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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Christianity

이슬람 바로알기 #4

4. 무슬림의 금융기법과 교리에 대한 대처방법

 

쿠라이쉬 부족이 핵심세력이었던 이슬람이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를 무력으로 정복한 이후에 주위에 있던 부족들을 점차 점령해 나가면서, 9-10세기에 이르렀을 때 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 이집트와 북 아프리카 지역이 이슬람화 되었다. 현재 무슬림은 전 세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16억에 이른다. 최근에 미국의 외교 전문지인 'Foreign Policy'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는 종교가 이슬람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강력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유럽에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유럽에 이슬람이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슬림 인구의 유입과 유럽의 저조한 출산율에 기인한다. 그러나 무슬림 인구의 다량 유입으로 인해 유럽에서 각종 사회문제가 유발됨으로써, 오늘날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트, 네덜란다, 독일, 영국 등의 유럽 국가에서 반 이민 정책을 고수하며 이슬람을 경계하는 정당이 점차 힘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슬람이 위에서 언급한 지역들뿐만 아니라, 아시사의 나라들 중에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와 태국과 인도에서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지난번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서쪽 지방 자치구에서 테러와 무력 행동이 수차례 발생한 것을 놓고 볼 때 이슬람의 무장이 아시아에서도 점차 노골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슬람이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개화기의 일제 점령기에 실크 로드, 아라비안나이트, 신밧드의 모험, 밸리 댄스 등의 대중문화의 옷을 입고 침투해 들어 온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UN의 지원 아래 16개국의 연합군에 포함된 터키 군대가 '형제의 나라'라는 미명하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한국사회에 침투하게 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The Church around the World'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기독교는 47%의 성장에 그친 반면에, 불교는 63%나 성장하였고, 흰두교는 117%나 성장하였는데 반하여, 이슬람은 무려 500%나 성장하였다. 이슬람의 성장에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자연적 성장인 인구 증가에 의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 인구가 출생률 증가로 전 세계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 이슬람 금융의 한국사회 침투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맨해튼에 있던 쌍둥이 건물인 세계무역센터가 무슬림들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 2대로 인해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이어서 또 한 대의 여객기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DC에 있는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파괴하였고, 마지막 한 대의 여객기가 땅에 곤두박질쳤던 그야말로 철저히 준비된 테러를 벌인 이후에, 지금 세계는 이슬람과의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는 중에 있다.

 

그 후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IMF 이후에 한국 경제가 되살아나는 듯 하는 분위기도 완전히 역전되어, 지금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월가의 주식도 연일 하락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미국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게 850억불을 지원하고, 이어서 부시 행정부가 7000억불에 해당하는 사상 초유의 구제금융 법안 처리를 미국 하원에 요청하였지만 1차 표결에서 안타깝게도 부결되었다가 2차 수정안이 가까스로 통과된 일련의 사태는 이슬람과의 대테러 전쟁 중에 있는 오늘날의 세계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능히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이 IMF 직후에 많은 외자 유치를 위해 온갖 힘을 쏟을 때, 은근 슬쩍 이슬람의 오일머니인 검은 돈이 한국사회에 유입되었다. 이로써 한국에 이슬람 문화원과 이슬람 대학이 버젓이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한남동에만 있는 이슬람 사원이 이제는 전국에 걸쳐서 부산, 파주, 부평, 안산, 포천, 안양, 광주, 전주 등 8개에 이르고 있으며, 그밖에 동암, 대구, 마천, 마석, 김포 등 전국에 걸쳐서 임시 사원이 50-60개로 무질서하게 산재해 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 우후죽순식으로 이슬람이 자리를 잡게 된 배경은 IMF 이후에 많은 동남아시아의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교회가 사랑으로 감사준다면서 보호해 준 것도 한 몫을 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엄청난 이슬람의 양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 때 3D업종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어서 본국에 송금한다면서 물밀듯이 들어온 동남아시아인들 중에서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와 태국에서 온 불법 노동자들 중에 상당수 무슬림들이 섞여 있었으며, 그 중에 철저히 훈련된 이슬람 선교사들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이 교묘하게 그 정체를 숨기고서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서 오일머니를 대량으로 유포하면서 공식적으로 한국사회를 파고들었고, 동시에 비공식적으로 불법노동시장을 통해 한국교회의 동정까지 받으면서 침투해 온 것이, 이제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심각하게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10월 7일에 마포에 있는 가든 호텔에서 국내 최초로 이슬람금융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것은 부산광역시가 후원을 하고 재단법인 한국혁신전략연구소가 주최하고 다산자기관리부동산투자회사와 넥서스 투자회사가 주관한 모임인데,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투자 패턴의 방향을 바꾸려는 시도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우리가 코란이 지시하는대로 따르는 소위 샤리아 은행에서 주도하는 이슬람 금융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슬람의 검은 돈인 오일 머니의 위력 때문이다.

