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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마태복음 23장 전체 원어 원문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해설 해석

 

토테 호 예수스 엘랄레센 토이스 오클로이스 카이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개역개정,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새번역,1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말성경,1 그때 예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영어NIV,1 Then Jesus said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영어NASB,1 Then Jesus spoke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영어MSG,1  Now Jesus turned to address his disciples, along with the crowd that had gathered with them.
영어NRSV,1 Then Jesus said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1 τοτε ο ιησους ελαλησεν τοις οχλοις και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 tunc Iesus locutus est ad turbas et discipulos suos
히브리어Modern,1 אז ידבר ישוע אל המון העם ואל תלמידיו לאמר׃
 

성 경: [마23:1]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이에 - 본장 초두에 언급된 `이에'(*,토테)는 마태복음에서 독특하게 사용되고 있는 시간에 대한 상관적 부사이다. 그런데 `이에'란 과거의 특정한 시점으로서의 `그 때'(then)를 의미하기도 하고, 단지 막연한 한 시점인 '그 때'(at that time)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시점이 지난 '그 후', 또는 '그 다음', `그리고' 등의 뜻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문맥상 '그 다음', '그리고'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23장은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대화 장면을 다룬 22장에 바로 연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무리와 제자들에게 - 이 구절은 예수께서 누구를 상대로 하여 설교를 시작하는지 말해준다. 여기서 '무리'(*, 오클로이스)란 군중 이외에 민중, 백성, 평민, 서민(the common people)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리'란 특수 계층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및 헤롯 당원들과는 구분되는 일반 평민들의 군집(群集)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22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와의 대화에서 곤경에 처하여 더 이상 예수에게 질문을 하지 못했음을 미루어(22:46) 볼때, 바리새인들은 이미 예수를 떠나 갔을 가능성이 많다.

 

 

 

레곤 에피 테스 모세오스 마데드라스 에카디산 호이 그람마테이스 카이 호이 파리사이오이

 

개역개정,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새번역,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우리말성경,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가톨릭성경,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영어NIV,2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Pharisees sit in Moses' seat.
영어NASB,2 saying,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have seated themselves in the chair of Moses;
영어MSG,2  "The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are competent teachers in God's Law.
영어NRSV,2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sit on Moses' seat;
헬라어신약Stephanos,2 λεγων επι της μωσεως καθεδρας εκαθισαν οι γραμματεις και οι φαρισαιοι
라틴어Vulgate,2 dicens super cathedram Mosi sederunt scribae et Pharisaei
히브리어Modern,2 על כסא משה ישבו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성 경: [마23:2]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 예수께서 질책하실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특히 '서기관들'은 구약 율법을 연구, 교육하는 일을 전담(專擔)했던 자들이었으며(2:4), 바리새인들은 독선적일 만큼 율법 준수에 철저했던 자들이었다. 바로 이 바리새인들 중에서 서기관들이 주로 배출되었다. 한편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선생'(teacher)과 같이 어떤 직업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서 신학적 지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런데 서기관이라는 말과 바리새인이라는 말이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바리새인으로서 서기관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지금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질책(叱責)하신다기 보다 하나의 왜곡된 신학적, 신앙적 입장을 비판했으며 또한 그것을 신봉(信奉)하고 전파하는 자들을 비판하고 계신 것이다. 실로 바리새인들(서기관들)은 율법에 남다른 열정과 열심있는 연구를 통해 요한 힐카너스 시대(B.C.135-105) 이후, `150년 간 백성들에게 최고의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아 왔지만 그들은 위선과 형식주의적(形式主義的)신앙 형태로써 이스라엘 종교 전반을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 먼저 '모세의 자리'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공식적인 율법 교사의 석재(石材)로 만든 자리를 가리킨다. 그 당시 유대의 바리새인 또는 서기관들 중 가장 유력한 자가 회당에 마련된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해석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E.L. Sukenik). 예수께서도 이 관례에 준하여 가르치신 적이 있다(눅 4:20-22). 한편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일반적 관념으로는 '어떤 사람의 자리에 앉다'라는 것은 보통 '어떤 사람의 권위를 계승(繼承)하다'는 의미로 이해 되어졌다고 전한다(왕상 1:35,46;시 132:12;Jos.,Antiq. VII, 353, XVII,2). 따라서 율법 강론(講論)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았던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모든 권위를 전수받은 공식적인 모세의 법적 계승자들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그릇된 권위의식을 통박(痛駁)하시면서 계속해서 언행(言行)이 불일치한 그들의 허구성을 고발하셨다(3절 이하).

 

 

 

판타 운 호사 안 에이포신 휘민 테레인 테레이테 카이 포이에이테 카타 데 타 에르가 아우톤 메 포이에이테 레구신 가르 카이 우 포이우신

 

개역개정,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새번역,3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우리말성경,3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행하고 지키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가톨릭성경,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영어NIV,3 So you must obey them and do everything they tell you. But do not do what they do, for they do not practice what they preach.
영어NASB,3 therefore all that they tell you, do and observe, but do not do according to their deeds; for they say things and do not do them.
영어MSG,3  You won't go wrong in following their teachings on Moses. But be careful about following them. They talk a good line, but they don't live it. They don't take it into their hearts and live it out in their behavior. It's all spit-and-polish veneer.
영어NRSV,3 therefore, do whatever they teach you and follow it; but do not do as they do, for they do not practice what they teach.
헬라어신약Stephanos,3 παντα ουν οσα αν ειπωσιν υμιν τηρειν τηρειτε και ποιειτε κατα δε τα εργα αυτων μη ποιειτε λεγουσιν γαρ και ου ποιουσιν
라틴어Vulgate,3 omnia ergo quaecumque dixerint vobis servate et facite secundum opera vero eorum nolite facere dicunt enim et non faciunt
히브리어Modern,3 לכן כל אשר יאמרו לכם תשמרו לעשות אך כמעשיהם לא תעשו כי אמרים הם ואינם עשים׃
 

성 경: [마23:3]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 이 구절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율법의 교훈들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즉 예수께서 힐책(詰責)하신 것은 단지 가르침과 행함이 일치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율 배반적(二率背反的)인 삶의 태도였을 뿐이다. 사실 그들이 가르치는 바 율법 그 자체는 그들의 실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참된 진리요 신앙인의 실천 강령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행하고 지키되'라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을 빌어 강력한 어조로 그들의 가르침을 준수하라고 명하셨다. 한편 '행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사테'(*)는 상세하고도 철두철미하게 실행한다는 뜻이며, '지키되'의 원어 '테레이테'(*)는 거의 몸에 배듯이 자연스럽고도 완벽하게 지킨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이 땅에 율법의 폐기자(廢棄者)가 아닌 완성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인간이 마땅히 습관처럼 지켜야만 될 절대적인 진리임을 천명(闡明)하셨다. 실로 참 진리는 어떤 구조적 모순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빛을 발하며 모든 인간의 삶을 인도하는 등불이 된다(시 119:105).

 

 

 

데스뮤우신 가르 포르티아 바레아 카이 뒤스바스탘타 카이 에피티데아신 에피 투스 오무스 톤 안드로폰 토 데 닼튈로 아우톤 우 델루신 키네사이 아우타

 

개역개정,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새번역,4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말성경,4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고는 정작 자신은 그 짐을 옮기는 데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는구나. 
가톨릭성경,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어NIV,4 They tie up heavy loads and put them on men's shoulders, but they themselves are not willing to lift a finger to move them.
영어NASB,4 "They tie up heavy burdens and lay them on men's shoulders, but they themselves are unwilling to move them with so much as a finger.
영어MSG,4  "Instead of giving you God's Law as food and drink by which you can banquet on God, they package it in bundles of rules, loading you down like pack animals. They seem to take pleasure in watching you stagger under these loads, and wouldn't think of lifting a finger to help.
영어NRSV,4 They tie up heavy burdens, hard to bear, and lay them on the shoulders of others; but they themselves are unwilling to lift a finger to move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4 δεσμευουσιν γαρ φορτια βαρεα και δυσβαστακτα και επιτιθεασιν επι τους ωμους των ανθρωπων τω δε δακτυλω αυτων ου θελουσιν κινησαι αυτα
라틴어Vulgate,4 alligant autem onera gravia et inportabilia et inponunt in umeros hominum digito autem suo nolunt ea movere
히브리어Modern,4 כי אסרים משאת כבדים ועמסים על שכם האנשים ולא יאבו להניעם אף באצבעם׃

 
성 경: [마23:4]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우되 - 이 구절은 3절에서 언급한 내용, 즉 바리새인들의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에 의한 위선적인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충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엄격성이나 막중한 의무(Alford)라 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바리새인들의 자의적 율법 해석에 따른 각종 규범과 전통적인 계율들 및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세분화된 규칙과 예법 등을 가리킨다. 실로 그들은 율법의 생활 규범을 613개 조항으로 세분화하여 백성들의 생활 전반에 적용토록 강요했었다. 즉 그들은 마치 운반하기 곤란할 정도의 무거운 나무단이나 곡식단처럼 성가시고 귀찮고 감당키 어려운 규칙들을 만들어 그것들을 백성의 어깨에 지움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을 율법의 보지자(保持者)가 아닌 곡해된 율법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근본정신을 도외시하고 자기들의 의(義)에 도취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첫번째 잘못이었다.

󰃨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두번째 잘못이다. 즉 그들은 성가신 규칙들을 고의적으로 회피하거나 복종하기를 거절했던 것이(Born-Kamm,Josef Schmid,Schweizer, Sand) 아니라 그들이 만든 힘겨운 규칙들에 눌려 쓰러져가는 자들을 위해 그 의무 규정을 가볍게 해주거나 실천 가능하도록 그 짐들을 경감(輕減)시켜주는 등의 도움주기를 거절했던 것이다(Manson, McNeile, Filson). 여기서 '손가락'이란 앞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사람의 어깨'와 대조되는 말로서, 결국 '손가락으로 움직인다'는 표현은 아주 사소한 도움이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자그마한 배려를 뜻한다. 진정 그들은 율법이 근본 명하는 바 의(義)와 인(仁)과 신(信)에 대한 관심은 멀리한채 오히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같은 미세한 규범을 크게 부각시켜 백성들의 어깨에 종교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짐을 부과하였다(23절;행 15:10;갈 5:1). 진정 그들은 가르치고, 부과하고, 제한만을 일삼았을 뿐 그 짐을 대신 지거나, 나누어지거나, 가볍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가르치실 뿐 아니라 그 짐을 대신 지시고, 나누어지셨다. 그분은 단호한 어조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11:30) 말씀하시며 당신의 가르침에 동참하기를 요구하신다.

 

 

 

판타 데 타 에르가 아우톤 포이우신 프로스 토 데아데나이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플라튀누신 데 타 퓔랔테리아 아우톤 카이 메갈뤼누신 타 크라스페다 톤 히마티온 아우톤

 

개역개정,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새번역,5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 ㉠성경구절이 들어 있는 곽으로서 이마나 팔에 달고 다님
우리말성경,5 그들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모든 행동을 한다. 그들은 성구상자를 넓게 만들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리며 
가톨릭성경,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영어NIV,5 "Everything they do is done for men to see: They make their phylacteries wide and the tassels on their garments long;
영어NASB,5 "But they do all their deeds to be noticed by men; for they broaden their phylacteries and lengthen the tassels of their garments.
영어MSG,5  Their lives are perpetual fashion shows, embroidered prayer shawls one day and flowery prayers the next.
영어NRSV,5 They do all their deeds to be seen by others; for they make their phylacteries broad and their fringes long.
헬라어신약Stephanos,5 παντα δε τα εργα αυτων ποιουσιν προς το θεαθηναι τοις ανθρωποις πλατυνουσιν δε τα φυλακτηρια αυτων και μεγαλυνουσιν τα κρασπεδα των ιματι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5 omnia vero opera sua faciunt ut videantur ab hominibus dilatant enim phylacteria sua et magnificant fimbrias
히브리어Modern,5 ועשים את כל מעשיהם להראות בהם לבני אדם כי מרחיבים את תפליהם ומגדילים את ציציותיהם׃
 

성 경: [마23:5]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 6:1에 이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행하는 허영적인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여기서 예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행위 전체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짓임을 선언한다. 그들은 은밀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일종의 가증한 연극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람의 영광과 찬사와 인정을 더 사랑하는 자이다(요 12:43). 결국 이러한 비판은 사람이 갖고 있는 잠재적 심리를 정확히 찌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에 빠지기 쉽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숨겨져 있는 잠재적인 욕망까지 모두 제거하는 근본적 인간 변화를 암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 그 차는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 신약성경에서 경문(phylactery)이라는 단어는 여기서만 나타난다. 헬라어로 '퓔랖테리온'(*)이라고 하는 이 '경문'은 본래 '보호물', '호신패'(護身牌), '부적' 등의 뜻으로서 '표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토타포트'(*)라는 말에서(신 6:8) 유래한 것인데 예수 당시에는 유대인들에 의해 '기도의 끈'이라는 뜻인 히브리어 '테필로트'(*) 또는 '테필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퓔랖테리온'은 바로 이 '테필로트'의 번역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기 이후부터 이것을 차고 다녔는데 처음에는 율법을 기억하고 경건에 힘쓸 목적이었으나, 차차 자기 경건을 과시할 목적으로 혹은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믿는 이교도들의 부적 같은 것으로 믿고 착용하게 되었다. 여하튼 이 경문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율법서에서 취한 네 부분들(출 13:2-10;11-16;신 6:4-9;11:13-21)을 써 넣은 한 조각의 고급 피지(皮紙)를 담은 사각형의 상자였는데 묶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가죽이나 양피지로 덮혀 있었다. 유대인들은 출 13:9,16;신 6:8;11:18을 여자적(如字的)이고 미신적으로 해석하여 왼팔 안쪽 부위에나 앞 이마에 가죽끈으로 부착하였다. 이 두 부분은 심장과 가까운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한편 처음 이것을 부착하기 시작했던 때는 아침 '쉐마'(신 6:4,5) 기도 때 뿐이었으나 점차 하루 종일 차는 것이 관행(慣行)으로 되었고 심지어는 취침 때에도 부착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경문'의 크기는 주로 랍비들에 의해 규정되었지만 극단의 경건주의자들(사실은 외식주의자들)은 자신의 경건을 과시할 목적으로 크고 눈에 잘 띄는 경문을 만들었으며 그와 더불어 묶은 끈을 푸는 법과 매는 법에 대한 세세한 규정(規定)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 옷술을 크게 하고 - '옷술'이란 민 15:38;신 22:12등에 명한대로 '심라'(*)라는 겉옷의 네귀에 단 '술'(tassel)을 가리킨다(9:20). 그런데 이 '술'은 석류 문양의 장식으로 된 것이며, 주로 단청색실로 짰다고 한다. 여기 이 청색은 하늘의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의 영원성 및 순결성을 상징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청색의 '술'을 달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 자기의 거룩성을 자랑하는데 힘썼다. 더욱이 그들은 이 옷술을 크고 길게하여 될 수 있는한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려 했다. 사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관례에 따라 자신의 의복에 '술'을 다는 예를 취하셨지만(9:20;14:36)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의 탈(mask)로서 착용하신 것은 아니었다.

