 신앙 생활이야말로 기다리는 바른 성도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한편 4절의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였다는 표현과 8절의 '등불이 꺼져가니'라는 표현에서 기름이 여분의 것이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등불의 기름을 담는 용기가 작았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여분의 기름통에 기름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한다(The pulpit Commentary). 따라서 미련한 자들이 처음부터 등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양의 기름을 등잔에만 준비해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계속하여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힐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신앙 생활 역시 중단없이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하이 데 프로니모이 엘라본 엘라이온 엔 토이스 앙게이오이스 하우톤 헤타 톤 람파돈 하우톤
개역개정,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새번역,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다.
우리말성경,4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불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왔다.
가톨릭성경,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영어NIV,4 The wise, however, took oil in jars along with their lamps.
영어NASB,4 but the prudent took oil in flasks along with their lamps.
영어MSG,4 The smart virgins took jars of oil to feed their lamps.
영어NRSV,4 but the wise took flasks of oil with their lamps.
헬라어신약Stephanos,4 αι δε φρονιμοι ελαβον ελαιον εν τοις αγγειοις αυτων μετα των λαμπαδ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4 prudentes vero acceperunt oleum in vasis suis cum lampadibus
히브리어Modern,4 והחכמות לקחו שמן בכליהן ואת נרותיהן׃
성 경: [마25:4]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슬기 있는 자들은...기름을 담아 - '슬기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처럼(2절) 그들은 신랑이 늦게 올 것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려 기다리기는 하지만 그가 늦게 올 것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 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실로 일회적인 은혜 체험이나 행함이 결여된 믿음, 그리고 영적 건강을 상실한 상태로는 예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다. 오직 그분의 재림을 늘 염두에 두면서 날마다 준비성 있는 신앙 생활을 하는 자만이 기쁨으로 그분을 맞을 수 있다.
크로니존토스 데 투 뉨피우 에뉘스탘산 파사이 카이 에카듀돈
개역개정,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새번역,5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우리말성경,5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가톨릭성경,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영어NIV,5 The bridegroom was a long time in coming, and they all became drowsy and fell asleep.
영어NASB,5 "Now while the bridegroom was delaying, they all got drowsy and began to sleep.
영어MSG,5 The bridegroom didn't show up when they expected him, and they all fell asleep.
영어NRSV,5 As the bridegroom was delayed, all of them became drowsy and slept.
헬라어신약Stephanos,5 χρονιζοντος δε του νυμφιου ενυσταξαν πασαι και εκαθευδον
라틴어Vulgate,5 moram autem faciente sponso dormitaverunt omnes et dormierunt
히브리어Modern,5 וכאשר בשש החתן לבוא ותנמנה כלן ותרדמנה׃
성 경: [마25:5]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신랑이 더디 오므로 - 이 구절은 24:48의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예언과 같은 내용이다. 이 표현은 심판의 주이신 예수께서 다시 온다고 한 때가 늦어짐을 암시한다. 이는 예수께서 당신의 재림이 제자들이 고대한 바처럼 그렇게 신속히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비록 종말이 지연(遲延)된다고 하여 나태한 신앙 생활을 하거나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제공하셨던 것이다.
졸며 잘새(*, 에뉘스탁산 가이 에카듀톤). - '졸며'라는 단어(에뉘스탁산)는 부정 과거형으로서 일시적인, 또는 단지 앉은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깐 조는 상태를 나타낸다. '잘새'(에카듀돈)는 서술적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인 행동 곧 잠에 완전히 취해 수면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이 표현은 종말 지연으로 나타난 교회의 어려움에 직면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졸며 자는' 것이 모두('다')에게 해당되는 사실이며, 또한 그것에 대한 책망(責望)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졸며 자는 것이 슬기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에 대하여 구분시켜 적용한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재림의 주께 책망 받은 것은 단 한 가지,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일에 의해서 초래된 일임을 암시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실은 신랑을 기다리던 자가 졸거나 잠을 잘 만큼 종말이 지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와 더불어 종말이 지연됨으로써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를 역설적으로 암시해주고 있다. 즉 예수 재림이 졸며 자는 것과 같은 참기 어려운 때에 가까이 있음을 알고 어려울수록 신앙 생활을 견고히 해야 함을 역설하고있다.
메세스 데 뉰토스 크라우게 게고넨 이두 호 뉨피오스 에르케타이 엨세르케스데 에이스 아판테신
개역개정,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새번역,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우리말성경,6 한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온다! 어서 나와서 신랑을 맞으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톨릭성경,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영어NIV,6 "At midnight the cry rang out: 'Here's the bridegroom! Come out to meet him!'
영어NASB,6 "But at midnight there was a shout, 'Behold, the bridegroom! Come out to meet him.'
영어MSG,6 "In the middle of the night someone yelled out, 'He's here! The bridegroom's here! Go out and greet him!'
영어NRSV,6 But at midnight there was a shout, 'Look! Here is the bridegroom! Come out to mee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6 μεσης δε νυκτος κραυγη γεγονεν ιδου ο νυμφιος ερχεται εξερχεσθε εις απαντησι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6 media autem nocte clamor factus est ecce sponsus venit exite obviam ei
히브리어Modern,6 ויהי בחצות הלילה ותהי צוחה הנה החתן צאינה לקראתו׃
성 경: [마25:6]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밤중에(*, 메세스뉴토스) - 유대인들의 혼례식은 초저녁 경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랑이 도착할 시간을 훨씬 넘겨 열 처녀가 잠에 떨어진 것으로 보아 깊은 한 밤중(at midnight)이라고 보아야한다. 이처럼 주께서 재림하는 때, 종말의 때가 한 밤중으로 표현되는 것은 (1)24:42-44; 살전 5:2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종말의 때가 정점에 이르렀음과, (2) 예수 재림의 때가 어떤 정해진 시각이나 예고가 없이 예상치 못했던 시점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3)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주께서 한 밤중에 오신다고 믿는 믿음은 출애굽 사건을 경험한 유대인들의 전통이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한 밤중에 구출된 경험 때문이었다(출 12:29).
소리가 나되(*, 크라우게 게고넨) - 본문의 시제는 현재완료 능동태 직설법으로서 드라마와 같은 생생하고도 극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Moule). 즉 이것은 그 소리침의 돌연성(突然性)과 마치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의 긴장감을 암시한다. 이를 번역하면 '마침내 한 외침이 들려왔다'가 될 것이다. 이 소리의 외침은 신랑 앞에서 계속 신랑의 발길을 안내했던 일단의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난 소리의 내용은 신랑이 오니 마중 나오라는 즐거운 비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5절에서 신랑을 기다리다가 한 밤중에 잠이 든 장면과 급작스런 소리의 외침 그리고 뒤이어지는 기름이 떨어져 다급히 기름 구하러 달려가는 소란스러움이다. 이것과 서로 대비되어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의 때가 얼마나 돌발적이고 급작스러운 것인지를 긴장되게 묘사하고 있다.
보라 신랑이로 다 맞으러 나오라 - 돌발적인 외침의 내용이다. 실로 그렇게 고대하던 재림(parousia)이 이 외침과 더불어 실현된 것이다. 이로써 인내와 대망의 기간은 끝이 나고 영원한 심판과 상벌(賞罰)의 때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변화에 자신있게 대처할수 있는 자만이 '신랑올을 맞으러'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토테 에게르데산 파사이 하이 파르데노이 에케이나이 카이 에코스메산 타스 람파다스 하우톤
개역개정,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새번역,7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다.
우리말성경,7 그러자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자기 등불을 준비했다.
가톨릭성경,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영어NIV,7 "Then all the virgins woke up and trimmed their lamps.
영어NASB,7 "Then all those virgins rose and trimmed their lamps.
영어MSG,7 "The ten virgins got up and got their lamps ready.
영어NRSV,7 Then all those bridesmaids got up and trimmed their lamps.
헬라어신약Stephanos,7 τοτε ηγερθησαν πασαι αι παρθενοι εκειναι και εκοσμησαν τας λαμπαδα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7 tunc surrexerunt omnes virgines illae et ornaverunt lampades suas
히브리어Modern,7 אז התעוררו כל העלמות ההן ותיטבנה את נרותיהן׃
성 경: [마25:7]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다 일어나 - 외형적으로 볼 때 일어나 주를 맞이하려는 것은 미련한 자나 슬기로운 자나 모두 같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공동체는 졸음과 잠에서 깨어 일어나 모두 주를 만나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시점까지는 아직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교회도 역시 심판의 사건까지는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가 함께 구분없이 존재할 것이다. 이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확정된 사실이다(13:24-30).
등을 준비할 새 - 여기서 '준비할 새'(*, 에코스메산)란 '정렬시키다'는 뜻으로 지금껏 타고 있던 등불 심지의 까맣게 탄 부분을 잘라내고 심지를 다시금 돋우는 동시에 예비한 기름(4절)을 등잔에 채워넣는 일련의 작업을 완비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일련의 준비 작업이 슬기로운 처녀에게는 손쉬운 것이었으나 준비한 기름이 없던 미련한 처녀에게는 당혹스런 것이었다. 마침내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하이 데 모라이 타이스 프로니모이스 에이폰 도테 헤민 에크 투 엘라이우 휘몬 호티 하이 람파데스 헤몬 스벤뉜타이
개역개정,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새번역,8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였다.
우리말성경,8 어리석은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는데 기름을 좀 나눠 다오’ 하고 부탁했다.
가톨릭성경,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영어NIV,8 The foolish ones said to the wise, 'Give us some of your oil; our lamps are going out.'
영어NASB,8 "The foolish said to the prudent, 'Give us some of your oil, for our lamps are going out.'
영어MSG,8 The silly virgins said to the smart ones, 'Our lamps are going out; lend us some of your oil.'
영어NRSV,8 The foolish said to the wise, 'Give us some of your oil, for our lamps are going out.'
헬라어신약Stephanos,8 αι δε μωραι ταις φρονιμοις ειπον δοτε ημιν εκ του ελαιου υμων οτι αι λαμπαδες ημων σβεννυνται
라틴어Vulgate,8 fatuae autem sapientibus dixerunt date nobis de oleo vestro quia lampades nostrae extinguntur
히브리어Modern,8 ותאמרנה הכסילות אל החכמות תנה לנו משמנכן כי יכבו נרותינו׃
성 경: [마25:8]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 심판의 때에 미련한 자로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그 준비한 등불이 꺼져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꺼져가니'(*, 스벤뉜타이)는 중간태 현재직설법으로서 동작의 지속성(지속성)을 나타낸다. 즉 준비한 등불의 마른 심지가 공급되는 기름이 전혀 없어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꺼져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어리석은 처녀의 내면의 상태 곧 영적 생명력의 고갈(枯渴), 은혜의 결여(缺如), 새 힘을 주시는 성령과의 단교(斷交) 등을 암시하는 동시애 그들의 운명에 대한 비극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기름을 좀 나눠 달라 - 앞 구절에서 등불이 꺼져가는 안타까운 장면과 제발 기름을 좀 꾸어달라는 미련한 자의 절박한 심정이 극적으로 연결되고있다. 여기서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자들이 종말의 때에 겪는 당황한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있다. 심판의 때에 그리스도 앞에 내놓을 은혜와 신앙의 기름을 타인에게 꾸어 달라고 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 앞에서의 심판의 평가는 자기 공로로 결정되는 것이지 남의 것을 빌어다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기름의 결핍(缺乏)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처럼 자기 영혼과 생명 문제가 운명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어릭석은 자의 공통된 특징이다.
아페크리데산 데 하이 프로니모이 레구사이 메포테 우크 아르케세 헤민 카이 휘민 포류에스데 데 말론 프로스 투스 폴룬타스 카이 아고라사테 헤아우타이스
개역개정,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새번역,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된다. 차라리 기름 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써라.'
우리말성경,9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너희와 우리가 같이 쓰기에는 기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기름 장수에게 가서 너희가 쓸 기름을 좀 사라’고 대답했다.
가톨릭성경,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9 "'No,' they replied, 'there may not be enough for both us and you. Instead, go to those who sell oil and buy some for yourselves.'
영어NASB,9 "But the prudent answered, 'No, there will not be enough for us and you too; go instead to the dealers and buy some for yourselves.'
영어MSG,9 "They answered, 'There might not be enough to go around; go buy your own.'