 

왜들 이렇게 난리들인가? 지난 이슬람금융세미나에서 허남식 부산광역시장과 이승일 한국은행총재가 기조연설을 하였다. 이후에 송종찬 삼일회계법인에서 "이슬람 금융, 회계, 및 조세제도 소개"와 이슬람 금융센터의 로슬란 이사가 "이슬람 금융 시스템 및 이슬람 금융 상품 소개"가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향후 이슬람 금융을 한국사회에 확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발표와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 모두가 한국에 이슬람 금융센터를 건립하여 은행, 금융, 증권, 보험 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펀드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 내에 이슬람 금융 전문가를 양성하고 한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직접 투자를 벌여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모두가 단순하게 생각하여 한국 기업에 돈이 필요하니까 이슬람 금융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이슬람 채권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근거한 물량공세를 통해 한국사회에 이슬람이 침투해 들어오려는 치밀한 전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머지 않아서 한국 경제는 무방비 상태로 오일 머니로 무장하고 있는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sukuk))에 굴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람은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데 필요한 실정법보다는 코란에서 가르치고 있는 종교법인 샤리아를 더 중요시한다. 인간사에 만연되어 있는 금융기법에 대해서도 샤리아법은 아래의 5가지 항목에 대해서 금지를 하고 있다.

 

1) 이자수수 금지

2) 도박사업 금지

3) 원금보장 금지

4) 위험부담과 불확실성 금지

5) 술, 돼지고기 등의 매매 금지

 

이런 원칙을 가지고 이슬람 금융 채권인 수쿠크는 단기적인 투자보다는 5년 이상의 장기적인 투자를 미끼로 한국 기업을 공략하려고 한다. 더구나 이슬람 금융 채권은 유럽이나 미국의 금융기관보다 약 1.5% 정도 더 싼 금리를 제공하면서도 담보설정을 하지 않는 등의 기법으로, 초기에 저렴한 자금을 막대하게 확보하려는 한국 기업의 정서를 교묘하게 파고들 책략을 세워놓았다. 기업을 하는 사람치고 자산 규모와 담보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을 간파한 이슬람의 수쿠크는 기업의 장래성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 공헌도를 중시하여 파격적으로 저렴한 금리의 금융을 지원해주는데, 향후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여기에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이슬람 금융기법인 수쿠크는 코란의 가르침인 샤리아 법에 의거하여 이자나 담보를 받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도록 설계된 채권이다. 예를 들면, 개인이 집을 살 때 원금과 이자를 대신해서 수수료로 상환을 받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교묘하게 이슬람 법망을 넘어간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수쿠크가 발행되는 형태도 다양하다.

 

1) 무라바하 : 이슬람 채권으로 집을 구입한 후에 채무자에게서 수수료를 받고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혹은 물건을 구매자에게 넘긴 후에 수수료와 원금을 나누어서 받거나, 아니면 수수료만 먼저 받고 만기일에 물건을 매각한다.