 

 

 

필루신 테 텐 프로토클리시안 엔 토이스 데이프노이스 카이 타스 프로토카데드리아스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개역개정,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새번역,6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우리말성경,6 잔치에서는 상석을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한다. 
가톨릭성경,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영어NIV,6 they love the place of honor at banquets and the most important seats in the synagogues;
영어NASB,6 "They love the place of honor at banquets and the chief seats in the synagogues,
영어MSG,6  They love to sit at the head table at church dinners, basking in the most prominent positions,
영어NRSV,6 They love to have the place of honor at banquets and the best seats in the synagogues,
헬라어신약Stephanos,6 φιλουσιν τε την πρωτοκλισιαν εν τοις δειπνοις και τας πρωτοκαθεδριας εν ταις συναγωγαις
라틴어Vulgate,6 amant autem primos recubitus in cenis et primas cathedras in synagogis
히브리어Modern,6 ואהבים את הסבת הראש בסעודות ואת מושבי הראש בבתי הכנסיות׃
 

성 경: [마23:6]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 - 막 12:39에서는 어순이 바뀌어 나온다. 즉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으로 어순이 짜여 있다. 강조점을 우선하여 표현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마가복음은 회당에 강조점을, 마태복음은 잔치에 강조점을 더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여기서 '잔치'(*, 테이프나)란 많은 손님을 초대하며 밤이 맞도록 즐기는 저녁 식사(supper)를 가리킨다. 이 잔치 자리의 '상석'(上席)은 상을 중심으로 바닥에 기댄 채 식사하는 유대 또는 헬라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출입구에서 제일 안쪽에는 잔치의 주역이, 그리고 그 오른쪽 끝에는 가장 귀한 손님이 앉는다. 이 우측 상단 끝이 바로 '상석'으로서 이곳에서는 몸을 틀거나 고개를 좌우로 하지 않아도 식탁 전면을 바라볼 수 있다. 한편 유대인들은 이 상석을 매우 원했기 때문에 연회마다 이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소한 시비(是非)가 발생했다고 한다(눅 14:7). 이같은 상석 차지는 결국 세상의 명예와 영광에 심취해 있는 바리새인들의 타락한 명예욕을 대변해 준다. 이와 함께 '회당의 상좌'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배치된 회당 내부 중 사람들을 정면으로 바라볼수 있는 회당 관리자 옆, 곧 궤 앞의 우측상단의 자리이다. 이 자리에 존경받는 자들 및 회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앉아 지혜를 설파하곤 했다고 한다(Lenski). 바리새인들은 참다운 예배보다는 바로 상좌 차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인데, 이는 그들의 추악한 종교적 명예욕을 대변해 준다(약 2:2, 3). 실로 그들은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과 허영적 욕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적 즐거움(잔치)과 신앙적 희열(회당)을 놓쳐버린 채 메마르고 배타적(排他的)인 삶에 찌들어 있었다.

 

 

 

카이 투스 아스파스무스 엔 타이스 아고라이스 카이 칼레이스다이 휘포 톤 안드로폰 랍비 랍비

 

개역개정,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새번역,7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 ㉡스승을 일컫는 히브리 말의 그리스어 음역
우리말성경,7 시장에 가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한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가톨릭성경,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영어NIV,7 they love to be greeted in the marketplaces and to have men call them 'Rabbi.'
영어NASB,7 and respectful greetings in the market places, and being called Rabbi by men.
영어MSG,7  preening in the radiance of public flattery, receiving honorary degrees, and getting called 'Doctor' and 'Reverend.'
영어NRSV,7 and to be greeted with respect in the marketplaces, and to have people call them rabbi.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τους ασπασμους εν ταις αγοραις και καλεισθαι υπο των ανθρωπων ραββι ραββι
라틴어Vulgate,7 et salutationes in foro et vocari ab hominibus rabbi
히브리어Modern,7 ואת שאלות שלומם בשוקים ואת אשר יקראו להם בני האדם רבי רבי׃
 

성 경: [마23:7]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

󰃨 시장에서 문안(問安) 받는 것 - 시장 역시 공공장소이다. 공공장소에서 인사를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월성을 인정받는 것이 된다.

󰃨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 - 랍비(*)는 히브리어(*, 랍비)를 음역한 말로서 '나의 주', '나의 선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 용어는 존경의 표시이지만 때로는 자기 과시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랍비 학교에서는 흔히 이 용어를 반복(랍비여, 랍비여)하여 부르게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예수보다 한 시대 이전 시대인 힐렐(Hillel, 당시 유대교 율법 주석가 중 한 사람, A.D. 10.년경 사망) 때부터 사용 되었다. 그런데 이말이 공식적 직책으로 사용된 시기는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로 추정된다. 어쨌든 이 말은 존경의 표현으로서 사용되었던 것이었는데 예수에게도 사용된 바 있다(26:25,49;요 1:38;3:26). 물론 이 용어는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어떤 특수한 신분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고착되었다. 한편 탈무드 시대(Talmudic times, A.D.3-5C)에는 랍비의 지위가 상당하여 랍비의 제자는 그의 명령에 어떤 이의(異議)도 제기할 수 없는 절대 복종만이 가능했으며, 그의 앞이나 옆에서 걸어갈 수도 없었고 먼저 그에게 인사를 건넬 수도 없었다(Moses, Aberbach). 그러나 예수 당시에는 아직 랍비의 지위가 그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휘메이스 데 메 클레데테 랍비 헤이스 가르 에스틴 휘몬 호 카데게테스 호 크리스토스 판테스 데 휘메이스 아델포이 에스테

 

개역개정,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새번역,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 ㉢스승을 일컫는 히브리 말의 그리스어 음역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 너희 선생은 오직 한 분뿐이며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영어NIV,8 "But you are not to be called 'Rabbi,' for you have only one Master and you are all brothers.
영어NASB,8 "But do not be called Rabbi; for One is your Teacher, and you are all brothers.
영어MSG,8  "Don't let people do that to you, put you on a pedestal like that. You all have a single Teacher, and you are all classmates.
영어NRSV,8 But you are not to be called rabbi, for you have one teacher, and you are all students.
헬라어신약Stephanos,8 υμεις δε μη κληθητε ραββι εις γαρ εστιν υμων ο καθηγητης ο χριστος παντες δε υμεις αδελφοι εστε
라틴어Vulgate,8 vos autem nolite vocari rabbi unus enim est magister vester omnes autem vos fratres estis
히브리어Modern,8 אולם אתם אל תקראו רבי כי אחד הוא רבכם המשיח ואתם אחים כלכם׃
 

성 경: [마23:8]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성도의 바른 자세]

󰃨 그러나 너희는 - 여기서 이야기가 전환되고 있다. 즉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율법 학자들을 향한 비판을 일단락 짓고 '너희는'(*, 휘메이스)이란 말을 강조하시어 청중과 제자들에게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이로써 예수의 설교가 단순히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 이는 겸손에의 요청인 동시에 당시의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의 권위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예수께서는 한 하나님, 한 주님을 모신 교회구성원 안에서 단지 하나님의 일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는 허영심(虛榮心)이나 계급 의식을 버리고 오직 섬김의 자세를 취하라고 말씀하신다(20:25-28). 특별히 '받지 말라'(*, 메 클레데테)란 부정 과거형으로서 어느 때라도 칭함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이 금지 조치가 바리새인의 교만을 지적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당시 특권 의식을 지니고 사람들의 존경을 기대하던 특수 교권주의자들의 권위를 철저히 분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금지 조치는 제한적이며 정신적인 교훈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예수께서는 여기서 교회 내의 지도자들이나 교사들에 대한 존경 의식마저 금지시키신 것이 아니었다(고전 11:1;12:28;엡 4:11-13;딤전 1:2). 교직에 대한 합당한 칭호는 지나친 공명심(功明心)이나 사사로운 명예욕에 근거하지 않는 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 너희 선생은 하나요 - 시내산 사본이나 베자사본 등에는 본문의 '선생'(*, 디다스칼로스) 대신에 '지도자'(*, 카데게테스)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문맥의 흐름상 '지도자'란 말은 10절 이하에서부터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본절에서는 바티칸사본이 제시한 바대로 '선생'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한편 본문의 '너희 선생'이 과연 누구냐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다. 즉 (1)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Carson). (2) 하늘에 계신 모든 존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Bengel, The Puplit Commentary). (3) 각 개인의 내면에 내주하셔서 가르치시는 성령이시다(Alford). 이 가운데 (1)의 견해는 비록 후대에 수정된 사본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나 본문의 표현이 추구하는 바가 예수로 보기에는 부적절한 점이 많다. 이에 비해 뒤이어지는 '너희는 다 형제니라'는 말에 근거해 성도들은 모두가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점에서 (2)의 견해가 자연스럽다고 본다(16:17;요 6:45;행 10:28). 이와 더불어 예수께서 유언적 메시지로 성도들의 영원한 안내자요 교사이신 성령(聖靈)을 약속하셨다는 점에서(요 14:26), 그리고 뒤이어지는 성부(聖父, 9절)와 성자(聖子, 10절)에 대한 각각의 권위에 대한 삼위 일체(三位一體)하나님의 탁월함을 암시하는 구절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3)의 견해도 무시는 할 수 없다.

󰃨 너희는 다 형제니라 - 단 한 분, 영원한 랍비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형제라는 이 선언은 (1) 인간중에는 하나님의 권위를 능가할 자가 아무도 없으며 (2) 지금껏 누려왔던 종교상의 독재나 특권을 모두 폐지(廢止)하시는 것이다. (3) 그리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므로 어떤 직책이나 전통(傳統)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갈 수는 없음을 명시하신 것이다.

 

 

 

카이 파테라 메 칼레세테 휘몬 에피 테스 게스 헤이스 가르 에스틴 호 파테르 휘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우라니오스

 

개역개정,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새번역,9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우리말성경,9 또 너희는 누구든지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며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영어NIV,9 And do not call anyone on earth 'father,' for you have one Father, and he is in heaven.
영어NASB,9 "Do not call anyone on earth your father; for One is your Father, He who is in heaven.
영어MSG,9  Don't set people up as experts over your life, letting them tell you what to do. Save that authority for God; let him tell you what to do. No one else should carry the title of 'Father'; you have only one Father, and he's in heaven.
영어NRSV,9 And call no one your father on earth, for you have one Father--the one in heaven.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πατερα μη καλεσητε υμων επι της γης εις γαρ εστιν ο πατηρ υμων ο 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
라틴어Vulgate,9 et patrem nolite vocare vobis super terram unus enim est Pater vester qui in caelis est
히브리어Modern,9 ואל תקראו אב לאיש מכם על האדמה כי אחד הוא אביכם אשר בשמים׃
 

성 경: [마23:9]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성도의 바른 자세]

󰃨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 여기서 '땅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가 대비 되고 있다. 먼저 '아비'(*)란 최고의 권위를 인정하는 용어로서, 특히 '땅의 아버지'라 함은 그 시대 이전의 율법선생, 또는 위대한 스승, 원로 교사. 어떤 학파의 태두(泰斗) 등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Prike,Aboth). 유대인들은 위와 같은 자들을 절대적으로 숭상(崇尙)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요 4:12). 한편 예수께서는 '땅의 아비'를 '하늘의 아버지'와 대비시켜 종교적인 의미에서 어떠한 사람의 영광과 권위도 하나님의 권위에 미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바리새인처럼 사람으로부터 찬양받으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암시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로마 카톨릭의 교황과 같은 종교적 특별 대우는 분명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실로 초대고회 성도들은 오직 종교상의 아버지로 하나님 한 분만을 인정하였었다(고전 8:6;고후 6:18). 그러나 이 교훈은 광의적,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즉 이 '아비'란 육친적으로도 능히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 교회의 아버지로, 디모데의 아버지로 스스럼없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고전 4:15;딤전 1:2).