영어NRSV,9 But the wise replied, 'No! there will not be enough for you and for us; you had better go to the dealers and buy some for your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9 απεκριθησαν δε αι φρονιμοι λεγουσαι μηποτε ουκ αρκεση ημιν και υμιν πορευεσθε δε μαλλον προς τους πωλουντας και αγορασατε εαυταις
라틴어Vulgate,9 responderunt prudentes dicentes ne forte non sufficiat nobis et vobis ite potius ad vendentes et emite vobis
히브리어Modern,9 ותענינה החכמות לאמר לא כן פן יחסר לנו ולכן כי אם לכנה אל המוכרים וקנינה לכן׃
성 경: [마25:9]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 기름을 꾸어달라는 미련한 자의 절박한 호소에 슬기로운 자의 대답은 아주 단호하다. 따라서 이같은 거부 의사는 결코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분명 종말론적이고 존재론적인 평가 대상이 될 뿐이다. 정녕 슬기로운 자들은 여분의 기름을 예비하였지만 그것은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그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 꾸어주면 꾸어준 사람도 꾸어 쓴 사람도 모두 다 부족하여 아무도 신랑을 맞이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부족할까 하노니'(*, 메포테우 메 아르케세)란 말 속에 이중의 부정어('메포테', '우 데')가 첨가됨으로써 그 뜻은 절대적인 거부 의사를 함축하고 있다. 즉 함께 쓰기에는 '도무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구원은 각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성령과 은혜와 신앙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 사람의 신앙이 다른 사람의 구원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즉 아버지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아들도 아버지의 신앙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각각 자기의 신앙에 대해서 심판과 구원이 있는 것이다(겔 18:2-4; 요 14:16).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 여기서 '기름을 파는 자들'이란 상징적으로 구원의 진리와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가르치는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과 복음의 역꾼들을 암시한다(Lenski). 그들의 메시지에는 구원의 유일한 해답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눅16:29).
너희 쓸것을 사라 - 이는 기름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사 55:1; 계 3:18). 실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마치 값진 보화를 획득키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甘受)하듯 어떤 값을 치르고 얻는 것이다(13:44-46). 물론 그 값은 인간의 자의적 노력에서라기 보다 하나님편에서 제공하신 것으로서 믿음과 성령의 감화로 인한 기도와 그분의 무한한 은혜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신실한 마음 등일 것이다.
아페르코메논 데 아우톤 아고라사이 엘덴 호 뉨피오스 카이 하이 헤토이모이 에이셀돈 멭 아우투 에이스 투 가무스 카이 에크레이스데 헤 뒤라
개역개정,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새번역,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우리말성경,10 그러나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결혼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닫혀 버렸다.
가톨릭성경,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영어NIV,10 "But while they were on their way to buy the oil, the bridegroom arrived. The virgins who were ready went in with him to the wedding banquet. And the door was shut.
영어NASB,10 "And while they were going away to make the purchase, the bridegroom came, and those who were ready went in with him to the wedding feast; and the door was shut.
영어MSG,10 "They did, but while they were out buying oil, the bridegroom arrived. When everyone who was there to greet him had gone into the wedding feast, the door was locked.
영어NRSV,10 And while they went to buy it, the bridegroom came, and those who were ready went with him into the wedding banquet; and the door was shut.
헬라어신약Stephanos,10 απερχομενων δε αυτων αγορασαι ηλθεν ο νυμφιος και αι ετοιμοι εισηλθον μετ αυτου εις τους γαμους και εκλεισθη η θυρα
라틴어Vulgate,10 dum autem irent emere venit sponsus et quae paratae erant intraverunt cum eo ad nuptias et clausa est ianua
히브리어Modern,10 ויהי בעת לכתן לקנות ויבוא החתן והנכנות ללכת באו אתו אל החתנה ותסגר הדלת׃
성 경: [마25:10]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 '사러 간 동안에'(*, 아페르코메논 데 아우톤)는 현재 분사구문으로서 행동의 계속성을 강조한다. 즉 저희가 '사러 가고 있는 동안에'로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미련한 자들의 어리석음이 다시 한번 극명(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미련한 자들은 신랑이 올 바로 그 시간에 그 자리를 비우고 또 이미 밤중이라 가게 문이 모두 닫혀 살 수도 없을 때 그것을 사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 이 구절에서 예비하였던 자들은 신랑이 더디 올 것에 대비하여 기름을 준비하고 인내하며 기다렸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가리킨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분명 천국이 예비한 자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본문을 통해 '기다리는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 더 나아가 신랑이 오신 목적은 단순히 인내하며 기름을 준비하는 등의 예비 작업이나 다시 오심 그 자체가 아니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신다. 따라서 '기다리는 공동체' 곧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바는 어떻게 하면 그분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가'라는 것이다.
닫힌지라(*, 에클레이스데) - 이 단어는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는 부정과거 수동태 직설법이다. 따라서 문이 이미 굳게 닫혀버려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는 (1)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운명이 예고되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2) 이제부터의 기도와 회개와 눈물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심판의 엄격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 비유는 잔치가 시작되면 문을 닫아 손님들의 안전을 도모했던 팔레스틴의 관습에 기인한 것인 듯하다(눅 13:25).
휘스테론 데 에르콘타이 카이 하이 로이파이 파르데노이 레구사이 퀴리에 퀴리에 아노잌손 헤민
개역개정,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새번역,11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우리말성경,11 어리석은 처녀들은 나중에 돌아와 애원했다. ‘주여! 주여! 우리가 들어가게 문을 열어 주십시오!’
가톨릭성경,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영어NIV,11 "Later the others also came. 'Sir! Sir!' they said. 'Open the door for us!'
영어NASB,11 "Later the other virgins also came, saying, 'Lord, lord, open up for us.'
영어MSG,11 "Much later, the other virgins, the silly ones, showed up and knocked on the door, saying, 'Master, we're here. Let us in.'
영어NRSV,11 Later the other bridesmaids came also, saying, 'Lord, lord, open to us.'
헬라어신약Stephanos,11 υστερον δε ερχονται και αι λοιπαι παρθενοι λεγουσαι κυριε κυριε ανοιξον ημιν
라틴어Vulgate,11 novissime veniunt et reliquae virgines dicentes domine domine aperi nobis
히브리어Modern,11 ואחרי כן באו גם שאר העלמות ותאמרנה אדנינו אדנינו פתח לנו׃
성 경: [마25:11]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그 후에 남은 처녀들 - 여기서 '그후'(*, 휘스테론)는 종말적 심판이 완결(완결)된 때를 가리킨다. 즉 심판이 끝나 슬기로운 자들이 천국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힌 때인 것이다. 따라서 '남은 처녀들'은 기름을 예비하지 못하여 기름을 사러갔다가 돌아온 미련한 다섯 처녀로 보아야 한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여 주여'(*,쿠리에 퀴리에)라는 신앙 고백적 호칭이다. 예비하지 못한 미련한 자들도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구절은 7:21, 22절 절에서도 나오는데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미련한 자들이 닫혀진 문 앞에서 아무리 화려하고 애잔한 신앙 고백적인 간구를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이제 더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호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아멘 레고 휘민 우크 오이다 휘마스
개역개정,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새번역,12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우리말성경,12 그러나 신랑은 대답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가톨릭성경,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12 "But he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I don't know you.'
영어NASB,12 "But he answered, 'Truly I say to you, I do not know you.'
영어MSG,12 "He answered, 'Do I know you? I don't think I know you.'
영어NRSV,12 But he replied, 'Truly I tell you, I do not know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 δε αποκριθεις ειπεν αμην λεγω υμιν ουκ οιδα υμας
라틴어Vulgate,12 at ille respondens ait amen dico vobis nescio vos
히브리어Modern,12 ויען ויאמר אמן אמר אני לכן לא ידעתי אתכן׃
성 경: [마25:12]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 여기서 바로 앞의 문장 '주여 주여...열어 주소서'라는 애절한 간청과 대비시켜 심판의 엄격하고 준엄한 성격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한편 이 구절의 '알지 못하노라'에서 '알다'는 뜻인 원어 '오이다'(*)는 단순한 지적인 앎을 넘어 교제와 경험을 통해 아는 상태, 그리고 관계를 통해 깨달은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알지 못하노라'란 말은 상대방이 어떤 인물인가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호의를 베풀 만한 이유가 전혀없다는 엄정(嚴正)한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이 선언은 곧 돌이킬 수 없는 심판 선고와 같은 것이다. 실로 심판주 예수께서는 당신의 오심을 믿음으로 준비한 자만을 '아시고'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신다(창 18:19; 요 10:14). 여하튼 이와 같은 형식의 냉정한 대답이 7:21-23; 눅 13:25에도 나오고 있다.
그레고레이테 운 호티 우크 오이다테 텐 헤메란 우데 텐 호란 엔 헤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엪케아이
개역개정,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새번역,13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인자가 언제 올지 그 날과……'
우리말성경,13 그러므로 너희도 깨어 있으라. 그 날짜와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어NIV,13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the day or the hour.
영어NASB,13 "Be on the alert then, for you do not know the day nor the hour.
영어MSG,13 "So stay alert. You have no idea when he might arrive.
영어NRSV,13 Keep awake therefore, for you know neither the day nor the hour.
헬라어신약Stephanos,13 γρηγορειτε ουν οτι ουκ οιδατε την ημεραν ουδε την ωραν εν η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ερχεται
라틴어Vulgate,13 vigilate itaque quia nescitis diem neque horam
히브리어Modern,13 לכן שקדו כי אינכם יודעים את היום ואת השעה אשר יבא בה בן האדם׃
성 경: [마25:13]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열 처녀의 비유]
깨어 있으라 - 이 구절은 본 비유의 주제를 강조하는 말로서(24:36, 42, 44, 50) 예수의 비유 뒤에 자주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다(막 13:34). 여기서 '예비하고 있으라'는 어구는 24:44의 내용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한다. 한편 미련한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슬기로운 처녀들도 졸고 있다는 5절의 내용은 본구절과 모순되므로 예레미야스와 같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후대의 삽입문으로 본다. 그러나 이 견해는 3절이 의도하는 바를 간파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영적으로 '깨어있으라'(Keep watch)는 말은 육신적으로 '자지 말고 눈을 뜨고 있으라'(Keep awake)는 말과는 다른 것이다. 후자는 졸음을 쫓아내고 전혀 잠자지 말라는 뜻이므로 본 구절의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유들이 뜻하는 바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저자 마태는 예수께서 이 강화(강화)에 말씀하시는 주요한 권고를 반복한 것이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 이와 같은 문장은 24:36, 42, 44, 50에 똑같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어투는 마태복음 기록자가 종말의 때를 나타내는 일관된 방법이자 항상 '깨어 있어야'할 이유를 말한 것이다(5, 6절 주석). 결국 13절은 열처녀 비유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압축, 요약하고 있으며,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항상 긴장되고 항상 예비되어야만 될 삶의 자세를 암시하고 있다.
호스페르 가르 안드로포스 아포데몬 에칼레센 투스 이디우스 둘루스 카이 파레도켄 아우토이스 타 휘파르콘타 아우투
개역개정,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새번역,14 "또 하늘 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우리말성경,14 “또한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고 여행을 떠나려는 것과 같다.
가톨릭성경,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영어NIV,14 "Again, it will be like a man going on a journey, who called his servants and entrusted his property to them.
영어NASB,14 "For it is just like a man about to go on a journey, who called his own slaves and entrusted his possessions to them.
영어MSG,14 "It's also like a man going off on an extended trip. He called his servants together and delegated responsibilities.
영어NRSV,14 "For it is as if a man, going on a journey, summoned his slaves and entrusted his property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4 ωσπερ γαρ ανθρωπος αποδημων εκαλεσεν τους ιδιους δουλους και παρεδωκεν αυτοις τα υπαρχοντ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14 sicut enim homo proficiscens vocavit servos suos et tradidit illis bona sua
히브리어Modern,14 כי כמו איש נסע למרחוק אשר קרא אל עבדיו וימסר להם את רכושו׃
성 경: [마25:14]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또(*, 가르) - 이 등위 접속사는 새롭게 시작되는 달란트 비유가 바로 설명한 열처녀 비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즉 종말적 심판에 관한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내용이 같은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때 - 이 구절은 막 13:34의 문장과 같은 형식이다. 막 13:34은 마가복음서의 종말론에 대한 결론부로서 그것이 본 달란트 비유의 도입부가 되고있다. 또 막 13:35는 마 25:13, 즉 열처녀 비유를 통해 암시한 종말 교훈의 결론이 되는'깨어 있으라'는 구절이 같은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막 13:34,35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사람'은 같은 평행비유인 눅19:12-27을 보면 왕위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귀인(귀인)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헤롯이 분봉왕(분봉왕) 책봉을 받기 위해 오래도록 로마에 있었던 사실이나, 아니면 당시 상업을 하던 부호들이 먼 무역 여행을 위해 오랜 기간 집을 떠났던 사실에 근거한 비유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같은 일상적 사실을 암시한 것이기 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이 땅에 성육신(Incarmation)하셨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할 일을 맡기시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오실것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타국에 갈제'(*, 아포데몬)란 문자적으로 자기가 살던 곳에서 '막떠나려 할 제' 또는 '해외로 가려 할 시점에'라는 뜻을 갖고 있다. 눅 19:12은 이와 유사하게 '먼 나라로 갈 때에'로 번역되어 있다.