2) 무샤라카 : 이슬람 금융 기관과 기업이 사업에 공동으로 투자한 후에 일정부분의 수익을 나누어 갖는 방식이다.

3) 무다바라 : 이슬람 금융 기관이 기업의 사업에 투자를 한 후에 배당금을 받는 방식이다.

4) 이지라 : 이슬람 금융 기관이 시설을 구입하여 임대료를 받고 설비를 빌려주는 방식이다. 일종의 임대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의 다양한 수쿠크 금융기법은 기존의 일상적인 이익 추구와는 달리 이슬람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한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배후에 한국사회를 이슬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수쿠크 채권도 이미 인간사에 만연되어 있는 다양한 경제기법의 일환이지만, 그 배후세력이 이슬람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오일 머니는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외상이라면 까막 소도 잡아먹는다'는 우리네 속담도 있듯이, 한국 사람들도 과거에 외상값을 돈으로 갚는 대신에 자기 집이나, 땅이나,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종종 채권자들에게 넘긴 사례들이 빈번하였다. 이슬람 사회에서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거저 주다시피 막대한 돈을 대주다가 기간이 만료될 때, 원금과 수수료를 갚을 길이 없으면 돈을 대신해서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강탈해 가는 이른바 인신매매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이슬람은 일부다처제를 제도화하고 있으며, 수쿠크 법에 의해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에 그보다 엄청난 값에 해당하는 인신매매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누가 처음부터 자기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내놓을 아비가 있겠는가? 그러나 수쿠크법이 이러한 것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담보 없이 거대한 돈을 빌려주고, 만기가 되었을 때 원금과 이자를 갚을 길이 막막해지면, 누구나 빌린 돈의 대가로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넘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쿠크 법은 오늘날도 인신매매를 방조하는 폐단을 많이 낳고 있다.

오늘날의 수쿠크 법은 기업이 사업용 자리를 마련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담보도 없이 사용하였다가, 만기일에 사업이 어려워져서 모든 기반이 송두리째 이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면, 그 만큼 한국사회에서 민족자본이 침식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에 왜 독립투사들이 왜인들의 돈을 마다하고 비록 영세하지만, 민족 자본에 철저히 의존하였는지를 우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자금의 대부분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이 돈에 메이는 것처럼 비굴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가치와는 다른 이질적인 옷을 입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이슬람의 금융기법인 수쿠크 채권이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슬람 채권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블룸버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가 전년에 비해 75%나 급증하였다. 이는 고유가 시대에 오일 머니가 상당수 그 위력을 행사하였다는 증거이다. 이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이비 이슬람 국가가 된지 오래되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 같은 나라들이 아시아 국가들이지만, 이미 중동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 벌써 오래되었다. 최근 3년 동안 아시아에서 수쿠크 채권의 3/4가 말레이시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가? 일본도 재무부 국제협력은행과 같은 국책 기관에서 G7 국가 최초로 수쿠크 발행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예수님께서는 맘몬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선택하라고도 말씀하였다.

과거에 한국의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맞서서 싸웠다. 이제 이와 병행하여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이슬람과 맞서서 싸워야 한다.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선ㅇ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도 거부하는 이단적 정치경제집단이다. 오늘 이 시대에 검은 돈인 오일 머니를 쥐고 있는 이슬람의 정체를 바로 알고서, 우리 모두 이슬람의 금융제도인 수쿠크 채권에 맞서서 나가야 한다. 진리는 삶 속에서 불의와 맞서서 진실한 힘을 발휘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우리가 아는 대로 수쿠크 법은 인신매매로 이어질 수 있는 악법이다.