 

 

 

메데 클레데테 카데게타이 에이스 가르 휘몬 에스틴 호 카데게테스 호 크리스토스

 

개역개정,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새번역,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함
우리말성경,10 너희는 지도자라고 불려서도 안 된다. 너희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영어NIV,10 Nor are you to be called 'teacher,' for you have one Teacher, the Christ.
영어NASB,10 "Do not be called leaders; for One is your Leader, that is, Christ.
영어MSG,10  And don't let people maneuver you into taking charge of them. There is only one Life-Leader for you and them--Christ.
영어NRSV,10 Nor are you to be called instructors, for you have one instructor, the Messiah.
헬라어신약Stephanos,10 μηδε κληθητε καθηγηται εις γαρ υμων εστιν ο καθηγητης ο χριστος
라틴어Vulgate,10 nec vocemini magistri quia magister vester unus est Christus
히브리어Modern,10 גם אל תקראו מנהיגים כי אחד הוא מנהיגכם המשיח׃
 

성 경: [마23:10]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성도의 바른 자세]

󰃨 지도자 - 신약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나는 단어로서 헬라어로 `카데게타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앞서간다', `안내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카데게테스'(*)의 복수형태이다. 따라서 이 말은 '교사', '스승'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특히 이들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완전한 모범이 되며 그 각각의 제자들을 책임지는 전인적인 스승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감히 자신들에게 이 용어를 붙이곤 했다(롬 2:19,20). 실로 자기를 추켜 세워 선생이요, 지도자라 하여 사람들은 끌어 모아 이끌어가는 교만한 사람들이 많았던 그 혼란의 시대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한 분만 참된 스승이요, 참된 지도자라고 못박는다. 실로 예수께서 앞서(2-7절) 자칭 '지도자'라는 자들의 모순됨을 파헤쳐 비판한 바와같이 그들은 지도자의 자격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자들이었다. 진정 전인격적인 면에서 모든 이를 바르게 인도하실 분은 예수 한 분 밖에 없다(히 12:2).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전인격을 그분께 맡기고 오직 그분의 가르침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앞서 가시는 그 분만을 바라며 좇아가야 할 것이다(11:28).

 

 

 

호 데 메이존 휘몬 에스타이 휘몬 디아코노스

 

개역개정,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새번역,11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말성경,11 너희 중 가장 큰 사람은 너희 종이 돼야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어NIV,11 The greatest among you will be your servant.
영어NASB,11 "But the greatest among you shall be your servant.
영어MSG,11  "Do you want to stand out? Then step down. Be a servant.
영어NRSV,11 The greatest among you will be your servant.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 δε μειζων υμων εσται υμων διακονος
라틴어Vulgate,11 qui maior est vestrum erit minister vester
히브리어Modern,11 והגדול בכם יהי לכם למשרת׃
 

성 경: [마23:11]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성도의 바른 자세]

󰃨 너희 중에 큰 자는 - 이는 예수께서 질서상 인간 사회(교회 포함)에는 계급이 형성될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큰' 것이 한 개인의 영광과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겸손과 신뢰와 헌신으로 아래 사람을 섬기는데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0:26,27).

󰃨 섬기는 자(*, 디아코노스) - 타인의 유익만을 위해 성심껏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자를 가리킨다. 실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인정하며 사람들이 존경하는 '큰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정녕 이들의 권위와 능력은 오직 섬김과 봉사와 헌신과 겸손을 통해 드러난다.

 

 

 

호스티스 데 휲소세이 헤아우톤 타페이노데세타이 카이 호스티스 타페이노세이 헤아우톤 휲소데세타이

 

개역개정,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새번역,12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우리말성경,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가톨릭성경,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영어NIV,12 For whoever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and whoever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영어NASB,12 "Whoever exalts himself shall be humbled; and whoever humbles himself shall be exalted.
영어MSG,12  If you puff yourself up, you'll get the wind knocked out of you. But if you're content to simply be yourself, your life will count for plenty.
영어NRSV,12 All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all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στις δε υψωσει εαυτον ταπεινωθησεται και οστις ταπεινωσει εαυτον υψω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12 qui autem se exaltaverit humiliabitur et qui se humiliaverit exaltabitur
히브리어Modern,12 כל המרומם את עצמו ישפל והמשפיל את עצמו ירומם׃
 

성 경: [마23:12]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성도의 바른 자세]

󰃨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 본문의 역설적 교훈은 자연법(natural law)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법을 반영한다. 즉 종말의 심판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는 자를 낮추고, 낮아진 자를 높일 것이다(겔 21:26). 그리고 본문이 전하는 것은 겸손과 봉사이지 겸손과 혼성된 노예적 봉사 행위나 바보스러움은 아니다. 한편 이러한 형태의 구절은 복음서에서 여러 군데 발견된다(18:4,눅 14:11;18:14). 빌립보서 2:8, 9에서는 '그리스도가 자기를 낮추시고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20:26-28에서는 예수 자신이 섬기러 왔음을 선언하고 있다. 실로 그가 보여준 겸손이나 타인에의 봉사는 굴욕적이고 노예적인 봉사 행위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그가 행사하는 최고의 권위와 완벽히 조화되었다. 예수는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서의 최고의 겸손과 최상의 희생을 완수하신 후, 그 누구보다도 높임을 받으셨다(빌 2:8-11). 한편 이 역설적인 의미의 본문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1)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섬김의 자세이다. 다시 말해 훌륭하고 성숙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일수록 그 섬김과 겸손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이다. (2) 참된 지도자는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3) 이러한 진리는 명령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은 명령문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사랑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며 자발적 양심의 명령으로 하는 것이다.

 

 

 

우아이 데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클레이에테 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 엠프로스덴 톤 안드로폰 휘메이스 가르 우크 에이세르케스데 우데 투스 에이세르코메누스 아피에테 에이셀데인

 

개역개정,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새번역,1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 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말성경,13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아!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 문을 닫아 버렸다. 너희 자신만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막고 있구나. 
가톨릭성경,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영어NIV,13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shut the kingdom of heaven in men's faces. You yourselves do not enter, nor will you let those enter who are trying to.
영어NASB,13 "But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because you shut off the kingdom of heaven from people; for you do not enter in yourselves, nor do you allow those who are entering to go in.
영어MSG,13  "I've had it with you!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you Pharisees! Frauds! Your lives are roadblocks to God's kingdom. You refuse to enter, and won't let anyone else in either.
영어NRSV,13 "But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lock people out of the kingdom of heaven. For you do not go in yourselves, and when others are going in, you stop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3 ουαι δε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κατεσθιετε τας οικιας των χηρων και προφασει μακρα προσευχομενοι δια τουτο ληψεσθε περισσοτερον κριμα
라틴어Vulgate,13 vae autem vobis scribae et Pharisaei hypocritae quia clauditis regnum caelorum ante homines vos enim non intratis nec introeuntes sinitis intrare
히브리어Modern,13 אך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סגרים אתם לפני האדם את מלכות השמים הן אתם לא תבאו בה ואת הבאים לא תניחו לבוא׃

성 경: [마23:13]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첫번째 저주 선언]

󰃨 화 있을진저 - 헬라어 '우아이'(*),는 '오, 슬프다', `아이고'하는 탄식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저주가 있을지어다'라는 저주를 선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저주를 내리는 선언문이다. 그런데 이 저주는 2중적 심판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즉 현재적이며(24:1,2) 또한 종말적(미래적)이다(계 20:7-15). 여기서부터는 계속하여 헬라어 '우아이'로 시작되는 저주문이 7가지로 이어진다. 이러한 저주 선언문을 흔히 7화(禍)선언이라 한다. 이 7화 선언은 예수의 신적 인격이 총동원될 만큼 중엄하며, 결코 감정적이지 않은 조용하고도 진실한, 그리고 궁극적으로 상대의 자숙(自肅)과 회개를 촉구하며 상대를 압도하는 권위에 찬 선언이었다(Lenski). 예수께서는 이 7화의 대상이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임을 말한다. 외식이라는 말은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 연극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인 헬라어 '휘포크리타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으로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위선자'로 번역 되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내린 호칭은 '위선자'라는 아주 모욕적인 언어이다. 이같은 과격한 말은 6:2, 5,16;7:5에 그리고 22:18에도 나온다. 이렇게 위선자라고 단정짓는 이유는 앞부분(2-7절)에서 열거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때문이다.

󰃨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 여기서는 위선자들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 천국 문 - 천국에 들어가는 표현을 '천국 문'으로 표현한 것은 7:7,8,13,14; 25:10에도 나타난다. 평행구절인 눅 11:52에서는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라고 서술한다. 이 말은 (1)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진리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지식의 만용을 부려 율법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어려운 법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에게 짐을 지워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4절). (2) 진리를 독점(獨占)하고 있으면서 실천을 하지 않아, 자신 마저도 천국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그들이 열쇠를 독점하여 들어 가고자하는 다른 사람까지도 못 들어가게 방해한다. (3) 위선자들의 위선적인 행위는 간접적인 방해가 아닌 적극적으로 천국으로 행하는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곧 그들의 천국 문까지 닫아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 교회 역사를 통해, 교회 문을 막는 사람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특히 신앙이 좋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개역개정,14 (없음) 
새번역,14 (없음)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14. 이 위선자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과부의 집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다'가 첨가되어 있음
우리말성경,14 (없음) 
가톨릭성경,14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영어NIV,14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show make lengthy prayers. Therefore you will be punished more severely.
영어NASB,14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because you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pretense you make long prayers; therefore you will receive greater condemnation.}
영어MSG,14  (OMITTED TEXT)
영어NRSV,14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devour widow' houses and for the sake of appearance you make long prayers; therefore you will receive the greater condemnation.(난외)
헬라어신약Stephanos,14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κλειετε την βασιλειαν των ουρανων εμπροσθεν των ανθρωπων υμεις γαρ ουκ εισερχεσθε ουδε τους εισερχομενους αφιετε εισελθειν
라틴어Vulgate,14 (없음)
히브리어Modern,14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בלעים אתם את בתי האלמנות ומאריכים בתפלה למראה עין תחת זאת משפט על יתר תקחו׃


성 경: [마23:14]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첫번째 저주 선언]

본절은 권위있는 고대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대의 일부 사본들(8,9세기의 모스코, 아도스 사본 등)에는 개역 성경의 13절이 14절에 실려있고 대신 13절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과부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심판이 더욱 무거우리라'(KJV)로 되어 있다. 이는 막 12:40과 눅 20:47에서 보충한 후대 필사자들의 인용으로 볼 수 있다.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페리아게테 텐 달라싼 카이 텐 크세란 포이에사이 헤나 프로셀뤼톤 카이 호탄 게네타이 포이에이테 아우톤 휘온 게엔네스 디플로테론 휘몬

 

개역개정,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새번역,15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그, '게헨나'
우리말성경,15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아!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육지와 바다를 두루 다니다가 정작 누군가 개종자가 되면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 
가톨릭성경,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영어NIV,15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travel over land and sea to win a single convert, and when he becomes one, you make him twice as much a son of hell as you are.
영어NASB,15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because you travel around on sea and land to make one proselyte; and when he becomes one, you make him twice as much a son of hell as yourselves. 
영어MSG,15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Frauds! You go halfway around the world to make a convert, but once you get him you make him into a replica of yourselves, double-damned.
영어NRSV,15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cross sea and land to make a single convert, and you make the new convert twice as much a child of hell as your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περιαγετε την θαλασσαν και την ξηραν ποιησαι ενα προσηλυτον και οταν γενηται ποιειτε αυτον υιον γεεννης διπλοτερον υμων
라틴어Vulgate,15 vae vobis scribae et Pharisaei hypocritae quia circuitis mare et aridam ut faciatis unum proselytum et cum fuerit factus facitis eum filium gehennae duplo quam vos
히브리어Modern,15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סובבים אתם בים וביבשה למען גיר גר אחד וכי יתגיר תעשו אותו לבן גיהנם כפלים יותר מכם׃
 

성 경: [마23:15]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두번째 저주 선언]

󰃨 교인 하나 지옥 자식이 되게 - 두번째 저주 선언문이다. 역시 저주의 대상은 위선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다. 여기서 먼저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란 13절의 소극적인 면과는 대조적으로 적극적인 활약상을 암시한다. 한편 당시 유대교인들은 선교에 적극성을 띠었다고 전한다(Josephus, Antiq. XX 2,4; Calvin, Bengel). 물론 그들 유대인들의 전도 활동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갖는 파당적인 종교적 성격을 추종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한편 여기 교인(*, 프로세뤼토스)이란 공동번역 성경과 같이 '개종자'로 이해해야 되는데 그 개종자들은 할례를 받고 성전세를 내는 등의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모든 전통과 규범을 따름으로써 유대화해야만 했다. 이런 절차상의 문제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지녔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무지한 이방사람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가르쳤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잘못된 진리를 배운 사람들을 더 지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지옥'은 헬라어로 '게엔나'(*)라고 표기되어 있다. 아람어로는 게힌남(*) 히브리어로는 '게힌놈'(*)이라고 음역되는데 이는 '힌놈 골짜기'(Valley of Hinnom)라고도 말한다.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계곡으로서 유대의 후기신앙은 최후의 심판이 그곳에서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복음서에서는 이 말이 죽음 이후에 벌을 받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지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33절;5:22). 한편 본문에서는 더 지독한 위선자를 생산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사악함을 강조 하기 위해 개종한 자들을 '지옥의 자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로 그 개종자들은 자신들의 이교적 습속(習俗)에다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관을 덧입힘으로써 구원과는 거리가 먼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의 개종자가 '배나 더' 지옥의 자식이라는 표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사악함을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개종자들이 더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욱 완고한 위선자들을 생산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한 저주를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전도를 위해 노력하지만 참으로 전도할 대상에게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우월감을 갖고 나간다거나 섬김의 자세 보다는 '선생'이라는 의식을 갖고 나간다면 도리어 교회 문을 막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피 전도자가 비록 교인이 된다 하여도 잘못 배워 잘못된 신앙으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 잘못된 성경관과 신앙은 제거되어야지 재생산 되어서는 안된다.