그 종들을 불러 - 여기 '종들'(*, 둘로이)은 그 주인의 전적인 소유였으나, 여기서는 하나의 인격적 친근감을 주는 그야말로 주인과 동등한 위치로서의 신분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 '종들'은 여전히 주인의 권위아래 놓여 있다. 한편 이 '종들'은 상징적으로 주의 승천 이래로 당신의 교회를 책임질 복음사역자들 및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모든 신자들을 가리킨다.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고대 사회에서 종들은 그들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종들에게 자기의 동업자처럼 각각 소유를 나누어 준다. 한편 여기서 '소유'(*, 휘파르콘타)란 '재산', '소유물'이라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주로 '돈'을 가리킨다. 이 '돈'은 그들 각자에게 적당하게 '맡겨'질 것이지만 여전히 그것에의 원소유권은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즉 비록 '종들'의 노력과 지혜로 많은 이윤(이윤)을 남긴다 하더라도 그것의 법적 소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필연적으로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카이 호 멘 에도켄 펜테 탈란타 호 데 뒤오 호 데 헨 헤카스토 카타 텐 이디안 뒤나민 카이 아페데메센 유데오스
개역개정,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새번역,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품삯
우리말성경,15 그는 종들의 능력에 따라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는 여행을 떠났다.
가톨릭성경,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영어NIV,15 To one he gave five talents of money, to another two talents, and to another one talent,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Then he went on his journey.
영어NASB,15 "To one he gave five talents, to another, two, and to another, one, each according to his own ability; and he went on his journey.
영어MSG,15 To one he gave five thousand dollars, to another two thousand, to a third one thousand, depending on their abilities. Then he left.
영어NRSV,15 to one he gave five talents, to another two, to another one, to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Then he went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ω μεν εδωκεν πεντε ταλαντα ω δε δυο ω δε εν εκαστω κατα την ιδιαν δυναμιν και απεδημησεν ευθεως
라틴어Vulgate,15 et uni dedit quinque talenta alii autem duo alii vero unum unicuique secundum propriam virtutem et profectus est statim
히브리어Modern,15 ויתן לזה חמש ככרים ולזה שתים ולזה אחת לכל איש ואיש כפי ערכו וימהר ויסע משם׃
성 경: [마25:15]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각각 그 재능대로(*, 카타 텐 이디안 뒤나민) - 이 말은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인은 종들에게, 소유를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였음을 말해 주는데 이것은 불공평에 의한 공평의 원리를 실현하시는 그분의 지혜를 반영한다(민 7:4-9). 이러한 재능에 따른 배분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인은 맡김을 받은 청지기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소유 곧 물질적 소유 뿐 아니라 성격, 지식, 교육, 의지, 환경 등은 근본적으로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서 최선을 다해 잘 관리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2)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에 따라 소유가 맡져졌다는 것은 저마다 고유의 인격과 역할이 있다는 말이고, 또한 그것은 각각 소중하고 존귀한 것임을 말한다. 각 사람마다의 개성과 창조적 능력은 다양하지만 그것은 각각 독특하게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재능에 따라 적합한 소유가 맡겨졌다는 믿음은 각각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그 일을 맡긴 주인에 대한 충성의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 '달란트'(*)라는 말은 구약시대에는 무게의 단위로 쓰였었는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동시에 쓰여졌다. 본문의 경우에는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무게 단위가 화폐 단위로 발전된 것은 금이나 은을 저울로 달아서 상품 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달란트를 화폐 단위로 취급했을때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치가 된다(1 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품삯에 해당). 이것은 눅 19:11-1에 언급된 '므나'(1므나 = 약100 데나리온)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한편 본문의 비유를 통해 '달란트'는 보통 상징적 의미로 '재능'을 뜻하게 되었다. 실로 각자의 독특한 재능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인 것이다.
떠났더니 - 주인은 자신의 권위와 지혜로써 분배를 마친 후 더 이상의 염려나 망설임 없이 자기 길을 떠났다. 이것은 주인의 그 종들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 행동인 동시에 그 종들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행동이다.
포류데이스 데 호 타 펜테 탈란타 라본 에이르가사토 엔 아우토이스 카이 에포이에센 알라 펜테 탈란타
개역개정,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새번역,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우리말성경,16 5달란트 받은 종은 곧장 가서 그 돈으로 장사해 5달란트를 더 벌었다.
가톨릭성경,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영어NIV,16 The man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went at once and put his money to work and gained five more.
영어NASB,16 "Immediately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went and traded with them, and gained five more talents.
영어MSG,16 Right off, the first servant went to work and doubled his master's investment.
영어NRSV,16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went off at once and traded with them, and made five more talents.
헬라어신약Stephanos,16 πορευθεις δε ο τα πεντε ταλαντα λαβων ειργασατο εν αυτοις και εποιησεν αλλα πεντε ταλαντα
라틴어Vulgate,16 abiit autem qui quinque talenta acceperat et operatus est in eis et lucratus est alia quinque
히브리어Modern,16 וילך האיש הלקח חמש ככרים ויסחר בהן ויעש לו חמש ככרים אחרות׃
성 경: [마 25:16,17]
주제1: [종말의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의 비유]
바로 가서(*, 유데오스 포류데이스) - 헬라어 원문에는 '바로'(유데오스)라는 말이 15절 끝에 붙어 있지만 오히려 개역성경의 방식대로 16절 초두에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하튼 이 말은 종이 소유를 맡고 즉시 또는 재빨리 그 소유를 사용하여 어떤 일에 착수(着手)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과 일에 대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지체없이 그 일을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로서의 바른 자세이다.
그것으로...남겼으되 - 여기서 '그것으로'란 제한 문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그 종은 주인이 제공한 재능(달란트)에 근거해, 주인의 분부와 소망에 따라,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받은바 '그것으로' 일한 것이다. 여기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계획하고 돈을 투자하여 이윤을 남긴다는 뜻이다. 즉 그것은 단지 은행에 안전하게 넣어두고 이자(利子)나 취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알다시피 장사에는 확정적인 이윤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래 갖고 있던 소유마저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장사를 하는데는 위험 부담을 안고 모험을 해야 한다. 이러한 모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1)주도 면밀(周到綿密)한 계획과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2) 장사를 할 종목과 상대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3) 항상 진취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청지기로서의 마음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섯 달란트 맡은 자와 두 달란트 맡은 자가 이윤을 남기었다는 것은 자기 맡은 바에 최선의 노력을 성실하게 기울였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한편 사람의 종 가운데서 두 사람을 성실하고 층성된 종으로, 한 사람을 불성실한 종으로 묘사한 것은 숫자적인 비율로써 선한 종에 대해 강조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그보다 적게 받은 사람이 똑같이 성실하게 장사하였음을 말함으로써 (1)소유하고 있는 양의 차이에 따라 성실성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내며 (2) 주인의 주관심사가 이윤을 많이 남기거나 적게 남기는 데에 있지 않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성실히 노력함으로써 주인의 기대에 부응(副應)하는 자세에 있음을 알 수있다. 실로 그들은 100% 충성과 성실을 통해 100% 결실과 만족을 주인께 돌려 드렸다.
호사우토스 카이 호 타 뒤오 에케르데센 카이 하우토스 알라 뒤오
개역개정,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새번역,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우리말성경,17 마찬가지로 2달란트 받은 종도 2달란트를 더 벌었다.
가톨릭성경,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영어NIV,17 So also, the one with the two talents gained two more.
영어NASB,17 "In the same manner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two talents gained two more.
영어MSG,17 The second did the same.
영어NRSV,17 In the same way, the one who had the two talents made two more talents.
헬라어신약Stephanos,17 ωσαυτως και ο τα δυο εκερδησεν και αυτος αλλα δυο
라틴어Vulgate,17 similiter qui duo acceperat lucratus est alia duo
히브리어Modern,17 וכן הלקח שתים גם הוא הרויח שתים אחרות׃
호 데 토 헨 라본 아펠돈 오륔센 엔 테 게 카이 아페크륖센 토 아르귀리온 투 퀴리우 아우투
개역개정,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새번역,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우리말성경,18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가서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춰 두었다.
가톨릭성경,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영어NIV,18 But the man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went off, dug a hole in the ground and hid his master's money.
영어NASB,18 "But he who received the one talent went away, and dug a hole in the ground and hid his master's money.
영어MSG,18 But the man with the single thousand dug a hole and carefully buried his master's money.
영어NRSV,18 But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went off and dug a hole in the ground and hid his master's money.
헬라어신약Stephanos,18 ο δε το εν λαβων απελθων ωρυξεν εν τη γη και απεκρυψεν το αργυριον του κυριου αυτου
라틴어Vulgate,18 qui autem unum acceperat abiens fodit in terra et abscondit pecuniam domini sui
히브리어Modern,18 אך לקח האחת הלך ויחפר באדמה ויטמן את כסף אדניו׃
성 경: [마25:18]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의 비유]
땅을 파고...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 돈을 땅에 파묻어 두는 것은 그 당시의 돈을 보관하는 방법이었다. 즉 13:44에서 천국 비유를 말할 때 '밭에 감추어진 보배'라고 묘사하는 바와 같이 땅 속 보관은 당시 안전하게 재산을 보관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앞서 이윤을 남기기 위하여 위험을 안고 장사를 한 두 종에 대비시켜 모험을 두려워하는 안전 제일 주의의 소심한 종을 묘사하고 있다. 실로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적극적인 범죄나 사취(詐取)가 아니었다. 그는 1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의 도를 정확히 간파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고의(故意)로 그 재능을 묵혀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그는 주인을 위한 적극적 충성과 봉사를 등한히 한 것이다. 실로 진취적인 봉사 의식의 결여는 곧 소극적인 범죄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또한 그의 불충한 죄의 동기(動機)를 언급하자면 적어도 그는 상대적 빈곤 의식 때문에 주인이 맡긴 '1달란트'의 가치를 무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메타 데 크로논 폴륀 에르케타이 호 퀴리오스 톤 둘론 에케이논 카이 쉬나이레이 멭 아우톤 로곤
개역개정,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새번역,19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우리말성경,19 시간이 흘러 그 종들의 주인이 집으로 돌아와 종들과 결산하게 됐다.
가톨릭성경,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영어NIV,19 "After a long time the master of those servants returned and settled accounts with them.
영어NASB,19 "Now after a long time the master of those slaves came and settled accounts with them.
영어MSG,19 "After a long absence, the master of those three servants came back and settled up with them.
영어NRSV,19 After a long time the master of those slaves came and settled accounts with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9 μετα δε χρονον πολυν ερχεται ο κυριος των δουλων εκεινων και συναιρει μετ αυτων λογον
라틴어Vulgate,19 post multum vero temporis venit dominus servorum illorum et posuit rationem cum eis
히브리어Modern,19 ואחרי ימים רבים בא אדוני העבדים ההם ויעש חשבון עמהם׃
성 경: [마25:19]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의 비유]
오랜 후(*, 메타 데 포륀 크로논) - 여기서도 종말적 심판의 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 표현은 5절과 24:48의 '더디 오다'(*,크로니조)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에서 쓰여졌다. 물론 이같은 '오랜 후'라는 시간적 감각은 순전히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실로 천년이 하루같으신(벧후 3:8, 9) 그 분께는 영원한 경륜(經綸)의 한 부분일 뿐이다.
주인이 들어와 - 이 말은 '너희 주가 임하다'(24:42), '인자가 오다'(24:44), '주인이 오다'(24:46)라는 표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는 것이다.
저희와 회계할새(*, 쉬나이레이 로곤) - 18:23에서와 같이 종말적 심판을 상업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Deissmann). 이 상업적 용어는 종의 지상에서의 사역을 장사로 비유하였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실로 심판과 재림의 주께서는 종말의 심판 때에 지상에 거하는 모든 종들의 사역 결과를 놓고 회계(會計)하실 것이다(고후 5:10; 계 20:11-15).
주여 내게...주셨는데 -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활용하여 두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처가 주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자기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겸손한 고백이기도 하다.
보소서 내가...남겼나이다 - 이는 '내가(*, 에고)라는 말이 강조되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단지 주인의 맡긴 바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종이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歎聲)일 뿐이다(고전 15:58).
