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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드로비모 / 드로아 / 드루배나 / 드루보사 / 드루실라

드로비모(Trophimus)

에베소 출신의 그리스도인으로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다. 두기고와 함께 아시아인으로 불렸으며, 이 둘은 에베소 교인들의 헌금을 예루살렘에 보내기 위해 사절로 파송받았고, 드로아에서 바울과 합류하여 예루살렘에 왔다(행20:4-6).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바울과 드로비모가 같이 다니는 것을 보고 또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을 성전 구획까지 데리고 들어왔다고 결론짓고서 바울을 잡으려고 폭동을 일으켰다(21:27-30). 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갈 때 드로비모는 병이 들어 밀레도에 남게 되었다(딤후4:20). 

 

드로아(Troas)

소아시아 북서 지방 무시아에 위치한 에게 해의 항구 도시로, 고대 트로이에서 남쪽으로 약 1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드로아'라는 지명도 트로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 하나인 아티고누스(B.C.310년경)에 의해 건설되어 '안티고니아 드로아'라고 불렸다. 그 후 B.C.300년경 드라게의 리시마쿠스(B.C.360-281)가 확장하여 마게도냐 정복자인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는 뜻에서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로 개칭하였다.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B.C.63-A.D.14) 황제 때 드로아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중요한 도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시아와 마게도냐를 연결하는 주요 항구로서 번성하였고, 신전이나 극장, 목욕탕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서 마게도냐로 오라는 소명의 환상을 보았고(행16:7-10), 3차 전도 여행 때에는 이곳을 거쳐 마게도냐로 갔다가(고후2:12-13) 사역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7일을 보냈다(행20:5-12). 바울은 자신의 외투와 책을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왔다(딤후4:13). 

 

드루배나(Tryphena)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문안 인사를 보낸 여신도로서, 드루보사와 함께 '주 안에서 수고한 자들'로 언급되었다(롬16:12).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라는 이름은 똑같이 '화려하게 산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어원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매였거나 또는 쌍둥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드루보사(Tryphosa)

바울이 안부를 전한 로마의 한 여신도로서, 드루배나와 자매 또는 쌍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롬16:12). <참조> 드루배나

 

드루실라(Drusilla)

헤롯대왕의 손녀이자,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셋째 딸이다(A.D.38-79). 6세 때에 이미 약혼했던 에피파네스와는 할례를 받고 유대교에 귀의한다는 조건을 에피파네스가 거부함으로써 파혼했다. 후에 그녀는 같은 조건하에서 아지주스와 결혼하였다(A.D.53년경). 그러나 1년만에 유대 총독 벨릭스(A.D.52-60)가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도 유대의 율법을 무시한 채 남편과 이혼하고 벨릭스와 재혼하였다(행24:24).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그립바는 A.D.79년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때 사망하였다. 유대인 출신이었던 드루실라는 그 당시 기독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종종 그 남편에게도 기독교를 소개하였던 듯하다(22절). 바울은 드루실라와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해 강론하였다(24-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