 

 

 

우아이 휘민 호데고이 튀플로이 호이 레곤테스 호스 안 오모세 엔 토 나오 우덴 에스틴 호스 드 안 오모세 엔 토 크뤼소 투 나우 오페일레이

 

개역개정,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새번역,16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우리말성경,16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앞을 못 보는 인도자들아! 너희는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 
가톨릭성경,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 고 너희는 말한다.
영어NIV,16 "Woe to you, blind guides! You say, 'If anyone swears by the temple, it means nothing; but if anyone swears by the gold of the temple, he is bound by his oath.'
영어NASB,16 "Woe to you, blind guides, who say, 'Whoever swears by the temple, that is nothing; but whoever swears by the gold of the temple, he is obligated.'
영어MSG,16  "You're hopeless! What arrogant stupidity! You say, 'If someone makes a promise with his fingers crossed, that's nothing; but if he swears with his hand on the Bible, that's serious.'
영어NRSV,16 "Woe to you, blind guides, who say, 'Whoever swears by the sanctuary is bound by nothing, but whoever swears by the gold of the sanctuary is bound by the oath.'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υαι υμιν οδηγοι τυφλοι οι λεγοντες ος αν ομοση εν τω ναω ουδεν εστιν ος δ αν ομοση εν τω χρυσω του ναου οφειλει
라틴어Vulgate,16 vae vobis duces caeci qui dicitis quicumque iuraverit per templum nihil est qui autem iuraverit in aurum templi debet
히브리어Modern,16 אוי לכם מנהלים עורים האמרים הנשבע בהיכל אין זאת מאומה והנשבע בזהב ההיכל יאשם׃
 

성 경: [마23:16]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소경된 인도자여 - 세번째 저주 선언문이다. 여기서 저주의 대상은 13절이나 15절과는 달리 '소경된 인도자'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 역시 진리에 눈이 먼 완고한 무지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10절;15:14). 자신들의 행실도 온전치 못하면서 자기를 따르라 하는 지도자는 자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지옥으로 빠뜨린다.

󰃨 성전으로 맹세(盟勢)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 이 말은 성소나 지성소 또는 제단등의 건물로서의 성전을 근거로 맹세하면 이를 기필코 지켜야 하는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맹세의 구속력을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성전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권위를 모독하는 가르침이다.

󰃨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 여기서 '성전의 금'이란 성전에 바치는 예물로서의 금이라고 볼 수도 있고, 성전 안에 비치된 금장식 또는 성전 금고에 간직된 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하튼 본문은 제사나 하나님보다 성전 제물에 더 큰 관심을 지닌 바리새주의자들(교권주의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준다. 그러나 실로 율법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하나님과 맹세했을 경우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민 30장).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돈을 두고 맹세한 것만 효력(效力)이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거짓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황금보다 낮추어 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셨던 예수께서는 그런 것이라면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고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5:33-37). 예수께서는 인간의 탐욕과 공명심에 근거하여, 실천 의지가 전혀 깃들지 않은 맹세를 철저히 거부해야 할 것으로 말한다.

 

 

 

모로이 카이 튀플로이 티스 가르 메이존 에스틴 호 크뤼소스 에 호 나오스 호 하기아존 톤 크뤼손

 

개역개정,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새번역,17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우리말성경,17 이 어리석고 앞을 못 보는 사람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가톨릭성경,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영어NIV,17 You blind fools! Which is greater: the gold, or the temple that makes the gold sacred?
영어NASB,17 "You fools and blind men! Which is more important, the gold or the temple that sanctified the gold?
영어MSG,17  What ignorance! Does the leather on the Bible carry more weight than the skin on your hands?
영어NRSV,17 You blind fools! For which is greater, the gold or the sanctuary that has made the gold sacre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μωροι και τυφλοι τις γαρ μειζων εστιν ο χρυσος η ο ναος ο αγιαζων τον χρυσον
라틴어Vulgate,17 stulti et caeci quid enim maius est aurum an templum quod sanctificat aurum
히브리어Modern,17 אתם הכסילים והעורים כי מה הוא הגדול אם הזהב או ההיכל המקדש את הזהב׃
 

성 경: [마23:17]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 여기서 다시 16절에서 지칭하였던 '소경된 인도자'를 우맹(愚氓)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우맹을 가리키는 헬라어 '모로이'(*)라는 말은 지각과 판단력이 결여된 '어리석은'(foolish)이라는 뜻으로서 5:22;고전 3:18,딤후 2:23등에서도 나온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말을 사용하여 저주받은 자들에 대한 경멸적 표현을 점증시킨다.

󰃨 어느 것이 크뇨 - 이 구절은 16절에서 묘사한 행위에 대하여 반문하면서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즉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지키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책망하면서 그 답이 너무도 자명(自明)한 질문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명쾌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게 하고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극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이와 같은 질문의 의미는 신앙의 척도가 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로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들(하나님, 성전)에 의해 부차적으로 거룩한 것(성전의 금)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카이 호스 에안 오모세 엔 토 뒤시아스테리오 우덴 에스틴 호스 드 안 오모세 엔 토 도로 토 에파노 아우투 오페일레이

 

개역개정,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새번역,18 또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우리말성경,18 너희는 또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제단에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가톨릭성경,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 고 말한다.
영어NIV,18 You also say, 'If anyone swears by the altar, it means nothing; but if anyone swears by the gift on it, he is bound by his oath.'
영어NASB,18 "And, 'Whoever swears by the altar, that is nothing, but whoever swears by the offering on it, he is obligated.'
영어MSG,18  And what about this piece of trivia: 'If you shake hands on a promise, that's nothing; but if you raise your hand that God is your witness, that's serious'?
영어NRSV,18 And you say, 'Whoever swears by the altar is bound by nothing, but whoever swears by the gift that is on the altar is bound by the oath.'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ος εαν ομοση εν τω θυσιαστηριω ουδεν εστιν ος δ αν ομοση εν τω δωρω τω επανω αυτου οφειλει
라틴어Vulgate,18 et quicumque iuraverit in altari nihil est quicumque autem iuraverit in dono quod est super illud debet
히브리어Modern,18 ואמרתם הנשבע במזבח אין מאומה והנשבע בקרבן אשר עליו יאשם׃
 

성 경: [마23:18]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너희가 또 이르되 지킬지라 - 여기서 다시 16절의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소경된 자'가 '너희'로 바뀌고, '성전'이 '제단'으로 바뀌었고, '성전의 금'이 '그 위에 있는 예물'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17절과 19절도 서로 대칭되고 있다. 이런 형태는 마태복음의 특징인 대칭적 구조이다. 이렇게 서로 교차하는 운율적 반복형태는 호소력이 강하다. 실로 거룩과 생명의 근원적인 실체를 외면한 모든 종교 행위는 허식이요 우상 숭배일 뿐이다.

 

 

 

모로이 카이 튀플로이 티 가르 메이존 토 도론 에 토 뒤시아스테리온 토 하기아존 토 도론

 

개역개정,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새번역,19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우리말성경,19 앞을 못 보는 이 사람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제물이냐, 아니면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가톨릭성경,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영어NIV,19 You blind men! Which is greater: the gift, or the altar that makes the gift sacred?
영어NASB,19 "You blind men, which is more important, the offering, or the altar that sanctifies the offering?
영어MSG,19  What ridiculous hairsplitting!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whether you shake hands or raise hands?
영어NRSV,19 How blind you are! For which is greater, the gift or the altar that makes the gift sacred?
헬라어신약Stephanos,19 μωροι και τυφλοι τι γαρ μειζον το δωρον η το θυσιαστηριον το αγιαζον το δωρον
라틴어Vulgate,19 caeci quid enim maius est donum an altare quod sanctificat donum
히브리어Modern,19 אתם הכסילים והעורים כי מה הוא הגדול אם הקרבן או המזבח המקדש את הקרבן׃
 

성 경: [마23:19]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 이 구절 역시 17절과의 대칭적 구조로서 반복되는 형태의 문장이다. 17절과의 차이점은 17절의 '우맹'이라는 칭호가 빠졌다. 또 18절과 마찬가지로 '금'이 '예물'로 바뀌었고 '성전'이 '제단'으로 바뀌었다. 여하튼 예물은 제단으로 인해 거룩해지는 후속적 성물(聖物)이다(출 29:37).

 

 

 

호 운 오모사스 엔 토 뒤시아스테리오 옴뉘에이 엔 아우토 카이 엔 파신 토이스 에파노 아우투

 

개역개정,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새번역,20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요,
우리말성경,20 그러므로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제단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영어NIV,20 Therefore, he who swears by the altar swears by it and by everything on it.
영어NASB,20 "Therefore, whoever swears by the altar, swears both by the altar and by everything on it. 
영어MSG,20  A promise is a promise.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if you make your promise inside or outside a house of worship? A promise is a promise. God is present, watching and holding you to account regardless.
영어NRSV,20 So whoever swears by the altar, swears by it and by everything on it;
헬라어신약Stephanos,20 ο ουν ομοσας εν τω θυσιαστηριω ομνυει εν αυτω και εν πασιν τοις επανω αυτου
라틴어Vulgate,20 qui ergo iurat in altare iurat in eo et in omnibus quae super illud sunt
히브리어Modern,20 לכן הנשבע במזבח נשבע בו ובכל אשר עליו׃
 

성 경: [마23:20]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그러므로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 이 구절은 맹세에 대한 결론적 선언이다. 내용은 제단 앞에서 맹세를 하는 것이나 예물을 제단위에 두고 맹세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맹세는 어떻게하든 무조건 정직하게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5:33-37에서는 결단코 맹세는 하지말라고 선언하셨는데 그 내용과는 상호 모순(矛盾)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9절 주석참조). 표면상으로 볼 때 상호 모순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각각 그 언급 내용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면 오히려 모순이 아니라 상호보완(補完)적인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5:33-37의 내용은 엄격하게 맹세를 금지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외에 다른것을 두고 맹세하는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그 모든 맹세를 거부했던 것이다. 결국 맹세 할수 있는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뿐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본문의 내용은 모든 맹세는 어떤 물질적 대상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정직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5:33-37에서 언급된 맹세에 대한 교훈을 보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이 21-22절에 계속 점증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카이 호 오모사스 엔 토 나오 옴뉘에이 엔 아우토 카이 엔 토 카토이쿤티 아우톤

 

개역개정,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새번역,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1 또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성전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영어NIV,21 And he who swears by the temple swears by it and by the one who dwells in it.
영어NASB,21 "And whoever swears by the temple, swears both by the temple and by Him who dwells within it.
영어MSG,21  (SEE 23:20)
영어NRSV,21 and whoever swears by the sanctuary, swears by it and by the one who dwells in it;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ο ομοσας εν τω ναω ομνυει εν αυτω και εν τω κατοικουντι αυτον
라틴어Vulgate,21 et qui iuraverit in templo iurat in illo et in eo qui inhabitat in ipso
히브리어Modern,21 והנשבע בהיכל נשבע בו ובשוכן בתוכו׃
 

성 경: [마23:21]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 앞의 20절에서는 제단 위의 예물이 제단에 속하여 있음을 밝히고, 예물과 제단을 대비시켜 제단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높인 것에 이어서 본문에서는 그 제단이 있는 성전을 하나님과 대비시켜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예물을 두고 맹세하는 자나,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자나, 그리고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자 모두가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정직하게 지켜야 함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그 안에 계신 이 - 공동번역에서는 '그 안에 계신 분'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계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토이케산티'(*)는 '카토이케오'(*)의 과거분사이다. 그 뜻은 '산다', '거주한다', '자리잡는다'(live, dwell)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초자연적 존재가(하나님, 성령, 그리스도 등) 사람과 가지는 관계를 묘사하는 말로서 '거하다' 등으로 쓰인다. 따라서 특정한 장소에 대해 쓰여지기도 하며, 사람과의 인격적관계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것이 좋다. '카토이케산티'(*)라는 단어가 문법적으로 분사형이기 때문에 과거의 행위를 나타낸다(1회적 의미). 따라서 문법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은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금 계신다는 의미로서 언급된 것이 아니라 이 성전을 솔로몬이 완성하여 헌당하였을 때 하나님이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는 전통적 믿음에 대한 고백이다(대하 6:2;7:1-3). 그러나 이러한 성전 중심 사상은 포로기를 거치면서 보편적 하나님 임재 사상(臨在思想)으로 바뀐다. 즉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이 실현되는 곳,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속에 계신다(요일 4:16). 따라서 본문의 강조점은 성전이나, 제단 위의 제물, 또는 제단과 같이 장소나 물질적인 것을 두고 맹세의 근거를 삼아서는 안된다는데 있다. 그 맹세는 하나님과의 인격적(人格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실로 예수에게는 특정한 장소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내면적 신실성이 문제인 것이다.