 

 

2. 이슬람의 정체

 

오늘날 이슬람은 세계종교인 기독교, 불교, 유교로 불리는 4대 종교 중의 하나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제 예수를 믿으면서 이슬람에 대해서 무지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슬람을 이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타종교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그들의 신 알라(Allah)를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신으로 보느냐 아니면 다른 신으로 보느냐 하는 시각의 문제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 즉 같은 신으로 본다면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신으로 본다면 타종교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이단이란 처음은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섬기는 신의 속성과 율법과 경전의 기본교리가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타종교로 보아야 한다.

이슬람이 말하는 최후의 예언자인 무하마드는 무슬림들에 의해서 모든 계시의 종결자라고 추앙을 받는다. 이러한 계시는 다분이 주관적이고 절대적이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교리에 철저히 복종하기 때문에 무슬림들에게 그 교리는 막강한 위력을 행사한다.

 

이슬람이 주장하는 계시는 신구약성경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보다 600년 후에 등장한 이슬람이 주장하는 교리가 신구약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슬람은 처음부터 기독교를 반대하고 기독교 신앙을 따르는 크리스천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등장한 종교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호전적인 종교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인류의 구세주이다. 그러나 예수에 관한 이슬람의 경전이 꾸란의 관점은 너무나도 상이하다. 복음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구원을 가져 온 평화의 왕으로 계시한다. 그러나 꾸란은 예수를 '이스마엘이나 이삭과 같은 선지자'로 간주하여 최후 계시자는 무함마드라고 함으로써 예수를 무함마드 밑에 내려놓았고(구란 2:136; 3:84; 4:163),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지도 않았다고 주장하여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구원교리를 거부하였다. 특히 꾸란은 이스마엘이 알라의 메신저와 선지자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19:54), 성서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서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나갔다고 증거한다. 꾸란은 예수가 단지 알라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펌하한다(4:157). 꾸란에 의하면, 예수는 스가랴, 세례요한,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의인'에 지나지 않는다(6:85). 이것은 꾸란이 1세기의 그러코-로만 세계에 퍼져있던 '의로운 죽음'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혼합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행위들 중 많은 것들은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에 존재했던 종교들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이미 그레코-로만 시대에 초기기독교에 대한 타종교의 폭력이 심화 되었는데, 이른바 이러한 안티기독교적 전통을 이끈 꾸란은 기독교인들을 어리석은 이교도로 펌하하였다. 꾸란은 기독교인을 거짓말쟁이로 단정 짓기 때문에(꾸란 18:4-5), 기독교인이 숭배하는 것을 모두 배격한다(꾸란 109:1-6). 꾸란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을 친구로 삼지 말라고 경고하며(5:51), 심지어 알라를 믿지 ㅇ낳는 자들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강요한다(9:29). 그래서 꾸란은 기독교인을 이교도로 취급하며 기독교 여성과 결혼하는 것도 금지한다. 꾸란은 이교도 여성과 결혼하는 것보도 이슬람 노예와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가르친다(2:221). 이 율법은 지금까지 철저히 수행되고 있어 무슬림들과 결혼한 타종교인들은 이슬람국가에서 결혼을 인정받을 수 없다.

 

꾸란은 예수에 관해 28회 언급할 정도로 신약성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비록 꾸란은 예수를 이싸 알 마씨(번역하면 그리스도 예수)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이것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 반대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 이슬람은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최후의 선지자인 무함마드를 위해 앞서 온 세례요한과 같은 선지자의 개념으로만 이해한다.(꾸란 61:6) 꾸란은 그리스도의 의미를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삼중개념으로 인간구원의 포괄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고, 무함마드의 수하에 있는 일개 선지자로만 간주하여 기독교 정통교리에 엄청난 폭력을 가한다.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다. 꾸란에 28명의 예언자들 중에 예수님뿐만 아니라 의외의 인물인 알렉산더 대제까지 등장시키는 것은 이슬람교의 혼합주의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꾸란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성만 가지신 예언자가 아니라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 영지주의 이단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대속적인 의미의 죽음을 당하셨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성취하셨다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3. 여성과 인권

 