카이 프로셀돈 호 타 펜테 탈란타 라본 프로세넹켄 알라 펜테 탈란타 레곤 퀴리에 펜테 탈란타 모이 파레도카스 이데 알라 펜테 탈란타 에케르데사 엪 아우토이스
개역개정,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새번역,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우리말성경,20 5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5달란트를 더 가져와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은 제게 5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제가 5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가톨릭성경,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20 The man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brought the other five. 'Master,' he said, 'you entrusted me with five talents. See, I have gained five more.'
영어NASB,20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came up and brought five more talents, saying, 'Master, you entrusted five talents to me. See, I have gained five more talents.'
영어MSG,20 The one given five thousand dollars showed him how he had doubled his investment.
영어NRSV,20 Then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five talents came forward, bringing five more talents, saying, 'Master, you handed over to me five talents; see, I have made five more talents.'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προσελθων ο τα πεντε ταλαντα λαβων προσηνεγκεν αλλα πεντε ταλαντα λεγων κυριε πεντε ταλαντα μοι παρεδωκας ιδε αλλα πεντε ταλαντα εκερδησα επ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20 et accedens qui quinque talenta acceperat obtulit alia quinque talenta dicens domine quinque talenta mihi tradidisti ecce alia quinque superlucratus sum
히브리어Modern,20 ויגש הלקח חמש הככרים ויבא חמש ככרים אחרות לאמר אדני חמש ככרים מסרת לי הנה חמש ככרים אחרות הרוחתי בהן׃
성 경: [마25:20]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주여 내게...주셨는데 -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활용하여 두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저가 주인인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자기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겸손한 고백이기도 하다.
보소서 내가...남겼나이다 - 이는 '내가'(*, 에고)라는 말이 강조되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단지 주인의 맡긴 바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종이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歎聲)일 뿐이다.(고전 15:58)
에페 데 아우토 호 퀴리오스 아우투 유 둘레 아가데 카이 피스테 에피 올리가 에스 피스토스 에피 폴론 세 카타스테소 에이셀데 에이스 텐 카란 투 퀴리우 수
개역개정,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새번역,21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우리말성경,21 그러자 그의 주인이 대답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
가톨릭성경,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영어NIV,21 "His master replied,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with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Come and share your master's happiness!'
영어NASB,21 "His master said to him,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lave. You were faithful with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영어MSG,21 His master commended him: 'Good work! You did your job well. From now on be my partner.'
영어NRSV,21 His master said to him, 'Well done, good and trustworthy slave; you have been trustworthy in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헬라어신약Stephanos,21 εφη δε αυτω ο κυριος αυτου ευ δουλε αγαθε και πιστε επι ολιγα ης πιστος επι πολλων σε καταστησω εισελθε εις την χαραν του κυριου σου
라틴어Vulgate,21 ait illi dominus eius euge bone serve et fidelis quia super pauca fuisti fidelis super multa te constituam intra in gaudium domini tui
히브리어Modern,21 ויאמר אליו אדניו כן העבד הטוב והנאמן כי במעט נאמן היית ועל הרבה אפקידך בוא אל שמחת אדניך׃
성 경: [마25:21]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더란트 비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더 이상의 칭찬을 기대할수 없을 정도로 극진한 주인의 칭송(稱頌)이다. 특별히 '잘 하였도다'는 뜻의 헬라어 부사 '유'(*)는 종의 지난 노력에 대한 주인의 다함없는 만족과 인정의 표시였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종'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그 종의 온 인격이 무흠(무흠)하거나 완전하다는 뜻이기 보다 그 주인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특히 '착하다'(*, 아가도스)는 기능적 측면에서의 올바름을, '충성되다'(*, 피스티스)는 윤리적 측면에서의 신실성을 강조한 칭찬들이다. 정녕 선(善)과 충성은 주인의 시험을 감당할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었다(Wycliffe).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 이 구절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리움을 받은 이후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말은 역시 주인의 관심,즉 회계(會計)의 내용이 투자에 대한 이윤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충성하는 자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주인이 맡긴 5달란트는 상당히 많은 액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주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미미(微微)한 것이었다. 여하튼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않고, 순간순간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한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 이 구절은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돌아가는 보상 내용이다. 물론 이 보상은 주인의 회계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현세적이기 보다는 내세적인 것이 분명하며, 또 그 보상이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가 더욱 신뢰감으로 깊어졌다는 것이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參豫)할지어다(*, 텐 카란투 퀴리우). 여기서 주인의 '즐거움'(*,카라)은 (1)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10절) 주인이 와서 벌이는 천국 잔치로 볼 수 있다(계 19:9). 따라서 이 견해를 따르자면 우선 그 종이 천국 또는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그 주인의 초대를 받을 만큼의 영화로운 신분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천국은 잔치와 같은 축제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2) 또 '즐거움'은 주의 영광스런 현현(顯現)이 제공하는 넘치는 기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은 주의 영광에 참예하여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뜻이다(시 16:11; 21:6).
프로셀돈 카이 호 타 뒤오 탈란타 라본 에이펜 퀴리에 뒤오 탈란타 모이 파레도카스 이데 알라 뒤오 탈란타 에케르데사 엪 아우토이스
개역개정,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새번역,22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우리말성경,22 2달란트 받은 종도 와서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은 제게 2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제가 2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가톨릭성경,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22 "The man with the two talents also came. 'Master,' he said, 'you entrusted me with two talents; see, I have gained two more.'
영어NASB,22 "Also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two talents came up and said, ' Master, you entrusted two talents to me. See, I have gained two more talents.'
영어MSG,22 "The servant with the two thousand showed how he also had doubled his master's investment.
영어NRSV,22 And the one with the two talents also came forward, saying, 'Master, you handed over to me two talents; see, I have made two more talents.'
헬라어신약Stephanos,22 προσελθων δε και ο τα δυο ταλαντα λαβων ειπεν κυριε δυο ταλαντα μοι παρεδωκας ιδε αλλα δυο ταλαντα εκερδησα επ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22 accessit autem et qui duo talenta acceperat et ait domine duo talenta tradidisti mihi ecce alia duo lucratus sum
히브리어Modern,22 ויגש גם לקח הככרים ויאמר אדני ככרים מסרת לי הנה ככרים הרוחתי בהן׃
성 경: [마25:22,23]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참예할지어다 - 셈어의 특징인 반복 기법을 사용하여 20, 21절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 칭찬과 약속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동일 내용의 보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심판주의 회계 기준은 은사와 능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그 맡은 바에 대한 성실성과 충성도에 있다는 점이다. 한편 주인은 두 종에게 모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두 종이 똑같은 양의 '많은 것'을 맡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로 천국은 획일적인 평등주의(equalitarian)의 실현장(實現場)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과 충성이 모두 인정되는 곳이다.
에페 아우토 호 퀴리오스 아우투 유 둘레 아가데 카이 피스테 에피 올리가 에스 피스토스 에피 폴론 세 카타스테소 에이셀데 에이스 텐 카란 투 퀴리우 수
개역개정,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새번역,23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우리말성경,23 그의 주인이 대답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
가톨릭성경,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영어NIV,23 "His master replied,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with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Come and share your master's happiness!'
영어NASB,23 "His master said to him,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lave. You were faithful with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영어MSG,23 His master commended him: 'Good work! You did your job well. From now on be my partner.'
영어NRSV,23 His master said to him, 'Well done, good and trustworthy slave; you have been trustworthy in a few things, I will put you in charge of many things;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헬라어신약Stephanos,23 εφη αυτω ο κυριος αυτου ευ δουλε αγαθε και πιστε επι ολιγα ης πιστος επι πολλων σε καταστησω εισελθε εις την χαραν του κυριου σου
라틴어Vulgate,23 ait illi dominus eius euge serve bone et fidelis quia super pauca fuisti fidelis supra multa te constituam intra in gaudium domini tui
히브리어Modern,23 ויאמר אליו אדניו היטבת העבד הטוב והנאמן במזער נאמן היית ועל הרבה אפקידך בוא אל שמחת אדניך׃
프로셀돈 데 카이 호 토 헨 탈란톤 에일레포스 에이펜 퀴리에 에그논 세 호티 스클레로스 에이 안드로포스 데리존 호푸 우크 에스페이라스 카이 쉬나곤 호덴 우 디에스코르피사스
개역개정,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새번역,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우리말성경,24 그때 1달란트 받은 종이 와서 말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굳은 분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도 곡식을 모으시는 것을 압니다.
가톨릭성경,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어NIV,24 "Then the man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came. 'Master,' he said, 'I knew that you are a hard man, harvesting where you have not sown and gathering where you have not scattered seed.
영어NASB,24 "And the one also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came up and said, 'Master, I knew you to be a hard man, reaping where you did not sow and gathering where you scattered no seed.
영어MSG,24 "The servant given one thousand said, 'Master, I know you have high standards and hate careless ways, that you demand the best and make no allowances for error.
영어NRSV,24 Then the one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also came forward, saying, 'Master, I knew that you were a harsh man, reaping where you did not sow, and gathering where you did not scatter seed;
헬라어신약Stephanos,24 προσελθων δε και ο το εν ταλαντον ειληφως ειπεν κυριε εγνων σε οτι σκληρος ει ανθρωπος θεριζων οπου ουκ εσπειρας και συναγων οθεν ου διεσκορπισας
라틴어Vulgate,24 accedens autem et qui unum talentum acceperat ait domine scio quia homo durus es metis ubi non seminasti et congregas ubi non sparsisti
히브리어Modern,24 ויגש גם הלקח את הככר האחת ויאמר אדני ידעתיך כי איש קשה אתה קצר באשר לא זרעת וכנס מאשר לא פזרת׃
성 경: [마25:24]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한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 주인이 주관하는 회계의 현장에는 충성된 자이든 불충분한 자이든 모두가 나아와 주인의 판결에 응해야 한다(고후 5:10). 한편 여기 '한달란트 받았던 자'(*, 호토 엔 탄란톤 에이레포스)의 시재가 완료능동태 분사로서 아직 그에게 '한 달란트'만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 여기 '굳은'(*, 스크레로스)라는 말은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는 뜻으로 공동번역과 새번역에서는 '무서운 분'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같은 평행 비유 눅 19:21에서 나오는 '엄한 사람'(*, 아우스테로스)이라는 단어보다 더 강경한 뜻으로 쓰인다(요 6:60; 행 26:14; 약 3:4; 유 1:15). 여하튼 종은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결국 자신의 불성실과 직무 유기(遺棄)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찾으려 한 것이다. 그는 주인의 인격을 매도하는 더 큰 죄를 주인 앞에서 범하였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 주인을 매우 질이 나쁜 구두쇠나 돈을 모으는 데는 광적이면서 투자하는 데는 아주 인색하며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불로 소득을 얻는 파렴치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아마도 이 비난 속에는 자신이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양을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Derrett).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호덴 우디에스코르피사스) - 이는 추수한 곡식을 마당에 늘어 놓고 말린 후 키질을 하여 겨를 헤쳐서곡식을 모으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즉 좋은 주인을, 키질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알곡(재산)을 모으려고 하는 불로 소득자로 비난한 것이다. 이와같이 좋은 주인을, '굳은 사람', '심지도 않고 거두는 사람', '헤치지 않고 모으는 사람' 등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 비난이 한 달란트를 받아 아무일도 하지 않고 주인 앞에 나온 게으른 종 자신에 대한 묘사이다. 즉 이 본문은 자기 변명을 통하여 자기 모습을 묘사하는 우화적(寓話的)인 문학적 표현 방법이다. 그러므로 종의 주인에 대한 비난은 모두 종 자신의 게으르고 완악한 심성의 고백적 표현으로 보면 된다(26절; 눅 19:22).
내가 알았으므로(*, 에그논 세) - 이는 제 2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경험을 통해 익히 알아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로 그는 자신의 왜곡된 판단을 근거로 주인의 품격을 극도로 모독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 포베데이스 아펠돈 에크륖사 토 탈란톤 수 엔 테 게 이데 에케이스 토 손
개역개정,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새번역,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우리말성경,25 그래서 저는 두려운 나머지 나가서 주인님의 돈을 땅에 감춰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주인님의 것이 있습니다.’
가톨릭성경,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영어NIV,25 So I was afraid and went out and hid your talent in the ground. See, here is what belongs to you.'
영어NASB,25 'And I was afraid, and went away and hid your talent in the ground. See, you have what is yours.'
영어MSG,25 I was afraid I might disappoint you, so I found a good hiding place and secured your money. Here it is, safe and sound down to the last cent.'