 

 

 

카이 호 오모사스 엔 토 우라노 옴뉘에이 엔 토 드로노 투 데우 카이 엔 토 카데메노 에파노 아우투

 

개역개정,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새번역,22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2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영어NIV,22 And he who swears by heaven swears by God's throne and by the one who sits on it.
영어NASB,22 "And whoever swears by heaven, swears both by the throne of God and by Him who sits upon it. 
영어MSG,22  (SEE 23:20)
영어NRSV,22 and whoever swears by heaven, swears by the throne of God and by the one who is seated upon it.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ο ομοσας εν τω ουρανω ομνυει εν τω θρονω του θεου και εν τω καθημενω επανω αυτου
라틴어Vulgate,22 et qui iurat in caelo iurat in throno Dei et in eo qui sedet super eum
히브리어Modern,22 והנשבע בשמים נשבע בכסא אלהים ובישב עליו׃
 

성 경: [마23:22]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하늘로 맹세하는 자 - 이 구절 역시 20절과 21절에 이어 똑같은 형식을 취하면서 그 강조점을 점증(漸增) 시키고 있다. 즉 헬라어로 '우라노스'(*)는 원래 하나님의 피조물인 하늘(heaven)을 말한다. 그리고 이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적 의미로 쓰여지며(22절;행 7:55;히 8:1;벧전 1:12) 인격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21:25;막 11:30, 31;눅 15:18, 21;20:4,5). 이 본문에서는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적 의미로 쓰여졌다. 5:34에서도 역시 '하늘'을 하나님이 계시는 보좌와 같은 의미로 묘사한다.

󰃨 하나님의 보좌 -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행위와 하나님의 보좌를 두고 맹세하는 행위를 동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헬라어로 '드로노스'(*)라고 하는 보좌(寶座)는 '왕좌' 또는 '옥좌'(공동번역)로 해석한다. 이 단어는 왕이나 지배자의 권자로 사용되기도 하고(눅 1:32,52;행 2:30), 하나님의 자리로 사용되기도 한다(히 12:2;계 7:15), 그리고 하늘과 동등하게( 5:34;행 7:49) 또는 그리스도의 자리로 사용되기도 한다(19:28;25:31;히 1:8;계 22:1, 3 등).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으로 보아 장소적 의미의 '하늘'로 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보좌를 두고 맹세한 것은 하나님과 맹세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 그 위에 앉으신 이 - 이 구절은 20절의 '그 위에 있는 모든 것'과 21절의 '그 안에 계신 이'라는 구절과 같은 형식을 취하여 '그 위에 앉으신 이'라고 문장을 구성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단과 성전 안에 있는 이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맹세에 대한 관계성이 옮겨가고 있다. 여기서 '그 위'란 앞에 나온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킨다. 따라서 '앉은 이'는 하나님이 된다. 20-22절은 세번째 저주 선언문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적 결론은 22절이 된다. 그런 점에서 20, 21절은 마지막 결론인 하나님에게로 이끌기 위해 서술한 잠정적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이 3단계에 걸쳐서 결론을 이끌어 냄으로써, 이 비판의 내용이 (1) 맹세에 대한 무조건 거부가 아님을 차근 차근히 밝혔고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맹세에 관한 가르침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그리고 (3) 성전 중심이나 예물 중심 사상을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갔다. 이와같은 내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삼단논법의 형식을 사용하였다. 즉 제단-성전-하늘로 옮겨가고, 그 위에 있는 모든 것-그 안에 계신 이-그 위에 앉으신 이의 형식으로 관점을 옮겨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제단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맹세의 관계를 옮겨갔다. 따라서 모든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아포데카투테 토 헤뒤오스몬 카이 토 아네돈 카이 토 퀴미논 카이 아페카테 타 바뤼테라 투 노무 텐 크리신 카이 토 엘레오스 카이 텐 피스틴 아우타 데 에데이 포이에사이 카케이나 메 아피에나이

 

개역개정,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새번역,2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우리말성경,23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아!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율법 가운데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십일조도 바치고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했다. 
가톨릭성경,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영어NIV,23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give a tenth of your spices--mint, dill and cummin. But you have neglected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
영어NASB,23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tithe mint and dill and cummin, and have neglected the weightier provisions of the law: justice and mercy and faithfulness; but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have don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 
영어MSG,23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Frauds! You keep meticulous account books, tithing on every nickel and dime you get, but on the meat of God's Law, things like fairness and compassion and commitment--the absolute basics!--you carelessly take it or leave it. Careful bookkeeping is commendable, but the basics are required.
영어NRSV,23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tithe mint, dill, and cummin, and have neglected the weightier matters of the law: justice and mercy and faith. It is these you ought to have practiced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
헬라어신약Stephanos,23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αποδεκατουτε το ηδυοσμον και το ανηθον και το κυμινον και αφηκατε τα βαρυτερα του νομου την κρισιν και τον ελεον και την πιστιν ταυτα εδει ποιησαι κακεινα μη αφιεναι
라틴어Vulgate,23 vae vobis scribae et Pharisaei hypocritae quia decimatis mentam et anethum et cyminum et reliquistis quae graviora sunt legis iudicium et misericordiam et fidem haec oportuit facere et illa non omittere
히브리어Modern,23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מעשרים אתם את המנתא ואת השבת ואת הכמן ותניחו את החמורות בתורה את המשפט ואת החסד ואת האמונה והיה לכם לעשות את אלה ולא להניח גם את אלה׃
 

성 경: [마23:23]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네번째 저주 선언]

󰃨 박하와 십일조를 드리되 - 여기서는 네번째 저주 선언문이 시작된다. 여기서도 그 저주의 대상이 13절과 15절의 형식과 똑같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지목(指目)된다. 비판의 내용은 그들이 사소하고 세분된 규정과 전통에는 아주 민감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율법 정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 십일조 - 소출의 10분의 1을 바치는 율법의 규정으로서 그 기원은 족장 시대에 두고 있었는데(창 14:20;28:22) 모세의 계명에서 법제화되었다(레 27:30;신 14:22-27). 이 십일조의 근본 취지(趣旨)는 (1) 자신의 소유에 대한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인정과 (2) 이웃 사랑(구제) 및 성전 운영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자발적 사랑의 예물로서가 아닌 강제적 의무 규정으로 고착화 시켜, 이것을 통해 유대인됨과 율법 완수자됨의 규준(規準)으로 삼았다.

󰃨 박하 - 헬라어로 '헤뒤오스몬'(*)이라고 하는 독특한 향내를 지닌 채소(mint)이다. 이는 유월절 쓴나물의 양념으로 쓰였으며(출 12:8) 그 향내로 인해 회당의 방향제(芳香劑)로 쓰였다고 한다. 회향은 헬라어로 '안네돈'(*)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미나리과의 식물이며 양념에 사용되는 식물로서(anise, dill) 약품과 향료에도 사용된다. 근채는 '퀴미논'(*)이라고 부르는 식물로서 이 역시 미나리과에 속하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는 양념이나 약품으로 사용된다. 근채를 다른 말로 구민초(cumin)라고도 한다. 이상에서 나열한 식물 종류는 이스라엘의 농작물 중 매우 사소한 수확물이다. 따라서 이와같이 사소한 종류를 나열한 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레 27:30의 규례(規例)에 따라 얼마나 십일조에 철저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비판은 이렇게 세세한 십일조 생활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에 나오는 그들의 행실에 대한 비판을 강조하기 위하여 대비적으로 그들의 십일조 생활을 강조한다.

󰃨 율법의 더 중한 바 - 여기서 '더 중한 바'(*, 바뤼테라)란 '더 어려운 일이나 `더 힘든 일'(De Wette)이 아니라 지엽적(枝葉的)이거나 사소한 일과 대조되는 '더 중심적이거나 결정적인 일'(Ridderbos) 또는 '더 중요한 일'(Meyer, NIV)을 가리킨다. 이런 관점에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아주 중요한 율법'으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율법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차등(差等)적인 율법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앞에 나온 사소한 십일조 행위와 대비시킴으로써 더욱더 중요한 율법을 소홀히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다.

󰃨 의(義) - 헬라어로 '크리시스'(*)라고 부르는 이 말은 종말적 심판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재판, 판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옮음(right)와, 공의(justice), 의(righteousness)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본문에서의 '의'는 정당하고 공정한 뜻으로서 '정의'라는 의미와 더불어 실천적 측면에서의 인간 관계의 올바름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이해를 분명하게 하도록 돕는다(신 16:19;사 1:17;렘 5:13).

󰃨 인(仁) - 헬라어로 '엘레오스'(*)라고 하는데 공동번역에서는 '자비'(mercy)로 번역되어 있다. 이런 '자비'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또는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22:37-40의 내용을 참고하여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신(信) - 헬라어 `피스티스'(*)는 믿음, 신뢰, 신용(faith, truth), 약속, 서약, 증거, 담보, 보증, 확신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신뢰(히 11:6)와 이웃에 대한 신뢰(시 15:3,4)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세가지 종류의 단어, 의(義), 인(仁), 신(信)의 개념은 설명할 수 있거나 객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속에서 실천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십일조는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보일 수 있지만 의(義), 신(信), 인(仁)은 삶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몸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 버렸도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버렸다'로, 공동번역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로 번역하고 있다.

󰃨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여기서 예수의 치밀함을 엿보게 된다. 예수께서 보신 유대인의 십일조 행습(行習)은 무조건 비판을 가할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모두 지켜야 할 것들이었다. 이와 같은 의미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는 예수의 선언(5:17)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는 형태로 번역되어 있다. 매우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호데고이 튀플로이 호이 디윌리존테스 톤 코노파 텐 데 카멜론 카타피논테스

 

개역개정,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새번역,24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우리말성경,24 앞을 못 보는 인도자들아!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구나. 
가톨릭성경,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영어NIV,24 You blind guides! You strain out a gnat but swallow a camel.
영어NASB,24 "You blind guides, who strain out a gnat and swallow a camel!
영어MSG,24  Do you have any idea how silly you look, writing a life story that's wrong from start to finish, nitpicking over commas and semicolons?
영어NRSV,24 You blind guides! You strain out a gnat but swallow a camel!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δηγοι τυφλοι οι διυλιζοντες τον κωνωπα την δε καμηλον καταπινοντες
라틴어Vulgate,24 duces caeci excolantes culicem camelum autem gluttientes
히브리어Modern,24 מנהלים עורים המסננים את היתוש ובלעים את הגמל׃
 

성 경: [마23:24]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세번째 저주 선언]

󰃨 소경된 인도자여 - 이 구절은 3번째 저주문의 시작인 16절과 똑같은 문구이다. 이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실에 대해 또다른 형태의 비판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다음의 비유를 말하고 있다.

󰃨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 비유적이면서 상징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다. 하루살이와 약대를 극적으로 대비시켜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과장법은 19:24에도 나타나고 있다(5:29,30:17:20,21:21,특징적인 과장법들). 한편 여기에 나오는 하루살이는 팔레스틴 기후에서 흔한 곤충(昆蟲)이자 가장 조그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하루살이는 담근 포도주통에 몸을 던지곤 했는데,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나 음료로 사용하기 전에 채로써 포도주를 걸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정한 곤충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나마 그것을 섭취함으로써 부정을 덧입을까 해서이다(레 11:20,23;17:10-14). 그리고 약대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몸집이 큰 짐승으로 취급되었으나 이것 역시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다(레 11:4). 이와같이 부정한 곤충과 동물을 비유로 들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부정적인 것으로 강조한다. 더욱이 그들이 삼킨 약대는 곧 그들의 무한정(無限定)한 탐심과 육체적 향락 및 무절제한 죄악을 암시한다. 여하튼 이 비유는 네번째 저주 선언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 요약하고 있다. 즉 하기 쉬운 일에는 생색을 내며 자랑하고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여 책임을 피해가는 위선적인 종교인에 대한 비판이다.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카다리제테 토 엨소덴 투 포테리우 카이 테스 파롶시도스 에소덴 데 게무신 엨스 하르파게스 카이 아크라시아스

 

개역개정,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새번역,25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5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잘 닦으면서 그 안은 욕심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구나. 
가톨릭성경,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영어NIV,25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greed and self-indulgence.
영어NASB,25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of the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robbery and self-indulgence.
영어MSG,25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Frauds! You burnish the surface of your cups and bowls so they sparkle in the sun, while the insides are maggoty with your greed and gluttony.
영어NRSV,25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of the plate, but inside they are full of greed and self-indulgence.
헬라어신약Stephanos,25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καθαριζετε το εξωθεν του ποτηριου και της παροψιδος εσωθεν δε γεμουσιν εξ αρπαγης και ακρασιας
라틴어Vulgate,25 vae vobis scribae et Pharisaei hypocritae quia mundatis quod de foris est calicis et parapsidis intus autem pleni sunt rapina et inmunditia
히브리어Modern,25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מטהרים אתם פני הכוס והקערה מחוץ ותוכן מלא גזל ופריצות׃
 

성 경: [마23:25]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다섯번째 저주 선언]

󰃨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 다섯번째 저주 선언문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당시의 랍비들에 의해 제정될 의식적(儀式的) 정결에 관한 것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잔과 대접'은 먹고 '너는 그릇을 통칭(通稱)한 말인데, 이것을 정결히 한다함은 곧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표면적이고 가식적인 율법적 청결을 빗대어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하는 이유는 종교적 의식(儀式)보다는 음식을 깨끗하게 담기 위함이다. 따라서 물론 안팎을 모두 깨끗이 해야 되지만 우선적으로 깨끗이 해야 할 부분은 그릇 안쪽일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릇 안을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다시 말해 정작 중요한 것은 속마음인데 겉으로는 거룩하고 깨끗한 척하면서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네번째 저주 선언문인 23,24의 내용과 비슷하다.

