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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디몬1 / 디몬2 / 디밧 / 디베랴 / 디베랴 바다

디몬1(Timon)

초대교회 시대, 헬라파 과부들을 돌보기 위해 헬라파 유대인들이 선출한 일곱 집사들 중 하나이다(행6:5). 

 

디몬2(Dimon)

모압의 한 성읍으로, 이사야의 예언에 쓰여졌다(사15:9). 디몬은 이사야 15:2의 '디본'을 가리키는 듯하며, 이사야는 이 디몬 땅의 물이 피로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디밧(Diphath)

야벳의 아들인 고멜의 아들로서(대상1:6), '리밧'이라고도 불리웠다(창10:3). 

 

디베랴(Tiberias)

갈릴리 바다 서쪽 해안에 위치한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요6:23). 이 성읍은 헤롯 안디바가 A.D.25년경에 세운 것으로 그의 영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수도로서 사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도시는 국제적으로나 도로 체제상 중심지였고, 장엄한 전경을 갖고 있었다. 이 시의 이름은 황제 티베리우스(A.D.14-37)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이다. 디베랴는 지형적으로 지중해면보다 약 200m 정도 낮고, 산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분지에 위치해, 습도가 높은 아열대성 기후이고, 서풍이 불어오지 않아 유황천의 온천들이 있었다. 

디베랴의 주민은 혼합 인종으로 구성되었으며, 집정관을 중심하여 600명으로 구성된 평의회와 10인 위원회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A.D.44년까지 헤롯 안디바와 아그립바 1세의 통치하에 있다가 A.D.59년 아그립바 2세에게 주어져 100년까지 유대인의 통치 아래 있었다. A.D.135년 예루살렘 함락 후 디베랴는 유대교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A.D.150년경에는 산헤드린이 세포리스에서 이곳으로 옮겼고, 랍비들의 여러 학파가 설립되었다. 12세기에는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인 살라딘과 십자군 사이의 전쟁터가 된 디베랴는 살라딘의 손에 들어갔다가(1187), 1918년 1차 대전 후 영국 군대에 점령되었다가 1948년 이스라엘의 영토로 되었다. 

 

디베랴 바다(Sea of Tiberias)

갈릴리 바다의 별칭이다(요6:1). <참조> 갈릴리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