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역(work)
토목, 건축 공사의 부역을 가리키는 말로서, 기술과 이익이 수반되는 일을 강조하는 데 쓰인다. 이 말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 기사에서 성전 낭실 앞에 세워진 두 개의 놋기둥의 공사가 다 끝난 것을 가리켜 쓰였다(왕상7:22;공동번역 '일').
공연히(in vain)
'까닭이나 필요가 없이'란 뜻으로서, 바울은 세상의 권세자들이 공연히 칼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로서 행악자에게 보응하기 위해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롬13:4).
공의1(justice)
헬 '디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복수의 여신(Vengeance)'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은 죄를 지은 자는 정의의 신이 용서하지 않고 독사를 보내어 죽인다고 생각했기에 독사에 물린 바울에게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했다(행28:4, 공동번역 '정의의 여신이 그대로 살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공의2(justice)
히 '미쉬파트', 아 '치드카', 헬 '디카이오쉬네'.
공의, 혹은 정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중에 대표적인 것이 미쉬파트와 체다카이다. 미쉬파트는 법, 심판, 권리, 공의(정의), 공의를 위한 사법 외적 개입 등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최후 심판과도 관련을 갖고 있다. 한편 체다카는 의로 번역되지만 공의로 번역되기도 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을 갖는다. 미쉬파트와 체다카는 성경에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삼하8:15; '공과 의'; 창18:19, '의와 공도').
신약시대에 와서는 (공)의, 혹은 정의를 뜻하는 말로서, 헬라어 크리시스, 디카이오쉬네가 사용 되고 있다. 성경의 공의 개념은 대략 연대적 순서로 9단계를 거치는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1. 어원적으로 볼 때, 체다카의 어근은 물리적 의미의 '곧음'(신9:5)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2. 그러나 이 단어는 족장 시대에 이미 어떤 대상이나 행위가 어떤 인정된 가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란 추상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맺은 계약에 충실했기 때문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창30:33)고 말한다. 또한 모세는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두라고 말하며(신25:15. 참고. 레19:36), 이스라엘의 재판장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을 주장한다(신16:18,20).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원고의 말이 송사에서 얼핏 바른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다(잠18:17). 그리스도인은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도록' 주의를 받는다(골4:1). 무생물의 경우도 적절한 기준에 맞을 때 체데크로 표현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편 23:3의 '의의 길'은 걷기에 알맞은 길을 가리킨다.
3. 인생의 최고의 기준은 신의 성품에서 나오기 때문에 모세 시대 이후부터(참고. 신32:4) '공의'는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그 공의로부터 결과되는 활동들을 구분하게 된다. 천상의 성가대는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심"(계15:3)을 선포한다. 여호와의 뜻의 궁극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욥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고 말한다(욥9:2. 참고. 욥4:17;33:12). 하나님은 어떤 인간에게도 책임져야 할 처지에 있디 않으시면서도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신다"(욥37:23). 그것은 그 자신의 기준에 합당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동들이 항상 완전하고 의롭기 때문이다(시89:14;습3:5). 그리하여 체다카는 하나님이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것과(시36:6) 또한 하나님께서는 헛된 일과는 무관하심을 기리킬 수 있따(사45:19).
4. 자연스런 변천에 의해 '공의'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동을 재는 도덕적 기준(사26:7)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창6:9;참고. 마5:48) '의를 행하여야'(창18:19)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함을 얻기 때문이다(롬2:13). 성경적 의미의 공의는 거룩함(미6:8;막6:20;살전2:10)과 진실한 경건(눅2:25)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공의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눅18:2-8;행10:22) 자의 마음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이 명하신 가나안 정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갓 지파는 '여호와의 공의를 행한'(신33:21) 것으로 묘사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를 진지하게 따라야 할 의무는 왕(삼하8:15;렘22:15), 방백(잠8:15), 재판관(레19:15)에게 있다. 그러나 모든 진실한 신앙인들은 '의를 행하여야'(시119:121)한다. 공의는 죄와 상반되는 것으로(사10:22) 메시야 예수의 뚜렷한 특징이 된다(사9:7;슥9:9;마27:19;행3:14). 구약성경의 시가에서는 다윗("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시7:8)이나 욥("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욥 12:4. 참고. 욥1:1)과 같은 인물들의 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의 악행을 인정하는(욥7:21) 것과 모순되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인들의 의도는 적들이 비난하는 특수한 범죄에서 결백함을 주장하거나(참고. 시7:4) 목적의 순수성과 한결 같은 경건심을 하나님께 고백하려는 데 있다(시17:1). 에스겔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8:9).
5.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하여 공의는 도덕 행위에 대한 징벌로 묘사된다. 하늘이 보낸 여러 가지 재앙의 채찍을 맞는 바로는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출9:27. 참고. 느9:33)고 실토하였다.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는 다른 강도에게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눅23:41)이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악에 대해 무관심하실 수 없으며(합1:13. 참고. 습1:12), 전능하신 분이 공의를 굽게 하시지 않는다(욥8:3. 참고. 8:4;36:17). 멜리데 섬의 이교도들 조차도 신의 보복을 믿었으므로 바울이 독사에 물린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행28:4, 헬라어 '헤 디케'는 복수의 여신)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의 징벌적 공의는 분노의 불(신32:22;히12:29)이며, 그의 정죄는 옳은 것이다(롬3:8).