󰃨 탐욕과 방탕으로 - 탐욕'은 헬라어로 '하르파게(*)라고 하는데 '강탈', '약탈', '도둑질'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는 주로 물질적인 측면의 죄악을 암시한다. 그리고 '방탕'은 헬라어로 '아크라시아'(*)인데 그 뜻은 '자제력 상실', '무절제'이다. 이는 주로 윤리적 측면의 범죄를 암시한다. 한편 이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는 구절이 7:15의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마음 속에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즉 남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실제로 남의 것을 착취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강조점은 악한 마음과 동시에 그 악독한 마음에서 비롯된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파리사이에 튀플레 카다리손 프로톤 토 엔토스 투 포테리우 카이 테스 파롶시도스 히나 게네타이 카이 토 엨토스 아우톤 카다론

 

개역개정,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새번역,26 눈 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안을 깨끗이 하여라. 그리하면 그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26 눈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으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가톨릭성경,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영어NIV,26 Blind Pharisee! First clean the inside of the cup and dish, and then the outside also will be clean.
영어NASB,26 "You blind Pharisee, first clean the inside of the cup and of the dish, so that the outside of it may become clean also.
영어MSG,26  Stupid Pharisee! Scour the insides, and then the gleaming surface will mean something.
영어NRSV,26 You blind Pharisee! First clean the inside of the cup, so that the outside also may become clean.
헬라어신약Stephanos,26 φαρισαιε τυφλε καθαρισον πρωτον το εντος του ποτηριου και της παροψιδος ινα γενηται και το εκτος αυτων καθαρον
라틴어Vulgate,26 Pharisaee caece munda prius quod intus est calicis et parapsidis ut fiat et id quod de foris est mundum
히브리어Modern,26 פרוש עור טהר בראשונה את תוך הכוס למען תטהר גם מחוץ׃
 

성 경: [마23:26]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다섯번째 저주 선언]

󰃨 소경된 바리새인아 깨끗이 하라 - 이 본문은 진지한 충고(忠告)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소경된 바리새인'라는 호칭은 24절의 형태를 따랐지만 구체적으로 바리새인을 지칭하였고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강렬한 의미를 제공한다는 점이 24절과 다르다. 눅 11:41의 평행구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즉 "안에 있는 것을 '구제하라'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이다. 여기서 '구제하라'는 말은 아람어로는 '깨끗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누가복음과는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본문의 전체적 의도는 다섯번째 저주 선언문의 내용이 갖는 목적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 목적은 속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이다. 물론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의'(義), '인'(仁), '신'(信)에 입각하여(23절) 행실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로, 결국 위선된 자기 생활로부터 전적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즉 회개하고 거룩에 이르라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과 행실을 바꾸는 것은 먼저와 나중이 없다. 실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이다(知行合一). 그러나 여기서 먼저와 나중으로 구별한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겉치레와 외식에만 치우쳐 있는 그들의 편협(偏狹)한 생활을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파로모이아제테 타포이스 케코니아메노이스 호이티네스 엨소덴 멘 파이논타이 호라이오이 에소덴 데 게무신 오스테온 네크론 카이 파세스 아카다르시아스

 

개역개정,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새번역,2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우리말성경,27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얗게 칠한 무덤과 같다.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가톨릭성경,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영어NIV,27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are like whitewashed tombs, which look beautiful on the outside but on the inside are full of dead men's bones and everything unclean.
영어NASB,27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are like whitewashed tombs which on the outside appear beautiful, but inside they are full of dead men's bones and all uncleanness.
영어MSG,27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Frauds! You're like manicured grave plots, grass clipped and the flowers bright, but six feet down it's all rotting bones and worm-eaten flesh.
영어NRSV,27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are like whitewashed tombs, which on the outside look beautiful, but inside they are full of the bones of the dead and of all kinds of filth.
헬라어신약Stephanos,27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παρομοιαζετε ταφοις κεκονιαμενοις οιτινες εξωθεν μεν φαινονται ωραιοι εσωθεν δε γεμουσιν οστεων νεκρων και πασης ακαθαρσιας
라틴어Vulgate,27 vae vobis scribae et Pharisaei hypocritae quia similes estis sepulchris dealbatis quae a foris parent hominibus speciosa intus vero plena sunt ossibus mortuorum et omni spurcitia
히브리어Modern,27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דמים אתם לקברים המסידים הנראים נאים מחוץ ותוכם מלא עצמות מתים וכל טמאה׃
 

성 경: [마23:27]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여섯번째 저주 선언]

이 본문은 여섯번째 저주 선언문이다. 여기서도 역시 25절과 같은 형태의 문장 구조를 가졌다. 즉 '겉'과 '안'을 대칭적으로 묘사하면서 비판하고 있으며 특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드러나지 않은 악한 영향력들을 집중 공박(功駁)하고 있다.

󰃨 회칠한 무덤 - 무덤은 들판이나 길 옆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무덤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무덤은 겔 39:15에 근거한 랍비들의 명령에 따라 우기(雨期)가 지난 유월절 전 아달월 15일에 회가루를 뿌려 하얗게 칠한다. 그 이유는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가는 사람들(특히 유월절 순례자들)이 쉽게 식별하여 피해가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해 시체나 무덤을 만진 사람은 7일동안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 19:16). 한편 행 23:3에서 바울은 이와 유사하게 대제사장을 '회칠한 벽'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 당시 바울은 이 말을 통해 대제사장의 위선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었다. 여기서 예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는 상징어법으로 나타내려한 의도를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회칠한 무덤'이란 그들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죄악성은 뒤로 하더라도 사람만을 의식하는 그들의 허영적이고 위선적인 신앙 형태에 대한 극히 독설적인 책망이다. (2) 바리새인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는 것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극히 부정하다고 단죄(斷罪)하는 율법 조항에 의해 비판받게 하여 그들에게 지독한 모욕감과 수치감을 주고자 함이었다. 실로 그들은 회칠한 '무덤'에 비교될 만한 무가치하고 반신앙적 인물들이었다. 한편 예수께서는 회칠한 무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곧이어 함으로써 이해를 보충시키고 있다. 즉 '겉'과 '안'을 대조(對照)시키고 다시 '아름답게'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대조시켜 위선자의 양면성을 밝힌다. 27절의 내용은 사실 25절의 저주 선언문에 대한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 -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로 인한 필연적인 산물이었다(창 3:9;요일 3:14,15). 따라서 주검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누구든지 그것과 접촉하면 역시 부정에 전염(傳染)된다고 규정하였다(민 5:2;6:6). 한편 그러한 주검이 안장되어 있는 유대인의 무덤 속에는 송장의 뼈와 시체의 악취와 기타 오물로 가득하여 의식적으로서만이 아니라 위생학적으로도 더럽고 추한 몰골을 형성하였다. 실로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숨겨진 실체요 내면의 부정이었던 것이다(행 23:3). 한편 인위적이고 과도한 경건은 독선과 가식의 겉포장일 수 있다.

 

 

 

후토스 카이 휘메이스 엨소덴 멘 파이네스데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디카이오이 에소덴 데 메스토이 에스테 휘포크리세오스 카이 아노미아스

 

개역개정,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새번역,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우리말성경,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차 있다. 
가톨릭성경,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영어NIV,28 In the same way, on the outside you appear to people as righteous but on the inside you are full of hypocrisy and wickedness.
영어NASB,28 "So you, too, outwardly appear righteous to men, but inwardly you are full of hypocrisy and lawlessness.
영어MSG,28  People look at you and think you're saints, but beneath the skin you're total frauds.
영어NRSV,28 So you also on the outside look righteous to others, but inside you are full of hypocrisy and lawlessness.
헬라어신약Stephanos,28 ουτως και υμεις εξωθεν μεν φαινεσθε τοις ανθρωποις δικαιοι εσωθεν δε μεστοι εστε υποκρισεως και ανομιας
라틴어Vulgate,28 sic et vos a foris quidem paretis hominibus iusti intus autem pleni estis hypocrisi et iniquitate
히브리어Modern,28 ככה גם אתם מחוץ נראים כצדיקים אל בני אדם ותוככם מלא חנפה ואון׃
 

성 경: [마23:28]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여섯번째 저주 선언]

󰃨 겉으로는 안으로는 - 여기서도 '겉'과 '안'으로 나누어 27절에서 상징적으로 비유했던 위선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겉으로 옳게 보이되'가 27절의 '아름답게 보이나'와 대응되고 의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가 27절에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로 대응된다. 이것은 마태 특유의 묘사 방법으로써, 강조적 표현이다.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이 호티 오이코도메이테 투스 타푸스 톤 프로페톤 카이 코스메이테 타 므네메이아 톤 디카이온

 

개역개정,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새번역,29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우리말성경,29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아!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미면서 
가톨릭성경,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영어NIV,29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build tombs for the prophets and decorate the graves of the righteous.
영어NASB,29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build the tombs of the prophets and adorn the monuments of the righteous, 
영어MSG,29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Frauds! You build granite tombs for your prophets and marble monuments for your saints.
영어NRSV,29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ou build the tombs of the prophets and decorate the graves of the righteous,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οικοδομειτε τους ταφους των προφητων και κοσμειτε τα μνημεια των δικαιων
라틴어Vulgate,29 vae vobis scribae et Pharisaei hypocritae quia aedificatis sepulchra prophetarum et ornatis monumenta iustorum
히브리어Modern,29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בונים אתם את קברי הנביאים ותיפו את מצבות קברות הצדיקים׃
 

성 경: [마23:29]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이 본문은 일곱번째 저주 선언문이다(29-36절). 여기서도 역시 저주 대상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지만 그 전체 내용상 그릇된 율법주의에 심취(心醉)한 모든 유대인들이라 볼 수 있다.

󰃨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 추앙(推仰)받은 사람이나 영웅을 위해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 일은 유대교의 전통적 관습이었다. 더욱이 성전 금고의 일부분이 그 일에 사용될 만큼 전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런 까닭에 유대 사회에는 자연 무덤 예술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특히 예루살렘 주변에는 많은 기념비와 무덤들(스가랴, 압살롬, 여호사밧, 야고보 등)의 흔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렇게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운 근본적인 동기는 그 선열들의 발자취를 좇고 자신들의 그릇된 행위를 고쳐나갈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위선된 자신들의 신앙을 드높이려는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카이 레게테 에이 에멘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톤 파테론 헤몬 우크 안 에멘 코이노노이 아우톤 엔 토 하이마티 톤 프로페톤

 

개역개정,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새번역,30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0 ‘만일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데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는구나. 
가톨릭성경,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영어NIV,30 And you say, 'If we had lived in the days of our forefathers, we would not have taken part with them in shedding the blood of the prophets.'
영어NASB,30 and say, 'If we had been living in the days of our fathers, we would not have been partners with them in shedding the blood of the prophets.'
영어MSG,30  And you say that if you had lived in the days of your ancestors, no blood would have been on your hands.
영어NRSV,30 and you say, 'If we had lived in the days of our ancestors, we would not have taken part with them in shedding the blood of the prophets.'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λεγετε ει ημεν εν ταις ημεραις των πατερων ημων ουκ αν ημεν κοινωνοι αυτων εν τω αιματι των προφητων
라틴어Vulgate,30 et dicitis si fuissemus in diebus patrum nostrorum non essemus socii eorum in sanguine prophetarum
히브리어Modern,30 ואמרתם אם היינו בימי אבותינו לא היתה ידנו עמהם לשפך דם הנביאים׃
 

성 경: [마23:30]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아니하였으리라 - 이 구절을 구체적으로 보강(補强)하는 것이 34절에 나온다. 여기서는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조상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즉 자신들이 조상이 살았던 시대에 살았다면 결코 선지자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간접적으로 자신들이 조상보다 도덕적(道德的)으로나 종교적(宗敎的)으로나 우월하다는 것을 말한다. (2) 자신이 선지자들의 활동을 조상들과는 달리 용납하고 따르겠다는 말이거나, 지금 선지자들의 말씀에 따라 산다는 고백일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위선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였고 미화시키려 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 선지자들의 무덤과 묘비를 세우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비유를 든 이유도 역시 여섯번째 저주 선언문과 같이(26, 27절) 묘비와 무덤을 세우는데 관심갖는 그릇된 종교인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그들의 자랑이라고 할수 있는 그들의 업적을 통해 비판을 가하여 비판효과를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영예를 통해 자신들이 이득(利得)을 보려고 하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과 멀리 있는 일일수록 자신있게 말할 수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과 같지 않다고 호언장담(濠言壯談)한 것이다.