영어NRSV,25 so I was afraid, and I went and hid your talent in the ground. Here you have what is yours.'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φοβηθεις απελθων εκρυψα το ταλαντον σου εν τη γη ιδε εχεις το σον
라틴어Vulgate,25 et timens abii et abscondi talentum tuum in terra ecce habes quod tuum est
히브리어Modern,25 ואירא ואלך ואטמן את ככרך באדמה ועתה הא לך את אשר לך׃
성 경: [마25:25]
주제1: [종말을 대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두려워하여 - 이 두려움은 주인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즉 너무 엄격한 주인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장사를 하다가 실패하여 본전도 돌려 주지 못할 때 엄격한 주인에게 당할 벌이 무서웠던 것이다. 실로 이 종은 소심하고 진취적이지 못한 용기없는 사람인 동시에 자기 생명과 안녕에 대해 강한 집착을 지녔던 자이다.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 종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돈을 보관한 것이다(18절). 평행 본문인 눅 19:20에서는 수건에 싸두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두 표현 모두 맡겨진 돈을 아무일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여기서 게으른 종이 무엇을 하여 모험을 감행할 의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 이는 표면적으로는 자기가 주인의 원금(元金)에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고 잘 보존해왔다는 뜻이지만, 실상은 '내 할 바를 다했으니 당신은 내게 아무런 꾸중도 할 수 없습니다'는 뜻의 무례하고도 원망 섞인 불평이었다. 즉 주인이 자기에게 맡겨준 것을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인이 보관을 위해 달란트를 맡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실히 활용하여 그에 따른 이윤을 남기라고 맡겼음을 알지 못했다. 소유를 맡겼을 때는 그 소유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께달아 자기의 것이나 다름없이 성실하게 애정을 갖고 그 달란트를 맡아야 했었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호 퀴리오스 아우투 에이펜 아우토 포네레 둘레 카이 오크네레 에데이스 호티 데리조 호푸 우크 에스페이라 카이 쉬나고 호덴 우 디에스코르피사
개역개정,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새번역,26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우리말성경,26 주인이 대답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 곡식을 모은다는 것을 안단 말이냐?
가톨릭성경,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영어NIV,26 "His master replied, 'You wicked, lazy servant! So you knew that I harvest where I have not sown and gather where I have not scattered seed?
영어NASB,26 "But his master answered and said to him, 'You wicked, lazy slave, you knew that I reap where I did not sow and gather where I scattered no seed.
영어MSG,26 "The master was furious. 'That's a terrible way to live! It's criminal to live cautiously like that! If you knew I was after the best, why did you do less than the least?
영어NRSV,26 But his master replied, 'You wicked and lazy slave! You knew, did you, that I reap where I did not sow, and gather where I did not scatter?
헬라어신약Stephanos,26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κυριος αυτου ειπεν αυτω πονηρε δουλε και οκνηρε ηδεις οτι θεριζω οπου ουκ εσπειρα και συναγω οθεν ου διεσκορπισα
라틴어Vulgate,26 respondens autem dominus eius dixit ei serve male et piger sciebas quia meto ubi non semino et congrego ubi non sparsi
히브리어Modern,26 ויען אדניו ויאמר אליו העבד הרע והעצל אתה ידעת כי קצר אנכי באשר לא זרעתי וכנס מאשר לא פזרתי׃
성 경: [마25:26]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악하고 게으른 종아(*, 포네레 둘레 카이오크네레) - 여기서 '악하고'(*, 포노스)는 '성가시게 굴음', '무가치한', '악독한'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게으른'(*, 오크네오)은 '지체하다', '둔하다', '머뭇거리다'의 뜻을 가졌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하여 결국 주인에게 해(해)가 된 무익하고 무가치한 종에 대한 묘사이다. 이는 21, 23 절에 이미 제시된 바 '착하고 충성된 종'과 극명히 대비되고 있다.
나는...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이 구절은 앞서 종이 주인에게 변명한 내용에 대해 반문하는 것이다(24절). 이 반문의 의도는 주인인 자기 자신이 절대로 종이 말하는 바와 같은 그런 악질적인 구두쇠나 부도덕한 사람이 아님을 밝히는데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게으른 종에게 그렇게 반문함으로써 도리어 그 내용이 종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즉 이 문장을 끊지 않고 게속 연장시켜 본다면, '그렇게 악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는 말이 나을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평행 구절인 눅 19:22은 이와 같은 의미를 분명하게 해준다. 즉 누가복음에는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라는 문장이 삽입되어 종의 변명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심판 선언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에데이 운 세 발레인 토 아르귀리온 무 토이스 트라페지타이스 카이 엘돈 에고 에코미사멘 안 토 에몬 쉰 토코
개역개정,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새번역,27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7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했을 것 아니냐? 그랬다면 내가 돌아와서 그 돈에다 이자라도 받았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영어NIV,27 Well then, you should have put my money on deposit with the bankers, so that when I returned I would have received it back with interest.
영어NASB,27 'Then you ought to have put my money in the bank, and on my arrival I would have received my money back with interest.
영어MSG,27 The least you could have done would have been to invest the sum with the bankers, where at least I would have gotten a little interest.
영어NRSV,27 Then you ought to have invested my money with the bankers, and on my return I would have received what was my own with interest.
헬라어신약Stephanos,27 εδει ουν σε βαλειν το αργυριον μου τοις τραπεζιταις και ελθων εγω εκομισαμην αν το εμον συν τοκω
라틴어Vulgate,27 oportuit ergo te mittere pecuniam meam nummulariis et veniens ego recepissem utique quod meum est cum usura
히브리어Modern,27 לכן היה עליך לתת את כספי לשלחנים ואני בבואי הייתי לקח את אשר לי בתרבית׃
성 경: [마25:27]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그러면 네가 마땅히(*, 에데이 세 운) - 이 구절은 앞서 게으른 종이 한 변명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종의 변명대로 주인이 매정할 뿐만 아니라 원금을 손해볼까 해서 그것을 이용하기가 힘들었다면 적어도 안전하고도 손쉬운 방법으로 이윤을 불릴 수 있는 일이 또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취리(取利)하는 자들(*, 토이스 트라페지타이스) - 돈을 맡아 보관하면서 이자를 주거나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는 환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의 은행이나 돈놀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돈놀이가 금지되었고(신 23:19; 시 15:5). 다만 이방인과의 거래에만 인정되었다(신 23:20). 그렇지만 이같은 율법적 명령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느 5:10-12). 한편 신약 시대에 이르러 유대 랍비들은 '변리(邊利)로 돈을 빌려주는 것'(lending at interest)과 '고리 대금업'(usury)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변리로 돈을 빌려주는 무리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한다.
변리(*, 쉰 토코) - 이 뜻은 원래 '이자'로서 여기서는 높은 이윤 곧 고리 대금(usury)을 가리킨다. 한편 이 단어는 '낳다', '생기게 하다', '자손' 등의 뜻을 지닌 '듸크토(*)에서 유래된 말로 본전(本錢)에 이자가 증식하는 대금업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는 부당한 이익이나 억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통상적 관례에 의한 이자로 보아야 한다. 한편 초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합법적 이자율이 8%였으나 차츰 12, 24, 48%의 고이자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Vincent, W. W. Bukland). 그런데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변리에 관한 구약의 율법을 찬성하시거나 폐기하셨다는 이론을 전개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이자놀이에 대한 도덕성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않으셨다. 다만 당신의 선한 의지를 설명하실 목적으로 융통성 있게 세상에 있는 제현상들을 활용하여 설명하셨을 뿐이다(눅 16:1-9; 181-8).
아라테 운 앞 아우투 토 탈란톤 카이 도테 토 에콘티 타 데카 탈란타
개역개정,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새번역,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우리말성경,28 저 종에게서 1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 가진 종에게 주어라.
가톨릭성경,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영어NIV,28 "'Take the talent from him and give it to the one who has the ten talents.
영어NASB,28 'Therefore take away the talent from him, and give it to the one who has the ten talents.'
영어MSG,28 "'Take the thousand and give it to the one who risked the most. And get rid of this "play-it-safe" who won't go out on a limb.
영어NRSV,28 So take the talent from him, and give it to the one with the ten talents.
헬라어신약Stephanos,28 αρατε ουν απ αυτου το ταλαντον και δοτε τω εχοντι τα δεκα ταλαντα
라틴어Vulgate,28 tollite itaque ab eo talentum et date ei qui habet decem talenta
히브리어Modern,28 על כן שאו ממנו את הככר ותנו אל האיש אשר לו עשר הככרים׃
성 경: [마25:28]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해 단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은 정도의 심판이 아니라 그에 따른 물리적 징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구절은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어진 보상(21절)에 극한 대비를 보여 주고 있다. 즉 더 큰 것을 맡기면서 주인과 종의 관계가 더욱 깊은 신뢰감으로 형성되는 착한 종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악한 종의 경우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는 악화되고 그 모습은 더욱 처참하게 된 것이다. 실로 자기에게 맡겨진 은사와 재능과 은혜를 성실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그 주어진 것은 그대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어 버린다(계 12:5).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타인을 부요케함으로써 고통의 강도(강도)를 배나 더하게 된다.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 하나님의 계획과 거룩한 사역은 인간의 불성실에 의해 훼손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비록 게으른 자에 의해 조금 지연되었다 하더라도 당신이 정하신 때, 정한 목적에 따라 당신의 일을 맡을 만한 자를 통해 끝내 성취하시고야 마신다. 한편 열 달란트를 맡은 자는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던 자로서, 결국 주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를 활용하면 할수록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토 가르 에콘티 판티 도데세타이 카이 페리쓔데세타이 아포 데 투 메 에콘토스 카이 호 에케이 아르데세타이 앞 아우투
개역개정,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새번역,29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9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받아 풍성해질 것이며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모두 빼앗길 것이다.
가톨릭성경,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영어NIV,29 For everyone who has will be given more, and he will have an abundance. Whoever does not have,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from him.
영어NASB,29 "For to everyone who has, more shall be given, and he will have an abundance; but from the one who does not have, even what he does have shall be taken away.
영어MSG,29 (SEE 25:28)
영어NRSV,29 For to all those who have, more will be given, and they will have an abundance; but from those who have nothing, even what they have will be taken away.
헬라어신약Stephanos,29 τω γαρ εχοντι παντι δοθησεται και περισσευθησεται απο δε του μη εχοντος και ο εχει αρθησεται απ αυτου
라틴어Vulgate,29 omni enim habenti dabitur et abundabit ei autem qui non habet et quod videtur habere auferetur ab eo
히브리어Modern,29 כי כל איש אשר יש לו ינתן לו ויעדיף והאיש אשר אין לו גם את אשר לו יקח ממנו׃
성 경: [마25:29]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 이러한 격언 구절은 막 4:25에서도 사용되고 13:12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달란트 비유와는 전허 다른 내용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독립적으로 전해져 사용되는 격언구임을 알 수 있다. 실로 예수께서는 비유를 마무리 짓는 결론적인 말을 대중이 익힌 사용하고 있는 격언구로 맺으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일에 성실하게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종말적 심판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명료(明瞭)하게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정녕 영적 세계에서도 물질적 세계에서처럼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현상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삼상 21:3, 4)
카이 톤 아크레이온 둘론 에크발레테 에이스 토 스코토스 토 엨소테론 에케이 에스타이 호 클라우드모스 카이 호 브뤼그모스 톤 오돈톤
개역개정,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새번역,30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0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둠 속으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영어NIV,30 And throw that worthless servant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영어NASB,30 "Throw out the worthless slave into the outer darkness; in that plac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영어MSG,30 Throw him out into utter darkness.'
영어NRSV,30 As for this worthless slave, throw him into the outer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τον αχρειον δουλον εκβαλλετε εις το σκοτος το εξωτερον εκει εσται ο κλαυθμος και ο βρυγμος των οδοντων
라틴어Vulgate,30 et inutilem servum eicite in tenebras exteriores illic erit fletus et stridor dentium
히브리어Modern,30 ואת עבד הבליעל השליכו אל החשך החיצון שם תהיה היללה וחרק השנים׃
성 경: [마25:30]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달란트 비유]
이 무익한 종(*, 톤 아크레이온) - 이 말은 '유익하다(*, 크레이아스)라는 단어에 부정 접두어 '아'를 붙여 '유용하지 않은', '쓸모없는'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실로 능동적으로는 선한 일에 매진(매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는 주인이 맡긴 일에 소홀히 하는 종은 그 주인에게 아무 쓸모없는 자인 것이다(눅 17:10). 이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외에도 소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페역한 죄가 된다.
바깥 어두운 데로(*, 토 스 코토스) - 이 구절은 앞의 21절과 23절에서 착한 종에게 했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는 말과 반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바깥 어두운 데'는 주인과 영영한 관계 단절(斷絶)을 암시하는 동시에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거할 최종적 심판 장소로 익혀 알려진 표현이다(8:12; 계 20:10-15).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이와 같은 구절은 종말에 관한 비유를 제시한 24:51외에 8:12; 13:42, 50; 22:13 등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서 끔찍하고도 영원한 징벌을 나타내는 상투적 문구임을 알 수 있다.
