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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찬양 악보 및 해설

새찬송가 615장 그 큰 일을 행하신 - 악보 및 해설

이 찬송은, 9,000편 가까운 찬송시를 쓴 패니 크로스비의 가사에, 2천여 곡의 찬송곡을 작곡한 크로스비의 콤비 하워드 돈이 곡을 붙인 찬송이다.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와 하워드 돈(Howard Doane)이 공동 편집하여, 비글로우 출판사(New York: Biglow & Main)에서 출판한「가장 밝고 좋은 것」'Brightest and Best, 1875' 1118장에 처음 실렸다.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가 출판한《성가와 독창곡 750곡집》'Sacred Songs and Solos: With Standard Hymns, Combined, 750 Pieces, 1889' 373장에 이 찬송이 실려 있다.
작사자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는 우리 한국 찬송가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채택된 위대한 찬송 작가다. 그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주 푸트남의 사우스 이스트에서 태어나, 1915년 2월 12일 아침에 코네티컷 주 브릿지포트에서 95세로 삶을 마쳤다. 생후 6개월도 채 안 되던 갓난아기 시절, 감기로 인해 그의 눈언저리가 부어오르자, 약사는 겨자를 갈아서 눈에다 바르라고 처방하였다.
그 집 가정부는 겨자를 갈아 뜨겁게 하여 눈에 발라주었으며, 이로 인해 크로스비는 맹인이 되고 말았다. 1847년 맹인학교를 마친 크로스비는 그 학교의 교사가 되어 11년간 영문법과 수사학, 라틴어 미국 역사 등을 가르쳤다.
30세가 되던 1850년 11월 20일, 크로스비는, 어느 부흥 집회에서 온 회중이 아이자크 왓츠의 찬송「웬 말인가 날 위하여」를 부를 때 합께 부르다가, 5절「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Here, Lord, I give myself away; 'Tis all that I can do' 란 구절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예수를 영접하기로 결심한 분들은 앞으로 나오시오」하는 초청에 응하여, 참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평생 왓츠와 같은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크로스비는 나이 38세이던 1858년 맹인 음악가이며 같은 학교 교사이던 알렉산더 밴앨스타인(Alexander Van Alstyne, ?~1902)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크로스비는 시인일 뿐만 아니라 복음찬송을 부르는 가수였으며, 위대한 복음 간증 사역자였다. 그는 감리교회 평신도로 살면서 수많은 찬양시를 썼다. 그는 자신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나의 육신의 눈을 멀게 하신 대신에, 나의 영의 눈을 열어주셨다. 내가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찬양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찬양시를 쓰게 하셨음을 나는 믿는다. 만약 내가 육신의 눈을 떠서 세상 것으로 장애를 받았더라면 내 어찌 그토록 많은 찬송시를 쓸 수 있었으랴….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기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노래하게 하련다.”

이 찬송 작곡자는 미국인 하워드 돈(W. Howard Doane, 1832~1915)이다. 하워드는 우드스톡 아카데미(Woodstock Academy)에서 음악을 공부하여 2년 만에 작곡집을 낸, 음악의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 예수를 믿고 침례교회에 출석하였다. 제재기계상사에 취직하여 그 회사 사장이 될 정도로 사업에 능하였다.
그래서 음악을「부업」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2천 곡 이상의 찬송을 작곡하였다. 특히 패니 크로스비와 친밀하여 두 사람 합작 찬송이 가장 많다. 그는 오하이오주에 있는 마운트오번침례교회(Mount Auburn Baptist Church)의 주일학교 부장과 찬양대 지휘자 일을 맡아 성실히 일하였다. 그는 죽기 전 많은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시카고에 <돈 기념음악당 (The Doane Memorial Music Building)>이 건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