 

 

 

호스테 마르튀레이테 헤아우토이스 호티 휘오이 에스테 톤 포뉴산톤 투스 프로페타스

 

개역개정,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새번역,31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우리말성경,31 그러나 이와 같이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가톨릭성경,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영어NIV,31 So you testify against yourselves that you are the descendants of those who murdered the prophets.
영어NASB,31 "So you testify against yourselves, that you are sons of those who murdered the prophets.
영어MSG,31  You protest too much! You're cut from the same cloth as those murderers,
영어NRSV,31 Thus you testify against yourselves that you are descendants of those who murdered the prophets.
헬라어신약Stephanos,31 ωστε μαρτυρειτε εαυτοις οτι υιοι εστε των φονευσαντων τους προφητας
라틴어Vulgate,31 itaque testimonio estis vobismet ipsis quia filii estis eorum qui prophetas occiderunt
히브리어Modern,31 ובכן תעידו על נפשכם כי בנים אתם לרוצחי הנביאים׃
 

성 경: [마23:31]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 조상을 비난하는 자들이 선지자를 죽인 조상을 가리켜 '우리가 조상의 때에'라고 말함으로써 그 조상의 자손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실로 셈족 언어에서는 누구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과 본질적(本質的)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조상의 자손이라는 것 때문에 조상의 죄를 이어 받아 같이 죄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원죄라는 의미와 다르다. 또 죄의 유전적인 전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만일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필시 운명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죽은 자의 자손됨'에 대한 증거는 선지자를 죽인 자들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자신들이 스스로 말한 점이다. 따라서 십계명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通念)에 따라서 그 가문의 죄과(罪過)에 대한 책임은 대(代)를 이어져야 했다(출 20:5). 진정 이러한 사실은 죄가 한개인의 돌발적 사고나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과 함께 전달됨을 뜻한다. 즉 죄의 사회적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실로 죄악된 환경에서는 죄인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조상이 저지른 죄과에 대한 자손들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인의 자손이라면 더욱 자숙(自肅)하고 남보다 선행에 힘쓰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앞에서 일곱가지의 저주문을 통해 폭로한 바 처럼 도리어 위선이 절정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조상의 죄까지 소급(溯及)하며 그 책임을 묻는 것이다. 특히 예수께서 이미 간파하신 바 있듯이, 당신을 모살(謨殺)하려는 그들의 음모가(21:46;22:15;요 11:47-53) 그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카이 휘메이스 플레로사테 토 메트론 톤 파테론 휘몬

 

개역개정,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새번역,32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조상의 분량을 마저 채워라.
우리말성경,32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악한 일을 마저 채우라! 
가톨릭성경,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영어NIV,32 Fill up, then, the measure of the sin of your forefathers!
영어NASB,32 "Fill up, then, the measure of the guilt of your fathers.
영어MSG,32  and daily add to the death count.
영어NRSV,32 Fill up, then, the measure of your ancestors.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υμεις πληρωσατε το μετρον των πατερων υμων
라틴어Vulgate,32 et vos implete mensuram patrum vestrorum
히브리어Modern,32 אף אתם מלאו סאת אבותיכם׃
 

성 경: [마23:32]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 이 구절은 매우 도전적이고 역설적이면서 '화 있을진저'와 같은 암시적 저주가 담겨있는 문장이다. 여기서 조상의 양(量)은 30, 31절의 내용을 참고하며 이해해야 한다. 즉 조상이 저질렀던 죄의 양(量)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트론'(*)은 분량을 재는 척도를 나타내는 말로서(quantity, number, measure), 본문은 결국 그 채우는 양에는 한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여하튼 본문은 너희 조상들이 시작했던 죄의 잔을 채우는 일을, 너희들이 그 충만한 데까지 채우라는 냉소적인 명령이다(살전 2:16). 한편 이런 관점에서 공동번역에서는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로 번역하고 있다. 이 말은 이제까지 조상들이 저질러온 죄악을 이어받아 더 많은 죄를 저질러 죄의 포화 상태까지 채워 보라는 말이다. 물론 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데 필요한 마지막 한 방울 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는 일이다(Meyer). 이러한 어투에서 몇가지 의미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선지자를 죽였던 자들의 자손들이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조상들과 똑같이 살아가는데 대한 탄식이다. (2) 그들에 대한 희망의 포기이다. 즉 아무리 권면하여도 듣지 않는 그들에게 너희 멋대로 해보라는 투의 말이다. 물론 채워진 이후에는 곧 징벌(徵罰)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창 15:16). (3) 역설적 의미이다.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마지막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 말라고 말리면 더 하려고 하다가 해보라고 포기해 버리면 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처럼 저주섞인 포기 선언을 통해 그들이 돌아서기를 바라는 충격 요법적인 어투이다. 이러한 의미를 통해 예수를 바라볼 때 예수께서 얼마나 죄인들에 대하여 연민(憐憫)의 정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연민의 정에서 무서운 저주 선언문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열정적인 사랑이 악에 대하여 단호하고, 분노하며 경멸적 언어를 사용하게 한다. 사랑에 바탕이 되지 못한 비판과 저주는 분쟁만 낳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바탕을 둔 비판은 회개의 촉구가 되고 양심에 감동을 주게 된다.

 

 

 

오페이스 겐네마타 에키드논 포스 퓌게테 아포 테스 크리세오스 테스 게엔네스

 

개역개정,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새번역,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우리말성경,33 이 뱀들아!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가톨릭성경,33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영어NIV,33 "You snakes! You brood of vipers! How will you escape being condemned to hell?
영어NASB,33 "You serpents, you brood of vipers, how will you escape the sentence of hell?
영어MSG,33  "Snakes! Reptilian sneaks! Do you think you can worm your way out of this? Never have to pay the piper?
영어NRSV,33 You snakes, you brood of vipers! How can you escape being sentenced to hell?
헬라어신약Stephanos,33 οφεις γεννηματα εχιδνων πως φυγητε απο της κρισεως της γεεννης
라틴어Vulgate,33 serpentes genimina viperarum quomodo fugietis a iudicio gehennae
히브리어Modern,33 נחשים אתם ילדי הצפעונים איכה תמלטו מדין גיהנם׃
 

성 경: [마23:33]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이 구절은 가장 강렬하고 자극적인 어투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이 어투는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퍼부었던 내용과 일치한다(3:7).

󰃨 뱀들아 - 공동번역에서는 '이 뱀같은 자들아'로 번역하여 그 의미하는 바를 좀더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뱀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실제적인 동물로서의 예로 든 것도 있고(7:10;막 16:18;눅 11:11;고전 10:9 등) 상징적 존재로서 악마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고후 11:3;계 12:9,14;20:2). 여기서는 타락하고 저주받을 자를 상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해는 뱀이 간교(奸巧)하여 죄악의 씨앗으로 여기는 생각(창 3:1-5)과 저주받은 동물로서 생각하는 통념 때문이다(창 3:14,15).

󰃨 독사의 새끼들아 - 먼저 독사란 독을 품은 뱀이라는 의미보다, 여기서는 사단의 기질과 악마적인 본성을 지닌 존재로 이해함이 좋다. 그리고 새끼란 문자적으로는 '산출된 것', '탄생된 것', '자식',`자손'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독사라는 동물을 취급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비유된 것이므로 '자식'이라는 말이나 '족속'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 비유에서 독사와 그 새끼는 똑같이 한 가지의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조상들의 죄를 비난하지만 그들이 비난하고 있는 그 조상들의 족속이므로 똑같이 악한 족속이라는 뜻이 된다.

󰃨 지옥의 판결 - 이같은 표현은 랍비들에 의해 자주 사용된 바 있는데(Wetstein) 직역하면 '지옥에 떨어질 심판' 또는 '지옥(게엔나)에 위탁된 심판'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게엔나'에서의 심판은 영영한 멸망에의 판결이다(5:22). 한편 이와 같은 번역은 모두 종말적 심판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운명은 이미 영원한 절망에로 결정된 것이다.

󰃨 피하겠느냐 - 가정법적 표현이면서 반문하는 형식이다. 심판이 피할 수 없이 자명하게 닥칠 것이라는 강조적 표현법이다.

 

 

 

디아 투토 이두 에고 아포스텔로 프로스 휘마스 프로페타스 카이 소푸스 카이 그람마테이스 엨스 아우톤 아포크테네이테 카이 스타우로세테 카이 엨스 아우톤 마스티고세테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휘몬 카이 디옼세테 아포 폴레오스 에이스 폴린

 

개역개정,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새번역,34 그러므로 내가 예언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못박고,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뒤쫓으며 박해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예언자들과 지혜로운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보낸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또 어떤 사람들은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좇아다니며 핍박할 것이다. 
가톨릭성경,34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영어NIV,34 Therefore I am sending you prophets and wise men and teachers. Some of them you will kill and crucify; others you will flog in your synagogues and pursue from town to town.
영어NASB,34 "Therefore, behold, I am sending you prophets and wise men and scribes; some of them you will kill and crucify, and some of them you will scourge in your synagogues, and persecute from city to city,
영어MSG,34  It's on account of people like you that I send prophets and wise guides and scholars generation after generation--and generation after generation you treat them like dirt, greeting them with lynch mobs, hounding them with abuse.
영어NRSV,34 Therefore I send you prophets, sages, and scribes, some of whom you will kill and crucify, and some you will flog in your synagogues and pursue from town to town,
헬라어신약Stephanos,34 δια τουτο ιδου εγω αποστελλω προς υμας προφητας και σοφους και γραμματεις και εξ αυτων αποκτενειτε και σταυρωσετε και εξ αυτων μαστιγωσετε εν ταις συναγωγαις υμων και διωξετε απο πολεως εις πολιν
라틴어Vulgate,34 ideo ecce ego mitto ad vos prophetas et sapientes et scribas ex illis occidetis et crucifigetis et ex eis flagellabitis in synagogis vestris et persequemini de civitate in civitatem
히브리어Modern,34 לכן הנני שלח לכם נביאים וחכמים וסופרים ומהם תהרגו ותצלבו ומהם תכו בשוטים בבתי כנסיותיכם ותרדפום מעיר לעיר׃
 
성 경: [마23:34]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 내가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 여기서 '선지자'란 구약의 예언자는 아니지만 그들과 동등한 권위와 영적 감화력(感化力)과 자질을 갖춘 복음의 선포자로서 소위 순회 복음 전도자 정도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엡 4:11). 그리고 '지혜있는 자들'이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덧입고 지혜있는 가르침으로 교회에 유익을 주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서기관들'이란 유대교 인사가 아닌 그리스도 복음의 휼륭한 교사들을 뜻한다(13:52). 한편 이들은 베드로, 야고보, 스데반, 바울 등과 같은 초대 교회의 기둥같은 산 증인들을 위시한 많은 교회의 역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특별히 예수께서 하신 '내가 보내매'(*, 에포스텔로)라는 말은 현재형을 취하고 있다. 이는 단회적 파송이 아닌 지속적이고도 끈질긴 파송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수께서는 계속적 파송으로 인한 당신의 사람들의 지속적인 박해 상황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계시다. 그중 '죽임당하는' 박해는 스데반(행 7:59)과 야고보(행 12:2)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박해는 베드로(요 21:18,19;벧후 1:14)나 시므온이나 안드레가, '회당에서의 채찍질'은 많은 사도들이(행 5:40;22:19;26:11;고후 11:24,25), '구박당함'은 수많은 복음 전파자들이(10:23;행 13:50;14:6,20;26:11) 감수(甘受)해야 했었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이해될 수 있다. (1) 30절에서 언급된 바리새인들의 호언장담에 대한 반박(反駁)으로서. 그들의 조상들이 지혜자와 선지자들에게 행했던 악행을 그대로 묘사하여 그들도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악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절에서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과 31절의 내용과 더불어 바리새인들도 조상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암시한다. (2)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직접 예수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장차 예수께서 파송할 자신의 제자와 전도자들에게도 그들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조상들을 비판한 것처럼 그들도 다시 그런 일은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경고적인 의도로 볼 수 있다. (3) '죽이다', '십자가에 못박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 자신이 앞으로 당할 고난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예언은 예수께서 자주 해왔다(10:23;16:21).

 

 

 

호포스 엘데 엪 휘마스 판 하이마 디카이온 엨퀸노메논 에피 테스 게스 아포 투 하이마토스 하벨 투 디카이우 헤오스 투 하이마토스 자카리우 휘우 바라키우 혼 에포뉴사테 메탘쉬 투 나우 카이 투 뒤시아스테리우

 

개역개정,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새번역,35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죄 없이 흘린 모든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말성경,35 그러므로 의로운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가톨릭성경,35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영어NIV,35 And so upon you will come all the righteous blood that has been shed on earth, from the blood of righteous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son of Berekiah, whom you murdered between the temple and the altar.
영어NASB,35 so that upon you may fall the guilt of all the righteous blood shed on earth, from the blood of righteous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the son of Berechiah, whom you murdered between the temple and the altar.
영어MSG,35  "You can't squirm out of this: Every drop of righteous blood ever spilled on this earth, beginning with the blood of that good man Abel right down to the blood of Zechariah, Barachiah's son, whom you murdered at his prayers, is on your head.
영어NRSV,35 so that upon you may come all the righteous blood shed on earth, from the blood of righteous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son of Barachiah, whom you murdered between the sanctuary and the altar.
헬라어신약Stephanos,35 οπως ελθη εφ υμας παν αιμα δικαιον εκχυνομενον επι της γης απο του αιματος αβελ του δικαιου εως του αιματος ζαχαριου υιου βαραχιου ον εφονευσατε μεταξυ του ναου και του θυσιαστηριου
라틴어Vulgate,35 ut veniat super vos omnis sanguis iustus qui effusus est super terram a sanguine Abel iusti usque ad sanguinem Zacchariae filii Barachiae quem occidistis inter templum et altare
히브리어Modern,35 למען יבא עליכם כל דם נקי הנשפך בארץ מדם הבל הצדיק עד דם זכריה בן ברכיה אשר רצחתם אותו בין ההיכל ולמזבח׃
 

성 경: [마23:35]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 이 구절 역시 매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아벨이 성경에 나타난 첫번째 살인의 희생자인 것은 분명하다(창 4:8). 그러나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Zechariah son of Berekish)가 누구인가는 문제가 된다. 몇 가지 견해들에 대하여 살펴보면 (1) 이 사람이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Zecharish)였다는 설이 있으나(Chrysostom) 그가 순교했다는 증거는 없다. (2) 이 사람이 바리스(Baris, 또는 Baruch 또는 Bariscaeus, 이 이름들은 사본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의 아들로서 성전에서 두 열심당원들(Zealots)에게 죽임을 당한(Jos. Wars, IV, 334-44<4절.) 사가랴(Zechariah)였다는 설이 있다(Penn). 그러나 그가 선지자이거나 순교자(殉敎者)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비록 그가 성전 경내 한 가운데서(*, 엔 메소, in the mist) 죽임을 당했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제사장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증거도 없다. (3) 이 사람이 구약에서 베레갸의 아들(son of Berekish)인 선지자 스가랴(Zecharish)였다는 설이 있다(슥 1:1)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는 기록은 없다. (4) 이 사람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사가랴였다는 설이 있는데(Albright and Mann) 이런 견해는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역시 증거가 없다. (5)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이 사람이 대하 24:20-22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Zecharish the son of Jehoiada)일 것이라는 설이다. 이 스가랴는 성전 뜰 안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이 사건은 히브리 정경(正經)에서 마지막 책의 끝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 말, 곧 히브리 성경의 첫 책(창 4:8)에서 마지막 책(대하 24:20-22)에 기록된 모든 순교자들이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다시 생각한다면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순교자들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예수가 말하는 사가랴(Zechariah)가 대하 24:20-22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Zechariah)라고 생각한다면 '여호야다'라는 부칭(父稱)이 문제가 된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슥 1:1에서는 선지자 스가랴의 아버지인 베레갸의 이름이 언급되는 한편 스 6:14에서는 그의 할아버지인 잇도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여호야다가 대하 24장에 나오는 스가랴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호야다가 130세까지 살았던 사실(대하 24:15)은 이런 견해의 가능성을 높여주는데, 왜냐하면 스가랴는 여호야다가 죽은 직후부터 그의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으로는 알수 없는 바라갸(Berekiah)는 스가랴를 낳고 평온한 세월을 살다가 그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으로써 그의 아버지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본절)라고 말할 경우 바라갸가 사가랴(대하 24장에서는 스가랴)의 아버지라는 것도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이 확실히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 의로운 피 - 이는 '의인의 피'(애 4:13), '무죄한 자의 피'(왕하 21:16;24:4)라는 표현과 흡사한 의미로서 의롭다 인정받는 자의 죽음 및 그 피흘림과 관련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범죄자(犯罪者)의 선고를 받은 것 까지를 포함한 넒은 의미이다(히 11:4). 즉 이것은 아벨과 마지막 순교자 스가랴까지 의(義)를 위해 순교당한 모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번역에서는 '땅에서 흘린 무죄한 피값'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러왔던 불의한 모든 죄에 대하여 심판하는 형벌의 선언인 것이다. 한편 조상들이 저질러왔던 악행은 예언서들과 시편에 잘 나타나고 있다(시 94편).

