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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네로 / 네르갈 / 네르갈사레셀

네로(Nero)

로마의 제 5대 황제(재위: A.D.54-68). 네로는 로마의 명문 귀족 가문(Domitii) 출신으로, 아버지는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이고 어머니는 줄리어스 시저의 증손녀인 아그리피나 2세였다. 그의 어머니가 그녀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재혼하게 되자 그는 황제의 상속자로 정해졌고, 54년 황제가 독살당하자 로마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즉의 초기에는 근위대장 부루루스 및 세네카 등의 지도를 받아 재능있는 황제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58년 경부터 방종해지기 시작 59년 정권투쟁으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부루루스의 죽음, 세네카의 은퇴 후에는 아내 옥타미아를 살해, 이후 폭정은 극도에 이르렀다. 또 네로는 예술을 사랑하여 2대 제전(Iuvenalia와 Neronia)을 창시하고 67-68년 예술 여행을 떠나 헬라를 방문하여 여러 문학 축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정치는 문란하기 그지없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68년 친위대까지 반란을 일으키자 네로는 로마 시외의 한 농가에 피신하던 중 자살하였다. 그가 요절하자 그에 관한 전설이 동방에서 무성하게 번져 그의 환생의 소문이 나돌기도 하였다 네로는 많은 소설 및 영화의 주인공으로 되어 왔고 악인의 대명사로도 사용된다. 네로는 세 가지 점에서 신약과 간접적 관련을 갖는다. 

1. 베스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던 바울은 베스도의 법정을 신뢰할 수 없어 상급 법원인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상소하였다(행25:10-11). 이 당시의 가이사는 네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굴복하라고 하였는데(롬13:1-7) 이 당시 위에 있는 권세는 네로였다.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롬13:4)라는 바울의 말 속에는 전율할 비극적 아이러니가 내포되어 있다. 

2. A.D. 64년 로마시에 대화제가 발생하여 큰 손실을 입었다. 네로가 트로이의 함락을 노래한 시구를 낭송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로마를 불태웠다는 소문이 퍼졌다. 네로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기독교인들에게서 찾았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방화범이란 확신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온갖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 당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구별되어 차별을 받고 있었으므로(네로의 아내 포페아는 친유대적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 방화범의 혐의를 씌우는 일이 가능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혐의가 조작된 것이며,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기고 하였다고 분명히 말하면서도 대중은 기독교인들의 도덕을 크게 의심하였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수에토니우스는 화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네로를 믿게 할 여러 가지 개혁조치들을 열거하는 중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난을 그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은 네로의 행동이 이같은 대중의 증오심을 공식적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합법적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었다. 베드로전서는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도덕적 실수도 자신들에 대한 법적 소송으로 이끌 수도 있으며 기독교 사회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세를 존중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었다. 

3. 네로 치세 말년에 팔레스타인에 있던 그의 지휘관들은 유대와 전쟁을 치루게 되었으며, 이 전쟁은 70년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끝이 났다. 이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인해 마침내 기독교회들은 시온주의 정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네로는 이 전쟁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도 감지하지 못하였다. 67년 중요한 고비에 그는 헬라의 무대에서 문학상을 타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네르갈(Nergal)

바벨론의 파괴와 재아으이 신으로 화성과 관계가 깊다. 바벨론 북동부의 굿 사람들이 앗수르 왕 사르곤에 의해 사마리아로 옮겨 와 그곳에서 자기들의 신 네르갈을 섬겼다(왕하17:30). 

 

네르갈사레셀(Nergal-sharezer)

느부갓네살의 사위로 후에 왕위에 오른 네리글리사르(Neriglissar)와 동일인이다. 느부갓네살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에윌므로닥이 왕이 되었는데, 후에 네르갈 사레셀이 자기의 처남이기도 한 에윌므로닥을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렘39: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