호탄 데 엘데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엔 테 돜세 아우투 카이 판테스 호이 아기오이 앙겔로이 멭 아우투 토테 카디세이 에피 드로누 돜세스 아우투
개역개정,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새번역,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1 “인자가 그의 영광 가운데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의 영광의 보좌 위에 앉을 것이다.
가톨릭성경,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영어NIV,31 "When the Son of Man comes in his glory, and all the angels with him, he will sit on his throne in heavenly glory.
영어NASB,31 "But when the Son of Man comes in His glory, and all the angels with Him, then He will sit on His glorious throne.
영어MSG,31 "When he finally arrives, blazing in beauty and all his angels with him, the Son of Man will take his place on his glorious throne.
영어NRSV,31 "When the Son of Man comes in his glory, and all the angels with him, then he will sit on the throne of his glory.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ταν δε ελθη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εν τη δοξη αυτου και παντες οι αγιοι αγγελοι μετ αυτου τοτε καθισει επι θρονου δοξη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31 cum autem venerit Filius hominis in maiestate sua et omnes angeli cum eo tunc sedebit super sedem maiestatis suae
히브리어Modern,31 והיה כי יבוא בן האדם בכבודו וכל המלאכים הקדשים עמו וישב על כסא כבודו׃
성 경: [마25:31]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인자(*,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 이 말을 직역하면 사람(안드로푸)의 아들(휘오스)이 된다.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명백히 자신을 '인자'와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문맥상(24:3) 종말의 때에 심판주로 구속주로 임하시기로 약속된(단 7장; 율 3:1-12; 슥 14:5)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셨다(8:20; 눈 5:24. '인자 개념' 참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 심판의 주께서 최후의 순간 재림하실 때의 모습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16:27; 24:30; 살전 4:16; 살후 1:7, 8). 여기서 특별히 '영광으로'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신적(신적) 광휘가 충만한 예수가 오시는 모습을 바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붙여진 형용구이다(Broadus).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온다는 사실은 예수 재림의 장면이 전우주적인 성격을 지닌 장엄한 것임을 암시한다(24:31; 살후 1:7, 8; 계 14:14-20). 한편 본문의 말씀은 주께서 수난당하시기 전 단지 3일전에(26:5, 17)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예언적 메시지가 지니는 신적 탁월성과 차고 넘치는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이 표현은 예수께서 심판자로서 뿐 아니라 왕으로서(34절)오실 것을 확실히 제시하고 있다(19:28 ). 특히 그의 '보좌'는 하나님의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사될 것을 가리킨다(28:18; 고전 15:25; 히 12:12).
카이 쉬나크데세타이 엠프로스덴 아우투 판타 타 에드네 카이 아포리에이 아우투스 앞 알렐론 호스페르 호 포이멘 아포리제이 타 프로바타 아포 톤 에리폰
개역개정,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새번역,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우리말성경,32 모든 민족들이 그 앞에 모이게 되고, 목자가 염소 중에서 양을 가려내듯이 인자는 그들을 둘로 갈라
가톨릭성경,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영어NIV,32 All the nations will be gathered before him, and he will separate the people one from another as a shepherd separates the sheep from the goats.
영어NASB,32 "All the nations will be gathered before Him; and He will separate them from one another, as the shepherd separates the sheep from the goats;
영어MSG,32 Then all the nations will be arranged before him and he will sort the people out, much as a shepherd sorts out sheep and goats,
영어NRSV,32 All the nations will be gathered before him, and he will separate people one from another as a shepherd separates the sheep from the goats,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συναχθησεται εμπροσθεν αυτου παντα τα εθνη και αφοριει αυτους απ αλληλων ωσπερ ο ποιμην αφοριζει τα προβατα απο των εριφων
라틴어Vulgate,32 et congregabuntur ante eum omnes gentes et separabit eos ab invicem sicut pastor segregat oves ab hedis
히브리어Modern,32 ונאספו לפניו כל הגוים והפריד בינותם כאשר יפריד הרעה את הכבשים מן העתודים׃
성 경: [마25:32]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모든 민족을(*, 판타 타 에드네) - 똑같은 구절이 24:14과 28:19에도 나온다. 여기 '모든 민족'은 유대 민족을 포함하여 이방 세계의 모든 민족까지 가리키는 것으로서(행 17:26) 보편적 심판의 의미를 주고 있다. 따라서 종말적 심판이 보편적 심판이라는 것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실로 천국 복음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었기 때문에(2:1-12; 3:15, 16; 8:11) 모든 민족은 왕 앞에 서야 한다.
모으고(*, 쉬나크데세타이) - 수동태로서 번역하면 '모여지고'가 된다. 이는 모든 인류를 주 앞으로 모으는 추수꾼 천사의 사역이 역력히 암시된 표현이다(24:31).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볕하는 것같이 - 종말적 심판의 때에, 열처녀 비유나 달란트 비유처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례지 못한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을 비유의 서두(序頭)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양과 염소는 낮에 풀을 뜯을 때는 무리에 구분없이 섞여 지낸다. 그러나 특히 일교차(日較差)가 심한 기후인 팔레스틴에서는 잠을 잘 때에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구별하였다. 왜냐하면 양들은 추위에 강하지만 염소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소는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도록 하였다. 또 낮에도 서로 구분되기는 하는데 왜냐하면 팔레스틴 염소들은 대부분 검은 계통인데 반해 양들은 흰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성격이 판이(判異)하게 다른 짐승인지라 저회들끼리 무리를 이룬다. 여기서는 목자가 직접 무리를 구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앞에서 '모든 민족'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보아 양과 염소를 심판의 대상이 되는 모든 민족으로 보아야 한다.
카이 스테세이 타 멘 프로바타 에크 뎈시온 아우투 타 데 에리피아 엨스 유오뉘몬
개역개정,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새번역,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우리말성경,33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그 왼쪽에 둘 것이다.
가톨릭성경,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영어NIV,33 He will put the sheep on his right and the goats on his left.
영어NASB,33 and He will put the sheep on His right, and the goats on the left.
영어MSG,33 putting sheep to his right and goats to his left.
영어NRSV,33 and he will put the sheep at his right hand and the goats at the left.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στησει τα μεν προβατα εκ δεξιων αυτου τα δε εριφια εξ ευωνυμων
라틴어Vulgate,33 et statuet oves quidem a dextris suis hedos autem a sinistris
히브리어Modern,33 והציב את הכבשים לימינו ואת העתודים לשמאלו׃
성 경: [마25:33]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 양의 무리는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양분함로써 심판의 명료성(明瞭性)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제 3의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정녕 최후 심판의 순간에는 옳거나 틀린 것만 있을 뿐이다.또 여기서는 오른편에는 양을 세우고 복받은 자로 칭찬하고 왼편에 선 염소를 저주받은 자로 경멸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오른편'을 의로운 자리로 표현하고 '왼편'을 저주받은 자리, 곧 불의한 자리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묘사는 구약시대 떠부터 '오른편'을 위엄과 영광과 존귀와 생명의 자리로 이해해 온 사실에서 비롯된다(출 15:6; 왕상 2:19; 욥 30:12 ;시 45:4). 그리고 '왼편'은 저주와 사망, 미련함, 힘의 상실로서 이해되어 왔다(삿 3:15; 삼하 20:9:10; 전 10:2). 따라서 심판의 때에 오른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한다는 말이 되고 왼편에 선다는 것은 영영한 멸망에 떨어지게 됨을 나타낸다. 한편 본문의 이같은 구분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1) 염소보다 더 가치있고 값비싼 짐승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 양이 흰색인 반면 대부분 검은색으로된 염소를 대비시켜 선과 악, 생명과 멸망을 상정적으로 대비하고자 했을 것이다.(3) 하나님을 목자로 보고 그의 벡성들을 양떼로 보는 당시의 유목민적 사고를 빌어왔기 때문인 것이다(18:10-14; 겔 34:11, 12; 막 6:34; 눅 15:3-4; 요 10:1-21; 히 13:20). (3) 염소는 풀밭을 못쓰게 만들고 나무를 상하게 하여 초목을 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염소를 왼편에 세워 불의한 짐승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토테 에레이 호 바실류스 토이스 에크 뎈시온 아우투 듀테 호이 율로게메노이 투 파트로스 무 클레로노메사테 텐 헤토이마스메넨 휘민 바실레이안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개역개정,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새번역,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우리말성경,34 그때 그 왕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리 와서 세상의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해 마련해 두신 나라를 상속하라.
가톨릭성경,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영어NIV,34 "Then the King will say to those on his right, 'Come, you who are blessed by my Father; take your inheritance,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영어NASB,34 "Then the King will say to those on His right, 'Come, you who are blessed of My Father, inherit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영어MSG,34 "Then the King will say to those on his right, 'Enter, you who are blessed by my Father! Take what's coming to you in this kingdom. It's been ready for you since the world's foundation.
영어NRSV,34 Then the king will say to those at his right hand, 'Come, you that are blessed by my Father, inherit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34 τοτε ερει ο βασιλευς τοις εκ δεξιων αυτου δευτε οι ευλογημενοι του πατρος μου κληρονομησατε την ητοιμασμενην υμιν βασιλειαν απο καταβολης κοσμου
라틴어Vulgate,34 tunc dicet rex his qui a dextris eius erunt venite benedicti Patris mei possidete paratum vobis regnum a constitutione mundi
히브리어Modern,34 אז יאמר המלך אל הנצבים לימינו באו ברוכי אבי ורשו את המלכות המוכנה לכם למן הוסד העולם׃
성 경: [마25:34]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임금 - 여기서 심판의 주체가 임금으로 바뀐다. 즉 31절에서 심판의 주체가 '인자'(인자)였는데 여기서는 '임금'으로 달리 표현함으로써 인자를 임금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의 주로서 뿐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묘사하는데, 그러한 비유는 2:2; 21:5; 27:11, 29, 37, 42에서도 나타난다. 여하튼 이같은 칭호는 보좌에 앉으신 인자의 통치권(통치권)을 강조하는 의미를 가진다. 즉 모든 민족의 통치권과 심판의 권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롬14:9; 계 19:16).
내 아버지께 -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아버지와 연관시키고 있다(10:32, 33; 11:25-27; 15:13; 16:17, 27:18:10 ;20:23; 26:29,5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대행자(대행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복'의 궁극적 시여자(施與者)는 아들을 통해 전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복 받을 자들이여 - 오른편에 선별된 사람들을 향한 호칭이다. 여기서 특별히 '복 받을 자들'(*, 호이 율로게메노이)은 완료 분사 구문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이는 한번 시여된 축복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결국 현세와 내세를 초월한 축복의 영속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이 말은 41절의 '저주를 받은 자들아'와 대비되는 문구로서 단순히 축복의 말씀 이상의 실제적인 복의 전달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나와라 - 이 단어 역시 41절의 '나를 떠나라'와 대조되는 말로서 '나아온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친밀)한 만남을 의미한다. 같은 형식의 비유인 열처녀 비유에서 '잔치에 들어가고'라는 구절과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라는 구절(10, 21, 23절)에서도 표현한 바와 같이 구원은 주님과의 만남이고 함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 수있다(요12:26).
창세로부터(아포 카타보레스 코스무). - '세상올 창조한 이래로'라는 뜻이다. 그런데 혹자(Bengel)는 `...로부터'라는 뜻인 '아포'를 '그 이전부터'(*, 프로)라는 뜻으로 이해함으로써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과 일치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올 창세 전부터 미리 선택해 두시고 그 유업을 상속케 하셨다는 것이다(요 17:24; 엡 1:4; 벧전 1:20).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오한 예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과 성실성을 대변해 준다.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 이 귀절은 앞에서 '복받을 자'라는 말에서 나온 '복'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예비된 나라'는 하늘나라를 말한다. 따라서 하늘나라는 이미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계획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예비된'(*, 헤토이마스메넨)은 완료 분사 형태를 취함으로 해서 그 동작이 이미 오래 전부터 성취된 상태에 있었음 보여 준다. 즉 하늘나라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우리의 입국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11). 한편 '상속하라'(*, 클레로노사테)는 말의 원어는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서 '지체치 말고 즉시 네 분깃올 얻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고 나라를 '상속하라'고 명령한 것은, 그 피명령자에게 당연히 물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즉 상속이라는 말은 본래 자기와 상관없는 어떤 것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자기에게 주어져있는 권리(권리)로서 하늘나라를 물려받는 것을 뜻한다. 실로 아무도 창세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이 상속물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즉 영원한 자기 소유인 것이다. 구원 받은 성도는 창세 때부터 준비된 하늘나라를 영원한 소유로서 상속받게 된다. 여하튼 '예비된 나라'라는 구절은 41절의 '예비된 불'과 대칭적으로 앞에 나온다. 이것은 다른 비유들과 같이 대칭 구조속에서 반복 어투를 사용하는 문학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에페이나사 가르 카이 에도카테 모이 파게인 에딮세사 카이 에포티사테 메 크세노스 에멘 카이 쉬네가게테 메
개역개정,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새번역,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우리말성경,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나를 맞아들였다.