6. 그러나 사사 시대 이후부터 체다카는 또한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변호의 행위를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삿5:11)로 묘사하게 된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피해를 호소하는 자에게 "공의를 베풀"(삼하15:4. 참고. 시82:3)것을 약속했으며, 솔로몬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3:33. 참고. 시94:15)고 선언했다. 또한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변호를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간구했다(사58:2-3). 하나님의 개입이 비록 지연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참고. 전7:15;8:14. 사40:27) 하나님은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셨다"(욜2:18).
7. 그러나 이와 같은 단어들은 또 다른 한 측면을 도입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정확한 도덕적 응보의 표현이기를 그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의 성격을 띠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의 이런 의미는 밧세바에게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였던 다윗의 기도에서 처음 나타난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건지심)를 노래하리이다"(시51:14)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구한 것은 변호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무서운 죄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나면서부터 타락했음도 고백하였다(시51:5). 다윗의 간구는 오히려 무조건적인 용서를 구한 것이었으며, 그가 말한 체다카는 반복적인 말로 번역될 수 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 혀가 주의 '구원'을 노래하리이다". 다시 말하면 체다카는 구원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체다카는 인간의 공로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은혜로 약속하신 구원의 성취이다(시31:1;103:17;141:1). 그리하여 다윗의 조언자 에단은 앞서의 네번째 의미의 하나님의 공의(시89:14)를 말하다가 곧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의 의(약속하신 은혜)로 인하여 높아지리다"(시89:16; 이와 비슷한 대조법을 보이는 사56:1을 참고)고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사45:12)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은 공의를 행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뜻이 아니라 공의를 행하기 때문에 구원을 베푸신다는 뜻이다(의와 구원이 병행되고 있는 사45:8;46:13을 참고).
우리는 신약에서도 이와 같은 사상을 보게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공의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의 은혜로운 약속에 충실하사)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라"(요일1:9). 그러나 이러한 비법정적 공의 개념들은 이 용법이 특수하게 사용된 구절들에 한정되어야 한다. 로마서 3장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아버지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강조하고 있는 맥락이므로 우리는 전통적 의미의 공의(롬3:26)로 이해하여야 한다. "곧 이 때에 자기 의로우심(위의 다섯번째 의미에 따른 징벌 처리)을 나타내사 자기로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8.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공의'에서 생기는 한 조건으로서, 성경에는 하나님 자신의 도덕적 속성(위의 네번째 의미의 체다카)이셨던 것으로 선언되면서도 동시에 이제는 그의 은혜로 믿는 자에게 수여된 인간이 갖게 된 체다카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모세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전가된 의(imputed righteousness)를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창15:6). 그러나 물론 아브라함의 믿음 그 자체가 공로에 의한 의를 구성했던 것은 아니며 단지 의로 여기심을 받았을 뿐이었다. 아브라함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다. 하박국도 이와 마찬가지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그 믿음에 의해) 살리라"(합2:4)고 선언하였다. 여기서도 또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인간 자신의 강건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인간의 겸허한 의존에서 온다(같은 문맥에서 바벨론 사람들의 자기 의존심, 곧 교만은 정죄되고 있다. 참고. 롬1:17;갈3:11). 그러나 "여호와의 종들의 유산(한글개역은 '기업'),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사54:17)에 관해 처음으로 직접 언급했던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였다. 이 의는 신의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세계 안에서 산출된 신적인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안에 있는 의가 그의 은혜로 믿는 자의 것으로 된다(사45:25). 우리 자신의 의는 너무나 부족하다(사64:6). 우리는 '여호와 안에서' 의롭다(사45:25).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공로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빌3:9). 한 세기 후에 예레미야는 유다와 하나님에 관해 '의로운 처소'라고 말한다(렘31:23;50:7). 의로운 처소는 믿는 자가 의롭다 함을 얻는 근원이라는 뜻이ㅏ(참조. 렘23:6;33:16,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
9.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은혜로 보잘 것 없는 자에게 의를 수여하시듯이 하나닝믜 백성은 '공의를 구하여야'(사1:17) 한다. 이 때의 공의는 과부를 변호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는"(렘22:16)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공의'는 선(눅23:50)과 사랑의 배려(마1:19)를 의미하게 되었다. 나아가 포로기 이후부터 의를 뜻하는 아람어 시드카는 구제나 자선을 가리키는 특수 용어가 된다. 이 말은 '빈궁한 자에게 준다'(시112:9. 참고. 마6:1)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특히 초법정적 의미를 지닌 성경적 '공의'에 대해 어떤 긴장이나 심지어 모순까지도 느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일곱번째의 은혜의 의미의 체다카는 다섯번째의 징벌적 의미에서 그것이 정죄하는 범죄들을 용서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의 궁극적 해답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 안에서 나타난다. 그의 죄 없는 삶(히4:15)에 의해 제공된 윤리적 모범은 하나님의 도덕 의지에 관한 성경적 계시의 절정을 이루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일견 고상한 듯 보이지만 왜곡된 의를 훨씬 능가한다(마5:20).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기를 명하신(마5:48) 그는 동시에 보잘 것 없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비길 데 없는 사랑(요15:13)을 보여 주셨다. 바로 여기에서 다섯번째의 윤리적 관계, 일곱번째의 구속적 단계, 여덟번째의 전가된 단계의 공의가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났다. 그는 하나님도 의로우시게 되고,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함을 얻게 하기 위해(롬3:26) 세상에 오셨다. 그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전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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