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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레히 / 렙돈 / 로가 / 로고스

레히(Lehi)

처가의 원수를 갚은 삼손을 잡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친 곳이기도 하지만(삿15:9), 블레셋 사람에게 결박당한 삼손이 결박을 끊고 그들을 나귀턱뼈로 천명이나 죽인 장소이기도 하다(삿15:14-15). 레히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블레셋 국경 근방의 딤나와 에담에 가까운 곳일 것으로 추측된다. 

 

렙돈(mite)

헬라에서 통용된 돈 가운데 사장 소액의 동화. 성경에 언급된 화폐들과 비교하면 한 렙돈은 고드란트의 2분의 1에 해당하며 앗사리온의 8분의 1에 그리고 데나리온의 128분의 1에 해당하였는데,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1일 품삯이라고 할 때, 얼마나 적은 금액인지 알 수 있다. 이 화폐는 참된 헌금의 교훈에서 한 과부가 바쳤던 헌금의 액수에 대한 표현에서 사용되었다(막12:42;눅21:2). 

 

로가(Roghah)

아셀의 후손이며 소멜의 아들이다(대상7:34).

 

로고스(Logos)

요한의 저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한 칭호로 반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로고스라는 말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 기본적인 번역어는 '말'(말씀), 곧 의미있는 발언이며, 이로부터 '언명, 선언, 논술, 주제, 가르침, 일(affair)'이란 의미로 발전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 원인, 목적, 동기'란 의미로 발전하게 된다. 로고스는 문법적 용어로는 훌륭한 문장을 뜻하며, 논리학에서는 사실적 진술, 정의 혹은 판단을, 수사학에서는 바르게 구성된 한편의 웅변을 뜻한다. 로고스는 스토아 철학자들에 의해 심리학과 형이상학의 용어로 사용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받아 로고스란 말을 사용하여 우주에 통일성, 일관성, 의미를 무여하는 신의 작용을 설명하였으며 이를 '종자적 말씀'(logos spermatikos, 'seminal word')이라 하였다('종자적 말씀'은 종자와 같이 형상 없는 물질에 형상을 부여한다). 인간도 이와 동일한 원리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내면적으로나 언어 표현 면에서 로고스를 지닌다고 보았다. 로고스란 용어는 '자연에 따라'(본성 혹은 천성에 따라) 사는 인간의 모범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70인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다바르(Dabar)가 로고스로 번역되어 있다. '말씀'으로 번역되는 경우 의미있는 소리를 뜻하며, '사물'(thing)을 뜻할 수도 있다. 히브리 심리학의 공통된 특징에 따라 인간의 다바르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인격의 연장으로, 나아가 그 자체로 독자적 존재성을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말씀은 환상과 신탁 뿐만 아니라 총체적 계시의 전체 내용, 특히 모세 오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 말씀은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비슷한 능력을 지니며(참조. 사55:11), 방해를 받음이 없이 그의 뜻을 성사시킨다. 이렇듯 이 용어는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을 가리킬 수도 있다. 지혜문학에서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은 그의 지혜로 언급되며, 많은 구절들에서 그와 구분되는 존재로 말해진다(참조. 잠8:22-30:솔로몬의 지혜7:21이하). 

구약과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로고스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으며, 이 용어에 고도로 발전된 의미를 부여하고 그의 신학적 도식의 중심적 자리에 두었다. 필로는 히브리 성경에서 헬라 사상을 발견하고 이에 따라 그는 시33:6과 같은 구절들을 토대로 로고스라는 말을 이용하여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와 모세 및 족장들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자가 되실 수 있는 방도를 설명하였다. 헬라 사상 측면에서 그는 로고스를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world of ideas) 개념과 동등하게 보았고 로고스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되었다. 성경 주석의 측면에서는 로고스가 주의 천사와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시되면서 대제사장, 선장이며 조타수, 보혜사,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 묘사된다. 로고스는 제2의 하나님으로 불려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적 인간, 하나님이 지상에 창조하신 인간의 모형으로 묘사된다. 이같은 모든 의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 로고스란 용어는 - 적어도 의도면에서 필로의 견고한 유대교적 관점에서 불가피하게 - 하나의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용어와 도구로 남게 된다. 