문화는 현대인에게 옷과 같은 것이라면, 종교는 인간에게 마음과 같다. 옷이 그 나라의 문화를 표현한다면, 마음은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종교를 표현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옷차림에 민감한 것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더 종교적이다. 옷이 문화라면 종교는 삶이기에, 남성보다 여성이 옷에 신경을 더 쓰는 것처럼 종교에도 더 열심이다. 근본주의 이슬람이 평화를 가장하고 문화의 옷을 입고 한국사회에 다가온다는 사실을 중시하여, 우리는 기독교와 이슬람원리주의가 여성을 어떻게 이해하며 해석하는지 더 나아가서 인간의 문화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모세오경처럼 중시하는 미쉬나는 200년경에 여후다(Jehuda)에 의해 성문화되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그의 두 번째 찬양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여후다보다 200년 전에 살았던 예수는 여성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예수에레 데려왔다(요 7:53-8:11). 그들은 모세율법이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예수에게 어떻게 할지 간교하게 물었다. 예수는 남녀를 모두 죄인이라는 관점에서 동등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여성만 정죄할 수 없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함으로써 예수는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였다.

꾸란은 간음한 남녀에 대해 백대씩 때리라고 말하지만(24:2), 이슬람권에서 꾸란과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무함마드가 간음 사건을 다루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간음한 여인을 가슴까지 땅에 묻고 돌려 쳐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이 명령은 즉시 실행되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행동 모델은 무슬림들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슬람사회를 지탱하는 이슬람법인 샤리아는 사랑과 용서보다는 형벌을 강화함으로써 남성이 여성보다 위에 있따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남녀가 모두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꾸란이 남성에 관해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마음에 드는 여성 2명, 3명 혹은 4명과 결혼해도 좋다'(꾸란 4:3)면서 일부다처제를 두둔할 때, 이는 21세기의 일부일처제와 양성평등사상에 위배되는 이중적인 가르침이다. 구약성서에도 일부다처를 취한 사례들이 등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래 창세기부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심으로 일부일처를 명하고 있다. 일부다처를 취한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부다처를 취한 경우는 없고 일부다처를 취했기 때문에 가정의 불화와 어려움을 맞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확인할 수 있다.

성서보다 700년 후에 기록된 꾸란이 여성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마태복음과 비교해 보자. 예수는 결코 여성을 낮추어 본적이 없는데, 무함마드는 노골적으로 여성을 낮추어 본다.

 

 

(마태복음)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마 14:1)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마 26:13)

 

(꾸란 4장 34절)

남자는 여자보다 우위에 있다. 알라께서 서로 간에 우열을 붙인 것으로서 또한 남자가 생활에 필요한 돈을 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있으며, 따라서 정숙한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김용선, 꾸란의 이해, 375에서 재인용. 꾸란 2장 187절도 '남성은 여성의 위에 서있다'고 말한다.)

 

꾸란은 여성보다 남성이 위에 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특히 "알라께서 서로 간에 우열을 붙인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슬람에서는 남성이 영원히 여성 위에 서있다. 반면에 마태복음 14장은 권력으로 여성을 차지한 헤롯의 잘못까지 지적하고, 마태복음 26장은 향유를 부은 여성을 죄인으로만 간주하는 당시의 시각을 수정하면서 여인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다.

꾸란이 주로 여성에 관해 언급하는 제2장 암소의 장인 바까라와 제4장 여인의 장인 니싸아를 통해서 근본주의 이슬람의 여성이해를 살펴보자.