가톨릭성경,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영어NIV,35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drink, I was a stranger and you invited me in,
영어NASB,35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someting to drink; I was a stranger, and you invited Me in;
영어MSG,35 And here's why: I was hungry and you fed me,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a drink, I was homeless and you gave me a room,
영어NRSV,35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food,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something to drink, I was a stranger and you welcomed me,
헬라어신약Stephanos,35 επεινασα γαρ και εδωκατε μοι φαγειν εδιψησα και εποτισατε με ξενος ημην και συνηγαγετε με
라틴어Vulgate,35 esurivi enim et dedistis mihi manducare sitivi et dedistis mihi bibere hospes eram et collexistis me
히브리어Modern,35 כי רעב הייתי ותאכילני צמא הייתי ותשקוני גר הייתי ותאספוני׃
성 경: [마25:35,36]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이 두절은 복받은 자들이 하늘나라 상속권을 소유한 까닭을 말하고 있다. 즉 그들이 환영을 받고 유업을 상속하도록 초대받은 까닭은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왕의 형제들을 섬겼기 때문이다(사 58:7). 그런데 이 섬김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 섬김이 곧 그들 의 믿음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약 2:20-26). 즉 이는 순결한 믿음, 참된 신앙만이 표출할 수 있는 선행인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선행을 상기시키는 왕의 대답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의인들의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37-39절). 정녕 의인들은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요청과 기대에 따라 능동적으로 그 일을 수행했던 것이다(엠 2:10). 여기서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선행 중 35절에 제시된 세 종류는 율법적 의무 조항에 근거한 선행이며(창 19:1,2; 출 23:9; 신 10:18; 14). 36절에 제시된 세 종류의 선행은 율법의 의무 조항 이상의 자원적이고 헌신적인 섬김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 식. 주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고 많은 질병과 억울한 누명과 과중한 채무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어려웠다. 사실 예수께서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옥에 갇힌 자 방문'은 복음시대 기간 중에 복음과 그리스도로 인해 공적인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은연중에 제시하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고난를 당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예수께서는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고난받고 굶주리며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선행(善行)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6절).
귐노스 카이 페리에발레테 메 에스데네사 카이 에페스켚사스데 메 엔 퓔라케 에멘 카이 엘다테 프로스 메
개역개정,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새번역,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6 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봐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 주었다.’
가톨릭성경,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영어NIV,36 I needed clothes and you clothed me, I was sick and you looked after me,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visit me.'
영어NASB,36 naked, and you clothed Me; I was sick, and you visited Me;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Me.'
영어MSG,36 I was shivering and you gave me clothes, I was sick and you stopped to visit,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me.'
영어NRSV,36 I was naked and you gave me clothing, I was sick and you took care of me, I was in prison and you visited me.'
헬라어신약Stephanos,36 γυμνος και περιεβαλετε με ησθενησα και επεσκεψασθε με εν φυλακη ημην και ηλθετε προς με
라틴어Vulgate,36 nudus et operuistis me infirmus et visitastis me in carcere eram et venistis ad me
히브리어Modern,36 ערום ותכסוני חולה ותבקרוני במשמר הייתי ותבאו אלי׃
토테 아포크리데손타이 아우토 호이 디카이오이 레곤테스 퀴리에 포테 세 에이도멘 페이논타 카이 에드렢사멘 에 딮손타 카이 에포티사멘
개역개정,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새번역,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우리말성경,37 그때 의인들이 대답할 것이다. ‘주여, 언제 주께서 배고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먹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께서 목마르신 것을 보고 우리가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가톨릭성경,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영어NIV,37 "Then the righteous will answer him,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and feed you, or thirsty and give you something to drink?
영어NASB,37 "Then the righteous will answer Him,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and feed You, or thirsty, and give You something to drink?
영어MSG,37 "Then those 'sheep' are going to say, 'Master, what are you talking about? When did we ever see you hungry and feed you, thirsty and give you a drink?
영어NRSV,37 Then the righteous will answer him, 'Lord, when was it that we saw you hungry and gave you food, or thirsty and gave you something to drink?
헬라어신약Stephanos,37 τοτε αποκριθησονται αυτω οι δικαιοι λεγοντες κυριε ποτε σε ειδομεν πεινωντα και εθρεψαμεν η διψωντα και εποτισαμεν
라틴어Vulgate,37 tunc respondebunt ei iusti dicentes Domine quando te vidimus esurientem et pavimus sitientem et dedimus tibi potum
히브리어Modern,37 וענו הצדיקים ואמרו אדנינו מתי ראינוך רעב ונכלכלך או צמא ונשקה אותך׃
성 경: [마25:37-39]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의인들(*, 호이디카이오이) - 여기서 '복받은 자들'이 '의인들'이라는 호칭으로 바뀐다. 즉 마치 '인자'가 '임금'으로 호칭이 바뀌어 그 인격에 대해 더욱더 구체성을 띠게 하듯이,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 자들을 가리켜 의인으로 선언함로써 그들에 대한 이해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서 '의인들'이라 함은 그 생활에 있어서 철저히 이타적(利他的)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므로써 결국 이 땅에서의 온갖 자기 만족의 유혹과 고초를 이겨내고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 앞에 선 자를 가리킨다. 물론 이 '칭의'는 의로운 재판장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적이고 절대적 선언에 근거한 것일 뿐 사람들의 인격이 절대 순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의인들의 대답은 앞서 임금이 조목조목 나열한 항목을 똑같은 형식으로 반복하면서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반문함으로써 지금껏 행해왔던 선행이 결코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되며 또한 커다란 상금을 바라고 선행을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의 최상의 겸손을 나타내보였다. 이러한 자기 선행을 부인하는 모습은 외식하고 형식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던 그 당시 위선적 종교인들에게 크나큰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여호와 경외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제 사랑을 도외시한 채 외식하며 겉치레적인 신앙 생활에 몰두하던 바리새파 사람이나 율법 학자들을 여러 기회들을 통해 격렬하게 비판하셨다(23:1-36; 12:38-40; 눅 11:37-52; 20:45-47). 결국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과 마음가짐을 제시해 주며 당시의 비실천적인 이론적 종교인들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6:1-4에 나오는 바와 같이 남을 구제할 때에는 오론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며 은밀하게 하라는 교훈을 묵묵히 암시하고 있다.
포테 데 세 에이도멘 크세논 카이 쉬네가고멘 에 귐논 카이 페리에발로멘
개역개정,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새번역,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우리말성경,38 언제 주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우리가 맞아들였으며 언제 주께서 헐벗으신 것을 보고 우리가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가톨릭성경,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영어NIV,38 When did we see you a stranger and invite you in, or needing clothes and clothe you?
영어NASB,38 'And when did we see You a stranger, and invite You in, or naked, and clothe You?
영어MSG,38 And when did we ever see you sick or in prison and come to you?'
영어NRSV,38 And when was it that we saw you a stranger and welcomed you, or naked and gave you clo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38 ποτε δε σε ειδομεν ξενον και συνηγαγομεν η γυμνον και περιεβαλομεν
라틴어Vulgate,38 quando autem te vidimus hospitem et colleximus te aut nudum et cooperuimus
히브리어Modern,38 ומתי ראינוך גר ונאספך או ערם ונכסך׃
포테 데 세 에이도멘 아스데네 에 엔 퓔라케 카이 엘도멘 프로스 세
개역개정,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새번역,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9 언제 주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가톨릭성경,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영어NIV,39 When did we see you sick or in prison and go to visit you?'
영어NASB,39 'When did we see You sick, or in prison, and come to You?'
영어MSG,39 (SEE 25:38)
영어NRSV,39 And when was it that we saw you sick or in prison and visited you?'
헬라어신약Stephanos,39 ποτε δε σε ειδομεν ασθενη η εν φυλακη και ηλθομεν προς σε
라틴어Vulgate,39 aut quando te vidimus infirmum aut in carcere et venimus ad te
히브리어Modern,39 ומתי ראינוך חולה או במשמר ונבא אליך׃
카이 아포크리데이스 호 바실류스 에레이 아우토이스 아멘 레고 휘민 엪 호손 에포이에사테 헤니 투톤 톤 아델폰 무 톤 엘라키스톤 에모이 에포이에사테
개역개정,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새번역,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40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가톨릭성경,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영어NIV,40 "The King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
영어NASB,40 "The King will answer and say to them, 'Truly I say to you, to the extent that you did it to one of these brothers of Mine, even the least of them, you did it to Me.'
영어MSG,40 Then the King will say, 'I'm telling the solemn truth: Whenever you did one of these things to someone overlooked or ignored, that was me--you did it to me.'
영어NRSV,40 And the king will answer them, 'Truly I tell you, just as you did it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who are members of my family, you did it to me.'
헬라어신약Stephanos,40 και αποκριθεις ο βασιλευς ερει αυτοις αμην λεγω υμιν εφ οσον εποιησατε ενι τουτων των αδελφων μου των ελαχιστων εμοι εποιησατε
라틴어Vulgate,40 et respondens rex dicet illis amen dico vobis quamdiu fecistis uni de his fratribus meis minimis mihi fecistis
히브리어Modern,40 והמלך יענה ויאמר אליהם אמן אמר אני לכם מה שעשיתם לאחד מאחי הצעירים האלה לי עשיתם׃
성 경: [마25:40]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내 형제(*, 아텔폰무) - 여기서 형제(*, 아멜포스)는 일차적으로 임금의 형제 곧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12:47-50)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형제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32절). 따라서 여기서의 형제는 광의적인 뜻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동참하는 고난받는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35, 36절).
지극히 작은 자 하나 - 이와 비슷한 문구가 10:42; 18:6, 10, 14에서 '소자 중의 하나'라는 표현으로 나오고 18:5에는 '어린아이 하나'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매우 축소 지향적인 묘사이다. 즉 '작은 자'를 '지극히'라는 단어로 더 축소하여 강조하며 '하나'라는 최소 단위의 숫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다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극한 대비를 이뤄 '가장 작은 자'에게 선행을 베푼 것이 '가장 큰 자'에게 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또 '하나'라는 단어는 막연한 대상을 나타내는 부정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구체적(具體的)인 어떤 한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실천임을 암시한다. 실로 성도의 바른 신앙은 묵묵히 행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에 그 진수가 있다.
내게 한 것이니라(*, 에모이 에포이에사테) - 35, 36 절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면서 의인이 반문한 것에 대하여 명확한 답을 내놓고있다. 여기서 특별히 '내게'라는 뜻의 '에모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를 의미하는 여격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외받고 궁핍하며 고통받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신을 일치시켜 그들과 강한 연대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로 예수깨서는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친히 성육신(Incarnation)하심으로써 이미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同參)하셨다(빌2:6-8). 또한 그는 당신의 전생애를 통해 본질적으로 인간의 연약한 한계 아래 머무시면서 그 속에서 아픔과 고뇌를 맛보시었다(8:17; 사 53:4; 63:9). 정녕 그분은 고난당하는 자의 표상이자, 그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시는 그들의 친구였다(히 4:15). 따라서 그분은 자신있게 고난받는 자와 '하나'라 선언하실 수 있었으며 고난받는 자의 위안자와 보호자가 되어 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연적으로 고난받는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22:34-40; 히 13:2).
토테 에레이 카이 토이스 엨스 유오뉘몬 포류에스데 앞 에무 호이 카테라메노이 에이스 토 퓌르 토 아이오니온 토 헤토이마스메논 토 디아볼로 카이 토이스 앙겔로이스 아우투
개역개정,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새번역,41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우리말성경,41 그러고 나서 왕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사람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가톨릭성경,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영어NIV,41 "Then he will say to those on his left, 'Depart from me, you who are cursed, into the eternal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영어NASB,41 "Then He will also say to those on His left, 'Depart from Me, accursed ones, into the eternal fire which has been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영어MSG,41 "Then he will turn to the 'goats,' the ones on his left, and say, 'Get out, worthless goats! You're good for nothing but the fires of hell.
