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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기럇 산나 / 기럇 세벨 / 기럇 아르바 / 기럇 여아림 / 기럇 후솟

기럇 산나(Kirjath-sannah)

'드빌'의 초기 명칭으로 유다 남부의 한 성읍이다(수15:49). '기럇 세벨'의 별명으로 아마 잘못 표기된 것 같다. 

 

기럇 세벨(Kirjath-sepher)

'드빌'의 옛 이름으로(수15:15;삿1:11), 사사 옷니엘은 이 성읍을 탈취하고 갈렙의 딸 악사를 아내로 얻었다(삿1:13). 

 

기럇 아르바(Kirjath-arba)

헤브론의 고대 명칭으로서(창23:2;수15:54), 이곳 가까이에는 족장들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이 있었으며(창23:2;35:27), 산간 지방의 아주 중요한 성읍으로서 도피성 역할도 했다(수15:54;20:7). 갈렙이 아낙 사람들로부터 이 성읍을 빼앗았는데, 이 성읍은 아낙 사람들이 영웅 아르바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으로 보인다(수14:15;15:13).

 

기럇 여아림(Kirjath-jearim)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위치한 한 성읍으로 원래 기브온 사람의 것이었으나(수9:17), 유댜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다가(수15:60) 후에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18:28). 초기 명칭은 '기럇 바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에 대한 묘사에서는 '바알라'로 나타나 있고(수15:9-10), 베냐민 지파의 경계 묘사에는 '기럇 바알'로 쓰여 있다(수15:60;18:14). 단 지파의 기업과도 접경한 이곳은 물이 잘 공급되는 편이어서 단 지파는 북쪽으로 이주해 가는 과정에서 여기에 진을 쳤다(삿18:12). 기럇 여아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시 기브온족과의 동맹에 따라 점령하지 않았던 네 개의 전략적 요새들 중 하나였다(수9:17).

B.C.1050년경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빼앗아 아스돗, 벧세메스에 두었는데 불온한 사건들로 인해 기럇 여아림으로 돌려보내졌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이 궤를 옮기기까지 이 궤는 기럇 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되어 있엇다(삼상5:1-7:2). 재조직된 행정 제도에서 기럇 여아림은 예루살렘에 속하게 되었으며, '바알레 유다'라고도 불리웠다(삼하6:2). 이곳은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우리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렘26:20).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 중에는 이곳 사람들도 있었다(느7:29). 로마 시대에는 이곳의 페허 위에 한 요새가 세워져 예루살렘과 해안평야 사이의 전략적 도로를 지키는 군진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곳은 녜루살렘의 서쪽 1km 지점에 있는 지금의 '데이르 엘 아자르'로 추정된다. 

 

기럇 후솟(Kirjath-huzoth)

아르논 근처 모압의 한 성읍으로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도록 발람을 데리고 갔던 첫 장소이다(민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