바까라에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조항들이 있다. 무슬림의 결혼은 전적으로 남성위주이다. 남성은 정식으로 결혼을 했더라도 두 번까지는 언제든지 원하면 이혼할 수 있고(꾸란 2:229) 여성과 동침하지 않았다면 지참금을 주기 전에 이혼해도 죄가 안된다(꾸란 2:236). 이혼 당한 여인은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3번의 생리가 지날 때까지 남편의 집에서 머물러야 하며 만일 임신 중이라면 출산과 동시에 추방한다(꾸란 65:4). 증인채택에서 남성 한 명에 여성 두 명이 필요하다고 함으로써 여성을 남성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치로 간주한다(꾸란 2:282). 여성 한 명이 잘못 증언하면, 다른 한 사람이 그 증언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여성증언 저체를 평가절하한다. 남성 한 사람에게 할당된 재산도 여성 두 명에게 할당된 금액과 같다(꾸란 4:176). 특히 '바보'에게는 재산을 분배해서는 안 되는데(꾸란 4:5), 바로 그 '바보'가 꾸란의 전후 문맥상 여성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무함마드가 여성을 경멸하는지 그 단면을 보여준다. 꾸란은 여성에게 불리한 재산분배 원칙을 이슬람법으로 못 박고 있다(꾸란 4:11). '바보'를 뜻하는 아랍어 수파하와 관련하여 922년에 죽은 알 타바라(Al-Tabari)가 남긴 꾸란 해석인 타프시르(Tafsir)에 의하면 "바보 중에 가장 바보가 여성"이라고 비하한다.

니싸아에 간음과 쾌락의 선이 모호한 가르침이 있다. 자기 아내 이외의 여성과 간음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쾌락을 얻으려면 돈을 주고 그 쾌락을 얻을 수 있다(꾸란 4:24). 더구나 재산이 부족하여 신분이 좋은 여성을 얻을 수 없을 때는 하녀로 대신 할 수 있다(꾸란 4:25). 이렇게 남성의 간음에 관하여는 구제책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단정 짓는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남성이 여성보다 위에 있기에 여성은 무조건적으로 남성에게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꾸란 4:34). 아랍어로 부인이 남편의 권위에 항거한다는 뜻인 누수즈는 이슬람법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역과 같은 행동이다.

이슬람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명예살인도 여성을 철저히 유린한다. 근본주의 이슬람은 여성이 옷에 향수를 바르거나 남성이 모인 곳에 지나가는 것조차 창녀와 같다고 여긴다. 이러한 편견이 여성을 단순하게 속박하는 것을 넘어서, 여성인권을 유린할 뿐만 아니라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따라 명예살인도 벌이는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다. 이 점에서 이슬람법은 샤리아는 21세기의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도 초월하기에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꾸란은 "간음한 여인을 집안에 감금하고 죽음이 그녀를 데려가든지 알라가 구원의 길을 열어 줄때까지 감금하라"(4:15). "나쁜 짓을 한 자는 임종의 순간에 회개해도 아무 소용없다"(4:18)고 가르친다. 이는 성서에서 예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대하는 이야기와 또 자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쪽 강도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야기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4. 이슬람문화와 기독교 문화

 

로마 천주교가 주도한 십자군전쟁으로 인해 역사상 많은 무슬림들이 희생당한 후, 현대에 이르러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하드의 형태로 9/11 테러와 같은 끔찍한 사태를 촉발하였다는 측면도 있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 앞에서 우리 모두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이슬람은 지하드 곧 이슬람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불신자들을 죽이는 전쟁을 정당화한다. 아랍어 지하드는 '성전'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투쟁이라는 의미가 정확하다고 본다. 학자들은 이를 대 지하드와 소 지하드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래 지하드의 의미가 너무 혐오스러움으로 12세기때 알 가잘리라는 학자가 근거 없는 하디스를 인용하여 소 지하드는 이슬람을 수호하기 위해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을 의미하고 대 지하드는 내면의 전쟁 즉 죄악과의 전쟁 음란과의 전쟁 등 영적인 전쟁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지하드는 이슬람 확산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데 '마음으로 나타나는 지하드.' '글로 나타나는 지하드.' '통치로 나타나는 지하드.' '칼로 나타나는 지하드.' '금융 지하드.' '싸이버 지하드.'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테러와 전쟁은 이념과 군사력이 충돌할 때 일어나지만, 결코 종교의 이름으로 감행되어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서구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근본주의 이슬람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가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인데 911테러로 이런 이미지는 더욱 더 고착되었다. 혹자는 이는 이슬람에 없는 사상이라고 미화시키기도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이라는 구호가 그림으로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본주의 이슬람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꾸란의 극단적인 가르침에 근거하여 서구 문명을 적대시하려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문화적 이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슬람 문화의 종교적 전통이 사랑과 평화와 자비보다는 비난과 폭력을 앞세우기 때문에, 이슬람은 평화나 진리라는 미명하에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집단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의 정치 집단적 의식은 무함마드가 출현할 당시에 유목민이 가졌던 가치관과 친족중심의 연대의식이 지닌 부족중심의 전형적인 집단지형성에서 기인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집트 정치가였던 하이칼이 1933년에 쓴 무함마드전기(The Life of Muhammad)에도 나타나있다.