󰃨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공동번역에서는 '피'를 '피값'으로 번역하여 본문의 의미, 곧 악행에 대한 그 대가를 지불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한편 이 35절은 27:24, 25을 예언한다. 즉 그때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回避)한 데 비해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그 끔찍한 일에 대한 책임을 소리지르며 자청하여 떠맡았다.

 

 

 

아멘 레고 휘민 헼세이 타우타 판타 에피 텐 게네안 타우텐

 

개역개정,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새번역,36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말성경,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일이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 
가톨릭성경,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
영어NIV,36 I tell you the truth, all this will come upon this generation.
영어NASB,36 "Truly I say to you, all these things shall come upon this generation.
영어MSG,36  All this, I'm telling you, is coming down on you, on your generation.
영어NRSV,36 Truly I tell you, all this will come upon this gener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6 αμην λεγω υμιν ηξει ταυτα παντα επι την γενεαν ταυτην
라틴어Vulgate,36 amen dico vobis venient haec omnia super generationem istam
히브리어Modern,36 אמן אמר אני לכם בא יבא כל אלה על הדור הזה׃
 

성 경: [마23:36]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일곱번째 저주 선언]

󰃨 다 이 세대(世代)에게 돌아가리라 - 주목할 점은 29절에서 일곱번째 저주 선언문이 시작될 때 그 대상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리고 35절에서도 '너희'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한 말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피값을 받아야 할 대상이 이 세대(世代)로 지목되고 있다. 즉 그 시대에 살던 모든 유대인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집단적, 사회적 책임성을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31절 주석). 역사 속에서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을 오늘 이 세대에서 회개하고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 조상의 악의 양을 충만히 채우면(32절) 바로 이 세대가 멸망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 예언을 한 후 A.D.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그들은 경험하였다. 실로 과거의 죄악을 오늘 청산(淸算)하지 못하면 오늘 이 세대는 과거의 죄악을 용인(容認)하고 반복하는 것이 되며 결국 과거와 마찬가지로 멸망의 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본절은 일곱 가지 저주 선언문의 최종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헤 아포크테이누사 투스 프로페타스 카이 리도볼루사 투스 아페스탈메누스 프로스 아우텐 포사키스 에델레사 에피쉬나가게인 타 테크나 수 혼 트로폰 오르니스 에피쉬나게이 타 노씨아 아우테스 휘포 타스 프테뤼가스 카이 우크 에델레사테

 

개역개정,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새번역,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사람들에게 돌을 던진 예루살렘아,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고 한 적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 
가톨릭성경,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영어NIV,37 "O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but you were not willing.
영어NASB,37 "Jerusalem, Jerusalem, who kills the prophets and stones those who are sent to her! How often I want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the way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unwilling.
영어MSG,37  "Jerusalem! Jerusalem! Murderer of prophets! Killer of the ones who brought you God's news! How often I've ached to embrace your children, the way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ouldn't let me.
영어NRSV,37 "Jerusalem, Jerusalem, the city that kills the prophets and stones those who are sent to it! How often have I desir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헬라어신약Stephanos,37 ιερουσαλημ ιερουσαλημ η αποκτεινουσα τους προφητας και λιθοβολουσα τους απεσταλμενους προς αυτην ποσακις ηθελησα επισυναγαγειν τα τεκνα σου ον τροπον επισυναγει ορνις τα νοσσια εαυτης υπο τας πτερυγας και ουκ ηθελησατε
라틴어Vulgate,37 Hierusalem Hierusalem quae occidis prophetas et lapidas eos qui ad te missi sunt quotiens volui congregare filios tuos quemadmodum gallina congregat pullos suos sub alas et noluisti
히브리어Modern,37 ירושלים ירושלים ההרגת את הנביאים והסקלת את השלוחים אליה כמה פעמים רציתי לקבץ את בניך כתרנגלת המקבצת את אפרחיה תחת כנפיה ולא אביתם׃

성 경: [마23:37]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애가(哀歌)]

이 절은 23장 전체의 내용을 예수께서 직접 자신의 감정을 첨가하여 마무리 짓고 있다. 문장 형태는 탄식문 형태이다.

󰃨 예루살렘 - 예루살렘을 반복하여 두 번 부름으로써 애절하고 격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이 부분에는 마태가 다른 곳에서 흔히 사용하였던 헬라식 발음으로서의 `예로솔뤼마'(*)가 아닌 히브리식 발음으로 민족적 동질성과 연대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할 수 있고 종교적 중심지로서 상징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예수의 이 탄식은 종교 지도자를 포함한 모든 백성을 향한 애정어린 부름이다.

󰃨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자여 - 이는 평화의 성읍이요 하나님의 성전이였던 도성이 살인자와 반역의 도시로 변한 사실에 대한 예수의 엄숙한 개탄(慨嘆)이다(34절). 한편 모세 율법은 사술(레 20:27), 우상숭배(신 17: 5, 7)등을 위시한 가증스런 범죄자를 돌로 쳐죽이도록 명령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의 미쉬나(Mishnah, M. Sanhedrin 7:4)는 한발짝 더 나아가 거짓 선지자들을 돌로 치라고 명령하였다. 이처럼 돌로 치는 일은 분노한 폭도(21:35;행 7:57,58)나 사전에 계획된 공모(共謀)에 의해 이뤄지기도 했다.

󰃨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 이와 같은 표현은 36:7;사 31:5;36:7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당시에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격언구 형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은 격언구는 사랑과 애정과 보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예수께서는 당신이 갖고 있는 강렬하고 순결한 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애정을 하나님께서 품으시는 사랑과 일치시키고 있다.

󰃨 내가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 이 말은 어떤 면에서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초월적으로 돌아보시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요 8:58). 그러나 본문의 '몇번이냐'(how often)라는 말은 주어(主語)가 예수자신이라는 점에서 예수의 공생애 기간과 더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 기간 중 마치 암탉이 독수리의 침입을 예상하고 자기 새끼를 바삐 모으듯이 예루살렘(모든 유대인들을 뜻하는 환유법적 표현)을 모아서 보호하려고 노력하셨다(신 32:11;렘 48:40). 예수께서는 비록 유대 지도자들을 책망하면서 심판과 화를 말씀하기도 하셨지만, 여호와 하나님처럼(겔 18:32) 누구든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단 1회만이 아니라 집요(執拗)하고도 끈덕지게 당신의 백성을 구원코자 하셨던 것이다.

󰃨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 이 의미는 단지 그들이 원치 않는 수동적인 배척 뿐만 아니라 비난과 공격 등의 적극적인 배척을 하였다는 것을 앞의 '죽이고', '돌로 치는'이라는 표현과 연관시켜 암시하고 있다. 실로 그들은 무모하게도 자신들의 멸망의 날을 앞당겼던 것이다. 정녕 하나님의 사랑을 영속적으로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 정한 때에 극렬하고도 단호한 심판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사 28:1, 2).

 

 

 

이두 아피에타이 휘민 호 오이코스 휘몬 에레모스

 

개역개정,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새번역,38 보아라, 너희 집은 버림을 받아서, 황폐하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38 보라. 이제 너희 집은 버림받아 황폐해질 것이다. 
가톨릭성경,38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영어NIV,38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영어NASB,38 "Behold, your house is being left to you desolate!
영어MSG,38  And now you're so desolate, nothing but a ghost town.
영어NRSV,38 See,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헬라어신약Stephanos,38 ιδου αφιεται υμιν ο οικος υμων ερημος
라틴어Vulgate,38 ecce relinquitur vobis domus vestra deserta
히브리어Modern,38 הנה ביתכם יעזב לכם שמם׃
 

성 경: [마23:38]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애가(哀歌)]

󰃨 너희 집이 - 헬라어로 '오이코스'(*)라는 단어는 '집'이라는 뜻 외에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즉 일반적인 '집'이나 '거처'를 뜻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신령한 성전으로서 기독교인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딤전 3:15;벧전 2:5;4:17). 또 '나라'나 '가문'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집'을 두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1) 예루살렘 성전을 나타낼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성전을 마지막으로 떠나실 때 이러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며(24:1), 그와 더불어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이기 때문이다(렘 12:9). (2) 이스라엘 '국가'를 의미한다. 그것은 정치적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곧 국가의 멸망이다. 여하튼 예수를 끝까지 배척함으로써 버림받은 성전이나 국가는 '나의 집'이 아닌 '너희 집'이 되는 것이다.

󰃨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 몇몇 고대 사본들에는 '황폐하여'라는 구절이 없다. 그러나 권위있는 사본들(시내, 베자, 에브라임 등)에는 이 말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한편.이 '황폐한'(*, 에레모스)이라는 단어는 '한적한', `사막', '버림받은' 등의 뜻으로 바로 뒤이어지는 `버린 바 되다'(*, 아피에타이)와 유사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실로 예루살렘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곧 '임마누엘'이신 예수(1:23)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정녕 생명(生命)과 복(福)의 근원이신 예수가 '버린 바 된' 곳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채 영영히 '황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사 5: 5, 6).

 

 

 

 

레고 가르 휘민 우 메 메 이데테 앞 아르티 헤오스 안 에이페테 유로게메노스 호 에르코메노스 엔 오노마티 퀴리우

 

개역개정,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새번역,3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 때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 ㉧시 118:26
우리말성경,3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복되시다!’ 하고 말할 때까지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시118:26 
가톨릭성경,3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영어NIV,39 For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영어NASB,39 "For I say to you, from now on you will not see Me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
영어MSG,39  What is there left to say? Only this: I'm out of here soon. The next time you see me you'll say, 'Oh, God has blessed him! He's come, bringing God's rule!'"
영어NRSV,39 For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the on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39 λεγω γαρ υμιν ου μη με ιδητε απ αρτι εως αν ειπητε ευλογημενος ο ερχομενος εν ονοματι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39 dico enim vobis non me videbitis amodo donec dicatis 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i
히브리어Modern,39 כי אני אמר לכם ראה לא תראוני מעתה עד אשר תאמרו ברוך הבא בשם יהוה׃

 

성 경: [마23:39]

주제1: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루살렘에 대한 애가(哀歌)]

󰃨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 이 구절은 시 118:26을 인용한 문구로서 얼마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호산나'의 연호와 함께 사용된 구절이다(21:9). 아마 이 표현은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예배드리러 온 자들에게 인사할 때 사용했던 말로 추측된다. 그런 점에서 성전의 주체요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도 존귀한 승리자로 오셨으므로 마땅히 모든 이들로부터 인사와 존경을 받아야 했다(France). 한편 누가복음에는 이 구절이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배열됨으로써 '까지'라는 말을 예루살렘 입성 때 곧 종려 주일(Palm Sunday)까지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만일 그것이 옳다면 종려주일에 사람들이 이 말을 외쳐된 일은 여전히 종말의 완성을 고대하는 역설적인 성취(ironic fulfillment)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 예수께서 있다. 특히 `이제부터'(*, 아프 아르티)란 말은 대부분 종말의 완성과 연결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26:29, 64) 의해 더욱 확실해진다. 이와 더불어 본절의 '나를 보지못하리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부활 후의 예수의 출현(出現)을 가리키지 않고(행 10:41) 그의 종말적 도래(Parousia)를 가르킨다고 본다. 그런데 문맥의 전개를 고려해 볼 때 예수의 재림은 곧 심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24:30, 31;빌 2: 9-11;계 1:7). 한편 인용된 시 118편의 구절, 즉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를 고려할 때, 예수는 심판자로서 뿐만 아니라 환영받는 왕으로도 재림할 것임을 알 수 있다(Benoit, Bonnard, Sohlatter).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유대인들은 지금껏 메시야를 배척해 온 잘못을 회개하며, 전민족적으로 그들이 거절했던 메시야를 '호산나' 찬송하며 그분의 절대 권위를 승인(承認)할 것이며(롬 11:26;슥 12:10), 그로 인해 선민의 영광스런 지위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호 3: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