영어NRSV,41 Then he will say to those at his left hand, 'You that are accursed, depart from me into the eternal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헬라어신약Stephanos,41 τοτε ερει και τοις εξ ευωνυμων πορευεσθε απ εμου οι κατηραμενοι εις το πυρ το αιωνιον το ητοιμασμενον τω διαβολω και τοις αγγελοι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41 tunc dicet et his qui a sinistris erunt discedite a me maledicti in ignem aeternum qui paratus est diabolo et angelis eius
히브리어Modern,41 ואז יאמר גם אל הנצבים לשמאלו לכו מעלי אתם הארורים אל אש עולם המוכנה לשטן ולמלאכיו׃
성 경: [마25:41]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 - 이 구절은 34절의 '복받은 자들이여 나아와'와 대칭되는 문구이다. 한편 7:23에는 본문과 비슷하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즉 저주받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어 바깥 어두운데 쫓겨날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분과 영영히 관계가 단절될 것이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자들'이란 문구는 34절의 '복받은 자들'이란 말에서 볼 수 있는 관사(*, 호이)가 생략됨으로 하나의 독립적 문구라기보다 종속적 분사로 보아 '저주를 받아 나에게서 떠나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Wycliffe). 이는 결국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심판 의지를 강조한 표현이 된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 이 구절은 34절의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와 대칭적으로 대비되는 문구이다. 즉 의로운 자들을 위해 그 나라를 창세 전부터 준비하였지만 마귀와 사자들을 위해 영원한 불이 준비된 것이 서로 다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영영한 불'이 염소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마귀와 그 신자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점이다(계 20:10). 실로 영영한 불은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교만하고 타락한 삶을 살므로 얻어지는 것이다. 한편 '마귀'(*,디아볼로스)는 '중상자', '비방자'(Slanderer)를 의미한다. 새 번역에서도 '악마'(the devil)로 번역한다(4:1; 눅 4:2 요 13:2; 옙 4:27; 히 2:14; 딤후 2:26 등). 그런데 여기서의 '마귀'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주동자(主動者) 곧 어둠에 속한 세력의 주관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사자'(*, 앙겔로스)라는 말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messenger),'사절'(envoy), 또는 '천사'(angel), '보냄을 받은 사람'(one who is sent)을 뜻한다. 여기서는 '메신저'(messenger)로 보는 것이 옳으며 새번역 성경의 번역과 같이 '그의 사자'(*, 토이스 앙겔로이스 아우투)로 번역해야 옳다. 따라서 본문을 재구성하면 '마귀와 마귀의 사자'로 이해된다.
영영한 불(*, 토퓌르 토 아이오니온) - 이 말은 영영히 꺼지지 않고 지속적인 고통을 제공하는 심판의 불(fire)라는 뜻이다. 이 말은 46절의 '영원한 형벌'과 같은 표현이다. 실로 이곳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철저히 분리된 장소라는 점에서 그 고통의 도는 최고치에 이를 것이다. 한편 '불'이라는 묘사는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지옥에 대한 개념이다(3:12; 5:22; 18:8; 유 1:7; 계 20:10-15).
에페이나사 가르 카이 우크 에도카테 모이 파게인 에딮세사 카이 우크 에포티사테 메
개역개정,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새번역,42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우리말성경,42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가톨릭성경,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영어NIV,42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no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nothing to drink,
영어NASB,42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no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nothing to drink;
영어MSG,42 And why? Because--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no meal,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no drink,
영어NRSV,42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no food,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nothing to drink,
헬라어신약Stephanos,42 επεινασα γαρ και ουκ εδωκατε μοι φαγειν εδιψησα και ουκ εποτισατε με
라틴어Vulgate,42 esurivi enim et non dedistis mihi manducare sitivi et non dedistis mihi potum
히브리어Modern,42 כי רעב הייתי ולא האכלתם אותי צמא הייתי ולא השקיתם אותי׃
성 경: [마25:42,43]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왼편에 있는 저주받은 자들의 정죄받은 이유를 35,36절의 문장 형식을 빌어 고발하고 있다. 특히 '아니하였고'(*, 우)라는 부정어구를 5번에 걸쳐 후렴구로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심판 기준의 적극적 의미를 강조 하고 있다. 즉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남에게 비록 악행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실로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태만과 무관심은 크나큰 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적극적으로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이다(19:19). 한편 예수께서 이같은 강경한 메시지를 전하신 것은 적어도 말세, 종말의 때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황폐(荒廢)해 질 것을(딤후 3:3) 익히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크세노스 에멘 카이 우 쉬네가게테 메 귐노스 카이 우 페리에발레테 메 아스테네스 카이 엔 퓔라케 카이 우크 에페스켚사스데 메
개역개정,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새번역,43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우리말성경,43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
가톨릭성경,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영어NIV,43 I was a stranger and you did not invite me in, I needed clothes and you did not clothe me, I was sick and in prison and you did not look after me.'
영어NASB,43 I was a stranger, and you did not invite Me in; naked, and you did not clothe Me; sick, and in prison, and you did not visit Me. '
영어MSG,43 I was homeless and you gave me no bed, I was shivering and you gave me no clothes, Sick and in prison, and you never visited.'
영어NRSV,43 I was a stranger and you did not welcome me, naked and you did not give me clothing, sick and in prison and you did not visit me.'
헬라어신약Stephanos,43 ξενος ημην και ου συνηγαγετε με γυμνος και ου περιεβαλετε με ασθενης και εν φυλακη και ουκ επεσκεψασθε με
라틴어Vulgate,43 hospes eram et non collexistis me nudus et non operuistis me infirmus et in carcere et non visitastis me
히브리어Modern,43 גר הייתי ולא אספתם אותי ערום ולא כסיתם אותי חולה ובמשמר ולא בקרתם אותי׃
토테 아포크리데손타이 아우토스 카이 아우토이 레곤테스 퀴리에 포테 세 에이도멘 페이논타 에 잎손타 에 크세논 에 귐논 에 아스데네 에 엔 퓔라케 카이 우 디에코네사멘 소이
개역개정,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새번역,44 그 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우리말성경,44 그들 역시 대답할 것이다. ‘주여, 주께서 배고프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시거나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언제 우리가 보고 돌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가톨릭성경,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영어NIV,44 "They also will answer,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or thirsty or a stranger or needing clothes or sick or in prison, and did not help you?'
영어NASB,44 "Then they themselves also will answer,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or thirsty, or a stranger, or naked, or sick, or in prison, and did not take care of You?'
영어MSG,44 "Then those 'goats' are going to say, 'Master, what are you talking about? When did we ever see you hungry or thirsty or homeless or shivering or sick or in prison and didn't help?'
영어NRSV,44 Then they also will answer, 'Lord, when was it that we saw you hungry or thirsty or a stranger or naked or sick or in prison, and did not take care of you?'
헬라어신약Stephanos,44 τοτε αποκριθησονται αυτω και αυτοι λεγοντες κυριε ποτε σε ειδομεν πεινωντα η διψωντα η ξενον η γυμνον η ασθενη η εν φυλακη και ου διηκονησαμεν σοι
라틴어Vulgate,44 tunc respondebunt et ipsi dicentes Domine quando te vidimus esurientem aut sitientem aut hospitem aut nudum aut infirmum vel in carcere et non ministravimus tibi
히브리어Modern,44 וענו גם הם ואמרו אדנינו מתי ראינוך רעב או צמא או גר או ערום או חולה או במשמר ולא שרתנוך׃
성 경: [마25:44]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이 구절 역시 37-39절의 경우처럼 판결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하고 있다. 저주의 판결을 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왜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고 다만 놀랄 뿐 이다. 실로 그들은 양들이 자신의 선행을 잊어버리듯, 자신들의 악행(이웃에 대한 무정과 무관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Bengel). 한편 그들이 놀란 이유는 (1) 자기들의 기억으로는 주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주를 돌보아 드리겠느냐는 사실 때문이다.(2) 심판의 임금으로 오신 주께서 굶주리고 나그네되어 목말라하며 감옥에 갇힌 고난받는 자와 동일시하셨기 때문이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양들이 마지막 날에 보답받기 위해 예수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 아닌 것처럼, 염소들은 마지막 날 보웅(retribution)받는 것을 멸시해서 형제들에게 냉담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필시 예수의 형제들에게 온정과 사랑으로 대했을 것이다.
토테 아포크리데세타이 아우토이스 레곤 아멘 레고 휘민 엪 호손 우크 에포이에사테 헤니 투톤 톤 엘라키스톤 우데 에모이 에포이에사테
개역개정,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새번역,45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우리말성경,45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가톨릭성경,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영어NIV,45 "He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not do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you did not do for me.'
영어NASB,45 "Then He will answer them, 'Truly I say to you, to the extent that you did not do it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you did not do it to Me.'
영어MSG,45 "He will answer them, 'I'm telling the solemn truth: Whenever you failed to do one of these things to someone who was being overlooked or ignored, that was me--you failed to do it to me.'
영어NRSV,45 Then he will answer them, 'Truly I tell you, just as you did not do it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you did not do it to me.'
헬라어신약Stephanos,45 τοτε αποκριθησεται αυτοις λεγων αμην λεγω υμιν εφ οσον ουκ εποιησατε ενι τουτων των ελαχιστων ουδε εμοι εποιησατε
라틴어Vulgate,45 tunc respondebit illis dicens amen dico vobis quamdiu non fecistis uni de minoribus his nec mihi fecistis
히브리어Modern,45 אז יענה אתם לאמר אמן אמר אני לכם מה שלא עשיתם לאחד מן הצעירים האלה גם לי לא עשיתם׃
성 경: [마25:45]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이 구절은 40절과 대칭되는 구절이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40절과 구별되게 '내 형제 중에'라는 말을 생략하고 있다. 이는 이웃에 무관심했던 염소에게 있어서 형제 우애를 들먹일 만큼의 여유가 없음을 묵시적으로 꾸짖으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로 하찮게 보이는 소외된 자, 고난받는 자에게 대해 무신경한 자는 그들의 형제와 친구이신 예수를 무시하고 그분의 뜻을 철저히 짓밟는 자인 것이다.
카이 아펠류손타이 후토이 에이스 콜라신 아이오니온 호이 데 디카이오이 에이스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새번역,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말성경,46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벌에,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가톨릭성경,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영어NIV,46 "Then they will go away 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to eternal life."
영어NASB,46 "These will go away in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into eternal life."
영어MSG,46 "Then those 'goats' will be herded to their eternal doom, but the 'sheep' to their eternal reward."
영어NRSV,46 And these will go away in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into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46 και απελευσονται ουτοι εις κολασιν αιωνιον οι δε δικαιοι εις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46 et ibunt hii in supplicium aeternum iusti autem in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46 וילכו אלה למעצבת עולם והצדיקים לחיי עולם׃
성 경: [마25:46]
주제1: [종말을 예비하는 자의 자세]
주제2: [양과 염소의 비유]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 비유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론을 내리는 구절이다. 여기서 저주받은 자들의 벌과 의인들이 받은 보상을 영원한 생명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먼저 영벌(*, 콜라신 아이오니온)은 영원한 징벌(punishment)을 뜻한다. 여기서 '콜라시스'는 원래 '잘라내다'의 뜻의 '콜라조'(*)에서 유래한 말로서 죄인의 교화와 훈육을 위한 목적으로 내려진 징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을 근거로 해서 혹자는 본문의 '영벌'이 궁극적으로는 염소들을 구원키 위해 내려진 교정적 차원에서의 벌로 이해한다. 그러나 신약 어느 곳에서도 지옥에 처한 자의 회개나 교회가 언급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최후 심판이라는 관점에서의 '벌'을 이야기할 때 이 '콜라시스'보다는 공의에 입각한 엄격한 보복이라는 뜻의 '티모리아(*)가 더 적합할지 모를다. 그러나 이 '콜라시스'는 본문에서 목적적 차원에서의 해석보다는 집행적 차원에서의 해석을 통해 '지독한 고통'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히 10:29). 특별히 '콜라시스'가 영원성을 강조한 '아이오니온'과 결합됨으로 형벌의 영원성, 곧 최후 심판으로서의 형벌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18:8; 살후 1:9; 유 1:13). 이와 더불어 의인에게 약속된 영생(*, 조엔 아이오니온)은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life)을 의미한다. 물론 이 생명은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을 뜻하기 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서 향유하게 되는 지복(至福)에 달한 생명으로서(trench),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인 이 현세에서의 생명과는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부활한 생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살전 4:14-17). 한편 '형벌'과 '생명'을 각각 수식하는 형용사 '아이오니온'은 시작 또는 종결이 없거나 아니면 양자 모두가 없는 시간 개념으로서, 묵시 문학이나 종말론과 연관된 구분들에서는 항상 '메시야의 도래와 관련된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재림한 이후에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 것이고,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영원한 구별은 바로 이 지상에서의 짧은 생애를 통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끊임없는 긴장(緊張)과 그 나라와 주의 재림에 대한 성실한 준비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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