꾸란에 여성과 관련되어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결혼과 이혼에 관한 것이다. 꾸란 4장 22-23절이 부적절한 혼인에 관해 나열하지만, 이미 이런 혼인은 이슬람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 꾸란이 이런 복잡한 혼인을 금지할까? 그 이유를 역발상으로 생각해보면, 이슬람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이 손쉽기 때문이다. 꾸란 2장 232절은 '이혼당한 여자들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꾸란 4장 19절은 '이혼한 여성이 재혼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지만, 사실상 무슬림권에서는 남성 위주의 이혼과 재혼이 가능하다. 아랍에서 이혼이란 단어인 '탈락'은 모든 시대를 불문하고 이혼이 남성의 말에 의해 성사되어 온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혼이 남성 한 쪽의 의견만 중시될 수 있는 성격인가?

이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예수는 이혼과 재혼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선언하였다. 모세율법은 이혼증서를 써주면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지만, 마태복음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였기 때문에 이혼을 허락한 것이라고 하면서 '음행한 이유 외에' 이혼과 재혼을 간음이라고 해석하였다(마 19:9). 그러나 본래의 예수말씀에 의하면, 예수는 이혼과 재혼 자체를 철저하게 금지아혔다(눅 16:18, 막 10:11-12). 예수가 재혼과 이혼을 금지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당시 여성에게 불리한 남성위주의 사회적 환경에서 열악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생존권을 지켜주려는 의도였다.

21세기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는 꾸란이 가르치고 있는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세운 숭고한 정신 위에 든든하게 세워져야 한다. 이 점에서 성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가르침은 꾸란에 나타나 있는 무함마드의 가르침보다 21세기에 더 중시되어야 할 인류의 보편적 선행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5. 교회 내 다문화 가정

 

 