신약 여러 구절에서 로고스가 복음 메시지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고스는 예를 들면 말씀을 선포한다는 뜻으로 독자적으로 사용되며, 또한 소유격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 십자가의 말씀, 화목의 말씀, 생명의 말씀 등으로도 사용된다. 이것은 복음 이야기가 신약에서 본질적으로 예수 자신을 표상하는 것으로, 곧 예수가 선포된 말씀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에 항상 이런 의미가 내포된 것은 아니다. 

로고스란 용어가 세 곳, 말하자면 요1:1,14, 요일1:1-3, 계19:13에서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이 세 곳 가운데 요1:1은 그리스도의 의미가 신학적으로 해석된 요한복음의 고도의 형이상학적 서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이 일차적으로 어디서 유래했으며 이곳에서 말하는 고로스의 주요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다소 의견이 엇갈린다. 이 서문을 일차적으로 구약의 다바르 용법에만 연결시키거나 토라에 관한 랍비의 가르침에 연결시키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 개념들은 14절에 그대로 쓰이기에는 지고신과 충분히 구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시도들은 실패하고 있다. 지혜의 모습이 보다 병행되는 점들을 제공하나 우리의 자료에서는 말씀과 동일시 되고 있는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이 거론했던 원초적 혹은 천상적 인간(Primal or Heavenly Man)에 대한 가르침도 추측에 불과할뿐 큰 신빙성을 갖기는 힘들다. 유일하게 필로의 로고스 가르침이 말씀이 하나님과 유사한 통일성과 유사한 구분을 가지면서 우주에서의 창조 및 보호활동과 인간을 향한 계시 활동이 모두 그것에 주어지는 분명한 신학적 도식을 제공해준다. 나아가 성육신의 독특한 개념도 필로가 로고스를 이상적 인간과 동일시한 데서 오는 정당한 발전이다. 필로를 직접적으로 이용한 것이거나 헬레니즘화한 유대 지식인 집단의 유사한 배경이 이 배후에 존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일1:1의 '생명의 말씀'은 전문적인 신학적 의미에서 로고스의 의미를 지닌 것 같지는 않다. 문맥이나 구문상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설사 이 구절이 요한복음서와 같은 저자의 필치라 하더라도(이 점에 관해 일부 학자들은 의심스러워 한다) 이 서신은 완성된 로고스 교리의 채택 이전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복음'이란 뜻이 이 문맥에는 가장 잘 맞는다. 

계 19:13이 승리자에게 하나님의 로고스(하나님의 말씀)란 칭호를 귀속시킨 배후에는 '복음'의 의미가 존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는 6:2이 참조가 되는데 일부 주석가들은 흰 말을 탄 자는 승리하며 진군하는 복음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또한 솔로몬의 지혜 18:15-16 "하늘의 옥좌로부터 주님의 전능하신 말씀이 마치 사정없는 전사처럼 멸망한 땅 한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그는 날카로운 칼과 같은 주님의 확고부동한 명령을 가지고 와서 우뚝 서서 온 세상을 시체로 가득 채웠다. 그는 아래로는 땅을 딛고 위로는 하늘까지 닿았다"의 이미지를 참조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소록의 인물은 왕의 왕과 주의 주(Lord of lords)로 분명히 선언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보다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여기에 잠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형이상학적 의미가 요한복음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이 곳에서 전개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계시록의 문학 유형적 성격 때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세 곳 모두 그리스도의 완전성이 예비적인 모든 이미지와 사상을 철저히 소진시키고 있음을 예시해 준다. 예수는 그 이전에 보다 작은 신비들을 표현했던 용어에 신선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