핵무장을 치밀하게 준비한 이란이 근본주의 이슬람 패권주의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슬람원리주의가 '테러 지하드'를 통하여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 이슬람의 세계정복은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와 유럽을 넘어서 미국과 동북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 이슬람의 한국진출도 도를 넘었기에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비전 2020'을 향해 범교단적으로 군복음화 선교에 박차를 가하는 마당에, 이슬람이 2020년에 세계이슬람대회를 개최함으로써 한반도를 거점으로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려는 전략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슬람은 모스크 건립, 국제 이슬람학교 설립, 이슬람문화센터 설립, 꾸란 번역, 이슬람대학 건립, 이슬람 관련 서적과 자료 출판(일명 '펜의 전략'), 결혼 전략 등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내용은 2005년에 이슬람연맹에 의해 발행된 '한국 이슬람 50년사'에 발표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국인의 전통가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이슬람의 문화적 가치는 21세기의 부편적 문화와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슬람의 대 한국사회 침투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협력해 나가야한다. 이슬람중앙회가 CTS 기독교 TV에 의해 방송된 "이슬람 한국진출 이대로 좋은가?"에 대해 2008년 12월 18일에 언론중재위원회에 3차에 걸쳐서 제소하였다가 취하한 사건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한국기독교에게 일깨워준 단적인 예이다. 이 사건은 기독교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이슬람의 폭력성을 경고한 내용에 관해 이슬람 측에서 스스로 시인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이슬람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검은 돈인 오일 머니를 앞세우고, 또한 문화의 옷을 입고 한국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한국 교회 안에 많은 다문화 가정이 침투해 들어오면서 더욱 위험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처럼 외국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민족도 드물다. 다이어트 열풍으로 한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밸리 댄스는 어느덧 우리의 전통문화인 국악한마당을 능가하였다. 주말에 동네 인근의 야산 입구에서 문화공연이라면서 배꼽을 드러낸 한국여성들이 밸리 댄스를 추는 어설픈 일도 빈번해졌다. 지금 동네마다 개설된 문화센터에 벨리 댄스 무료강습과 아랍어 무료강좌가 앞다투어 선보이는데 이런 배경에는 이슬람을 포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으며, 여기에 이미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의 파괴력은 심각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수능시험에서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일이 해마다 늘고 있다. 아랍어가 상대적으로 다른 외국어보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아랍어 시험문제의 난이도가 다른 외국어 과목보다 쉽기 때문이며 또한 표준 점수제라는 채점제도 때문에 많은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통계를 보면 지난 3년간 8개 제2외국어 과목시험을 치른 학생 중의 평균 45% 정도가 아랍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일부 무슬림 학자들은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 이렇게 인기 있는 아랍어를 왜 사교육에 맡기고 있나? 즉시 공교육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공교육으로 끌어들이라는 말은 전국 고등학교에 아랍어 교사를 한 사람씩 배정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슬람권에서 교사자격의 선교사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우리 학생들의 영혼을 점령해 나갈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즉시 난이도의 형평성을 조정하여 교묘하게 입시까지 손을 대는 이슬람이 다른 외국어를 택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불공정관행을 속히 개선해야한다. 이슬람의 여성차별과 일부다처제는 혼인의 순결과 양성평등과 일부일처제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사회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전근대적인 악습인데, 이슬람은 이것을 숨기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우리 집 안방에까지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무슬림여성들의 인권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아무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 길이 열려야 한다. 앞으로 무슬림여성의 인권문제와 더불어서, 무슬림남성과 결혼한 후에 자녀까지 낳았지만 이슬람법에 따라 인혼당한 한국인 여성의 처참한 인권상황에 관한 연구들도 많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한국에서 무슬림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도 한국 국적만 받으면 고국에 있는 본처와 자식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한국인 여성들과 서류상 이혼을 하고 동거하기도 한다는데, 이런 변형된 일부다처제는 가정파괴의 주범이며, 일부일처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볼 때 반인륜적인 범죄이다.

이슬람 포교의 강력한 수단이 결혼을 통한 자연출산율 증가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다. 이슬람은 한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만, 이슬람권에 있는 많은 한국인 봉사자들과 전문사역자들은 공적인 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온갖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처참하게 인권유린을 당하는데, 향후 이 문제에 관한 국제적인 동조와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이슬람은 종교집단이 아니라 정치집단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모든 수단과 방법과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한국을 무대로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고자 한다.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며 많은 사람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사탄의 세력이다. 신약성경은 이미 적그리스도가 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싸움이 영적 전쟁인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많은 이단 사이비와 맞서서 싸워왔는데, 이제는 교단마다 소위 '이슬람 대책 위원회'를 별도로 세워서 이슬람의 음모에 반대하여 힘을 모아서 저지하여야 한다.

지금 시작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악한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진리는 반드시 이긴다. 이슬람은 오일머니와 거짓 교리와 이중성과 폭력성을 앞세워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우리 모두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다시 만족 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과 온 세계로 나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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